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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20.03.01|조회수201 목록 댓글 0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2020, 3, 1

고후9 : 6-11

 

누가복음 2036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다른 분이 아닌 이 땅에 우리를 구원 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다시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죽을 수도 없는 그 영원한 생명은 천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신분이 천사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천사와 같다는 것이지 그 신분조차 천사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부활의 생명을 가진 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에서 나온 생명으로 천사들과는 다른 존귀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017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의 제사들을 가리켜 내 형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의 섬김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축복입니다.

나는 이 축복으로 내 가슴에 항상 기쁨이 가득 합니다.

나는 이 놀라운 축복을 얻었고, 또 내가 가진 축복이 참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횃불회관 세미나에서 할례루랴 교회의 김상복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63빌딩을 공짜로 준다하면 기쁨으로 엉엉 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63빌딩을 얻는다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큰 기쁨으로 울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면 63빌딩을 얻는 것에 비교하겠습니까?

내가 어느 신학자의 책에서 본 말인데 우리가 구원 받아도 잠시 기쁨을 누리다가 곧 그 기쁨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신학자의 글을 읽는 순간 그 신학자의 구원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진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기쁨을 누리고 살고 있고, 날이 갈수록 더욱 확실하고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살고 있으며 그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이 영생에 대한 확실함은 하나님이 주신 보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2절서 우리가 구원 받은 보증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에베소서 113-14절 말씀에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중요한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의 기쁜 소식인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표시로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은 모든 자들에게 큰 자유를 주셔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구속이란 말씀은 구원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원한 찬양을 드리게 하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자기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시편 10430절에서도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33절에서는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대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은혜와 찬양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보증을 갖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과 천국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신 성령을 받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모른다면, 두 가지 점에서 자기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여러분들이 이미 아는 그 복음을 확신으로 마음에 와 닿기까지 다시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미 구원 받은 믿음으로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시는데도 아직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 안에서 참된 믿음을 가지려면, 자신에 대해서 냉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자기를 변명하면 성령을 얻지 못합니다.

나도 복음을 잘 알면서도 오래 동안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도 오랫동안 성령을 얻지 못하고 있다가 복음에 대한 확신을 얻고 성령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실망하지 말고 꾸준하게 탐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경의 예언대로 오셨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다고 했습니다.

이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또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증거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모든 상황으로 보아서 충분하고 확실합니다.

이 보다 더 분명한 다른 증거를 요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을 믿는 자, 다시 말해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의 죄 사함을 위해 그분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죽으신 것을 나는 내 눈으로 본 것처럼 알고 있었고, 또 그분의 부활하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믿음은 이성적인 확신이요, 지식이었습니다.

칼빈은 이 성적인 확신을 가리켜 확신이 결여된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성적인 확신을 심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확신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구할 때에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 : 155절에 구원이 악인에게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하셨고, 또 누가복음 1113절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성령을 받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갈라디아서 120절에 사도 바울이 자기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증언하기를 내가 하나님 앞에 거짓말이 아니로라.”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덜커덩하면서 내 마음에 있는 무엇인가 무너지면서 갑자기 밝게 열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이 밝게 깨달아 지면서 큰 확신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에 기쁨과 평안이 내 가슴에 가득히 밀려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들어오는 생각은 예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셨구나 하는 깨달음이 동시에 왔습니다.

내가 그 동안 확신한다고 믿고 있던 그 복음이 그 때 다른 확신으로 내 마음에 와 닿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 후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수 없이 다르게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가 내게 참된 실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처음들을 때부터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예수 믿게 된 처음부터 죄에 대해서 아주 예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죄를 많이 짓고 그 죄책으로 하나님 앞에 머리조차 들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같은 죄를 수 없이 반복해서 짓고 그 때마다 주님 바라보며 이번만 죄를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이 죄를 짓지 않겠다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런 회개를 하고도 또 다시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일이 수 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육신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죄를 계속해서 많이 짓다보니 나중에는 염치가 없어서 용서해 달라고 입도 열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죄책으로 심히 아프고 괴로운데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문에 하나님 앞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 책을 가지고 주님을 피한다면 내 죄책은 내 가슴에 크게 남아 계속 고통을 받을 것이요, 아무에게도 이 죄를 용서 받지 못하고 이 죄로 저주 받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주님 앞에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주 앞에 다시 나오면 주의 십자가를 묵상했습니다.

주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내 죄 사함을 또 다른 깨달음으로 확신을 갖고 평안을 얻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러기를 수 십 번도 넘습니다.

그 때마다 주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에 대한 새롭고도 더 깊은 깨달음과 더 큰 확신을 얻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주의 대속의 십자가는 내게 실제가 되었고, 내가 죄 사함 받는 실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쉽게 온전한 믿음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성령이 행하시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셔도 모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주님의 산상수훈은 성령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말씀들입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의에 주리고 목마름과 마음은 언제나 가난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죄책이 크게 오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애통해 할 것입니다.

죄에 대한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크게 오기 때문에 이 죄에 대한 고통과 아픔은 본래 내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주의 말씀을 주린 자처럼 먹을 것입니다.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주려 보셨지요?

거듭난 사람이 말씀을 먹지 못했을 때에 주림도 그와 같습니다.

또 정결하게 되기를 간절함으로 원할 것입니다.

거짓되지 않기를 원할 것입니다.

정결하고 거짓되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잃을지라도 정결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어떤 말씀을 큰 확신으로 받을 것입니다.

아무리 초 신자라 해도 주의 어떤 말씀을 행하고 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와 같다면 여러분들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 받게 하고 자녀 삼으신 그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만드시고 지으셨다는 단어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의 영과 생명을 넣어 새로 만드시고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새 사람으로 지으신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721-23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날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으로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것처럼 구원 받은 우리도 그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함을 이루고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하나 되고 또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2절과 3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에 대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과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또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모든 것을 행할지라도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5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6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열매들이란 형제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17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주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 받게 하신 목적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의 그 사랑의 계명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계명을 이루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넉넉하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98-10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은혜를 넘치도록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혜의 중심 내용은 우리가 가진 것을 형제에게 나누어 주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첫 째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유지할 충분한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더 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밝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생명은 주님의 의의 생명으로 자신을 위해서 사는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주는 의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은 주님의 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남에게 선을 베풀며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10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농부가 씨를 심을 때에 수 십 배의 수확을 생각하고 씨를 심습니다.

이와 같이 선행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풍족하게 주시고, 또 남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을 더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들은 전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요, 남에게 주어야 하는 것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열매는 모두 연보를 의미합니다.

는 선행을 의미하고, 열매란 베풀어진 도움을 의미합니다.

선행을 행하는 자는 이 땅에서 선을 베풀 수 있는 것을 받을 뿐 아니라 그의 의가 하늘에 영원토록 있다고 하셨습니다.

잠언 19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꾸어 드릴 수 있는 만족스러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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