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의 닭요리 한림계(翰林鷄)

이태백의 닭요리 한림계(翰林鷄)는 호북(湖北) 안육(安陸)의 정통요리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당(唐)조 시인 이태백이 26살이 되는 해인 727년에 사천(四川)을 떠나 호북에 이르렀다고 한다.
호북의 안육에 거처를 잡고 머문 10여년간 이태백은 현지의 유지들을 많이 사귀면서 다른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마냥 벗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덧없는 세월을 보냈다.
이태백은 평소에 술안주로 닭고기와 오리고기, 게사니고기, 생선, 야채를 가장 좋아하고 쇠고기와 양고기도 가끔 선택했으나 돼지고기만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이태백의 식성을 잘 아는 벗들은 항상 닭과 오리, 게사니를 가지고 술안주를 만들어 함께 식도락을 즐겼다. 많은 음식에서도 이태백은 특히 닭고기 요리를 최고로 좋아했다.
그러다가 조정의 부름을 받은 이태백은 흐뭇한 기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를 쓰기도 했다. "산중에서 배갈을 곁들이니 가을철 모이좇는 닭은 한창 살찌네. 꼬마를 불러 닭요리를 맛보게 하니 꼬마는 웃으며 어른의 옷깃을 잡네"
이 시에는 곧 벼슬하게 될 즐거운 심정과 뜻을 이룬 의기양양함,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맛있는 닭고기를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백은 도읍으로 올라가 한림(翰林)이라는 벼슬을 지내게 되었고 그로부터 이태백이 즐겨 먹던 닭고기 요리는 한림계로 불리우면서 오늘에 이른다.
요리체계:
이태백의 닭요리 한림계(翰林鷄)는 일명 악채(鄂菜)로 불리우는 호북(湖北)요리에 속한다. 강한(江漢)벌판을 중심으로 무한(武漢)과 형주(荆州) 등지의 음식이 그 대표이다.
장강(長江)의 하류, 동정호(洞庭湖)의 북쪽에 위치, 강물과 호수가 많은 호북은 기후가 따뜻하고 물산이 풍부하다. 특히 민물생선이 많이 나고 산간지대에서는 온갖 진미를 찾을수 있다.
찌고 튀기고, 볶는 등 조리법을 많이 사용하는 호북요리는 국물이 짙고 걸죽하며 맛이 짙고 순하다. 물고기와 육류, 야채 등을 주요 식재로 하고 음식의 모양은 둥근 완자를 선호한다.

이태백의 닭요리 한림계(翰林鷄)는 호북(湖北) 안육(安陸)의 정통요리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당(唐)조 시인 이태백이 26살이 되는 해인 727년에 사천(四川)을 떠나 호북에 이르렀다고 한다.
호북의 안육에 거처를 잡고 머문 10여년간 이태백은 현지의 유지들을 많이 사귀면서 다른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마냥 벗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덧없는 세월을 보냈다.
이태백은 평소에 술안주로 닭고기와 오리고기, 게사니고기, 생선, 야채를 가장 좋아하고 쇠고기와 양고기도 가끔 선택했으나 돼지고기만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이태백의 식성을 잘 아는 벗들은 항상 닭과 오리, 게사니를 가지고 술안주를 만들어 함께 식도락을 즐겼다. 많은 음식에서도 이태백은 특히 닭고기 요리를 최고로 좋아했다.
그러다가 조정의 부름을 받은 이태백은 흐뭇한 기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를 쓰기도 했다. "산중에서 배갈을 곁들이니 가을철 모이좇는 닭은 한창 살찌네. 꼬마를 불러 닭요리를 맛보게 하니 꼬마는 웃으며 어른의 옷깃을 잡네"
이 시에는 곧 벼슬하게 될 즐거운 심정과 뜻을 이룬 의기양양함,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맛있는 닭고기를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백은 도읍으로 올라가 한림(翰林)이라는 벼슬을 지내게 되었고 그로부터 이태백이 즐겨 먹던 닭고기 요리는 한림계로 불리우면서 오늘에 이른다.
요리체계:
이태백의 닭요리 한림계(翰林鷄)는 일명 악채(鄂菜)로 불리우는 호북(湖北)요리에 속한다. 강한(江漢)벌판을 중심으로 무한(武漢)과 형주(荆州) 등지의 음식이 그 대표이다.
장강(長江)의 하류, 동정호(洞庭湖)의 북쪽에 위치, 강물과 호수가 많은 호북은 기후가 따뜻하고 물산이 풍부하다. 특히 민물생선이 많이 나고 산간지대에서는 온갖 진미를 찾을수 있다.
찌고 튀기고, 볶는 등 조리법을 많이 사용하는 호북요리는 국물이 짙고 걸죽하며 맛이 짙고 순하다. 물고기와 육류, 야채 등을 주요 식재로 하고 음식의 모양은 둥근 완자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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