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희재야! 지발 니발로 걸어봐라! 요 이쁜 놈아!
김 미순
처음 담임 배정을 3학년으로 받았을 때 다른 샘들이 지나가듯이 말씀하셨다.
“아마도 3학년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힘든 학년 중의 하나일걸? 특히 시영이나 희재 담임은 올 한 해 쬐께 빡실껄?”
그 때서야 단순히 교실 이동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3학년을 선택한 난 갑자기 심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앗! 시영이라 함은 단 1초도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자기 손으로 눈을 때려 각막이 파열되어서 늘 손을 묶어 두어야 하는 아이? 하도 소리를 질러서 도우미샘이 항상 밖으로 데리고 다니던 그 아이? 아뿔싸!’
‘희재는 그라만 또 누군공?’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 속에는 온통 시영이 생각뿐이었다.
후회해도 이미 정해진 일! 우짤 수도 없는 일! 한 편으로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시영이가 내 반 되겠나. 3학년이 세반이나 되는데..... 시영이만 안되면 좋겠다.’
사실 그 때 까지만 해도 신관에서만 생활했던 아이들이라 하나하나 신상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이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다소 소란스럽다는 느낌밖에 없었던 상태이기도 하고, 특수교사 20년째 하는 나름 배태랑으로서 이젠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다 내게는 귀한 인연으로 1년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기에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드디어 반이 정해졌다. 명단을 받았다.
“아이고 어메야! 읽고 또 읽어도 1번 성시영, 2번 정해웅, 3번 윤희재, 4번 정세훈, 5번 박 선영, 6번 권미성.”
한 동안 가만히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아~~ , 후우~~”
아마도 신은 시영이만 제발...... 하면서 생각했던 내 맘 심뽀가 괘씸해서였을까?
그 시영이를 바로 내게로 보내주셨고나!
앗! 그란데 이건 또 뭐고? 그 이름도 유명한 윤희재도 한 반이란 말이가?
오 마이 갓!
그랬다. 3학년이 확정되고 난 뒤 윤희재라는 아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기억이 나기도 했다.
작년 1년 동안 난 윤희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희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늘 바닥에 널버러져 고개를 숙인 채 있거나, 점심 식사 전후로 식당 문 앞에서 고개를 쳐 박고 늘 문어처럼 누워 있던 아이였다. 아무튼 걷는 것을 제대로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그 아이......
그 이름은 윤희재!
오호 통제라! 나의 이런 맘을 안다는 듯이 동학년 샘들은 자기반 아이들도 심한 아이들이 많다는 둥 하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해 대었지만 위로가 되지도 않았다.
‘어쩐다? 올 한해를 어쩐다? 20년의 획을 확실허게 긋게 해 주는 구만!’
이렇듯 우리 반 아이들과 나는 얼굴도 보기 전에 이미 나에게는 너무나 큰 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명색이 특수교사 20년! 이젠 장애 정도쯤이야, 개인차 쯤이야, 반의 구성이 어떠한 상황이든지 아이들과 함께라면 행복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가 맡아서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나 또한 기꺼이 이 반을 맡아서 나름대로 1년을 잘 꾸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새삼 첫 부임자처럼 각오를 하게 된다.
드디어 아이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 날이 왔다. 늘 그러하지만 첫 날 첫 만남은 아이들과의 1년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아주 부드럽게, 즐겁게, 사랑스럽게 눈을 마주치면서도 다양한 각도의 관찰을 빠르게 하여야 한다. 물론 어머니들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들께서 아이들을 한명씩 데리고 왔다. 그런데 들어서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아이쿠나!’
일단 어머니들의 산만한 덩치와 꽃무늬 몸빼에다 짧은 검은 스타킹에 덧버선 거기다가 반지를 주렁주렁 매단 목걸이를 하고 나타난 미성이 어머니의 패션을 보고 또 놀랐다.
‘앗! 정 모샘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던 그 어머니! 조심혀야 겠다. 아이쿠나! 첩첩산중이 따로 없네!
특수학교에서 아이와의 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부모님과의 관계인데 미성이 어머니까지 한반이 될줄이야.......
놀랄 사이도 없이 총명하게 공부 잘하게 생긴 쌍둥이 중 동생 해웅이를 선두로, 공주풍의 옷을 입은 다소 멍한 듯한 이쁜 선영이, 한 쪽 편마비의 말짱한 듯 눈치를 보는 듯한 세훈이, 다소 어리버리 한 듯 주눅 든 듯한 미성이 그 뒤로 걷지를 않아서 질질 끌다 시피 들어오는 눈이 아주 큰 희재, 그런데 가장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시영이가 보이지 않았다. 수술을 해서 당분간 학교를 못 온다고 했다. 우선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일단 부모님들과 면담을 하였다. 그리고 감히 장담부터 하였다.
“올 1년 제게 아이를 맡기셨다는 것은 너무도 다행일겁니다. 올 한 해가 아이들에게나 부모님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 봐 주세요. 아이들은 늘 사랑밖에 난 몰라이니 부모님들도 적극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20년간의 내 경험과 노하우로서 아이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면서 학년말 아이들의 변화에 눈물겹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들은 아마도 부모님께 하는 말이기 보다 나 자신을 향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고 봐야겠다. 어쩌면 한편으로 정말 이렇게 다짐하고 다짐하지 않으면 올 1년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랬다! 정말이지 올 한해는 한 마디로 ‘죽었다!’ 싶었다.
나는 첫 번째 나의 각오로 매일매일 교단 일지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매일매일 알림장에 붙여서 보내면서 나 자신은 물론 학부모님께도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희재와 나는 1년을 시작했다.
2007년 3월 5일 월요일
아침에 날씨가 험상궂더니 아이들이 집에 갈 시간이 되니 고운 햇살 가득한 봄날이 되었 습니다.
첫째시간에는 아침 학생조회 시간이었습니다.
희재는 앞의 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즐겁고, 선영이와 미성이는 선생님께 눈도장을 찍느라 저만 찾고, 해웅이는 도우미 선생님과 장난치느라 정신없고, 오늘에서야 처음 학교에 온 세훈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였지요. 줄서기는 겨우 되긴 하는데, 바른 인사나,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잘 되지 않았구요. 애국가랑 교가 부르기는 제가 큰소리로 부르니 신나게 중간중간 따라 부르곤 했지요
오늘은, 미성이 어머니랑 세훈이 아버님이 오셨었어요. 저와 부모님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교실에 오자마자 토요일 수업하였던 노래와 율동과 함께하는 자기소개 및 친구나
선생님 알기 게임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둘째시간에는 음악실 가는 수업이였고, 셋째시간은 미술실 이동수업이였습니다.
점심은 쇠고기국과 김무침, 양배추 것절이, 꽁치조림이였습니다.
저는 공부시간 만큼이나 식사지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식사전에 손씻기는 물론 바른 자세로 앉아서, 숟가락 젓가락을 바르게 사용하기
천천히 조금씩 골고루 깨끗이 먹기,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기, 식사후, 식판 바르게 가져다 버리기, 식탁위 닦기, 휴지로 입닦기 까지.
물론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마는 저는 하나하나 바르게 가르쳐보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모든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도움 받아 식판 스스로 치우기까지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허나 희재는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었고, 해웅이는 비벼서 엉망으로 장난을 많이 쳤구요, 세훈이는 맵다고 물을 많이 먹었습니다. 미성이와 선영이는 선생님 칭찬에 어쩔 수 없이 깨끗이 먹어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이렇게 열심히 가르켜도 가정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식사시간을 여유롭게 하셔서, 먹기 싫어하는 반찬도, 스스로 흘리지 않고 먹기를 연습시켜주십시요. 그리고 양치시간인데요, 선영이만 스스로 할 수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훈이는 칫솔을 보내주시구요, 희재와 미성이는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조금씩 도움을 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켜야 합니다. 잘 못하더라도 혼자서 하는 연습을 가정에서 시켜주시고, 해웅이도 물로 헹구지 못하고 꿀꺽 삼키는데요, 컵으로 물을 헹굴 때 손가락을 넣어서 삼키지 않도록 연습시켜볼 생각입니다.
끝으로, 양치가 끝나고 “코끼리” 의 생김새와 특징, 노래, 율동, 흉내내기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날 그날 한 것은 각자 개인 학습노트에 붙여보냅니다.
확인 학습 시켜 보시구요, 과제가 있는 아이들은 과제를 시켜주십시요.
제가 20년 동안 교사생활을 해 본 결과, 정성만 다하면 아이들은 작은 먼지가 쌓이듯 그렇게 조금씩 변해 우리를 기쁘게 한답니다. 시간이 없어서 알림장을 아이들 보내놓고 쓰고 있습니다. 각자 5칸짜리 국어 노트를 10권씩 사서 보내주십시요.
오늘 하루도 아이들과 행복했습니다. 담임 김미순 드림
당분간 한 쪽 눈이 완전히 실명이 되어서 학교에 못 온다는 시영이 덕분에 희재와 나의 사투(?)는 둘째날부터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우선 제일 시급한 것은 윤희재가 버스에서 내려서 널부러 눕지 않고 스스로 걸어서 6층까지 올라오는 것이었다. 어저께 관찰한 결과 전혀 걷지 않던 희재가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에 아주 호기심이 많고 민감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도우미샘이 등하교를 맡고 희재는 내가 1:1 개별지도를 하기로 하였다.
등교차가 왔다. 님을 기다리듯이 화장을 곱게 하고 한껏 예쁜 옷을 입고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 희재! 이쁜 희재! 희재 왔니?”
하면서 버스 밑에서 내리지도 않는 희재를 열번이고 백번이고 계속 불러주었다
등교차가 왔다.
아니다 다를까? 고개를 드는 법이 없던 희재가 씨익 미소를 띄우며 내리는 것이 아닌가? 난 더욱 호들갑을 떨었다. 어떻게든 엉덩이를 땅에 붙이기 전에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려야 했다. 어제 노래를 좋아하는 모습이 생각나 동요를 막 불러대었다. 이게 왠 일인가? 완전히 희재만을 위한 원맨쑈를 하기 시작하니 너무나 좋아하며 손을 잡고 스스로 걸어서 교실까지 올라 오는 것이 아닌가!
앗싸! 횡재를 한 기분이였다. 도우미샘이나 옆반샘에게도 자랑을 해대고, 희재의 얼굴은 이미 나의 뽀뽀 세례로 얼룩투성이 되었다.
‘그래! 그래!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냐? 이젠 산에도 데리고 가고, 들에도 데리고 갈 수 있어!’ 그렇게 희망이 쑥쑥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틀을 못 넘겼습니다.
2007년 3월 8일 목요일
어제보다는 조금 덜 추워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희재가 공문 때문에 늦게 나타난 나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관에 들어 누워서 한참을 걷지 않으려 고집을 부렸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도우미샘과 올려보내고 희재랑 둘이만 남았지요. 관심을 끌려는 행동인지, 컨디션이 안 좋은지 살폈지요. 그리고, 제가 그동안 희재가 재미있어 했던 노래나 놀이나 행동들을 원맨쇼 하듯이 재롱을 부렸네요. 한 30분이나 지났을까요? 인내심이 극에 달했다 싶을 때 쯤 다행히 희재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물론 6층까지는 잘 올라왔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교실 앞에서 누웠습니다. 가만히 두고, 우리끼리만(?) 인사하고 옷 갈아입고, 각자 알림장 내었지요.
1교시,작업치료실로 이동수업 갔습니다. - 희재가 응가를. (간식; 우유랑 포테이토 칩)
2- 3교시, 사회 책 4-5쪽 공부하였습니다. 가족의 이름과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공부하였구요. 책에 있는 포도는 밑그림에 포도알 색지 붙이기, 수박은 색칠하기 하였지요. 개인차가 있어서 단체 수업과 개별지도를 병행하였습니다. 늘 자세한 지도법과 내용은 책이나 노트에 적혀있으니 꼭 참고 하셔서 확인 학습이나 복습이나 과제를 해 오도록 협조바랍니다.
점심은 콩밥과 짬뽕국과 도라지 오이 생채와 쥐포, 김치였습니다. 모두 조금씩 덜 흘리려고 노력하면서 식판을 깨끗이 비웠습니다.양치하고, 세수하고-거의 되지 않지만 손을 잡고서라도 스스로 시키려합니다.
4교시, 5층 놀이 치료실에서 신나게 놀다가 치료실로 갑니다. 선영이와 세훈이는 종일반에서 2시에서 3시 40분까지 공부합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한층 더 가까이 제 품안에 쏘옥 들어왔습니다. 김미순 드림
* 희재는 옷에다 첫째시간에 응가를 했습니다. 씻기고 갈아 입혔습니다. 응가는 집에서 할 수 있도록 배변 습관을 길러 보세요.
* 가방을 조금 큰 것으로 다시 준비 시켜주세요. 옷은 한 벌씩 비닐에 묶어서 두세요
* 그날 학습한 것은, 책을 보면서 확인 학습 시키시고, 과제는 꼭 시켜주세요.
이렇게 3월 한 달 동안 희재는 일주일에 3-4회 씩은 여전히 걷지 않고 주저앉곤 하였습니다. 오로지 희재만을 바라보며 온갖 재롱을 부리면 짧게 애를 먹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안 통하는 날은 그냥 현관에 두고 지켜보기도 하고, 억지로 업어서 데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점심시간이나 특별실 가는 것처럼 짧은 거리에서 주저앉는 버릇은 거짓말처럼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맘이 급했습니다. 시영이가 돌아오기 전에 빠른 시간 내에 희재가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아이들이 제 품에 온전하게 안겨서, 제가 바라는 대로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우리 3학년의 올해 핵심 사업인 매주 1회 금오정 등반을 하는 날이였습니다.
무모한 첫 산행 도전기
2007년 3월 16일 금요일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재량시간으로 3학년 전체 우리학교 뒷산 “금오정”등반이 있었습니다. 작년까지 금오정 등반을 딱 한번 해 본 아이는 해웅이와 미성이입니다. 해웅이는 도우미 샘과 손을 잡고 등반을 하였고, 그나마 하도 겁이 많아 달라 붙는 미성이는 작년 담임 샘이 등반을 다녀 온 뒤 몸살로 며칠을 고생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나마 해웅이는 스스로 약간의 도움을 주면 신변처리가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잘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물론 우리 반에서 교정 신발을 신고 있는 한 쪽 편마비 세훈이는 등산을 갈 수가 없습니다. 세훈이는 옆반에도 도저히 산을 갈 수 없어 남아 있는 아이들과 함께 도우미 샘 두 분과 주어진 과제를 하고 6층 원에서 보행 훈련과 축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희재도 작년까지는 평지도 거의 걷지 않고 눕는 아이였었다고 합니다. 변비가 심해 옷에 실수도 많이 하는 힘든 아이였지요. 하지만 올해 담임을 맡아 가만히 살펴보니 노래를 아주 좋아하고, 말귀를 조금은 알아듣는 귀여운 구석이 많은 아이입니다. 20년의 노하우로 (갖은 아양을 다 떨어서) 6층까지 한 두번 빼고는 스스로 걸어서 오고 가기는 성공을 한 것에 희망을 걸고, 어차피 올 일년 등반을 꼭 성공시켜보자는 각오도 생겨서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오늘 등반의 최대 과제는 희재가 과연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단 한번도 등반은 커녕 평지도 오래 걷지 않는 아이였기도 하고, 작년 담임샘들은 희재를 데리고 산을 간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우리반 반장 선영이는 비록 스스로 걸 을 수는 있지만 아직, 한번도 “금오정” 등반을 한적도 없고, 평소에도 행동이 굼뜨기도 하고, 겁이 많아 등산을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었습니다.
고민을 안할 수가 없었지요. 세훈이만 두고, 과연 4명을 둘이서 데리고 갔다 올 수 있을까? 왕복 2시간 거리였습니다. 희재는 두고 갔으면......하고 같이 가는 샘들은 권하기도 하였지만 왠지 오기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희재에게 정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용기 좋게 저는 도우미 샘께 해웅이와 선영이를 맡기고, 희재와 미성이는 제가 손을 잡고 출발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힘이 들었지만 가는 한 시간 20분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고 동요를 불러주고, 칭찬을 해 주면서 겨우겨우 잘 올랐습니다. 금오정 정상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요?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던 정상을 희재에게 보여주었더니 정작 희재는 너무나 지쳤는지 보는 둥 마는 둥 신발을 벗어 던지고 주저 앉고야 말았습니다.
금오정에서 간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모두 꼭 안아 주었지요. 하지만, 이게 왠일입니까? 내리 오는 길은 올라 갈 때보다 험난하기 짝이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미성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자주 주저앉아버리고, 희재도 누워버립니다. 거의 제 두 어께에 아이들을 달아 오다시피 겨우 내려 왔지요. 밑을 보지 않으니까 돌부리가 있는지, 계단인지, 웅덩인지 모르고 그냥 마냥 내려오려니 제 양손으로, 힘으로 아이들을 지탱하면서 내려왔습니다. 겨우 학교가 보이는 곳 까지 도착하였더니, 희재가 완전히 땅바닥에 누워서 아예 걷지 않으려 했지요, 사정을 아무리 해도 재롱을 아무리 부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희재는 학교 앞까지는 업고서 오구요, 미성이는 다른샘께 부탁을 하였습니다. 겨우 식당으로 데려가 밥을 먹이고, 손발이 까인 나와 얼굴에 약간 긁힌 상처를 가진 희재는 거의 기진맥진 상태로 밥을 겨우 먹고 보건실에 가서 약간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희재는 약 바르고 보건실에서 30분 쉬게 하고 다른 아이들은 밥 먹이고, 양치시키고, 하교 준비를 하였습니다. 모두들 피곤해 했지만, 선영이는 처음이라는데도 아주 잘 걸어서 정상등극을 해서 제가 "최고"라고 치켜세워주었구요. 해웅이는 아직도 힘이 남아도는지 씩씩해서 다행이구요, 미성이도 무사히 잘 다녀와서 감사하구요, 그래도 모두 얼마나 기특한가요? 남아 있던 세훈이도 과제를 잘 해 놓았고, 운동도 잘했더라구요, 아무튼 무모하게 도전한 등반은 몸살나기 직전인 저와 다리 풀려 비틀거리는 희재만 빼곤 모두 성공입니다. 혹시, 희재는 한라산 등반만큼이나 피곤해 할 수 있으니, 내일 너무 힘들어 하면 하루 쉬게하세요, 모두 모두에게 칭찬을 부탁드리구요, 제일 심한 시영이가 다음 주부터 학교에 온다고 하는데......
다음에 또 등반을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도전은 계속 되어야 겠지요? 아휴 정말 힘든 하루였지만, 뿌듯한 하루였지요. 담임 김미순 드림
시작이 반이라고 했나요? 여전히 희재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에서나, 복도를 오르내릴 때 나, 등반을 하려고 산 입구에 다다르기만 하면 눈치가 빤해서 걷기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저는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교내에서는 어떻해서든지 달래서 스스로 걷게 하려고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였지만, 등반을 할 때 특히, 내려 올 때 고집을 부리면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업어서 오다가 맨 꼴찌로 우리 둘만이 남았을 때는 낙엽이 많은 곳을 굴리기도 하고, 사탕을 주기도 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면서 절대 스스로가 걷지 않는 방법을 안된다는 것을 첨부터 강하게 주지 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오른 쪽 엄지 부분이 접히는 사고를 제가 당하고, 가끔 점심시간은 다가오고, 희재가 고집을 피우면 안타까운 맘에 보다 못한 옆 반 김병탁샘이 들쳐업기도 하였지만 끝까지 스스로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였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등반을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 뒤에 희재는 이제 등하교시간에 걷지 않으려는 횟수가 눈부시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희재가 걷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몇 가지로 압축이 되었습니다.
첫째, 항상 먼저 버스가 오기 전에 기다렸다가 아주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마중하지 않으면 바로 앉아 버린다. 도우미샘도 안되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된다.
둘째, 방귀 냄새가 나거나, 인상을 보고 배가 아픈 듯 하면 절대 걷지 않으려 한다. 변비가 심해서 응가 하기 전단계의 징후이다.
물론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안 걸으려고 할 때도 있지만 희재는 한달 만에 스스로 등하교 걷기가 되는 횟수가 부쩍 늘었으며, 식당에서 바른 자세로 편식하지 않고 깨끗이 먹기, 수업시간에 이탈하지 않고 참여하기 등 이젠 부모님들이나 다른샘들이 보기에도 놀랄 만큼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3월 30일 금요일
오늘은 자연환경연수원으로 현장 학습을 다녀왔습니다. 희재가 단 한 순간도 앉는 법 없이 혼자 걷다가, 뛰다가, 중간 중간 짱구 춤까지 추었습니다. 너무도 이쁜 꽃들과 신기한 곤충들을 보더니 신이 났습니다. 오늘 또 하나를 제게 가르쳐줍니다. 희재는 꽃과 날아다니는 나비나 곤충들을 보면 까무라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앞으로 등반 할 때나 걷지 않으려 할 때 꼭 써먹어 보기 위해 곤충채집통을 하나 사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희재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너무나 대견했거든요. 이렇게 오늘도 제게 희재는 기쁨을 주어서 행복합니다.
담임 김미순 드림
현장 학습을 다녀 온 뒤로 저는 정말로 등반 할 때 걷지 않으려 하면 곤충채집 병에다가 파리라도 잡아서 유인하듯이 정상을 올랐습니다.
이렇게 희재를 향한 자세한 관찰과 정성은 하루하루 희재를 변화 시켰고, 희재 때문에 너무나 감사하고 신나는 날들이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4월 중순 드디어 시영이가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무엇보다 시영이를 전담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희재가 다시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심한 시영이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등하교는 희재를 내가 담당하고, 교실에서는 시영이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시영이를 전담하면서도 난 늘 희재를 향해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습니다.
‘희재야! 넌 최고다! 멋지다! 너무너무 잘한다!’ 스킨쉽을 더욱더 자주 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희재는 시영이가 오기 전처럼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쯤 학교 홈페이지에 희재 아버님께서 짧은 감사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보답의 글
윤 현철( 희재 아버님)
바쁜 일상에 속에 어린이날을 핑게로 야외 나드리에 벌써 아카시아의 꽃이 피기시작 했네요. 아들녀석의 어리광 속에서 약간의 성숙함을 느끼며 학교와 선생님의 고마움을 이렇게나마 몇자의 글로 올려 봅니다.
1,2,3학년기간 아들녀석의 교육과정을 가끔 안사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와 변화된 아이의 모습에 저 자신도 놀라움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왜사람울립니까? ㅎㅎㅎ)
늦은감 있지만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 드립니다.( 刻骨難望 : 각골난망 )
정작 자신의 일이 아닌 일에는 무관심한 현실에 이렇게 교육의 혜택을 통해 나날이 변해가는 아들녀석을 바라볼때면 마음속 깊은곳의 어두움이 조금은 밝아 집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장애복지정책이나 후,생복지의 열악함에 분통 감당하기 힘들지만 여기에 이렇게 노고 하시는 선생님을 뵐때 약간의 위안으로 참으며 보채 볼려고요.
자식위해서라면 무엇이 힘들겠습니까 옛 어른들의 말씀이 이제 좀 피부에 와닪는 것 같습니다.
학교장님!
선생님!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이십니다.
항상 웃음읽히 않는 용기있는 모습으로 따뜻한세상 만들어 주세요.
미약하나마 저희도 같이 노력하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두 달여 동안 희재와 사투하듯 보낸 시간이 보람이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나도 답장을 드렸습니다.
바로 답장을 올리지 못한 것은 음악선생님께서 오늘 말씀을 해주셔서 이제서야 글을 읽은 때문입니다.
사실, 더 솔직한 표현은 과분한 칭찬에 부끄러움 맘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아버님!
희재가 늦잠을 자던 날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오신 적이 있지요.
그날, 처음 뵙지만 잘 생긴 외모와 넉넉한 모습 때문에 제가 감히 말씀 드렸지요.
"희재 아버지 너무 잘 생겼네요"라고. 씨익 웃으시면서 희재에게 뭐라고 인사를 한 뒤
이마에 아주 깊고 따뜻하게 입맞춤을 해 주셨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가슴이 찡했습니다.
처음 본 담임 앞에서, 지각을 한 상태면서. 제대로 담임과 말 한번 안하신 분이
아이에게 어떻게 저렇게 기도하듯이 입맞춤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올 해 내게 희재가 아주 특별한 아이로, 늘 행복과 기쁨을 주는 아이로 다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의 저 말없는 가슴 저민 입맞춤 사랑이 아닐까 싶지요.
저는 올해 20년째 특수교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들도 만나고 수많은 학부모님들도 만났지요.
하루는 아이들 때문에 행복하고, 하루는 아이들 때문에 절망하고, 하루는 내 부족한 능력때문에 반성하고, 하루는 무지한 세상사람들 때문에 아이들 처지가 안타까워 마음 아파하고. 이런 하루들이 모여서 2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저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고 부족한 선생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끔, 저는 제게 되묻습니다. 내게 쌓여 있다는 20년의 노하우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을 주었는가? 나를 스쳐간 수 많은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정성을 다 하였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아이들은 나의 친구고 큰 가르침의 스승이고 사랑하는 애인이였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이들에게 쏟은 정성과 노력에 대한 대답은 이미 아이들이 매일 매일 여러 가지 형태로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희재 어머님의 말씀 처럼 "백만불 짜리 희재의 매력있는 웃음을 매일 볼 수 있는 무료 쿠폰"을 시작으로 다양하고 가슴 찡한 선물이 매일 매일 기상천외한 이벤트와 함께 쏟아지거든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잘하라는 격려로 알고, 소중한 인연 정성스럽게 잘 가꾸어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이렇게 5월부터 6월까지 교생선생님이 우리 반에 오면서 희재에게는 더욱더 개별화 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가끔씩 삐지는 희재도 달래줄 수 있고, 시영이도 서서히 내게 적응되어가고, 나머지 아이들도 조금씩조금씩 한 맘으로 열심히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등반 점점 날씨는 더워오고, 무더위 때문에 지치기도 하지만 희재를 위해서 한 주도 빠짐없이, 감정의 기복이나 컨디션에 따라 매일매일 다르게 행동들에 굴하지 않고, 3월 첫 산행을 했을 때의 맘으로 늘 끝까지 스스로 걸어서 다녀오도록 철저하게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듯 1학기가 지나갈 때 쯤엔 희재가 등교시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나 학교생활 중 걷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2007년 7월 23일 월요일
장마 속에서도 행복한 날들이기를 기원합니다. 인지요. 오늘은 희재가 너무 기본 좋은 하루를 열어 주었습니다. 사실, 요즘 부쩍 걷기 싫어해서 걱정이 태산이였는데 오늘은 왠지 저를 따라 멋지게 6층까지 신나게 걸어서 왔습니다. 그리고 공부 시간에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지, 발표시간이 되면 말 한마디도 못하지만 온갖 몸동작이나 눈치로 너무나 잘 표현하는 희재를 보면서 정말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벌써 1학기도 끝나갑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지만 대견함보다는 아쉬움이 더욱더 큽니다. 오늘도 수업 열심히 하고, 점심도 맛나게 먹고, 양치도 잘 하였습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역시 바른 습관은 끊임없이 관찰하고, 칭찬하고, 수정하고, 다시 노력하는 정성이 최선이라는 생각입니다. 비 갠 날 햇살처럼 이쁜 희재와 함께 오늘도 행복했습니다. 건강하세요.
담임 김미순 드림
여름 방학을 하였습니다. 한 편으로는 속이 해방이다 싶어서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혹시나 방학 끝나고 오면 또 다시 희재가 걷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하였습니다. 이 마음은 개학이 다가오자 점점 더해 왔습니다. 드디어 개학을 하였습니다.
2007년 9월 3일 월요일
무덥던 여름도 어느듯 꼬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환절기 감기조심, 특히 구미는 눈병조심을 해야합니다. 긴 방학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아이들 때문에 힘드셨죠? 덕분에 저는 아이들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해서 돌아왔습니다. 희재는 너무나 학교에 곡고 싶었나봅니다. 등교차에서 내리는데 싱글벙글 혼자서 교실로 달려가서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저를 활짝 웃으며 기다려 주기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식당으로 달려가고, 하루 종일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방학 끝나면 혹시나 걷지 않으려 할까 걱정하던 내가 도리어 민망할 정도입니다.
사실 3월 첫만남에서 어머니께서 제게 “신관 2층도 걸어 다니지 않았는데 6층까지 어떻게 걸어 다닐지, 휠체어를 하나 준비할까요?”라고 걱정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2학기를 이렇게 기분좋게 시작하게 해준 희재와 함께 더욱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담임 김미순 드림.
물론 첫날 이후에 방학 후유증으로 인해 희재는 애를 먹인 날도 있지만 서서히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9월 중순이 되면서 다시 부쩍 현관에 앉아 버리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자세히 관찰한 결과 희재는 햇살이 아주 눈부신 날은 걷기 싫어 한다는 사실 하나를 더 알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모자를 씌우기도 하고, 양산을 받쳐주기도 하면서 다시 스스로 걷게 노력하였습니다.
2007년 9월 13일 수요일
가을 운동회 연습 하는 소리가 들려오지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기 위해 희재와 함께 노력하였습니다. 작년까지 전혀 동작을 따라 하지 않고 운동장에 눕거나, 아예 내려 오지 않았다던 희재가 제법 체조도 따라하고 달리기도 하고 음악에 맞추어 대형맞추기도 합니다. 물론 가끔 그냥 앉아버리기나 울기도 하지만 그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혹시 요즘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못 느끼시는지요? 제가 늘 아이들에게 눈만 마주치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 난 사람..... 희재는, 미성이는 하면서 노래를 불러 주거든요. 이름을 넣어서 노래를 불러 주면서 하나씩 안아주면 너무나 좋아합니다. 댁에서도 한번 해 보세요. 분명히 아이들이 좋아할 겁니다. 오늘도 너무나 좋은 하루였습니다. 담임 김미순 드림
희재는 2학기 들어서는 더욱더 현장학습 때에도, 운동회 연습 때에도, 등하교 때에도 너무나 스스로 잘 걷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 되어 갔습니다. 10월이 되면서 그 동안 눈의 충열로 인해 못 하였던 희재와 우리반은 등반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2007년 10월 12일 금요일
등산하기에 딱 좋은 가을날씨였습니다. 모처럼 희재를 데리고 가서 걱정을 했는데 처음부터 얼마나 잘 하든지 모든 선생님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1등으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체육공원 쪽에서 쉬어야 하는데 희재가 계속 정상을 향해 도망을 가서 쉬지도 못하고 정자까지 가야헸거든요. 물론 희재의 기분을 맞추느라 저의 동요 녹음 입노래는 2시간을 쉬지 못해서 목이 아팠지만요. 그래도 얼마나 신나게 다녀왔는지 모릅니다. 아이들 바지에 풀이 많이 묻었습니다. 목욕 따뜻이 시켜주시고 푹 쉬게 해 주세요, 참! 칭찬해주시는 것 잊지 마세요. 그리고, 등산할 때 노하우를 알고 싶어 하셨는데 다음에 만나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더욱더 향기롭지요. 주말 잘 보내세요 담임 김미순 드림
드디어 운동회 날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연습할 때 잘 따라 해 주었지만 가끔씩 앉아 버리거나 바지에 큰 것이나 작은 것을 시도 때도 없이 실례 하는 순간이 있어서 긴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학부모님들이 지켜보시기에 잘 따라 해주기를 바랬다. 특히 희재 어머니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계셨다. 다행히 희재는 잠깐씩 딴 짓을 하거나 주저앉았지만 나의 특수기법(비밀)까지 동원한 재치로 운동회를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바지에 쉬를 한 것 말고는 잘 끝내었다. 지칠 때로 지쳐서 식당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 희재 어머니께서 오셔서 말씀하신다.
“선생님!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운동회날은 정말로 학교에 오기 싫었거든요. 항상 운동장에 누워있든지, 따로 앉아 있든지, 제대로 따라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속상했는데 오늘 보니 체조도 따라하고, 달리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시는 것이 아닌가?
그랬구나! 오늘도 사실 몇 번씩이나 확 성질을 나게 만드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그 마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시다 지쳐가던 몸이 갑자기 힘이 생기는 듯했다. 아! 다행이다. 그 동안 연습 할 때 운동회 날 혹시라도 잘 따라 하지 않을까봐 혹독하게 연습시킨 것이 효과가 있어서....... 오히려 내가 충분히 감사 했다.
사실, 희재가 정말 좋아지긴 했지만 사건을 일으켜 나를 새파랗게 질리게 한 적도 많았다.
희재의 사건 파일 첫 번째
희재를 데리고 ‘장애인 전국체전’ 김천에서 하는 것을 보러 현장학습을 갔었다. 여전히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면 일단 걷지 않으려는 습성이 나타나기가 일쑤이다. 첨부터 그 러한 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빨리 운동장 관중석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주저 앉앗서 걷지 않으려 한다. 시영이는 도망치려하고, 희재는 앉았고....., 나는 다시 희재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면서 걷도록 일으켜 세웠는데 그 때 녹색 그라운드가 보이자 갑자기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웬걸 그러다가 계단에 고꾸라졌다. 달려가보니 눈쪽에서 피가 철철 났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김병탁선생님과 나는 앰블란스를 타고 김천 의료원 응급실로 달려갔고, 다행히 눈 위가 찢어져서 꿰메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성형외과로 갔다. 희재가 움직이지 않게 난 침대 위에 올라 갔고 김병탁샘은 아래서 다리를 잡았다. 한 쪽 눈에다 마취 주사를 놓으니 눈동자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곳을 바늘로 꿰매기 시작했다. 참으로 보기 안타까웠다. 내가 자꾸 고개를 돌리자 김병탁샘은 계속해서 “제가 올라 갈까요? 제가 올라갈까요?” 묻는다. 답도 하지 않고 빨리 봉합을 한 후 다시 주사를 마치고 약을 지어서 버스로 돌아오니 어느 듯 학교로 돌아 갈 시간이 되었다. 눈을 다치지 않고 눈 커플쪽이라 흉터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 때문에 그제서야 맘이 좀 놓였다. 그 때 김 병탁샘이 말씀 하셨다.
“김미순샘 난 운동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하고 화장실만 구경하고 왔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서야 병원 일이 생각 났다.
“병탁샘은 왜 성형외과에서 자꾸 내가 올라갈까요? 했능교? 안그래도 우리 둘이 부부인줄로 알고 말씀 하시던데 자꾸 그래서 웃지도 못하고 애먹었어요. 그리고 나도 녹색그라운드가 보일랑말랑 할 때 피튀기는 바람에 운동장도 제대로 못봤습니다” 그랬더니 차안의 선생님들이 모두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정말로 다행스럽게 상처는 빨리 아물었고 지금도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이상하게 희재는 김천과 인연이 별로 없는 듯 했다. 첫 번째 직지 공원 갔을 때는 바지에실례를 해서 애를 먹였다. 그러더니 직지사에 현장 학습 갔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희재의 사건 파일 두 번째
우리 학년은 오늘 김천 직지사로 단풍구경 및 현장 학습을 왔다. 도우미 샘과 함께 희재는 김천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웬걸 버스에 타자 말자 울려고 하더니 아예 걷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짤꼬? 그 순간 방귀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김천 직지사 입구의 화장실에 희재와 도우샘을 남겨 두고 나 혼자서 우리반 모두를 끌다시피 데리고 애를 먹었다. 하매나 오려나 기다려도 희재는 오지 않고 결국은 우리는 시간이 되어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제서야 희재도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참내! 직지사 구경 온 놈이 화장실만 실큰 구경하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기붇이 영 엉망이던 것이 큰 것을 해결하고서는 이젠 너무 기분을 최고조라 주저 앉히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점심도 잘 먹고, 잘 뛰어 놀다가 돌아왔다. 어쨌던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그 동안 살펴 본 희재는 조그만 변화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모르는 것 같은 얼굴 속에서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말을 하지 못하고, 옷에다 실수도 하고, 고집도 부리지만 공부를 시킬수록, 생활을 함께 할수록 희재의 뛰어난 인지능력과 집중력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관심 속에서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잠시라도 혼자 두게 되면 그 때는 난리가 난다.
희재의 사건 파일 세 번째
11월이 되면서 희재는 스스로 교실을 찾아가서 자리에 앉아 있거나, 5층 놀이치료실, 체육실 등 특별실을 가라고 하면 곧잘 찾아가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더욱이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바지에 실레를 하기가 일쑤인데 요즘은 갑자기 공부하다가 막 달려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스스로 볼일도 눈다.
식당에서도 아이가 없어져서 찾다보면 혼자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기도 하고, 스스로 교실에 찾아가기도 하고, 6층 복도에서 놀기도 한다.
모두들 칭찬에 입이 마르지 않는다. 희재가 좋아 질수록 난 다른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어서 무척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희재는 많은 사건들로 나를 힘들게 했다. 하루에 몇 번씩 6층을 오르내리며 학교 곳곳을 헤매게 만들곤 한다.
한 번은 1층 생활예절실에서 자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놀고 있고, 한 번은 3층 비워있는 형아들 교실에 가서 매직을 가지고 온갖 작당을 다 해놓아서 결국은 하루 죙일 청소를 해 주어야했고, 한번은 작업치료실에서 모든 작업도구들과 자료들고 교실을 폭탄으로 만들어 놓고, 한번은 전환교육관 화장실에서 옷을 다 버린 채 비누칠로 범벅이가 되어있고, 한 번은 화장실 변기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치고, 교실을 잠깐 비워 놓았더니 콩, 좁쌀 등 곡식을 넣어둔 자료를 바닥에다 뿌려놓고 좋다고 난리를 부리고, 내 가방을 뒤져서 화장품을 가지고 온 얼굴을 다 그려놓기도 하였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희재는 자기가 공부했던 곳, 재미있는 곳을 찾아가는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도망을 다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희재가 좀 더 나아지고 있는 바람직한 변화이기도 하다.
점점 희재와 나는 서로에게 길들여졌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계시거나 현장학습과 같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면 예전에 가지고 있던 희재의 안 좋은 행동들은 여지없이 한꺼번에 나타나 나와 기 싸움을 다시 시작하기도 합니다.
경주 엑스포 현장학습
경주 엑스포로 현장학습을 왔습니다. 희재 어머님께서 따라 오셨지만 난 희재를 어머니께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보나마나 희재는 걷지 않으려고 할 것 같았거든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희재의 손을 잡고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희재 어머니께서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자 희재 어머니께서 간이 유모차를 빌려 오셨습니다. 지난 주에 여기 왔는데 도저히 걷지 않아서 유모차를 태웠다면서......
저는 다시 반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희재 어머니를 우리 시야에서 멀리 떨어지게 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미 걷지 않으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바로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희재! 이쁜 우리 희재! 잘 걸을 수 있지? 멋쟁이! 최고! 따봉!”
“물론 만약에 걷지 않고 땅바닥에 주저앉으면 알쥐?” 라면서 입은 웃고 있지만, 한 주먹을 굳게 쥔 손이나 나의 눈엔 절대 물러서지 않고 네 스스로 걷지 않으면 못 배긴다는 의지를 한껏 각성 시켰습니다.
어쨌던 그간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우린 타협을 하였습니다. 가끔 걷지 않으려 할 때는 노래를 불러주거나 춤을 쳐 주거나, 칭찬을 퍼 부어대었고, 희재는 비보이 춤을 볼 때나 영화를 본 신기함으로 한 동안 스스로 잘 걸어 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모르시게 짬짬이 주먹을 간간히 보이기는 했어도 겨우겨우 달래가면서 긴 여정을 잘 마쳤습니다. 지나가던 전지호샘께서 “니가 그 옛날 내가 울쳐메고 다녔던 그 희재 맞냐?”고 물을 정도로, 희재 어머니께서는 지난 주와 너무나 다른 희재를 보면서 믿을 수 없다고 말 할 정도로 멋지게 해내었습니다. 이 모든 것도 그동안 수없이 실패하면서 다시 노력했던 우리 둘만의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감사한일입니다.
희재 어머님은 3월에 저와의 첫 면담이나 실태 조사서를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희재의 행동특성, 학습상태, 좋아하는 것과 싫어 하는 것을 잘 말씀 하셨다. 그리고 담임인 나에게 1년동안 바라는 사항도 아래와 같이 아주 자세히 적어주셨다.
올 한해 담임교사에게 지도 해주길 바라는 사항
희재 어머니(아동 실태 조사서) 죄송하지만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너무 큽니다.
첫째; 언제 어디서든지 걸어야할 때 걷는 모습이 되어야 하나, 용의할 정도는 아닙니다. 특히 교외에는 더 심합니다. 스스로 잘 걷게 해 주십시오.
둘째; 대소변 자립이 되어야 하나 아직도 소변은 일일이 뉘여 주어야 하고, 지시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대소변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셋째; 본인의 욕구가 만족되지 못 할 때 벌주거나 원하는 것을 안 해주면 침을 뱉거나 침을 뿌리면서 엉뚱한 행동을 심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침장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넷째; 식사시 자발적으로 숟가락 사용할 때도 있으나 아직은 먹여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기본 생활이 원활하게 되길 바랍니다.
다섯째; 침착하지 못하고 부산하게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여섯째; 심한 고집부리지 않기. 소리 지르지 않기, 과잉행동하지 않기 등 문제 행동이 많습니다. 행동 수정이 되길 바랍니다.
사실 20년 동안 특수교사 하면서 이리도 많은 요구 사항을 빼곡히 적어 보내고, 이리도 총체적으로 모든 변화를 바라는 학부모님을 뵙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희재어머니의 바램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난 완전히 새로운 희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특수교육에서 부모님만큼 정확한 의사나, 상담가나, 선생님이 없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6가지의 바램을 어느 것 하나 쉽게 생각 할 수는 없었다.
매일 매일 알림장을 적어서 부모님과 소통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도 바램을 실천하려는 나의 노력이었다.
다행히 희재 어머님께서 작은 쪽지나 글들로 답장을 자주 주시기도 하고, 전화로 아이의 변화를 위해 통화를 해 주시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면담을 하곤 했다.
물론 아이가 어머님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나와의 관계가 더 잘 이루어졌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희재를 위해서 나도 부모님도 모두 하나가 되어 1년여를 노력했다.
그 사이 희재 어머니께서 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 꾸미셔서 훌륭하고 좋은 선생님이라고 표창장을 직접 만들어 보내셨다. 그래서 교실 게시판에 붙여 놓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중요 한 것은 희재가 나와 어머니의 바램대로 너무나 많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학부모님을 모시고 공개 수업을 하였습니다. 3월의 출발점과 지금 현 상태의 아이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하루하루 시간은 잘도 갑니다. 벌써 아이들과 함께 한 세월도 한 달 뒤면 1년입니다.
오늘은 어머님들을 모시고 부족하지만 ‘공개수업’을 하였습니다.
늘 공부하는 그 모습으로 하였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어머니들이 계셨지만 차분히 잘 따라주었습니다.
먼지처럼 쌓였던 변화가 어머님들 보시기엔 커보이기도 하고,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과 저와 도우미샘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고 그 노력은 남은 시간도 계속 될 것입니다.
바쁘시지만 모두 나와 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함께 하지 못한 선영이와 미성이어머니는 아쉽습니다.
1교시; 공개수업- 참 잘했습니다.
2- 3교시; 음악실- 미술실
어머님들과 제가 그간의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지요. 하하 호호
점심은 잡곡밥, 김치국, 계란말이, 소고기 가지볶음. 김치였습니다.
시영이가 김치국의 여러 가지 야채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렸구요. 세훈이는 매워서 시간이 걸렸구요. 미성이와 해웅이 희재는 잘 먹었습니다.
4교시; 이닦고, 세수하고...뿡뿡이 보고. 마무리합니다.
오늘 공개수업하신 것을 보시고 제게 과분한 칭찬과 믿음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구요.
남은 시간도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쵯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내드리는 것은 아이들이 한 작품입니다. 선물이예요 ^^ 담임 김미순 드림
아이들은 평소보다도 더 잘 하는 것 같았다. 그간의 힘들었던 것들과 노력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희재 어머니는 연신 놀랐다. 한마디로 입이 귀에 걸렸다. 믿을 수가 없다고도 하셨다. 다행이었다. 오늘 너무나 잘 따라 해준 희재에게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러니 내가 어찌 희재를 안 이뻐하겠는가!
그렇게 11월은 너무나 의젓하게 변해가는 희재로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쉽지만 곧 겨울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금오정 산행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 버스를 기다리며 ‘오늘도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결석 없이 아이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생각하지요. 물론 저도 언제나 밝고, 신나고, 씩씩한 하루를 위해 큰소리로 아이들을 부르며 꼭 껴안으며 마중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실, 특수교사 20년을 하다보니 아침에 아이들과 첫 눈 맞춤과 껴안았을 때의 느낌으로 아이들의 컨디션을 어림할 수 있지요.
특히 오늘과 같이 등반을 하는 날은 아이들의 상태를 더욱더 잘 살피게 되지요.
다행히 희재와 미성이 기분이 괜잖았구요. 시영이와 해웅이, 세훈이도 별 탈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선영이는 오늘도 경기 때문인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가는데 참으로 걱정됩니다. 자꾸 갑자기 넘어지고 쓰러진다고 하네요..전화 한 통화씩 걸어서 위로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3학년 1반명과 세훈이를 뺀 우리반 4명이 금오정 등반을 시작하였습니다.
교감선생님께서 날씨가 춥다고 걱정하셨지만 1년 동안 금요일마다 훈련한 등반이라 멈출 수 없었지요. 다행히 걱정하던 희재가 등산을 오를 때는 너무나 잘 걸어 주었습니다. 해웅이와 미성이는 이제 정말 혼자서도 잘 걸어 주었지요. 하지만 시영이는 남은 한쪽의 시력도 좋지 않아서 걷기가 힘들었는지 조샘의 손을 잡을 때는 누워버리거나 앉아버려서 오르는 내내 제 손을 잡고 걸어야 했습니다.
내려 올 때는 해웅이와 미성이가 겁을 먹어서 일일이 손을 잡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처음 등반을 할 때 길인지 구덩인지도 모르고 아무곳으로나 막 걸어가고, 넘어지고 하던 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가파르면 손잡아 달라고 기다리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조심할려고도 하고. 대견스럽지요.
하지만 등산을 오를 때 제일 앞서서 하던 희재는 힘이 드는지 내려 올 때는 울면서 걷지 않으려 해서 애를 조금 먹었습니다.
한 30분 동안 제가 희재 앞에서 갖은 애교와 재롱을 부려야 했구요.
사실은 학교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니 양쪽 어깨가 무너져 내리면서 빠질려고 합니다. ㅋㅋ. 힘이 들긴 들었나봅니다.
하지만 깨끗하고 맑은 하늘과 코끝에 느껴지는 상쾌한 바람사이로 아이들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늘 느끼는 맘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참으로 자연과 닮아서 자연 속에 있을 때 더욱 이쁘구나 싶어요.
내려오는 길목의 이름도 모르는 산소에 앉아 쉬었다가 왔습니다. 햇살이 참 따뜻하더라구요.
그리고 아이들과 잔디에서 장난도 치고, 팔베개하여 눕혀서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살갑게 보냈습니다.
점심은 잡곡밥에 추어탕에 파래무우무침에 김치, 멸치 아몬드 볶음이였습니다. 밥 먹이는 것도 약간 힘이 들었겠지요>
아이들도 피곤한지 밥 먹고 나서 양치하고 세수를 시켜놓으니 나대지 않고 얌전허니 앉아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는 아이들과 사랑하기에 충분했으니 너무도 행복합니다. 목욕 따뜻이 시켜주시고 푹 재워주세요. 담임 김미순 드림
12월이 되면서 희재는 부쩍 콧물을 흘리기도 하고, 열이 나기도 하였지만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아이들에겐 성실한 출석이 변화를 가능하게 해주기에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1년 동안 꾸준히 스스로 등하교는 물론 학교 생활을 걸어서 하기, 쉬는 시간마다 6층 복도에서 운동하기, 매주 1회 등반하기를 하였기에 가능한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특수학교 모든 아이들에게는 건강과 체력이 너무나 중요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꾸준하게 신체적인 자극을 받는 운동이나 훈련이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학습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고, 인지력이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2007년 12월 7일 금요일 마지막 등반
산에 오르기에 약간 쌀쌀한 것 같았지만 교육계획에 의거 3학년 전체 금오정 마지막 등반을 하였습니다. 결석한 선영이, 개별지도 하는 세훈이를 빼고 모두 올랐습니다.
1층 현관에서 밖으로 나가니 ‘위 잉’ 바람이 제법 세게 불었습니다. 약간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동안 너무나 잘 훈련이 되었기에 다시 운동화 끈을 불끈 매곤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마음과 달리 희재가 갑자기 제일 앞장서더니 너무나 잘 걷는 것이 아닙니까? 시영이를 데리고 따라 가기가 힘들 정도로 속도를 내었습니다.
정말이지 한 달음에 산등성이 체육시설에 다 달았습니다. 다른 반의 모습은 아에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오늘은 시영이가 걷기 싫어서 찡찡대면서 버티는 바람에 좀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희재와 해웅이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자고 했습니다. 희재는 듣는체도 하지 않고 계속 달리기만 합니다. 할 수 없이 우리반을 쉬지도 않고 금오정 정상에 올랐습니다. 싱글벙글 하는 희재와 달리 나와 도우미샘은 숨이 턱에 닿았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정자 밑으로 내려거 간식을 먹고, 노래도 한곡 부르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5분 정도 지나자 갑자기 희재가 또 일어서더니 산을 막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우리 반은 내려 올 때도 한번도 쉬지 않고 학교까지 왔습니다. 다른 반 보다 1시간이나 일찍 등산을 끝냈지요. 내 참 웃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희재야! 니 진짜로 많이 좋아졌다. 솔직히 너네엄마가 3월에 처음 등산 할 때 나보고 어떻게 하면 되냐고 노하우를 묻는데 차마 니가 하도 안걸어서 참다 참다 못해 너를 굴려서 정신 차리게 했다는 말을 못했던 적도 있는데, 정말 오늘 보니 너 용됐다. 니가 이리도 빨리 금오정을 뛰어서 등반 했다 카만 누가 믿겠노? 눈으로 본 도우미샘과 옆반샘 과 내 말고는 아무도 안 믿을꺼다. 아무튼 우리 희재 대단하다. 화이팅!”
어머니! 진짜로 우리 희재가 좋아졌습니다. 그럼요. 오늘 맛난 것 많이 해주시고, 칭찬 듬뿍해주시고, 따뜻하게 목욕시켜 푹 재워주세요. 오늘 하루 날라 다닌 희재 쌩유
담임 김미순 드림
마지막 등반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희재는 그 후로 나의 인내심을 가끔 시험하기도 하지만 너무도 잘 생활해주었습니다.
드디어 방학날이 되었습니다. 우리반 모든 학부형들이 맛난 음식을 가지고 피티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나에게 정말 많은 칭찬과 감사를 보내주셨습니다.
“내년에도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맡아주셔야 합니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속으로는 끔쩍 놀랐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게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말씀입니다. 특수교육 이 길을 가는 나에게 또 다른 가르침과 감사와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학습한 결과물이 그 아이의 변화를 다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희재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결과물을 열심히 해 내었습니다. 전혀 자리에 앉아서 학습 할 수 없었던 희재와 어머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희재는 1년 동안 학습한 책이 무려 사회 1. 2권, 우리들은 1년, 수학 1, 과학 1 등 5권이나 되었습니다. 누철해 놓은 학습한 공책만도 20권을 넘어갑니다. 게다가 5월부터 시작한 일일 학습지의 양은 엄청나기도 합니다.
되돌아보면 스스로 걷기, 편식하지 않기, 열심히 운동하기, 신변자립훈련하기, 수업에 적극 참여하기, 등산하기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1년 동안 최선을 다 했습니다. 물론 아직 희재는 완벽하게 변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희재어머니의 바램이 다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희재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그 모습들로 충분히 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참 많이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기대를 갖게 하기에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희재의 미소가 백만불짜리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 만큼 희재는 너무도 귀엽지요. 방학동안 희재 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내오셨습니다.
“방학 잘 보내고 계신지요? 희재도 잘 있습니다. 말은 못하지만 희재가 선생님 사진을 보여주면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희 집에 희재도 볼 겸 놀러 한번 오세요”
갑자기 희재가 보고 싶어지면서 지난 시간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지나갑니다.
3월 걷지 않으려고 널부러져 있는 모습에서 산에서 내달리는 모습으로, 잠시도 앉아 있지 않고 이것저것 저지래를 하던 모습에서 수업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기 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으로, 편식이 심하고 침을 식탁에 뱉으면서 장난치던 모습에서 모든 반찬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고 도움 받아 식판 정리까지 하고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던 모습으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옷에다 실례를 하더니 이제 가끔 스스로 화장실도 가기도 하고 한달에 한번 정도로 실수를 하는 모습으로, 그 속에는 무엇보다 아직도 도저히 내가 이해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결 할 수 없고, 도와줄 수도 없는 서러운 울음이나 고집들, 이상한 괴성지르기 등 수정이 필요한 사항도 그렇게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희재는 다시 새 봄과 함께 새롭게 시작할 것입니다. 더 나은 희재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