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자동차
한국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들어온 것은 1903년,
한
세기를 훌쩍 넘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자동차는 고종 즉위 40주년 맞이 청경예식(稱慶禮式)때 사용하려고 했던 자동차입니다. 아쉽게도 러·일전쟁으로 인하여 사라져서 정확하게 어떤 브랜드였는지 어떤 형태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마도 당시 백성들이 처음으로 보았을 자동차는 1911년, 고종의 어차용으로 수입된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4기통)일 것입니다. 현재에는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이 되어 있습니다.
고종의 어차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
고종의 어차용 다임러 리무진에는 조금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다소 잊혀진채 보관되어 있던 자동차는 1995년 복원을 하기 위하여 문화재청에서 재규어 다임러의 전문가를 초빙하게 됩니다. 이때 다임러의 기술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해당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자신들의 박물관에만 1대 있었던 것으로 여겨졌던 모델이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특별한 복원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보관상태가 좋았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보물의 발견이였을 것 입니다. 그들은 문화재청에 자신들에게 고종의 어차를 팔라고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문화재였기에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이 보수작업은 현대자동차에서 이수를 하였으며, 현재는 국림고궁박물관에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고종의 어차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
한국이 만든 최초의 자동차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자동차는 1955년 국제차량제작소에만 만든 '시발'입니다. 지프형 승용차인 시발은 미군이 남겨놓은 지프의 형태를 착안하였으며, 차체부터 엔진까지 주물공법을 이용화여 수제로 제작을 한 한국 최초의 자동차로 그 시작을 알렸습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제작된 자동차 시-바ㄹ
한국 GM의 모태 새나라 자동차
새나라자동차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새워진 자동차 회사로 1962년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새나라자동차는 닛산의 블루버드 차량을 들여와 뱃지 엔지니어링방식으로 한국 소형차 시장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뱃지 엔지니어링 : 하나의 자동차 섀시를 이용하여 여러가지 모델을 만든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대우자동차의 모델이 이와 같은 방식을 많이 이용하였으며, 현재에도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뱃지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부를 올린 새나라자동차는 자동차 재벌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닛산의 자동차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특혜와 탈세 등 사실이 들어났으며, 자동차 보호법에 의하여 내국세, 수입관세 등을 면제 받으면서도 규정 가격보다 차량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들어나게 되면서 사세가 기울어지게 되었고 1963년 7월 한일은행의 법정관리 처분을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새나라 자동차의 모델 새나라
자동차 재벌의 탄생 신진자동차
새나라자동차를 인수 한 것은 부산에 터를 두고 신진공업입니다. 신진공업은 1955년 창업하여,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GMC CCKW 섀시를 재생하여 버스를 만들어 사업을 하였습니다. 당시 신진 마이크로버스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를 가지고 신진공업은 새나라 자동차를 인수하게 됩니다.
새나라자동차의 생산라인과 토요타와의 기술제휴 등으로 신진공업은 1966년 코로나, 1967년 크라운, 1967년 퍼블리카 등 승용차를 제작하였으며, 특히 1966년 생산된 코로나는 엄청난 판매고 올리며 국내 승용차 시장의 최강자로 오르게 됩니다.
신진자동차의 크라운과 코로나 홍보 전단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내에서 돌아녔던 시내버스들 역시도 신진자동차가 아닌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신진공업부터 이어온 기술력과 더불어 토요타의 기술력에 힘입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젤 버스를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부를 축적한 신진자동차는 대한민국 재계에서 2~3위를 다툴 정도로 큰 부자가 되며, 다른 회사를 통패합하며 점점 그 세를 늘려갑니다.
신진자동차와 토요타의 합작으로 제작된 국내 최초의 디젤버스
신진자동차의 가세가 기울어 지기 시작한 것은 1969년도부터 입니다. 당시 적자로 허덕이던 한국기계공업을 인수하게 되면서 결국 경영에 문제가 발생되게 됩니다. 설상 가상으로 그동안 업무적/기술적 제휴를 맺고 있던 토요타가 중국의 "저우 4원칙"으로 신진자동차와 결별을 택하게 됩니다.
저우 4 원칙 : 1970년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가 중국과 통상을 원하는 비적성 자본주의 국가에게 요구한 4개의 원칙
대한민국, 타이완과 거래하는 메이커, 무역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타이완에 투자하고 있는 회사와도 거래하지 않는다.
월남전쟁 때 미군에 무기를 지원한 회사와도 거래하지 않는다.
미국 기업의 일본법인 혹은 일본 소재 자회사 역시 거래하지 않는다.
출처 : 나무위키
결국 1971년 GM과 결탁을 하고 새나라자동차에서부터 이어온 부평 공장을 지엠코리아로 분사시키게 되며, 신진자동차의 50% 지분률이 GM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이어온 경영악화는 결국 신진자동차의 계열사들 마저도 다른 기업으로 넘기게 되었고, 결국 1976년 한국산업은행의 관리로 넘어가게 됩니다.
신진자동차의 계열사 중 유일하게 남은 자동차 관련 기업인 (주)거화 역시도 동아자동차에 넘어가게 되면서 신진자동차의 역사는 완전하게 마감을 하게 됩니다.
GM코리아의 시보레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경쟁
현대자동차는 등장은 1967년도입니다. 1940년도 정주영 회장이 운영한 정비공장이 모체입니다. 현대자동차를 설립 한 것은 정주영 회장이 동생 정세영이였으며, 그는 미국 포드와 기술제휴를 맺습니다. 이듬해 현대는 포드 코티나를 제조하여 자동차 회사로써 첫 발돋움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포드와 현대의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정주영회장은 완전하게 국내 기술력으로만 만든 자동차를 만들기를 원했으며, 1970년대 후반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를 맺고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디자인을 의뢰도 합니다. 또한 미쓰비시에도 기술 협력을 받으며, 1975년 울산공장을 준공하게 이릅니다.
이듬해인 1976년 1월 드디어 오로지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력으로만 만든 포니가 등장하게 됩니다.
* 포니 이전에는 유명 메이커의 디자인이나 엔진 혹은 차량의 베이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국내에서 조립만 하는 형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포니
대우자동차는 대우그룹이 신진자동차를 인수를 하면서 시작됩니다. (신진자동차의 지분은 산업은행이 한국은행으로 부터 넘겨받았고 새한자동차로 이름을 변경 한 후에 최종적으로 대우그룹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지만, 포니를 만들면서 쌓아온 기술력과 더불어 포니의 판매고로 인하여 자본력까지 갖추게 된 현대가 쏘나타를 내어 놓게 되면서 항상 2인자의 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대우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한자동차 시절부터 이어온 GM과의 인연이였습니다. GM은 신한자동차의 지분율 50%를 보유하고 있었고 신한자동차의 대부분의 기술력 역시 GM에서 나온 것이였습니다. 당연하게 GM은 대우자동차에 큰 영향력을 주었으며, 이 때문에 대우는 GM의 차량의 베이스를 벳지 엔지니어링 한 형태의 차량을 주로 출시하게 됩니다.
GM은 미국의 기업! 당연하게 미국형 차량의 베이스가 많이 있었고 이는 한국의 도로실정과 맞지 않는 자동차였기에 대우는 현대에 이어 만년 2인자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설상가상 IMF와 더불어 무리한 경영을 이어온 대우자동차는 2002년 승용차 부문을 완전하게 GM에 넘기게 됩니다. *버스상용부문은 영안모자에서, 트럭사업무는 인도의 타다그룹이 인수합니다.
대우자동차의 첫 고유모델 에스페로
쌍용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쌍용자동차 역시 신진자동차의 영향을 받은 회사 중 하나입니다. 쌍용자동차 이전에는 동아자동차였으며, 앞서 설명드린 것 처럼 동아자동차는 신진자동차의 계열 사 중 하나인 (주)거화를 흡수한 회사입니다. 동아자동차는 본래 신진자동차의 계열 사 중 하나였지만, 1975년 신진자동차에서 독립을 하고 거화를 인수 4WD 차량을 생산하게 됩니다.
본래 (주)거화는 신진자동차와 미국 AMC가 합작하여 신진지프자동차를 설립하였으며, 1969년 국내 최초로 민간용 지프를 제작을 합니다. 이때 제작된 지프가 지금도 쌍용의 명맥을 유지시키고 있는 최고 판매고를 올린 SUV 코란도 시리즈의 시초가 됩니다.
쌍용을 만들어 놓은 코란도 훼미리
동아자동차에서 쌍용자동차로 변경이 된 것은 1988년입니다. 동아자동차의 하동화 회장은 거화를 인수하면서 자금에 여력이 없었졌으며, 결국 신차개발에 부담이 되어 쌍용그룹에 동아자동차를 넘기게 됩니다.
쌍용자동차는 1993년 '이노베이션 원년'을 선포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제휴를 맺고 무쏘를 출시하게 됩니다. 이후 1996년에는 뉴코란도를 출시, SUV = 쌍용자동차라는 이미지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쌓여온 적자는 쌍용그룹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으며, 쌍용의 김석원 회장의 무리한 정계 활동 등이 이어지며, 1997년 외환위기때 유동성 위기에 처해지고, 1998년 대우그룹에서 인수를 하게 됩니다.
훼미리와 무쏘
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의 시작은 1944년 12월 11일 학산 김철호에 의하여 '경성정공'으로 설립이 됩니다. 이후 1952년 3월 국내 최초의 자전거인 '3000리호'를 출시하게 됩니다. 지금의 삼천리 자전거의 전신 역시도 경성정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1952년도 기아산업으로 변경을 하고 1957년 시흥에 공장을 설립, 1961년 혼다와 기술제휴를 맺고 오토바이를 생산하게 됩니다.
기아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는 것은 1962년 마쯔다의 전신인 도요공업의 모델을 들여와 3륜 화물차 K-360을 만들면서부터입니다. 1973년에는 국내 최초 모든 공정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소하리 종합자동차공장을 설립하게 되고 1974년 브리사를 제작합니다.
기아자동차 브리사
브리사는 현대 포니가 탄생하기 전까지 승용차 판매 부문 1위를 차지하며, 기아자동차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게 됩니다.
브리사의 높은 판매로 인하여 부를 쌓은 기아자동차는 1976년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합니다. 기아자동차의 불행은 1981년 시작이 됩니다.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인하여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 생산업체'로 지정을 받아 승용차 생산이 금지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마쯔다의 봉고의 라이선스 생산을 하여 출시하여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지만, 기아의 효자 종목 이였던 브리사를 제작하지 못한다는 점과 기술 개발을 조차도 하지 못한 점은 결국 기아자동차의 발전을 막게 된 것입니다.
자동차공업통합조치 : 1979년 2차 오일 쇼크로 인하여 자동차 수요 억제를 위하여 각 기업마다 특정 차량만 생산 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 둔 것, 이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퇴보시키는 조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를 유지한 봉고
1987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풀리게 되고, 프라이드, 콩고 등으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국제 경쟁의 격화 및 경기 침체 등으로 기아 그룹 전체의 경영난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오고 그에 따라 무리한 사업확장 등으로 인하여 1997년 결국 부도가 나게 되었고 1999년 계열사인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현대그룹에 편입됩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자동차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의 상황까지 끄적여 보았습니다. 대체적으로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를 참고해서 글을 적었는데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지금은 현대자동차그룹만 유일하게 온전한 국내의 자동차 업체이지만, 먼 미래에는 또 다른 자동차 그룹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