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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56회교육주간수기공모작-교원단체총연합

작성자비오는 날의 바람|작성시간08.06.09|조회수50 목록 댓글 2

백만불짜리 미소 천사와의 걷기 전쟁


                                                             구미혜당학교  김 미순

 처음 담임 배정을 3학년으로 받았을 때 다른 샘들이 지나가듯이 말씀하셨다.

 “아마도 3학년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힘든 학년 중의 하나일걸? 특히 시영이나 희재 담임은 올 한 해 쬐께 빡실껄?”

 그랬다 시영이는 자해행동으로 눈이 실명되어 손을 늘 묶어 두어야하고, 희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널버러져 있거나, 점심 식사 전후로 식당 문 앞에서 고개를 쳐 박고 늘 문어처럼 누워 있던 아이였다. 아무튼 걷는 것을 제대로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그 아이였다. 아뿔사!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명색이 특수교사 20년! 이젠 장애 정도쯤이야, 개인차 쯤이야, 반의 구성이 어떠한 상황이든지 아이들과 함께라면 행복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가 맡아서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나 또한 기꺼이 이 반을 맡아서 나름대로 1년을 잘 꾸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첫날 희재는 어머니가 업다시피 데리고 오셨다. 부모님과 면담을 하였다.

  “올 1년 제게 희재를 맡기셨다는 것은 너무도 다행일겁니다. 올 한 해가 희재에게나 부모님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 봐 주세요. 아이들은 늘 사랑밖에 난 몰라입니다. 부모님들도 적극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20년간의 내 경험과 노하우로서 아이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면서 학년말 아이들의 변화에 눈물겹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어머니께 다짐하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희재와 나와의 걷기 전쟁은 시작되었다. 첫 과제로 교단 일지를 통해 희재의 매일매일의 일상을 부모님께 알림과 동시에 나 자신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기회를 만들었다.

우선 제일 시급한 것은 희재가 버스에서 내려서 널부러 눕지 않고 스스로 걸어서 6층까지 올라오는 것이었다. 3월 한 달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관찰 결과가 나왔다. 전혀 걷지 않던 희재가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에 아주 호기심이 많고 민감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등교차가 왔다. 님을 기다리듯이 화장을 곱게 하고 한껏 예쁜 옷을 입고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 희재! 이쁜 희재! 희재 왔니?” 하면서 버스 밑에서 내리지도 않는 희재를 열번이고 백번이고 계속 불러주면 아니다 다를까? 고개를 드는 법이 없던 희재가 씨익 미소를 띄우며 내리면 어떻게든 엉덩이를 땅에 붙이기 전에 더욱 호들갑을 떨면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려야 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기에 6층까지 올라오면서 잠시라도 쉬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4월까지 학교 생활에서 이동을 스스로 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했고 스스로 걷는 횟수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2-3일은 온갖 재롱을 부려도 걷지도 않고 옷에다 대소변을 실례까지 하면서 애를 먹이곤 했다. 정말 이도 저도 안통하는 날은 그냥 현관에 두고 지켜보기도 하고, 억지로 업어서 데려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점심시간이나 특별실 가는 것처럼 짧은 거리에서 주저앉는 버릇은 거짓말처럼 좋아지고 있었다. 내게 용기와 욕심을 부리기에 충분한 것이였다. 그 때 생각해낸 것이 학교 뒷산 금오정 등반이였다. 모두들 말렸다. 걷지도 않는 아이를 산까지 데려가서 어쩔거냐고 했다.하지만 한번만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그래! 그래!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냐? 그렇게 희재와 함께 우리 반 아이들의 매주 목요일 금오정 등반은 시작되다. 첫 날부터 희재는 나의 원맨쑈에도 불구하고 산 중턱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결국은 옆반 남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반쯤 업다시피 내려왔다. 그 날 우리 둘은 몸살이 났다. 며칠을 아팠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매주 조금씩 스스로 걷는 거리를 늘려나갈 수 있었다. 물론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와 싱그런 바람이 큰 힘이 되었다. 실갱이를 하면서 쳐다본 하늘과 꽃들도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응원이였다. 드디어 여름 방학을 할 때 쯤 금오정 정상을 희재 스스로  올랐다. 그 날 정말로 나와 희재는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어머니도 놀랬다. 모두들 놀랬다. 한발짝을 걷지 않던 아이가 등반을 했다. 집에서도 가끔 고집을 피울 때 말고는 잘 걷는 다고 너무나 좋아하고 있었다. 아! 이쁜 놈! 나의 체력도 한 몫을 했다. 그래! 특수교사는 힘이다! 포기 하지 않는 마음! 지치지 않는 마음이 중요했다! 그렇게 방학을 했고 다시 개학을 했다.

 웬걸? 아뿔사! 방학을 한 달 보내고 온 희재는 또다시 걷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방학 한달 동안 지난 일지를 정리해보니 희재의 걷지 않으려는 이유들이 몇 가지로 압축되어 있었고 걷게 하는 강화제도 발견되어 있었다. 진짜루 그랬다.

 희재는 첫째, 항상 먼저 버스가 오기 전에 기다렸다가 아주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마중하지 않으면 바로 앉아 버려 하루종일 삐진다. 도우미샘도 안되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된다. 둘째, 방귀 냄새가 나거나, 인상을 보고 배가 아픈 듯 하면 절대 걷지 않으려 한다. 변비가 심해서 응가 하기 전단계의 징후이다. 우선 변부터 해결해야한다. 셋째, 비가오거나 햇살이 너무 눈부신 날은 유독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잘 걷지 않으려 한다. 넷째; 희재는 곤충이나 작은 장난감 차를 좋아하니까 곤충채집 병에다가 파리라도 잡아서 유인하듯 걷게 하거나 장난감차를 앞서서 끌어 보거나 손에 쥐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유없이 걷지 않을 때는 무작정 기다리거나 업을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위의 처방으로 희재는 빠르게 다시 정상적인 2학기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장학습이나 소풍, 사람들이 많은 장소, 학부모님과 함께 일 때는 여전히 걷지 않으려는 시도를 늘 한다. 그 때 마다 난 애절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희재 멋지지? 정말! 우리 희재 너무 잘 걷지? 그치?......” 스킨쉽을 더욱더 자주 하면서 절대 포기 하지 않았던 내 눈빛과 함께 잡은 손에는 힘이 주어주었다. 가끔은 안 통하지만 그래도 땀으로 일구어낸 우리의 걷기 훈련은 힘들지만 적응을 해 갈 수 있었다. 이 때 쯤 학교 홈페이지에 희재 아버님께서 짧은 감사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보답의 글

                                                            윤 현철( 희재 아버님)

 바쁜 일상에 속에 어린이날을 핑게로 야외 나드리에 벌써 아카시아의 꽃이 피기시작 했네요. 아들녀석의 어리광 속에서 약간의 성숙함을 느끼며 학교와 선생님의 고마움을 이렇게나마 몇자의 글로 올려 봅니다.

1,2,3학년기간 아들녀석의 교육과정을 가끔 안사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와 변화된 아이의 모습에 저 자신도 놀라움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왜사람울립니까? ㅎㅎㅎ)

 늦은감 있지만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 드립니다.( 刻骨難望 : 각골난망 )

정작 자신의 일이 아닌 일에는 무관심한 현실에 이렇게 교육의 혜택을 통해 나날이 변해가는 아들녀석을 바라볼때면 마음속 깊은곳의 어두움이 조금은 밝아 집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장애복지정책이나 후,생복지의 열악함에 분통 감당하기 힘들지만 여기에 이렇게 노고 하시는 선생님을 뵐때 약간의 위안으로 참으며 보채 볼려고요.

자식위해서라면 무엇이 힘들겠습니까 옛 어른들의 말씀이 이제 좀 피부에 와닪는 것 같습니다.

학교장님! 선생님!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이십니다.

항상 웃음읽히 않는 용기있는 모습으로 따뜻한세상 만들어 주세요.

미약하나마 저희도 같이 노력하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 동안 희재와 사투하듯 보낸 시간이 보람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도 답장을 드렸다. 

 아버님!

희재가 늦잠을 자던 날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오신 적이 있지요.

그날, 처음 뵙지만 잘 생긴 외모와 넉넉한 모습 때문에 제가 감히 말씀 드렸지요.

"희재 아버지 너무 잘 생겼네요"라고. 씨익 웃으시면서 희재에게 뭐라고 인사를 한 뒤

 이마에 아주 깊고 따뜻하게 입맞춤을 해 주셨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가슴이 찡했습니다.  처음 본 담임 앞에서, 지각을 한 상태면서. 제대로 담임과 말 한번 안하신 분이 아이에게 어떻게 저렇게 기도하듯이 입맞춤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올 해 내게 희재가 아주 특별한 아이로, 늘 행복과 기쁨을 주는 아이로 다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의 저 말없는 가슴 저민 입맞춤 사랑이 아닐까 싶지요.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도 만나고 수많은 학부모님들도 만났지요. 하루는 아이들 때문에 행복하고, 하루는 아이들 때문에 절망하고, 하루는 내 부족한 능력때문에 반성하고, 하루는 무지한 세상사람들 때문에 아이들 처지가 안타까워 마음 아파하고. 이런 하루들이 모여서 2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저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고 부족한 선생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아이들은 나의 친구고 큰 가르침의 스승이고 사랑하는 애인이였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이들에게 쏟은 정성과 노력에 대한 대답은 이미 아이들이 매일 매일 여러 가지 형태로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희재 어머님의 말씀 처럼 "백만불 짜리 희재의 매력있는 웃음을 매일 볼 수 있는 무료 쿠폰"을 시작으로 다양하고 가슴 찡한 선물이 매일 매일 기상천외한 이벤트와 함께 쏟아지거든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잘하라는 격려로 알고, 소중한 인연 정성스럽게 잘 가꾸어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돌이켜 보면, 걷지 않으려고 하다가 넘어져 눈 위를 다쳐 꿰맨 일, 김천 직지사까지 갔다가 화장실에만 앉아 있다가 온 일, 극장에서 결국은 걷지 않으려다 실례를 해서 난감한 일. 유독 하산 길에 퍼져서 넘어져 긁히거나, 업혀 오거나, 잠이 들거나, 울고불고한 일 등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희재는 늘 한쪽 구석에서 널부러져 애먹이던 운동회도 간이 유모차에 의지했던 현장학습 때도 스스로 걸을 뿐만 아니라 너무도 잘 따라 주어서 어머니를 감격해서 울게 만들었다. 더욱 깜짝 놀랄 사실은 겨울 방학이 다가와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던 마지막 등반 날 금오정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뛰다 시피 내려와서 다른 반과 한 시간이나 차이를 나게 했다는 점이다. 이쯤해서 나의 숙제를 공개하려고 한다.

                                                      희재 어머니(아동 실태 조사서)   죄송하지만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너무 큽니다.

 첫째; 언제 어디서든지 걸어야할 때 걷는 모습이 되어야 하나, 용의할 정도는 아닙니다. 특히 교외에는 더 심합니다. 스스로 잘 걷게 해 주십시오.

 둘째; 대소변 자립이 되어야 하나 아직도 소변은 일일이 뉘여 주어야 하고, 지시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대소변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셋째; 본인의 욕구가 만족되지 못 할 때 벌주거나 원하는 것을 안 해주면 침을 뱉거나 침을 뿌리면서 엉뚱한 행동을 심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침장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넷째; 식사시 자발적으로 숟가락 사용할 때도 있으나 아직은 먹여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기본 생활이 원활하게 되길 바랍니다.

 다섯째; 침착하지 못하고 부산하게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여섯째; 심한 고집부리지 않기. 소리 지르지 않기, 과잉행동하지 않기 등 문제 행동이 많습니다. 행동 수정이 되길 바랍니다.

사실 20년 동안 특수교사 하면서 이리도 많은 요구 사항을 빼곡히 적어 보내고, 이리도 총체적으로 모든 변화를 바라는 학부모님을 뵙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희재어머니의 바램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난 완전히 새로운 희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특수교육에서 부모님만큼 정확한 의사나, 상담가나, 선생님이 없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6가지의 바램을 어느 것 하나 쉽게 생각 할 수는 없었다. 매일 매일 알림장을 적어서 부모님과 소통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도 바램을 실천하려는 나의 노력이었다.

 다행히 희재 어머님께서 작은 쪽지나 글들로 답장을 자주 주시기도 하고, 전화로 아이의 변화를 위해 통화를 해 주시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면담을 하곤 했다.

 물론 아이가 어머님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나와의 관계가 더 잘 이루어졌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희재를 위해서 나도 부모님도 모두 하나가 되어 1년여를 노력했다.

 그 사이 희재 어머니께서 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 꾸미셔서 훌륭하고 좋은 선생님이라고 표창장을 직접 만들어 보내셨다. 그래서 교실 게시판에 붙여 놓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중요 한 것은 희재가 나와 어머니의 바램대로 너무나 많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학부모님을 모시고 공개 수업을 하였고 3월의 출발점과 지금 현 상태의 아이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평소보다도 더 잘 하는 것 같았다. 그간의 힘들었던 것들과 노력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희재 어머니는 연신 놀랐다. 한마디로 입이 귀에 걸렸다. 믿을 수가 없다고도 하셨다. 다행이었다. 오늘 너무나 잘 따라 해준 희재에게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러니 내가 어찌 희재를 안 이뻐하겠는가!  12월이 되면서 희재는 부쩍 콧물을 흘리기도 하고, 열이 나기도 하였지만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였다. 아마도 1년 동안 꾸준히 스스로 등하교는 물론 학교 생활을 걸어서 하기, 쉬는 시간마다 6층 복도에서 운동하기, 매주 1회 등반하기를 하였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특수학교 모든 아이들에게는 건강과 체력이 너무나 중요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꾸준하게 신체적인 자극을 받는 운동이나 훈련이다는 것, 물론 이것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학습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고, 인지력이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초가 되기도 한다.

 물론 학습한 결과물이 그 아이의 변화를 다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희재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결과물을 열심히 해 내었다. 전혀 자리에 앉아서 학습 할 수 없었던 희재와 어머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1년 동안 학습한 책이 무려 사회 1. 2권, 우리들은 1년, 수학 1, 과학 1 등 5권이나 되고 누철해 놓은 학습한 공책만도 20권을 넘어간다. 게다가 5월부터 시작한 일일 학습지의 양은 엄청나기도 하다. 그만큼 주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스스로 걷기, 편식하지 않기, 열심히 운동하기, 신변자립훈련하기, 수업에 적극 참여하기, 등산하기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 물론 아직 희재어머니의 바램이 다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그 모습들로 충분히 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해 주고 앞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에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오랫동안 숙이고만 있던 고개를 들어 보여 준 희재의 미소가 백만불짜리인 것도 틀림없는 것처럼 앞으로 희재에게 자립자활의 기대도 틀림이 없다. 방학 끝자락 희재 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내오셨다. 희재가 선생님을 너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집으로 놀러 오시라는 말씀과 함께 내년에도 맡아주시길 매일 기도한다고 하셨다. 말 한마디 못하는 희재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맘을 난 알고 있으므로 너무 너무 행복하다. 사랑한다!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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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비오는 날의 바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6.09 아구노리를 잘 마치고 돌아오니 부끄러운 글이 책에 실렸네요. 언젠가 긴 이야기로 올렸던 것인데....
  • 작성자主人公 | 작성시간 08.06.10 저도 '온갖 정성을 다해 꾸미셔서 훌륭하고 좋은 선생님이라고 표창장을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요~ 항상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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