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출가하기 이전에 싯다르타 태자였으며,
궁중에서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셨다.
많은 시녀들로 둘러싸여 삼시전(三時殿)에 머물면서 감각적인 욕망을 즐기기도 하셨다.
또, 출가하셔서는
일마일맥( 一麻一麥 : 깨 한알과 쌀보리 한알 )으로 6년간 극단적인 고행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얻은것은,
다만 육체를 괴롭힌다고 해서 진리에 도달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셨다.
다시, 약간의 우유죽과 약간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몸을 추스리고 마음을 추스려 7일간 정진精進 끝에
대우주의 진리를 완전하게 터득하고
모든 욕망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大해탈인이 되셨다.
즉, 부처를 이룬것이다.
이것을 줄여서 말한다면,
양극단을 피해서 중도中道 를 걸어가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道를 깨달은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적인 삶은,
다른사람에게 불편함을 주면서까지 내자신이 꼭 맑게 바르게 산다고 자랑하거나
내세우며 살아서는 안 될 것이고
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주어진 환경에서 적정수준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서
그 적정수준을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좀 어렵지만...)
이것이 곧, 적지도 많지도 않는 중도中道 중용中用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성인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고
또, 금강경에는 '머무는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리비아의 카다피같은 지도자도 처음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몸을 투신하고 아끼지 않았지만,
자기가 선한일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내세우거나 장기집권을 함으로 인해서
나도 알고 남도 알게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고
좀 좋은일을 했다는데 머물렀기 때문에 문제는, 오버페이스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은 좋았지만, 중간과 끝이 좋지 않은 하나의 사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속에서 쓰러져갔다.
우리는 '나'의 한계상황과 능력이 어디까지인가를 깊이 관찰하면서 살아가고
늘 깨어있다면, 어떤 범주가 나의 능력이며 한계상황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현실적인 대안이며,
이것이 곧 현실적인 道인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는 우리주변에 절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이 있다.
또, 적절한 공통분모도 있다.
그것을 꾸준히 실천해가는 것이 현실적인 道이다.
또, 나를 내세운다면 道와는 더욱더 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道는 그런 한계상황에 놓여있지 않고
행하는 바 없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