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사일과 원산지단속 요원일을 겸하고 있다
원산지단속이란 농산물을 사고 팔때 오가는 농산물이 국산인지 수입산이지를 판별할 줄 알고 이를 위반하면 적발해 내는 것이다
주로 장이 서는 날 오전에 장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원산지 표시가 안되어 있으면 표시를 해주고
혹은 수입산으로 보이는 농산물을 국산으로 잘 못 기재한 경우를 바로잡는 따위의 일이 내 역할이다
물론 그런일을 하고 하루 일당 4만원이 지급되므로 시골살면서 꽤 짭짤한 용돈벌이라 할 수 있다
어제도 그렇게 장터를 하루 돌아다녔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보따리 보따리 이것저것 쪼금씩 가져와 파시는 할머니 분들이 눈에 어린다
물론 내가 글 모르시는 할머니분들과 3년째 공부를 해오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짠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예, 할머니, 어째 원산지 표시가 하나도 없으세요?"
"뭐라고~ 멀 표시하라고요?"
"말하자믄, 더덕이랑 도라지랑이 여그 것인지 쭝국것인지 표시하는거 있잖요~"
"잉~ 내가 가꼬 온 놈들은 전부 여그꺼시여, 쭝국꺼 하나도 없응게 걱쩡을 마시요"
"하이고, 예,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의심허는게 아니고요, 요것들을 팔라믄 원산지 표시를 해야 쓴당게요"
"아~이날 입때 30년을 장에다가 오만 것을 나가 팔았는디 뭘 또 표시하라고! 오늘은 집에서 깜박해가꼬 안가꼬 와브렀싱게 담 장엔 꼭 가꼬 오께잉"
"담 장부터는 꼭 가꼬 오셔서 표시해야쓰요잉, 나니께 요로고 넘어가제 위에서 단속나오믄 할머니 벌금 마이 물어요"
"아랐써, 꼭 헐랑게 가서 일봐~, 근디 어서온 총각이여, 생긴것도 이쁘게 생게가꼬 맘씨도 좋네잉"
"아~ 어서 왔겄어요, 우리 오마니 다리 밑에서 줏어왔지요"
"오메 참말로잉, 재미나게 말 헌거 좀 봐야 하하하"
할머니와 나는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할머니는 이가 없으시다
할머니 말씀인 즉, 자식들이 여럿있는데 다들 형편이 뻔할 것인디 다 늙어가꼬 곧 죽을 것인디 부담주기가 싫어서 이러고 사신다고 한다.
면사무소에 가셔서 수급자 신청을 하시면 틀니를 해준다고 말씀드리자 할머니 묏자리를 쓸라고 마련한 땅에 쪼금한게 있어서 수급자가 될 수 없으시다고 한다.
젊어서 고생 많으셨으니 늙어선 좀 편해야쓰제 어째서 이러고 사세요하고 당돌하고 어리석은 물음에 '나는 고생을 해도 자식헌테 폐 안끼칠라고' 그렇게 사신다고 한다.
아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첫 째 고통이요,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 둘째 고통이요, 못배운 것이 셋째 고통이요, 벌어먹고 살 것없는 산골에서 태어난 것이 넷째 고통이요, 여자로 태어난 것이 그 모든 고통중에 가장 큰 고통이라
한 참을 이야기나누고 떠날때 까지 할머니는 더덕껍질까는 손을 잠시도 멈추시지 않으셨다.
그렇게 평생을 사신 것이다.
그리고 그 평생을 여그 곡성장에서 모진 시름을 하며 저리도 깊이 주름이 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