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날씨는 완전 여름으로 되돌아 간 듯 하다.
오늘은 우리 학교 초등부 100여명이 속리산 법주사로 1박2일 임간학교를 하러 가는 날이다. 다른 반은 장애 정도가 심한 아이들이랑, 약을 복용하는 아이들이랑, 사정이 있는 아이들이 참석하지 않기도 하지만 우리 반은 다행히(?) 5명 모두 참석하였다.
출근을 하면서 신발 끈을 쫙 죄어 매였다. 옷은 최대한 간편하게 입었다,
늘 그러하듯이 우리 아이들이랑 1박2일 행사를 한다는 것은 무박2일 긴장 속에서 함께 해야 하는 아주 힘들지만 학교생활과 또 다른 아이들과의 긴밀한 대화의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반은 휠체어도 없고, 심하게 도망치는 아이도 없음이 감사하다.
아이들이 등교할 시간이 되자 아이들의 이름 밑에 내 전화번호가 새겨진 이름표를 얼른 준비하고 맞이하러 갔다. 그럴 일이 없겠지만 큰 볼일을 싼 놈을 치우는 사이 한 놈을 잃어 혼이 났던 적이 있었는지라 혹시나 싶어 이름표는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이름표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 못 오는 아이가 있을지, 아니면 간밤에 감기가 걸렸든지, 설사를 했든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때문에 아침에 아이들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현관으로 갔더니 아직 등교차가 오지도 않았는데 은주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내가 “은주야”부르니 “선생님~~~”하면서 이산가족보다 더 반가운척하느라 정신이 없다. 은주는 컨디션 최상! 통과!, 그 다음 성은이가 엄마 손 잡고 동생이랑 같이 왔는데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도 품에 한번 안아보았다. 최근에 감기 기운이 있어 미열이랑, 콧물이 조금 있었던 터라 진찰을 해야했다. 약간 아직 감기끼가 있지만 이정도 기분이면 통과! 다음은 예원이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모든 면에서 컨디션이 최상! 통과! 이젠 관건은 여전히 침을 줄줄 흘리고 비틀거리듯 걷는 철호와 하루 쉬고 다시 집을 떠나야하는 잠꾸러기 애기 같은 정호다.
다행히 철호는 컨디션이 양호했다. 하지만 정호는 눈을 보니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우선 아이들을 화장실 다녀오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오늘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화장실과 잠자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이기 때문이다.
마침 은주 어머니와 예원이, 성은이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직접 오셔서 먼 길을 떠나는 아이를 근심반 기대반으로 보내주신다. 집에서 하듯이 나가서 하면 한 두명도 아니고 우리 반 모두를 책임져야하는 내가 힘들까 싶은 표정도 역력하시다.
정호 어머니께서는 전화로 울 똥강아지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 물론 시내버스 조차 잘 못타고 다니시는 철호아버님은 무소식으로 아이를 보내셨지만 준비물을 잘 챙기신 것을 보면 못 와보시는 맘도 알 것 같았다.
드디어 학교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속리산으로 출발을 했다. 차 안에서 은주는 무엇이 좋은지 계속해서 묻고 이야기 하느라 정신이 없고, 성은이는 차창밖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때때로 깔깔거리고, 철호도 이쪽저쪽 쳐다보면서 웃느라 침을 흘린다. 정호는 배가 고픈지 자꾸 가방을 열어서 먹을 것을 찾는다. 과자를 한봉지 꺼내서 아이들을 나누어 주었더니 그 행복해 하는 표정이란.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아무리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나도 갑자기 행복해 지면서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도 좋을까? 하긴,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떻게 아이들이 세상으로 난 길을 맘 놓고 소통할까? 그것도 최고로 자기들을 사랑하고 지켜주는 선생님들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쉬운 일들이 우리 아이들에겐 겨우 1년에 한번 온갖 계획과 대가를 치르고서야 가능하다는 사실이 맘 한쪽에서 맘을 캥기게 한다.
한시간 반을 달려서 드디어 속리산 유스호스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숙소는 화장실이 2개라는 사실이 너무 맘에 들어 행복하기조차 하였다. 항상 아이들이랑 임간학교를 하면 화장실 다니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고 중요한 일인법이다. 어찌되었건 실례를 하지 않는 것이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우리는 부모님께서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을 맛나게 먹고 법주사로 도보 관람을 하러 갔다. 만만치 않은 거리여서 모두를 데리고 걸어 가는 것이 걱정도 되었지만 약간 피곤할 만큼의 운동량이야 말로 오늘 밤을 하얗게 보내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관건이기에 나는 정호랑 은주, 예원이를 도우미샘은 철호랑 성은이를 책임지기로 했다.
길가에는 아이들 키 만큼 커져있는 코스모스와 작은 꽃을 똘방똘방 피우고있는 쪽이랑 아름드리 숲속길이 우리 모두를 기분좋게 하였다.
물론 너무도 너무 앞서가려는 은주와 예원이는 연신 불러 세워 뒤쪽으로 보내야 했고, 제 맘대로 나풀거리며 다니는 성은이는 눈 안에 넣어서 놓치지 않아야 하고, 걸음이 비틀거리는 철호는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하고, 특히 내 팔에 갈수록 온 몸을 의지하며 찡찡거리며 업어 달라 보채는 정호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하였지만 학교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으로 연신 웃음이 나왔다.
“아휴 힘들어, 정호야! 어깨 쭉지 빠지겠다. 요놈아..”말은 절로 나와도 행복하다.
제가 늘 느끼듯이 아이들은 자연에 나와 있으면 둘이 아니고 하나이고, 그 하나를 바라보는 나 역시 닮고 싶은 푸름의 평화와 아낌없는 자유이다.
힘들게 법주사 구경을 하면서 목도 축이고, 사진도 찍고, 보리수 나무아래서 쉬면서 아이들과 말없이 기도하고 사랑하고 행복했다.
오후 2시 30분 다시 숙소로 돌아가 다음 과정활동을 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법주사 앞에는 도저히 왕복하기 힘든 아이들과 온 바지에 실례를 한 아이들과 휠체어부대들을 싣기 위해 봉고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반도 피곤해 잠깐 자불기까지 하는 정호를 캠프파이어까지 버티게 하려면 봉고 신세를 지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가는 길 보다 오늘 길이 더 힘들었지만 씩씩하게 다시 걸어서 먼 길을 무사히 다녀왔다.
특히, 돌아 오는 중간에 아이들과 함께 사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최상의 맛이었다.
다음 과정활동은 열쇠고리를 만드는 시간이였는데 핸드폰번호대로 숫자가 새겨진 구슬을 넣어서 만드는 것이였다. 물론 거의 다 제 손으로 마무리를 하였지만 성은이, 예원이, 은주는 우리반 우수아 답게 부르는 숫자를 정확하게 골라주어서 한 몫을 담당하였습니다.
정호가 너무도 기다리던 저녁밥을 맛나게 먹은 후 드디어 캠프파이어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반은 장은주의 “아기 염소”를 신청했습니다마는 괜히 멍석을 깔아 주니 쑥쓰러워 하는 은주 때문에 우리반 모두 올라가서 비록 불협화음이지만 저도 아이들도 조명을 한 껏 받으며 신나게 다 함께 노래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모닥불 사이를 뛰어 다니며,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엄마 사랑해요를 목청껏 외쳤다.
아마도 아이들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시는 부모님들은 안심을 하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와 여자아이 모두 빨가벗겨서 몽땅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다 시켰다. 은주는 물장난에 신이 났고, 예원이와 성은이도 다행히 무난하게 목욕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몸을 내게 잘 맡겼다.(?) 사실 20년간 교사생활을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물을 싫어 하는 아이들과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씻기는 것도 사투를 벌여야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반 천사들은 목욕하는 모습도 천사다. 정호와 철호도 너무도 잘 협조를 하였다. 특히 정호는 나가라 해도 마다하면서 내가 다 씻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가 나의 에스라인을 감상한 뒤 함께 나갔다. ㅋㅋㅋ
깨꿋이 씻기고 나서 옷을 한 놈씩 갈아 입히는데 40분정도를 씨름을 했더니 목욕한 것도 소용없이 등짝으로 땀이 줄줄 흐른다. 에이 다시 목욕해야겠다. 정말 다시 했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잠자리에 들 시간이 왔다. 경험상으로 성은이와 은주가 제일 요주의 인물인데.... 요 놈들을 어찌 빨리 잠자게 한다?? 잘 못하면 꼴딱 밤을 세울 수 밖에..
그러면 그렇지.. 철호와 예원이는 오늘 너무 피곤했는지 10분이 지나자 마자 골아 떨어졌다. 은주는 계속 이리저리 간섭하고 내게 묻느라 정신이 없고, 성은이는 불을 끄자 소리를 지르며 울고 불고 난리를 떤다. 다시 불을 켰다. 아니, 그랬더니 이번에는 정호가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곧바로 성은이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불을 켜고, 다시 정호가 벌떡 일어나 불을 끄고..... 그 사이 은주는 두 놈을 불러대며 자라고 간섭하고...난리가 따로 없다. 어찌한다~~~, 성은이를 일단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다행히 정호는 자고 있다고 했다. 12시가 되자 다시 성은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켰다. 아직도 자지 않던 은주는 다시 일어났고, 정호도 부스스 일어나 다시 불을 껐다. 성은이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떨고, 앞방에서는 겨우 잠자게 했던 아이들이 성은이 때문에 깼다고 달려오고, 그렇게 새벽 3시까지 씨름을 하다가 겨우 재울 수가 있었다.
나도 이제 자야겠다 싶어서 아이들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데 죽도록 애를 먹이던 놈들이 자는 표정을 보니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피곤함이 싹 한방에 가시는 듯 하다. 아마도 부모님들께서도 아이들 잠자는 모습 때문에 아이들과 씨름한 하루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다시 내일을 준비할 힘을 얻겠구나 싶었다.
아침이 되자 애를 먹이던 정호와 성은이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기척을 보이지 않지만 억지로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화장실에 앉히고, 양치를 시키고, 다시 강당으로 가서 레크 댄스도 배우고, 미니 올림픽도 하고 정신없이 오전 활동을 마무리 하였다.
의외로 성은이는 모든 활동에 참가하려 하였고, 은주와 예원이는 서로서로 경쟁하듯이 재미있게 활동하였다. 물론 철호와 정호는 내 손에 이끌려 모든 활동을 하느라 다소 힘이 들었지만 철호는 좋다고 연신 웃으며 참 잘 하였다.
마지막으로 점심을 맛나게 먹고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철호는 피곤한지 금새 다시 골아떨어져 잠을 자고 정호도 잠을 자다깨다 하였다.
무사히 학교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하교 버스에 태우 보내고 나니 4시 20분쯤 되었다.
그 때서야 갑자기 피곤이 밀려온다. 긴장이 풀렸나보다.
“아이들과 좀 더 살갑게 지내다 온 임간학교가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많은 보탬과 밑거름이 됨을 감사하며, 무사히 일정을 잘 마쳐준 우리 천사들이 너무 대견하고, 내 삶에 또 하루를 이렇게 절절히 생명을, 나눔을, 소통을, 행복을 허락함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