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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준 시(詩)

작성자漢陽 Jun.|작성시간24.11.24|조회수911 목록 댓글 0


나를 지켜준 시()

시장에서
30년째 기름집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추와 도토리도 빻아 주고, 떡도 해 주고,
참기름과
들기름도 짜 주는 집인데,
사람들은 그냥 기름집이라 
합니다.

그 친구
가게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달력?.
가족사진?.
아니면 광고?.

궁금하시지요?.

빛바랜 벽 한 가운데
시 한 편이 붙어 있습니다.


그 시가
윤 동주의 <서시>입니다.

시장에서 기름집을 하는 친구가 시를 좋아한다니?.
어울리지 않나요?.
아니면?.


어느 날
손님이 뜸한 시간에 그 친구한테 물었습니다.

"저 벽에 붙어 있는 윤 동주 '서시' 말이야.
붙여둔 이유가 있는가?."


으음,
이런 말 하기 부끄럽구먼.

"무슨 비밀이라도?."

그런 건 아닐세.
손님 가운데 말이야
꼭 국산 참깨로 참기름을 짜 달라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우리 아내도 국산 참기름을 좋아하지.

국산 참기름을 짤 때
값이 싼 중국산 참깨를 반쯤 넣어도 손님들은 잘 몰라.
자네도 잘 모를걸.


"ᆢᆢ"

30년째 기름집을 하면서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욕심이 올라올 때가 있단 말이야.

국산 참기름을 짤 때
중국산 참깨를 아무도 몰래 반쯤 넣고 싶단 말이지.
그런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내 손으로 벽에 붙여 놓은 윤 동주 <서시>를
마음속으로 자꾸 읽게 되더라고.


"ᆢᆢ"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구절을 천천히 몇 번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시커먼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30년 동안 시가 나를 지켜준 셈이야.

저 시가 없었으면
양심을 속이고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하하하.


그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분들과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톡으로 받은글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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