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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설화 & 유래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 전해오는 이야기

작성시간09.10.09|조회수241 목록 댓글 0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 전해 오는 이야기


조선조 중엽이었다.
경상도 하동 땅에 새로 부임한 신관 사또가 관리들을 대동하고 쌍계사를 찾았다. 지금으로 치면
초도순시 정도 되는 행차였다.
점심 공양을 끝내고 차 대접까지 받은 사또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불쑥 칠불암에 대해서 물었다.
칠불암은 쌍계사의 산내 암자였다.

“내 한양에서 듣자 하니 칠불암의 아자방이 제법 유명짜 하던데 어째서 그런지 한번 설명을 해 보시오.”

“예, 칠불암은 가야국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출가하여 그곳에서 모두 성불하였기에 왕이 이를 기려
그 자리에 큰 가람을 세우고 이름을 칠불암이라고 지었습지요. 아자방은 칠불암의 이런 전통에 따라
스님들이 용맹정진을 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만든 선방인데, 총 세 칸이 방 하나로 되어 있는 크기도
크기려니와 그 모양이 아(亞)자처럼 생겨 방의 가운데 부분과 가장자리가 층이 져 있는 것이 매우 특이
하지요. 높이가 열두 자나 되는 데도 한 번 불을 때면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동시에 따뜻해지고,
한 번 따뜻해지고 나면 보통 석 달 열흘 동안 그 훈훈한 열기가 식지 않습니다. 동안거를 결제하는 시월
보름날에 장작 몇 짐만 때어 주면 다음 해 정월 보름날 해제 때까지 거뜬히 지낼 수가 있으니 만고에 자
랑할 만한 온돌방입지요.”

평소 불교와 스님들을 얕잡아 보고 있던 사또는 내심 크게 놀랐다.

“허면 누가 그 방을 만들었소? 도나 닦을 줄 아는 스님들이 직접 구들을 놓지는 않았을 터이고.”

“웬걸요. 우리 불교 집안에 재주 많은 스님네가 얼마나 많은데요. 아자방도 스님네가 만든 방이랍니다.
신라 효공왕 때 구들 놓는 기술이 대단히 뛰어난 담공 선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직접 설계를 해서
만드셨지요. 크기로 보나 온돌 기술로 보나 아자방은 오직 우리 조선에만 있는 유일한 대선방입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그 유명짜한 아자방 좀 구경할까요?”

“그것은 곤란합니다. 그 방은 오직 참선수도 하는 스님네만 입방이 허락되거든요.”

“어허 이것 보시오 스님, 누가 그 방엘 들어가겠다고 했소? 단지 문을 열고 밖에서 구경만 하겠다는게요
구경만. 어서 앞장서시오.”

“안 됩니다 사또. 스님네가 용맹정진을 하고 있는 선방은 보여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정진 중
인 선방의 문을 열고 구경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꼭 구경을 해야만 되겠소. 당장 안내 하시오.”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리는 사또의 태도가 아니꼬웠지만 주지 스님은 하심과 인욕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했다.

“정 그러하시다면 하안거가 끝나는 칠월 중순께에 다시 오십시오. 그 때는 소승이 꼭 구경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순간 사또는 낯빛을 확 바꾸면서 왈칵 역정을 냈다.

“나는 이 고을의 신관 사또요 사또가 고을을 다스리는 데에 필요해서 안내를 청하는데 무슨 군소리가
그리도 많소? 앞으로 쌍계사 살림을 제대로 이끌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안내를 하시오!”

사또의 서슬에 주지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일행을 칠불암으로 안내했다.
칠불암에 도착한 사또 일행은 다짜고짜 아자방 앞으로 몰려가 문을 열어젖히려고 했다.
그때 한 스님이 달려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안 됩니다! 지금은 정진중이라 문을 열면 안 되옵니다. 나랏님이라도 지금은 안 되옵니다.”

“그깟 수도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나랏님도 안 된다는 거요?”

“제발 부탁입니다. 마음을 거두어 주십시오 사또.”

“나는 이 고을의 신관 사또요. 사또가 지시를 했을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오. 군소리 말고
어서 문을 여시오. 내 문 밖에서 잠깐 구경만 하고 가리다.”

“정히 그러하시다면 서너 시간만 좀 기다려 주십시오. 스님들이 방금 마악 점심 공양을 마치고 정진
을 시작하셨으니 그 때라야 잠깐 휴식시간을 가질 것이옵니다.”

“뭣이라고? 할일없는 스님네가 공사 다망한 사또 더러 기다리라고? 그것도 네 시간씩이나? 허어,
참으로 무례한 언사로고.”

사또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눈을 치켜떴다. 당장이라도 스님을 징계하려는 기세였다. 사또의 호령이
이어졌다.

“나는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다. 사또가 일개 백성을 위해 기다릴 수는 없다. 어서 냉큼 문을 열라!”

사또는 수행 나졸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스님도 가만 있지 않았다. 

“예로부터 조선의 승들은 너나없이 이 아자방 수호에 앞장을 서 왔사옵니다. 그만큼 이 선방이 귀중
하기 때문입지요. 소승이 보아온 바로는 그 동안 아자방을 보러온 높은 분들 중 그 누구도 이 규정을
어긴 적이 없었사옵니다. 조정의 영상대감도 기다리셨고, 본도의 관찰사 나으리도 그리 하셨습지요.
예로부터 내려오는 아자방의 규정이 그러하오니 사또께서는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사또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나졸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저 문을 열라!”

나졸들은 가로막고 있는 스님을 저만치로 밀쳐 버리고 일거에 아자방의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런데 졸지에 드러난 방 안의 광경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인지라 점심 공양을 끝낸 스님들이 춘곤증과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가부좌는 틀었지만 어떤 스님은 아예 머리를 방바닥에 박은 채 졸고 있었고,
어떤 스님은 천장을 쳐다보며, 또 어떤 스님은 방귀까지 뿡뿡거리면서 졸고 있었다.

“흥, 거 수도 한번 자알 하고 있구먼.”

사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주지 스님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보시오 주지 스님, 그렇게 기를 쓰고 안 보여주려고 한 까닭이 따로 있었구만? 내 아자방 중들의
용맹정진이란 게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였더니, 스님들 덕분에 오늘 참 좋은 구경 했소이다.”

사또는 떨떠름한 얼굴로 문을 닫으며 비아냥거렸다. 환대를 해 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아자방 스님들
의 이런 푸대접은 사또의 심사를 몹시 뒤틀리게 했다.   

‘내 이것을 빌미로 중놈들을 크게 한번 혼쭐을 낼 것이로다!’

사또는 씩씩거리며 나졸들을 거느리고 칠불암을 내려갔다.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쌍계사 주지 스님은 신관 사또가 보낸 서찰 한 통을 받았다.

‘중들의 재주가 많다고 하였으니 타고 달릴 수 있는 나무말 한 필을 주문하겠소. 또한 그대의 절에는
도인들도 많은 듯 하니 나무말이 완성되는 대로 동헌 마당에 풀어놓고 한번 놀아 봄이 어떻겠소?
나무 말을 잘 타는 도인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되 만약 그렇지 못하면 고을의 성주를 희롱한 죄로
엄히 다스릴 것이오.’

서찰을 읽어본 쌍계사 대중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살아 있는 말도 타 본 적이 없는데 하물며 불도를 닦는 선승들이 어떻게 나무 말을 탈 수 있을 것인
가. 더구나 타고 달릴 수 있는 나무말을 세상천지 그 누가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쌍계사 주지 스님은 각 암자의 대중들을 불러 급히 의논을 구했다.

“지난 번 일로 사또가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크게 작정을 한 것 같소이다. 그러니 분명 그냥 넘어가
지는 않을 것이오. 어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들을 좀 해 보시오.”

하지만 스님들은 묵묵부답이었다.

“허면 누가 나서 보겠소?”

스님들은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 간에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필시 우리 절이 큰 화를 당할 것이오. 혹시 말 구경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 스님은
대중을 위해서 솔선해 주시오.”

애가 탄 주지 스님의 채근에 한 스님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소승들이야 모두 초심납자나 마찬가지라 어줍잖게 나섰다가 오히려 고약한 사또의 조롱만 살 것이
자명합니다. 그래도 이 산중에서는 큰절 주지 스님이 가장 도력이 높으시고 기개 또한 활달하신
어른이시니 이 일을 감당할 분은 오직 큰절 주지스님뿐이라고 소승은 생각합니다만…”

스님의 말에 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큰스님 말고 누가 이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사또 영감이 서찰을 보낸 곳도 큰절 아닙니까?”

“아무렴요. 큰스님께서 그 고약한 사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옳습니다. 소승들도 찬성합니다.”

쌍계사 주지 스님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동진출가를 하여 말이라고는 진짜 말이든 나무말이든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렇다고 큰절의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자가 뒤꽁무니를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였다. 좌중의 말석에서 한 사미승이 일어났다.

“소승에게 그 일을 맡겨 주십시오 큰스님.”

스님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제 겨우 열 서너 살이 될까 말까 한 어린 사미가 어른 스님들도 미루
고 있는 일을 감당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한 스님이 사미승을 질책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데, 아마도 사문에 든 지 며칠 되지 않아 사미님의 만용이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그려.”

“만용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니 일단 소승에게 그 일을 맡겨만 주십시오.”

“큰소리만 치지 말고, 그럼 어디 방법을 말해 보시게.”

“싸리채를 엮어서 나무말 한 마리만 만들어 주십시오. 그 다음은 모두 소승이 알아서 하겠사
옵니다.”

“싸리채 나무말이라, 갈수록 태산이로군.”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승이 성스러운 아자방을 꼭 지켜드리겠사오니 그 일은 큰스님과
저에게 맡겨 주시고 대중스님들은 각자의 절로 돌아가셔서 열심히 수행정진 하여 반드시 대오
각성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스님들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오직 쌍계사 주지 스님만이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흘 뒤, 사미승은 싸리채로 만든 나무말을 짊어지고 동헌으로 내려갔다.

단상에는 신관 사또가 주안상을 앞에 놓고 거드름을 피우며 떡 버티고 앉아 있었고,
그 아래 마당과 뜰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구경꾼들이 겹겹이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사미승이 거침없이 마당 가운데로 들어가 지고 있던 싸리채를 내려놓자 사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쌍계사에는 도인들만 사는 것 같던데 어찌 너 같은 어린애가 왔느냐? 그리도 사람이 없더냐?
싸리채로 만든 나무말 꼬락서니하며 새파란 사미하며, 쯔쯔쯔. 콧대 높은 중들이 똥줄이 타긴
탄 모양이구먼, 흥.”

사미승이 사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희 쌍계사 회상에서는 소승이 제일 어리고 또한 도력도 제일 낮습니다. 그래서 순서대로
왔을 뿐입니다. 만약 소승이 실패하면 그 다음 스님이 또 올 것이오니 사또께서는 조금도 언짢
아 마시고 소승을 먼저 시험해 보시지요.”

사또는 사미승의 맹랑한 말에 호기심이 당겼다.

“그렇다면 좋다. 하지만 나무말을 타기 전에 몇 가지 물어 볼 말이 있으니 네가 아는 바를
고하여야 할 것이니라.”

사또는 사미승을 골려 먹을 만한 질문을 하기로 작심했다.

“내가 한양에서 듣기로는 쌍계사 칠불암 아자방은 도인들이 모여서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수도만 하는 선방이라고 하였는데, 며칠 전 직접 가서 보니 밤도 아닌 대낮에 모두들 잠만 잘
자고 있더구나. 어찌된 영문인지 답을 해 보아라.”

사미승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수도승이라고 모두 잠을 자지 않고 도를 닦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용맹정진을 하시기도
하지만 대개가 보통사람들처럼 밤에는 잠을 잔답니다. 하지만 그날 사또 영감님이 보신 모습은
잠을 잔 것이 아니오라 아자방 도인들의 평소 수행하는 모습이 그러하오니 오해는 마십시오.”

“그래? 그것이 정녕 도를 닦고 있는 모양새렸다?”

“그러하옵니다.”

“허면, 눈을 감은 채 천장을 향하여 꾸벅거리고 있던 중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이더냐?”

“그것은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이라고 하는 관법이온데, 천장 너머 하늘에 떠 있는
무량한 별들을 관하는 공부입지요.”

“중이 별들을 공부해서 엇다 쓰려고?”

“중생을 구제하고 교화하는 데 쓰려고 그럽지요. 위로 천문의 이치를 통하고 아래로 땅의 이치
를 달해야만 천하만사를 다 알게 되어 제대로 중생을 제도할 것 아니겠습니까?”

“허면 숫제 머리를 방바닥에 박고서 코를 골고 있던 중은 무슨 공부를 한 것이더냐?”

“그것은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으로 방구들 아래 지하를 꿰뚫어보는 공부입지요.”

“흥, 중들의 구들 놓는 기술이 그래서 좋아진게로군.”

“그런 것이 아니오라 지하망명관이란, 사람이 죄를 짓고 죽으면 땅 밑에 있는 지옥에 떨어져
무량한 고통을 받게 되는 바, 그런 지옥중생들을 어떻게 하면 모두 구제하여 극락정토로 인도할
수 있을까 하고 일심으로 관찰하고 숙련하는 공부법입지요.”

“그래? 허면 입을 헤벌린 채 몸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고 있던 중은 대체 무슨 공부를
하고 있었더냐?”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이라는 공부법이옵니다. 중도를 연마하는 관법입지요.”

“봄바람에 버드나무와 중도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 게냐?”

“자고로 출가한 수도승은 유(有)에도 무(無)에도 집착이 있어서는 아니 되는 바, 이를 중도라
하옵니다. 마치 봄바람에 버드나무가 전후좌우 어느 곳으로 흔들리긴 하여도 끝내 어느 한 쪽
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지요. 스님들은 이 춘풍양류관으로써 선과 악, 죄와 복,
어떠한 보응에도 걸리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것이랍니다.”

사또는 사미승의 논법이 이치에 딱딱 들어맞으므로 내심 혀를 내두르며 마지막 일침을 별러
보았다.

“그렇다면 방귀를 뿡뿡 뀌면서 졸고 있던 중도 공부를 한 것이더냐?”

“예, 당연합지요. 그것은 타파칠통관(打破漆筒觀)이라고, 무식한 사람이 고집만 세어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뭐든지 제 마음대로만 하려는 칠통의 무리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공부
법입지요.”

“흥, 아자방 중들은 방귀도 도술로 뀌는가 보군.”

“물론입지요. 그날 스님들이 그렇게 큰 방귀를 뀌어댄 것은 무례하게 아자방 문을 열어젖힌
사람들이 바로 그 칠통의 무리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랍니다.”

순간 사또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올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봉변을 주려다가 오히려
희롱을 당한 꼴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아전들과 백성들이 한꺼번에 지켜보는 앞에서. 하지만
누가 들어봐도 앞뒤가 착착 들어맞는 대답을 두고 티를 잡을 수는 없었다.

사또는 체통을 지키려 애를 쓰며 얼른 사태를 수습했다.

“어린놈이 말은 잘 갖다 붙인다만, 과연 말 타는 솜씨도 그렇게 능란할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만약 저 잘난 나무말을 타고 네 스스로 이 마당을 빠져 나간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할 시는
고을 성주를 희롱한 죄로 쌍계사 산중 전체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니 너는 단단히 각오를
하렸다!”

사또의 벽력같은 고함이 떨어지기도 전에 사미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싸리채
로 만든 나무말 위에 턱 걸터앉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말의 엉덩짝을 찰싹 후려치며 말했다.

“어서 가자 싸리채 목마야, 저 미련한 하동 사또의 칠통같이 어두운 마음을 확 쓸어버리자꾸나.
그런 다음 그 마음밭에 태양처럼 밝은 부처님의 반야광명이 환하게 비치게 하자꾸나”

사미승이 한 번 발을 구르니 싸리채로 만든 나무말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또는 자기 눈을 의심하며 경탄을 금치 못했고, 모여 섰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미승 일이 걱정되어 뒤따라온 쌍계사 대중 스님들은 그 모양을 보고 사미승이 곧 문수동자
의 화현임을 깨닫고는 그 자리에 꿇어앉아 깊은 참회의 절을 올렸다.

“이랴, 목마야 어서 가자 아자방으로!”

사미승은 나무말을 몰아 동헌 마당을 대여섯 바퀴 돌더니 둥실둥실 공중으로 떠올라 지리산
칠불암 쪽을 향하여 히잉 날아갔다. 나무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없었다. 

사또와 육방 권속들, 그리고 구경 나온 고을 백성들은 너무도 놀라운 광경에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있었다.

특히 사또는 사미승이 모는 싸리채 나무말이 자신의 눈앞을 스쳐가는 순간 칠통이 열리고 발심
이 되어 저도 모르게 합장례를 갖추었고, 스님들과 불자들은 동헌 마당이 떠나가라 불보살 명호
를 부르며 문수동자가 사라진 쪽을 향하여 수없이 많은 절을 올렸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신관 사또는 사람이 확 바뀌었다.
거들먹거림도 없어졌고, 고을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덕치를 베풀어 힘없는 백성들에게 한 치의
억울함이 없도록 배려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사또 스스로 불자가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독실하게 믿게 된 것
이었는데, 특히 쌍계사와 아자방의 스님들을 대할 때는 마치 살아있는 부처님을 대하듯 공경하
는 마음이 각별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육방 권속들과 고을 백성들까지 너도나도 불법을
신봉하게 되었고, 마침내 온 하동 고을에 부처님의 교법이 만개하였다.

또한 아자방 스님들 역시 문수동자의 현신하심을 큰 경책으로 받아들여 이후부터 한 치의 흐트
러짐도 없이 용맹정진 하였으니, 이로써 칠불암의 아름다운 전통이 굳건히 지켜지게 되었던
것이다.

온돌 난방을 하는 우리 건축 양식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인 칠불암 아자방은 안타깝게도 6.25
때 칠불암이 초토화됨으로써 원형이 모두 사라져 버렸고, 현존하는 아자방은 1982년 한 스님의
집념에 의해 복원된 것으로 현재 지방유형문화재 제 114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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