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의 인간 그때가 1994년. 난 대구에서 바쁘게 의사직을 소화하던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친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그 연구소는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서 경제 문제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연락 이유는 주말에 있는 한 강연에 참여해 보라는 것이다. 난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의사직을 맡은지 오래 되지 않아서 너무나도 바쁘던 때라 거절하려 했지만 "너 진짜 안오면 후회한다~!" 라는 친구의 말에 강연에 참석해 보기로 했다. 혼자서 거기에 가기는 그렇고 이제 막 MBA를 마치고 백수로 지내던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이윽고 우리 둘은 서울에 올라와 강연에 참석하게 되는데 강의가 열린 그 경제연구소는 대단한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차 있던 곳이었다. 강연을 추천해 준 친구와 함께 우리 셋은 강연장의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앉아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강의자가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지 않은가?. 머리엔 뉴욕 양키즈 모자, 상의는 보스턴대학교의 로고가 찍힌 후드티, 하의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 뿐이 아니라 강연내용은 더욱 기가 막혔다. 칠판에다 W란 글자를 3개 쓰기 시작 하더니 미래는 바로 이것에 모두가 W를 사용할 것이고, 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될 것이다. 은행도 W가 들어올 것이며, 심지어 전쟁도 W를 통해서 할 것이다. 그 당시엔 정말 터무니 없는 말들만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 말들은 실현이 되었고 그것이 월드 와이드 웹 : www 이다.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 차있던 강연장이었기에 결국 그런 터무니없는 강의 내용에 하나둘씩 빠져나가더니 결국 강의가 끝날 즈음엔 강의실은 텅 비었고 맨 뒤에 자리잡은 우리들 3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옆에 강연의 사회를 맡던 사람도 어이가 없었던지 멍하니 강의자가 돌아가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결국 강연을 소개해 준 친구에게 "너는 이걸 보라고 나를 대구에서 여까지 불렀나" 라고 핀잔을 주었고, 그 친구 역시 매우 미안해 했다. 그런데 함께 왔던 백수 친구는 우리와는 다른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그 친구는 나에게 "10만원 있나?." 라고 묻더니 그 강연자를 곧 죽어도 만나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친구는 돈을 빌려서 강연자가 주차장으로 가는 걸 붙잡았다고 한다. "저는 W를 믿습니다. 당신과 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 후에 들은 얘기로는 새벽 3시까지 그 강연자를 술자리에서 안놓아 주었다고 한다. 결국 그 강연자는 다음 해에 6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4년 뒤에는 총자산 2조 6천억원의 큰 기업가가 된다. 결국 강연에 대한 큰 실망감과 아쉬움만을 가지고 다시 병원으로 내려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일이 바빠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던 때 였는데 예전의 그 백수 친구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그 친구는 여전히 W의 존재를 믿고 있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니 첫월급 탔제?. 나 돈좀 빌리도!!." 백수인 친구가 빌려달라는 돈이기에 어차피 못받을 생각에 관계를 끊을까 란 생각까지 하며 돈을 빌려 주었고, 그는 그 돈으로 사무실을 차리겠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1개월 쯤 뒤. 또다시 그 백수 친구에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난 곧바로 말했다. "야!!. 나 돈 없다~!." 그러나 그 친구는 돈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돈도 시간도 안드는 것이니 부탁 한 가지만 하자고 했다. 그리고 친구는 자신이 컴퓨터로 편지를 쓰는 사업을 시작했다며 자랑스레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정색을 하며 물었다. "세 가지만 물어보자. 너 최근에 편지쓴 적 있냐?. 그런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일년에 편지를 두 통도 쓰지 않는다. 그래!!. 좋아!!. 만에 하나 니가 하루에 편지 3통 쓰는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50원이면 우표를 사는데 누가 컴퓨터로 일일이 편지를 보내겠냐?. 그리고 편지라는 것은 육필로 써야 진정한 편지라는 거다. 이 친구야. 나의 기준과 나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지극히 상식적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빌려준 돈은 어차피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 친구의 부탁은 일단 들어주기로 하였는데 친구는 나에게 아이디를 하나 만들어야 된다고 하였고, 그게 뭐하는 건지도 모르는 나는 "appendix"로 하겠다고 했다.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하하. 오!. 참고 문헌?. 목차?. 역시 넌 철학적인 놈이야~!." 하지만 사실 appendix는 의학용어로 ’맹장’을 뜻한다. 나는 이 친구를 가만히 놔두면 생명까지 위협하고, 잘라버리자니 배를 째야하는 그런 곤란한 맹장(?)’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대한민국 첫 번째 이메일 계정은 바로 이 "appendix" 가 된다. 당시 전용선은 병원, 정부기관, 대기업 등 각계 기관들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이메일 계정으로 동창회 소식을 알리는 메일(?)이란 놈이 한통 왔다. 너무나도 신기한 나머지 읽고 또 읽어 보았고 답장도 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창회 180명에게 동시에 편지를 쓰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고 병원 동료들에게도 이 이메일(?) 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어떻게 가입하는 것까지도 알려주었다. 결국 그 백수 친구가 시작한 사업은 1년에 250만명의 사용자를 유치했고, 나중에 600억원에 골드만 삭스라는 회사에 매각하게 된다. 그 친구는 현재 포스코 건물이 있는 테헤란로에 2개의 빌딩을 가지고 있고, 4개의 벤처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때의 그 "WWW" 강사는 Daum(다음)의 이 재웅 대표이고, 그 백수 친구는 나라비전의 한 이식 대표이다. 소유의 종말, 엔트로피, 수소혁명 등 여러 유명한 책을 쓴 과학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말했다. 세상에는 0.1%의 창의적인 인간이 있다. 이들을 따르는 통찰력과 직관을 지닌 0.9%의 우수한 인간이 있다. 이들이 바로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을 이끈다. 그리고 나머지 99%의 인간에 대해서는 ’잉여인간’이라 말했다. 그말이 맞다면 그 백수는 0.9%의 우수한 인간이었고, 그 WWW 강의자가 바로 0.1%의 창의적인 인간이었던 건가?. 그렇다. 누군가는 정보와 기회를 말도 안된다며 아무렇지 않게 비웃고 흘려 보내지만 누군가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기회로 발판 삼아 인생의 도약을 시도한다. 과연 나는 0.1%의 창의적인 인간일까?. 아니면 0.9%의 우수한 인간일까?. 아니면 나머지 99% 잉여인간일까?. 나는 어디에 속하는 인간인가?. = 톡으로 받은글 편집 = 漢陽 J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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