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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불교기초교리 강좌 4 (2010. 8. 14. 토 맑음 )

작성자나무향기|작성시간10.08.15|조회수25 목록 댓글 0

제석사 관일스님의 불교기초교리 강좌 4


* <금강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수미산처럼 큰 칠보로 보시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에서 4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에게 일러준다면, 앞의 공덕으로는 백 분의 1에도, 천 만억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서는 수효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장생포 앞바다의 수많은 모래알만큼 많은 적선을 하고 시주를 하고, 인등을 켠다 해도 불법 공부를 하고 남에게 법보시하는 것이 훨씬 더 큰 공덕이 된다는 뜻입니다. 금은보화는 당대로 끝나는 ‘有漏의 福’이나, 불법 공부는 영원히 이어지는 ‘無漏의 福’입니다. 세상은 무상하여 늘 변합니다. 자신의 실체 또한 허망한 것을 보는 것이 반야지혜입니다.  


* 불교의 아름다운 점

佛은 人+弗이 결합된 한자로, ‘보통 사람이 아닌, 세상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人’은 보시다시피 서로 기대는 형상으로, 이것은 다른 것과 상관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늘 양면성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가장 악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가장 선한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처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 씀씀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런 세상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부처입니다.

‘부처’에서 ‘佛’은 범어로 Buddha를 음역한 것으로 ‘깨달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무한한 진리의 실체를 깨달아 다른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분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깨달아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불교의 아름다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절의 구조

- 일주문 : 보통 절 입구에 두세 개의 기둥이 한 줄로 세워진 문으로 절을 나타내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일주문’이란 세속과 출세간을 구분하는 선 긋기와 같은 것으로, 여기에서부터는 출세간임을 알려줍니다. 또한 모든 진리는 하나로 귀결된다는 의미도 들어 있고,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한마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천왕문 : 일주문 지나면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이 있습니다. 33천왕이신 ‘제석천왕’의 명을 받아 수미산의 4방향에서 불교와 선한 사람들을 지키는 호법신들입니다. 동쪽은 ‘지국천왕’이 비파라는 현악기를 들고 지키고, 서쪽은 ‘광목천왕’이 용과 여의주를 들고 지키고, 남쪽은 ‘증장천왕’이 칼을 들고 지키고, 북쪽은 ‘다문천왕’이 탑과 곤봉을 들고 지키고 서 있습니다. 제석천왕에 대한 경전으로는 <제석소문경>이 있습니다.


* 보살의 의미

‘보리 살타’의 준말로, ‘보리’란 ‘Buddha' 즉 깨달음, 지혜를 의미하고, ’살타‘란 ’사트바‘ 즉 아직 못깨달은 생명, 중생을 의미합니다. 결국 ’보살‘이란 깨달음을 구하는 생명있는 존재로서, 누구나 보살의 길로 나아가면 장차 성불할 수 있는 존재를 뜻하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보살‘은 깨달을 능력이 있음에도 이 세상에 머물러 일체 중생을 먼저 이상 세계로 도달하게 만들려는 뱃사공 같은 존재를 뜻합니다. 그러나 절에서 흔히’보살님‘이라고 부를 때는 ’여자 신도‘를 의미합니다.

‘처사’는 흔히 ‘남자 신도’를 가리키는데, 이곳에 계시는 선비라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보살, 처사’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알고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부처다운 삶을 살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본인이 뿌린 것은 본인이 받는 것이 천칙입니다.


* 불교 의미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병들고 늙고 죽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 세상은 대립과 갈등이 많습니다. 나의 허망함을 알면 더 이상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다. ‘나’를 지워나가는 조건이 됩니다. 수행하고 믿고 실천함으로써 참나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내하고 노력해서 잃어버린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불교입니다.


* 부처의 의미

<원시 경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 한 바라문이 부처님께 문안드리고 여쭈었다.

"고타마시여, 어떤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까? 부모가 붙여준 이름입니까? 바라문이 지어준 이름 입니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처는 지나간 과거생을 보시고 그처럼 미래생도 보며

  또한 현재세에 사라지는 모든 것을 다 보며

  밝은 지혜로 모든 것을 환히 알아

  닦아야 할 것을 빠짐없이 닦고

  끊어야 할 것을 남김없이 끊었기 때문에

  부처라고 부르느니라.

  억겁의 세월동안 살펴보아도 즐거움은 잠시요 괴로움만 남으니,

  한번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번뇌망상을 멀리 벗어나 뿌리채 뽑아버려

  세상을 바르게 께달은 이를 부처라 말하느니라!


<조사선>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승님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자 떠나려는 한 제자에게 정식으롤 묻게 한다. 그래서 제자가 3배를 올린 다음, “부처란 무엇입니까?”묻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말합니다. “누더기 옷에서 뺀 실오라기가 부처이니라.” 이 말에 제자는 깨달음을 얻고 스승님을 모시고 살았답니다.

자, 왜 그랬을까요? 이것이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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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의 핵심*


불교의 아름다움

부처님처럼 보통 사람도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생로병사하는 생의 무상함과 허망함을 알아 번뇌 망상을 끊고, 있는 그대로 실상을 밝게 보는 반야 지혜를 깨달은 이가 부처님이다. 누구나 부처의 씨앗을 갖고 있으니, 깨닫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즉, 부처란 번뇌 망상을 끊고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존재이다. 즉 잡생각을 끊고 순간순간 깨어있어 알아차리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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