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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빙글/.나미

작성자연꽃(金明根)|작성시간18.07.10|조회수277 목록 댓글 1

빙글빙글 - 나미





 






    빙글빙글 - 나미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 
늘 속삭이면서도 
사랑한다는 그말을 못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사람 

그리워지는 길목에 서서 
마음만 흠뻑 젖어가네 

*어떻게 하나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여울져 가는 저 세월 속에 
좋아하는 우리사이 멀어질까 두려워 

*Repeat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사람 

그리워지는 길목에 서서 
마음만 흠뻑 젖어가네 

*RepeatX4 



















세상을 바꾼 노래

 

나미 '빙글빙글'(1984)
한국 댄스음악의 대반


해외에서 건너온 실력자.

나미와 머슴아’들이 등장해야 할 타이밍은 바로 이때다.

사랑과 평화의 밤무대 연주에서 슬랩(slap) 베이스를 선보였던

이탈리아인 사:�(SavatoreCatone)가 ‘머슴아들’을 이끌었다. 남들과 똑같이

미8군 무대를 거쳐 밤무대를 누빈 프랑코 로마노(Franco Romano) 그룹이 그대로

나미를 받쳐주는 ‘머슴아들’이 된 것이다. 나미도 만만치 않았다. 동두천 태생인 그녀는

일찌감치 미8군 무대를 들락거렸다. 10대 때는 末� 돌스(Happy Dolls)라는 그룹의 보컬로

월남 위문공연까지 다녀온 터였다. 해피 돌스 해체 후 나미는 머슴아들과 결합했다.

이 시절에 남긴 곡이 ‘영원한 친구’다.

 그루브를 한껏 살린 머슴아들의 편곡은 군더더기 없이 말끔했다.

이들도 보란 듯이 실력을 드러냈고 ‘Y.M.C.A.’를 번안하여 당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갔다. 다만 이들은 국제적 눈치뿐 아니라 국내적 눈치도 봐야 했다.

A면 첫 곡 ‘미운정 고운정’은 트로트 멜로디에 훵크 리듬을 입힌 심히 불가해한 작품이지만,

그걸 전적으로 나미와 머슴아들 탓으로 돌리는 건 이래저래 마땅치 않다.

 

어쨌든 그랬던 탓일까? 사랑과 평화처럼 균일하지 못했던 나미와 머슴아들은 단발성

 기획으로 그쳤고, 나미는 이듬해인 1980년에 독집을 발표한다. 이후 ‘빙글빙글’이 대히트를

기록할 때까지 그녀는 지지부진했다. 윤시내를 비롯한 당시의 대단했던 여성 보컬들이 대개 그랬듯,

자신에게 꼭 맞는 한두 개의 노래와 영 어색한 다수의 성인풍 노래들로 계속 음반을 채워나갔다.

‘빙글빙글’은 대반전이었다.

첫째, ‘빙글빙글’은 나미에게 대반전이었다.

비음이 강하면서도 허스키한 독특한 보컬은

 이 노래로부터 날개를 달았고 그녀는 주류 가수로 급부상했다.

둘째, ‘빙글빙글’은 사랑과 평화에게 대반전이었다.

1980년의 2차 대마초 파동으로 사랑과 평화는 공식 활동을 정지당했고

멤버들은 살 길을 찾아 흩어져야 했다. 가수들의 작/편곡 작업으로 음악 인생을

이어나가던 김명곤은 똑같이 사르보와 인연이 있던 나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두 사람

모두 디스코의 국제적 광풍을 국지적으로 돌파해냈던 경력이 있었기에 코드를 맞추는 건

문제 없었다.나미를 성공시킨 뒤 김명곤은 1980년대 내내 최상급 작/편곡자로 명성을 떨쳤다.


 

 

 

셋째, ‘빙글빙글’은 한국 댄스뮤직의 대반전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이 중요하다. ‘빙글빙글’ 이전에도 댄스뮤직은 엄연히 존재했다.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맞춰 몸을 흐느적거리던

1970년대 중반의 고고장도 춤판이었고, 훵키 리듬에 옆구리를 찔러대던

1970년대 말의 밤무대도 춤판이었다.

다만 이 춤판의 담당자들은 언제나 밴드였다.

 밴드가 베이스를 튕기고 기타를 긁어대고 드럼을 두드려야만 사람들은 춤을 췄다.

‘빙글빙글’ 직전까지도 그랬다. 사람들을 춤추게 한 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었고 윤수일 밴드였다.

그건 언제나 프로 연주자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빙글빙글’은 전혀 달랐다.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뭉툭한 신시사이저 소리와 사뿐거리는 키보드 연주, 조악한 드럼 루프가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갔다. 김명곤은 한국 최초의 신스팝을 만들었고 그것은 곧장 파란을 일으켰다

이 땅에도 전자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빙글빙글’로 이정표를 세운 김명곤은 이듬해 나미 새 앨범의 전권자가 된다.

1985년에 발표된 나미 4집은 훌륭한 멜로디,

풍성한 신시사이저, 최이철의 감각적인 기타가 어우러진, 시대를 앞선 걸작이다.

더불어 팝 발라드의 진정한 시작을 알린 ‘슬픈 인연’과 ‘님의 계절’을 담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나미도 만만치 않았다.

김명곤이 곁에 없던 1990년에 그녀는 붐붐을 대동하고 ‘인디언 인형처럼’ 리믹스 앨범을 발표한다.

한국 힙합의 프로토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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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재길 | 작성시간 18.07.15 잘보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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