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둘째주는 불교기초교리강좌를 스님으로부터 받는 날이다. 이 달부터는 기초교리강좌가 끝나면, 불자님들의 친목을 위해 가정방문을 하기로 지난 달에 약속하였다. 이번 달은 첫 방문으로 왕태황 처사님댁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었다. 스님과 함께 가기로 약속하였는데, 스님께서 어제 수술을 받으신 터라 함께 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불교기초교리강좌도 스님 쾌유하실 때까지는 당분간 멈추게 될 것 같다.
스님이 안 계신 절에서 공양주 보살님은 혼자 하룻밤 주무시고는 무섭다고 하신다. 그래도 스님이 계셔야 절이 든든하고 아늑해진다니 중심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알겠다.
스님이 계시지 않아서 테이프로 <천수경>을 들으며 법당에서 옥호광보살님과 절을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3배를 생각했다가, 다시 108배로 늘리고 계속 하다 보니 500배까지 하게 되었다. 절을 하면서 숫자에 집중하였지만, 간혹 몇 년 전 수련회 때 1080배 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여름이기도 하였지만, 계속 절하다 보니 땀으로 온몸이 젖고 방석이 젖었다. 500배도 상당하여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다리도 아파와서 500배에서 멈춘 후에 점심 공양 목탁이 울린다.
삼현거사님의 차로 순천으로 간다. 순천 하나병원 609호실에 입원 중이신 스님을 뵙는다. 지난 밤에 통증이 심하셨다고 한다. 무이성보살님께서 지극정성으로 잘 보살펴주고 계신다. 목포 송태회교장선생님 내외분이 벌써 와 계시고, 얼마 후 박형근 처사님 부부와 왕처사님 부부가 오신다. 스님 빨리 나으시라고 ‘반야심경’을 낭송하였다.
곧 이어 왕처사님 따라 식당으로 옮긴다. 장보살님 내외분도 오셨다. 식당은 우리 학교인 ‘동산여중’과 가까운 ‘시몽관’이란 한정식 식당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러 가지 덕담을 나누기도 하고, 내가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덕담 중에 기억나는 말은, 박처사님 말씀이다. '바람이 많이 불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에 다들 한 마디씩 하였지만, 박처사님 말씀이, 바람 분다고 옷을 더 껴입거나 옷이 날아갈까봐 붙잡을 것이 아니라, 몸을 아래로 낮추면 바람은 무사히 지나간다는 것이다. 바람 불면 억새나 나락이 허리를 숙이는 것과 같이 세파와 맞설 때는 싸우려할 것이 아니라, 내 몸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 불자들의 참된 자세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감하여 박수를 보내드렸다. 그밖에 왕처사님의 ’중도‘이야기, 송태회 교장선생님 내외분의 유머에 다 같이 웃기도 하고, 삼현거사님의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서 산다‘는 말씀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정철 처사님이 읊어주시는 테레사 수녀님의 시에 모두들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하였다. ’미소‘라는 제목의 이 시는 다음과 같다.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세요.
당신의 아내에게
당신의 남편에게
당신의 아이들에게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세요.
그가 누구이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소는 당신으로 하여금 서로에 대한
높은 차원을 갖도록 해줄 것입니다.“
나도 최두석 시인의 ‘미소’를 낭송하였다.
쓸쓸한 이에게는 밝고 따스하게
외로운 이에게는 맑고 평온하게 웃는다는
서산 마애불을 보며 새삼 생각한다.
속깊이 아름다운 미소는 절로 생성되지 않는다고.
생애를 걸고 암벽을 타며 미소를 새긴
백제 석공의 그 지극한 정성과 공력을 보며
되짚어 생각한다.
속깊이 아름다운 미소는
생애를 두고 가꾸어가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미소가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믿은
천 사백 년 전 웃음의 신도여!
그대의 신앙에
내 마음의 진창길에
연꽃 한 송이 피우누나.
식사 후 삼현거사님의 모교인 ‘순천공고’로 산책을 간다. 옛날 순천사범학교였는데, 1963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순천공고’로 바뀌었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역사가 오래된 학교답게 아름다리 고목이 된 나무들이 사람보다 더 의젓하게 세상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나무에 대해서 많이 아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전에 몰랐던 나무들 이름을 많이 알게 되고, 갖가지 종류의 나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끔 점심 시간에 순천공고로 산책을 오지만, 몰라서 못본 것을 오늘 새로이 많이 보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애기동백’이 ‘산다화’라는 것, ‘백일홍’을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른다는 것. 측백나무와 편백나무의 차이점, 처음으로 본 플라타나스의 연두빛꽃송이, 소나무에도 육송, 해송, 금강송, 적송이 있다는 것 등등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플라타너스의 키가 정말 높아서, 그 아래 뿌리의 길이와 넓게 퍼진 정도를 헤어려 보고 다 함께 놀라기도 하고, 등나무가 쇠기둥을 갈래갈래 꼬여서 타고 올라간 모습이 거대한 뱀의 용틀임 같아서 멋지기도 하였다.
배가 어느 정도 꺼지자 왕처사님댁으로 이동하였다. 아파트가 크고 갖가지 빛나고 값진 장신구들로 인해 번쩍번쩍하였다. 작고 아담한 우리 집에 비하면 왕의 집 같다. 우리는 과일과 산수유 차를 마시며 교육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삼현거사님과 옥호광보살님의 자녀교육 사례를 듣고 많은 교훈을 배웠다. 바쁜 가운데도 늘 아이들을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토닥여주며 키웠다는 삼현거사님, 아이들 생일에는 늘 손수 아이들 생일떡이며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껏 차려주었다는 옥호광보살님 말씀에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아이들 생일떡은 커녕 정성스럽게 제대로 생일상을 차려준 적이 별로 없다. 늘 간단히 음식을 마련한 것으로 끝내곤 하였다. 아쉽다. 좀더 내 아이들에게 정성을 들여 키울 것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정처사님이 ‘아이들은 이성적으로 지도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먼저 접근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이 간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부모도 인간이니 늘 실수를 하며 배우면서 자녀를 키워왔다. ‘벼들은 농부의 정성을 먹고 자란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도 부모의 정성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 내 정성에 비해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잘 자라주고 있으니 정말 고맙다. 다시 아이를 낳는다면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한 번 지나간 시간을 어찌 되돌릴 수 있겠는가! 현재 내가 맡은 학생들이나 더 이상 후회되지 않도록 잘 키우고 가르쳐야겠다.
마지막으로 옥호광보살님의 단소소리도 좋았다. 늘 직장일로 바쁘면서도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고 단소까지 배우면서 제석사 일에도 열심이면서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감싸안아주시는 옥호광보살님의 삶의 자세는 늘 내게 감동을 주신다.
오늘 모임에서 뜻이 같은 분들끼리 모이니 대화도 잘 통하고, 음식도 맛있고, 여러 가지 배울 수 있어서 즐거웠다. 모임이 끝난 후에 스님께 다시 가서 인사 드리고, 순천에서 광주로 돌아왔다. 삼현거사님께서 안전하게 운전하는 동안 내내 잠만 자고 왔다. 내릴 때 고마움과 미안함 마음이 뒤섞인 채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