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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과제 제출

멀티 3309 노민규 (일본의 막부정치)

작성자배고파|작성시간05.10.24|조회수70 목록 댓글 0
세기를 초월한 막부정치

일본 중세의 바쿠후(幕府) 체제는 일본인에게 아주 친숙한 정치제도 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 천황이 직접 정치에 관여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아주 오랜 옛 날의 일이다. 8세기의 나라(奈良) 시대와 9세기의 헤이안(平安) 시대 잠시뿐으로 이미 9세기 말부터 후지와라(藤原) 일족이 천황의 신임을 바탕으로 대를 물려가며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천황이 정치의 실권을 회복하려 한 최후의 시도가 14세기 고다이고(後醍西胡) 천황의 왕정복고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일본을 두 개로 갈랐고 자칫 잘못했으면 천황제 자체도 위험할 뻔했다.

일본 역사상에는 막부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가 미나모토 요리토모 (源賴朝)가 세운 가마쿠라(鎌倉) 막부로 1185년부터 1333년까지 지속됐 다. 두 번째는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이 세운 무로마치(室町) 막 부로 1338년부터 1573년 까지 계속됐다.

1467년 오닌(應仁)의 난으로 아시카가 막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세이다이쇼군(征夷大將軍)의 자리에 오 른 1603년까지가 소위 일본의 전국시대다. 쇼군의 자리를 놓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등 일본 역사상 최 고의 영웅들이 패권을 겨루었던 시기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도쿠가와 로 이후 268년 간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다스렸다.

막부는 원래 전장에서 장군이 지휘소로 쓰던 천막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 후 천황을 대신해 일본을 실제로 다스리던 무인 정권의 정 부를 가리키게 됐다. 당시에도 천황은 존재했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권 위가 천황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돼 있었다.

그러나 천황은 실제로는 장군이 만든 각종 제약 속에서 겨우 목숨만 연명하는 꼴이었다. 장군들은 혹시 일부 영주들이 천황을 업고 반기를 들 것을 우려해 천황을 철저히 감시하고 행동을 제약하고 또 굴욕을 주었다.

막부의 최고 지도자인 장군은 실제로 일본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리고 외국, 가장 가까운 나라인 조선에서도 일본의 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장군은 형식적으로는 천황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것이며 실질적으 로도 여러 영주들 중 가장 강력한 영주일뿐 그 영주들의 우두머리는 아니었다. 영주 연합의 의장 정도인 것이다.

당시 일본은 250여 개의 한(藩)으로 나뉘어 있었다. 장군은 이 중 단지 가장 큰 한인 도쿄(東京) 일대의 한을 다스리는 가장 강한 영주에 지 나지 않았다. 장군의 힘이 막강했을 때는 어느 누구도 여기에 도전하 지 못하고 그 명령에 복종했다. 그러나 일단 장군의 힘이 쇠퇴하면서 서서히 반기를 드는 영주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결코 불법도 아니고 위법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란군들이 천황을 업게 되면 장군을 역적이 라고 규정했다.

이런 체제는 현재 일본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집권 자민당이야말 로 중세 일본을 방불케 한다. 중의원 한 명 한 명은 모두 지방의 유력 사무라이들이다. 어떤 의원은 사무라이들처럼 세습을 하기도 한다. 뜻 이 맞는 의원들이 모여 하나의 파벌을 만든다. 이 파벌이 하나의 한이 다. 소속 의원들은 파벌 영수를 총리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 다. 파벌 영수는 소속 의원들의 선거 자금 등 모든 지원을 다한다. 이 런 관계는 중세 영주와 사무라이의 관계 이상이다. 힘이 센 파벌의 영 수가 자민당의 총재, 총리가 된다. 장군인 셈이다.

그러나 그 총리는 결코 다른 파벌 영수들의 정복자는 아니다. 다만 파 벌 영수회의 의장일 뿐이다. 다른 파벌 영수들은 총리가 힘이 있는 동 안은 복종하지만 일단 국민의 인기를 잃었다고 판단되면 반란을 일으 켜 장군을 갈아치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천황은 예나 지금이나 묵묵 히 이를 지켜 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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