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불교 기초 교리 강좌3 (2010. 7. 10. 토. 맑음)
오늘의 주제는 '불교란 무엇인가'입니다.
불교에서는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실체도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無常합니다. 항상 같지 않고 변합니다. '겁'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사방 십리 바위를 부드러운 선녀가 입는 부드러운 옷으로 3년에 한 번 살짝 스치어서 그 바위가 다 닳아지는 시간이 겁입니다. 작은 겨자씨를 사방 십리 성 안에 3년에 한 개씩 뿌려서 성안이 가득 찰 때의 시간이 겁입니다. 그러나 이런 수억 겁도 변합니다. 안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이름만 지어 불렀을 뿐입니다. 이런 한계 상황 때문에 싯다르탓는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한 번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존하려고 하는 데서 고통이 생깁니다. 육체적 욕망을 계속하려는 데서 번뇌가 생깁니다. 이런 욕망과 번뇌를 끊고 무지를 깨우쳤을 때 깨달은 이가 됩니다. 그때 '나'는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중생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입니다. 개념은 상대적일 뿐 절대적 관점으로 보면 둘이 하나입니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입니다. 긍정과 부정의 야누스적인 면이 사실은 하나로 통합된 것입니다. '나'라는 실체는 없습니다. 양파 껍질과 같습니다. 다만 씨앗이 조건과 원인에 의하여 나타날 뿐입니다. 여기에 집착하면 윤회하게 됩니다.
백장선사라는 유명한 스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스님의 어머니께서는 눈이 안 보이셨는데 아들이 보고 싶어 절마다 찾아다니면 스님들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아들의 발에 사마귀가 나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아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비낟. 이 소문이 널리 퍼져 백장선사도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백장 선사가 계신 절까지 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는 "물 한 컵도 주지 마라" 냉정하게 명령합니다. 결국 아들도 만나보지 못하고 쫒겨난 어머니께서는 강을 건너다 넘어져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 꿈에 나타나 말을 합니다. '아들이 냉정하게 쫒겨냈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집착을 모두 끊을 수 있게 되 극락 왕생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우리는 사람에 대한 관계의 애착 때문에 또 태어나게 됩니다. 특히 자녀에 대한 애착은 가장 끊기 어렵습니다.
불교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 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는 가르침의 종교입니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안수 정등도'에 나오는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의미를 비유해서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벌판을 걷고 있었습니다.(우리의일상) 그때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무상한세월)가 달려왔습니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정신없이 달렸습니다.(삶의추구)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고, 그 우물에는 마침 칡넝쿨(생존의 욕구)이 있어서 급한 나머지 그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바닥에는 무서운 독사(죽음의 의미)가 혀를 널름거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디선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흰쥐와 검은쥐(윤전하는 낮과밤)가 번갈아 가며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생활주변)에서는 작은뱀(노병사)들이 주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벌 다섯마리(오욕)가 날아와 칡넝쿨에 집(재물욕,색욕,식욕,명예욕,수면욕에 대한 집착)을 지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한방울씩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꿀(희,노,애,락)을 받아 먹으면서 달콤한 꿀맛에 취해 자신의 위급한 상황(죽음이 닥침)을 잊은 채 떨어지는 꿀(애착)을 받아 먹는데만 정신이 팔려 자신이 죽을 처지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위험 속에서 벗어나 살아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이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집착으로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공부를 통해 어리석은 '나'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변화시킬 때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참선과 화두 공부, 경전 공부를 통해 부처의 의미를 깨닫아 본래의 '나' 의미를 알게 될 때 깨닫는 자,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조가 선사는 말했습니다. '불도란 별것 아니다. 손털이 부처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육체는 시들고 언젠가 죽는다.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불법 진리에 의지해라. 진리를 보는 자 부처를 볼 것이다. ' 본래 '나'의 알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정진하십시오. 깨달음의 선물을 주는 자가 진정 사랑하는 이입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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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의 핵심 **
1. 불교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 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는 가르침의 종교이다. '안수 정등도'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의미를 비유해서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는 언제가는 죽는 데도 불구하고 오욕에 취해 죽음을 잊으며 살고 있다. 불교 공부를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2. 불교에서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도 없다고 한다. 다만 이 실상을 깨달을 때 부처가 된다. 이것을 모르고 인간 관계나 오욕에 집착하면 고통을 겪게 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윤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