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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락(獨樂)

작성자漢陽 Jun.|작성시간24.09.05|조회수545 목록 댓글 0



독 락(獨樂)

​늙는다는 것은 분명 서러운 일이다.
늙었지만 손끝에 일이 있으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쥐고 있던 일거리를 놓고
뒷방 구석으로 쓸쓸하게 밀려나는 현상을
‘은퇴’라는 고급스런 낱말로 포장하지만
뒤집어 보면 처절한 고독과 단절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은퇴는 더 서러운 것이다.

​방콕이란 단어가
은퇴자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그들을
화백(화려한 백수), 불백(불쌍한 백수),
마포불백(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등으로 나누고 있다.

​화백이든 불백이든 간에
마음 밑바닥으로 흐르는 깊은 강의 원류는
‘눈물 나도록 외롭다’는 사실을 한 치도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화백도
골프 가방을 메고 나설 때 화려 할 뿐이지
집으로 돌아 오면 심적 공황상태인 방콕을 면치 못한다.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지속적인 노동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제 진 태양은 오늘 다시 떠오르지만,
은퇴자들은 어제도, 오늘도 갈 곳이 없다.

​이럴 때마다
다산 선생의
'독립'이란 시를 기억하며
혼자 웃는다.

대지팡이 짚고 절간에나 노닐까 생각다가
그냥 두고 작은 배로 낚시터나 가 볼까 생각하네.

​아무리 생각해도
몸은 이미 늙었는 데
작은 등불만 예정대로 책 더미에 비추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방콕이 독락(獨樂)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 된다.

​영화나 책을 둘이 나란히 앉아서 본다고
두 사람이 함께 보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내 것을 보고
너는 네 것을 볼 뿐이다.

그래서
생애도 혼자서,
죽음도 홀로 맞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모두 홀로이다.
태양이 그렇고, 하느님이 그러하다.

​태양에 암수가 없고,
아버지 하느님과 어머니 하느님이
함께 계신 것이 아니다.

​온리 원(Only one)이란
고독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알게 해 준다.

​경주 안강의 자옥산 기슭으로 낙향한
회재 이 언적 선생도
독락당을 짓고
인고의 7년 세월을 외로움과 함께 버텨 냈다.

사무치도록 외로웠기 때문에
담을 헐어낸 자리에 살창을 끼워
계곡의 물소리를 눈으로 들으면서 세월을 보냈다.

​조선조 초의 학자 권 근의 '독락당기'를 보면
홀로의 즐거움이 일목요연하다.

​봄꽃과 가을달을 보면 즐길 만한 것이지만
꽃과 달이 나와 함께 즐겨 주지 않네.

​눈 덮힌 소나무와 반가운 빗소리도
나와 함께 즐기지 못하니
독락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글과 시도 혼자 보는 것이며
술도 혼자 마시는 것이어서 독락이네.

​옛 선비들의 독락에는
다분히 풍류적인 즐거움이 서려 있지만,

오늘의 백수들이 곧잘 읊조리는 방콕에는
궁상과 자탄이 한숨처럼 배어 있다.

​강산과 풍월은 원래 주인이 없고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이라고 했다.

​홀로 독락을 못 즐길 양이면
풍월의 주인이라도 될 일이다.

풍월 주인은
정년도
없고 은퇴도 없다.

문밖 나서니 갈 곳이 없네'란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자.


​= 톡으로 받은글 편집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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