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의 풍수명당
예천읍 갈구리에는 갈머리(갈두)가 가장 먼저 생긴 마을로 갈화미발형(葛花未發形)의 명당터가 있다고 한다. 구밑ㆍ구산(구산)ㆍ구미(龜尾)는 갈머리 북서쪽에 있고 순흥안씨가 터를 잡은 마을인데 금구몰니형(金龜沒尼形) 명당이 있다고 한다. 또한 지세가 거북이 꼬리처럼 생겨 구미라고 한다. 마을 앞의 산이 아홉골이므로 구산이라고도 한다.
대심동 흘진개(흑진개)와 생천리(생내실,생나실)은 나붓들(羅浮坪) 나비처럼 춤춘다고 하여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닭울이고개(鷄鳴峴)는 두사충이 중국 양양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금곡으로 이름하였다. 통명 역마의 黃狗골 맞은편에는 범밭등(伏虎形) 때문에 황구가 똥을 쌈으로 부유하며 黃金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甘泉면 大麥리에는 渴馬골(谷)이 있어 감나무골 건너 渴馬飮水形의 명당이 있다. 금댕이(金塘,丹山)에는 金鷄抱卵形, 쇠죽골에는 臥牛形, 장군바우에는 강릉김씨묘가 伏虎形으로 있다. 덕율(덕밤)리 수용골에는 臥龍飮水形, 돈산 돈닷(敦畓) 돛을 단 형국, 벌방(벌봉)에는 꽃 봉우리 산이 있고, 유동역 남산은 쌍사산(雙絲山) 형국이다. 진평리에는 雌鳳抱卵형국이 잇다.
開浦面 京津(서울나들이) 벙어리가 3년이면 말을 하고, 거지 3년이면 의식 걱정이 없다는 명당이 잇고, 琴洞 거문골에는 織女彈琴形局이 있다.
普門面 독양리 篤竹에는 소가 죽 먹는 형국이 있고, 마촌에는 말골이, 굴렛들(구룡곡)에는 九龍爭珠形이 있다. 신월리 돌다리(石橋)는 무근열 서쪽으로 피란곳이며, 鵲谷 까치들(鵲坪)에는 까치집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友來 可居里는 문래실 동쪽으로 북후면 땅이었다가 1914년에 편입되엇는데 퇴계 이황선생이 ‘山川佳景 可居地也’라 하였다.
상리면 고항리 文谷에는 문필바위가 道村里 雙鶴에는 가재봉 명당이 있고, 易東우탁선생묘가 있다고 한다. 鳴鳳寺는 조선 문종과 사도세자 태실이 있다. 백석 기곡(基谷 텃골)에는 중국地官 이조백이 명당이 있다고 하였다.
하리면 금곡동에는 마을 뒤편의 매봉재 지형과 산세가 좋아 장차 큰 인물이 태어날 곳이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그 혈穴을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은 곳이라고 한다. 함창서 상리까지 와서 임란중에 의병을 지휘하던 김광엽이 정착하면서 순천김씨가 사는 곳이라서 金谷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마을 앞의 역마골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 온 공민왕의 많은 장졸들이 군마를 메고 주둔했다는 골짜기이다. 시항동 뒤 부용봉은 688m의 높고 아름다운 산이며 이여송의 조상의 묘가 이 산에 있어 그 발복으로 명나라 장수가 되었다고 한다.
龍宮面 가야리 갈마골에는 臥龍飮水形, 무지리 무동에는 玉女彈琴舞童形, 향석의 향교는 玉女彈琴이라고 한다.
龍門面 구계(구려울 구렬)에는 연무덤(輦墳)이 있어 元왕비가 났고, 능천(능내)의 토끼산이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이고 두천리에는 造山이 있다. 상금곡 금당실은 정감록의 십승지이고 오미봉에는 神堂이 있다. 선동(신선골)에는 신선바우가 잇어 神仙圍碁形局이 있다.
복천에는 유엽배 6개가 선조 때 감사 丁윤가 명나라사신으로 갔다가 신종황제로 하사 받은 것이 있다. 원류리에는 명견지가 있어 맹호출림형이다. 허리골(희제골,流里,본유동,希里)은 정감록의 금당실 북쪽 10리에 있고 피란처로 유명하고 박종린의 감로루가 있다. 竹林(대숲 대수)에는 예천 권씨 宗家別堂이 下金谷에는 쑤안(藪內,合水)이라는 지명이 있다.
柳川面 연천리 갈마(寒泉)에 渴馬飮水形이 있고, 용암리 어룡산에는 飛龍上天形에 풍산류씨ㆍ선성김씨 묘가 있다. 竹岸里에는 비봉산이 있어 지명으로 비보하였고, 초적리(푸절골)는 선돌(束草石,立石)을 세워 臥牛形의 소가 여물을 먹도록 속초(束草 팔단)을 지명비보하였다.
知保面 大竹里(한대)에는 말(言)무덤을 주둥개산의 입에 설치하여 분쟁을 줄이고 있다. 신풍에는 九龍爭珠形이 있고 암천리(너리바우) 어신리에는 造山을 설치하여 地氣虛缺處를 비보숲으로 막고 있다.
지보리(역말)익장 女根설화가 있고 정사 묘가 태백산-학가산-조골산-연화산을 이어온 玉女端座形이 있어 다리를 놓지 않는다고 한다. 마전나루의 소금배를 통하여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민촌의 근대화가 빨리 진행되었고, 해방후에는 좌우대립이 심하였다.
풍양면 와룡리 밥봉산 나무가 무성하여 서동마을로 풍요하고 우망리에는 牛望月形이 있다. 金鷄抱卵形이 알실골에 있다. 三江은 三江(학가산 주흘산 팔공산)이 만나는 지점으로 약포 3子인 청풍자 장윤목의 후손이 살고 있다.
虎鳴面 白松(행소리)은 燕巢形이고, 한어리(한터)는 중종때 재상이 나고 蓮花浮水形으로 과부가 많다고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