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國의 文學敎育
- 評價를 통한 言語와 文學의 透視 -
金 大 幸 (서울대 교수)
Ⅰ. 英國을 말하는 까닭
영국의 교육은 영국의 교육이고, 한국의 교육은 한국의 교육이다. 영국은 자기네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하여 자기네 역사와 현실을 바탕으로 교육을 설계하고 실천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우리의 것을 바탕으로 그렇게 한다. 동어 반복일 따름인 이런 전제가 새삼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지난날 우리는 외국의 사례나 방법을 선진국의 그것이라 하여 많이 본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 개발중인 우리의 제7차 교육과정만 해도 영국의 틀을 본보기로 그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영국과 한국은 여러 모로 다른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두 나라가 보여주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삶이 지닌 보편성 때문이다. 정치제도의 형식이 나라마다 다르면서도 그 바탕이 되는 정신은 다를 바가 없는 점, 물자의 유통 방식도 그러한 점, 학교교육의 제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이상과 구조는 유사한 점―이런 현상들은 인간과 삶의 기저에 깔려 있는 공통성과 보편성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러기에 서로가 지닌 장점을 본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나쁜 경향까지도 영향을 주고받을 수가 있다. 그러니 남의 일이라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남의 일을 살필 때는 엄밀한 기준이 필요하다. 사는 데 선진국이라고 모든 것이 선진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기반이 공통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를 무시하고 무차별적으로 선진성을 앞세우는 것은 어리석다. 다만 그것이 언어, 인간, 교육의 본질에 합당한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본받을 만한 요소가 있다면, 세상에 제 나라 말을 교육하는 한 예로 삼아 살필 만한 가치는 있다. 영국의 영어교육은 저들의 일이며, 한국의 국어교육은 우리들이 하는 일이지만,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가 이질적인 언어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눈여겨 볼 필요는 있다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문제를 특히 문학의 위상에 초점을 맞추어 살피고자 한다. 왜 하필 문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가? 그 까닭은 이러하다.
지난 날 우리의 국어교육학계는 문학과 국어교육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두고 뜨거운 논의를 벌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제는 그 논란이 어느 만큼은 정돈이 되었으며, 국어교육에서 문학을 배제해도 좋다는 견해는 수그러들었다고 하겠지만, 국어교육에서 문학이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 교육적 역할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는 아직도 어지러움 속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영국이 영어교육 안에서 문학을 자리매김한 방식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이 차이는, 국어교육 영역 구분의 기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이런 점에서도 저들의 방법에 담긴 생각을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영어교육에서 문학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그 교육적 의의와 기능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실로 우연이지만, 서울대학교의 배려로 한 해 동안 영국에 머무르게 됨으로써 이 방면에 가져 왔던 관심사를 저들이 실현하는 방식에 비추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남의 나라 교육에 관련된 문제를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관찰로 속속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해에 그치고 말 우려가 없지 않다. 따라서 살피는 범위를 좁혀서 초점화하기로 하였다. 이 글의 화제를 평가의 문제에 국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가 방식은 교육의 질과 내용을 결정해 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의 경험은 말해 준다. 평가의 의도와 형식이 지닌 힘은 막강해서 때로는 교육과정이며 교과서 등 국가적 문서마저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평가는 그 교육의 실상을 살피는 데 표본으로 삼을 만한 자료가 될 수 있으며, 논의를 이렇게 국한시키더라도 국어교육과 문학의 관계를 살피는 데 충분한 의미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Ⅱ. 英國 自國語敎育의 制度
1. 敎育의 段階 區分
영국은 1990년에 국가교육과정을 개정하고 1995년에 이를 보완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에 따르면 의무 교육인 5세부터 15세까지 11학년간은 네 개의 단계(Key Stage: 이하 KS로 약칭)로 나뉜다. 1단계가 5-7세의 2년간, 2단계는 7-11세의 4년간, 3단계는 11-14세의 3년간, 4단계는 14-16세의 2년간으로 되어 있다. 11년간의 교육이 끝난 뒤 대학에 진학할 사람들은 선발에 의하여 다시 2년간의 과정을 거친다. 이를 A(dvanced)-level이라고도 하고 sixth-form이라고도 한다.
각 단계에서 학습하는 교과목으로는 KS1-2에서 영어, 수학, 과학, 테크놀로지(디자인과 테크놀로지, 정보와 테크놀로지), 역사, 지리, 미술, 음악, 체육, KS3에서는 위의 과목에 외국어를 추가하고, KS4에서는 영어, 수학, 과학, 외국어와 테크놀로지 또는 체육이 부여된다. 국가교육과정은 11년간 4단계의 교육 내용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A-level에서공부할 과목이나 그 구체적 내용은 진학할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단계에서 교과목이 세분화된다. 예컨대 과학을 물리, 화학, 생물 등으로 세부적으로 나누어 가르치는 것은 A-level에서이다.
2. 敎育課程의 構造
영국의 국가교육과정은 전과목에 공통되는 지침을 밝힌 뒤에 교과별로 진술한다. 영어는 먼저 총론격으로 일반 지침(General Requirement for English: Key Stage 1-4)을 제시한 다음, 각 단계별로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각 영역의 내용은 1.범위(Range), 2.주요 기능(Key Skill), 3.표준영어와 언어학습(Standard English and Language Study)의 세 부문으로 갈라 기술하였다.
범위에서는 이야기하기, 아이디어 개발하기, 일을 기술하기 등과 같은 활동의 종류를 제시하고, 듣는 사람을 달리하여 말하기, 듣는 사람의 규모를 달리하기 등과 같이 활동의 조건들을 구체화하는 경향이다. 읽기라면 읽어야 할 자료를 규정하기도 하고, 쓰기라면 쓸 양식이나 대상을 규정하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활동의 범위를 계열화하여 진술하고 있다.
주요 기능에서는, 말하기에서 명료성, 유창성, 흥미성을 갖춘 말의 중요성을 안다든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말하며, 말할 내용을 조직하고 그에 꼭 맞는 말을 선택하기 등 그 단계에서 습득해야 할 주요 능력들을 열거하고 있다. 축어적 수준을 넘는 의미, 언어의 선택과 양식이 내재적 외재적 의미에 끼치는 영향 등과 같은 언어 활동에 필요한 능력적 요소를 기술하고 있다.
표준영어와 언어학습은 표준영어의 구조, 어휘, 문법, 언어 변화 등과 같은 지식과 이해의 항목, 그리고 구어와 문어의 차이, 문장 간에 응집력을 갖추어 문단 쓰기, 언어의 사용과 선택에 관한 토론을 통해 어휘에 대한 관심 기르기 등 문법적 지식과 언어 활동에 필요한 지식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 부분은 교육과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매우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던 부분이며, 또한 우리의 국어교육에서 언어 영역의 성격을 생각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다시 각 영역별로 성취목표(Attainment Target)가 예외적 수행 수준까지 합쳐 모두 아홉 항목으로 나뉘어 기술되어 있다. 말하기/듣기의 성취목표를 예로 들어 본다.
<수준 1>
직접적 관심사에 대해 말한다. 남의 말을 듣고 적절히 반응한다. 간단한 의미를 여러 유형의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며, 알아듣게 말하고, 생각이나 이야기에 구체성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수준 2>
말하고 듣는 데, 특히 관심을 끄는 화제일 때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때때로 듣는 사람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구체성을 갖추어 말한다. 생각을 전개하고 설명하는 데에서 명료하게 말하고 어휘의 확장을 보인다. 남이 하는 말을 항상 주의 깊게 들으며,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수준이 높아진다. 어떤 상황에서는 보다 공식적인 어휘와 어조가 사용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수준 3>
생각을 해 내고 소통하는 데 여러 가지 다른 상황에서 자신을 가지고 말하고 듣는다. 토론에서 주요 쟁점을 이해한다. 유관한 논평과 질문을 함으로써 주의 깊게 들었음을 보인다. 어휘 사용과 구체화의 수준을 달리함으로써 듣는 사람의 욕구에 적절하게 반응하게 시작한다. 표준 영어에 대하여 인식하고, 언제 그것이 사용되는가를 깨닫기 시작한다.
<수준 4>
말하는 상황이 다양해져도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고 듣는다. 말하기가 목적에 부합한다. 즉, 사려 깊게 생각하고, 일을 기술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명료하다. 토론에서는 주의깊게 들어 조력도 하고 질문도 함으로써 남의 생각이나 관점에 적절히 반응한다. 표준 영어 어휘와 문접적 특징을 인식하고 웬만큼 사용한다.
<수준 5>
공식적인 말하기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상황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고 듣는다. 표현과 어휘를 변화시킴으로써 듣는 사람의 흥미에 적합한 말을 한다. 토론에서는 남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질문을 하고, 남의 관점을 고려하여 조력도 한다. 공식적 상황에서는 표준 영어를 쓰기 시작한다.
<수준 6>
여러 가지 상황적 필요성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말하고 자신감이 점차 증대된다. 어휘와 표현의 다양성을 구사함으로써 듣는 사람의 흥미에 부합하게 말한다.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남들의 생각과 감각에 대한 이해를 보인다. 공식적 상황에서는 언제나 표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수준 7>
여러 가지 상황적 필요에 부합하게 말함하는 데 자신감이 있다. 어휘를 엄밀하게 사용하며 명료한 의사 소통이 되게 말을 조직한다. 토론에서는 남의 생각을 평가하고 참여하는 시기와 방법을 적절히 함으로써 의미 있는 조력을 한다. 필요한 상황에서는 표준 영어를 사용하는 데 안정감을 보인다.
<수준 8>
여러 가지 상황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말하기를 전개한다. 적절한 어휘와 억양 및 강조법을 사용함으로써 말을 명료하게 만든다. 토론에서 분별력 있게 듣고 감각 있게 토론을 발전시킴으로써 폭넓은 기여를 한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표준 영어를 사용하는 데 안정감을 보인다.
<예외적 수준>
여러 가지 상황에 적합하게 말의 짜임, 문체, 음역을 선택하여 사용하고, 여러 가지 목적에 따라 어휘와 표현을 자신 있게 달리한다. 여러 가지 감각 있는 발언을 함으로써 토론을 이끌어 내고 전개시킨다. 토론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다양하고 복합적인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한다. 여러 가지 다른 목적과 상황에서 표준 영어 사용에 확실성과 유창성을 보인다.
이상의 아홉 단계는 영어교육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말하기/듣기의 목표인 셈이다. 이러한 수준 배열은 영어교육의 전과정이 철저히 位階性에 의해 설계되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저학년은 낮은 수준을, 그리고 고학년은 높은 단계를 성취목표로 삼는다. 단계에 따라 성취해야 할 표준은 다음과 같다.
KS2가 수준 2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5-6세의 2년간 교육을 받은 학생이 도달할 능력 수준으로 2가 표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하위인 1의 수준인 학생도 있고, 우수한 학생은 3의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2년간의 교육을 같이 받은 학생이라도 그 능력의 수준에 따라서 1-3 등급 안에서 상위(high-tier)와 하위(low-tier)로 구분하여 각기 다른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현재 개발중인 우리의 제7차 교육과정이 수준별을 지향하게 된 것은 이러한 구조를 본뜬 것으로 보인다.
또 이 표가 보여 주듯이 KS4는 이 수준표의 적용을 받지 않고 별도로 GCSE의 채점 기준표가 마련되어 있으며, 진학반인 A-level도 역시 마찬가지로 별도의 기준이 부여된다.
3. 試驗의 種類
이러한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학습한 결과는 개인별로 평가된다. KS1-3은 국가시험(National Test)에 의하여 일제히 치러지며, KS4가 끝나는 학생은 GCSE(General Certificate for Secondary Education)라는 시험을 치르는데, 이 시험은 각 지역의 지정된 기관이 주관한다.이 시험의 결과는 득점에 따라 A*-10, A-9, B-8, C-7, DEF-6‧5, G-4, U-3‧2‧1로 나누어 등급이 매겨지는데, 이 등급을 매기는 채점 기준은 따로 제시되어 있다. 읽기 영역의 채점 기준을 보기로 한다.
<4등급>
ⓐ뜻을 잘 드러내면서 유창하게 읽고, 여러 유형의 친숙한 문학 작품에 대하여 자신감을 보인다.
ⓑ이야기나 시작품을 다양하게 읽고 그에 대하여 말하는 데 좋은 점을 발견하는 능력을 보인다.
ⓒ이야기, 시작품, 비문예문, 기타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추리, 연역, 이전 독서 경험을 사용하여 읽는 능력을 개선해 보인다.
ⓓ분류표, 목록, 데이터베이스 등을 이용하여 잡지나 도서를 찾고, 조사할 때 적절한 방법으로 정보를 찾는다.
<5등급>
ⓐ자신이 읽은 이야기와 시작품에 대한 말하기와 쓰기에서 좋은 점을 설명하는 능력을 보인다.
ⓑ허구물, 시, 비문예문, 기타에 대한 말하기와 쓰기에서 자신의 관점을 수립하고, 글에 있는 구체적 자료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입증해 보인다.
ⓒ토론에서 비문예문과 매체 자료에 제시된 것이 사실인지 의견인지를 분간할 수 있음을 보인다.
ⓓ자신이나 남의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참고서와 기타 정보 자료를 선택하고 방법을 구안한다.
ⓔ작자의 특수한 단어나 구절 등의 선택이 독자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차리고 있음을 보인다.
<6등급>
ⓐ다양한 소설과 시를 읽고 구체적 자료를 통해 그 작품의 좋은 점을 말하거나 글로 쓴다.
ⓑ문학, 비문학, 기타에 대하여 이야기하거나 글을 쓰면서 자신의 관점을 개발하고 글 속에 있는 근거를 들어 뒷받침할 수 있음을 보인다.
ⓒ토론이나 글쓰기를 통해 비문예문이나 매체 언어에서 다룬 것이 사실인지 의견인지를 판별해 내는 방법을 적용하여 분간한다.
ⓓ주요 핵심을 명료하게 하는 데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며, 다양한 참고자료를 찾아 낸다.
ⓔ독서에 대한 토론에서 말의 용법과 의미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을 알며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7등급>
ⓐ20세기 전의 것을 포함하여 소설, 시, 비허구적 문예문, 극본 등을 읽고 어느 것을 왜 좋아하는지를 구체적 근거를 대어 말 또는 글로 설명한다.
ⓑ문학과 기타 글에 대하여 말하고 쓰며, 개인적 반응의 증거를 제시하고, 작자의 접근 방법에 대한 이해를 보인다.
ⓒ비문예문, 매체언어 등에서 정보, 규정, 확인, 설득을 위한 표현상의 특징을 알아 낼 수 있음을 논의를 통해 보여 준다.
ⓓ다양한 참고 자료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독자적으로 찾고, 보완하며, 조합한다.
ⓔ음성 효과와 그 밖의 문학적 장치를 작가가 사용했음과 그것이 독자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 내는 것을 논의와 글쓰기를 통해 보인다.
<8등급>
ⓐ20세기 전의 문학을 포함하여 여러 범위에 걸쳐 소설, 시, 비허구적 문예문, 극본 등을 읽는다.
ⓑ문학 기타의 텍스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쓰며, 개인적 반응의 증거를 대고, 작가가 사용한 장치와 구조에 대한 이해를 적절하고 구체적인 참고자료를 통해 보인다.
ⓒ비문예문과 매체언어에서 정보, 규정, 확인, 설득을 위한 표현상의 특징에 대하여 심사숙고된 의견을 갖는 능력을 논의와 글쓰기에서 보인다.
ⓓ여러 가지 참고자료에서 독자적으로 정보를 식별하여 선정, 보완, 평가한 다음 이를 조직한다.
ⓔ읽기의 과정에 관계되는 영문법의 시대적 변화에 대하여 논의하고 쓴다.
<9등급>
ⓐ20세기 전을 포함하여 소설, 시, 비허구적 문예문, 연극 등을 다양한 범위에 걸쳐 읽는다.
ⓑ문학과 기타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 반응을 뒷받침할 구체적 근거를 대며, 작자가 사용한 특별한 고안과 구조를 이해함을 보이고, 그 텍스트 안과 다른 텍스트와의 비교를 할 줄 안다.
ⓒ비문예문과 매체 텍스트에 나타난 표현의 방법과 관습을 알고, 그 용법의 정보적 효과에 대한 판단을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보인다.
ⓓ여러 가지 참고 자료에서 독자적으로 정보를 식별해 내고 선정, 보완, 평가, 조합하여 정보의 효율성을 높인다.
ⓔ문학의 언어에서 어휘와 문법의 효과적 사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을 보인다.
<10등급>
ⓐ20세기 전을 포함하여 소설, 시, 비허구적 문예문, 극본 등을 다양한 범위에 걸쳐 읽는다.
ⓑ문학과 그 밖의 텍스트에 대하여 개인적 반응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고, 작자가 사용한 방법과 구조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이고, 텍스트 내의 다른 부분이나 다른 텍스트 간에 비교를 해 보임으로써 설득력 있고 지식을 바탕으로 한 말하기와 글쓰기를 한다.
ⓒ토론과 글쓰기에서 비문예문과 매체 텍스트의 표현 기교와 관습을 평가하는 능력을 보이고, 그 용법의 효율성을 평가한다.
ⓓ여러 가지 참고 자료에서 독자적으로 정보를 식별해 내고 선정, 보완, 평가, 조합하여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정보 사용이 되게 한다.
ⓔ토론이나 글쓰기에서 언어 변화에 대한 사회의 여러 가지 태도, 언어 사용의 적절성과 정확성에 대한 생각 들에 대한 이해를 보여 준다.
이 기준은 물론 교육과정의 요소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겠지만, 동일한 평가 요소의 등급별 차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러한 채점 기준은 평가의 정확성을 위해서도 필요하겠지만, 교육 내용을 구체화하는 데도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준별 교수-학습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단계와 영역마다 이러한 기준의 작성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GCSE에서 성적 총점이 C등급 이상은 되어야 A-level로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 통념이 되어 있으며, 그 수는 전체 학생의 절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 2년간의 A-level을 마친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하여 다시 A-level 시험을 치른다. 이 시험은 AEB(Associated Examining Board), Cambridge대학, London대학, NEAB(Northern Examinations and Assessment Board), Oxford대학, 북아일랜드, 스코트랜드, 웨일즈 등 대학과 지역 기관이 주관하는데, 이 시험에 응시하여 평가받은 결과를 가지고 희망하는 대학에 원서를 내고, 그 대학의 판단에 따라 서류 전형만으로 혹은 면접을 거쳐서 또는 그 대학에서 요구하는 필기 시험을 추가로 치르기도 한다.
각 단계에서 치르는 전국적인 지필시험 과목은 다음과 같다.
Ⅲ. 英國의 各種 試驗과 文學의 位相
1. Key Stage 1 (7세)
1단계 학생은 그 교육이 끝나는 해 5월경에 독해(Reading Comprehension), 철자(Spelling), 쓰기(Writing Task), 읽기(Reading Task)의 시험을 치르는데, 평가는 학교 수업 시간에 담당 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채점 역시 교사가 한다. 독해와 읽기의 자료로는 이야기(story)나 편지 혹은 그림을 곁들인 이야기 등이 제시된다. 그리고 쓰기에서는 이야기나 뉴스를 만들라는 요구가 주어진다.
1996년도에는 독해 문제로 한 페이지 분량의 이야기 자료와 정보 자료를 주고 선택형으로 답하는 문제와 글로 써서 답하는 문제가 제시되었다.
<읽기 문제>
* 수준 2: 놀라움 - 이야기 자료
윌리엄은 매우 신이 났다. 방학이었는데, 어머니께서 여행에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윌리엄의 친구도 함께 갈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친구들한테 우리가 어디로 갈 건지는 말하지 말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우리 그걸 놀라움으로 만들자꾸나!”
‧어머니는 윌리엄을 어디에 데리고 가려고 하는가?
( ) 여행 ( )가게 ( )학교 ( )치과
‧누가 함께 갈 수 있는가?
‧무엇이 놀라운가?
‧시작 부분에서 누가 놀라움에 대해 알았는가?
* 수준 2: 위험 - 정보 자료
기관차 운전사는 다른 기차를 살피기 위해 내다보아야 한다.
어둡거나 안개가 끼어 있을 적에는 이것이 매우 어렵다.
이따금 기관사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서 충돌 사고가 생긴다.
‧기관사는 무엇을 내다보아야 하는가?
* 수준 3: 이야기와 정보
세상을 정복한 당나귀(이야기 자료), 당나귀에 대해 알아보기(정보 자료)
‧당나귀는 왜 적을 향해 달려갔는가?
‧이 이야기의 몇 부분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쓰라.
‧당나귀는 무슨 일을 하는가?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당나귀의 모습을 그린 두 단어를 쓰라.
‧야생 당나귀는 어디에 사는가?
대체로 이런 유형의 문제들이 출제되는데 절반은 선택형이고 절반은 써서 답하는 문제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야기 속의 인물, 글 전체에 산재하는 정보와 단어의 의미에 대한 앎을 바탕으로 해야 답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답을 쓰는 데 추리의 근거, 논리적 추론, 개인적 반응을 드러내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위의 문제에서 ‘웃기는 부분’에 대하여 쓰라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읽기 자료로는 허구적 이야기와 정보적 비문예문이 반반인데 교육 현장에서는 이야기가 주로 선택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평가는 물론 교수-학습에서도 보편적인 경향인 듯하다. 이 점은 런던 시내 45개 학교의 읽기 교육을 조사 분석한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사용하는 읽기 자료로 허구적 산문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 그 점을 확인하게 해 준다. 영어교육에 관계되는 자료의 곳곳에서 광범하게 글을 읽도록 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은 문학적 전통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읽기, 쓰기와 철자>
‘밤의 동물’과 같은 읽기 자료를 주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story)나 정보적인 글을 쓰도록 하는 문제가 주로 출제된다. 학생들은 허구적인 이야기를 짓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남에게 알리는 내용을 글로 쓸 수도 있고, ‘야간 동물원 안내’와 같은 실용문을 짓기도 한다.
이렇게 써 낸 글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이 평가된다.
‧글의 구조-이야기 전체에 비추어 시작이 적절한가, 일이 전개되는 순서에 맞게 썼는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가는 등의 절차를 갖추었는가, 매듭을 제대로 지었는가 등이 평가된다. 이런 구조의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학작품의 구성과 같은 것에 중점을 두어 지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충고도 한다.
‧어휘, 문장부호, 철자 - 자료로 준 어휘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나쁜 점수를 받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자신의 말’로 글을 쓴다는 것이 기본적인 요건이다. 문장 부호가 제대로 되었는가, 철자가 제대로 되었는가 등이 평가 대상이다. 특히 어휘와 철자를 평가하기 위하여 긴 글에 군데군데 빈 칸을 두어 메꾸는 문제도 출제된다. 1996년도에는 ‘boat’를 ‘boot, bote, bout, bowt....’ 등으로 쓰는 장모음의 단모음화 표기, ‘shout’를 ‘sout’로 쓰는가 하면 ck, ll 등에서 자음의 누락, ‘pitchers’를 ‘pichers’로 쓰는 등 소리나는 대로 써 버리기, ‘net’를 ‘nat’로, ‘friend’를 ‘frend’로 표기하는 등 음운에 대한 인식의 부족 등의 경향이 흔한 오류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시험에서 자신의 반응을 중시하는 경향은 영국의 영어교육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교육과정 자체가 강조하는 바이다. 총론에서만 보더라도 “영어과목은 학생들의 말하기와 쓰기에서 의사 소통을 효과적으로 함은 물론, 말을 이해하며 듣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또한 열성적이고, 반응할 줄 알며, 지식을 갖춘 독자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앞에 제시하고 있다.
이런 대전제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모든 단계에서 반응에 이르는 것이 중시되어 영어교육의 가장 초기 단계이자 학생들의 연령 수준이 아주 낮은 단계에서도 출제의 기본 방향이 되고 있음을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찾으라든가, 주어진 글을 읽고 그것을 소재로 자기 이야기를 쓰라는 것 등은 그것이다.
‘밤의 동물’을 읽고 쓴 글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보인다.
학교에 있는 쥐
나는 너에게 얘기 해 줄 비밀을 가지고 있다. 매일 밤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쥐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학생들이 놔두고 간 것들을 가지고 논단다.
학생의 글이 보여 주듯이 말하기/듣기는 물론 읽기나 쓰기 모든 언어활동을 자신에게 주어진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영국의 영어교육은 이런 방향으로 설계되고 실천됨을 알 수 있다. 반응을 중시하는 이러한 경향은 SCAA의 보고서가 그 분석을 토대로 제시한 교수-학습에 주는 시사점에서도 드러난다.
<읽기>
‧낭독에서 중간 및 최종 장모음과 자음의 발음 방법에 대한 지식 함양
‧글을 읽고 단순히 축어적인 반응을 넘어설 수 있도록 추리와 연역하는 기회 부여
‧교실에서 비문학적인 글을 광범하게 읽도록 더 많은 비문학 책을 비치하고 읽는 방법 교육
<쓰기>
‧글쓰기의 목적에 맞는 쓰기를 하는 데 효과적인 실마리를 찾도록 다양한 글쓰기 상황 조성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직해 내고 결말을 짓는 기회 제공
‧비문학적 글쓰기 기회 확대
‧구조적으로 철자에 안정감을 갖도록 하고, 어휘를 모험적으로 사용하도록 격려
‧철자에서 음성적‧시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도록 단어 구조 지식 확대
‧지난 5년 동안 이룩된 글씨 쓰기의 표준이 유지 개선되고 글씨 쓰기가 무시되지 않도록 노력
2. Key Stage 2 (11세)
수준 2에서부터 5까지가 해당되는데, 이 단계의 기준 성취 수준은 4이다. 과목은 읽기, 쓰기, 철자와 글씨 쓰기의 세 가지이고, 읽기와 쓰기는 각각 45분 안에, 그리고 철자와 글씨 쓰기는 시간 제한 없이 치러진다.
<읽기>
1996년에 출제된 읽기 시험은 자료로 <시계의 기원>이라는 설명문, <해시계 만들기>라는 제작법 안내문, <시간의 고민>이라는 이야기 등 세 가지 자료를 제시했다. 자료의 특징은 시간에 관련된 문예문과 비문예문으로 한 묶음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 자료를 대상으로 내용에 나타난 정보를 찾아 내는 문제에서 시작하여, 글의 구조가 그리된 이유를 묻는 문제, 특정 문장을 고딕체로 표시한 이유를 묻는 문제, 왜 필자들은 정보를 제시하는 데 상이한 방법을 사용하였는가, 이 글들은 9세 아동이 이해하는 데 용이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이르기까지 내용 파악에서 비판적 읽기의 단계에 걸쳐 묻고 있다.
*분야 1
- 다음 질문은 ‘시계와 해시계’에 담긴 정보에 대한 것이다.
1. 읽기 자료 4쪽을 보라. 이 구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시계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1점)
2. 5-6쪽에 나온 시간 헤아리기 부분은 시간의 경과를 보여 주는 네 가지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 네 가지를 쓰라.(1점)
3. 촛불시계와 모래시계는 해시계보다 더 유용하였다. 그 이유는?(1점)
- 다음 질문은 ‘해시계 만들기’에 대한 것이다.
4. a) 7쪽에 있는 해시계 만들기는 목록으로 시작되어 있다. 시작을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1점)
b)문장 안의 어떤 것은 고딕체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1점)
c)'너의 해시계를 해가 비치는 평평한 곳에 놓으라‘와 ’이 모양을 잘라내서 서로 등지게 세우라‘ 중 너는 어느 것을 먼저 하겠는가?(1점)
7쪽에 나온 지시에서 위의 답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1점)
d) 4쪽의 정보는 7쪽의 정보와는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 무엇이 두 글의 차이를 가져오는가?(1점)
e)글쓴이는 정보를 배열하는 방법을 왜 달리했는가(1점)
5. 해시계를 만드는 지시설명문은 9세 어린이를 위해 쓴 것이다.
너는 이 지시설명이 그 나이의 어린이가 이해하기에 쉽다고 생각하는가?
예( ) 아니오( )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밝히라.(3점)
*분야 2
- 이 분야는 ‘시간의 고민’이라는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자료집의 8-14쪽을 읽고, 적당한 것을 고르라.
1. 할아버지 시계가 처음으로 소년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어느날 오후였다. 그 소년이 갖게 된 느낌은?(1점)
행복하고 만족했다, 피곤하고 졸렸다, 귀찮고 화가 났다, 즐겁고 상기되었다.
2. 그것은 그날 오후가 무엇으로 가득했기 때문인가?(1점)
문제점, 놀라움, 슬픔, 고통
3. 소년은 시계가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지만, 시계가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1점)
분침이 움직여서, 실내에 아무도 없어서, 시계는 말할 수 있으니까, 시계가 전에 말한 적이 있어서
4. 그 소년은 시계에게 그날 오후의 엄청난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 글에 나오는 헤리스 부인은?(1점)
이웃, 어머니, 아주머니, 선생님
5. 사실상 그날 오후는 무척 좋지 않았기에 만약 ( ) 소년은 다시 돌아보고 싶었다.(1점)
시계가 그렇게 해 주면, 두 번째는 전보다 낫다면, 10펜스를 찾을 수 있다면, 모두가 나쁜 꿈이라면
6. 놀랍게도 시계는 그 오후로 다시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면 그가 해야 했던 일은?(1점)
시계에게 돈을 지불함. 그 대신 시계에게 다른 오후를 줌. 시계와 함께 자리를 옮김. 두 번째에는 잘 행동하겠다고 약속함.
7. 아무도, 심지어 시계조차도 그 소년이 그날 오후를 다시 겪게 된다면 그것이 이미 겪은 오후와 비교할 때 ( ) 될지 알 수 없었다.(1점)
완전히 똑같게, 보다 낫게, 더 나쁘게, 그처럼 지겹게
8. 결국 이 소년에게 이 일은 어떤 일이 되었는가?(1점)
나쁜, 좋은, 의미 있는, 운 좋은
- 이야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답하라
9. 두번째 오후가 첫 번째 오후와 달라진 세 가지 점을 쓰라.(3점)
- 다음 질문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10. a)그 소년이 다음 수요일 오후를 잃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 까닭은?(1점)
b)너는 그 소년이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정한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1점)
11. 그 소년이 ‘놀랍고 의심스러운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2점)
12. 그 소년의 아저씨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 오후에 즐겼던 세 가지 일을 쓰라.(3점)
- 다음 질문은 이야기를 쓴 방법에 대한 것이다.
13. 그 소년이 아저씨와 함께 그날 오후에 즐겼다는 것을 보여 주는 두 단어를 쓰라.(2점)
14. 작자는 처음 이틀의 오후를 기술하는 데 ‘그리고’로 시작하는 문장을 많이 쓰고 있다. 작자가 왜 이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가?(1점)
15. 그 소년은 삼촌과 함께 즐겼던 재미난 오후를 기억할 수가 없었기에 기분이 나빴다. 그 소년의 나쁜 기분을 보여주는 단어나 구절을 네 개 골라 쓰라.(4점)
16. 시계가 ‘시간의 흐름을 지킬 따름’이고 그 ‘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1점)
- 다음 질문은 이야기에 대한 너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17. 소년은 그의 형과 사이가 좋아졌는가?
( )그렇다 (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야기의 몇 부분을 사용하여 답하라.(3점)
18. 너 자신은 시계를 친구로 삼겠는가?
( )그렇다 (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야기의 몇 부분을 사용하여 답하라.(3점)
19. 소년은 지난 수요일을 돌려달라고 했다. 시계가 그것을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렇다 ( )아니다
무엇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는가? 이야기의 몇 부분을 사용하여 네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밝히라.(3점)
20. 이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읽고 싶다는 흥미를 가지고 있는가?
( )그렇다 ( )아니다
이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게 된, 혹은 좋아하지 않게 된 점이 무엇인지 설명하라.(3점)
배점으로 본 실용문과 문예문의 문종별 비중은 12:38로 대략 1:4정도이다. 그러나 비중보다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설명적이거나 실용적인 문장이라고 지나쳐 버리기 쉬운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쓴 의도와 효과 그리고 그 적절성 및 효율성까지를 묻고 있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성취목표를 설정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것은 그들의 문화를 이루고 있는 사고방식과 관계가 깊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어 이야기를 대상으로는 내용 파악에 관련되는 질문들을 선택형 문제로 묻고 난 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서답형으로 묻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씌어진 방법’과 ‘너의 의견’에 관한 것이다. 전자는 글의 면밀한 분석을 요구하고 있으며, 후자는 분석적 이해를 바탕으로 근거를 들어 자신의 반응을 결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분석적 읽기와 주체적 반응에 중점을 두는 영국 교육의 지향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쓰기>
이야기 쓰기가 세 문제, 정보적인 글쓰기가 한 문제 도합 네 문제를 제시하고 이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쓰도록 하였다. 제한 시간은 45분이고, 별도로 글을 쓰기 위한 계획을 메모할 종이를 주고 답안지는 줄을 그은 종이를 따로 주고 있으며, 15분간은 계획을 세우도록 권하고 있다. 배당된 점수는 35점이다.
[ 이야기 쓰기 ]
1. - 누가 말을 하는가!
읽기 문제에 나온 ‘시간의 고민’이라는 이야기는 시계가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다음 중 하나를 골라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하여 너 자신의 짤막한 이야기를 지으라. (그 아래에 나무, 축구공, 과자 봉지, 곰 인형, 소파―다섯 가지 그림이 제시되어 있다.)
유의사항: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에 대해 말을 하는가
‧누가 말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말하는가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2. 잃을 시간이 없다!
“시간만 더 있다면 모든 일은 잘 될 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잃어버릴 시간은 없다.”
이 생각을 사용해서 짤막한 이야기를 지으라.
유의사항: 다음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이야기에 누가 포함되는가
‧그들은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는가
‧왜 그렇게 시간이 없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3. 가장 긴 하루
‘가장 긴 하루’라는 제목의 글을 쓰라.
유의사항: 다음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이야기에 누가 나오는가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정보적인 글쓰기 ]
<학교의 나날들>
우리 지역 신문이 1996년의 생활에 관한 정보를 담은 타임 캡슐을 만들어 땅에 묻으려고 한다. 이 신문은 11세 난 학생이 다니는 너의 학교에 관계된 품목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학교 생활이 실감나도록 기사문(article)을 쓰라. 너의 글은 생생하고 흥미 있으면서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게 하는 정보를 주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채점은 목적과 조직, 문법의 두 분야로 나누어 점수를 매기는데 전자에 21점, 후자에 14점이 배당된다. 이 중 후자인 문법은 문장표기와 문체의 둘로 다시 나누어 각각에 7점씩을 배당하고 있다.
최고점이 배당된 채점 등급 수준 5+에 해당하는 답안의 구비 조건으로 논의된 사항을 보면 영국의 영어교육이 겨냥하고 있는 목표가 드러난다.
먼저 목적과 조직에서는, 기사문의 관습에 맞고, 중심 문제를 잘 다루었고, 필자의 목소리와 역할을 잘 보이는 서두와, 독자에게 적절하고 설득적인 요약을 하고 있는 결말, 세세한 사항과 전개의 순서가 독자의 흥미를 계속 끌고 있으며, 초점이 적절하며 잘 조직되었고, 학교 생활의 여러 국면이 모두 망라되었고, 문단이 생각의 전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등으로 되어 있다.
또 문장 표기에서는, 문장이 다양하면서도 의미를 명료하게 하고 있으며, 쉼표가 모호성이 없도록 잘 찍혔고, 절과 절 사이의 구분이 분명하며, 긴 문장에서 문장 부호가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등으로 요약되어 있다.
한편 형식에서는 비개인적인 양식으로 문장이 시작되는 등 양식의 선택이 적당하며, 논평에 무게를 싣는 일반화가 적절하고, 채용된 형식성이 일관되게 유지되었으며, 문장과 구조에서 친연성이 있으며, 어휘가 다양하고, 말의 순서가 주제를 전개하고 독자의 흥미를 견지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다 등이 제시되어 있다.
<철자와 글씨쓰기>
시간 제한 없이 하는 문제로 바른 철자를 측정하는 문제는 긴 글에 20개의 괄호를 주어 거기에 알맞는 단어를 써 넣는 형식을 취하고 단어 하나에 0.5점씩으로 배점한다. 글씨 쓰기는 문장을 주고 자신의 글씨로 쓰도록 하여 글씨의 흐름이 매끄럽고, 잘 연결되면서 판독 가능하고 필체가 안정감이 있는 것에 최고 점인 5점을 준다.
3. Key Stage 3 (14세)
수준 5와 6이 성취목표이며 우수한 학생은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수준 8까지도 도달이 가능하다. 시험 과목은 1시간 30분 동안 치르는 ‘읽기와 반응, 쓰기’가 있고, 다시 1시간 15분 동안에 걸쳐 치르는 ‘셰익스피어’라는 과목의 시험이 있다. 이 수준에서 셰익스피어가 등장하는 근거는 교육과정의 범위에서 시, 소설, 희곡을 구체적으로 밝힌 위에 다시 또 셰익스피어의 희곡 두 편 이상, 크리스토퍼 말로우, 버나드 쇼와 같은 주요 작가의 작품 등으로 명시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험 1: 읽기와 반응, 쓰기>
읽기와 반응 그리고 쓰기 과목에서는 세 과제를 해결한다. 두 과제는 주어진 글을 읽고 그에 대하여 반응, 즉 분석하고 비평적인 안목으로 판단하여 평가를 내리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글을 쓰는 것이다. 세 개의 과제가 주제나 소재면에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묶이는 경우도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제시되는 글은 이야기, 시, 광고, 편지, 기사문 등 다양하다.
읽기와 반응 자료 첫번째로 1996년도에는 Helen Thayer의 ‘Polar Dream’이라는 글을 제시하고 다음 두 문제를 출제하였다.
‧필자는 글 속에서 ‘위험’의 감각을 어떤 방법으로 발전시키고 유지하고 있는가?
‧이 글의 필자는 그 자신의 경험에 대하여 사고와 정서가 뒤섞이고 있음을 설명하라.
이 두 문제에 대한 답안지를 분석한 보고서는, 서사적 기술의 효과, 관련된 부분의 인용 등을 통하여 이해력을 보여 주고, 서사에 대한 앎을 드러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사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서술자와 작자를 혼동한다든지, 이야기와 사실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보인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으며, 인용이나 논거의 적절성, 그 추리의 타당성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다른 한 과제의 자료는 사진을 곁들인 유람선 여행 권유 광고 전단이다. 펭귄새가 얼음을 배경으로 서 있고, 물개와 바다새의 사진을 곁들여 그 아래 유람선의 모습까지 적절히 배치하고 기사문투로 내용을 적은 광고를 자료로 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 이 광고는 유람선 여행을 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답에서 다음 사항을 반드시 논평해야 함.
‧사진의 선택과 광고의 배열
‧그곳을 찾아가 볼 만한 곳으로 기술한 방법
‧유람선과 그 장비에 대하여 기술한 방법
‧사람들이 유람선 여행을 가고 싶도록 그 광고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각적 효과를 분석하는 미적 구조의 기준을 알아야 함은 물론, 설득적 언어의 종류와 그 효과를 분석하고 실제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선행한 뒤라야 그 설득의 효과에 대한 비판적 기준을 고려하면서 그 평가에 이를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정확하고 적절한 문장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언어활동이란 그것을 뒷받침하는 지식이 없고 보면 경험만으로는 발전하기 어려운 것임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세 번째 과제는 쓰기에 관계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었다.
사람들은 위험한 운동이나 취미 생활 또는 모험으로 그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가 하면, 나아가 그들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생명마저 위험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런 위험한 활동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
글에는 다음 사항을 반드시 포함해야 함.
‧사람들이 하는 위험한 운동이나 취미의 구체적인 예
‧사람들이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그로해서 생기는 문제들
‧이런 일을 허용하는 데 제한을 두어야 하는지
이 문제의 형식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논술 문제와 흡사하다. 그러나 그 조건이 매우 구체적이면서 넓은 범위를 망라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의견을 제시하기를 요구한 점이 다르다. 이것이 우리나라 학생들의 나이로 친다면 중학교 2학년 수준의 학생에게 요구한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글로 쓰려면 매우 폭 넓은 삶의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쓸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이 시험문제의 답안을 검토한 보고서는 개인적인 관점이 논리적 절차와 구조에 근거하여 전개된 예가 드물었다고 분석은 하고 있지만 그 목표 설정 자체로서만으로도 교육의 높은 수준을 시사해 준다.
<시험 2: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의 작품 가운데서 ‘한여름 밤의 꿈’, ‘쥬리어스 시저’, ‘로미오와 쥬리엣’은 독서 목록으로 지정되어 학교에서 이미 수업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제시된 두 문제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1시간 15분에 답하도록 출제된 1996년도 문제는 다음과 같다.
<쥬리어스 시저 2막 1장 제1행부터 228행까지>
이 장면을 보는 청중에게 흥분과 불안의 느낌을 조성한 셰익스피어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답안을 작성하기 전에 흥분과 불안이 어떻게 조성되는지 다음을 생각하라.
‧음모자들의 회합 장소와 시간
‧부르터스가 한 말
‧음모자들이 행동한 방식
‧다음날에 대한 음모자들의 불안
이 문제는 희곡의 분석 능력을 일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언어의 함축적 의미는 물론이려니와, 이것이 무대에 올려졌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 효과까지를 살펴야만 묻는 바의 해결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 불일치, 기후나 밤중이라는 시간 등을 모두 아우르면서 상황이 추리되고, 이것을 가지고 극적 긴장이라는 점을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작자의 극적 상황 조성 효과를 겨냥한 글쓰기의 분석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수준이 이쯤 되고 보면 훌륭한 비평가의 수준이 되어야만 이런 논의를 펼 수 있지 않을까 싶기까지 하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수준에서 이런 논의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조차 없지 않다. 이 문제의 답안을 분석한 보고서는 학생들의 글이 시간과 장소라는 자연환경과 모임의 관계, 즉 장면에만 주로 눈을 두었으며, 흥분을 조성한 행위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어 역시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출제될 수 있는 그 자체가 교육 수준이나 지표를 이해하는 데 의미를 던진다.
4. Key Stage 4 (16세) - GCSE
국민공통기본교육 기간인 11년이 끝나는 이 단계에서 치르는 시험을 GCSE라 한다. 시험의 목적도, 하위 단계의 국가시험은 국가가 학교교육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데 비중을 더 둔다면, GCSE는 개인의 대학 진학 여부를 결정하는 개인 평가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차이가 있다. 지역별로 따로 설치된 시험 주관 기관에 따라 시험의 내용도 다소간 차이가 있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시험 과목은 영어와 영문학으로 두 과목이다. 교육과정상으로 보면 KS4는 KS3과 함께 처리되고 있어서 이 단계의 특별한 성취목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영문학 과목이 독립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영어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영문학과목을 함께 수강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과목과 영문학과목은 많은 작품이 서로 겹치고, 한 과목의 과제로 두 과목을 수행할 수가 있는 손쉬움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기도 한다.
<영어>
먼저 영어 과목 안에서 두 가지 시험을 치르는데, 하나는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하나는 비문학적인 글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시험 시간은 각각 두 시간 정도가 보편적이다. 대상이 되는 문학 작품 목록은 시험 얼마 전에 시험 관리기관이 지정하여 공개한다. 따라서 사전에 충분한 예습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창작 작문 과제가 추가로 부과된다.
* 시험 1: 사전 예고된 문학 작품과 창작
치르는 이 시험에서는 시험 실시 몇 주 전에 시험 기관이 결정 공고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여기서는 쓰기도 함께 시험을 치른다.
1996년에 Midland 지역에서 출제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단편소설 한 편과 시 한 편을 자료로 하여 출제하였는데, 그 중 상위 수준을 대상으로 한 소설 문제는 Doris Lessing의 ‘Flight’라는 단편을 대상으로 “엘리스, 스티븐, 그리고 루시에 대한 할아버지의 느낌을 기술하고,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그의 느낌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기술하라.”는 것이었다.
한편 하위 수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제는 Ian Strachan의 작품 Flawed Glass와 Stephen Spender의 시 My Parents Kept Me를 읽기 자료로 사용하였다. 소설에 관련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작품 가운데 나오는 ‘쇼나’는 어떤 사람인지, 가능한 한 너 자신의 말로 설명하라. 답에는 다음 사항을 각각 언급해야 한다.
‧그의 신체적 장애와 그가 그 장애에 대하여 갖고 있는 느낌.
‧그의 남자 형제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들이 쇼나를 대하는 데 대한 느낌.
‧그 여자의 느낌을 이해하는 데 특정한 단어나 구절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 설명하는 것을 잊지 말 것.
이러한 문제들은 대체로 이미 독서 목록으로 지정되어 읽은 바 있는 작품과 시험 문제로 나온 또 다른 글과를 비교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 문제로 출제된 Northern England의 문제는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으며 한 시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글의 맨 앞에 “나는 오늘 아침에 분명히 문을 잠갔다....”는 말을 놓고 이 문장을 계속 이어 나가라. 이야기를 지어도 좋고, 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어도 좋다.
-이웃집 차가 도난 당한 날의 일에 대하여 쓰라. 네가 본 것과 느낀 것에 대하여 모두 쓰라. 이것은 실제의 일이라도 좋고 상상이라도 좋다.
-너는 네가 사는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련되었으며, 그 사건은 신문에 커다랗게 보도되었다. 이것에 대하여 쓰라.
하위 그룹의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 가운데 하나를 택해 글을 쓴다.
-네가 누군가를 도와 주었을 때와 누군가가 너를 도와 주었을 때에 대하여 쓰되 다음을 기술하라.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도와 주었는지
‧관계된 사람들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너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쓰되 다음을 기술하라.
‧무엇을 잃었는지
‧그것이 자신에게 왜 중요한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다음은 어느 이야기의 시작 구절이다. “이윽고 밤이 깊었고, 제임스 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걱정을 했다.” 이 이야기를 이어가되 다음을 기술하라.
‧제임스 부인이 왜 걱정을 하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시험 2: 비문예문과 매체 언어
비문예문과 매체 언어를 대상으로 독해와 반응을 측정하는 문제인데, 이것도 역시 응시 수준에 따라 문제가 다를 수 있다. 시험의 자료로는 논설문, 해설, 자서전, 전기, 기행문, 편지, 신문 잡지의 기사 또는 선전 광고문, 보고, 요약, 연설 등 넓은 범위에 걸쳐 다양하게 출제되기도 한다.
1996년 북잉글랜드 지역의 시험은 상당한 길이에 걸쳐 아버지를 회상한 글을 제시한 다음 “주어진 글을 읽고 서술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라는 문제를 내고 있다. 학생들은 한 시간 정도에 걸쳐 읽고 답해야 한다. 완성된 한 편의 글로 써야 함은 물론이다.
낮은 수준의 학생들을 위한 문제로 1994년에 웨일즈에서 출제한 문제는 Deborah Moggach의 작품인 ‘Some Day My Prince Will Come’이라는 자전적인 글의 한 부분을 주고, “작가와 그가 살아 온 삶에 대한 너의 가장 주된 의견은 무엇인가? 그 의견에 이유를 제시하라.”와 같은 문제를 출제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주어진 자료를 읽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주어진 대화 이어 나가기, 자료들을 통해 종합적인 정보 알아내기 등 매우 다양한 문제들이 출제됨을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자료가 가지고 있는 내용을 알아내는 능력을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어진 정보를 찾아 그것을 입체적으로 종합하고 분석하며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판단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반응에 이르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본다. 다음은 그 한 예이다.
* 다음 두 글은 자동차와 운전에 관한 것이다. 이 글들은 오늘날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주의 깊게 읽고 자신이 동의하는 바를 기록해 두라. 그리고는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라. 그 다음에 너는 토론 원고를 쓰게 된다.
-자료 1: ‘자동차 운전의 황금시대는 빛을 잃었다’는 제목의 환경관계 정책 토론 기사
-자료 2: 디젤이라야 할까 디젤이 아니라야 할까
토론은 “어느 집이라도 한 대 이상의 차량은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안을 두고 이루어진다. 너는 그 제안자를 지지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너의 토론 원고를 쓰라.
이 문제가 보여 주듯이, 앞의 자료는 자동차와 관련된 여러 자료, 즉 연료비, 도로 유지비, 자동차 산업, 국가 경제 등 여러 측면의 현황과 견해를 보도한 것이고, 자료 2는 휘발유와 디젤유의 가격과 소모량 등을 차종에 따라 비교해 가면서 제시한 조사 보고이다. 따라서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수험생은 이런 간접 자료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정보를 근거로 찾아 이를 단서로 추리(inference)해 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실용문도 단순히 정보 찾기를 넘어서서 반응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문학>
영문학 과목은 글자 그대로 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한 문제들을 가지고 평가하는 시험이다. 영어 과목에도 문예문을 대상으로 한 시험이 있지만, 영문학 시험은 그보다 심화된 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비평에 이르는 수준을 요구한다. 또 시, 소설, 희곡 등 여러 장르에 걸친 작품이 출제된다.
이 시험의 내용도 주관하는 기관에 따라 그 내용의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비슷하다. 보통 두 시간 동안에 세 문제에 답하는데 하나는 5-6종 정도의 책을 미리 예고하여 공부하게 하고는 그 중 한 책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묻는다. 예를 들면 “맥베스는 악인인가, 연약한 사람인가, 변덕쟁이인가?”같은 것인데, 책을 가지고 들어가 시험을 보므로 욀 필요는 없으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사전에 충분히 작품을 읽어 두어야 한다. 문제는 주제, 사상, 구조, 인물, 플롯, 배경, 분위기, 문체 등에 대한 수험생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때로는 구체적인 부분에 대하여 논평을 요구하는 등의 맥락적 질문도 하는데 어느 경우든지 작품 전체와 관련하여 논의해야 하며, 때로는 두 세 작품을 관련지어 논의하기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작품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 제시한 다음 “이 발췌된 내용에서 상황이 여기에 이르게 한 요인이 무엇인지 기술하라. 이 작품에서 주인공에게 닥친 또다른 위기에 대하여 쓰라.”와 같은 문제가 출제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하여 반응하고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적절한 인용을 해야 하며, 작자가 그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평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관계된 전문가는 충고하고 있음을 본다.
세 번째 문제는 보지 못한 작품을 두고 묻는 것으로, 1996년 웨일즈에서 출제된 문제는 시 작품 전문을 제시하고
* 이 작품이 너에게 끼친 영향에 대하여 쓰라. 다음 사항 전부 혹은 일부를 포함할 수 있다.
‧시의 내용-무엇에 관한 것인가
‧시인이 독자로하금 생각하기를 바라는 생각
‧시에 나타난 분위기
‧씌어진 방법-흥미를 느끼는 어구나 시의 조직 등
‧시에 대한 자신의 반응
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요구하는 답은 어떤 수준의 것일까? 그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보다는 전문가가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주는 충고는 이 점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찌 보면 상식적인 듯하지만, 이 충고의 내용은 문학 작품을 다루는 데 필요한 능력이 작품 분석력, 작품의 내용에 대한 숙지도, 작품과 그 이외의 것들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능력,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논증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능력들을 망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A-level 시험 (18세)
이 시험에 부여되는 과목의 명칭은 영어(English), 영어언어(English Language), 영문학(English Literature), 영어와 영문학(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등 다양하다. 이 과목의 명칭도 주관하는 데서 임의로 정하는 경향이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2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응시하는 것이 보통인 이 시험은 주관하는 기관에 따라서 과목의 명칭이나 분할, 그리고 그 시험의 내용을 결정하는 실라버스들이 약간씩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AEB가 주관하는 시험에는 영어가 없는 대신에 영어와 영문학, 영문학, 영어언어의 세 가지 과목이 설정되어 있는데, 이와는 달리 캠브리지대학이 시행하는 시험에는 영어, 영문학의 두 가지만 있고, 옥스포드대학이 시행하는 시험에는 영문학과 영어와 영문학 두 과목만 설치되어 있다.
과목명이 다르므로 그 내용도 명칭에 따라 다름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명칭이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내용의 조합은 달라도 그 근본 요소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언어라는 명칭과 가까운 과목에는 자료 반응, 음성학, 철자, 어휘, 의미론, 문법, 담화이론, 언어 변이, 언어 변화, 언어 발달, 사회와 언어, 사회 작용과 언어, 텍스트 분석, 청자를 고려한 작문 등 그 내용이 어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그 자료로는 문예문과 비문예문이 모두 다루어진다. 영문학은 셰익스피어, 초서, 시 분석, 드라마 분석, 소설 분석, 문체와 심상, 두 시 작품 대비, 주제, 배경, 문예비평 등 문학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비평적 능력이 주류를 이루고, 자료는 익숙한 고전에서부터 낯선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룬다.
이것을 약간 가감하거나 조정하면 다른 이름의 과목이 된다. 예를 들어 북부 잉글랜드 지역의 시험과목인 영어언어와 영문학을 보면, 시 분석, 드라마 분석, 인물, 언어, 셰익스피어의 무대, 언어 변화, 언어와 사회, 언어 변이, 언어 습득, 음운론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A-level의 시험 과목에서 기둥을 이루는 것은 영어에 관한 어학적 능력과 문학적 능력의 측정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하겠다. 이 두 가지를 측정하기 위하여 주관하는 기관의 지향과 제도적 효율성을 위하여 둘을 함께 과하거나 나누어 하거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수준에서는 어학적 능력과 문학적 능력의 두 계열로 평가가 체계화되는 것이다.
이 중 어떤 과목이 몇 가지 시험을 어느 정도의 시간에 걸쳐 보는가도 한결같지는 않다. A-level에 재학하는 학생은 원칙적으로 세 과목, 많아도 네 과목만 수강하므로 대학별로 요구하는 과목의 수는 이 범위를 결코 넘어서지 않는다. 또한 영어나 문학은 이 계열로 진학하는 학생만이 수강하므로 공통이니 필수니 하는 개념이 없다.
이 시험의 성격을 지적하면서 한 전문가는 GCSE와 대비되는 이 시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A-level에서는 많이 읽고 자기 시간을 자기가 요량하여야 한다.
‧지식의 깊이와 폭이 요구된다. A-level의 한 문제는 GCSE의 열 문제에 해당하므로 자신의 지식을 특별한 문제에 적용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술하라’ 등으로 묻는 GCSE와는 달리 평가하라, 논하라, 비교‧대조하라, 비평적으로 고찰하라, 어느 범위까지 동의하겠는가 등으로 묻는다. 따라서 답도 보다 학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어지는 자료의 어려운 정도가 크게 다르다. 또 A-level에서는 주제, 심상, 도덕적‧정치적 사상, 상징 등 보다 구체적인 선에서 묻고, 묻는 방식도 보다 구체적이다.
이처럼 지적된 특징은 매우 구체적인 문제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언어>
다음은 1996년 시행한 AEB의 영어 문제이다.
* 다음 글 A와 B를 읽으라. A는 소녀 잡지 Mizz의 가십란에서 뽑은 것이고, B는 자전거 잡지 AWOL의 가십 칼럼으로 실린 경기 보고이다. (발췌문 생략)
필자가 그 독자와 목적에 맞게 언어를 사용한 점을 논하라. 두 글의 형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떠한 유사성과 차별성이 있는지를 논평하라.
다음 사항을 고려할 수 있다.
‧어휘와 의미 ‧문법 ‧문장 표기, 응집력, 배열상의 특징
* 다음 글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라.
어떠한 언어적 선택이건 일반적으로 다음 가운데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요소를 반영할 것이다.
1.참여자: ‘누가’ 말하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말하는가?
2.배경 혹은 상호작용의 사회적 맥락: ‘어디’서 말하는가?
3.화제: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4.기능: ‘왜’ 그들은 말하는가?(Holmes, An Introduction to Sociolinguistics, Longman에서)
위의 요소 가운데 둘을 골라 그 요소들이 화자의 언어 사용에 함께 작용하여 영향을 끼침을 논하고 예시하라.
‧그 상황과 그 상황에서 사용된 언어의 예를 들어야 함.
‧다음 요소들이 영향을 받은 것은 논하는 것도 가함.-음성, 어휘와 의미, 문법
* “말하기와 쓰기는 기능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형식이 달라진다.” - Leech, Deuchar and Hoogenrad, English Grammar for Today, Macmillan)
구어와 문어는 형식이 어떻게 다른가? 이 차이가 구어와 문어의 용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답을 할 때 구어와 문어에 관한 다음 용어를 고려하여야 한다.
‧구어의 매체와 문어의 매체 ‧어휘와 의미 ‧문법 ‧응집력
* 다음 발췌문은 1994년 노동당원에게 행한 존 프레스코트의 연설이다. 노동당은 그를 부당수로 그리고 토니 블레어를 당수로 선출하였다. 첫 구절에 나오는 선거란 이것을 가리킨다. (연설문 생략)
프레스코트는 자신의 연설을 효과적으로 초점화하기 위하여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이 연설은 얼마나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답을 작성하는 데 다음 사항을 고려하라.
‧어휘와 의미 ‧문법 ‧응집력
‧반복과 병렬 구조
‧구어 연설임을 시사하는 특징들
*업무, 직업, 직장, 조직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 그 고객이나 이용자에게 효과적으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라.
*다음 자료는 요크 지방의 방언으로 고쳐 쓴 것이다. 어휘, 문법에 나타난 특징에 대하여 논평하고 표준 영어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라. 이러한 변이가 생기게 된 이유를 밝히라.
*다음 자료 A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따 온 것이며, 자료 B는 같은 구절을 번안한 것이다. 두 자료 사이의 언어적 차이를 밝히고, 그러한 변화로 생기게 된 효과에 대하여 논하라.
이 밖에도 신문 기사, 시 작품 등을 대상으로 출제된 전체 14문제가 대체로 언어 사용에 관한 원리들을 바탕으로 하여 언어적 단위 또는 체계들이 운용되고 상호 작용하는 것을 논하고 그에 대하여 논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서 세 문제에 답하는 것이 하나의 시험이고, 이와 같은 비중의 문제를 세 시간에 하나 더 풀고, 그 다음 2,500 단어에서 4,000 단어 범위에서 글을 써 내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진다. 앞서 살핀 대로 주관 기관에 따라 그 구조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이 정도 분량이 보편적이다.
이 시험 답안을 평가하는 공통 기준은,
‧현재와 과거의 영어 사례들에 대하여 반응, 기술, 설명, 논평하는 능력
‧언어 연구에 필요한 체계적인 틀을 알고 사용하는 능력
‧맥락에 따라 언어의 형식과 의미에서 편차를 보이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
‧언어 사용과 관련된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
‧목적과 청자에 따를 다양성에 대하여 기술하는 능력
‧언어 연구에 적합한 지식, 이해, 통찰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
등이며, 여기에 제시된 중핵적 기준 외에 추가적인 기준으로
‧주어진 텍스트에 대하여 신중히 살펴 개인적 반응 결정
‧텍스트 내에서 인물, 플롯, 사상 등의 상호 작용 이해
‧필자가 독자 혹은 청자에 대한 반응을 각기 달리하는 것을 드러내기
‧텍스트의 가치와 태도를 평가하고 고려하기
등을 들고 있다.
이상의 시험 문제와 평가 기준에서 언어 지식이 언어 사용을 중심으로, 그것도 실제의 언어활동을 자료로 하여 적용되는 데 평가의 중점이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또 그 자료로는 연설, 논문, 대화, 시 등 언어의 전 국면에 걸쳐 광범하게 동원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런 특징은 영국의 영어교육을 관류하는 한결같은 특징이다.
<문학>
다음으로 문학 시험도, 역시 AEB의 예에 따르면, 두 번 또는 세 번의 시험을 치르는데, 처음과 두 번째의 시험은 각각 3시간씩,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과제로 제출하는 경우가 있고 두 시간 반에 걸쳐 시험을 보기도 한다.
첫 번째 시간에는 비평적 감상과 텍스트 분석을 하는데 시, 산문,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세 분야에서 각기 하나씩 골라 쓰고, 둘째 시간에는 미리 정해 준 작품에 대한 시험을 보는데 셰익스피어, 드라마, 시, 산문의 네 분야에서 각기 하나씩에 답하며, 세 번째로는 주어진 과제에 따라 2,500 단어에서 4,000 단어에 이르는 작문을 과제로 제출하는 경우도 있고, 이와는 달리 문학연구의 영역이라는 명칭 아래 <주제>, <시간과 공간>, <이야기하기의 방법>의 셋으로 나뉜 분야 중 두 항목에 걸쳐 답한다. 1996년 <주제> 분야에는 ‘검은 아메리카’와 ‘사랑과 유대’, <시간과 공간> 분야에는 ‘20세기 여성들의 글쓰기’와 ‘워즈워스’, <이야기하기의 방법> 분야에는 ‘단편소설’ 또는 ‘풍자적 글쓰기’ 등이 하위 항목으로 주어져 있다. 다음은 1996년 시행한 AEB의 세 번째 시험인 문학 연구의 영역 문제이다.
선택 1: 검은 아메리카 (지정 작품: Uncle Tom's Cabin-Harriet Beecher Stowe, 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Maya Angelou)
1. Uncle Tom's Cabin 제 25장과 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의 시작을 되새겨 보자. 각각의 이야기에서 교육과 배움은 어떤 중요성을 갖는가? 교육과 배움에 대한 작자의 태도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
선택 2: 사랑과 관계 (지정 작품: Emma-Jane Austen, Jane Eyre-Charlotte Bronte)
5. Emma의 제1장과 Jane Eyre의 제12장을 되새겨 보자. 작자가 각기 그 부분의 인물을 존경스럽게 소개하는 방법을 비교‧대조하고, 이 이야기들이 소설의 주된 주제라고 볼 수 있는 의미를 그 표현 방법이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설명하라.
이런 유형의 문제들이 보여 주는 것은, 작품에 대한 이해가 면밀한 분석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분석적 이해를 바탕으로 문학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이러한 견고한 분석과 해석을 거쳐서 판단과 평가에 이르는 반응이 결정되리라는 점 등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감상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감상의 과정은 작품을 읽어 내는 독해의 능력, 그것을 문학적 틀에 비추어 음미하는 능력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음미에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체험적 배경과 세상사에 대한 이해 능력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합 또는 작용하게 되리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을 감상 능력이라고 하건 반응 능력이라고 하건 용어에 상관 없이 이와 같은 과정을 수행하는 능력은 체계적인 지식과 풍부한 체험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갖추어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시험 주관 기관이 제시한 다음과 같은 평가 기준은 이 점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상이한 유형과 상이한 시대의 텍스트를 이해하여 반응하는 능력
‧의미의 표현을 위해 작가가 형식, 구조, 언어를 선택한 방법을 알아 내는 능력
‧문학 작품이 창작되고 이해되는 맥락에 관한 지식을 보이는 능력
‧자신과 타인들의 텍스트 해석에 대한 논의 능력
‧정통하고 독자적인 의견과 판단을 생산하는 능력
‧문학 연구에 적절한 지식, 이해, 통찰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
여기까지가 중핵적 평가 사항이며, 이 밖에도 함축된 의미 탐색, 인물, 논의, 심상 등과 같은 텍스트의 특색 감상, 텍스트가 독자를 고양하는 방법 가시화, 텍스트들 사이에 의미 있는 연계, 독자 자신과는 상이한 사회 배경과 상이한 용어의 작품 탐색, 반응을 적절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구두로 반응을 표현하기 등에 이르기까지 평가 항목이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상의 평가 기준에서 우리는 문학 감상의 능력이 결국 분석 능력이며, 나아가 지식의 틀을 바탕으로 얻어 내는 반응의 능력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또한 비단 문학 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언어 활동에서도 막연하고 무질서한 반응이란 불가능한 것으로, 그것은 지식과 그 적용으로서의 분석이라는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지금까지의 사례로 일반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교육과정을 비롯한 시험의 취지는 이해와 반응이 지식을 기반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관점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임이 드러난 셈이다.
Ⅳ. 英國 自國語敎育의 指標
지금까지 살펴 본 영국의 각종 시험 문제는 영국의 자국어교육이 우리의 국어교육과는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거듭 확인하지만, 영국의 교육은 그들의 것이고,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자국어교육이 본받을 만한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검토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검토를 위해 영국 자국어교육이 지닌 특징을 교육 구조의 측면과 교육 지표의 측면으로 나누어 살피기로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어교육과의 비교를 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1. 敎育의 構造
가. 統合性
영국은 영어교육의 영역을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교육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을 앞에서 보았다. 그렇기는 해도, 실제로 영어교육이 시행되는 모든 국면에서 이 세 영역은 통합을 지향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모든 시험 문제가 ‘쓰는’ 것을 주된 형식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이를 입증한다. 이는 모든 읽기의 결과를 쓰는 능력으로 전환하는 것을 요구한다. 또 앞에서 살펴 본 쓰기의 평가에서까지 ‘토론을 통해 또는 글쓰기를 통해’ 어떤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음도 언어활동의 통합적 운용을 통한 능력 배양을 겨냥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 A-level을 제외한 모든 단계에서 교실 학습은 읽기와 쓰기의 과정에서 말하기/듣기가 요구되고, 이를 토대로 개인 성적의 20%를 차지하는 말하기/듣기 성적이 매겨진다는 점도 이러한 특색의 구체적 모습이 된다.
능력의 통합을 지향하는 경향은 영역 사이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역 내의 교육 요소들 간에서도 구체적으로 보인다. 신문에 난 지원병 모집 광고를 보고 병사의 아버지가 되어 군 사령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라든가, 남의 가족 이야기를 기술한 글을 읽고 자신의 가족 관계에 대한 시를 쓰라든가 하는 시험문제는 실용과 문학 사이의 통합을 겨냥하고, 정보 전달과 상상적 언어 활동 사이에 통합을 겨냥하는 지향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처럼 영국의 영어교육은 영역간 그리고 교육 요소간에 통합적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지향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여 준다.
나. 位階性
영국의 영어교육은 철저히 위계성에 근거하여 계획‧실천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굑육과정에서 활동의 범위를 규정하는 데서나 주요 기능을 지정하는 데서 사용하는 용어에서부터 드러난다. 그 일례로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가면서 ‘이야기(story)→서사(narrative)→허구(fiction)→소설(novel)’ 등으로 용어가 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시를 지칭하되 ‘시→현대와 고전시→시의 형식과 문체 등→필독 시작품’ 등으로 용어가 구체화하는 것도 위계성의 징표가 된다. 저학년에서 ‘이야기하기’ 등의 용어가 차츰 ‘생각해 내고 계획하고 기술하기’의 단계를 거쳐 ‘발견하고 가정하고 분석하기’ 등으로 발전하는 것도 그러한 예일 것이다.
또 과목의 설정도 위계성에 근거하여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KS2까지의 저학년에서는 철자와 글씨쓰기(Spelling and Handwriting)가 시험 과목으로 설정되어 평가 대상이 되는 점도 그러하고, 읽기라는 용어도 낭독(reading 혹은 reading aloud)과 독해(reading comprehension)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음은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 구체적인 것은 저학년에서는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로 분할하여 시험을 치르다가 고학년이 되면서는 영어와 문학으로 또는 어학과 문학으로 과목의 이름조차 바꾸어 설정하고 시험의 내용을 그렇게 하는 것도 위계성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 준다. 저학년에서는 언어활동의 구체적 여러 모습을 체험하는 데 중점을 두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밀도 높은 전형적 언어를 통하여 체계적 학습을 도모하는 모습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다. 媒體 言語의 重視
영국의 영어교육에서는 매체 언어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매체 언어란, 잡지, 신문, 기타의 출판물, 방송, 집회, 전단, 기타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유형의 언어활동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는 문예물과 구분하여 정보 자료라는 명칭을 써서 자서전, 전기, 전문기관지, 일기, 편지, 여행기, 전단 등을이 포함하기도 한다. 교육과정은 이러한 언어활동 자료에 대한 교육을 다루어야 할 ‘범위’에 명시하고 있으며, 각종 시험도 이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매체 언어를 다루는 데도 위계성이 철저히 고려된다. 저학년에서는 사전, 정보 매체 참고자료, 허구적 형태로 표현된 정보 등에 중점을 두다가, 어른을 위한 정보, 비허구물, 신문 등으로 확대되고, 텔레비젼, 영화, 라디오 등으로 매체의 종류가 확대된다. 또한 그 언어활동을 뒷받침하는 지식으로서 제목이나 내용을 배열하는 방법에서 시작하여 점차 목적과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을 분간해 내고, 나아가 사실과 의견을 분간하는가 하면, 같은 정보라도 다른 방법으로 구상하는 쪽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면 정보의 질과 표현 및 생활에 끼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설계는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의 모든 영역에 걸쳐 고르게 기획되어 있으며, 실제로 시험도 그렇게 실시된다.
그렇다고 하여 매체 언어의 중시가 곧 문학의 배제를 의미한다는 오해를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 때 생활 중심이라는 말을 곧 문학의 배제 또는 약화로 오인했던 어리석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국이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을 가졌다는 징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 시험이나 교과서가 보여 주는 바에 따르면, 매체 언어가 다루어지는 비중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약 4분의 1 정도라 할 수 있고, 여기에 정보 자료까지 합쳐서 문예문과 비문예문으로 나눈다면 2:1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저학년에서 실시되는 국가 시험에 출제되는 비중이 대체로 그러하고, GCSE의 영어라는 과목이 문예문과 비문예문을 함께 다루며, 이와는 달리 문학이라는 과목이 또 있는 것은 이를 입증한다. 사실은 이런 비중 논의는 부질없는 것인데도 우리의 불행하고 어두운 과거가 있기에 이를 굳이 밝혀 둔다.
라. 知識 中心
영국의 교육과정이나 시험은 지식(knowledge)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강조한다. 시험문제에 대한 채점의 기준에서 ‘지식을 보여 준다’는 것이 자주 반복되는 것이 그 증거이며, 교육과정의 ‘2.주요 기능’ 부분도 지식의 기반을 강조하는 증거가 된다. 용어상으로는 ‘기능’이라는 말을 썼지만 기능이 활동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데서 얻어지는 효과보다는 그 기능을 수행하는 기본 원리를 앎으로써 활동의 수행을 교육하는 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지식적 기반을 중시하는 관점은 그 과목 편성에서 강하게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저학년의 시험과목을 읽기와 쓰기로 나누다가 고학년으로 가면 언어와 문학으로 나누고 있음이 이를 두드러지게 보여 준다. 앞에서 살핀 시험과목 편성과 그 시험문제들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그 지식의 구체성과 체계성이 강조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방법은?’이나 ‘필자가 자신의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특징은?’이라는 물음은 저학년과 고학년에서 두루 보인다. 또 이런 문제는 문예문이나 비문예문에 두루 통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답에 포함될 지식의 항목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이는 언어활동이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 지식은 교육의 단계에 따라 구체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 보여 주는 예이자 그 지식이 어학적 지식과 문학적 지식으로 뒷받침된다는 관점의 표현이라 하겠다.
2. 敎育의 指標
가. 反應 中心
영국의 영어교육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표의 핵심은 ‘반응’으로 압축된다. 교육과정과 시험문제는 매우 빈번하게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과정상의 총론(General Requirements for English)은 말하기/듣기와 읽기에서 ‘이해’와 함께 ‘반응’이라는 용어를 제시함으로써 이런 관점이 대전제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쓰기의 능력을 측정하는 각종 시험은 읽기 자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글쓰기를 요구한다. 주어진 자료를 ‘너 자신의 경우로 바꾸어 쓰라’든가, ‘그 입장이 되어 쓰라’든가 하는 것은 이러한 지표가 구체화한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여기서 우리가 ‘문학교육은 학생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식의 제한적인 명제를 떠올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듯하다. 그 까닭은 반응이 문학의 전유물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반응 그 자체이며, 특히 언어활동은 반응적 특성이 더욱 강하다. 남의 말을 듣는 것도 결국은 나의 반응을 위한 것이며, 글을 읽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반응을 형성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모든 자극에 대한 언어적 반응으로 글은 쓰는 것이다. 모든 언어활동은 ‘나의 견해’를 바탕으로 이루진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영국의 반응 지향이라는 지표는 매우 타당한 것이며, 이를 문학에 국한하여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게 해 준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의 각종 시험에 출제되는 글, 이른바 ‘지문’이라는 것을 가리켜 ‘자극 자료(Stimulus Material)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결국 시험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자료는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한 자극 자료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렇게 보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삼라만상 그 어느 것이건 언어활동을 자극하고 고무하는 자료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나. 個人的 主體性 重視
언어활동을 반응으로 보는 관점은, 모든 개인이 책임과 자유를 지니고 권리를 행사하면서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 가야 한다는 인간관에 근거를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의 누구건 자기 문제를 자기가 결정하기 위하여 자기만의 판단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주체적 인간이라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영국의 교육은 언어활동에서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체적 반응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용어는 ‘독자적(independent)’ 또는 ‘자신의 말(own word)’이다.
독자적이라고 하면 기이성이나 예외성을 흔히 연상한다든지, 아니면 천재성으로 치환해 버리는 것은 우리 교육의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독자적이고 자신의 것인 반응을 위해서는 면밀하고 정확한 절차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영국 교육의 특징이다. 그것은 반응 앞에 이해(understanding)를 반드시 앞세워 강조하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각종 시험에서도 단어나 구절이 그 맥락 속에서 함축하고 있는 뜻이 무엇인가를 묻는 데서 시작하여 나타나 있는 내용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을 앞에서 흔히 보았다. 그 이해는 정보 수준에서부터 함축적 혹은 상징적 이해에 이르는 의미의 이해까지로 나아간다. 이런 이해 능력을 묻기 위해 ‘요약’을 하라는 문제도 간혹 출제된다. 이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다음의 물음은 대체로 ‘성격의 창조를 위해 필자가 쓴 방법’이나 ‘분위기를 형성한 방법’ 혹은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 효과’나 ‘설득에 효과적인 이유’ 등 비평적 분석에 이른다. 그러기에 영어 학습에 관계된 요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시대와 유형을 달리하는 여러 가지 텍스트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능력
‧작자가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한 형식, 구조, 언어의 여러 방법에 대한 이해력
‧글이 씌어지고 이해되는 맥락에 대한 이해력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남의 해석을 두고 논의할 수 있는 능력
‧정통하고 독자적인 의견과 판단에 이를 수 있는 능력
‧연구 방법에 부합하는 지식, 이해, 통찰력을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
이처럼 반응이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활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구체화해 간다. 실제 시험에서 세계 각국의 정치인 명단을 알리는 엠네스티 전단을 제시하고는 그 본부에 보내는 편지를 쓰거나 이야기 한 편을 만들라고 한 것은 인상적이다. 이 모든 것은 독자적이고 자기 자신만이 지닌 반응을 요구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체적 활동으로서의 언어활동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평가, 판단, 선택 등이 요구되며, 저학년에서는 의견을 설명하기를 요구하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기,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기 등을 구체화하도록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3. 英國의 自國語 敎育 觀點 檢討
지금까지 영국의 영어교육이 지닌 특성을 살펴 보았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영국의 교육이며, 영국의 교육은 영국의 교육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거나 본받을 점이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정당성 또는 타당성이 검증된 다음이라야 한다. 그런데 미리 결론을 앞세운다면, 영국의 교육은 언어, 인간, 교육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한 위에 구조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언어의 본질과 관련해 살핀다. 언어를 어떻게 보는가는 언어교육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방향타가 된다. 지금까지의 우리 국어교육은 언어를 ‘의사 소통의 도구’로 강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국어교육을 ‘언어 사용 기능의 교육’이라고 한 것이라든다, 국어교과를 ‘도구 교과’로 규정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관점은 국어교육을 도구 사용술 교육으로 유도하는 경향을 보였고, 활동을 많이 체험하면 방법에도 익숙해진다는 식의 지극히 평면적인 교육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말았다.
실제로 언어는 도구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언어의 한 특징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관점이 있다. 이 인용문은 스코트랜드의 교육과정에서 밝히고 있는 그들의 언어교육관이다.
언어는 어린이들의 학습에서 중심을 이룬다. 언어를 통하여 그들은 대부분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많은 기능을 습득한다. 언어는 남들과 목적에 맞게 효과적으로 의사 소통을 하게 해 주며, 동시에 자신과 남의 경험, 감정, 생각을 살펴 그것들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한다. 언어는 어린이의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전의 중심으로서 모든 교육과정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학생들의 응집되고 발전적인 학습을 도와 준다.
언어가 도구이기는 하되, 그것은 수단이자 인식 그 자체이며 그것이 바로 삶의 양상 그대로라고 보는 언어관 및 언어교육관이 ‘질서와 의미를 부여한다’는 데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언어의 이런 국면에 초점을 맞추어 언어를 바라보게 된다면 언어 활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식과 가치의 문제라는 데 중점을 두는 교육으로 나아가게 마련일 것이다.
이처럼 언어가 매우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든가, 언어 자체가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 등을 고려한 다음 견해가 언어가 지닌 입체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 준다.
언어는 우리 생활의 중심이다.
‧언어는 우리에게 正體性을 확립하게 해 주며, 타인들과의 유대를 갖게 해 준다.
‧언어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목적과 의도를 획득하게 해 주는 도구이다.
‧언어는 타인들이 내게 작용하는 수단이다.
‧언어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형성해 준다.
언어의 사회적 기능에 다소 치우친 듯한 느낌을 없지는 않지만, 이쯤으로도 언어의 입체성은 충분히 드러난다. 이 밖에도 언어가 지닌 수많은 기능과 본질을 말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그것을 일일이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언어를 입체적인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평면적인 것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국어교육에서 문학이 읽기 자료의 하나라는 정도 이외에는 별반 다른 의미가 없다고 한다든지, 글 내용의 이해, 말하는 형식에 대해 알기, 글 쓰는 절차 알기 등에 치우치는 교육은 언어의 도구성이라는 측면만을 평면적으로 바라본 결과이다. 그 대신 통합성, 지식 기반, 반응 중심, 개인의 주체성 중심을 지향한 영국의 교육은 언어의 입체적 본질을 잘 살핀 설계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간에 대한 관점을 살핀다.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에도 관계될뿐더러 인간의 중요한 특징인 언어와도 관계된다. 인간을 보는 관점을 일일이 살필 능력도 없고 그럴 계제도 아니지만, 영국의 영어교육이 보여 주는 반응 중심과 개인의 주체성 중심이라는 지표는 인간 개개인이 지닌 삶의 독자성을 중시하는 관점으로 보인다. 전체성, 평균성을 강조하는 사회가 흔히 놓치기 쉬운 개인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인으로 살아 간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점도 영국의 그것이 타당해 보인다. 특히, 인간을 도구적 존재로 보게 되면 기능의 습득을 통해 무엇엔가 기여하는 수단으로 규정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고양하고, 그 개인적 가치를 이루기 위해 지식을 바탕으로 한 능력의 함양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은 인간의 존재 그 자체의 가치 고양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아 바람직한 관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국면을 살핀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일도 능력 밖이며 지금은 그럴 자리가 아니지만, 능력을 갖추어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는 일반적 통념을 따를 때, 중요한 것은 교육을 통해 학습한 능력은 삶의 여러 국면에 전이될 수 있어야 가치를 가질 것이며, 교육은 그러한 능력과 태도를 동시에 길러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언어활동의 능력을 통합적으로 교육하도록 설계한 점은 교육할 대상의 실상에 부합하며, 지식이 기반을 이루도록 한 점은 학습된 능력의 전이를 용이하게 하고, 그것을 위계에 따라 설계한 점은 활동의 실상과 지식의 체계 그리고 인간의 발달 단계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할 대상이 개인적 삶을 발전시키고 향유할 수 있도록 설계한 반응 중심과 개인 주체성 중심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교육할 지식 자체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지식의 가치와 전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실제로 문학 작품에 나오는 인물에게 편지를 쓰라든가, 담배에 관한 정보 자료를 보고 금연을 설득하는 연설문을 만들라든가 하는 등등은 개인의 견해를 중시하면서 학습 내용의 전이 효과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영국의 영어교육은 언어, 인간, 교육의 세 국면에 두루 가치 있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返照: 國語敎育의 省察
지금까지 영국의 영어교육에서 우리가 배울 바가 있는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영국의 그것이 타당한가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이는 논의의 진행 과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일 따름이지 실상은 불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필자는 국어교육이 이러한 관점에 서야 한다는 주장을 수없이 되풀이한 바 있다. 교육의 설계는 관점이 좌우한다는 전제 아래, 국어교육이 다룰 언어활동의 본질은 도구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인간을 도구적으로 바라볼 때 교육은 피폐한다고 역설하였으며,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게 되면 교육이 아닌 훈련으로 전락한다고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이런 관점에 서서 바라보면 영국의 교육은 이색적이거나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론적으로 그러해야 함을 강조해 왔다. 영국의 교육은 이미 그런 관점에서 설계되고 실천되는 구체적 예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로서는 그 동안 전개해 온 필자 나름의 이론적 주장이 실제적 입증 자료를 영국에서 확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거울에 비추어 우리의 국어교육을 돌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영국의 영어교육과 우리의 국어교육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거리는 도무지 건널 수 없는 강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시험의 형식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참으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교육의 초기 단계인 저학년에서만 일부 채용되고 있는 多肢擇一의 방법이 우리나라에서는 평가의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그 의존도는 낮아질 기미를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저쪽은 말하고 쓰는데, 이쪽은 고르고 찍는다.
그러나 이런 형식상의 문제를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논의를 그만두자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교육의 제도와 구조라는 완고한 체제의 문제이며, 혹 대안이 있더라도 실현의 가능성이라는 문제가 언제나 먼저 떠오르게 되는 문제로서 현실적인 가능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논외로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국가교육과정을 기준으로 학력을 절대 평가하는 기준을 지금 구상중에 있다고 하므로 그것이 이루어지면, 이를 계기로 평가의 풍토와 함께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여기서는 비켜 가고자 한다. 형식보다는 더 중요한 것은 늘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 本質 中心과 領域 中心
몇 가지 형식상의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두 나라의 자국어교육이 공통된 기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기능에 바탕을 둔 교육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교육과정이나 평가 기준에 ‘skill’이라는 말이 흔히 보이는 것은 우리 교육과정에서 ‘기능’이라는 용어가 흔히 보이는 것과 상통하고, 저쪽의 ‘use’라는 용어는 우리의 ‘사용’이라는 말과 짝을 이룰 것이다. 영국의 교육과정이 기능에 기반을 두어 설계된 것이라는 점은 그쪽의 학자들도 분명히 인정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한‧영 양국의 자국어 교육이 지닌 차이는 크고 심각하다.
그런 차이의 하나로 저쪽은 本質 中心 혹은 言語 中心인 데 반하여 우리는 領域 中心으로 교육을 설계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국은 영어교육 영역을 셋으로 나누고 있음을 앞에서 보았다. 말하기와 듣기를 한데 묶어 하나의 영역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이 두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교과서에서는 말하기/듣기라고 한 단원으로 설정하는 것이 효율적이어서 그렇게 하면서도 교육과정상의 영역으로는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점이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사실 이론적 근거로 본다면 말하기와 듣기는 표현 활동과 이해 활동으로서 그 각각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표현이론과 이해이론으로 그 성격이 다를 수 있다. 이를 모를 까닭이 없는 영국이 말하기와 듣기를 한 영역으로 묶어 버린 것은, 이 두 영역이 다루어야 할 대상인 언어가 口語이며 이는 文語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였기 때문이다. 양자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경향은 이에 관련된 여러 문헌에서 널리 발견된다.
우리 국어의 실상을 보더라도 口語와 文語는 상당한 차이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교육에서 이 방면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거나, 교육의 장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떠올려 논의하는 경향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마도 영역 분류의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말하기는 곧 쓰기와 다를 바 없는 이론적 뒷받침을 받기에 이른다. 표현론과 이해론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 目標 中心과 過程 中心
이 방면의 연구가 아직 많이 쌓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표현과 이해의 이론은 그 과정이 어떤 機制로 되어 있는가를 분석적으로 기술하는 데 머무른 감이 없지 않다.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순수과학적 관심에서는 機制 그 자체를 파악해 내는 것만으로도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국어활동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한 교육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해명된 機制 자체를 바탕으로 목표의 성취 방법이 구안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機制 자체의 구명에 그치는 이론은 순수학문의 수준에 머물고 말게 된다. 우리는 아직 그런 수준이다.
그런 탓인지 우리의 국어교육 설계며 실천은 過程 中心的 경향을 보인다. 과정 중심이란 활동의 과정 자체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머물러 버린 현상을 뜻한다. 읽기의 절차를 아는 것이 우선시되고, 쓰기의 과정을 설명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그 활동은 한 과정 한 과정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한다면 영국은 目標 中心的으로 구상되어 있으며 그렇게 활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쓰기가 주제 선정, 자료 수집과 선택.....의 과정별로 전개되는 것과는 달리 아예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을 처음부터 겨냥하고 있으며, 그 귀결점을 ‘반응’에 설정하고 있음을 본다. 영국쪽의 여러 문헌에서 이 단어를 빈번하게 발견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는 절차를 강조하는 우리와 큰 거리를 갖는 차이점이다.
영국쪽이 궁극적 목표로 삼는 반응의 개념은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앞의 여러 인용에서 보았지만, 그것은 이해, 발견, 분석, 평가, 태도 등의 여러 요소를 함축하면서 필요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목표를 강조한다. 어찌 보면 교육의 초점화 또는 단위성을 고려에 넣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마디의 말이, 혹은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지는 데만도 매우 복잡다단한 절차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반응이라는 도달 목표를 강조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세살짜리도 말을 하고 산다는 점에서 본다면, 또 세살짜리에게도 그 나름의 세상 보는 안목이 있다(이를 철학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는 점을 생각하면 절차에 대한 이해만이 교육의 최선은 아닐 것으로 본다. 세상의 모든 일에 층위가 있고 선후가 있으므로 위계도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은 그것을 방법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학교 급별이 있고 거기에 다시 학년 구분을 둔 것은 이런 관점의 확연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점화 또는 단위성이라는 것이 활동의 과정을 단계별로 토막을 짓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가 말을 처음 배울 때는 단어부터 습득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 단계를 조금만 넘어서서 자기 문법을 갖게 되면 문장 표현을 통해 담화를 실현하는 것을 본다. 그 담화의 질이나 형식에 위계는 있겠으나 절차상의 위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도움을 주는 사례이다. 영국이 서사적 특징을 가진 언어 구조물을 지칭하면서 저학년에서는 이야기, 조금 올라가면 서사, 그 다음에 소설로 나아가는 것도 질적 위계를 절차보다 앞세우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절차적 과정과 목표 가운데 어느 것을 앞세우는 것이 더 타당한가는 일률적으로 단언할 일이 못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언어교육을 두고 말한다면, 언어교육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관점을 검토함으로써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목표 도달을 중시하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견해로, 스코트랜드의 교육과정에서,
학교는 학생들로하여금 그 개인과 그 세계의 필요에 적합한 맥락에서 꼭 맞는 언어 사용을 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야 하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기회 제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해야 한다.
‧소통하기: 예) 생각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표현하기, 놀기, 생각과 정보를 가다듬기, 증명하기, 따지기, 설득하기, 말하고 쓰기, 보고하기.
‧생각하기: 예) 사색하기, 가설 세우기, 발견하기, 반성하기, 일반화하기, 종합하기, 분류하기, 평가하기.
‧느끼기: 예) 기술하기, 자신의 느낌과 남의 느낌을 반성하고 고려하기, 정서적 복잡성을 처리하기, 가치와 느낌 사이의 갈등을 감싸기, 해결을 얻어내기.
‧만들기: 예) 이야기, 시, 편지, 보고서, 도안, 녹음이나 녹화.
처럼 제시한 교육과정 설계는 언어활동이 하나 하나 독립적으로 완결성을 구현하는 단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단위성이 성장의 초기부터 나타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단위마다에서 목표가 설정되고 그것을 지향하는 활동이 교육되는 것은 방법으로서의 타당성을 지닐 것이다.
다. 知識 中心과 活動 中心
이처럼 단위 활동이 목표를 겨냥하는 언어활동이 되도록 설계한다 하더라도 교육의 국면에서는 그런 목표에 도달하는 일이 무엇으로 가능할 것인가 하는 방법상의 문제가 있다. 방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活動을 수행함으로써 그것을 함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영국은 知識의 습득을 통해 거기 도달하고자 하는 관점을 보여 준다. 영국의 교육과정이나 평가 목표 또는 기준에서 지식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는 것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 일례로 시험의 평가 목적을
* 수험생들의 다음과 같은 지식과 이해력 개발에 목표를 둠.
‧ 의미를 생성하는 언어 체계
‧ 구어와 문어의 차이점
‧ 언어 변이와 변화의 본질과 원인
‧ 의사 소통에 영향을 주는 개인적‧사회적 요인
‧ 특정 문화에서 언어의 위치,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태도
로 제시하고 있는 점은 시사적이다. 영국의 교육과정이 반응이라는 목표 앞에 ‘개인적, 독자적, 평가적’ 등의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 데서 반응을 감정적 무정부 상태나 기이성 또는 돌출성 정도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반응들이 무질서나 무원칙의 산물이 아니라 타당한 기준과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도달하는 필연적 결과일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지게 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체계적인 지식의 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식이 강조된다. 국어교육에 충전할 만한 지식이 체계화하지 못했음을 늘 우려해 온 터에 지식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국어교육을 목표 지향적인 것으로 하고, 그 방법으로서 지식 중심의 설계를 하게 되면 그 형식은 위계 중심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식에는 그 자체의 질서 때문에도 위계가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영국이 성취목표를 모두 아홉 단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 점이 드러난다. 활동의 수행을 중심으로 해 온 우리의 교육과정이 동어반복으로 되어 있는 점은 설계 기술상의 문제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피하지 못할 귀결이었다. 이를 수준별 교육과정과 뒤섞어 생각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굳이 그렇게 결부시킨다 해도 지식의 위계로 설정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지식이 아닌 수행 그 자체로 설계하는 것의 부적절성에 대해서는 필자가 이미 누차 지적한 바 있다.
라. 多元主義와 一元主義
국어교육을 도달 목표 중심으로 하는 일에서부터 비롯된 지식 중심이나 위계화는 논리적 축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언어의 실상에 비추어 보더라도 타당하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하지만 이 점은 언어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우리의 그것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선적이었다는 점도 그 동안 누누이 지적한 바 있다. 언어를 의사 전달의 도구 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데서 도구론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국어교육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도구적 一元主義라고 할 수 있다면 이와는 달리 언어를 입체적으로 보는 多元主義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문제를 검토하면 이 생각의 고리가 타당함이 더욱 입증될 것이다. 언어를 다원적‧입체적으로 바라본 관점은 앞에서 충분히 예시한 바 있다.
언어가 지닌 다원성과 입체성을 전제한다면, 언어교육도 다원적으로 보는 것이 필연적이다. 언어를 이러한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언어의 본질에 맞는 교육을 기획할 수 있으며 연구 수행의 폭과 깊이가 확대된다. 또 국어교육의 입체적 설계로 쉽사리 나아가게 됨으로써 교육의 입체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문제는 언어와 교육이 한데 작용하는 총체인 언어교육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여기에는 대체로 다섯 가지 정도의 관점이 논의되고 있다. 개인적 성장의 관점, 범교과적 관점, 성인 욕구적 관점, 문화 유산적 관점, 문화 분석적 관점이 그것이다.
이 중 어떤 입장에 서느냐 하는 것은 철학적 선택으로는 어렵지 않겠지만, 현실적인 선택은 쉽지 않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 방안의 선택에서 어떤 관점에 좀더 기울어지는 경향의 차이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나머지를 완전히 제압하는 배제적 선택의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소 어정쩡해 보이더라도 포괄적 입장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언어의 실상이 다면적이고 입체적이라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며, 현실이 또한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얽혀 돌아간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국어교육을 다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이런 면에서도 정당성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영국의 영어교육이라는 거울에 우리를 비추어 붐으로써 우리의 실상을 좀더 뚜렷하게 드러내었으며, 또 그 허술한 부분을 아프게 집어 내기도 하였다. 이것이 어쩌면 천박한 사대주의로 비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면 무턱대고 모방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매우 격렬하게 비난해 왔던 점, 그리고 여기서 살핀 바 있는 국어교육에 대한 진단이 그 동안 필자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그 동안의 이론적인 분석이 실제 자료를 통해 입증되는 과정으로서 지금까지의 논의가 진행된 셈이다.
Ⅴ. 文學의 位相: 國語敎育과 文學
1. 文學이 왜 問題인가
이제 정작 중요한 화제로 삼고자 하였던 문제를 드러내어 살필 차례가 되었다. 영국의 교육과정이 주는 낯섦은 사실 영역 구분의 차이에서부터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문학을 공부해 온 필자로서는 영국 교육과정을 처음 대했을 때 그 영역 구분에 문학이 없는 것을 보고는 당혹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이내 해소되었다. 앞에서 이미 살핀 바와 같이 영국의 자국어교육에서 문학은 최소한 3분의 2이상이라는 비중을 차지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교육의 초기부터 시를 읽고 들으며, 상상력으로 그려 낸 이야기도 하고 그에 대하여 반응도 해야 한다. 문학의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읽어야 하고, 중요한 작가의 작품도 읽어야 하며, 시의 형식이며 서사의 형식을 본받아 글을 써야 하고, 작품들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반응을 글로 써야 하며, 심지어는 연극의 대본도 만들어야 한다. 영국의 교육에서 문학은 이렇게 중핵을 이루고 있다. 자국어교육이 이렇게 설계된다면 문학 영역을 굳이 설정하지 않는 것도 타당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타당성의 인정이 충분한 설명을 동반하지 못할 때는 엄청난 오해를 불러 올 수 있기에 두렵다.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문제의 근원에까지 이를 수 있겠는지, 그리고 생각한 바가 올곧게 풀려 나와 文面에 드러나게 될는지 걱정이 없지 않지만, 문제의 실상을 중심으로 살피기로 한다. 따라서 성급한 단정보다는 논리의 축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국어교육의 영역에서 문학을 논할 때는 그 성격 규정이 모호해질 때가 많다. 문학이 지식인가? 문학사나 문학 용어들을 생각하면 그럴 것도 같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문학이 그러면 기능인가? 문학작품을 감상하고 창작을 한다는 점을 두고 보면 활동이라는 점에서 기능일 것도 같다. 그렇지만 지식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또 그것이 중요한 의의를 갖기에 기능만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 동안은 이 점에 대한 논의가 여러 가지 이유로 본격화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탓에 국어라는 교과 안에서의 위상이나 기능은 차치해 두고 ‘문학교육’이라는 용어가 주는 강렬한 독자적 어감 때문에 예술로서의 문학을 교육하는 문제에만 우리 학계의 정력이 집중된 감이 없지 않았다.
문학교육이 문학‘을’ 교육하는 것으로 논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학의 본질이 예술인 한, 그 교육을 본질에 입각하여 논의하는 것은 권장될 일일지언정 결코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고 마는 것은 교육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오직 ‘하나의 자리’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또 국어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문학이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난날의 논의 전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또 국어교육 안에서 엉거주춤하게 다른 영역, 말하자면 말하기/듣기 같은 분야와 산술적 비중 논쟁이나 벌이는 것은 문학의 본질이나 기능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대목을 논의할 실마리를 영국의 영어교육에서 찾고자 한다.
2. 文學의 責務: 言語와 文學의 兩價性
영국쪽의 영어교육 시험과목 구조에 나타난 특색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거기 나타난 특색들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하급학년의 대부분 활동에 문학이 포함되어 있다.
‧‘문학’이라는 과목명은 상급 학년에서 나타난다.
‧상급학년으로 갈수록 과목은 단순해진다.
‧셰익스피어라는 과목의 설정이 매우 이색적이다.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에서 문학, 언어로 단계적으로 바뀐다.
이제 이런 특색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해 볼 차례다. 영국이 자국어교육 안에서 문학을 보는 관점에서 우리는 문학이 단순히 평면적이고 일의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해 낼 수 있다. ‘문학’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어느 국면을 지칭하는가는 달라진다.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속성별로 살펴 본다.
가. 言語活動으로서의 文學
먼저, 하급학년의 말하기/듣기나 읽기와 쓰기 등에서도 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을 굳이 문학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그 대신 ‘문학’이라는 과목명은 상급 학년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문학을 꼭 문학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그런 구분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다시 말하면 여타의 언어 활동과 공통되는 성격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하급학년에서 다루는 문학일수록 문학만이 지닌 특수한 성격이나 고유한 세계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으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해석이 있을 수도 있다. 하급학년에서 문학작품을 읽는 일을 주로 이해(comprehension)라 하는 대신 상급학년으로 갈수록 감상(appreciation)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좀더 심화된 과정에서는 연구(study)라고 하는 관행도 이 문제와 관계가 깊다고 본다.
그러기에 하급학년에서는 문학이라 할지라도 그 특수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언어활동의 보편성을 중심으로 학습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문학을 언어활동의 하나로 보는 관점이 드러난다.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관점은 타당하다. 예를 들어, 상상을 통해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엮어 말하는 것이 꼭 소설이나 연극이라는 예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를 통해 이루어전 생각을 감각으로 형상화하거나, 리듬에 따라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 또한 시에서만 보는 현상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활동에 널리 행해지고 있고 또 필요한 일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문학을 교육의 측면에서 논의할 때에도 예술로서의 고유한 세계와 언어활동으로서의 보편적 세계를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필자는 강조해 왔다.
영국의 영어교육이 보여주는 문학의 위상은 문학을 언어활동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실제로 입증해 준다. 문학이 언어활동이라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언어활동 자료로서의 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활동의 방법으로서의 측면이다. 이는 필자가 일찍이 강조한 바 있는 도구로서의 언어를 다시 하위 분류한 체계와 사용에 관계된다.
문학작품은 문법적으로 바르고 정확한 언어 사용의 학습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전자, 즉 체계성의 학습 자료가 되며, 실천의 구체적 방법이 되어 준다. 또한 문학은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자극제가 되어 준다. 삼라만상 가운데 그 어느것보다도 강력하고 효율적인 자극제로서 우리의 생각을 활발하고 다양하게 전개하도록 해 준다. 그러면서 문학 작품은 언어활동이 본받을 표본이 되어 준다. 표본은 본받을 만한 본보기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한 재생이나 반복의 대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틀로서 작용한다는 뜻이다. 틀은 곧 방법을 뜻한다. 잘 정제된 구조물인 문학은 말하고, 듣고, 읽고, 쓰고 하는 활동의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이 점에서 문학은 사용으로서의 언어활동이 되어 준다. 문학의 연구가 곧 국어교육의 연구로 전개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학은 단순히 자료 수준을 넘어서서 방법적 지식을 습득하게 해 주는 통로로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 言語文化로서의 文學
문학이 도구 수준의 언어활동 자료이자 방법이라는 관점은 자연스럽게 그것이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는 해석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문화의 정의는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삶의 방식’으로 보거나, ‘세련된 형식’으로 보거나, ‘의미 생산과 순환’으로 보거나 간에 문학은 언어문화임이 분명하다. 문학은 곧 삶의 방식이자 세련된 형식이면서 의미 생산과 순환의 구조물이라는 데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 언어활동의 자료이자 방법으로서 최상의 것이 되는 까닭도 바로 이런 문화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실제의 언어생활을 살피더라도 문학의 이런 측면은 쉽게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언어활동도 일종의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행해지는 하나 하나의 발화와 그 수용, 그 자체를 가리켜 문화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 하나 하나가 개별적인 사실로 머무른다면 문화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란 유통을 필수 요건으로 하는데 유통은 유형성 또는 경향성을 지닐 때 비로소 구체화한다. 이 구체화한 모습이 문화의 형식이며, 그 형식을 통해 우리는 문화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기에 하나 하나의 발화는 유형성 또는 경향성이라는 형식성을 지니지 못할 때 하나의 사실에 그칠 뿐, 문화라고는 하기 어렵다.
문학이 언어문화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문학작품은 한 개인에게서 행사된 하나의 언어 행위이지만 거기에는 필연코 유형성과 경향성이 잠재해 있다. 문학에서 사조를 따지고 장르를 구분하거나 문학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문학작품이 이러한 문화로서의 형식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돌연성과 함께 나타난 형식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돌연성이 맺고 있는 의미의 그물 속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유형성이며 경향성으로 인식된다.
시나 희곡 작품 또한 이 점에서 마찬가지임은 물론이다. 혹자는 그 작품들이 이따금 내보이는 문법적 일탈을 지칭하여 그것을 문학의 별세계적 징표라고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만한 일탈은 우리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허다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 까닭은 언어가 본질적으로 규범성이라는 구심력과 일탈 또는 창조라는 원심력을 그 원동력으로 지니기 때문이다.
언어활동의 문화적 국면은 다시 생활문화와 예술문화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생활문화로서의 언어활동은 주로 매체언어, 대중문화, 구전담화 등에서 사회적으로 구체화된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언어활동 또한 생활문화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편지를 쓰는 일이 대체로 그 나름의 형식성을 따른다든가, 전화로 주고받는 말에 일정한 격식이 있다는 것 등은 생활문화적 모습들이다. 이런 양식성 또는 정체성으로 설명되는 문화적 요소들이 법정, 병원, 정치, 시장의 언어 등 여러 가지 유형화를 가능하게 해 준다.
문화는, 다음에서 살피게 되는 셰익스피어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필연적으로 집단적 정체성과 사회적 의미 생산에 관계가 있다. 국어로 말할 때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경향은 민족적 정체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적 신분의 과시를 통해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는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투의 印歐語式 표현을 경계하거나 ‘상당한’이라는 말 대신에 ‘일정한’이라는 북한식 표현을 쓰는 것을 경계하는 것 등은 모두 생활문화 차원의 문제들이다.
언어의 문화적인 국면을 생활문화와 예술문화로 가를 때, 문학은 이 둘 가운데 후자에 가 있는 것이 제 위치를 찾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생활문화적 현상의 많은 부분이 문학을 설명하는 틀로 살필 때 쉽사리 이해된다는 점은 이 방면에서 또한 문학이 중요한 의미를 지님을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광고의 의도와 그 비평적 수용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며 주제 또는 상징의 이론이 효과를 발휘하게 되며, 신문의 사설이나 방송의 논평에 대하여 반응하는 데도 문학에서 널리 강조하는 시점(point of view)의 이론은 효율성을 가진다.
문학은 생활문화를 학습하기 위한 대조적 자료로서도 그 표본성과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20-40년대에 집필된 신문의 사설이나 보도 기사는 과거에 그런 글을 썼다는 의미 이상을 지니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저 유명한 ‘기미독립선언문’도 그 역사적 가치와 민족적 의의를 제하고 나면 낡은 문장의 표본으로 전락할 따름이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 언어에 얼마나 심각한 왜색이 깃들였으며, 그것이 왜 그러했는지를 살펴 오늘의 국어활동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통찰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말하자면 그 시대의 생활문화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김동인, 김유정, 채만식 등의 소설작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하기/듣기의 교재이자 그 방법적 암시를 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 藝術로서의 文學
문학이 예술이라는 점에 대해서 길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이다. 또 문학이 지닌 예술적 미덕을 여기서 다 말하려고 하는 것도 무모한 일일 것이다. 실상 그 동안 문학을 교육의 자리에 놓고 이루어진 대부분의 업적들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이 놓여 있었으므로 새삼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충분한 견해의 교환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문학’이라는 과목이 상급학년에서 비로소 설정된다는 사실은 문학의 예술성과 교육의 위계가 무관하지 않다는 관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급학년에서의 문학교육은 속성으로서의 문학성을 과제로 삼는 데 반해 상급학년에서의 문학은 그 양식성을 과제로 삼는 것이 과목의 명칭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예술이 인간 정신의 고양된 형식이라는 점에서 매우 타당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고양된 형식’이라는 말을 고급 예술에 한정하는 명명으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고급 예술이건 아니면 민속 또는 대중 예술이건 모두가 주어진 여건 가운데서 이루어진 최고의 고양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가치가 어느 측면에 놓이는가를 분간은 할 수 있겠지만, 가치의 유무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언어활동을 교육하는 과정에 그 고양된 형식을 논외로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이상은 인간이 이룬 최고의 상태를 딛고 다시 거기서 새 걸음을 내어 디딜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자는 것이지, 물려 받은 유산이나 반복적으로 답습하다가 마감하는 그런 노예적 존재로 키워 내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학의 교육은 그 창작의 수준으로까지 이어져야 함이 필수적이다. 예술로서의 문학성 교육을 강조하는 논의조차도 창작의 문제는 도외시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문학의 교육이 창작으로까지 이어지려면 방법적 세련이 필요하다. 교육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나는 천재 앞에서는 무용하다. 현실적으로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다. 그 어떤 천재도 형태가 다를지언정 어느 수준의 교육이 있어야 탄생하는 법이다. 문제는 방법에 있다. 그래서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해진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적이고 정통한 개인적 반응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앎은 다른 상황에 전이될 때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므로 이 과정이 바로 창작으로 이어지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문제는 수준에 관한 것, 분량에 관한 것이다. 소설 작품을 읽고 소설을 한 편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써 보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편지를 쓰도록 요구하는 영국의 시험 출제 방식도 이런 부분에 참고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 대한 고려는 문학을 문화로 볼 때 보다 타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문학을 문화로 보자는 말은, 문학을 천재성의 산물로 보는 데서 관점을 옮겨 사회의 산물이며 그 의미의 공유로 보자는 것이다. 위대한 문학은 천재성의 산물일 수 있지만, 그 천재성조차도 그 사회가 창출해 낸 하나의 의미이며, 그것의 유통 과정은 이미 문화적 과정이다. 이 점이 주목될 때 예술로서의 문학도 비로소 민족문화의 성격을 띠게 된다.
라. 精神文化로서의 文學
민족문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셰익스피어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셰익스피어를 교육과정에 도입하는 데 상당한 논란이 있었음은 앞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그것을 초등학교 수준의 학생들에게 이수토록 하였고 시험과목으로까지 등장하게 된 것은 음미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셰익스피어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그를 가리켜 훌륭한 작가, 영국이 낳은 문호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말도 기억한다. 생각을 여기서 시작해도 좋을 듯하다. 이런 표현 속에는 영국의 우월감 또는 애국적 의지가 담겨 있음을 그들은 솔직히 시인한다. 그것이 그렇게 된 과정을 역사적으로 더듬어 본 사람은 연극 문화 종주국의 간판, 식민지 통치 시대에 마련된 우월감의 상징성, 비평적 연구의 표적으로서 드러난 작품의 견고성 등을 들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셰익스피어는 영국이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한 때 ‘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지만, 오늘날 그것을 가리키는 말로는 ‘위대한 문학 유산’이라는 말이 적당하다고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영국 자국어 과목의 절반 비중을 갖는 시험과목으로 등장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보여 주는 언어는 과거에 국한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는 발전을 보여 주며, 그것은 언어와 사고와 지각을 일깨워 주는가 하면, 그의 작품에는 지혜가 있고 웃음이 있다는 공리적인 측면도 강조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리성 또한 그의 작품이 지닌 위대성의 하위 항목이 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숨쉬는 공기이자 먹는 음식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고 영국인을 영국인답게 하는 한 요소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영국인을 영국인답게 한다는 표현은 무척 흥미롭다.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영국인의 正體性이라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문학작품이 한 민족 구성원들의 정신과 삶의 한 구성 요소로서 정체성을 이룰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인가? 이는 동질성, 공감성, 유대감 등의 용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지각과 관계될 것이다. 바로 이런 지각을 갖게 해 주는 한 요소를 가리켜 우리는 민족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의 위대한 문화 유산이라는 말은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현행 국어과목의 교육과정이 민족문화의 계승과 창달을 말하고 있다는 등의 제도적 전거를 앞세우는 것은 천박하다. 그것은 제도 이전에 우리 삶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본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바로 이 점에서 중핵적인 자리에 있다. 그래서 문학을 교육하는 일은 민족 구성원 개개인이 민족의 일원다와지는 도달점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것이 여기서 새겨야 할 교훈이다. 문학을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구는 이런 지식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마 知識으로서의 文學學
영국의 영어교육은 상급학년으로 가면서 말하기/듣기..... 등의 활동으로 나누던 영역을 점차 언어와 문학으로 바꾸어 설정한다. 그러면서 언어활동을 말하기/듣기.....와는 다른 국면에서 분류한 것이다. 이처럼 다른 국면에서 분류가 가능한 것은 언어활동의 입체성 때문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면서 또한 언어와 문학은 학문적 지식을 내포하는 명칭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학문적 이름은 흔히 語學과 文學學으로 불린다.
어학과 문학학은 각기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 문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이 다루는 지식 체계는 곧 언어활동을 설명하는 두 종류의 상이한 것이다. 어학은 일상어를 주된 대상으로 삼으면서 문학어도 포함한다. 문학학은 문학어를 주대상으로 삼아 왔다. 그 대신 어학은 언어 자체가 지닌 체계성에 학문적 관심을 집중하는 반면, 문학학은 문학어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성립시키는 모든 요소, 이를테면 그렇게 말한 사람, 그 환경, 그 내면, 그 결과, 그 영향.... 등 언어활동에 관여하는 모든 것에 두루 관심을 가지는 차이가 있다.
언어활동을 교육하는 장에서는 언어를 운용하는 규칙만이 아니라 거기에 관여하는 모든 요소가 두루 문제가 된다. 이것이 언어활동의 입체성 때문임은 앞에서 이미 살핀 바 있다. 따라서 언어활동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이 두 학문이 개발한 지식이 중요한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영어교육이 상급학년으로 가면서 어학과 문학의 두 과목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은 이 두 학문의 지식으로 언어활동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런 해석에 다소 의아해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어학은 언어 그 자체의 규칙이나 질서에 중점을 두어 연구를 수행해 왔다. 문학의 연구도 그 예술성에 주목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언어활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교육의 장에서는 어학의 개념과 범주가 그 간의 전통적인 틀을 깨고 나와 보다 광범위하게 확대될 필요가 있다. 영국의 A-level에서 사용하는 교재의 목차가 그 실상을 보여준다.
Sara Thorne, Mastering Advanced English Languge, Macmillan, 1997.
I. Reference - the structure of English
1.The structure of English
2.Phonetics and Phonology
3.Style
4.How to use your knowledge
II. Language Issues - aspect of English
5.Some basic conepts
6.English: a living language
8.Language variation: regional and social
9.Child language - learning to talk
III. Varieties - English in use
10.Spoken English
11.The language of newspapers
12.The language of advertising
13.The language of literature-narrative prose
14.The language of literature-poetry
15.The language of law
16.The language of the Church
17.The language of politics
18.The language of broadcasting
19.Other varieties
20.How to use your knowledge.
한편으로 문학학도 문학이 지닌 예술성 못지 않게 일상성과의 관련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관행과 실상을 넘어서서 관점의 쇄신이 필요해지는 것이 이런 필요성 때문이며, 필자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해 온 것이다.
관점의 쇄신이라는 말은 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문학 연구의 지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혁명처럼 괴롭고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통적인 방법의 지양이나 배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은 걱정스럽다. 문학이 예술적 가치를 고양하는 길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막을 사람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지금까지 너무 전통적인 데만 억매어 있던 관점에서 이제 국어교육에 필요한 지식의 개발에도 눈을 돌리자는 것이다.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언급하였다.
바. 文學의 多面性과 國語敎育
지금까지의 논의를 이렇게 간추릴 수 있겠다. 문학은 그 용어의 함축이 多面的이므로, 특히 국어교육의 연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그 지칭하는 국면을 명확하게 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 文學學으로서의 문학은 국어교육에 소용되는 言語活動에 관련된 지식을 개발하는 동시에 藝術的 가치의 비밀을 설명하는 학문이자 그 지식 체계이다. 이 문학학의 기반 위에서 문학의 여러 국면이 조명되어 교육의 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이런 일이 될 것이고, 그러해야 할 것이다. 言語活動으로서의 문학은 다양한 언어 생활을 영위하게 해 줄 것이고, 言語文化로서의 문학은 국어활동에 투영된 삶의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언어를 세련되게 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藝術로서의 문학은 예술이 지닌 가치들을 향유하게 해 줄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 한 핵인 精神文化로서의 문학은 민족적 일체감과 삶의 가치를 깨우치게 해 주고 새로운 창달로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지금 우리 국어교육 및 그 연구의 실상이 그러한가 그러하지 못한가를 두고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지향을 분명히 하는 것만이 문학의 존재 의의를 분명하게 해 줄 것이며, 국어교육을 기름지게 해 줄 것이고, 문학교육을 발전시킬 것이다.
이런 전제가 충분히 이해되고 수용되는 상황이 의심 없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문학은 굳이 국어교육의 여섯 영역 중의 한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영역 구분과는 관계 없이, 그것으로부터 표연하게 떠나서 국어교육의 한가운데에 들어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래야만 문학도 본질을 다하고 국어교육도 힘찬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학과 국어교육의 본질에 입각하여 방향을 추구하고 발전해 나가자면 교육을 논의하는 데 그 위계성에 대한 고려를 앞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해진다. 지금까지 우리의 논의는 교육의 단계에 따라 문학이면 문학, 언어활동이면 언어활동이 그 성격과 기능을 달리한다는 점에 대해 살펴 온 셈이므로 이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 본다면, 단계가 높아질수록 언어의 일상성에 근거한 교육은 축소되는 반면에 예술성은 확대되도록, 활동을 기능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은 축소되는 대신에 지식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은 확대되도록 설계해 볼 수 있다.
교육이 우리를 둘러싼 삼라만상 하나 하나를 모두 가르치려 하지 않고 보편적 현상에 주목하고 또 그 현상의 기반이 되는 원리를 교육하는 것은 시‧공간적 경제성과 교육 행위의 효율성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또 언어활동이란 본질적으로 체험을 필요로 한다. 多讀, 多作, 多商量이라는 三多를 권했던 교육 방식은 바로 이 점을 강조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언어활동의 이런 측면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언어활동 개개의 사실이나 보다는 지식과 체험을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며, 문학은 이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피는 문제의 본질이 이러하므로 문학은 국어교육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문학작품을 문학작품으로 보는 데 한정하지 말고, 언어는 사회를 성립시키는 삶의 방식이자 세련된 형식이면서 의미를 창출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는 입체성에 근거를 두고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래야 문학의 진정한 의미에도 충실해질뿐더러 국어교육도 풍요롭고 체계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Ⅵ. 맺는 말
영국의 영어교육이 보여 주는 몇 가지 측면을 실마리로 삼아 구상해 본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거듭 확인하는 것은, 이것이 결코 신기한 발견이거나 이색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는 이런 관점을 일찍부터 지녔었고 또 그것을 한결같이 피력해 왔음을 그 간의 궤적이 보여 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새삼스레 늘어 놓고 다시 논의한 것은 영국이 이러저러하다는 소개의 의미를 넘어선다. 지구 저편에 이미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가 있다는 실증적 뒷받침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되풀이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이제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체화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 한 예로,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전망이 가능함을 보이기 위하여 국어교육이 결코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매체언어와 대중문화를 가지고 검토해 보기로 한다.
매체언어와 대중문화가 국어교육의 장에 들어오는 문제부터 논란이 예상되지만, 세계적인 흐름과 우리 생활 방식의 변화는 그것을 회피할 수 없게 만들어 가고 있다. 전자 시대 혹은 정보 시대로 호칭되는 새로운 세계에서는 담장을 둘러치고 들어앉아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매체언어나 대중문화는 문학이 오래 동안 추구해 오던 인간성의 고양이나 승화보다는 본능적 욕구를 충동질하거나 자극에 대한 즉물적 반응에 충실한 禽獸의 차원으로 인간을 몰아가는 영향력도 발휘할 수가 있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을 교육의 장에 불러 들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부딪혀 감당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라면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그 방법을 모색하는 데 문학 또는 문학학은 훌륭한 틀이 되고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문학이 국어활동의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문학이 지향하는 바와 매체언어 또는 대중문화가 지향하는 바가 거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문학을 잣대로 삼아 이들을 측정하는 데 유용한 한 가지 방안으로 대조의 방법을 구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적 구상이다.
그렇기는 해도 문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성의 고양을 겨냥하는 예술이므로 거기서 개발된 잣대로 매체언어와 대중문화를 잰다면 그 길고 짧음과 밝고 어두움이 드러나리라는 가정이 무의미한 것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므로 어차피 마주쳐야 하는 매체언어와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대조 분석이 문학의 예술성을 설명하는 기준 위에서 이루어진다면 그에 대하여 판단하고, 평가하고, 태도를 결정하는 마지막의 목표에도 순조로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美德이나 善으로만 가득할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이고 보면, 그 안에 살아 가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자체가 수없는 판단과 선택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 반응을 결정하는 일일 것이다. 국어교육이 그것을 겨냥한다면 그 일을 해 내도록 이론적인 틀을 세울 수 있는 것은 문학학이다. 이런 짐을 앞에 놓고 오로지 문학의 예술성에만 눈을 주고 골몰해 있는 것은 책임의 회피이거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 물론 매체 언어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우리의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이 세계의 통찰과 방법론적 심화를 해야 함도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또 문학이 국어교육의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는 뜻이다..
영국의 영어교육에서 보는 문학의 위상은 국어교육에서 문학이 짐져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있고 유익한 국어교육을 위해 문학학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그 결과는 효율적이고 풍요로운 국어교육의 구체화로 나타나고야 말 것을 믿는다.
참고 문헌
교육부, 제7차 교과 교육과정(각론) 개발 지침, 1997. 5.
김대행, 21세기를 대비하는 국어과 교육의 지향과 과제, 21세기 국어과 교육의 지향과 수준별 교육과정, 한국교육개발원, 1997.
김대행, 국어과 교육과정 분석과 수준별 교육과정 개발, 교육과정연구, 한국교육학회 교육과정연구회, 1996.
김대행, 국어교과학의 지평, 서울대출판부, 1995.
박영목 외, 국어교육학 원론, 교학사, 1996.
신헌재 외, 열린 교육을 위한 국어과 교수‧학습 방법, 박이정, 1996.
전성연 외, 수준별 교육과정 편성 방안 연구, 교육과정 개선 연구회, 1995. 12.
최현섭 외, 국어교육학개론, 삼지원, 1996.
허경철, 수준별 교육과정의 필요와 개발 방향, 교육과정 연구, 제14권 제2호, 1996.
AEB, 1997 Syllabuses: English, 1995.
Andrew Goodwyn, English Teaching and Media Education, Open University Press, 1992.
Andrew Stables, An Approach to English, Cassell, 1992.
Bob Allen, A School Perspective on Shakespeare Teaching, Lesley Aers & Nigel Wheale ed., Shakepeare in the Changing Curriculum, Routledge, 1991.
Brian Cox, Cox on Cox: An English Curriculum for the 1990's, Hodders & Stoughton, 1995.
Brian Cox, Cox on The Battle for English Curriculum, Hodders & Stoughton, 1995
Department for Education, English in the National Crriculum: England and Wales, HMSO, 1995.
Graeme Turner, British Cultural Studies: An Introduction 2nd ed., Routledge, 1992.
Ian Barr & Chris Walton, A-level Question and Answers, Letts Educational, 1995.
Ian Barr & Chris Walton, A-level Questions and Answers: English, 1995.
Ian Barr & Chris Walton, GCSE Questions and Answers, Letts Educational, 1996.
John Lisle & John Cahdfield, Key Stage 3 National Tests, Letts Educational, 1997, Booklet
Maurice Gilmour, Shakespeare for All in Primary Schools, Cassell, 1997.
Norman Fairclough, Critical Discourse Analysis, Longman, 1995. Cristopher Nash ed., Narrative in Culture, Routledge, 1994.
Office For Standards In Education, The Teaching of Reading in 45 Inner London Primary Schools, 1996.
Paul du Gay, et als, Doing Cultural Studies: The Story of the Sony Walkman, Sage, 1997.
Rosemary Coxon, A-level English, Letts, 1993.
Rosemary Coxon, Letts Study Guide: A-level English, Letts Educational, 1995.
SCAA, Report on the 1966 National Curriculum Assessments for 7-yea-olds: English, 1997..
SCAA, The Parent's Guide to National Tests: English Key Stage 2, 1997.
School Curriculum and Assessment Authority, Report on the 1996 National Curriculum Assessments for 7-year-olds: Standard at Key Stage 1, 1997.
Stuart Sillars, Longman Study Guides: A-level English, 1997.
Susan Leach, Shakespeare in the Classroom, Open University Press, 1992.
The Scottish Office Education Department, Curriculum and Assessment in Scotland National Guidelines: English Language 5-14, 1991.
The Scottish Office Education Department, Curriculum and Assessment in Scotland National Guidelines: English Language 5-14, 1991.
The Sunday Times, English Examplan, Times Newspapers Ltd., 1997.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내적 체계
김창원(인천교대 교수)
1. 문학교육 연구와 방법론
문학교육 연구가 하나의 ‘學’이 될 수 있는가. 문예학이나 교육학이 문학교육 연구를 매우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문학교육학’이라는 용어를 문예학이나 교육학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에 이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일천한 연구사, 연구 대상의 혼란, 불명료한 방법론, 연구 인력 부족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요인들은 모두 문학교육 연구의 학문적 정체성과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낳고, 그러한 회의가 다시 문학교육 연구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나타난다. ‘국어교육학’에 관한 박영목(1996:17)의 아래와 같은 지적은 문학교육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 국어교육학이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였다.
(2) 교과 내용에 더하여 교육학을 연구해야 하는 학문적 부담으로 어느 한쪽에도 깊이 연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전개되어 왔다.
(3) 내용을 깊이 알면 방법이야 적절히 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교육 방법의 연구를 연구로서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여기서 과연 ‘學’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대체로 學이란 현상을 체계적으로 기술(description)하고, 그 내적 원리를 바탕으로 규칙을 발견하며(discovery of regularity), 그로부터 이론과 법칙을 형성(formulation of theories and laws)하여, 현상을 설명·판단하고 예측·통제하는 일련의 정신적 과정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우선 연구 대상이 되는 현상이 분명해야 하고, 그로부터 일관된 법칙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며, 그 법칙이 다시 현상에 대해 설명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문학교육현상이 그러한 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만큼 안정적stable이고 인과적인 체계가 아니라는 데 있다. 실상 문학 연구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질문이 제기된 적이 있다. 조동일(1980:58)이 문학 연구에 관한 두 관점을 대비시킨 것을 보자.
<문학 연구를 보는 두 관점>
두 주장에 관한 조동일의 견해가 어떠하건 간에, 이 표만 보면 ‘문학은 연구할 수 없다’는 주장과 ‘연구할 수 있다’는 주장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강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주장이 논리적으로 그 타당성을 증명하기보다는 선험적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구 가능성에 대한 논란 자체가 ‘연구할 수 없다’는 주장의 반증 같기도 하고, 또는 ‘그런 논란이 이미 연구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문학교육 연구가 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이와 유사한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문학교육현상 자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 연구도 끊임없이 요동할 수밖에 없다는 ‘원죄론’부터 시작해서, 인문과학은 그 본질상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과 같은 엄밀한 방법론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기질론’, 지나치게 학적 정교성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역동적인 문학교육현상의 본질을 오도할 수 있다는 ‘정도(正道)론’, 아무리 해 봐야 응용문예학, 또는 교육학의 분과 학문으로서의 교과교육학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한계론’에 이르기까지, 문학교육 연구를 학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다른 한편에서는 문학교육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며 그 학적 정당성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문학교육현상 자체가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한 메타-사고로서 문학교육학도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토대론’에서 시작해서, 학적 정교성이 문제일 뿐 문학교육학 자체의 가치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된다는 ‘수준론’, 문학교육의 학적 정당성을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문학교육 연구자 스스로 그 정당성을 구성해 가야 한다는 ‘양성론’, 문학교육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문학교육학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당위론’에 이르기까지, 문학교육이 이미 혹은 가까운 장래에 어엿한 학으로 섰거나 서리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들은 각기 어떤 필연적인 근거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연구자의 학문적 배경이나 관점에 따라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교육 연구가 ‘학’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먼저 정하고, 그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아서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짙은 것이다. 결국 문학교육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학인가 아닌가’ 하는 해결하기 어려운 논쟁보다는 학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 행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 된다. 학이 된다면 어떤 근거에서 학이 될 수 있는지, 학이 되기 위한 조건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지를 찾아 가는 것이다. 그 중요한 통로가 학문으로서 갖추어야 할 방법론의 문제이고, 이 글은 그 방법론의 명료화를 위한 시도가 된다. 일정한 원리에 따라 문학교육 연구의 방법론을 체계화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학적 정체성과 정당성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2.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지정학
문학교육학이 지금은 학으로서의 체계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학이 되지 못한다는 확고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이상 그 연구는 나름대로의 의의를 지닐 수 있게 된다. 그 직접적인 목표는 이론의 수립에 있을 것이다. 연구를 통해 이론으로 나아감으로써 학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현섭 외(1995:77-79)에서 국어교육학 이론화의 의의를 설명한 바 있는데, 그것을 문학교육의 장으로 전환시켜 문학교육 연구의 의의를 살피면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1) 문학교육 연구의 학문적 정체성을 확보한다.
(2) 문학교육 연구의 방법 적합성을 확보한다.
(3) 바른 이론의 정립으로 문학교육 현장을 설득력 있게 견인하는 힘을 마련한다.
(4) 문학교육현상을 스스로 검증하고 결정하는 상위 기제로서의 준거틀을 마련한다.
(5) 문학교육학과 여타 영역 학문과의 學際性을 강화해 나간다.
말하자면 현상에서 법칙을 찾아내어 이론을 수립하는 과정 자체가 문학교육 연구의 학문적 정체성과 정당성을 확보해 가는 과정이며, 현상에 관한 확고한 지식, 곧 개념과 명제들의 체계로서 이론이 존재할 때 비로소 문학교육 연구를 하나의 ‘學’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립된 이론은 다시 현상을 검증하고 설명하는 상위 기제가 됨으로써 이론과 현상이 상호 규정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론과 현상을 매개하는 이 부분에 문학교육 연구의 방법론이 자리한다고 할 수 있다. 현상과 이론을 매개하는 방법론의 역할은 아래와 같은 모형에서 보다 역동적으로 드러난다.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ꠐ 이 론 ꠐ
ꀥ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ꀨ
↑ ↓
ꌈ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ꌊ
ꠝ 법칙화 설명․판단 ꠝ
ꠝ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ꠝ
ꠝ ꠐ방 법 론ꠐ ꠝ
ꠝ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ꠝ
ꠝ 기술․분석 예측․통제 ꠝ
ꌎ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ꠜꌐ
↑ ↓
ꀧ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ꀢ
ꠐ 현 상 ꠐ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문학교육 연구에서 방법론의 위치>
여기서 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론과 현상에 대한 방법론의 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은 언제나 현상 종속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론에 대해서도 종속적이다. 또는 이론 생성 과정에 간여한다는 점에서 메타-이론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문학교육현상과 문학교육 연구 이론과의 관계 위에 방법론을 모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모호함은 문학교육 연구 이론의 모호함의 증거인 동시에, 이론의 모호함을 낳는 이유가 된다. 이론의 모호함이 문학교육학의 학문적 성격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학적 정체성과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실상 대부분의 교과교육 연구가 ‘학이 성립하는가’에 관한 유사한 고민에 빠져 있으며, 그 고민의 돌파구를 ‘종합 학문’에서 찾고 있는 것도 이러한 모호함에 기인한다. 그러나 교과교육학을 종합 학문으로 보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학적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교과교육학은 하나의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개별 학문이라기보다는 교과의 내용과 구성에 관한 이해, 그리고 그 내용의 탐구와 학습에 관련된 교육의 원리 등을 여러 학문들로부터 도출하고 종합한다는 점에서 종합 학문이다.
이돈희(1994:21)의 위와 같은 지적이 한편으로 교과교육학의 종합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연구 방법론 모색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교과교육학을 종합 학문으로 바라보는 근거를 교과교육학이 ‘교과의 내용과 관련된 현상’ 및 ‘교과 내용의 탐구와 학습에 관련된 현상’을 한꺼번에 다룬다는 데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교과 내용학’과 ‘교과 방법학’의 구분을 조장한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처럼 교과 내용학과 교과 방법학을 갈라서 접근하는 것은 교과교육학 연구에서 자주 보게 되는 방법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논리적 함정이 숨어 있다. 첫째는 ‘내용학’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으로, 문학교육 연구의 경우 ‘내용학’을 문학(현상)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문예학’과 동일시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문학(현상)에 관한’ 지식과 ‘문학교육현상에 관한’ 지식은 층위가 다른 문제로서, 문학교육 연구에서의 내용학과 문예학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문예학은 문학교육 연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층위를 달리하는 배경 학문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둘째는 교수-학습 내용과 방법이 상호 분리될 수 있는 듯이 전제하고 있다는 점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현상:방법론>의 관계를 유추 적용할 있다. 곧 ‘내용에 관한 연구’와 ‘방법에 관한 연구’를 분리하는 것은 내용과 방법의 상호 규정성을 무시하거나, 편의상 갈라서 접근하는 태도에 불과한 것이다. 내용학과 방법학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해서는 박영목 외(1996:14-16)도 방법의 공허함을 야기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하며, 국어(교과/문학)교육학의 종합적 성격을 아래와 같이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귝어교육학은 내용과 방법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 내용과 방법이 합해져 제3의 어떤 이론을 정립한 결과만도 아니며, 내용과 방법이 혼재하는 학문이다. 순수 이론과 응용 이론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어교육학은 순수 이론도 방법 이론도 함께 있는 것이다.
학문의 성격에 관한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론의 문제를 짚어 보지 않을 수 없고, <대상-방법론>의 상호 규정적 관계에 따라 방법적 범주를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김대행(1995)이 국어교과학의 목표를 ① 국어 활동의 원리 연구, ② 교육 방법의 원리 연구, ③ 국어 교과의 연구 방법론 연구로 대별하면서 교과교육학의 핵심 영역으로 ‘연구 방법론’ 영역을 설정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라 할 수 있다.
3. 문학교육 연구의 방법론적 범주
3.1. 연구 대상 범주
지금까지 교과교육학의 체계를 연구한 논문들은 대체로 해당 교과의 연구 영역을 분류하는 데 치중해 왔다. ‘국어교육학’에 관련하여 전형적인 견해를 몇 가지 들어 보면 그런 경향을 확실히 알 수 있다.
A. 노명완(1988 ; 최현섭 외, 1996:53)의 분류
국어교육학 ꠆ꠏ 국어활동현상 ꠆ꠏ 표현 및 이해 ꠆ꠏ 사용자
연구 영역 ꠐ ꠐ 활동 ꠉꠏ 매개 언어
ꠐ ꠐ ꠌꠏ 과정·전략
ꠐ ꠌꠏ 지식(언어·문학·국어활동)
ꠌꠏ 교육현상(계획·실천·평가)
B. 이용주 외(1993)의 분류
국어교육학 ꠆ꠏ 국어활동에 관한 이론 연구
연구 영역 ꠉꠏ 국어활동을 실현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
ꠌꠏ 국어활동을 실현하는 행위를 가르치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C. 김대행(1995)의 분류
국어교육학 ꠆ꠏ 내용론적 연구 ꠆ꠏ 도구 측면 ꠆ꠏ 체계 영역
연구 영역 ꠐ (국어활동) ꠐ ꠌꠏ 사용 영역
ꠐ ꠌꠏ 문화 측면 ꠆ꠏ 생활문화 영역
ꠐ ꠌꠏ 예술문화 영역
ꠌꠏ 교육론적 연구
A~C를 살펴보면, 하부 영역에 가면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국어교육학의 연구 영역을 국어 활동과 관련된 내용론적 영역과 교과 운영과 관련된 교육론적 영역으로 대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현섭 외(1995)의 분류 체계도 이와 유사하지만, 박영목(교육부, 1992)의 경우는 언어사용 활동의 형태, 목적, 기저 지식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다른 접근 방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분류는 국어교육‘학’의 연구 영역이라기보다는 ‘국어교육’의 영역이라는 인상이 더 짙다. 또, A와 B는 자연 언어와 문학어를 구분하지 않는 데 비해, C는 ‘예술 문화’ 영역을 두어 둘을 구분하고 있다. 박영목과 최현섭도 문학 영역을 따로 두고 있다.
이 틀이 문학교육 연구의 대상 분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우선, 내용론과 교육론의 이분법적 접근은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 문학교육 연구에서 내용론이라면 윤여탁(1996b)의 분류대로 장르론적으로 접근하거나 <해석/수용 교육·표현 교육·지식 교육>과 같이 행동 영역별로 분류하게 되고, 교육론이라면 유덕제(1995)의 분류와 유사하게 <교육과정·교재·교수-학습·평가>와 같이 분류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이들이 별도의 연구 영역을 구성하리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영목(1992)의 방식대로 두 기준이 종횡으로 교차하는 입체적 관점이 문학교육현상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학교육 연구의 대상 범주와 관련하여 문학교육과정에 관한 공동 연구(우한용 외, 1996)를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연구는 문학교육현상에 관해 텍스트·학습자·사회 문화적 배경이라는 세 변인을 중심 축으로 하여 논의했는데, 그 전체상은 한철우(1996)의 토론문에 잘 정리되어 있다.
<문학교육관에 따른 문학교육과정의 내용 체계>
이 분류는 문학교육현상의 구성 요인을 주체·텍스트·컨텍스트로 범주화하여 보여줌으로써 문학교육 연구의 대상이 무엇인지도 함께 보여주는 힘을 갖는다. 문학을 인간과 유리된 자족적 구조물이 아니라 역사·사회·문화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이루어 내는 인간의 행동 영역에 위치시킴으로써 인간 행동을 다루는 교육의 특성과 연계하여 파악하도록 한 것이다. 다만 문학교육 연구 대상으로서 빠진 영역이 있다면 김대행(1995)이 언급했고 유덕제(1995)의 분류에도 들어 있는 연구 방법론 영역이다. 따라서 앞서 본 연구 전제에 대한 비판 및 기존 연구들의 성과와 관련하여 보면 다시 아래와 같은 연구 대상을 획정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대상 범주들은 다시 하위 범주를 갖는데, 그 범주들은 일렬로 배열되기보다 입체적으로 교직되는 관계를 이룬다.
<문학교육 연구의 대상 범주>
여기서 Text 영역은 문학텍스트 자체의 내·외적인 구조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텍스트의 꼼꼼한 읽기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문예학이 주로 이 영역을 담당하게 된다. 그에 비해 Texting 영역은 텍스트 행위, 곧 문학텍스트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유목적적 행위를 연구 대상으로 삼으며, 글쓰기와 텍스트 해석에 관한 진보적인 문예학이 주로 이 영역에 관심을 둔다. Meta-Texting 영역은 텍스트 행위에 관한 행위, 곧 문학텍스트와 관련된 인간의 행위를 조절하고 통제하며 견인하는 행위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학습자의 텍스트 행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절하려는 교육이야말로 전형적인 Meta-Texting 행위이며, 문학교육 연구는 바로 이 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자연히 Text 영역과 Texting을 포괄하게 됨은 물론이다.
비교하건대, 문예학이 텍스트 자체와 텍스트-인간의 관계를 문제삼고 교육학이 인간의 변화를 문제삼는다면, 문학교육 연구는 텍스트-인간 관계의 변화를 문제삼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상의 차이가 연구의 성격과 방법 등을 결정하고, 그 차이는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제시할 수 있다.
<대상 범주에 따른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논의 층위>
3.2. 연구 수준 범주
최현섭 외(1996:40-41)에서는 국어교육학의 탐구 모형을 구안하면서 탐구 대상으로 <인간·언어·활동·교육> 변인을, 탐구 수준으로 <철학-이론·모형-구조·과정·전략-실제>를 든 적이 있다. 이는 문학교육 연구에도 일정한 수준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때 각 수준의 연구가 독자적으로 문학교육 지식을 형성할 수 있을 때 문학교육 연구의 학적 체계가 서게 된다. 여러 수준의 지식이 유기적으로 통합되면서 문학교육에 관한 총체적 지식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때 지식은 개념과 명제의 형태로 제공되며, 관찰된 사실을 바탕으로 개념과 명제가 논리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형성하는 과정이 곧 연구라 할 수 있다.
문학교육 연구 수준은 그 연구가 어떤 종류의 지식을 형성해 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 최상층부에서는 문학교육 지식 형성에 관한 지식이 형성될 것이며, 최하층부에서는 문학교육 실천에 관한 실제적 지식이 산출될 것이다. 전자가 이론 지향적인 연구라면 후자는 실천 지향적인 연구가 된다. 하지만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연구의 지향점이 다른 만큼, 거기서 형성된 지식들을 매개하는 새로운 형식의 지식이 필요하게 된다. 추상적인 이론과 구체적인 실천을 매개하는 기능적 지식을 형성하는 연구를 문학교육 연구의 모형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형 연구는 문학교육의 실천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 연구와 구분되며, 문학교육에 관한 보편적 명제를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론 연구와 구분된다. 또한 모형 연구는 추상화와 형식화 정도 면에서 이론 연구와 실제 연구의 중간 부분에 있다. 모형 연구와 이론 연구를 구분하는 것은 모형 연구와 실제 연구를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데, 김광웅(1996:271)이 이론 연구와 모형(Model) 연구를 비교한 것을 보면 비교적 쉽게 그 정체성이 드러난다.
<이론과 모형의 대조>
여기서 이론 연구가 학문에 설명 체계를 제공하는 데 비해 모형 연구는 추론 체계를 제공한다는 지적은, 마치 이론 연구로부터 모형 연구가 산출되는 것인 양 잘못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형 연구는 <이론 연구 → 실제 연구>의 투입 과정에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연구 → 이론 연구>의 산출 과정에도 기능하며, 어떤 면에서는 이론 산출에 기여하는 것이 모형 연구의 본래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김광웅(1996:270)이 이론과 모형을 대조하면서 아래와 같이 형식화 정도를 기준으로 <모형→이론>의 구조를 강조한 것도 유사한 문제 의식 때문이다.
암시적 모형 명시적 모형 이 론
(Implicit Models) (Explicit Models) (Theory)
ꠐ ꠐ ꠐ
ꠐ ꠐ ꠐ
ꠉ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ꠊ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ꋼꠐ
ꠐ ꠐ ꠐ
ꠐ ꠐ ꠐ
ꋿ ꋿ ꋿ
기술적 가설 설명적 가설 명 제
(Descriptive Hypotheses) (Explanatory Hypotheses) (Propositions)
<이론과 모형의 형식화 정도>
이론과 모형과 실제로 연구 수준을 구분하는 것은 연구의 목표와 범위를 분명히 하고 연구 결과 형성된 지식을 문학교육 지식 전체의 체계 속에 효율적으로 위치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연구 방법론 탐색을 용이하게 하고 연구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하지 못한다. 김병성(1996:74)은 이와 유사하게 교육 연구 유형을 <기초 연구-응용 연구-평가 연구>로 범주화하여 설명하는데, 그의 설명 방식을 원용해서 세 연구 수준의 특성을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문학교육 연구에서의 이론-모형-실제>
3.3. 연구 방법 범주
문학(또는 국어)교육 연구의 학적 체계화를 지향하는 연구들(김대행, 1995 ; 최현섭 외, 1995 ; 박영목 외, 1996 ; 최현섭 외, 1996)이 연구 대상을 획정하면서 방법론 영역을 소홀히 취급했다는 점은 앞에서도 지적한 일이다. 실제로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이 문학교육 연구의 본령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문학교육현상과 이론을 매개하는 것이 방법론이라 한다면, 방법론은 문학교육 연구의 학적 정체성과 정당성을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디딤돌이라 할 수 있다. 연구공동체 구성원들은 내적으로 ‘문학교육현상이 있으므로’ 문학교육학이 가능하리라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지만, 대상이나 신념이 학의 성립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대상과 함께 문학교육에 고유한 개념과 법칙과 연구 방법론이 필수적인 것이다.
대상과 무관하게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콰인이 분류한 ‘분석과학’의 경우가 순수한 방법론에 가까운 예가 되겠지만, 그것이 ‘경험과학’과 연계되지 않는 한 분석과학은 뿌리 없는 사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여기서 연구 대상과 수준을 문제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에서의 방법론과 ‘문학교육 연구의 방법적 범주’에서의 방법은 층위를 달리하는 개념이다. 전자가 대상·수준과 통합된 방법론이라면, 후자는 어느 정도 절차와 테크닉으로서의 연구 방법을 의미한다.
문학교육 연구의 주류를 이루는 방법은 대부분 문학 연구 방법에서 차용해 온 것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 방법은 다분히 문학론의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으로, <Text → Texting → Meta-Texting>의 관계를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한편으로 문학교육 연구의 과학화라는 의도를 강조한다면 <가설-실험-논의>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실험 연구도 가능하지만, 문학교육을 포괄하는 문학교육현상의 본질상 그러한 방법 역시 문학교육 연구에서는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다. 결국 문학교육 연구의 방법과 관련하여 합의된 것은 ‘문학교육현상을 논리적,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는 명제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문학교육 연구가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으며, 문학교육 전공의 연구 인력도 풍부해졌고, 연구 성과도 많이 축적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가?
이와 관련해서 김중신(1996)은 문학교육 연구의 패러다임을 아래와 같이 분류한 적이 있다.
(1) 내용으로서의 문학 연구적 패러다임
가. 문학 작품의 인식과 해석에 대한 연구 : 작품 내적 질서의 이해를 통한 해석(김동환, 1994 ; 최인자, 1993 ; 이경숙, 1994 ; 이지호, 1994), 소통적 해석의 틀 속에서 해명(김창원, 1995 ; 최미숙, 1993)
나. 문학현상의 분석 연구 : 교육 내용의 지배 담론 분석(최지현, 1994 ; 정재찬, 1996), 텍스트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김상욱, 1996)
다. 문화 지향성에 관한 연구 : 문화 수용 주의(김대행, 1995 ; 정현선), 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이숭원, 1996 ; 윤여탁, 1996a)
(2) 방법으로서의 교육 실천적 패러다임
가. 언어와 문학의 상보성 강조(교육과정), 문학텍스트의 독자적 영역 체계 규명(박인기, 1996)
나. 교과로서의 문학교육 연구 : 수업 방안 모색(강승남, 1991), 문학교육의 제도적 현상 모색
(3) 제도로서의 국어교육적 패러다임 : 수능시험 관련
‘연구 패러다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연구도 대상 범주와 방법 범주를 통합해서 다루고 있다. 여기서 세부 방법들을 방법적 동족성을 기준으로 다시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A. 현상학적 방법 ꠆ꠏ 독자 지향 : (1) - 가.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미시적
ꠌꠏ 문화 지향 : (1) - 다.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ꠊꠏꠏꠏꠏꠏꠏꠏꠏꠈ 거시적
B. 공학적 방법 ꠆ꠏ 수업 지향 : (2) - 나.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ꠐ
ꠌꠏ 제도 지향 : (3)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C. 체제 접근적 방법 : (2) - 가.
D. 비판적 방법 : (1) - 나.
여기서 ‘현상학적’이라 함은 인간의 삶의 세계(또는 생활 세계, Lebenswelt)를 일상적 상황의 전체적 해석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방법을 말한다. 현상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연구자들은 그러한 삶의 세계에 이미 자신의 일상적 체험을 함께 갖고 있으며, 자신의 학문적 작업을 위해 그와 같은 일상적 체험을 이용한다.(Helmut Seiffert/전영삼, 1994:39) 그에 비해 ‘공학적’이라 함은 문학교육현상에 개재하는 변인들의 특성 탐색을 통해 인간, 혹은 제도를 통제하고 조작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경향을 말한다. 연구 성과를 살펴볼 때 지금까지의 문학교육 연구에서는 현상학적 방법이 주류를 이루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A~D에 이르는 방법 범주들은 결과로서 나타난 것일 뿐, 그러한 범주화의 준거를 말해 주고 있지는 않다. A-B-C-D가 한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도 애매하며, 그 이면에 한 가지의 방법적 준거가 작용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연구 방법의 범주화를 위해서는 각각의 연구에 적용된 방법들을 방법의 최소 단위로 환원하여(A와 B를 ‘미시적/거시적’으로 환원한 것처럼) 그들 간의 선택적 결합 관계를 따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절차로 보인다. 그러한 방법의 최소 단위는 공시적/통시적, 구조기능론적/갈등론적, 가치론적/탈가치론적, 법칙 정립적(nomothetisch)/개성 기술적(idiographisch), 실험적/추론적, 보편적 전칭의/개별적 특칭의, 분석적/비분석적, 실증적/비판적, 인식적/심미적, 정적stable/동적dynamic, 질적/양적, 철학적/공학적, 기술적/해석적/구성적, 형식주의적/과정주의적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들을 일일이 따져 볼 겨를은 없지만, 개개 방법들의 철학적 기저와 기술(技術)들에 대해서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사례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는 있다. 이들 기초 방법소(方法素)들이 대상과의 관련에서 선택적으로 결합하여 실질적인 연구 방법론을 구성하는 과정이 곧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4.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체계 모형
문학교육 연구에서 방법론을 문제삼는 이유는 하나의 ‘學’으로서 내적 정당성과 함께 외적 설득력을 아울러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실제로 문학교육 연구를 되돌아보면 방법론적 미숙성이 눈에 뜨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자성이 있을 때 문학교육 연구의 질이 더욱 높아질 수 있으며, 이 글도 그러한 자성의 일부로 이루어진 것이다.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은 문학교육 연구의 학적 구조를 체계화하고 그 안에서 방법론Methodology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발전 도상에 있는 학문일수록 주기적으로 방법론에 대한 자기 점검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연구사 또한 ‘어떠어떠한 문제에 관해 연구가 이루어졌다’든지 또는 ‘어떠한 개념과 명제가 지식으로 자리잡았다’는 대상/내용 중심의 연구사뿐 아니라, 어떠어떠한 방법론이 사용됐으며 방법론이 어떻게 다양화·정교화돼 왔는지를 살피는 방향에서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해야만 문학교육 연구를 위한 매뉴얼도 제공할 수 있고 문학교육 연구 인력 양성을 위한 커리큘럼도 구안할 수 있는 것이다.
3.1~3.3에서 살펴본 것은 문학교육 연구의 방법론적 체계화를 모색하기 위한 기초 조건이었다. 대상과 수준, 방법의 범주에서 문학교육 연구 고유의 개념과 명제들이 확립될 때 비로소 문학교육 연구가 학으로서 성립할 수 있을 터이다. 여기서는 그 모색을 위한 접근 모형을 아래와 같이 그려 본다.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접근 모형>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방법 범주의 출처이다. 문학교육현상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기초한 사회적 현상으로 본 결과, 연구 방법 범주도 다분히 사회과학의 연구 방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과학 연구 풍토가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이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방법도 자연히 도구적 합리성에 근거한 ‘과학적’ 방법 위주로 발전해 왔다. 여기서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가’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지호(1997)나 최미숙(1997)의 경우 전통적인 혹은 모더니즘적인 텍스트의 글쓰기 방식을 점검하여 그로부터 당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데, 이는 혹시 用事와 新意의 상호 조회를 바탕으로 했던 동양적 사고에서 암시를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추리를 해볼 수 있다. 이것을 ‘법칙 정립 → 현상 설명 및 예측’이라는 기존의 방법틀로 설명하려면 많은 부연이 필요하지만, 동양적 사고에서는 그러한 부연이 필요없는, 너무나 일반적인 방법일 뿐이다. 따라서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지평 확장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리에게 적절하고 어쩌면 고유한 방법을 정교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강승남(1991), 「소설의 가치 탐구 수업 방안 연구」, 서울대 대학원(석사).
교육부(1992), ꡔ고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 해설ꡕ, 대한출판사.
김광웅(1996), ꡔ방법론 강의ꡕ, 박영사.
김대행(1995), ꡔ국어교과학의 지평ꡕ, 서울대 출판부.
김동환(1994), “소설의 내적 형식과 문학교육의 한 가능성”, ꡔ국어교육ꡕ 83·84, 한국국어교육연구회.
김병성(1996), ꡔ교육연구방법ꡕ, 학지사.
김상욱(1996), ꡔ소설교육의 방법 연구ꡕ, 서울대 출판부.
김중신(1996), “문학교육의 패러다임 점검과 전망”, ꡔ제1차 연구발표회 발표요지ꡕ, 한국문학교육학회.
김창원(1995), ꡔ시교육과 텍스트 해석ꡕ, 서울대 출판부.
김창원(1997), “문학교육 연구 방법론의 비판적 검토”, ꡔ문학교육학ꡕ 1집, 한국문학교육학회.
박영목·한철우·윤희원(1996), ꡔ국어교육학 원론ꡕ, 교학사.
박인기(1996), ꡔ문학교육과정의 구조와 이론ꡕ, 서울대 출판부.
우한용·박인기·박삼서·정구향·김중신·김상욱·김창원·정재찬(1996), 「문학 영역 교육과정 내용의 체계화 연구」, 연구 보고서 96-3,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유덕제(1995), 「소설텍스트의 문학교육 방법 연구」, 경북대 대학원(박사).
윤여탁(1996a), ꡔ시교육론ꡕ, 태학사.
윤여탁(1996b), “문학교육 연구사의 비판적 검토와 전망”, ꡔ제1차 연구발표회 발표요지ꡕ, 한국문학교육학회.
이경숙(1994), 「놀이 구조를 통한 희곡 해석 방법 연구」, 서울대 대학원(석사).
이돈희(1994), “교과교육학의 성격과 과제”, 이돈희·황정규·윤희원·조영달·권오량·우정호·최승언·강신복(1994), ꡔ교과교육학 탐구ꡕ, 교육과학사.
이숭원(1996), “시교육에 도입된 이론적 지식의 몇 가지 오류”, ꡔ국어교육연구ꡕ 2,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이용주·구인환·김은전·박갑수·이상익·김대행·윤희원(1993), “국어교육학 연구와 교육의 구조”, ꡔ사대논총ꡕ 46,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이지호(1994), 「고전 소설의 대화 유형 연구」, 서울대 대학원(석사).
이지호(1997),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방법론 연구」, 서울대 대학원(박사).
정재찬(1996), 「현대시교육의 지배적 담론에 관한 연구」, 서울대 대학원(박사).
정현선(1995), 「모더니즘시의 문화교육적 연구」, 서울대 대학원(석사).
조동일(1980), ꡔ문학연구방법ꡕ, 지식산업사.
최미숙(1993), 「시텍스트 해석 원리에 관한 연구」, 서울대 대학원(석사).
최미숙(1997), 「한국 모더니즘시의 글쓰기 방식에 관한 연구」, 서울대 대학원(박사).
최인자(1993), 「작중 인물의 의미화를 통한 소설교육 검토」, 서울대 대학원(석사).
최지현(1994), 「한국 현대시교육의 담론 분석」, 서울대 대학원(석사).
최현섭·최명환·노명완·신헌재·박인기(1995), ꡔ국어교육학의 이론화 탐색ꡕ, 일지사.
최현섭·최명환·노명완·신헌재·박인기·김창원·최영환(1996), ꡔ국어교육학개론ꡕ, 삼지원.
한철우(1996), “문학교육과정의 내용 체계”에 대한 토론문, 우한용 외, 「문학 영역 교육과정 내용의 체계화 연구」, 연구 보고서 96-3,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Seiffert, Helmut(1994), ꡔ學의 방법론 입문ꡕ Ⅰ·Ⅱ, 전영삼 역, 교보문고.
대화에서 반복표현의 성립조건과 유형
노 은 희(서울대 대학원)
1. 들어가며
반복은 대부분의 담화 장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언어 현상이다. 이 때, 반복은 언어의 제 층위에서, 언어의 각 요소나 구조에서, 그리고 그 요소나 구조의 특정 자질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반복표현은 이러한 여러 가지 양상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반복성을 띠게 된 언어적 결과이다.
이러한 반복 현상의 광범위성․복합성 때문에 총제적인 접근이 어려웠고, 나아가 반복에 대한 인식이 언어학적 가치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연구성과가 축적되지 못했던 듯하다. 지금까지의 언어 기술은 구어와 문어의 구별없이 언어 현상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왔다. 보다 정확히 지적하자면, 구어보다는 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문어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데 주력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반복표현에 대한 낮은 관심도 사실 문어 중심의 언어 기술에 따른 결과일 수 있다. 우리가 구어와 문어라고 하는 두 종류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동일한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며 동일한 절차를 거치는 것은 더욱 아니다(장소원, 1995). 특히, 언어 사용의 원리를 규명하고자 할 때는, 구어와 문어에 따른 표현 양상의 차이는 핵심적인 연구 과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문어와는 대비되는, 나아가 구어에서 중심적인 언어 양상 중 하나로 반복표현을 연구대상으로 주목하고자 한다.
반복은 대화를 비롯하여 구어담화 장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반복의 보편성은 어쩌면 반복이 구어담화에서는 최소한 필수적이고 주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반복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경도된 시각들은, 구어담화에서 반복의 다양한 기능을 단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구어담화의 실제 사용상의 특성을 간과한 탓이기도 하다. 구어담화는 즉각적인 직접 대면 속에서 운용해야 하는 장면적 특성에 따라 인지적 부담이 적고 생산이 쉬운 반복표현을 쓰기 마련이다. 나아가, 반복표현은 정확한 정보 전달과 사회적 유대의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예를 들어,
(1) A : 나 군대 간다.
B : (뭐,) 군대 간다고?
(2) A : 오늘 날씨 좋지?
B : (그래), 날씨 좋구나.
여기서 반복표현을 통해, (1)의 B는 즉각적인 장면 속에서 자신이 들은 정보를 재차 확인하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2)의 B는 상대방의 정서에 동감하며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반복표현들은 구어담화에서는 더 이상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아니며, 오히려 의사소통상에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인 것이다.
요컨대, 구어담화에서(특히, 대화에서) 반복은 널리 사용되며 그 양상이 문어담화와는 다르다. 이에 구어담화를 중심으로 한 반복표현의 정립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담화 차원에서의 반복표현의 양상에 대한 총제적인 연구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뚜렷한 규정 없이 ‘반복표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3) A : 나 군대 간다.
B : ㄱ. 군대 간다고?
ㄴ. 벌써 간다고?
ㄷ. 뭐라고?
B의 ㄱ~ㄷ은 반복표현의 개념 한정에 따라, 반복표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반복표현을 유사한 형식을 중심으로 살피면 ㄱ․ㄴ이 포함될 수 있고, 되풀이하며 확인하는 질문의 기능을 중심으로 보자면 ㄱ․ㄷ이 포함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화에서 반복표현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먼저 반복표현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보편적인 반복의 성립조건을 일차적으로 살펴보고,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대화의 특성에 따른 반복표현의 성립조건을 이차적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여기서 일차적 성립조건은 이차적 성립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발판의 역할을 수행한다.
2. 대화에서 반복표현의 성립조건
2.1. 일차적 성립조건
‘반복’은 언어 제 층위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휘) 요소와 (통사) 구조의 재사용을 뜻한다. 실제 언어사용에서는 요소와 구조가 서로 통합되어 복합적인 반복표현을 생산하기 마련이지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반복적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요소의 ‘선정’을 통해, 다른 하나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배열’을 통해 반복성을 띨 수 있다. 즉, 요소의 선정에 초점을 두어 동질 요소의 재사용을 통해 반복성을 드러낼 수 있고, 배열에 초점을 두어 이질 요소라도 동일 배열을 통해 반복성을 드러낼 수 있다. 동질 요소의 동일한 배열이 반복적 양상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반복표현은 동질 요소의 선정과 동일한 배열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러한 결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선 반복성을 띨 수 있는 제 유형들을 검토한 후, 그 중에서 반복표현을 한정하려 한다.
먼저, 어휘요소의 재사용에 초점을 두어 반복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어휘요소의 재사용을 통해 성립될 수 있는 반복유형을 일차적으로 상정할 수 있다. 반복은 요소와 요소가 결합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우선 반복유형은 일정간격을 두고 동일 또는 유사한 두 개 이상의 요소가 출현해야 한다. 반복요소는 선행하는 요소와 후행하는 요소로 이루어지며, 후행하는 요소는 하나 이상이어야 한다. 선행요소는 배경이나 조건이 되며, 후행요소는 여기서 선택된다. 언어사용자의 후행요소 선택이 반복의 결합방식을 결정한다. 즉, 언어사용자는 선행요소와의 연결 간격을 정하고 선행요소와의 연결 자질을 선택하여 후행요소를 형성함으로써 전체 반복유형을 완성한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a a′
b ꀉ자질 자질 ꀈb′
c c′
⋮ ⋮
선행요소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후행요소
간격 : A, B, C…
반복요소는 선행요소 R과 하나 이상의 후행요소 R′로 이루어진다. 이 두 요소는 A․B․C 등의 다양한 간격을 두고 출현하며, 선행요소의 자질 a․b․c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이 선택되어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후행요소 a′․b′․c′등의 자질과 연결된다. 반복유형은 선행요소와 후행요소 사이의 결합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요소간의 결합간격과 요소간의 결합자질이 반복의 결합방식에 주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사항이며 따라서 이것들이 반복유형 분류의 주요한 일차적 기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반복간격으로 단어․문장․담화를, 반복자질로 소리․형태․의미를 일차적으로 상정할 수 있다.
요컨대, 반복간격과 반복자질을 기준으로 반복유형의 체계를 세우면, 다음처럼 9가지의 반복유형(Aa~Cc)이 이론적으로 설정될 수 있다.
꠆ꠏꠏ(a) 소리자질 반복
꠆ꠏꠏ(A) 단어내 반복 ꠉꠏꠏ(b) 형태자질 반복
ꠐ ꠌꠏꠏ(c) 의미자질 반복
ꠐ ꠆ꠏꠏ(a) 소리자질 반복
ꠉꠏꠏ(B) 문장내 반복 ꠉꠏꠏ(b) 형태자질 반복
ꠐ ꠌꠏꠏ(c) 의미자질 반복
ꠐ ꠆ꠏꠏ(a) 소리자질 반복
ꠌꠏꠏ(C) 담화내 반복 ꠉꠏꠏ(b) 형태자질 반복
ꠌꠏꠏ(c) 의미자질 반복
흔히 단어내 반복유형(A)에 따른 언어적 결과를 ‘반복어’로, 문장내 반복유형(B)에 따른 언어적 결과를 ‘반복구문’으로, 담화내 반복유형(C)에 따른 언어적 결과를 ‘반복표현’으로 칭한다. 즉, 이 중에서 본고의 관심 대상인 반복표현은, 담화 차원에서 두 문장(또는 그 이상) 사이의 간격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요소들간의 결합을 말한다.
그러면, 담화내 반복은 소리․형태․의미 자질에 따른 반복유형(Ca~Cc)으로 세분할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유형이 반복표현이 될 수 있는가?
(4) A : 나 군대 간다.
B : 뭐, 군대 간다고?
(5) A : 그들이 허위보고를 했소.
B : 뭐, 진실이 아닌 것을 말했다고?
(6) A : 자, 따라 읽으세요. 어니스트.
B : 어니스트.
여기서, 진한 글자는 선행요소이고, 밑줄친 글자는 후행요소이다. 곧, (4)는 앞의 ‘군대 간다’는 선행요소의 동일하거나 유사한 형태 자질을 선택하여 ‘군대 간다고’라는 후행요소를 형성함으로써 반복표현을 완성하고 있다(Cb 유형). (5)는 형태 자질보다는 ‘허위보고를 하다’라는 선행요소의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 자질에 기대어 후행요소와 연결하고 있다(Cc 유형). 또 이와 다르게 (6)은 /어니스트/라는 소리의 일치를 통해 반복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Ca 유형).
결론적으로 말해서, 본고에서는 형태 자질의 반복(Cb)으로 제한하여 다루고자 한다. 이처럼 형태자질의 반복으로 제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가장 많이 사용된다. 즉, 다른 유형에 비해 실제 언어사용의 장면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다. 둘째, 가장 전형적이다. 언어사용자가 반복표현으로 가장 잘 인식해낸다. 셋째, 기본적이다. 형태의 반복은 다른 유형의 반복을 수반한다. 넷째, 결속 방식을 따른다. 담화내에서 형태의 반복은 두 문장을 서로 결속시키며 대화를 연관짓는 언어기제로 사용된다. 이로써, 반복표현을 담화내 형태 자질의 반복유형으로 일차적으로 한정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그런데 처음 두 이유는 실제적인 것이므로 설명이 크게 필요없지만, 나머지 두 이유는 또다른 설명을 요한다. 우선 세 번째 이유를 중심으로 반복표현을 담화내 형태 자질의 반복유형으로 한정하는 데에 대한 타당성을 주장하려 한다. 사실 지금까지도 형태 자질의 반복유형 연구가 주축이 되어 반복현상을 설명하여 왔다. 이것은 형태 자질은 소리와 의미 자질을 동시에 수반하여 나머지 유형과 그 기능까지 함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와 의미 자질의 반복유형은 이에 비해 한 가지 자질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반복유형으로 인식되는 데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이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보자.
먼저 소리 자질의 반복유형은 형태와 의미의 자질을 수반하지 않는다. 즉, 소리간의 연결로 형태층과 의미층의 실체를 이끌어 낼 수 없다. (6)에서의 반복은 소리의 따라하기로 B의 ‘어니스트’가 지시하는 의미내용은 없다. 또 소리의 일치에 의해 형태의 반복성을 유지하는 듯하나, /어니스트/는 발음상의 문제이지 형태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흔히 언어사용자들은 이를 유의미한 반복표현이라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리나 형태 자질의 반복을 수반하지 않고 의미 자질 단독으로 반복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가? (5)는 화맥상의 동의어를 중심으로 보면, 형태나 소리 자질의 반복이 없는 의미 자질의 반복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미가 완전한 등가성을 가지고 되풀이됨을 인정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다. 즉, 형태의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일정 정도의 의미의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사실 의미 자질이 형태 자질의 반복을 수반하지 않고 완전히 등가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면, 형태 자질의 반복은 (4)의 예처럼 항상 소리과 의미의 자질의 반복을 수반한다. 따라서 형태 자질간의 연결은 의미와 소리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이끌게 된다. 이는 언어사용자가 형태 자질의 반복유형을 다른 유형에 비해 전형적 유형으로 널리 인식하게 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즉, 세 자질이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반복유형을 형성할 수 있는 형태 자질이, 반복성을 분명히 드러내기 마련이다. 사실, 세 가지 자질은 완전히 독립하여 각자 쓰이기보다는 긴밀히 연결․통합되어 운용되기가 쉽다. 그런데 반복은 하나 이상의 자질간의 연결이므로 소리 또는 의미 자질만으로 반복성을 띨 수는 있지만 전형적인 반복표현으로 인식되는 데는 부족하다.
다음으로, 세 번째 이유를 근거로 하여 네 번째 이유가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담화 차원에서 즉, 두 문장 간의 어휘요소의 형태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재사용은, 소리와 의미 자질의 동일하거나 유사함을 자연스럽게 수반한다. 따라서, 두 문장간의 두 반복요소는 동일한 대상을 지시하며 의미를 연결하기 마련이다. 이로써 어휘요소간의 결합은 자연스럽게 두 문장을 연결시키는 결속기제로 작용한다.
앞의 예에서 우선 (6)처럼 소리자질만의 반복으로 의미연쇄를 이루기 어렵다. (5)의 경우에는 의미연쇄를 이룰 수 있지만, 각 어휘요소의 기제를 통해 이루어지기보다는 상위의 의미관계를 통해 연결된다. 그에 비해, (4)의 경우는 공통된 어휘요소를 통해 의미연쇄를 이루고 있다.
담화는 저마다의 주제를 갖고 있으며 그 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담화를 구성하는 요소들간의 의미연쇄를 이루는 것을 결속적 방식이라 한다. 대화에서 화자는 선행발화와 후행발화를 의미적으로 일관되게 연결함에 있어서 여러 결속기제 중 화자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 중에서 반복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주체․행위의 특수성이나 구체성에 강조점을 두어 ‘의미를 명료화’할 수 있는 기제이다. 이처럼 담화내 형태 자질의 반복은 소리나 의미 자질의 반복과는 달리 분명한 결속기제로서 기능한다. 이는 담화 차원에서의 반복표현은 단순히 되풀이하는 행위가 아니라, 화자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요소들을 결합하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요컨대, 대화에서의 반복표현은, 일차적으로 담화내에서 문장간의 간격을 두고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휘요소의 형태 자질을 재사용한 후행발화로 한정하고자 한다.
2.2. 이차적 성립조건
지금까지는 선행발화와 후행발화가 하나라도 공통된 요소를 지니면 반복표현에 포함시켰다. 즉, 본고에서 일차적으로 한정한 대로 반복이 ‘담화 차원에서 형태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휘 요소의 재사용’이라면 선행발화와 후행발화 간에 하나라도 공통된 어휘요소를 지니면 반복표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두 문장을 연결짓는 결속기제로의 반복 어휘요소에 대한 설명력만을 가진다.
(7) A : 철수는 왜 아직 안 왔니?
B : ㄱ. 철수는 바빠.
ㄴ. 철수는 왜 안 왔냐고?
여기서 (Bㄱ)의 대답은 선행발화 A에 대해 ‘철수’라는 공통된 어휘요소를 통해 발화를 연결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결속적인 표현이다. (Bㄴ)의 대답도 마찬가지로, ‘철수’, ‘왜’, ‘안 오다’ 등의 어휘요소를 통해 발화를 연결하는 결속적인 표현이다. 이 때, 우리는 이 두 대답을 모두 반복표현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즉, (Bㄱ)의 대답에서 ‘철수’라는 공통된 어휘요소만으로 반복성을 띠기에는 부족하다. (Bㄴ)은 이에 비해 선행발화와 공통된 어휘요소의 수가 많고 그 배열이 유사하기 때문에 반복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반복표현은 기본적으로 결속적이다. 반복표현은 선행발화와 결속으로 이루어진 하나 이상의 어휘요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꾸로 결속적인 표현만으로 반복표현을 담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유의미한 반복표현으로 인식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별개의 한정이 필요하다. 즉, 어휘요소의 일치와 함께 그 배열의 유사함도 어느 정도 확인이 되어야 반복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다.
만일 선행발화가 “달이 커다랗게 떴다.”라고 가정하고 이에 대한 후행발화의 요소와 그 배열을 생각해보자. 우선 요소 선정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크게 세 가지의 경우가 가능하다.
가. {달, 커다랗게, 뜨다}
나. {달, 커다랗게, 뜨다 + α, β, γ…}
다. {α, β, γ…}
(가)는 선행발화에 쓰인 요소만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선행발화에 쓰인 요소 외에 다른 요소가 더 첨가된다. (다)는 선행발화의 어휘요소와 전혀 형태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어휘요소로 발화를 구성한 경우이다. 일차 한정에 따라 (다)에서는 반복표현이 생산될 수 없다. 즉, (다)는 이미 이질적인 요소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반복표현을 구성하지 못한다.
물론, (가)의 요소들로 이루어진 표현이 가장 반복성을 띠며, 그 어휘요소의 수가 많을수록 그 배열이 일치할수록 그 정도는 높아진다고 하겠다. (나)에서도 반복표현이 생산될 수도 있지만, 새롭게 첨가된 요소와 함께 재배열하게 되면 반복에 대한 인식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반복표현으로서 선택가능한 후행발화를 생각해보자.
(8) A : 달이 커다랗게 떴어.
B : ㄱ. 달이 커다랗게 떴다고?
ㄴ. 달이 벌써 떴다고?
여기서 (Bㄱ)은 (가)에 의해, (Bㄴ)은 (나)에 의해 생성된 후행발화이다. 그렇다면 (Bㄴ)은 반복표현인가? 미리 결론짓자면, 본고는 (Bㄱ)만을 반복표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Bㄱ)은 선행발화의 요소에서만 어휘요소를 선정․배열하여 그것만으로 하나의 발화를 이루는데 비해, (Bㄴ)는 이 외에도 새로운 요소가 첨가된 경우이다. 즉, ‘달이․뜨다’ 라는 기존의 요소와 ‘벌써’라는 새로운 요소가 결합하여 후행발화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양상은 사실 무한대로 확장이 가능한데 이들을 경계지을 마땅한 근거는 없다. 선행발화에서만 후행요소를 따올 경우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지 않기 때문에 반복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만일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면 반복표현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면서 새 정보에 집중하게 되버린다. 따라서 본고에서 유의미한 반복표현은 (가)처럼 선행발화에서만 요소를 선정하여 후행발화를 구성한 것이라고 하겠다.
반복표현으로 (나)를 배제하고 (가)로 한정하는 데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가)와 (나)가 담화장르을 통해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다. 유의미하다고 보는 (가)의 경우는 구어담화에만 쓰이지만 (나)는 문어담화에도 쓰인다. 물론 이 두 유형 모두 구어담화에서 빈번하게 나타나지만 특히 전자의 경우는 거의 구어담화에만 사용된다. 따라서 본고가 대화에 초점이 있는 만큼 전자가 대화의 기능상 유의미하게 파악될 수 있다.
둘째, (가)와 (나)는 결속 방식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자는 어휘 기제 중에서도 반복기제가 주요하게 작용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후자는 반복기제 외에도 다른 어휘항목이 첨가되어 의미-구조적 관계가 다소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어휘 기제가 보다 주요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반복기제가 문장간 결속에 절대적으로 작용하지만, 후자는 반복기제가 문장간 결속의 일부로서 작용한다.
셋째, (가)와 (나)가 재구성할 수 있는 후행발화의 수가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선행발화에서만 그 요소를 선정하여 재구성하기 때문에 한정적이라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첨가된 요소의 종류, 어순 재배열 등과 같은 이유로 해서 거의 무한대라고 확장될 수 있다.
그런데 (가)에 따라 구성된 후행발화일지라도 유의미한 반복표현이 되려면 어순배열에 있어서 선행발화의 배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후행발화를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9) A : 달이 커다랗게 떴어.
B : ㄱ. 달이 커다랗게 떴다고?
ㄴ. 달이 떴다고, 커다랗게?
ㄷ. 커다랗게, 달이 떴다고?
A의 선행발화의 요소로 후행발화를 재배열함에 있어서 B의 ㄱ․ㄴ․ㄷ이 가능한데, (Bㄱ)의 경우는 선행발화의 어순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고, (Bㄴ)․(Bㄷ)은 각각 오른쪽일탈문과 왼쪽일탈문을 통하여 배열을 달리한 것이다. 이 때, 선행요소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두 반복표현일 수 있으나, (Bㄴ)․(Bㄷ)은 배열 방식이 달라진 만큼 의미-구조적으로도 다소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Bㄱ)을 중심으로 어순배열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유형을 유의미한 반복표현으로 다루고자 한다. 나머지는 반복표현으로 인식하는 데 어순 배열의 변화가 다소 장애를 준다. 즉, 어순 변화에 의해 특정 요소를 초점화하거나 강조할 수 있는데 이로써 새로운 정보가 첨가가 되어 선행요소에 대한 반복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새로운 정보로 이끌리기 쉽다.
따라서 일차와 이차의 한정을 통해 본고에서 설정한 반복표현은, 선행발화와 이질적인 어휘요소없이, 형태적으로 공통된 어휘요소를 하나 이상 가지면서 그 요소(들)의 배열이 일치한 경우만을 말한다.
반복표현에서 선행요소와 후행요소는 동일 어휘항목에 속하면서 형태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성을 띠어야 한다. 이 때, 반드시 완전한 형태적 동일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즉, 본고는 반복요소를 내용어의 어휘항목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조사나 어미 등의 기능어의 차이는 정도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예를 들어, ‘먹는다’, ‘먹으려고’, ‘먹다니’ 등은 모두 동일 어휘항목에 속하며 형태적 유사성을 지니므로 서로 반복요소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철수’, ‘철수는’, ‘철수도’ 등도 서로 반복요소로 기능할 수 있다. 나아가 언어사용상의 화계의 변화에 의해 생기는 서법이나 인칭의 변형은 대화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반복표현으로 인식하는 데 크게 문제시되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스럽다. 예를 들면,
(10) A : 나 군대 간다.
B : ㄱ. 나 군대 간다?
ㄴ. 너 군대 간다고?
여기서 형태적 동일성으로 본다면 (Bㄱ)이 완전한 반복이지만, 이는 실제 소통상에서 A의 발화의 의미내용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A에게 반발하려는 태도를 나타내기 위해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경우이다. (Bㄴ)의 경우, 인칭과 서법의 변화가 따르는데 ‘나’가 ‘너’로 ‘간다’가 ‘간다고’로 바뀌었다. 이처럼 대화자들이 인칭이나 서법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앞선 발화를 재수용하는 것이 대화상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오히려 자연스럽게 반복표현으로 인식된다.
3. 대화에서 반복표현의 유형
앞에서 반복의 성립조건을 토대로 하여 반복표현을 한정하였다. 이러한 반복표현은 다시 여러 기준을 통해 유형화가 가능하며 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먼저 대화 속에서 반복표현은 우선 상황맥락 속에서 ‘두 명 이상의 대화자’가 의미연쇄가 가능한 ‘동일 담화내’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담화의 어휘요소’를 되풀이한 것이다. 여기서 대화에서 반복표현를 위한 유형화 기준을 세 가지 정도로 추출할 수 있다. 먼저 두 명 이상의 대화자 중 누가 반복표현을 하였는가, 의미연쇄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여러 차례를 거친 후에 지연적으로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담화의 구성성분 중 어느 형식적 차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가 등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를 간략히 반복표현의 행위자․주기성․형식성 기준이라고 하겠다. 이 기준들이 유용한 것은 이에 따라 구분되는 유형의 기능 양상이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화에서의 반복표현이 행위자․형식성․주기성에 따라 유형화가 될 수 있는 근거를 순서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3.1. 행위자에 따른 유형
반복표현은 행위자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다른 담화장르과는 다르게 대화는 한 명이 아닌 두 명 이상의 대화자간 의미 교섭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자신이 한 발화를 반복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한 발화를 반복할 수도 있다. 즉, 크게 자기반복(self-repetition)과 타인반복(other-repetition)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자기반복은 화자 자신의 발화에 대한 반복으로, 같은 차례 내에서 수행한 경우와 다음 차례에서 수행한 경우로 다시 나눌 수 있다.
꠆ꠏ 자기반복 ꠆ꠏ 차례내 반복
ꠐ ꠌꠏ 차례간 반복
ꠌꠏ 타인반복
이러한 유형 구분에 따라 간단하게 예를 살펴보자.
(11) A : 발령은 내년 3월에 날거 같아요. 작년에 적채가 되갖구요. 내년에 날거 같아요.
<차례내 자기반복>
(12) A : 나 군대 간다.
B : 뭐?
A : 군대 간다고. <차례간 자기반복>
(13) A : 날씨 참 좋구나.
B : 그래, 참 좋다. <타인반복>
반복표현의 행위자가 유형 구분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에 따라 의미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1)․(12)의 경우는 자신의 발화를 다시 반복한 경우이고, (13)는 상대방의 발화를 다시 반복한 경우이다. 여기서 차례내 자기반복인 (11)의 경우는 반복을 통해 ‘내년에 날거 같다’는 의미를 명료히 하면서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차례간 자기반복인 (12)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이 놓친 정보를 다시 반복하며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타인반복인 (13)의 경우는 의미를 분명히 한다기보다는 상대방과의 정서에 동감을 표시하며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반복과 타인반복이 상호작용면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비상호작용적인 방향으로, 후자는 상호작용적인 방향으로 반복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두 유형은 인지적 부담과 전략적 측면에서 운용상의 차이를 보이며 그 기능 양상이 달리 나타난다. 자기반복은 주로 의미를 명료화하여 재차 확인하는 데 쓰이며, 반복된 형식에 청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자기반복이라도 차례내․차례간 반복의 양상이 조금은 다르다. 차례내 자기반복은 차례의 중간에서 일어나므로 대화의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서 특별한 정보의 도입이나 누구의 개입도 없이 진행된다. 차례간 자기반복은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면서 다시금 불충분했던 정보를 재확인 시켜준다. 타인반복은 자기반복과는 아주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즉, (13)처럼 상대방에 대한 강한 공감도를 신호화하는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3.2. 형식성에 따른 유형
반복표현은 형식성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형식성의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는 유형은 비교적 다양하다.
꠆ꠏ① 반복요소의 품사 : 명사류 반복․동사류 반복․형용사류 반복 …
ꠉꠏ② 반복요소의 닮은 정도 : 같은꼴 반복(완전 반복) ~ 비슷한꼴 반복(변형 반복)
ꠌꠏ③ 반복요소의 선택 정도 : 전체 반복 ~ 부분 반복
여기서, 연구의 목적에 따라 세부적인 기준과 유형을 달리 선택할 수 있다. ①은 선행발화 중 어떤 요소를 반복시켰는가에 따라 명사류 반복, 수사류 반복, 형용사류 반복, 관형사류 반복, 부사류 반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처럼 반복요소의 품사별로 유형을 나누는 것은 어휘요소의 선택 문제를 주로 고려하게 되고 배열의 문제는 등한시하게 된다. ②에서 같은꼴 반복은 선행요소의 완전한 반복을 말한다. 비슷한꼴 반복은 선행요소와 후행요소가 동일 문법범주 내에 있으면서 형식상 차이가 동일 문법범주 내에 존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반복요소간의 닮은 정도는 주로 각 어휘요소의 형태상의 변형을 중심으로 유형을 가르는 것으로 배열을 다루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어휘의 선택과 문법적 배열이 동시에 운용되는 양상을 다루는 데는 ①․② 모두 미흡하다.
(14) A : 철수가 강아지를 걷어찼어요.
B : ㄱ. 철수가? <명사류 반복 : 같은꼴 반복>
ㄴ. 걷어찼다고? <동사류 반복 : 같은꼴 반복>
ㄷ. 강아지를 걷어찼다고? <명사류 + 동사류 반복 : 같은꼴 반복>
(15) A : 철수가 강아지를 걷어찼어요.
B : ㄱ. 철수마저? <명사류 반복 : 비슷한꼴 반복>
ㄴ. 강아지까지 걷어찬다고? <명사류 반복 + 동사류 반복 : 비슷한꼴 반복>
하지만 ①․②에 따른 유형 구분은 소통상의 기능을 살피는 데는 유용하지 못하다. 이에 비해, ③은 본고에서 반복표현을 한정한 대로 어휘요소의 선택과 그 배열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다.
(16) A : 철수가 강아지를 걷어찼어요.
B : ㄱ. 철수가 강아지를 걷어찼다고? <전체 반복>
ㄴ. 철수가? <부분 반복>
ㄷ. 강아지를? <부분 반복>
여기서, (Bㄱ)은 전체 반복, (Bㄴ)․(Bㄷ)은 부분 반복이다. 이러한 유형에 따라 그 의미기능이 다소 달라질 수 있다. B의 대답이 선행발화에 대해 상승 억양을 갖는다면, 모두 확인․놀람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유형에 따라 그 의미기능상 다소의 차이를 보인다. 즉, (Bㄱ)처럼 전체 반복인 경우, 상대방의 선행발화를 다시 완전하게 반복하는 것은 전체 명제 내용에 대한 놀라움을 강하게 표시할 수 있다. 이에 비해 (Bㄴ)․(Bㄷ)처럼 부분 반복인 경우, 선행발화의 요소 중 특정 정보에 초점화하여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후속 발화의 화제 연결에도 특정 정보에 관심을 끌게 할 수 있다.
3.3. 주기성에 따른 유형
반복표현은 주기성(시간적 차이)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먼저 선행요소에 대한 후행요소는 동일 담화내라면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여러 차례가 지나간 후에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다.
꠆ꠏ 즉각적 반복
ꠌꠏ 지연적 반복
이러한 유형 구분에 따라 간단하게 예를 살펴보자.
(16) A : 나 군대 간다.
B : ㄱ. (뭐,) 군대 간다고? <즉각적 반복>
⋮
ㄴ. (아참,) 군대 간다고? <지연적 반복>
(Bㄱ)의 경우 A의 진술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놀람․관심․확인 등의 의미기능을 표시할 수 있다. 그런데 (Bㄱ)과 형식은 똑같지만 (Bㄴ)의 경우는 다른 발화 차례들이 중간에 개입되어 시간이 지연된 후 나중에 반응을 보인 것으로 그 기능 양상은 다르다. 즉 (Bㄱ)의 경우처럼 놀람․관심․확인 등의 기능보다는, (Bㄴ)은 대화상의 화제가 빈곤할 때 앞선 발화 중 하나를 반복하여 ‘화제거리로 재도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반복표현은 그 주기성에 따라 유형 구분이 가능하다.
이는 풀이말을 중심으로 일단의 차이를 살필 수 있다. 즉, 유사한 쓰임새의 어미들이 즉각성과 지연성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고’는 즉각적 반복과 지연적 반복 모두 통용이 된다. ‘-다니’는 지연적 반복보다는 즉각적 반복에서 주로 쓰인다. 그리고 ‘-다면서’는 즉각적 반복보다는 지연적 반복에서 쓰인다. 다음 예에서, 즉각적으로 ‘군대간다면서?’나 지연적으로 ‘군대간다니’는 잘 쓰이지 않는다.
(17) A : 나 군대 간다.
B : ㄱ. (뭐,) 군대 간다니? <즉각적 반복>
⋮
ㄴ. (아참,) 군대 간다면서? <지연적 반복>
한편, 반복 중에서도 하나의 담화를 넘어서는 장기적 유형화는 연구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즉, 극단적인 예로서 인용 표현, 관용 표현, 상투적 표현 등은 본고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A가 ‘안녕’이라고 한 후 B도 ‘안녕’ 이라고 반응을 보였다고 하자. 여기서 A와 B는 처음 대면하여 의례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상황인데, 이 때 B는 A에게 반응을 보이며 ‘안녕’이라고 한 것은 반복표현인가 아닌가. 분명 앞에서의 성립조건에 따라 형태적으로 동일한 공통된 어휘요소가 쓰였기 때문에 반복표현으로 보인다. 그런데 본고에서 말하는 유의미한 반복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즉, 이러한 표현은 동일 담화내에서 단기적 유형화에 의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의례적 발화로, 대면을 시작한 후 서로 대화할 의사가 있음을 알리는 신호어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화자자 의도적으로 선행발화에서 요소를 선정하여 결합하기보다는 이미 굳어져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부족한 상투적 차례교환이다.
4. 나오며
대화에서의 반복표현은 선행발화와 이질적인 어휘요소 없이, 형태적으로 공통된 어휘요소를 하나 이상 가지면서 그 요소(들)의 배열이 일치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반복표현은 행위자, 형식성, 주기성에 따라 유형 구분이 가능하며 그에 따라 기능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세 기준으로 반복유형의 통합적 틀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ꠏ 즉각 ꠆ꠏ 전체
꠆ꠏꠏꠏ 자기 ꠐ ꠌꠏ 부분
반복표현 ꠐ ꠌꠏ 지연 ꠆ꠏ 전체
ꠐ ꠌꠏ 부분
ꠐ ꠆ꠏ 즉각 ꠆ꠏ 전체
ꠌꠏꠏꠏ 타인 ꠐ ꠌꠏ 부분
ꠌꠏ 지연 ꠆ꠏ 전체
ꠌꠏ 부분
참고 문헌
김대행(1980), 한국시의 전통 연구, 개문사.
김종현(1994), “ ‘고’로 종결되는 질문의 유형과 그 화맥적 구조”, 화용론 논집 2.
김주식(1990), “잉여정보와 발화-연결”, 동아 영어영문학.
김진우(1994), 언어와 의사소통, 한신문화사.
나찬연(1997), 우리말 의미중복표현의 통어․의미 연구, 부산대 박사학위논문.
노대규(1996), 한국어의 입말과 글말, 국학자료원.
노석기(1990), “우리말 담화의 결속 관계 연구”, 한글 208.
노은희(1997a), “교육적 관점에서의 대화의 결속기제 고찰 : 반복 기제를 중심으로”, 국어교육 93.
______(1997b), “반복 유형의 체계적 분류를 위하여”, 논문집 제63집, 한국국어교육연구회.
박정준(1994), 담화의 텍스트 언어학적 분석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소영(1996), 현대 국어의 구어 문형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이용주(1993), 한국어의 의미와 문법Ⅰ; 기본적인 관점, 삼지원.
이창덕(1991), “의문사문의 담화상 의미와 기능”, 국어의 이해와 인식, 갈음김석득교수회갑기념논
문집.
이필영(1992), 현대국어의 인용구문에 관한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임지룡(1983), “의미중복에 대하여”, 배달말 8, 배달말 학회.
장석진(1981), “국어의 반복표현”, 말 6 집.
______(1994), 통합문법론 ; 담화와 화용, 서울대학교출판부.
장소원(1995), “국어학에서의 구어성”, 한일어학논총, 국학자료원.
전혜영(1996), ‘-다고’ 반복 질문의 화용적 기능, 언어 제21권 제3호, 한국언어학회.
채 완(1986), 국어의 반복 및 병렬에 있어서의 어순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최명식(1988), 조선말구두어문법, 료녕민족출판사.
한 길(1993), “월조각의 되풀이법 연구”, 한글 221.
牧野 成一(1985), 日本語口語談話における反復の原則, 言語.
Chafe, Wallace(1994), Discourse, Consciousness, and Tim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Dumitrescu, Domnita (1996), "Rhetorical vs. nonrhetorical allo-repetition", Journal of Pragmatics 26.
Fox, Barbara A.(1987), Discourse Structure and Anaphora, Cambridge Univ. Press.
Gernbacher, M.A. & Givón, T. (1995), Coherence in Spontaneous Text.
Givón, T. (1979), “From Discourse to Syntax : Grammar as a Processing Strategy” in Givón, T. Syntax and Semantics 12 : Discourse and Syntax, Academic Press.
Halliday, M.A.K.(1989), Spoken and written language, Oxford Univ. Press.
Halliday & Hasan (1976), Cohesion in English, Longman.
Halliday & Hasan (1989), Language, context, and text :aspects of language in a social-semiotic perspective, Oxford Univ. Press.
Hasan, Riqaiya (1989), Linguistics, language, and verbal art, Oxford Univ. Press.
Heydrich, W., Neubauer, F., Petöfi, János S., & Sözer, E(1989), "Connexity and Coherence", Walter de Gruyter
Hoey, Michael(1983), On the Surface of Discourse, George Allen & Unwin.
Hundersnurscher, F. & Weigand, E.(1995), Future Perspectives of Dialogue Analysis, 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Isikawa, Minako(1991), "Iconicity in discourse : The case of repetition", Text 11.
Johnstone, Barbara(1994), Repetition in discourse :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s, volume one.
(1994), Repetition in discourse :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s, volume two.
Luckmann, Thomas(1990), "Social communication, dialogue and conversation", in Markova & Foppa(1990), The Dynamics of Dialogue, Harvester Wheatsheaf.
Norrick, R. Neal (1987), "Functions of repetition in conversation", Text 7.
Ochs, Elinor(1979), "Planed and unplaned discourse", in Givón, T., Syntax and Semantics 12 : Discourse and Syntax, Academic Press.
O'Sullivan, Tim(1983), Key Concepts in Communication, Methuen London and New York.
Planalp, Graham, Paulson (1987), "Cohesive divicese in conversation", Communication Monograph, vol. 54.
Stenström(1994), An Introduction to Spoken Interaction, Longman.
Tannen, Deborah (1982), “Oral and literate strategies in spoken and written narritives", Language 58.
_______(1987), "Repetition in conversation as spontaneous formulaicity", Text 7.
(1989), Talking voices : Repetition, dialogue, and imagery in conversational discourse, Cambridge Univ. Press.
Tyler, Andrea(1994), "Thd role of repetition in perceptions of discourse coherence", Journal of Pragmatics 21.
Villaume & Cegala(1988), "Interaction involvement and discourse strategies : The patterned use of cohesive devices in conversation", Communication Monograph, vol. 55.
개화기 시조의 전통성과 근대성 연구
류수열(서울대 대학원)
<목차>
1. 문제 의식
우리 역사에서 개화기는 격변기, 과도기 등으로 그 성격이 규정되곤 한다. 그만큼 이 시기는 국내외적으로 혼란한 정세에 처해 있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문학 창작에도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시기에 창작된 문학은 대체로 主體와 進步의 갈등 속에서 항일 의식을 비롯하여 당대에 요구되었던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편 개화기에는 전통적인 장르인 시조나 가사가 그대로 지속되는가 하면, 이들 장르가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기도 하고, 일본 음악이나 서양 음악의 영향으로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등 가히 모색기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실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대부분의 작품에 대해서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충실한 나머지 주제 의식만 앞서고 문학적 형상화의 측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개화기에 창작된 시조에 대해서도 이러한 평가는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고의 관심은 이러한 문학사적 평가에 있지 않다. 일차적인 관심은 시조라는 한 역사적 장르가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어떠한 변모를 겪고 있으며, 그러한 변모의 기저에서 작용하는 자질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발생 시기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시조는 약 60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존속되고 있는 장르이다. 특히 중세 문화적 질서에서 생성되고 향유된 한 역사적 장르가, 삶의 문법을 달리하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꾸준히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문제성은 더욱 가중된다. 이 문제는 한 장르의 존속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근대를 기점으로 우리가 문학의 존재 방식의 변화를 겪었다는 문학사적 사실로 확장된다. 그 변화는 한마디로 ‘시가(詩歌)’에서 ‘시(詩)’로의 변화이다. 이것은 ‘부르는 문학’에서 ‘읽는 문학’ 또는 ‘읊는 문학’으로의 변화인 것이다.
본고는 이같은 존재 방식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개화기 시조의 양식적인 특질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전의 시조에서 발견되지 않는 개화기 시조의 변별적인 요소에 주목함으로써, 문학의 존재 방식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증명해 주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 시조와의 변별성에만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전대 시조의 문학사적 사실을 고려하여 지속성도 충분히 존중할 것이다. 어떠한 문학 장르도 갑자기 탄생할 수는 없다는 점을 문학사는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화기 시조를 독립적인 하나의 역사적 장르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개화기 시조의 전통성과 변화성을 파악하는 것은 실상 위와 같은 질문의 답을 찾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질문은 다시 개화기 시조가 조선조 문학인 시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성립된 독자적인 장르인가 하는 선택 의문문으로 바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개화기 시조라는 장르명이, 특정한 역사적 시대를 나타내는 개화기라는 수식어와 장르를 가리키는 시조라는 피수식어를 결합시켜 만든 말이라는 점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이는 또다시 ‘개화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에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시조의 양식적 보편성에 주목할 것인가 하는 이분법적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장르란 일반적으로 일정한 군집의 작품들이 공유하는 문학적 관습의 체계이며, 개별 작품의 존재를 지탱하는 초개인적 준거의 모형이다. 그러나 갈래는 일정 범위의 작품들을 완전무결하게 귀일시키는 특성이나 원리의 조직체라기보다는 ‘친족적 유사성’을 지닌 다수의 작품에서 추출되는 범례적 일반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별 작품은 이러한 일반형에 정확히 부합하기도 하고 다소 어긋나기도 하지만, 범례적 일반형으로서의 갈래는 그 어긋남이나 변형의 정도 및 방식을 파악하게 해 주는 준거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고는 개화기 시조의 성격을 고찰함에 있어, ‘문학적 관습’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정형시로서의 형식적 요건과 현실 인식 태도으로 대별하여 접근하고자 한다.
개화기 시조는 여러 지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바,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상 「대한매일신보」의 ‘詞藻’난에 실린 작품에 국한하고자 한다. 이는 이 난에 수록된 작품들이 대체로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균질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 개화기 시조의 양식적․주제적 특성
음악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전근대의 문학은 사실 노랫말에 지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멀리 상고 시가로부터 향가나 고려 속요는 물론, 시조나 가사까지도 모두 가락에 얹어서 부르는 노랫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문학의 존재 방식은 개화기에 이르러 비로소 전환을 맞게 된다. 그 결과 문학은 음악과 분리되고 독자적으로 존립하게 된 것이다.
개화기 시조의 두드러진 특징은 먼저 개별 작품들이 제목을 갖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제목은 개별 작품들의 고유성을 보장하는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다. 개화기 시조의 경우 제목은 내용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을 따서 붙이거나 내용을 한자어로 조합하여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조가 제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일단 근대적 성격의 문학으로 바뀐 하나의 징표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개화기 이전의 시조는 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연행된 문학이었다. 몇몇 곡조가 정해져 있고, 여기에 시조 작품이 개별적으로 대응되는 방식이었다. 이 때에는 시조 작품 그 자체보다 가락과 곡조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시조의 개별적인 고유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개화기의 시조가 각각의 작품마다 고유한 제목을 가진 사정은 ‘시’에서 ‘가’가 분리되어 나간 결과인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개화기의 시조는 더 이상 특정한 몇몇 곡조와 결합되어 불리어진 노랫말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읽혀진 독서물로 전환해간 것이다. 개별 작품의 제목은 그 고유성을 증명해주는 표지로 기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개화기 시조의 형태상의 특징은 또한 종장 마지막 마디의 생략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연구 결과는 종장 마지막 마디의 생략을 조선조 시조창의 전통을 이은 결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생략 현상이 조선조 후기의 가집인 ꡔ南薰太平歌ꡕ에 게재된 시조의 종장 처리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北風은 나무 헤 불고 明月은 눈 속에 찬데
七尺 長劍 여 들고 거름에 내다르니
도처에 수업 敵兵들 쥐 숨 듯이.(雪上劍, 1909. 1. 13)
을 밋을 것가 못 밋을 손 이로다
밋을 만 四時節도 全혀 밋들 못거니
믈며 狡詐人心 이 世上에 엇지 을.(勿恃人, 1909. 2. 3)
곱흔 우라면 山菜野蔬 엇더며
쓰러진 집 닐으킬 제 큰 材木만 所用되랴
아마도 男女老少 壹心되면 無所不爲.(合衆力, 1909. 7. 15)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생략된 부분에 올 만한 말이 무엇인지를 문맥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위의 작품들에서도 각각 ‘는구나’, ‘밋을소냐’, ‘리라’가 생략된 것으로 추리해 낼 수 있다. 위의 예에서처럼 대부분의 작품들은 완결되지 않은 채 끝맺는다. 그러나 네 마디만 채우면 마지막 마디의 문장 성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생략되는 현상은 앞서 지적한 詩歌의 詩化 현상과 모순될 수밖에 없다. 이미 노래하는 시에서 읽는 시로 본질을 이전한 상태에서 굳이 시조창의 관습을 존중하고 계승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조는 본래 ‘가곡’으로 불리어진 노래다. 조선조 후기에 와서 시조라는 새로운 창의 관습이 생겨났다. 그러나 가곡과 시조는 단지 노랫말만 같을 뿐, 그 체계나 곡조는 대단히 이질적이다. 종장의 마지막 마디가 생략되는 것은 그 이질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시조는 ‘북전(北殿)’이라는 창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전창의 형식이 시조의 노랫말을 다 용해시키지 못한 데서 마지막 마디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가곡은 시조에 비해 훨씬 높은 격조를 가진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시조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조선조 후기의 ꡔ청구영언ꡕ, ꡔ해동가요ꡕ, ꡔ가곡원류ꡕ 등은 사실은 가곡집으로서, 작품의 종장 마지막 마디가 완전히 표기되어 있다. 반면에 ꡔ남훈태평가ꡕ와 이세보의 ꡔ풍아ꡕ에는 이것이 생략된 것이 일반적이다. ꡔ가곡원류ꡕ 발문에서 박효관은 창이 타락함을 개탄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가곡집을 엮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타락한 창은 바로 시조창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오늘날에 시조창으로 불리어지는 노랫말이 고시조 작품이라는 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개화기의 시조가 시조창의 관습에 따라 종장 마지막 마디를 생략한 채로 표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창으로는 불리어지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시조창의 경우 약 1분 정도의 시간에 한 장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창법으로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하게 담긴 개화기 시조 작품을 소화하기 어려웠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개화기 시조에서 종장의 마지막 마디가 생략된 것은 가창을 전제로 창작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표기법 자체의 관습을 존중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표기 방식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고려하여 분행을 하고 구두점을 표기한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시조를 세 줄로 나누어 적고, 처음 두 줄에는 반 줄이 끝날 때, 마지막 줄에서는 첫 토막 및 반 줄이 끝날 때 쉼표를 찍었으며, 한 줄이 끝날 때에는 마침표를 찍었다.
간밤에 비오더니, 봄 소식이 완연하다.
無靈 花柳들도, 러 퓌엿.
엇지타, 二千萬의 뎌 人衆은, 잠줄을.(花柳節, 1909. 4. 4)
세상사들아, 小路로 가지마라.
當當 너른 길이, 녜로부터 잇것마는.
어지타, 時俗人心은, 小路로만.(大路行, 1909. 7. 1)
이는 율격의 짜임새를 명학하게 인식한 증거라 하겠다. 이러한 배려는 신문 독자가 글을 읽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지, 노랫말을 일정한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니다. 텍스트 속에 있는 문자에는 음성적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구술하는 말에는 반드시 이러저러한 억양이나 목소리의 어조가 있다. 아무런 억양도 없이 목소리로 말할 수는 없다. 문자화된 텍스트에서 구두법은 목소리의 어조를 지시하기 위한 표시이다.
이밖에도 4행이라는 파격을 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오늘날의 형태시와 유사한 행배열을 보이는 작품도 있어, 개화기의 시조가 독서물로 전환해 갔다는 점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편 개화기 시조는 형태상의 변모와 함께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에서도 전대 시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시조의 본류는 역시 사대부의 그것에 있다. 사대부의 시조는 가사 및 한시와 더불어 그들만의 세계를 확인하고 발견하는 글쓰기 행위였다. 그러나 가사는 일정한 곡조에 얹어서 부르기에는 지나친 장형이었고, 한시는 구어와 문어의 불일치로 인해 창작과 향유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에 시조는 짓고 부르기에 가장 적절한 시형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소리’의 묘운을 살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사대부 문학은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을 동시에 구유하고 있었다. ‘사대부(士大夫)’라는 말 자체가 이미 ‘사’와 ‘대부’라는 두 가지 성격의 삶을 내포한 합성어이듯이, 그들의 문학 또한 이에서 평행하게 두 가지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성격이란 다름 아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영역이며, 시조는 이 두 가지 영역에 동시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로서의 삶에 관심이 있을 때는 합일화의 시조로, ‘대부’로서의 삶에 관심이 있을 때는 객관화의 시조로 귀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지향이 모순적이지 않고, 상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적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亦君恩이샷다’와 같은 표현이다. 이러한 작품은 사대부들이 강호한정(江湖閑情)의 한쪽 세계에서도 다른 한쪽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지향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경우 대부분은 주자학적 체제에 대한 주자학적 세계관의 대응으로 순응적인 태도를 보인다. 고려 말엽이나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일군의 작품들이 우국충정의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경우에도 그 순응적인 태도는 마찬가지이다. 중세적 가치 체계 속에서 체제에 대한 비판이란 곧 ‘방외인’으로의 전락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매일신보의 시조에는 현실 비판과 저항 의식이 3백여 편에 이르는 거의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消火丹
胸中에 불이 나셔 五臟이 다 간다
黃惠庵을 에 맛나 불 藥을 무러보니
憂國으로 난 불이니 復國면(1890. 1. 9)
韓半島
韓半島 錦繡江山 禮儀之邦 分明다
神聖 檀君셔 셰웟셔라 이 나라
뉘라셔 감히 侵犯리 堂堂 帝國(1908. 12. 2)
山雪野雨
北天이 막다커 雨裝 업시 길을 나니
山村에 눈이 오고 들에 비가 온다
아마도 準備 곧 업스면 處處逢敗(1910. 2. 22)
각각의 작품에 제목이 붙어 있는 것도 주목을 끌지만, 복국이라는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는 대동소이한 작품들이다. <消火丹>은 나라를 빼앗기게 된 울분을 과장을 통하여 표출하면서 동시에 복국에 대한 염원을 간절히 드러내고 있으며, <韓半島>는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이 나라가 절대 침범당할 수 없다는 당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山雪野雨>는 임제의 고시조를 패러디하여 앞날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형상화된 목소리는 한결같이 우국지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문학이 전반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당시가 역사적 격동기로서 일제에 의한 국가적 위기를 절실하게 체험하고 있었던 엄중한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특수성이 「대한매일신보」라는 매체의 특성과 결합한 결과일 것이다.
3. 개화기 시조의 전통성과 근대성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개화기 시조는 전대 시조와 확연히 구별되는 변별적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특징은 존재 조건의 측면에서는 시가에서 시로, 부르는 문학에서 읽는 문학으로, 가창물에서 독서물로, 구술성(orality)에서 문자성(literacy)으로의 변화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실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도 순응적인 태도를 버리고 비판적인 태도로 전환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징이 개화기라는 시대가 낳은 직접적인 산물인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특정의 문학이 인위적으로 가공되어 갑자기 세상에 나오는 경우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화기 이전의 시조에서 이와 같은 경향의 작품이 최소한 단서로나마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서를 보여주는 작품은 일단 조선조 후기의 시조의 전반적인 경향상의 변모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 작자층이 확대되고 작품 세계도 분화되면서 드디어 현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생기게 되었다. 거기에는 주자학적 가치 체계가 점점 현실과 모순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리하여 현실 세계의 변화가 그들의 의식을 스스로 변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양상이 전면적이지는 않았으나, 그 단초가 나타난다는 점은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사설시조의 풍자적․해학적 경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설시조의 이러한 경향은 개화기 시조의 성격과 연결될 수 있는 일관성을 보장해 주지 않을 뿐더러, 그 양식상의 상이함도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성을 강하게 내포한 일군의 평시조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은 옮겨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조선조 후기의 시인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바로 李世輔(1832~1895)라고 하는 사대부 시인이다. 그는 철종과 6촌 사이인 왕족이었다. 안동 김씨 정권 하에서 1860년 11월부터 1863년 12월까지 3년간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 후 공조 판서와 형조 판서를 지내고 64세이던 1895년 乙未年에 민비가 피살되자 이에 울분을 품고 있다가 병사했다고 한다. 그의 시조집 ꡔ風雅ꡕ에는 약 460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바, 여기에서 현실 비판적 인식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져 셩의 거동 보쇼 지고 싯고 드러와셔
한 셤 를 밧치랴면 두 셤 리 부됵이라
약간 농 지엿슨들 그 무엇슬 먹 리.
우리 드러 보소 샨의 올나 샨젼 파고
들의 나려 슈답 가러 풍한셔습 지은 농
지금의 동증니증은 무샴일고
이 시조는 당시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는 농민상을 다양한 목소리를 동원하여 그려내고 있다. 첫째 작품은 환곡의 부정을 관찰자의 목소리로, 둘째 작품은 전정(田政)의 횡포를 농민의 목소리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약용의 한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궁핍한 세태 묘사와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시적 경향은 동시대의 가객이었던 박효관이나 안민영과도 분명히 구별된다. 개화기 시조에서 광범위하게 형상화되는 현실 비판이나 현실 저항적인 주제 의식은 이러한 사회시의 계보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본고가 그를 주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기록 때문이기도 하다.
세임슐지계츄한(歲在壬戌之季秋下澣)의 신지도 복즁 년 젹(薪智島鵩舍中四年謫客)으로 년부년월부월(年復年月復月)의 병근(病根)은 날노 더고 슈회(愁懷)난 만단(萬端)여 세월(歲月)를 잇고져 혹 글도 읽으며 시(詩句)도 지으며 쇼셜(小說)도 보다가 노를 지어 기록(記錄)나 쟝단고져(長短高低)를 분명(分明)이 지 못엿스니 보난 이 짐쟉여 볼가노라(강조 : 인용자)
이 기록에서는 이미 ‘본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이 인용문에서는 ‘노래’를 ‘짓’는다는 점도 나타내고 있지만, 문자로 기록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짐작하여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ꡔ歌曲源流ꡕ 소재의 ‘부르는 문학’의 한편에서는 ‘읽는 문학’이 등장하여 소통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단서라 할 만하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개화기 시조의 등장은 갑작스럽게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세보는 현실 비판의 시조를 통해서 현실주의적 전형과 묘사를 드러낼 수 있었고, 부르는 문학이 아닌 읽는 문학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특성에 힘입어 문학의 중세적 존립 조건을 해체하고 근대적 문학의 존립 조건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시가에서 시로의 존재 이전과 현실 비판 의식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두 시가관을 살펴봄으로써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악론(樂論)의 요체인 ‘사무사(思無邪)’는 음악이 성정을 가다듬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반면 ꡔ시경(詩經)ꡕ 이후 시의 효용으로 내세워지는 시의 효용은 풍간(諷諫)이다.
옛날의 군자는 글을 익힘에 있어 먼저 시를 노래하게 하였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음영(吟咏)으로 그 심지를 감동케 하고 차탄(嗟歎)함으로써 그 성정을 키우게 하였으며, 억양을 반복함으로써 선을 사랑하고 악을 멀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스스로 더러움을 씻지 못하더라도 정대한 것으로 이루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즉 옛사람들이 노래의 가치를 중대하게 여긴 것이다.
공자는 산시(刪詩)하면서 정풍 위풍을 버리지 않았으니, 이로써 선과 악을 갖추어 권계(勸戒)하고자 한 것이다. 시가 어찌 반드시 주남관저(周南關雎)라야 하며, 노래가 어찌 반드시 순임금 때의 갱재(賡載)라야 하겠는가? 다만 성정을 떠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시는 風雅 이래로 시대를 내려오면서 나날이 옛것과 멀어졌고, 한위(漢魏) 이후로는 시를 배우는 자들이 다만 말을 꾸미는 데만 몰두하는 것을 해박하다고 여기고 경물(景物)을 아름답게 수놓는 것을 솜씨 있다고 여겨서, 심하게는 성률(聲律)을 까다로이 따지고 자구(字句)나 연마하는 법이 나오기에 이르렀으니, 그래서 성정(性情)은 숨었다. 이러한 폐단은 우리나라에 와서 더욱 심했다. 오직 가요의 한 가닥만이 우뚝히 풍인(風人)의 남긴 뜻에 거의 가까워서, 정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을 우리말로써 표현하여 읊조리는 사이에 우연히 사람을 감동시킨다. 길거리의 노래에 이르러서는 강조(腔調)가 비록 바르게 다듬어지지 못하였으나 무릇 그 유일(愉佚), 원탄(怨歎), 창광(猖狂), 조망(粗莽)하는 모습과 태깔은 각기 자연의 진기(眞機)로부터 나온 것이다.
위의 두 인용문은 각각 ‘思無邪’와 ‘諷諫’으로 대별되는 시가관을 대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글이다. 전자의 입장은 시가 성정의 표현이며 따라서 풍교(風敎)의 도구가 된다는 주장이며, 이는 사람은 시를 읽음으로써 성정의 바름[性情之正]을 도모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와는 달리 후자는 시가가 시대의 반영임을 인정하고 “자연의 진기”를 시의 요체로 파악한다. 자연의 진기란 일체의 인위적인 장식이나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사람의 본원적 심성을 뜻하는 것이다. 이 입장의 연장선에 서면 사설시조를 포함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정의 발산을 추구한 시조 작품들이 당대의 여러 비평에서 높은 가치를 부여받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세보의 현실 비판 시조는 이 중 어느 곳에도 귀속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사무사’로 귀속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성정을 바르게 할 수 있는 도덕론적 효용을 갖추었어야 하고, ‘풍간’으로 귀속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정(情)’의 감발이 있어야 했다. 전자의 논리로는 현실 순응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전달과 감화가, 후자의 논리로는 개인적 서정의 세계에 대한 몰입이 시조 본연의 임무였으나, 이세보는 개인의 내면 세계를 벗어나 사회적인 현실에 눈을 돌린 동시에 그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세보는 시학의 한 계보를 새롭게 창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음악성을 강하게 동반할 때 현실 비판의식이 시로 형상화되기란 쉽지 않다. 판소리에서는 노래를 통해 통렬한 비판을 실행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 경우는 ‘풍자’라는 놀이의 한 방식이 대상의 희화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풍자의 태도가 사라졌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미미한 경우, 다시 말해서 현실을 비판하는 방식이 더 직접적이고 그 태도가 진지할 경우에는 노래가 적절한 그릇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조 후기 문학의 현실주의적 경향이 시조에서보다는 여타의 장르, 즉 한문학이나 산문 문학에서 더 융성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짐작케 해준다.
한편 개화기 문학이 활자화된 독서물이라는 점도 현실 비판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구술적인 말하기에서 씌어진 말하기에로의 이행은 본질적으로 청각에서 시각 공간으로의 이행이다. 구술적인 말하기란 언제나 연행을 전제로 성립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거기에는 상호작용적인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구술적인 말하기가 주로 개인적인 내면 세계에 침잠하거나, 현실에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놀이적 태도인 풍자의 방식을 취하는 것은 청자와의 유대감과 공감을 염두에 둔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인쇄된 텍스트에는 음성적 자질을 실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구두 표기가 음성적 자질을 실현할 뿐이지만, 그것은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연행되는 상황에 의존하는 정도가 미약해질 것이고, 그 결과 시적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된다. 인쇄는 이처럼 구술적인 말하기보다 대상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활자화된 독서물로서의 개화기 시조가 현실 비판적 태도의 형성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문학의 근대적 성격을 정향지었다는 점은 새삼스럽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쇄는 폐쇄의 감각을 부추긴다. 즉 텍스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고 어떤 완성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감각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 감각은 문학 창작뿐만 아니라 분석적․철학적 저작이나 과학적 저작에도 영향을 준다. 인쇄는 텍스트가 자기 자신 이외의 어느 것과도 관련성을 갖지 않는, 말하자면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것, 완전한 것으로 제시한다. 인쇄된 텍스트는 저자의 말을 결정적인 혹은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낸다. 그리하여 인쇄는 한층 더 견고하게 폐쇄된 언어 예술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문학 이론에서 인쇄는 궁극적으로 언어로 된 각 예술 작품이 그 자체의 세계 속에 갇혀져 있다는 확신으로 해서 형식주의와 신비평을 낳았다. 인쇄 문화는 ‘독자성’과 ‘창조성’이라는 낭만주의적 개념을 낳았다. 같은 맥락에서 ‘표절’의 문제도 제기하였다. 개화기 문학이 이러한 인쇄 문화적 특성을 완전히 실현한 것은 아니지만,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우리 근대 문학의 한 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점 개화기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로 크게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개화기 시조, 특히 대한매일신보 소재의 시조는 ‘노래’라는 전통적 영역은 창가를 비롯한 동시대 다른 장르의 소관으로 넘기면서 ‘문학’이라는 독서물의 영역을 고수한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두에서 제기한 문제, 즉 개화기 시조를 독립적인 하나의 장르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개화기 시조는 개화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에 대응하여 이전의 시조의 존재 조건과 구별되는 새로운 존재 조건 속에서 고유한 시학을 성취하고 있는 점에서 일단 독립적인 장르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4. 결론 : 문학교육에 주는 시사
이상에서 본고는 개화기 시조가 현실 비판적 태도를 가진 시문학이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규정 속에는 더 이상 시조가 시가가 아니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개화기 시조는 독서물이었으며 활자화된 인쇄물인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개화기 시조뿐만 아니라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통된 개화기 문학 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만 애국가나 독립가 등의 창가는 서양식 곡조의 도입으로 부르는 문학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개화기 시조는 ‘부르기’의 영역을 새롭게 생성된 이러한 장르에 넘기고, ‘읽기’의 영역으로 자신의 존재를 이전시켜 간 것이다.
이러한 문학사적 사실은 문학교육의 현장에서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고전문학, 특히 조선조 문학을 교육하는 국면에서 그 연상의 관습성과 자동성에 주목한 결과,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폄하하는 예는 흔하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황진이의 시조로 대표되는 참신성과 독창성에 대한 주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구술문화적 전통에서 황진이의 시조는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는 점을 망각하곤 한다. 그 시대에는 작품의 상호텍스트성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구두로 유포되었던 공통어구나 테마를 차용․공유함으로써 다른 텍스트로부터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물론 문학에서 독창성이나 참신성 등의 미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문학적 관습에 대한 평가 절하로 곧바로 이어져서는 곤란한 것이다. 특히 시조의 경우 원본과 파생본의 정체는 모호하고, 작품마다 동일한 어구나 상투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이러한 점을 들어 시조를 상투적인 관습에 매몰된 몰개성의 장르로 폄하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시조가 애초에 관습시로서 존재했다는 점을 망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국면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점은 바로 시조가 왜 관습시로 존재했던가 하는 질문을 이끌어내고 이에 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시조가 같은 작품이라도 전하는 문헌마다 약간씩 표기를 달리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관점이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은 시조가 연행된 문학이라는 점, 실재하는 청자에게 들려주거나 적어도 실재 청자를 상정한 문학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당위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문학을 교육하는 장면에서도 이러한 점은 끊임없이 상기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노래와 시가 분리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는 것은 새삼스럽다. 노래를 잃어버린 시는 청자가 아닌 독자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러한 조건은 직접적인 소통이 아닌 책을 매개로 한 간접적인 소통을 야기했고, 즉각적인 공감의 실현이 아닌 시인과 작품에 대한 신비화를 초래하기 쉬웠던 것이다. 비유컨대 화자와 청자의 관계망 속에서 성립되는 노래가 ‘레고Lego’ 조립 장난감에 가깝다면, 작가와 독자의 관계망 속에 존재하는 시는 ‘키트kit'와 닮은 것이다. 레고 조립 장난감은 온갖 종류의 형태들을 만들 수 있는 반면에, 키트는 조립상의 어떠한 자유도 주어지지 않고 최소한의 실수도 치명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문학의 독창성과 개성이라는 개념이 존재 조건상의 근대적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점은 특히 강조되어야 하며, 그것이 근대적 개아(個我)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도 각인되어야 할 것이다. 월터 옹의 지적대로 현대에 들어와서 상호텍스트성을 말하는 여러 이론들이 낭만적인 인쇄문화의 고립주의적 미학을 공격했을 때, 그것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참고 문헌>
ꡔ歌曲源流ꡕ 跋
ꡔ花源樂譜ꡕ 序
磨嶽老樵, ꡔ靑丘永言ꡕ 後跋
李世輔, ꡔ風雅ꡕ
김대행, ꡔ시조 유형론ꡕ, 이대출판부, 1986
김대행, 「말하기와 노래하기」, ꡔ詩歌 詩學 硏究ꡕ, 이대출판부, 1991
김영철, 「開化期의 詩歌 硏究」, 서울대 대학원, 1975
김영철 외, ꡔ韓國詩歌의 再照明ꡕ, 형설출판사, 1984
김흥규, ꡔ조선후기의 시경론과 시의식ꡕ,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1982
김흥규, ꡔ한국문학의 이해ꡕ, 민음사, 1986
나정순, 「시조 전통성 연구의 시론」, ≪국어국문학≫ 100호, 국어국문학회, 1988
신연우, ꡔ조선조 사대부 시조문학 연구ꡕ, 박이정, 1997
윤여탁, 「개화기 시가를 통해 본 전통의 문제」, 미간행 원고, 1997
임종찬, ꡔ개화기 시조론ꡕ, 국학자료원, 1993
장사훈, ꡔ증보 한국음악사ꡕ, 세광음악출판사, 1993
조동일, ꡔ한국문학통사ꡕ 4권, 지식산업사, 1986
진동혁, ꡔ이세보 시조 연구ꡕ, 집문당, 1983
진재교, 「조선 후기 현실주의 시문학의 다양한 발전」, ꡔ민족문학사 강좌 (상)ꡕ, 창작과 비평사, 1995
황준연, 「北殿과 時調」, ≪세종연구≫ 1,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1986
월터 J. 옹(이기우․임명진 역), ꡔ구술문화와 문자문화ꡕ, 문예출판사, 1995
움베르토 에코, 「글쓰기와 글읽기」, 김인환 외 편, ꡔ문학의 새로운 이해ꡕ, 문학과지성사, 1996
中國 朝鮮族 서간문의 誤用 分析
朴 甲 洙 (서울대 교수)
1. 서론
금세기 중반 외국어 학습에 응용하기 위해 대조분석이 발달하였다. 이것은 구조언어학의 이론을 언어 교육에 응용한 것이다. 대조 분석은 L2를 학습할 때 발생하는 난점이 주로 L1의 간섭에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간섭은 대조 분석에 의해 예측할 수 있으며, 이는 대조분석을 이용한 교재를 사용하여 집중훈련을 함으로 그 영향을 억제하고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가정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측하지 못한 오용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오용은 목표언어의 규칙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1960년대 말기에서 1970년대에 걸쳐 오용 분석(error analysis)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오용 분석의 결과 오용은 L1의 간섭만이 아니고, L1을 달리하는 학습자에게도 같은 계통적 오용이 나타나며, L1 습득과 L2 습득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리하여 오용은 언어 습득상 자연스러운 것으로 불가피한 것이며, 언어 습득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로 생각하게 되었다. 오용 분석은 오용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 언어 습득과정을 밝힘으로 언어 습득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오용 분석이 중간언어의 부분적 설명에 머물렀고, 주관적인 것이 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리하여 1970년 후기 이후에는 언어행동 총체의 연구를 중간언어 연구로 하고, 그 일부로 오용 분석을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오늘날은 중간언어의 가변성(variation)을 갖가지 각도에서 다루어 그 가변성 가운데 계통성·법칙성을 발견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용의 원인은 간섭에 의한 오용과 비간섭에 의한 오용으로 나뉜다. 간섭은 물론 오용과 연결되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다. 비간섭의 오용은 외적 요인에 의한 오용과 내적 요인에 의한 오용으로 나뉜다. 유발에 의한 오용(induced error), 훈련에 의한 전이(transfer of training)는 전자에 해당한 것이며, 유추와 과잉 일반화에 의해 빚어지는 학습 방략(learning strategy)에 의한 오용, 전달 방략(communication strategy)에 기인한 오용은 후자에 해당한 것이다.
여기서는 중국 조선족의 서간문의 오용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이는 물론 단계적으로 언어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오용 분석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언어 교육을 꾀하기 위한 학습 대상의 진단 평가라 하여 좋을 것이다.
자료의 서간문은 1991년-1993년 사이의 것으로, 필자가 KBS 사회교육 방송을 하면서 입수한 것이다. 발신자는 남녀 노소의 제한이 없다. 문자 그대로 불특정 다수의 것이다. 따라서 이 서간문의 문장은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평균적인 한국어 수준이라 보아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들의 한국어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밝히고, 나아가 L2로서 한국어를 교육할 때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그 실체를 밝혀 보기로 한다. 오용 분석은 자료의 성격상 발음을 제외한 표기, 어휘, 문법, 문장이 될 것이다.
2. 표기상의 오용
2.1 표기상의 차이
한국의 표기법을 중심하여 중국 조선족의 표기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상이한 두 가지 유형의 오용이 발견된다. 하나의 유형은 중국 조선족의 표기 규범이 한국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문자 그대로 오용에 의해 잘못된 것이다. 전자는 한국의 규범을 기준으로 할 때 오용이 되나, 현지의 규범으로 볼 때는 바른 것이다. 이것은 물론 국제화를 위해 통일을 할 때까지 인정해야 할 규범이다. 그러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라는 차원에서는 일단 오용으로 보고 이에 대한 교육의 문제를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오용은 표음적인 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밖에 잘못된 음운 변동을 반영한 표기, 어원을 잘못 설정한 인식 부족의 표기 등이 많이 보인다. 다음에 이러한 표기상의 오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2 규범상의 차이
중국의 표기법으로는 동북 3성 조선어문 사업협의소 조판공실에서 편하고 연변인민출판사에서 1985년 간행한 「조선말 규범집」이 있다. 이는 1966년에 개정된 북한의 「조선어 철자법」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남한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박갑수, 1995, 1997).
① 남한에서는 사이시옷을 쓰는데,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다.
② 남한에서는 어간 모음 「ㅣ, ㅐ, ㅔ, ㅚ, ㅟ, ㅢ」 아래 「-어/-었」을 쓰는데,
중국에서는 「-여/-였」을 쓴다.
③ 남한에서는 한자어의 어두음 「ㄹ」과 구개음화한 「ㄴ」에 대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데, 중국에서는 원음 표기를 한다.
④ 남한에서는 한자어에 「ㅖ」가 들어 있는 음절로 「게, 례, 몌, 폐, 혜, 예」를
인정하는데, 중국에서는 「몌, 폐」를 인정하지 않는다.
⑤ 남한에서는 「이(齒, 蝨)」와의 합성어를 「사랑니, 머릿니」로 표기하는데, 중
국에서는 「사랑이, 머리이」로 표기한다.
⑥ 남한에서는 띄어쓰기를 할 때 중국에 비해 많이 띄어 쓴다.
이러한 규범상의 차이로 말미암아 중국의 조선족 서간문에는 어두에 「ㄹ」 및 구개음화된 「ㄴ」이 많이 쓰이고 있고, 「ㅣ, ㅐ, ㅔ, ㅚ, ㅟ, ㅢ」 아래 「-어/었」이 아닌, 「-여/-였」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사이시옷의 용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띄어쓰기는 중국의 규범을 지키기보다 자의적으로 쓰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이들의 용례를 몇 개씩 보이면 다음과 같다.
① 「ㄹ」 두음의 사용
. 그래서 부끄러움과 미안감에서 먼저 량해를 구하면서...
. 렴치없는 요구인지 몰라도...
. 그래서 현철씨가 노래한 록음 태입과 노래집을 부쳐 주시기를...
. 그리고 년로하신 부모님을 위하여 <<성경전서>>도 부탁하는데...
② 연결형 등에 「-여」의 사용
. 고국으로 춤추며 뛰여가리라.
. 지금은 사회가 발전되여 機械化로 하기 때문에 사람에 일손이 만이 헐하게 되엿습니다.
. 책을 보내 주시여서 다섯 식구가 잘 보고 있습니다.
. 해마다 봄이 오면 개나리꽃 살구꽃 피여나는 곳/ 이곳이 내가 태여난 고향이란다.
③ 종결어미 「요」의 사용
. 끝으로 방송국 여러 선생님들 안령히 게십시요.
④ 사이시옷의 생략
. 나무잎도 떨어지면 뿌리로 가나...
2.3 표음적 표기
표음적 표기는 Heritage langage 또는 Kitchen language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아직 한국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표기에 오용이 빚어진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는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는 자음접변 수용, 속격 조사의 음운 변동 수용 및 연철 표기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문자언어 아닌 구어로서는 수용될 수 있는 것이란 특징을 지닌다.
① 자음접변의 수용
자음접변이 일어나는 많은 비음화 현상이 그대로 표기에 나타나고 있다. 설측음화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 안녕하심니까(안녕하십니니까).
. 새해의 인사를 올림니다(올립니다).
. 화목은 더더욱 고국의 친우 친척을 그리게 됨니다(됩니다).
. 1월 31일 문제풀이 정답을 맞추어 보렴니다(보렵니다).
. 많이 諒解하시기 바람니다(바랍니다).
. 앞으로 많이 배워야 될 것을 희망함니다(희망합니다).
. 수말리(수만리) 떨어진 고국 땅에서...
② 속격조사 「의」의 변동 수용
속격 조사 「의」는 많은 것이 「에」로 쓰이고 있다.
. 낙동강 기슭에 자리 잡은 나에(나의) 조부님!
. 봄바람에 풍겨오는 고향에(고향의) 향기인양--
. 여지까지 친척들에(친척들의) 소식은 하나도 못 들엇읍니다.
. 사람에(사람의) 일손이 만이 헐하게 되엿습니다.
. 생활상 쾌락과 사업에(사업의) 순리를 두 손 들어 빌어봅니다.
. 우리 해외동포에(해외동포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③ 연철 표기
어원을 의식하지 못하고, 발음되는 대로 연철한 표기가 많이 보인다. 이는 문법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 저는 60에 가까와 오는 늙으니(늙은이)로서 貴放送의 熱情的인 愛聽者입니다.
. 무슨 훈장으로 가슴에 다라(달아) 올리리까?
. 나는 이 노래를 드를(들을) 때마다/ 가슴을 절켜 주누나.
. 가고 시퍼라(싶어라) 고국이여
. 問題푸리(풀이)는 아주 흥취 있음니다.
. 동이보감, 미술책의 피료되오니(필요되오니) 태산 같은 부탁 드립니다.
④ 기타
칠종성 표기, 단모음화 표기 등이 보인다.
. 每日과 갗이 하루도 빠짐없이 라디오에 귀를 밧삭 대고 듯고(듣고) 있엇으나...
. 될 수 잇는 대로 해결해 주셨으면 천만 감사하겟습니다.
. 우리 백의민족에 다심 없는 혈맥의 련게로...
. 끝으로 방송국 여러 선생님들 안령히 게십시요(게십시오).
. 띠운(띄운)장은 우리 곳에선 일반적으로 <<썩장>>이라고 합니다.
2.4 음운의 변동
구어에서의 음운의 변동이 표기에 많이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변동은 앞에서 살벼본 바와 같이 표준 발음으로 수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표기의 오용 가운데는 표준 발음으로 인정되지 않는 변동이 그대로 표기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다음에 논의할 「인식 부족」의 경우와 마찬 가지로 미숙한 학습 단계를 보여 주는 「중간 언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변동은 대체로 남한의 언어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① 「ㅐ-ㅔ」의 혼란
. 편지도 제데로(제대로) 써지지 않아서 몇번 썼다가 그만 두고 말았지요.
. 特히 막네(막내) 딸이 책을 품에 안고...
. 이른 새벽에 김매러 나가고 달 떠야 호미 매고(메고) 돌아오네.
. 전번 내번(네번) 편지를 방송국에 보내고...
. 오늘까지 제가 전한 편지는 한 차래(차례)도 消息이 없음니다.
. 어렷을 때 부모한태(한테)/ 듣고 듣은 고향 이야기
② 전설모음화
. 多彩로운 生活面에서 가진(갖은) 노력을 다하시는 사회교육 방송국
③ 「ㅎ」음의 약화 탈락
. 제가 소학교를 필업하고부터는 30여년을 한국 자를 쓰지 안아(않아)...
. 전번 저이(저희)가 문제풀이 정답을 매주일 정리하여 일요일에 부치었읍니다.
④ 원순모음화의 수용
. 동구의 기뿐(기쁜) 소식 전하겠노라구/
. 친척 친우들을 찾었으면 무어라 할 수 없이 기뿌겠습니다(기쁘겠습니다).
⑤ 구식 발음
. 사회교육 방송국 여러 선생님들 안령하십니까(안녕하십니까)?
. 신체 근강(건강)과 맡은 바 事業에서 더욱 더 큰 성과를 걷울 것을 빌면서...
⑥ 기타
. 멫 (몇) 가지 書籍도 요구하였습니다.
2.5 인식 부족
「표음적 표기」 또는 「음운 변동」에 의한 오류도 결과적으로는 한국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잘못이 빚어진 것이나, 여기서 말하는 「인식 부족」에 의한 오용이란 한국 어문에 대해 무지하거나, 필자 나름의 잘못된 어원적 해석을 가해 표기를 함으로 오기를 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오용은 선어말 어미 「았」을 「앗」으로 표기하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고, 이 밖에 체언, 용언, 부사, 조사 등에 많이 나타난다. 이들은 학습자의 학습 단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바른 형태에 대한 인식, 또는 올바른 어원에 대한 지도를 통해 교정될 수 있응 을 것이다.
① 선어말 어미-「았」의 「앗」화
. 여지까지 친척들에 소식은 하나도 못 들엇습니다(들었습니다).
. 問題푸리 擔當 先生 앞 月曆을 감사히 바닷음니다(받았습니다).
. 어렷을(어렸을) 때 부모한태/ 듣고 듣은 고향 이야기
. 每日과 갗이 하루도 빠짐없이 라디오에 귀를 밧삭 대고 있엇으나...
② 체언
. 저의 여행은 몇일(며칠) 또는 몇 주일의 시간이 됩니다.
. 밫임(받침)이 韓國 標準語와는 틀린 점이 많으리라구 생각되오니...
. 찌프린 하늘엔 햇님(해님)은 어데 가고
. 이 절기는 경첩(驚蟄)입니다.
. 사람마다 단노절(단오절)에는 유쾨(유쾌)하게 놀기도 하고 그내(그네)도 뛰고...
. 한민족의 좋은 풍섭 대대로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51)
③ 용언
. 兄任의 두분 누님의 한 분 게심니다(계심니다).
. 끝으로 방송국 여러 선생님들 안령히 게십시요(계십시오).
. 더 큰 성과를 걷울(거둘) 것을 빌면서 이 筆을 놓습니다.
. 마음을 끌어단겨(끌어당겨) 삼천리 금스강산에 나래치게 하는...
. 그리운 목소리 전파 타고 나래도쳐(나래돋쳐)...
. 언제 가야 서로 맛나(만나) 두 손 잡고 들어 볼까?
. 타국에 태여나 외국땅만 해매돌며 한 맻인(맺힌) 그 몇 十年이든가.
. 책자를 요청하는데 붓쳐(부쳐) 주시면 무엇보다 더 감사하겠습니다.
. 담당자 선생님께서 저에게 꼭 붙여(부쳐) 주실 것을 바랍니다.
. 벼모 붙고(붓고) 논갈이도 하고 거름도 내고...
. 우리 모국-대한민국에 유관되는 내용을 싫는(싣는) 두 가지 신식...
. 고국 동포들의 앗김없는(아낌없는) 방조 밑에 갈라진 혈육을 다시 찾고...
. 고향을 두고도 못 가는 않다가운(안타까운) 타관 나그네 신세
. 조상님 나라 폭은한(포근한) 어머님 따사로운 품으로...
. 廣野도 山川草木도 歡歌의 갈채를 휘둘으는데(휘두르는데)...
④ 부사
. 每日과 갗이(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라디오에 귀를 밧삭(바싹) 대고...
. 일손이 만이(많이) 헐하게 되엿습니다.
. 정성것 보내 주신 편지와 신년 선물 반가히(반가이) 받았습니다.
. 나는 비로서(비로소) 나기도 만주 따에서 나고...
. 까마귀 요란스리(요란스레) 울어대네, 동구의 기뿐 소식 전하겠노라구.
⑤ 조사
. 每日갗이(같이) 社會敎育 放送局에 방송을 들었으나...
. 매일갗이(같이) 들어도 그리운 목소리
. 그러면 금일는(은) 이상을오(으로) 불비상서하면서...
. 한국의 역사을(를) 실은 책과 지형지도, 풍경화을(를) 담은 화보와...
. 兄任의(이) 두 분, 누님의(이) 한 분 게심니다.
. 數多한 親戚들의 結緣을 지어 주신 여러 先生들이(의) 至誠에 感動되며...
⑥ 접사 등
. 金宗秀氏는 三兄弟에 셋채(셋째) 아들이고...
. 風霜 고초 겪을 데로(대로) 격으면서도...
3. 어휘상의 오용
어휘의 경우도 규범상 차이가 있는 것과 문자 그대로의 오용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방언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은 북한과는 달리 중국 조선족의 경우에도 남한과 같이 표준어라 하고 있다.(연변 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 1996) 이 표준어가 남한과 달라 조선족의 서간문에는 한국에서의 용어와 다른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리고 방언 또한 많이 보인다. 이러한 방언에는 북한 방언, 그것도 평안 방언이라 할 것이 많다. 이 밖에 남한에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단어와 우리와 다른 의미로 쓰는 한자어들이 또한 많이 쓰이고 있다. 이제 이러한 단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1 규범상의 차이
중국의 규범과 남한의 규범이 달라 차이를 드러내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보인다. 보기 가운데 ( )안의 낱말은 대응되는 남한의 표준어이며, (=)는 중국에서의 복수 표준어를, (?)는 남한어에서 적절한 대응어가 보이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이다.
① 체언
. 기념날(=기념일)에 해외 동포들은 고국과 같이...
. 때로는 남편과 안해(아내)로 때로는 할머니와 아들로...
. 선생님들에게 속심(속마음)의 말을 하게 해요.
. 내 왜 나래(=날개) 돋힌 새가 되지 못했더냐?
. 고국에도 곡우에 당콩(=강남콩)을 심는지요?
. 띠운 장은 우리 곳에선 일반적으로 <<썩장>>(=담북장)이라고 합니다.
. 알아맞추기 못하면 어쩌나 하는 주저심(?)에 그냥 필을 들지 못했지요.
위의 중국의 규범어 가운데 「썩장, 주저심」 외의 단어는 모두 북한의 문화어와 일치하는 것이다.
② 용언
. 맑게 개인(갠) 하늘에 별을 보면서 필을 들어 ...
. 날이 개이고(개고) 따듯해...
. 까마귀 대가리를 까부시고(까부수고) 금년 일년의 부스럼도 몽땅 까부셔서(까부수어서) 무병할 것이고...
. 마음을 끌어단겨 삼천리 금수 강산에 나래치게(날개치게) 하는 마음에 노래
. 알싸안고 딩굴면서(=뒹글면서) 회포 풀리라.
. 6천만 교류에서 전파로 메아리쳐(메아리져) 울린 민족의 소리...
. 1월 31일 문제풀이 정답을 맞추어(맞히어) 보렴니다.
. 저도 적지않은 답안을 맞추어 (맞히어) 보았댔는데...
. 그리고 中國語音 방송국에서 배워주는(=가르쳐 주는) 한국말 책
. 문제풀이 시간을 하루의 과제로 빠치지(=빠뜨리지) 않고 공부한답니다.
. 참나무 소나무 밤나무 영근(=여문) 내 고향
. 귀방송국에 편지를 올렸댔는데(올렸었는데) 아직 소식이 없슴니다.
위의 중국의 규범어는 모두 북한의 문화어와 동일한 것이다. 이 밖에 중국 서간문에는 남한과 다른 단어라기보다 남한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도 보인다. 「나다, 암흑한, 피타는, 일떠나, 필요되는」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암흑한」은 북한에서도 쓰이지 않는다. 이들의 구체적인 용례는 다음과 같다.
.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얼굴이 뜨거워 나요(?).
. 이것은 암흑한(?) 현실에 대한 그의 강렬한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 고국 동포들의 피타는(?) 대가를/ 무슨 말씀 골나 찬미하리까.
. 백의동포여, 우리 모두 일떠나(?)/ 철석같이 한데 뭉치여/
. 겸히 必要되는(?) 冊子를 요구합니다.
③ 기타
. 하루도 드팀없이(드팀 없게) 우리 민족의 메아리 눈물겨운 사회교육 방송을 청시하고 있어요.
. 모쪼록(아무쪼록) 건강하여 주십시요! 3-95
. 귀국에서 여직껏(여태껏) 보내온 알아맞추기 문제들을...
. 그것이 방송되면 인차(?) 부쳐 보내고 말입니다.
. 하여(그리하여) 放送局 여러분께 도움을 빌면서...
이들 가운데 「여직껏」은 북한에서도 방언으로 보는 것이다.
3.2 방언
중국 조선족의 언어 규범으로 볼 때 사투리로 보아야 할 단어들도 많이 쓰이고 있다. 이들은 남한의 규범으로 보아도 대체로 방언에 해당한 것이다. 이들 보기를 체언과 용언 및 기타의 세 가지로 나누어 제시해 보기로 한다.
① 체언
. 우리 백의민족에 다심없는(?) 혈맥의 련게로...
. 저는 당손(장손)으로써...
. 방방곳곳(방방곡곡) 어디라 할 것 없이 노래 불러 주겠어요.
. 최외 방방곳곳(방방곡곡)에서 방송국에 도착된 편지들을 소개할 때...
. 고국의 방방면면(방방곡곡)을 많이 알아보자는 것이예요.
. 무슨 신바람(심부름)이나 하라면 알아들으면서도...
. 숯무지(숯무더기) 위/ 뻐얼건/ 물동이와
. 절기 알아맞추기는 집집마다 이 날이면 동지 오구랑죽(?)을 해서 먹지요.
. 이붓자식(의부자식)이라 괄세 말고...
. 갑자기 내린 진눈비(진눈깨비,눈비)가 멈추더니...
이들 가운데 「다심없는」은 중국 및 북한의 사전에도 보이지 않는 방언이며,「진눈비」는 중국에서는 「진눈, 진눈까비」를 표준어로 보는 것으로, 북한과 같다.
② 용언
. 저녁 방송 시간을 안타까이 기다렸다가 귀를 강구하고(?) 열심히 듣군합니다.
. 우리 성 領事館의 檢査을 걸친다(거친다) 합니다.
. 1938년 2월에 이민으로 딸 둘을 다리고(데리고) 중국으로 왔습니다.
. 어렷을 때 부모한태/ 듣고 듣은(들은) 고향 이야기
. 어릴 때 어머니께서 듣었든(들었던) 거예요.
. 그럼 저 최근에 맞쳐(맞추어) 본 정답을 적어 보냅니다.
. 절벽도 무너지고 바다도 메꾸어(메워)
. 저녁 8시의 ‘새소식’의 내용을 좀더 뿔겄으면(불렸으면) 좋겠습니다.
. 다시금/ 못 돌아올/ 두만강 설은(설운) 물아...
. 인생의 谷雨가 되는 상싶군요(성싶군요).
. 그 날이 速히 올 것을 손곱아(손꼽아) 기다림니다.
. 저는 대번에 알아마췄어요(알아맞혔어요).
. 문제풀이 답을 알아맟춘(알아맞힌) 데 있지요.
. 住所가 얼뜰하면(?) 落失할 수 있기 때문에 서울로 부침니다.
. 이 방송의 프로에 귀를 기울여 온 지는 오라지만(오래지만)...
이들 가운데 「강구하고」는 「강구고」의 방언으로 「강구다」는 중국과 북한에서 다 표준어로 보고 있는 말이다. 「얼뜰하면」은 중국과 북한의 사전에도 다 수록되어 있지 않은 방언으로 보이는 말이다.
③ 기타
. 겸히(겸하여) 必要되는 冊子를 요구합니다.
. 혹 귀방송에 나의 속담이 다문(다만) 얼마라도 나온다면...
. 따뜻한 새봄이 발볌발볌(발밤발밤) 찾아드는 곳/
. 이제는 어느뜻(어느덧) 56년이란 세월이 흘러 한갑(환갑)이 가까워 오니...
. 언녕(얼른) 부치려 했지만 주소를 몰라서...
개화기 시가를 통해 본 전통의 문제
ꠏꠏ ꡔ대한매일신보ꡕ를 중심으로
윤 여 탁(서울대 교수)
Ⅰ. 개화기 문학 연구의 의미
한국 근대 문학에서 개화기는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선 몇몇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대체로 근대의 출발기로 잡고 있다는 사실과 조선 사회로 대표되는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근대적인 사회로의 변모 과정을 같이 보여주는 과도기라는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 어떤 관점을 취하건 간에 이 시기의 문학은 전통적 면모와 근대적 면모를 같이 보여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이 시기를 획으로 하는 근대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크게 두 경향을 보였다. 그 하나는 근대 문학이 고전 문학과는 단절되어 일본을 중개자로 하는 서구 문학의 이식사였다는 견해와, 서구 문학의 이식 과정에서 우리 나름의 문학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관점이 또다른 견해였다. 획일적으로 정리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중에서 전자는 주로 근대 문학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피력되었으며, 후자는 고전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전자를 비판하면서 제기되었다.
특히 후자의 관점은 그동안 일부 제한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근대 문학사를 기술하던 태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 당시의 다양한 문학적 성과들을 자료로 검토하여 도출되고 있다. 또한 이런 연구들에는 문학사를 단절보다는 계승이라는 시각에서 보려는 연구 태도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고전 문학의 성과를 창조적으로 계승․극복하고 있는 개화기 문학의 양적, 질적 성과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면서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좀더 논의의 영역을 확대하면, 문학 작품의 생산과 수용이라는 맥락까지도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시대의 문학 유산은 전적으로 문학 외적 영향이나 천재적인 개인의 창작적 소산이라기보다는 그 전대의 문학적 전통이 알게 모르게 전수되는 것이다. 더구나 문학의 생산과 수용을 이런 맥락에서 보는 연구 태도는 창작론이나 효용론과 같은 문학 원론적인 맥락에서도 그 논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본고는 우리 근대 문학의 시발점이기도 했던 개화기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를 전통의 창조적 계승과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그동안 우리 개화기 문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제기되었던 몇 가지 관점을 먼저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비판의 근거를 찾기 위하여 실제 개화기의 문학적 성과들을 중심으로 형식과 그 내용을 분석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개화기에 간행된 출판물 중에서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시가를 수록하고 있는 ꡔ대한매일신보ꡕ에 수록된 작품들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Ⅱ. 개화기 시가에 대해서 제기된 문제들
1. ‘동국 시계 혁명’의 문제
개화기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개화파는 개화파대로의 현실 인식에 의해, 수구파는 수구파대로의 현실 인식에 의해 개화기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야 했다. 그리고 개항,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경장 등의 정치 상황은 이들의 이런 현실 인식이 표면적으로 표출되는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실 인식은 이들의 글이나 행동으로도 표면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들의 현실 인식이 내면화된 형태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들의 현실 인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예술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내면화 방식도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문학 역시 과거와는 다른 상황 전개에 맞추어 새로운 변혁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한문과 한시로 대표되는 문자 체계와 표현 방식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어 국문체나 국한문혼용체와 경쟁 관계에 놓이다가 점차 이런 문체로 대체되게 된다. 개화기 시가와 같은 문학 역시 이런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문학의 경우 이런 문체 변화는 곧바로 그 내용에도 작용하게 된다. 즉 내용을 구성하는 현실적 여건이나 사상적 기반이 변화되고 있음을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동국시 운동’ 또는 ‘동국 시계 혁명’이라고 불리는 개화기 시가의 변혁 운동은 이런 시대적 요구가 문학 분야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변혁 운동은 우리 사회 전체에 걸친 문제였으며, 개화기에 나타난 여러 시가 형태는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글은 이런 요구가 잡가나 민요와 같은 노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凡風俗之移入이導之以善則善고導之以惡則惡야一或成俗이며難미猝變이나然이나現今我韓國內所習歌謠無非病風傷性之亂雜則不可不改革이亦一急務라
所謂妓女唱夫及街路兒童이開口則所謂歌曲이都是수심가난봉가알으랑흥타령等類이니此何窮凶巨惡淫談悖說之成習也오彼等愚賤之尋常行之를不足掛齒라면豈可曰導之以善之有也리오這間尤有痛歎痛憎者니所謂官人名色이與此倂唱에猶恨不淫悖之益甚니是爲爲國乎아是爲爲家乎아此時가何時오實非諸君宴樂之日而况若有壹點人子之本性이면豈可擧面皮而坐聽此妖言狂說哉아爲之寒心處로다
盖英雄濶達之詞와壯士慷慨之歌古今이何異리오만은至若此等亡身亡家亡國之荒音은宜有警吏之痛禁而置諸度외니免蒼古之論이나然이나其實은際此開明前進之時代하야妨害志氣가莫此爲甚也리
所以胃敢一誦而且不可無구弊故로先以陳談數句로製呈니行須宜本此義야更爲硏究出報하야?彼妖妄擔語之輩와神脫坐戶之類焉이어다
第一章
人生이處世니
충효가읏듬이라
黃金튼이光陰을
伐齋爲名虛送니
於焉間忠도孝도다못고
後世에무엇을
(琴兮, 「歌曲改良의意見」의 부분, 357~8면)
신채호가 ꡔ천희당시화ꡕ에서 주장했던 내용과 같은 가곡의 개혁 필요성이 이 글에 나타나 있다. 작가는 이 글에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음담패설과 같은 가곡을 개량할 것을 주장하고, 시조 형식을 빌어 새로운 사회에 요구되는 시의 내용을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면, 이 시조는 내용상 ‘英雄濶達之詞’ 또는 ‘壯士慷慨之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시조는 정철의 ‘훈민가’와 같은 시조 작품에서 보였던 것처럼, 민중이나 백성을 교화하는 교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문제 제기는 ꡔ대한매일신보ꡕ의 논설진이었던 신채호, 박은식, 양기탁과 같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등’이라는 고정난에 게재된 가사의 주된 작가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사회등 가사’로 통칭되는 가사의 내용이 비교적 일관된 시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슷한 내용이나 표현이 중복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또 이런 시각은 적어도 ꡔ대한매일신보ꡕ의 독자층에게도 널리 퍼져있었다. 위의 글은 이런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며, 이들 일반 독자의 투고는 이 신문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부 필명이나 가명으로 표기된 이들 일반 독자들의 작품들은 ‘사회등’과는 다른 지면에 수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2. 개화기 시가의 지각 현상에 대한 논의
근대 또는 개화기를 언제부터로 잡느냐에 따라 우리 근대 문학사의 출발은 달리 잡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나 정치적 개화의 단계와는 다른 차원에서 문학 작품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문명 개화의 조짐이나 현상은 일찍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문학 작품에 반영되는 시기는 그보다 훨씬 뒤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개화기 시가 문학의 출발점은 최대한 소급한다고 하더라도 문학적 형상화가 집단적으로 나타난 시기인 1896년 ꡔ독립신문」의 창간과 이 신문에 실린 작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개화기 시가의 지각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 작품의 창작이나 수용이 사회나 정치 현실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런 경향은 문학․예술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먼저 예언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더 늦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런 현상이 개화기 시가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며, 개화기 시가만의 특성도 될 수 없다. 문제는 개화기 시가를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견해가 제기될 수 있다. 즉 표나게 차별화할 수 없는 개화기 시가의 특성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일부 작품들만을 개화기 시가로 규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라고 생각된다.
개화기 시가가 전통적인 시 형식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개화기 시가라는 구체적인 규정 없이 논의되고 있다. 적어도 개화 가사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ꡔ대한매일신보ꡕ에 수록된 작품들이 종래의 가사, 시조, 한시, 민요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반문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1860년경의 최제우의 ꡔ용담유사ꡕ에 수록된 가사나 1866년경의 신재효의 「괘씸한 서양 되놈」, 1894~5년경의 동학 농민 전쟁과 관련된 민요, 위정척사파들의 한시와 이들 작품들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신문에 수록된 개화 가사의 경우 분연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 비하여, ꡔ용담유사ꡕ의 가사나 신재효의 가사는 ‘단가’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이 다를 뿐이다. 내용상 이들 작품의 양적 차이 때문에 단순 비교는 큰 의미가 없지만, 전자에 해당하는 시가들이 (양적으로 많은 관계로) 다양한 사회적 관심사를 포괄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후자에 속하는 가사는 종교적 교리와 관련이 있거나 유교 윤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천주학에 대한 비판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다음의 ꡔ대한매일신보ꡕ의 가사와 신재효의 단가는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當局者야 聽哉어다 俄公使를 쫓아내고
日兵들이 入城할제 韓國人民 歡迎함은
同文同種 爲함인데 民心傾向 違反하고
奸賊輩를 利用하여 五條約을 締結하고
七條約을 調印하여 歡迎하든 저民心이
一朝仇視 되였으니 失人必敗 이아닌가
(東洋生, 「讀史有感」의 5연, 127면)
괫심다 서양 되놈 무부무군 쳔쥬학은
네 나라나 할 것이지 단군 기 동방국의
효졔율리 엇는듸 어히 감히 여어보자
흥병 나왔다가 반슈셩 불에 타고
졍죡셩 총에 죽고 남은 목숨 도자
어서어서 도망자 에옹 ~ ~
앞의 개화 가사는 ‘사회등 가사’에 속하는 작품이다. 근대사에서 청나라, 러시아, 일본에 의하여 우리 민족과 국가가 유린되고 있음을 반성하고 있는 내용이다. 특히 같은 뿌리로 생각하여 환영했던 일본과 이들과 협작하여 5조약과 7조약을 체결한 무리들을 규탄하고, 이를 당국자들이 바르게 알 것을 경고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전통적인 가사 형식을 내용 단락에 따라 연을 나눈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신재효의 단가는 전통적인 가사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는 서양의 침략과 천주학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우리의 역사적 전통과 충효 사상과 같은 유교적 윤리를 옹호하고 있다. 이는 신재효와 친했으며, 그에게 ‘오위장(五衛將)’이라는 벼슬을 내린 대원군과 같은 위정척사파의 개화기 현실 인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각각이 당시의 현실 인식과 시대적 소명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차별점을 찾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후자에 속하는 시가를 역시 개화기 시가라는 넓은 범주에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이 시가가 특히 구시대의 가사 장르와는 전혀 다른 사상적 편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 역시 개화기의 시대적 특성을 문학 작품에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개화기 시가의 특징을 개화 사상이라는 한 측면에서만 살필 수 없으며, 어떤 종류의 개화기 가사도 이런 일면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개화기라는 변혁의 시대에 각기 다른 현실 인식을 가지고 있던 다양한 계층들이, 자신들의 문자 체계에 부합되는 시가 형식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3. ꡔ독립신문ꡕ 소재 개화기 시가에 대하여
1896년 개화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독립협회’에서 발행한 ꡔ독립신문ꡕ이 간행된다. 이 신문에는 25편의 개화기 시가가 실려 있다. 이들 작품에 대해서는 그동안 개화 가사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물론 창가로 보는 견해도 제기된 바 있다. 이 신문에 수록된 시가들을 개화 가사로 보는 견해는 주로 개화 가사, 창가, 신체시의 순서로 개화기 시가가 변모한다는 가정 아래, 비교적 초기의 작품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들 시가의 장르를 규정하는 논의는 국체적인 작품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또 개화기 시가 일반이 시대적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그 내용 역시 큰 차별성이 없이 창작 계층의 차이점을 드러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더구나 이들 시가 작품들이 1896년에서 1910년까지라는 단기간에 창작된 점은 아무리 변화가 심한 개화기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들 사이의 선후 관계나 발전의 양상을 구체화하기 힘들다. 따라서 선후 관계나 발전 과정을 세우는 것을 한 목표로 하는 문학사적 관점을 벗어나면, 이런 관계 설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럴 때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런 이해는 다시 문학사의 서술과 같은 맥락화 작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ꡔ독립신문ꡕ에 수록된 개화기 시가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이 신문의 발행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개화파의 현실 인식과 이들의 집단인 ‘독립협회’에 대하여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개화파는 유학을 숭상하고 애국 사상으로 무장한 위정척사파와는 대척적인 현실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로 종교적으로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며, 일본이나 서구의 문명 사회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적어도 ‘독립협회’는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단체이다. 그들은 서양이나 일본에 유학을 했던 청년들로, 기독교 계통이 주를 이루는 귀족 청년들이었다. 따라서 문명 개화와 민중 계몽을 위하여 당시의 주도적인 문체와는 좀 거리가 있는 순한글 신문을 발행했으며, 이를 통하여 애국이나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근대적 개혁의 필요성과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점은 신문의 발행 주체였던 독립협회 회원들이나 이 신문의 일반 독자에게도 같은 설명을 할 수 있다.
이런 사상적 기반을 토대로 이 신문의 개화기 시가는 대부분 ‘국가’나 ‘독립가’라는 명칭이 붙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이런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시가의 내용은 신문의 논조와도 일치하고 있다. 주로 ‘애국’, ‘독립’, ‘동심’, ‘애민’, ‘각성’, ‘군주 숭상’이라는 내용은 독립신문의 논조이자 독립협회의 주장이기도 하였다. 내용상 개화파의 현실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다음의 작품은 ꡔ독립신문ꡕ이 견지하고자 했던 관점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뎨일
텬디만물챵죠후에 오쥬구역텬뎡이라
아시아쥬동양즁에 대죠션국분명다
(후렴)독립긔쵸쟝구슐은 군민샹뎨일이라
깃분날깃분날 대죠션국독립날
깃분날깃분날 대죠션국독립날
뎨이
단군긔쥬시고 신라년호견원이라
국홍졔인평후에 고려건원광덕이라
(후렴)
(농샹공부 쥬 최병헌, 「독립가」의 1~2연, 7면)
1896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고종이 황제에 등극하여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사용함을 경축하는 시가이다. 내용상 우리 독립 국가의 기원이 장구함을 찬양하고 있으며, 이제 새로운 독립 국가를 선포함을 같이 기뻐할 것을 권하고 있다. 형식상 4.4조 2음보의 가사 형식에 따르고 있으며, ‘후렴’이 있는 분연체로 되어 있다. 그동안 이런 형식상의 특성 중에서 특히 전통적인 가사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은, 이런 시가를 개화 가사로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은 노래로 불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들이 한결같이 노래를 지칭하는 ‘가’ 또는 ‘노’라는 명칭이 붙어 있음에서 알 수 있다. 또 일부 시가에는 노래의 ‘후렴’이나 ‘합가’라는 표기가 병기되어 있다는 점도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더구나 이런 작품을 썼고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개화파 기독교도들이라는 점은, 이들이 일찍이부터 찬송가와 같은 노래 형식에 익숙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가들은 곡조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 것이며, 이런 맥락에서 ‘창가’의 형태로 보아야 한다.
이런 추정은 주로 최남선에 의하여 창작된 창가도 초기에는 일본 창가의 영향을 받아 노래를 의식하고 제작되었으나, 이후에는 장형화되면서 굳이 가창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도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다. 즉 ꡔ독립신문ꡕ 소재의 시가들은 원래 노래를 의식하여 만들어졌으나, 그것들이 곡조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한 관계로 실제로 널리 가창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여러 사항들은 고려한다면, 이 시가들도 역시 창가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
4. 개화기 시가 장르의 다양성
조선 후기 우리의 고전 문학은 시조, 가사, 한시, 소설과 같은 기록 문학과 설화나 민요, 탈춤과 같은 구비 문학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발전하였다. 이는 조선 전기 문학이 비교적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 중심의 문학에서 중인이나 평민들을 향유 계층으로 하는 문학으로 변모하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향유 계층의 확대, 변화는 문학의 형식적 내용적 변모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시가에서 향유 계층의 이런 변화는 내용이나 형식은 물론 전통적인 미의식의 극복과 지양, 새로운 미의식의 창조와 같은 미의식, 표현 기교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시조의 사설시조화, 12잡가의 정착과 같은 민요의 유행가화, 기행 가사나 내방 가사, 유배 가사와 같이 가사의 장형화, ‘풍요(風謠)’와 같은 한시의 대중화가 보편적인 현상이 된다. 이런 문학적 현상은 개화기라는 새로운 시대 상황에 따라 다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더구나 서구의 이질적인 문학 양식이 소개되면서, 이런 전통적인 문학 장르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수용하여 변모하거나 쇠퇴하는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구들은 이런 전통 시가의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하여 개화기 시가의 실체를 분석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가 형식의 도입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에 따라 개화기 시가는 가사의 변화형인 개화 가사와 일본 창가를 수용한 창가, 자유시로서의 근대시로 이행적 현상인 신체시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따라서 평시조 형식에서 종장의 마지막 어절이 생략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꾸준히 창작되었던 시조나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저항 의식이나 새로운 변혁 의지를 담기 시작한 한시들은 소멸하는 장르로 간주하였다.
더구나 19세기말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행 잡가, 동학 민요, 「경복궁 타령」과 같은 신민요 등은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다. 또한 ‘동국시’ 운동의 차원에서 전개된 국문시 운동인 언문 풍월은 개화기 시가 문학사의 맥락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한시나 민요, 잡가 등이 개화 가사에 수용되어 새로운 시 형식의 창조에 영향을 끼치거나 시조와 같이 그 생명력을 꾸준히 보여주면서 현대 시조로 계승되는 장르들을 고려하지 않는 점은 분명히 잘못된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시조와 민요를 수용한 개화 가사는 이런 맥락에서 이들 장르가 개화기 시가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金玉이 보배라도 鍊磨않고 光彩나며
人材가 出衆한들 培養않고 英雄되랴
靑年들아 放心말고 工夫하여 이羞恥를
(「靑年아」의 전문, 21~2면)
달아달아 밝은달아 如盤如輪 네形軆는
어찌그리 完轉하여 牽引力을 不失하고
軌道대로 따라가며 萬古不變 하는구나
渙散中의 우리民族 어느때나 團合하여
너와같이 圓滿할까
(「賞月書感」의 5연, 112면)
앞의 시조는 개화기에도 시조가 여전히 살아 있는 장르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형식상 종장의 한 어절이 늘어나 있으며, 마지막 어절은 생략하였다. 내용상으로는 개화기 시가 일반에서 두루 나타나는 실력 양성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개화기 시조가 평시조라는 틀에 메이지 않고, 엇시조와 사설시조 등을 널리 사용하고 있는 형식적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내용상으로는 개화기라는 시대적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조와 같이 전통적인 시가 형식인 개화 가사는 다양한 민요 형식을 수용하고 있는데, 위의 개화 가사는 「달타령」을 개작한 것이다. 이밖에도 「새타령」, 「장타령」, 「신세타령」, 「달거리」, 「약성가(藥性歌)」, 「자장가」, 「군밤타령」, 「한글풀이」와 같은 민요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同舟相濟」(뱃노래, 72~3면), 「弔一進會」(숫자풀이요, 127면), 「擊壤歌謠」(농부가, 384~5면), 「孀婦歌」(시집살이요, 395~6면), 「逐邪經」, 「射雉目」, 「捉狐鷹」, 「雙成禍」, 「狩獵會」, 「오骨凍」, 「不時肴」(흥타령, 450~1면)와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런 예는 기록 문학을 중심으로 살핀 것에 불과하다. 기록 문학으로 미처 정착하지 못한 동학 민요와 같은 경우를 고려하면, 우리 개화기 시가 문학은 더욱 풍성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9세기말에는 필사의 형태로, 20세기초에는 인쇄의 형태로 기록, 정착하게 되는 잡가를 포함시키면, 우리 시가 문학은 개화기에 새로운 내용과 형식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다양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5. 근대 시가의 발전과 개인적 서정의 문제
그동안 우리 문학사는 대략 개화 가사 → 창가 → 신체시 → 자유시로의 이행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통하여, 형식상으로는 국문 위주의 일상어화와 정형적인 운율을 극복하고 자유율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내용상으로는 집단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에서 개인적인 서정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까지의 논의 과정에서 개화기 문학 또는 근대 문학이 창작된 시기를 어떻게 보든지, 이 시기의 시가 문학은 동시대적인 것이었으며, 서로 경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을 내비친 바 있다. 이제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는 먼저 개화기 시가에 한정할 때와 개화기 시가와 근대시(자유시)와의 관계를 따질 때로 분리하여 생각하여야 한다. 즉 전자의 문제는 개화기 시가의 다양한 장르들이 어떤 선후 관계에 놓이느냐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 때, 개화 가사, 창가, 신체시 외에도 시조, 민요, 잡가, 한시를 동시에 고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들 장르들은 내용상으로는 각각의 향유 계층들이 개화기라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개화 가사가 ꡔ대한매일신보ꡕ에 참여하였던 우국지사들의 사고를, 창가는 기독교계의 개화파나 최남선과 같은 근대 지식인의 사고를, 신체시는 최남선과 이광수로 대표되는 1910년대 계몽주의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이밖에 민요는 민중적 사고를, 잡가는 민중이나 이들과 가까웠던 소리꾼들과 같은 유흥인의 관점을, 시조는 양반이나 개화 가사의 향유층이 견지하던 생각을, 한시는 주로 위정척사파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 신체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창작되고 있다. 따라서 개화기의 역사적 과제인 개화(계몽) 사상과 애국(반외세) 사상의 표현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각각의 향유 계층의 차이로 인한 시각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창가의 향유층은 개화에 무게를 두었으며, 한시의 향유 계층은 애국에 무게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제 이런 차이를 작품을 통하여 살펴보자.
크고도 넓으고도 永遠한太極
自由의 少年大韓 이러한德으로
빗나고 거웁고 剛健한太陽
自由의 大韓少年 이러힘으로
어두운 이세상에 밝은光彩를
디난 구석업시 더뎌듀어서
긋한 긔운으로 탸게하라신
하날의 부린職分 힘써다하네
바위를 산ㅅ골中 나뭇긋디
自由의 큰소래가 부르딧도록
소매안 듀머니속 가랫가디도
自由의 맑은긔운 탸도록
(「大韓少年」의 1연, 529면)
猛虎當大道 사나운 범이 큰 길을 가로막고
雙眼如挾鏡 화경을 걸친 듯 두 눈알 부리부리
烈風捲九街 매서운 바람 거리를 휩쓸고
咆哮慴一境 으르렁 소리 온 지경에 떨치니
人人但蝟縮 사람마다 움츠러들어
驚乎熱中腹 벌벌 떨고 복장이 타는데
寧甘就彼死 저놈 앞에 고분고분 먹힐지언정
不願犯其剛 거센 놈이라 대들 생각 못하누나
吾意獨不然 내 뜻은 유독 그렇지 않으니
萬夫各執鎗 만인이 모두 나서 창를 잡으면
借日不死虎 설사 범을 못 죽인다 해도
勝似坐死亡 앉아서 잡혀먹이느니보단 나으리라.
(홍희춘, 「猛虎行」의 전문)
최남선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창가와 홍희춘의 한시이다. 이 작품들은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작품으로 각각 소년 계몽과 애국 사상으로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각각의 시가 작품들은 개화기 시가로서 어느 것이 중심이 되고, 어느 것은 주변을 이루지 않고 있다. 즉 서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이는 당시의 시가 작품 전체를 포괄적으로 고려할 때 자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근대화에 초점을 두고 문학사를 기술한다면 창가가 중요하게 취급될 수 있으나, 반외세 투쟁이라는 시대적 상황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한시가 우위에 놓이게 된다.
다음으로 개화기 시가 일반과 자유시로서의 근대시와의 관계에 대한 관점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자유율의 실험과 개인적 서정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신체시가 과도적인 양식이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그러나 신체시는 극히 제한적인 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먼저 신체시가 최남선과 이광수이라는 근대적 지식인 두 사람에 한정된 장르라는 사실이다. 또한 이들의 신체시 역시 양적으로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며, 중요 작가 역시 신체시보다는 다른 장르 즉 최남선은 시조나 창가, 이광수는 소설에 더 무게를 두고 창작에 임하고 있었다.
더구나 우리 신체시는 일본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창작적 실천이었지만, 일본에서의 신체시의 위치와는 전혀 판이하다. 어찌 보면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신체시라는 명명으로 포괄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오히려 1918년 ꡔ태서문예신보ꡕ나 1919년 ꡔ창조ꡕ 등에서 본격화되는 근대시의 증후적 현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양과 질을 보여주고 있다. 신체시라고 규정하기보다는 현상윤이나 최소월과 같은 일본 유학생들의 시를 포괄하여 ‘신시’라고 명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들 일부 신시를 개화기 시가의 일반 속에서 논의할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근대시의 전사(前史)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 설 때, 우리 개화기 시사와 근대 시사의 관계가 바르게 이해될 수 있으며, 개화기 시가와는 다른 맥락에 놓이는 신시의 양과 질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또 신체시 중에서 개인적 서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창가와 같은 최남선의 일부 시가들은 개화기 시가로 포용하기 위한 선별 작업도 필요하다. 계몽적 의식이 두드러진 「신대한소년」이나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이 이런 예일 것이다.
Ⅲ. 근대적 시 양식의 정립을 위한 모색
우리 문학사에서 개화기의 의미는 봉건적인 잔재를 극복하고, 근대적인 서구 문학과 그 관습을 수용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우리 근대 문학사는 일본을 매개로 하는 서구 문학의 수용과 이식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근대 문학이라고 규정하는 대부분의 지표들은 서구 근대 문학의 특성들이며, 이를 얼마나 어떻게 드러내고 있느냐에 따라 문학의 근대성도 설명되고 있다.
이런 설명에는 문화 전파론의 제국주의적인 시각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 즉 서구 문학의 근대적 속성이 우월하다는 입장에서 우리의 개화기로 대표되는 근대 문학의 초창기에는 이를 수용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보다는 서구 문학의 영향 속에서 우리 개화기 문학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를 살피는 시각이 요구된다. 오히려 우리 문학의 전통이나 문학 유산을 중심으로 서구 문학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를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문학 연구의 방향을 이렇게 잡기 위해서는 개화기 문학 전반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이 우선 요구된다. 즉 개화기 문학의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개화기 문학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나를 고찰한 다음에, 이런 제양상들이 이 시기에 지니고 있는 문학사적 의미를 규정하여야 한다. 또 개화기 문학이 보이고 있는 전통 계승의 양상을 중심에 놓고, 이런 문학 현상들이 어떻게 서구 문학의 영향을 수용하고 있나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견지한다고 하여, 우리 근대 문학사에서 서구 문학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거나 그 영향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규정할 수만은 없다.
또한 이런 개화기와 근대 문학의 의미와 특성을 시가사와 관련하여 설명할 때, 우리 근대시는 ‘노래’나 ‘가(歌)’에서 음영(吟詠)이 되는 ‘시’로의 변모라고 규정된다. 우리 근대시의 발전 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필 때, 우리 근대시가 향유자에게 점점 불려지는 노래로서의 자질을 상실하고 독자에게 읽히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 역시 개화기만으로 시기를 한정할 때에는 적합하지 않다.
앞으로의 논의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지겠지만, 개화기 시가 문학은 여전히 전통적인 시가 양식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전통적인 시가 양식은 음영되는 시(詩)라기보다는 향유자에 의해 가창(歌唱)되는 시가(詩歌)였다. 개화기에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시조나 가사, 민요(잡가) 등이 그 예이다. 즉 개화기 시가는 ‘노래’로서의 특성이 두드러지며, 이런 이유 때문에 본고에서는 개화기의 운문 양식을 ‘시’가 아닌 ‘시가’로 통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상과 같은 관점에 기초하여 개화기 시가의 양식적, 형식적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개화기에 향유된 시가들이 어떤 양식이나 형식적 특성을 가진 것이며, 이런 제양상들이 새로 이입된 서구의 문학적 관습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를 살필 것이다. 이를 위하여 개화기 시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개화 가사, 시조, 한시, 민요(잡가), 창가 등과 같은 개화기 시가 양식에 대한 실증적인 작업을 기초로 하여, 이들 작품들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분석하고자 한다.
개화기 시가의 양식과 그 문학적 발전 과정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주로 근대 문학사의 발전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런 관점에 의하여, 개화기 이후 우리 시가의 발전은 개화 가사 → 창가 → 신체시 → 근대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또 이 중에서 개화기 시가는 주로 개화 가사, 창가, 신체시에 국한하는 것으로, 서구의 근대 문학의 영향을 받았던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개화기의 여러 자료를 검토하여 보면, 개화기 시가로는 이들 양식 외에도 시조, 민요(잡가), 한시 등이 활발하게 창작, 향유되었다. 또 이들 양식들은 비슷한 시기에 서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서구 문학으로 대표되는 근대 문학의 관습과 만나면서 소멸되거나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개화기 시가 중의 일부는 그 문학적 위상을 근대시에 자리를 넘겨주고, 일부는 형식적 모색을 통하여 새롭게 변모하거나 다른 양식에 흡수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이런 개화기 시가의 제양상을 실증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 시조 형식의 계승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의 하나인 시조는 개화기에도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이 당시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개화기의 시가 문학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개화기 시조는 별로 주목을 받지 않았다. 주로 소멸하는 문학 양식으로 취급되어, 조선조 후기에 박효관과 안민영이 ꡔ가곡원류ꡕ를 편찬한 것을 끝으로 고시조는 생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시조와는 단절된 상태에서 1920년대 중반에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즉 이병기, 이은상, 최남선, 정인보와 같은 민족주의 문학파의 국민 문학 운동 차원에서 시조 부흥 운동이 전개되어, 현대 시조라는 양식이 새롭게 시도되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런 설명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넓게는 개화기(1960년대 이후)에 해당하는 시기에 발표된 시조 작품,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박효관이나 안민영과 같은 가객들이 창작한 고시조의 특성을 지닌 시조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음으로 개화기 특히 애국 계몽기(1905~10)에 ꡔ대한매일신보ꡕ와 같은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되는 많은 시조 작품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1910년대 이후 최남선에 의하여 시조가 창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전체 시조사의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살필 때에는 그 문학사적 위상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한용운 등과 같은 근대 시인들의 초기 시조 작품에도 적용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특히 이 절에서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은 애국 계몽기에 창작된 시조 작품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점이다. 실제로 이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는 많은 시조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징적인 현상으로는 조선 후기 시조의 장형화와는 달리 주로 평시조의 형태이며, 종장의 마지막 구를 생략하는 낙구(落句) 표현을 일반적으로 보이고 있다. 이 중에서 낙구 표현은 조선 후기 유행한 시조창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며, 이는 궁중 아악적 면모를 지닌 가곡창보다는 가객들에 의해 불려졌던 시조창이 보편화되었음을 방증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시조들은 이런 개화기 시조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啄木鳥야어리석다 속빈古木쫓지말아
그속에다네집두고 쫏기는만일삼느냐
하로밤 急한風雨 모라치면너는어이
(「責啄木」의 전문, 21면)
家貧에思賢妻오 國難에思良相이라
賢妻良相업고보니 家國貧亂엇지리
못죠록 學校를廣設여 人材養成
(「培養力」의 전문, 448면)
또한 이런 현상은 문자로 기록된 점만을 고려하여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 아직도 시조 양식이 전통적인 노래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이는 증거이다. 즉 읽기 위한 텍스트로서의 문학 현상만이 아니라 아직도 불려지는 음악적 기능을 가진 문화․예술의 범주 안에 개화기 시조는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시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개화기 시조가 낙구 표현을 활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장의 길이가 줄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조선 후기 시조가 사설 시조나 엇시조 형식을 통하여 장형화하는 특성과는 다른 방식의 장형화 방식이었다.
이런 일반적인 특성을 지닌 개화기 시조들이 활발히 창작되었으며, 이런 시조 형식은 최남선이나 한용운 등의 시조를 징검다리로 하여 현대 시조로 발전하고 있다. 즉 평시조와 시조창의 흔적, 대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보이던 개화기 시조가 최남선 등에 이르러 연시조의 형태로 계몽적 내용을 표현하다가, 현대 시조에 이르러 연시조, 양장 시조라는 형식으로 개인적인 서정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2. 가사 형식의 변화
개화 가사의 형식적 특성은 기본적으로는 4.4조의 4음보를 취하고 있으며, 표현된 내용에 따라 연을 나눈 대략 10연 이내의 분연체가 일반적이다. 이는 개화 가사가 기본적으로는 가사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그 내용적 특성인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나 대상의 다양성이라는 점을 고려한 결과로 생각된다. 이런 현상은 조선 후기 가사인 기행 가사나 유배 가사, 규방 가사 등이 발생론적 특성과 관련하여 장형화와 서사화되고 있음에 비하여, 개화 가사의 분연체는 즉자적인 현실 비판이나 폭로가 요구되던 개화기의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모색된 시가 형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각 연마다 관련성이 존재하는 각기 다른 대상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조선 시대 연시조의 표현 방식을 가사 형식에 변용한 것이다. 이는 시조와 더불어 가사 역시 어느 시대에나 지식인 식자층에 의하여 창작된 양식이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표현 방식을 가사라는 시가 형식으로 나타내는 데 적용한 것이다. 이런 방증은 시조의 종장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호격(呼格) 표현이 개화 가사의 서두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음의 개화 가사를 보면, 이런 특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李完用氏들으시오 總理大臣저地位가
一人之下萬人上에 그責任이어떠한가
修身齊家못한사람 治國인들잘할손가
前日事는如何턴지 今日부터悔改하여
家庭風氣바로잡고 百度政務維新하여
中興功臣되여보소
宋秉峻氏들으시오 內務大臣저地位가
中外政務總察하고 官吏賢愚銓衡이라
그責任이至重인데 公의政策말할진데
賣國賊을免할손가 往事勿論悔改하여
揀拔人材任用하고 勵情求治獻身하여
中興功臣되여보소
(「勸告現內閣」의 1~2연, 77면)
이런 개화 가사는 전통적인 가사 양식에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적절히 변용하여 새로운 시가 양식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런 개화기의 시가 양식은 개화기의 신문이나 잡지의 제작자나 독자였던 계몽적 지식인들의 창작 의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이 당시의 이들은 시대적 과제와 문제 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할 임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점이 드러난 대표적인 형식의 글이 논설이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 문학적으로 전환될 때 선택된 문학 양식이, 교술적인 내용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였던 가사였다. 그래서 이들은 이 가사를 적절히 변용하여 자신들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두루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개화기 지식인 주도하여 전통적인 가사를 전환한 형태인 개화 가사는 그리 긴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다. 특히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발표 매체가 봉쇄된 사정과 근대 지식인의 세대 교체로 인하여 이런 대사회적 비판 의식을 담는 시가 형식이나 내용은 제한을 받게 된다. 이런 변화에 의하여 새로운 근대시가 개인적 서정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전통적인 시가 형식을 계승하고 있는 개화 가사는 그 대응력을 상실하여 소멸되고 만다.
3. 민중적 표현인 민요(잡가)
조선 후기 민중들에 의하여 향유되던 일부 민요는 가사와 만나서 12잡가라는 형태로 정착되면서, 민중과는 일정한 거리를 가지는 유행 잡가가 된다. 즉 조선 후기 주로 전문적인 예인(藝人) 집단이나 유흥인들에 의하여 대중화되면서, 민중과는 다른 중간층이 주된 향유 계층으로 부각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문학의 대중화, 유행화라고 설명할 수 있는 현상으로, 시조, 한시, 민요, 가사 등 여러 문학 현상에 걸쳐서 일어나게 된다.
특히 12잡가는 조선 후기 유흥인들의 놀이 취향과 어울리면서 급격히 퇴영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또한 19세기말의 어두운 사회 현실은 이런 잡가 향유 계층의 유흥적인 특성을 드러내면서, ‘유행 잡가’라는 형태로 급격한 타락상을 반영하게 된다. 이후 이런 유행 잡가는 대중 가요(유행가)에 그 자리와 역할을 이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유행가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사회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문화 정책의 의도와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개화기에 이런 유행 잡가의 발흥과 더불어 특기할 만한 현상으로는 민요나 잡가가 개화 가사의 형태로 정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민중들의 삶의 애환을 표현하거나 중간 계층의 놀이 문화 형태로 향유되던 문화(학) 현상들이, 개화기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개화 가사에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민요나 유행 잡가의 대중적 호응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들이 주로 즐기는 문학 형태를 빌어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개화 가사는 이런 예이다.
날더워오니 흐응 회냄난다 흥
썩어진壹進會 佛手散먹여라 아
어리화 됴타 흥 良民이되여라 흥
(「解散藥」의 전문, 452~3면)
每日申報 흐응 내耳目인데 흥
됴놈의魔鬼가 侵犯을노나 아
구지구 흐응 뎌魔鬼쥭여라 흥
(「飮氷生, 「掃魔經」의 전문, 453면)
위의 두 작품은 민요 「흥타령」을 개작하여 일진회를 비판하고, ꡔ대한매일신보ꡕ를 무력화시키려는 음모를 폭로하고 있는 개화 가사이다. 이처럼 개화기 시가에서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현실 비판 의식은 당시에 유행되던 민요에도 반영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학 농민 전쟁이나 전봉준과 관련된 동학 민요이며, 일제에 의하여 나라가 강점된 후에 국외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불렀던 ‘신민요’ 계통의 「광복군 아리랑」 등이다. 또한 구한말 항일 의병들이 불렀던 민요나 「倡義歌」와 같은 잡가 형태의 노래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개화기의 민요나 잡가 등은 민중과 중간 계층의 현실 의식을 반영하면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구체적인 예는 일제로 대표되는 침략 세력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새로운 문명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는 ‘신민요’에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의 「아리랑 타령」은 이런 개화기 민중들이 「아리랑 타령」을 개작하여, 자신들의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李氏의 四寸이 되지말고 閔氏의 八寸이 되려무나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세
南山밑에다 장춘단 짓고 軍樂隊 장단에 받들어총만한다
아리랑 고개다 停車場짓고 電氣車 오기만 기다린다
門前의 沃土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왼말인가
밭은 헐려서 新作路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되네
말깨나 하는놈 재판소가고 일깨나 하는놈 共同山간다.
아깨나 낳을년 갈보질하고 목도깨나 매는놈 부역을간다
(「아리랑 타령」의 1~7연)
4. 한시와 한문투, 언문 풍월의 문제
개화기 시가 중에 한시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의 지식인 식자층은 대부분 한문을 해독할 수 있는 계층들이었으며, 이런 현상은 위정 척사파는 물론 개화파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다만 개화파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순국문만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지식인들은 국한문 혼용체의 문장이나 한문만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뜻을 직접 진술하거나 문학적 형상화를 꾀하였다.
이런 점은 ꡔ대한매일신보ꡕ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출판물이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신소설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학 작품들도 국한문 혼용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한주국종(漢主國從)의 한문투를 구사하고 있다. 이는 개화기 역시 한시를 비롯한 한문학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ꡔ대한매일신보ꡕ 등에 수록된 한시들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리고 개화기 지식인들은 이런 당시의 객관적 현실을 인정하여, 한문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우리의 의식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 형태를 적극적으로 창안하기에 이른다.
그 한 예가 한문학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국시 운동’이며, 이런 시 형식을 국문시 운동에 적용한 것이 ‘언문 풍월’이다. 그리고 이런 개화기 시가의 형식적 탐구는 보수적 성향의 문인들이 한문학의 소양을 가진 독자층을 의식하여 시도했던 방식으로, 아직도 문화적으로 한문학의 영향력이 컸던 개화기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런 시가 개혁 운동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광범위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그 한 예로 한시의 칠언절구(七言絶句)나 율시(律詩)의 자수율에 의존한 국문 시가였던 ‘언문 풍월’을 살펴보기로 한다.
금문만에잠긴달 고요하게 잠든
「우락키」산봄바람 평화롭게숨쉴
자회업난령혼 평양을 건너서
(후렴) 고구려강산 두루편답하얏네
평원광야는 동편가나안복디요
록슈쳥산텬하데一승디라 고향만쥬들
오곡과풍죡한 금탕쳔리널은들
긔화요초란만한 쳥구쳔리널은들
우렁차게소슨뫼 곤곤하게흘으난물
(댱산인, 「만쥬들」의 1~2연)
7언의 한시 형식을 국문으로 표기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한시 개혁 운동은 조선이 일제에 강점되면서 그 운동사적 의미를 잃어버리고, 부분적으로 일제의 문화 정책에 편승하여 부흥하다가 1920년대에는 문화 운동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더구나 일본에 의하여 실시된 근대 교육의 영향 때문에 한문 사용 계층과 한시 향유 계층이 소멸하게 되면서, 이런 한시 개혁 운동도 끝을 맺게 된다.
5. 노래 형식으로서의 창가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바와 같이 개화기 시가의 특징은 노래 형식이 아직도 주도적인 문학 양식이었다는 사실이다. 본고에서 논의한 시가 양식 중에서 개화 가사와 한시의 일부를 제외한 다른 양식들은 이런 특성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전통적인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시가뿐만 아니라 개화기에 새롭게 등장한 시가 역시 노래 형식과 관련이 있다. 특히 개화기에 창작되었던 시가 양식인 창가(唱歌)는 개화기 시가의 이런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노래 형식의 창가는 역사적으로 일찍이부터 기독교의 찬송가의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계의 지식인들이 주도하였던 ꡔ독립신문ꡕ에 수록된 개화기 시가들은 찬송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런 개화기 창가는 초기에 주로 ‘애국가’, ‘독립가’, ‘학도가’, ‘권학가’라는 명칭으로 제작되었으며, 실제 여러 자리에서 불려졌다는 기록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ꡔ대한매일신보ꡕ에 수록된 다음의 기사는 이런 개화기 창가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演說盛況
去土曜日官人俱樂部에셔大韓協會總會를開고安昌浩氏가我韓前道의如何한問題로演說얏雄談弘辯이水湧山出야三時五十分之頃을過了筆不能述이오口不能傳이라其趣旨公平正大고其氣象은激昻蹈厲니聽者千餘人이莫不點掌喝采曰果是當今雄辯家라더라同氏가演說을畢了고丹心歌一章을唱야同胞를警醒얏스니其歌에曰
어야지야어서가 모든風浪무릅쓰고
六明界와獨立界로 어서리나아가
멸波에든이들아 길이멀다恨歎말고
希望키를궂이고 實行돗츨놉히달아
부바람기젼에 어야지야어서가
(「演說盛況」의 전문, 328~9면)
위에서 예로 든 안창호의 「단심가」에서처럼, 개화기의 신문이나 잡지에 수록되었던 창가들은 주로 4.4조의 개화 가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개화기 창가가 개화 가사와 다른 점은 ‘~가’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있거나, ‘후렴’, ‘합가’와 같은 음악 용어가 첨가되어 있다. 또한 이런 창가의 악곡은 찬송가나 서양의 민요 등과 같이 단조롭고 부르기 쉬운 리듬을 주로 활용하였다.
또 이런 창가와는 다른 영향 관계 속에서 창작되기 시작한 1900년대 이후의 창가 역시 노래로서의 특성을 보인다. 그리고 이런 창가는 ꡔ독립신문ꡕ이나 ꡔ대한매일신보ꡕ 등에 수록된 창가와는 달리 최남선이라는 전문적인 작가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제작된다. 특히 최남선에 의해 제작된 이 시기의 창가는 주로 일본 창가의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이런 개화기 창가는 일본의 전통적인 율격인 7.5조의 자수율의 영향 아래 창작되었으며, 초기의 경우 악곡이 첨가되어 노래로 불려지게 된다. 그러나 후기의 창가는 자수율을 유지하면서도 장형화되어, 노래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찬송가나 일본의 창가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개화기 창가는 이후 일제의 음악 교육으로 시행된 ‘창가’에 흡수되어, 문학과는 다른 문화 양식인 음악으로 전환되게 된다. 이런 전환에는 후기 창가에 집중되었던 일본 창가의 영향력과 개화기 창가의 노래로서의 특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남선에 의해 주도되었던 후기 창가의 율격인 7.5조는 이후 근대시(주로 민요조 서정시)의 율격으로 계승되어, 우리 근대시에서 새로운 율격 전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Ⅳ. 계몽적 반성과 근대적 사고의 반영
개화기 시가는 그 형식에서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문제적이다. 그것은 개화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개화기 시가가 그대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수성은 당시의 정신사 또는 사상사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양상은 개화기 시가의 내용을 살피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다. 특히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개화기 시가의 형식이 전통의 계승적인 측면에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변혁의 사상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런 개화기 시가에 대한 연구는 개화기 우리 민족이 해결하여야 했던 민족적 과제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일본을 매개로 하여 들어온 서양이라는 충격이 문학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밝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봉건적인 틀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물, 새로운 사고, 이질적인 문화 등과 같은 근대적인 특성이 어떻게 보였을까를 알 수 있으며, 이 충격에 이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개화기라는 특수한 시대에 기존 사회가 간직하고 있던 전통과 새롭게 들어온 근대와의 갈등상을 개화기 문학은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살피는 것은 개화기의 특성을 밝히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개화기 문학의 내용을 살핌으로써 우리가 과도기인 개화기에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나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근대와 전통이 어떻게 만나 갈등하고, 극복하고 있나를 개화기 시가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서, 개화기 시가의 시대적 성격과 의미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화기 문학은 개화기 지식인들의 의식의 산물이라고 거칠게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개화기 문학사는 곧바로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놓였던 한말의 지식인들의 정신사였으며, 민족사의 위기에 대응하는 민족 운동사였다. 이런 측면에서 살피면, 이 당시의 지식인들은 개화를 중심에 놓았던 개화파와 애국을 중심에 놓았던 위정 척사파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애국과 계몽이라는 시대 인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으며, 각 정파 내에서도 이를 타개하려는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이면서 다시 세분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 부분에서는 이런 지성사의 문학적 대응 양상을 ꡔ대한매일신보ꡕ를 중심으로 살펴서, 신학문과 일제에 대하여 어떤 이해의 차이가 있나를 구체적으로 살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위정 척사의 사상’, ‘우국과 애국 정신’, ‘친일파에 대한 풍자’, ‘신학문과 개화 사상’이라는 항목으로 나누어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1. 위정 척사의 사상
개화기의 지식인들 중에서 근대 문물을 수용하려는 개화 사상에 가장 적대적인 세력들은 전통 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쓰러져가는 구왕조를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으며, 근대화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위정 척사의 사상으로 무장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의병 운동을 통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했으며, 그 일부는 국권 상실이라는 치욕적인 사태에 대하여 목숨을 버리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황현이나 최익현과 같은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개화기에 주로 한시를 통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시가 갈래 선택은 일반 독자 대중과는 분리되어 진행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즉 한시가 대중에게 쉽게 수용될 수 없는 갈래였다는 약점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출판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보다는 개인적인 창작 활동을 모은 문집 형태를 택하여 대중적인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기본적으로 이들이 지향했던 바는 구왕조의 유지와 회복이었으며, 이들의 시에는 이런 자신들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시라는 형태로 창작되었던 시가는 외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거나 쓰러져가는 나라를 걱정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특히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자기 고뇌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외세의 침략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주로 비록 시골에 은거하여 살고 있는 유학자들이었지만, 국난의 위기에는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유학자들의 선비 정신은 임금에 대한 비판마저도 서슴지 않았던 상소(上訴) 문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국권 상실의 위기 국면에서는 이들의 문학은 한가로운 서정적인 한시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 비판의 날카로운 시대 의식을 담아내게 된다. 「하청(夏晴)」과 같은 서정적인 한시를 쓰면서 전원 생활을 하던 매천 황현이 창작한 「절명시(絶命詩)」, 「이충무공 구선가(ꜫ船歌)」, 「문변(聞變)」과 같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시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는 「절명시」를 살펴보도록 하자.
亂離滾到白頭年 난리를 겪다 보니 백두년이 되었구나
幾合捐生却未然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今日眞成無可奈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輝輝風燭照蒼天 까물거리는 촛불이 창천에 비치도다
妖氣掩翳帝星移 요망한 기운이 가려서 제성이 옮겨지니
九闕沉沉晝漏遲 구궐은 침침하여 주루가 더디구나
詔勅從今無復有 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으니
琳浪一紙淚午絲 구슬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조칙에 얽히는구나
鳥獸哀鳴海岳嚬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이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구나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천고를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曾無支廈半椽功 일찍이 나라를 지탱할 조그마한 공도 없으니
只是成仁不是忠 단지 인을 이룰 뿐이오, 충은 아닌 것이로다
止竟僅能追尹穀 겨우 능히 윤곡을 따르는 데 그칠 뿐이요
當時愧不囁陳東 당시의 진동을 밟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ꠏꠏ 황현의 「절명시」
이 작품은 역사의 고난에 맞서고자 했던 지식인의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는 시로 평가되고 있는 시로, 황현이 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합병되자 자결하면서 쓴 절명시이다. 유학자였던 시인이 초야에 묻혀서 한가로운 전원 생활을 하다가 국난의 상황을 맞아 보여주는 애국 충정의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의리를 존중하면서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식인 선비의 한계도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그리고 이런 위정 척사파의 역사 의식은 선비 정신을 생명으로 하는 양반 유학자들의 한시에 많이 나타나 있다. 또한 이런 역사 의식은 한시 외에도 당시에 자신들이 구사할 수 있었던 다양한 시가 형식으로 표명되기도 한다. 그 예로 최익현의 「창의시(倡義詩)」나 신의관의 「창의가」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내용 외에도 역사적 영웅이나 역사적 사건을 회고하여, 일제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반성적이고 교훈적인 시세계를 보이기도 한다. 즉 역사 속에서 민족과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출한 인물들을 형상화함으로써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이런 개화기 한시의 양상은 애국 계몽기의 산문 문학에서 역사 전기 소설이나 외국의 건국, 애국 영웅들의 전기를 번역, 번안하여 소개한 경향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처럼 위정 척사파들은 왕권을 수호하려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외척이나 세도 관료들에 대한 비판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의 또다른 비판 대상이었던 개화파와 더불어 한말의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한 민비와 민씨 일파에 대하여 비판하는 내용을 개화기 시가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들은 민중들이 민요로 표현한 것과는 달리 한시나 개화 가사의 형식으로 표출하고 있음이 다를 뿐이다.
또한 이들은 기독교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개화 사상에 대한 강한 저항과 더불어 친일파들의 친일 행각에 대한 비판을 한시나 가사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이런 사상적 지향은 한말에는 의병 활동이라는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리 국토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탄되면서 더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만다. 한일 합방 이후 일제의 보수 세력 회유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개량적인 한시 또는 한문학을 부흥 운동에 협조하다가, 결국 친일 또는 부일의 길로 나아가는 한계를 보이게 된다.
2. 우국과 애국 정신
개화기에는 위정 척사파와 같은 유학자들로 대표되는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를 통하여 애국의 정신을 피력한 일군의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들의 사상은 개화 사상이나 위정 척사파의 사상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사상사적으로는 준비론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지향은 일종의 동도 서기(東道西器)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부분적으로는 계몽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일제의 침략 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신문이나 잡지의 논설진이나 편집인으로 참여하면서, 이들 언론 매체를 활용하여 대중에게 자신들의 사상을 적극 홍보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이들은 한문이라는 제한된 표기 방식보다는 당시의 보편적인 문체였던 국한문 혼용체를 활용하여, 시조나 가사와 같은 전통적인 시 형식에 자신들의 새로운 관점을 담아내고 있다. ꡔ대한매일신보ꡕ에 참여했던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꺼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문학적 대응은 개화기 시가 문학이 단지 개화 사상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국채 보상 운동과 같은 실천적인 사회 운동도 전개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도 아울러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말의 민족 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ꡔ대한매일신보ꡕ는 이런 지식인들의 생각이 논설이나 가사, 시조 형태로 수록된 대표적인 신문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을 통하여 이들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중들을 깨우치거나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개화기의 지식인들은 특수한 시대 인식에 기초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여러 모색을 시가를 통하여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世界萬國人種中에 諸般惡習俱備키는
韓人이라하겠도다 어찌하여그러한가
愛國志士舌端이며 各報館의筆端들이
弊盡無餘勸告하되 牛耳誦經딱하도다
惡事業만選擇하여 愈往愈甚發達일세
ꠏꠏ 「是何人種」의 1연(45면)
同胞들아同胞들아 世界舞臺돌아보니
獨立旗는翩翩하고 自由鍾은걸렸도다
濶步長趨뛰여올라 저旗幟를손에들고
저鍾鼓를땅땅울려 雄視宇宙하는날에
祖國榮光빛내보세
ꠏꠏ 「第一筆」의 5연(117면)
위의 시가들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개화기는 새로운 시대 의식에 따라 우리들을 되돌아보고 있으며, 이런 자기 반성을 통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에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국면에 있는 대한 제국의 운명을 극복하고, 명실 상부한 자주 국가로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시가들에는 작게는 한 개인에게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대사까지에 걸친 문제들을 두루 그려내고 있다.
더구나 이 당시 시대적 상황의 악화는 이들 일부 깨어있는 지식인들의 일제에 대한 적극적인 응전이라는 맥락에서 개화기 시가 양식의 풍성한 성과를 낳았다. 현실적인 위기의 국면에서 문학은 이를 타개하려는 다양한 의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든 ꡔ대한매일신보ꡕ에 수록된 시가들을 비롯하여 여러 언론 매체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문학적 대응 양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의 시가들 역시 이런 시대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개화기 시가이다.
隆熙以前軍人일세
拾餘年從軍터니 一朝解散何罪런고
軍人의生死命은 銃과칼에녓더니
銃과軍力아사가니 重목슘러졋다
빈營門만바라보니 不覺感淚縱橫이라
恩賜金이다盡니 處處에줒소
ꠏꠏ 北嶽山人의 「第一章 解軍隊歌」 부분(344면)
잘잇거라三角山, 다시보자漢江水야.
우리疆土나가니, 아엇지안졋스리.
到處에, 無數뎌魔鬼들, 다잡고야.
─ 捉魔生의 「捉魔經」(458면)
그러나 이 시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세는 이미 이들의 힘만으로는 쉽게 돌이킬 수 없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국권과 국토는 점점 외세의 손에 넘어가고, 급기야는 군대까지 해산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전개하였던 애국 운동은 점점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으며, 우리 나라가 일제에 강점되고 나서는 더이상 지속되지도 못한다. 우선 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던 신문이나 잡지를 폐간당하게 되며, 아울러 국내에서의 저항 운동이 더이상 전개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국외로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기본적으로 견지하던 준비론의 사상 역시 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합병된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3. 친일파에 대한 풍자
개화기라는 시기는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가 시작된 시기라고 할 수 있음에 비하여,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일제의 침략 정책이 자행되는 시기였다. 이 중에서 후자의 관점에 초점을 맞출 경우, 대내적으로는 친일파의 득세와 이들이 일제와 협력하여 민족의 주권을 넘겨주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왜곡된 개화 사상을 가지고 있던 무패 관리들을 중심으로 일제의 침략 정책에 부화 뇌동하는 무리들이 창궐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개화기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이런 친일파 관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특히 ꡔ대한매일신보ꡕ의 필진들은 이런 친일파 비판의 선봉에 섰다. 따라서 이 신문에 실린 기사, 논설, 시사 만평, 개화기 시가 등은 이런 개화기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비판적인 현실 인식은 고도의 문학적 장치나 수사보다는 직설적인 비판이나 풍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개화기 시가에 중점적으로 반영, 실천되고 있다.
그래서 소위 친일파의 대표적인 관료들로 5적이나 7적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이방, 군졸, 군수와 같은 하급 관료들의 부패상이나 친일 행적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이들은 일진회와 같은 친일 단체는 물론 각종의 학회나 단체, 개인 등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매음녀(賣淫女)와 같은 퇴폐적인 집단들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내리치고 있다.
특히 개화기 지식인들의 주된 비판 대상은 이완용이나 송병준과 같은 친일 관료들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비판은 ꡔ대한매일신보ꡕ의 경우 글의 성격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로 나타나 있다. 다음의 개화기 시가들은 이런 경향을 보이는 예이다.
內部大臣宋秉畯은 趨走하던小卒이라
見聞敎訓없섰으니 事君之道모를지라
犯分蔑紀하는것을 不足掛齒하려니와
總理大臣李完用은 그行爲를擧論컨데
豚犬不若可痛일세
李完用氏들어보소 乙未政變말할진데
俄國公館播越時에 公의兄弟周旋이라
當當하신皇帝로서 外館播越웬일인가
皇帝權威墮落함은 於此起因하였으니
公의罪가한가지오
ꠏꠏ 「花下總理」의 1, 2연(80면)
개를여러마리기르되, 요일곱마리치얄밉고잣미우랴.
낫션타쳐사오게되면리를희희치며반겨라고다려요리납죡죠리걔옷되, 낫닉은집안사보며두발을벗드듸고코쌀을찡그리고니리엉성거리고컹컹짓일곱마리요박살개야.
보아라, 근일에새규칙반포되야개임쟈의셩명을개목에우지아니면박살을당다니, 自然박살.
ꠏꠏ 「殺狗」의 전문(463~464면)
위에서 전자의 개화 가사는 일제의 침략 정책에 협조하고 있는 친일 관료에 대한 비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에 비하여 후자의 개화기 시조는 매국 7적을 일곱 마리의 개로 비유하여 그들의 행적을 비판하는 한편, 우리가 처한 현실의 상황에 대하여 경계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런 개화기 시가는 개인적인 서정 표현보다는 대사회적인 효용성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시대적 특수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과도기이자 변혁기인 개화기에 개화기 시가는 문학적 기능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기능, 문화적 기능을 실천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나아가서 친일파에 대한 비판을 주로 보였던 개화기 시가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은 「아리랑 타령」과 같은 민요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새로운 근대 문물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의 시가는 이런 개화기 현실의 변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인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빗을고젼당여
人力車를사셔놋코 蓬頭亂髮赤脚으로
風雨寒暑무릅쓰고 屛門把守다십히
不分晝宵하오면서 푼푼이버러다가
行廊리挾戶리 父母妻子잣더니
電車고汽車나니 人力車가歲月업소
ꠏꠏ 北嶽山人의 「人力車군」 전문(348면)
이 개화 가사에는 개화기라는 새로운 시기에 등장하여 가난한 민중의 삶의 수단이 되었던 인력거가 ‘전차’와 ‘기차’로 대표되는 근대 문물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현실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가난하지만 억척스럽게 살고자하는 민중의 삶이 결국 근대 문물의 등장과 함께 파괴되고 있는 모습이 서사적인 형상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개화 가사의 현실 인식은 조선 시대의 한문 서사시나 1920~30년대 서술시의 현실 비판 의식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개화기 시가는 여러 갈래에 걸쳐 친일파에 대한 비판과 같은 현실 문제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문학의 대사회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런 개화기 시가는 우리 시가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후대의 시가 문학의 전통 수립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신학문과 개화 사상
개화기 시가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일제에 강점되는 와중에 있는 현실이나 개화파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ꡔ대한매일신보ꡕ와 같은 언론 매체에 종사하던 개화기 지식인의 성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이들은 위정 척사파로 대표되는 수구파와 친일파로 대표되는 개화파 사이에서, 수구파와 개화파를 비판하면서도 이들의 장점을 취하는 중간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 개화기 지식인들은 개화파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애국심을 고취하는 민족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민중 계몽의 필요성, 새로운 학문적 체계나 서구 문명의 수용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민족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야 하며, 민족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개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그 정도나 방법론에서 개화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개화와 계몽을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수구파와도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즉 개화기 지식인들의 개화에 대한 관점은 신학문과 개화 사상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국권을 수호하는 길이며, 이런 관점을 수용하여 구왕조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보다는 새로운 국가상과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이들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한 개화기 시가에 여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제 개화기 시가에 표현된 내용을 통해서 이들의 개화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보자.
되나니라되나니라 各種學問硏究하여
古今東西모든歷史 憭然貫徹할뿐더러
國粹主義培養하고 附外性質消却하여
國內靑年敎育시켜 指揮服從하는것도
心志磊落한然後에 全國師範되나니라
ꠏꠏ 「最愛惟心」의 6연(55면)
어화우리學徒들아 어셔가세니가셰
녹東風셰다말고 一心同體노를저어
文明界와獨立界로 어기여차니가셰
時晩타恨치말고 져건너여보셰
못건너면中流滔役 건너가면同樂太平
太平乾坤어뇨 自由恢復이아닌가
自由權이어뇨 新學問이여기잇다
大乎大韓同胞들아 新學發達熱心셰
ꠏꠏ 「傾家設校」의 전문(341~342면)
위의 개화 가사들은 신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 중에서 전자에는 가사 형태로 청년들이 고금의 학문을 두루 배워 새로운 사회 건설의 역군이 될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고, 후자는 「학도가」의 일종으로 민요인 「뱃노래」의 가사를 차용하여 신학문을 배워 자주권이 보장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개화기 시가는 신학문과 개화 사상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시각에서 그려내고 있으며, 이를 기초로 하여 대한 제국의 국가적 기틀을 튼튼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또한 이런 개화기 시가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결코 구시대를 답습하여서는 안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미 국내외적으로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이 변화에 부응하지 않고는 미개한 백성으로 남거나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노래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런 개화기 시가의 내용으로만 판단한다면 문명 개화라는 과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이들은 인정하고 있다. 다음의 시는 이런 개화기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 즉 수구파나 급진적인 개화파, 친일파 등과는 다른 시대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國政으로말하여도 變易하지아니하면
不成富强이아닌가 腐敗習俗改革하고
亂暴政令除去하여 全國人民모러다가
精修甲兵한然後에 爭衡天下하려니와
舊習들만직히며는 富强키는姑舍하고
人種까지亡할지니 變치않코못되리라
天地萬物勿論하고 窮하거던變할지며
變하며는通하나니 國家이나人民이나
天地間의一物이라 危亡之時當하여서
變革할줄모르며는 永久維持못할뿐에
他人에게빼낄지니 變而爲興좋을손가
不變爲亡좋을손가 請自擇焉할지어다
ꠏꠏ 「變之爲大」의 5, 6연(51~52면)
위의 시가는 우리 사회가 구습만을 지키다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부강은커녕 국가와 민족의 멸망도 초래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미 변화의 커다란 흐름 속에 깊이 빠져 있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는 물론 개인들도 변화와 개혁에 동참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런 선택만이 멸망의 나락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를 구하고, 나아가서는 번영을 기약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개화기 지식인들은 그들이 터전하고 있는 계층이나 성향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변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생각은 그들의 문학 특히 개화기 시가에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ꡔ대한매일신보ꡕ의 필진이나 독자들은 적어도 이런 현실 상황에는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었다.
Ⅴ. 전통과 문화에 대한 단상
일반적으로 과도기로서의 개화기 문학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인 문학 양식의 계승이라는 관점보다는 새로운 문학 양식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당시 시가 문학은 새로운 문학적 전통을 창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문학 양식이 계승되고 있으며, 새로운 문학 양식은 창조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특히 서로 이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이런 문학 양식들이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그동안 개화기 시가 문학 연구의 문제점을 점검하여, 이 시기 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개화기 시가 문학이 전통적인 시가 양식들인 시조, 가사, 민요, 한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시가 형식인 창가나 신시를 수용하는 특성을 보임을 밝히고자 했다. 또 이런 시가 양식을 통하여 내용상으로는 개화기의 사회적 현상이나 이 시기에 제기된 역사적 과제를 담아내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개화기 시가의 담당층들은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들의 사유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임을 밝혔다.
이런 개화기 시가 문학의 특성은 문학의 전통이 결코 단절적이지 않으며, 항상 다른 변화 용인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구체적으로는 과거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것이지, 결코 과거의 전통과는 무관한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문학사적 단절보다는 계승과 창조라는 맥락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것은 다시 그 다음 세대에는 전통적인 것으로 인정된다.
이런 현상은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질적인 것이 수용되면서 새로운 문화적 틀을 만드는 것이다. 문화의 생산이나 수용의 국면에서 그 담당자들이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작용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피상적으로 보면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지 그 본질에서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동질성이란 좁게는 그들의 사유 체계나 표현 방식일 것이며, 넓게는 문화적 공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학사적 전통이나 문화적 맥락이라는 관점에서의 이해는 문학을 학습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문학 작품을 학습하는 것은 문학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전통과 문화를 배우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민족적 일체감 또는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문학 작품은 이를 생산하고 수용하는 사람들의 사유 체계를 알거나, 그것이 작용하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즉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문학 작품의 실제를 확인하는 것에 그칠 수 있는 것이지만, 문학 교육은 그런 작품을 구성하는 원리나 원칙을 확인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이를 수용하고 학습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원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문화 원리를 확인하고, 이를 학습자나 수용자들이 활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문학 작품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고, 이를 교육적 차원에서 확인하는 것이 문학 교육을 문화론적 시각에서 연구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이처럼 문학 학습을 문화 연구의 시각에서 살피는 관점은 문화를 인간과 상호 작용적인 관계에 놓인 것으로 규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문학 작품과 문화 연구의 관계는 그동안의 문학적 행위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는 문화적 차원의 질문을 통해 문학 작품의 본질을 밝히는 작업이다. 이 경우 작품 안의 요소들 사이의 관계는 물론, 텍스트의 경계를 벗어나 텍스트와 텍스트에 작용하는 문화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즉 문화 교육적 차원에서 문학 작품을 살필 때는 이런 문화적 질문을 통해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이를 교육적 측면에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한영 교주, ꡔ신재효 판소리 사설집ꡕ, 민중서관, 1978.
김근수 편, ꡔ한국개화기시가집ꡕ, 태학사, 1985.
임동권, ꡔ한국민요집ꡕ1, 집문당, 1961.
황현, ꡔ매천집ꡕ.
기타 개화기 신문, 잡지.
강명관, 「조선후기 서울의 중간계층과 유흥의 발달」, ꡔ민족문학사연구ꡕ2호, 1992.
고미숙, 「19세기 시조의 전개 양상과 그 작품 세계 연구」, 고려대, 1994.
고미숙, 「대중 가요의 선구, 20세기 초반 잡가 연구」, ꡔ역사비평ꡕ, 1994. 봄.
고미숙, 「애국 계몽기 시운동과 그 근대적 성격」, ꡔ민족문학과 근대성ꡕ, 문학과 지성사, 1995.
권영민 외, ꡔ개화기 문학의 재인식ꡕ, 지학사, 1987.
권오만, 「개화기의 문체와 장르 선택」, ꡔ한국 현대시사의 쟁점ꡕ, 시와 시학사, 1991.
김대행, ꡔ한국시의 전통 연구ꡕ, 개문사, 1980.
김병철, ꡔ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ꡕ, 을유문화사, 1975.
김영철, 「개화기 시가 연구」, 서울대, 1075.
김용직, ꡔ한국근대시사ꡕ(제1부), 새문사, 1982.
민병수, 「우국의 시인」, ꡔ한국한시사ꡕ, 태학사, 1996.
신두원, 「이식과 창조의 변증법」, ꡔ창작과 비평ꡕ, 1991. 가을.
신범순, ꡔ한국현대시사의 매듭과 혼ꡕ, 민지사, 1992.
이규호, 「개화기 한시의 양식적 변모에 대한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86.
이기문, ꡔ개화기 국문연구ꡕ, 일조각, 1970.
임종찬, ꡔ개화기 시조론ꡕ, 국학자료원, 1993.
임형택, 「‘동국시계혁명’과 그 역사적 의의」, ꡔ한국 문학사의 시각ꡕ, 창작과 비평사, 1984.
정병욱, ꡔ한국고전시가론ꡕ, 신구문화사, 1980.
정한모, ꡔ한국 현대시문학사ꡕ, 일지사, 1974.
조동일, 「개화․우국기의 애국시가」, ꡔ한국근대문학사론ꡕ, 한길사, 1982.
조동일 외, 「한국 근대시 형성의 제측면」, ꡔ현대시ꡕ2, 문학세계사, 1985.
주승택, 「개화기 한시 연구」, 서울대, 1984.
최원식, 「민족문학의 근대적 전환」, ꡔ민족문학사 강좌ꡕ(하), 창작과 비평사, 1995.
최지현, 「한국근대시 정서체험의 텍스트조건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97.
한계전, ꡔ한국현대시론연구ꡕ, 일지사, 1983.
소설의 대화성 연구
- ꡔ삼대ꡕ의 담론과 이념을 중심으로
임 경 순(서울대 대학원)
5. 서론
염상섭 문학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이후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 결과 염상섭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룩했다는 평가에 이르게 되었다.
염상섭 문학에 대한 연구는 문예사조적인 연구, 작가론적인 연구, 문학사회학적인 연구, 기법적인 연구, 담론차원의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담론차원의 연구는 기존 연구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ꡔ三代ꡕ와 관련된 연구도 이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다.
소설은 주체들의 담론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주체가 사용하는 이 다양한 담론은 소설의 의미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매체이다. 따라서 주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담론의 양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담론과 주체의 이념의 관계는 무엇이며, 담론이 소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담론이 소설의 해석과 평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면 그 동안 소설의 담론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ꡔ三代ꡕ와 관련하여 이 방면의 연구는 ꡔ한국현대소설구조연구ꡕ에서 이루어졌다. 이 글은 기존 연구의 편향성을 비판하고, 언어 차원의 연구를 주장함으로써 작가의 담론 개입, 담론의 대화적 관계, 대화와 서술의 관계, 인물의 성격과 담론구조, 사상과 담론의 양상 등을 논구함으로써 이 방면 연구의 단초를 보여준다. 또한 ꡔ한국문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ꡕ에서 나병철은 리얼리즘 소설을 독백적 소설과 대화적 소설의 두 유형으로 보고, ꡔ三代ꡕ를 대화적 소설로 보는 관점에서 인물의 대화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담론 양상과 이념과의 관련성을 소홀히 다룸으로써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과 앞의 우한용 교수의 글은 염상섭 문학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열음으로써 해석의 다양성과 새로운 문학사적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글에서는 선행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ꡔ三代ꡕ에 대한 담론과 이념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그 해석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담론 연구를 통한 문학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6. 소설의 담론과 이념
지금까지의 ꡔ三代ꡕ에 대한 논의는 “1930년 무렵 식민지 서울 한복판에 살았던 한 중산층 집안의 보수적 현실주의 이념을 탐구한 작품”이라는 평가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평가는 작품을 작가의 단일 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거나 작품은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편소설을 전적으로 어떤 단일한 주제를 지닌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예컨대 인물을 중심으로 작품을 읽어나갈 경우 어느 인물의 관점에서 작품을 읽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의 삶을 가장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장편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을 해석하는 관점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소설의 해석에서 담론을 떠난 논의는 논리적 근거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과 담론은 주체의 이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작가의 말과 인물의 말의 관계에 따라 소설을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말의 유형이나 그 유형의 구성배치가 어떠하든 간에, 작자의 의미 부여나 가치 판단은 그 밖의 어떠한 것보다도 우위에 서서, 애매성이 없는 통일된 전체로 형성되지 않으면 안되는 독백적 소설이다. 이 경우 작품의 어느 부분이나, 어느 말 속에서 타인의 말을 강조한다는 것은 작자 자신의 직접적인 말이나 굴절된 말을 나중에 한층 더 강하게 들리게끔 하기 위한 작자의 속셈에 불과하다. 하나의 말 속에서 두 목소리가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어떠한 논쟁도 사전에 결정된 일이며, 그것은 보여 주기 위한 그럴싸한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 완벽한 의미를 가진 작자의 의미부여는 조만간 하나의 말을 중심으로 하나의 의식으로 집중하게 되며, 모든 말은 하나의 목소리로 집중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대화적 소설은 독백적 단일 양식이나 단일 의미에 예속되지 않는, 각각 독점적이고 자율적인 말이나 의미를 극도로 긴장된 역동적인 관계 위에 놓는다. 여기서는 작가의 말 대신에 인물들의 혼성된 말들이 들려온다. 인물들의 말은 작가에 대해 타자성을 지닐 뿐아니라 인물들 각자에 대해서도 타자성과 대화성을 가진다.
이렇게 소설을 본다면 소설을 단일 논리로 보는 편협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설은 단일한 관점을 드러내기도 하고, 단일한 관점으로 수렴될 수 없는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소설의 차이는 소설 속의 담론의 차이로 연결된다.
산문 작가에게 있어서 세계는 타인의 말로 가득차 있다. 그러기에 소설에서의 담론은 담론 주체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며, 소설을 이해하는데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설을 소설로 만들어 주며, 소설의 문제적 고유성을 보장해주는 근본적인 조건은 바로 말하는 사람과 그의 담론이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 즉 주체의 담론은 특별한 형식적 장치를 갖고 있으며, 사회적 담론이라는 점,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 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담론은 단순히 말 자체가 아니라 세계관 내지 이념과 연관된다.
그런데 어떤 소설에서 그려지는 모든 것이 화자는 아니며 사람들도 오로지 화자로서만 그려질 필요는 없다. 극이나 서사시 속의 인물과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인물도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이념에 의해 조명되며, 언제나 등장인물의 담론 - 비록 그 담론이 아직까지는 잠재적인 것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 과 연결되어 있고, 이념적인 모티프와 관련되어 명확한 이념적 입장을 표현하게 된다. 소설 속의 사건과 등장인물의 개별적인 행동은 그의 이념적 견해인 그의 담론을 검증하고 또 드러내기 위해서도 본질적인 것이다.
어떤 세계의 고유한 이념을 드러내는 데에는 그 세계의 담론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념적 세계가 말을 하게한다는 것은 곧 그 말을 사용하는 주체의 담론과 이념이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담론 유형
ꡔ三代ꡕ의 담론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유형은 물론 주체들과 그들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주체들의 담론은 그들의 이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담론은 늘 주체들의 이념과의 관계에서 살펴야 한다.
7.1. 작자의 직접적인 말
재현의 원천인 실제 세계와 작품에 재현된 세계 사이에는 명확한 범주상의 경계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종종 재현된 세계와 텍스트 외부의 세계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속류 반영론자들이 그 경우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작품의 창조자인 저자와 인간으로서의 저자를 혼동해서도 안되며, 텍스트를 재창조하고 새롭게 만드는 여러 다양한 시기의 청중이나 독자를 그 당대의 수동적인 청중이나 독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모든 혼동은 방법론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상의 경계선을 절대적으로 침투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뿐 아니라 독단적으로 세세하게 구별하는 데에 빠질 우려가 있다.) 또한 허용될 수 없다. 즉 아무리 이 두 세계 사이에 놓여 있는 범주적인 경계선이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 세계는 서로 분리할 수 없게끔 얽혀 있고 끊임없이 서로 작용한다.
소설이 다양한 주체들이 개입하는 담론 형상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작가나 독자의 개입이 당연하다 하겠다. 다음은 작가가 개입하고 있는 부분이다.
경애가 상훈이의 첫 편지를 받은 지 다섯 달도 못 되어서 경애는 학교를 나오고야 말았다. 그 다섯 달 동안의 생활을 독자는 궁금히 생각하리라. 그러나 지나간 일을 후벼파서 백일하에 내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필자는 앞길이 바쁘니 수시수처에서 다시 보고할 기회가 있겠거니와 경애는 그때 학교를 나오면서 서울을 떠났다.(100면. 궁체 필자)
학교 교원으로 있을 당시의 경애가 상훈의 첩이 되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작가가 개입한 장면이다. 물론 작가는 독자까지도 의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 개입한 ‘필자’는 전후 관계로 보아 ꡔ三代ꡕ를 서술해 가는 서술자와 다를바가 없다고 판단된다. 필자가 ‘수시수처에서’ 보고할 기회가 있다고 했는데, 그 보고자가 다름 아닌 서술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보고 내용은 이렇다.
이 방은 언제 보나 산뜻하고도 아늑하고 반가웠다. 방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이 방이 주는 인상이나 과거의 연상이 반갑고 유쾌한지 모르는 것이다. 오 년 전―그때도 이런 겨울날이었지만 그때와 변한 것은 조선식으로 꾸며 놓았던 보료며 (중략) 방안을 휘 돌려다보니 처음 경애와 이 방에 들어앉을 때의 생각이 아름다운 꿈처럼 머리에 떠올라 오는 것이다.(168면)
상훈이가 경애를 만나기 위해 K호텔에 들렀다가, 오 년 전에 경애와 있었던 관계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위에서 말한 다섯달 동안의 생활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렇게 본다면 필자는 서술자이며 동시에 작자에 해당한다. 작자가 소설에 개입하는 부분은 또 있다.
덕기는 다시 안심이 되면서 그 발기를 자세자세 들여다보고 앉았다…….
필자는 여기에 조씨 집 재산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잠깐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귀순이(수원집 소생)―오십 석
수원집―이백 석
덕희(덕기 누이)―오십 석
덕희 모(며느리)―백 석
덕기 처―오십석
상훈―이백 석
덕기―천오백 석
창훈―현금 오백 원
지주사―현금 이백 원
이것은 물론 대략 쳐서 그렇다는 것이니, 그 중에 수원집의 이백석 같은 것은 상훈이의 이백 석의 거의 갑절이나 될 것이요, 또 덕기의 천오백 석이라는 것도 나머지를 다 쓸어 맡긴 것이니 실상은 이천 석까지는 못 가도 천칠팔백 석은 될 것이다.(354-355면)
이 부분은 서술자가 덕기의 행위를 서술하다가 ‘필자’는부터 작가가 개입한 부분이다. 그런데 작가가 개입한 부분도 덕기가 읽고 있는 ‘발기’의 내용을 서술자가 밝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술자=작가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된다. 이렇게 본다면 서술자는 작가와 근접해 있음으로써 작가의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와 서술자의 직접적인 말은 플라톤의 디에게시스에 해당한다. 대상을 향한 직접적인 말은 자기와 자기의 대상밖에 모르며 거기에 최대한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건축가의 계산에 들어 있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면서 전체적 건축으로 볼 때는 소용되지 않는 재목이다.
ꡔ三代ꡕ의 서술자는 인물의 말을 끌어와 논평하기도 하고, 인물의 시점에서 인물의 생각을 서술하기도하고, 서술자 자신의 서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가) 그러나 없는 사람이 있는 친구와 어울리면 병정 노릇이나 하는 것 같은 일종의 굴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겠고, 또 그렇게 구칙칙하거나 더럽게 굴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것이 취할 모라고 아직 경력 없는 덕기건만 돌려 생각도 하는 것이었다.(17면)
(나) 주부의 눈에 비친 덕기는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 똑똑한 청년이었다. 이 여자에게는 조선인이라는 경멸하는 마음은 벌써 없었으나 그 그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데다가 학생복이나마 값진 것을 조촐하게 입은 양으로 보아서, 어느 부잣집 아기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경멸하는 마음이 들었다.(18면)
(다) 이 여자는 올 가을에 처음으로 이 장사를 벌인 터이라, 드나드는 손님이 하도 많지만, 이런 장사에 찌들어서 여간 것은 눈에 띄지 않을 만치 신경이 굳어지지 못한 탓이랄까, 여하간 여염집 여편네의 호기심으로 처음 보는 남자마다 유난히 호기심을 가지고 인금 나름을 하는 것이다.(18면)
(라) 피혁이는 보도 듣도 못 하던 김병화더러 애인과 같이 반찬가게나 벌이고 생활안정이나 하여서 살이나 피둥피둥 찌라고, 수륙 만리의 머나먼 길을 갖은 고초를 다 겪고 다녀간 것인가…….
피혁이가 그 돈을 줄 때 다만 홍경애의 손만을 거쳐 넘어가게 한 것이 실수라고도 할 것이다.(381면)
(가)는 인물의 심리를 서술한 것이고, (나)는 주부의 시각을 통한 덕기에 대한 생각을 서술한 것이고, (다)는 서술자가 주부에 대한 서술을 한 것이다. 그리고 (라)는 서술자가 사건의 밖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고 생각하기도 하고, 거기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직접적인 지시적 이해(말의 제1유형)를 계산에 둔 직접적 대상을 향한 말 즉, 이름짓고, 전달하고, 표현하고,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말이다.
7.2. 객체화된 담론
묘사된 혹은 객체화된 말은(제2의 유형) 가운데 가장 전형적이고 널리 쓰이는 형태는 주인공의 直接話法이다. 이 직접화법은 직접적인 지시적 의미를 띠고 있지만 작자의 말과 동일한 평면상에 있지 않고, 그것을 전망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주인공의 직접화법은 그 자신의 대상의 시점에서 이해될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가 특징적이고 전형적이고 색채적인 말로서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직접화법으로된 부분만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글세, 갈 새가 있을라구요. 아무쪼록 가겠습니다마는 누구든지 보내십쇼그려.”
“어디서 오셨어요?”
“김선생요? 편찮아 누우셨어요.”
“못 나오면 좀 들어가 보아도 좋을까요?”
“잠깐 가만히 계세요.”
“조군인가? 들어오게!”
“웬일인가? 주호가 술병이 났나?”
“어서 들어오게. 에 추워!”(47-49면)
이런 화자의 직접화법은 서술자의 콘텍스트 속에 위치해 있다. 즉 서술자의 담론과 인물의 발화라는 담론의 중심과 단위가 두 개 있는 셈이다. 인물의 담론은 타인의 말로서 특수한 성격적 윤곽이나 전형을 가진 사람의 말로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예문의 객체화된 직접화법은 논쟁적인 말로 바뀌게 된다. 인물과 인물의 담론이 논쟁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은 인물들의 이념이 부딪힌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이념이 부딪히지 않는 곳에서는 객체화된 인물들의 직접적인 말이 사용된다. 상훈이 조부가 덕기에게 물려준 재산을 털기위해 며느리와 나누는 대화 장면이 그렇다.
“이놈(상훈의 손자-인용자)은 몸 성하냐? 어디 나갔니?”
“안방에서 잡니다.”
“얘, 무얼 하시나 좀 건너가 봐라.“
“그저 잡니까?”
“응, 얘, 잠깐 들어오너라.”
“무얼 찾으세요?”
“사랑, 문갑 열쇠 어디 있는지 아니?”
“모르겠어요, 거기 어디 있겠어요.”
“다른게 아니라 내 물건 하나를 초상 중에 문갑 속에 넣어 둔 것이 있는데, 경찰서에 곧 갖다 뵈어야 이 얘가 놓여 나올 테구나…….”
“넌 정말 모르니?”(503면.직접화법만 인용)
이 부분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에서의 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고 객체화된 직접화법으로되어 있다. 이러한 양상은 병화가 원삼에게 훈계조로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요컨대, 객체화된 직접화법은 인물의 말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서술자의 말에 종속되어 있으며 후자 속에서 하나의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인물의 말은 작가적 이해의 객체로서 취급되고 있지, 결코 그 나름대로의 지시적 방향성의 시점에서 취급되고 있지는 않다. 반대로 작자의 말은 그 나름의 직접적인 지시적 의미를 띤 방향 속에서 문체론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7.3. 은닉된 논쟁
바흐찐은 내부적으로 논쟁적인 말-적대적인 타인의 말을 탐색해 보는 말-은 실제적인 일상적 말과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문체형성상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일상적 언어에서 ‘남의 채소 밭에 돌 던지는’ 식의 모든 말과 ‘가시돋친’ 모든 말은 거기에 속한다. 또한 자기 자신을 미리 거부하는 비하시킨 수사로 가득 찬 말, 失言, 양보, 핑계 등등의 말이 있다. 이러한 말은 타인의 말이나 대답, 반박을 앞에 두기도 하고 예감하기도 하면서 마치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하다.
ꡔ三代ꡕ의 첫 장인 ‘두 친구’를 보면 병화가 덕기를 찾아왔는데, 만나자마자 하는 그들의 대화는 은닉된 논쟁의 말로 시작한다.
머리가 텁수룩하고 꼴이 말이 아니라는 조부의 말눈치로 보아서 김병화가 온 것이 짐작되었다.
“야- 그러지 않아도 저녁 먹고 내가 가려 하였었네.”
덕기는 이틀 만에 만나는 이 친구를 더욱이 내일이면 작별하고 말터이니만치 반갑게 맞았다.
①“자네 같은 부르주아가 내게까지! 자네가 작별하러 다닐 데는 적어도 조선은행 총재나…….”
병화는 부옇게 먼지가 앉은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딱 버티고 서서, 이렇게 비꼬는 수작을 하고서 껄껄 웃어 버린다.
②“만나는 족족 그렇게도 짓굿이 한마디씩 비꼬아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겠나? 그 성미를 좀 버리게.”
덕기는 병화에게 ‘부르부아,부르주아’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먹을 게 있는 것은 다행하다고 속으로 생각지 않는 게 아니나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그런 소리가― 더구나 비꼬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12면)
①은 병화의 말이다. 병화의 말은 덕기를 지향하는 은닉된 논쟁으로 충만하다. 서술자는 이 말을 ‘비꼬는 수작’이라고 하고 있다. ②는 덕기의 응답이다. 덕기는 병화의 말이 자신을 비꼬는 말임을 알고 있다. ‘부르조아’라는 말에 덕기는 어떤 시대적인 위압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덕기가 병화의 비꼬는 논쟁투의 말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미를 좀 버리게’라고 말하는 정도이다. 이념의 갈등이나 사상의 갈등의 차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덕기도 병화의 일방적인 비꼼에 당하지만은 않는다. 덕기 역시 병화의 논리로 되받아친다(13면). 그러나 이내 병화의 말에 의해 다시 대응된다. 그런데 병화의 말은 병화가 집에서 나옴으로써 덕기의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은닉된 논쟁투의 말은 결말을 보지 못한다.
“그런 귀족 취미는 넣어 두게. 양식 한 접시면, 이 사람아, 살 한 되가 넘네. 그런 넉넉한 돈이 있거든 나 같은 유위한 청년의 사업에 보태게.”
“구렝이 제 몸 추듯 잘도 추네만 좀더 유위해지면 삼 년 동안은 고무공장 계집애의 밥을 먹고 들어앉을 셈일세그려.”
①덕기도 지지 않았다.
“우리집 주인 딸이 무척 마음에 키이나 보이그려.”
“자네 신세도 딱하고 그 계집애도 가엾으니까 말일세.”
“내 신세가 왜 딱한가?
하고 병화는 약간 불쾌한 기색을 보이다가,
②“그러기에 자네 같은 무위의 프티 부르는 크게 반성하여야 한다는 말일세.”
하는 어조가 지금까지의 농담과는 다르다.
“이건 무슨 딴전인가. 그러나 대관절 어딘가?”
“다- 왔네.”(15-16면)
병화의 말에 덕기도 지지않고 맞받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병화의 말, 즉 ②에 대한 더 이상의 덕기의 응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덕기와 병화의 말은 서로 맞선 형국이지만 결국은 병화의 목소리로 기우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ꡔ三代ꡕ의 인물 가운데 사상적인 편향을 보이는 인물군인 병화, 홍경애, 주부 등을 대할 때 분명해진다. 이들은 덕기의 의식을 제약하는 거멀못의 역할을 한다. 덕기는 병화나, 경애, 주부가 자기를 비꼰다는 생각에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26-27면). 그들은 덕기에게는 ‘딴세상’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원삼에 대한 병화의 훈계(252-253면)나 김의경에 대한 병화의 연설(259면)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덕기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즉 개화기 세대인 아버지 상훈과 친구인 병화 등과도 일정한 거리를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덕기의 이념은 병화와 덕기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사상적 편향을 지닌 인물들의 대화적 관계가 같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일과 사랑의 논리(234면)에 서 있는 경애는 병화를 비웃음의 대상으로 보고있다.(225면)
그런데 덕기의 말은 가족을 대할 때는 달라진다. 부친 상훈과의 관계에서는 덕기의 말이 압도적인 형국이다.
부친이 아들의 공부에 대하여 묻는 것은 처음이다.(중략)
“경도제대로 들어갈까 하는데요.”
“그럴게 무어있니? 경성 제대로 오면 입학에 경쟁이 심한 것도 아니요 또 집안 형편으로도 좋지 않으냐.”
“글쎄올시다. 그래도 좋겠지요.”(중략)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하는 게 무엇보다도 집안 형편에 좋고.”
①부친은 말끝을 아물리지 않았다. 실상은 ‘내게도 좋겠다’는 말을 하려다 만 것이다.(중략)
“무슨 과가 지망이냐?”
“법과를 할까 보아요.”(중략)
“법과보다는 경제과나 상과를 하면 어떻겠니?”
“경제과는 해도 좋지만 상과는 싫어요.”
여기에도 덕기는 몽롱하나마 제 속다짐이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좋지…….”
②부친은 아무쪼록 아들의 말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이 가벼이 대답을 해 집어치우고 나서 목소리를 낮추어서,(127-129면)
덕기 부친이 말끝을 맺지 못하고, 아들을 눈치보는 말을 하는 것은 재산 상속과 관련된다. “돈-그 돈도 아직 생긴 돈은 아니나-하여간 돈 앞에는 아들에게도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128면) 그러나 덕기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병화와 대화를 나눌 때는 다른 말의 양상으로 변한다. 병화가 덕기를 비꼬는 말투로 변하고 만다(129면).
덕기 부친 상훈이 ‘아비된 성검’을 세우려는 것도 전적으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홍경애와 그 딸의 문제를 놓고 벌이는 덕기와 그의 부친과의 논쟁에서도 그렇다(133면). 덕기 부친이 덕기에게 한 말은 “이때까지 교회 사람이나 일반 사회에 대하여 경애와 아무 관계가 없는 듯이 변명하기 위하여 내려온 말을 자식에게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134면)이다. 그러기에 아버지로서 화를 참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상훈이 조의관과 언쟁을 벌인다거나, 조의관 사후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해부 문제에서 가족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닿아 있다. 드디어는 재산을 스스로 훔쳐가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고(33장), 결국 경찰서에서 덕기 앞에서 모욕당하기에 이른다(533면).
덕기와 그의 조부 조의관의 관계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덕기는 이미 조부의 명을 받고 조부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거니와 덕기에게 조모의 제사를 지내고 떠나라는 엄명을 받고 어떠한 응답적 대화를 하지 않는다. 덕기와 그의 조부는 대화적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지경이다.
7.4. 은닉된 대화
『三代』에서 편지가 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덕기와 병화의 사이에 오가는 편지는 그들의 내면이 드러남에 따라 두 세계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편지는 직접적인 대화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사상 혹은 삶의 태도를 무리없이 비판하기에 적합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동일한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달리 다른 인물에 대한 언급이 자유롭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편지라는 형식 그 자체는 아직 말의 유형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편지는 그 속성으로 보아 제3유형의 마지막 변종의 말, 즉 반영된 타인의 말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편지는 원래 상대방 수신자의 입장에 민감하다. 편지는 대화의 응답과 마찬가지로 특정인을 향해 있고 그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반응이나 대답을 고려에 넣고 있다. 이 부재의 상대를 계산한다는 일이 편지의 큰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을 바흐찐은 은닉된 대화성이라 한다.
(가) 자네에게 충실한 친구임을 표시하여 또 자기의 신용을 자랑하려 왔던 것은 아닐세마는 필순 양을 만나고 가는 것만은 왔던 보람이 있는 것 같으이. 그러나 실없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나이니 웃으며 이 글을 쓰지는 못하는 것일세. 내가 없어지면 자네가 담배를 굶을 듯하기에 내 벤또값을 두고 가네…… 일전에 실없는 말로만 하였지만 참 정말 필순 양이 공부할 의향이면 기별만 하게. 어떻게든지 도리는 있을 것이니…….(181면)
(나) 여보게, 바커스 퀸(여왕)의 우박 같은 키스-아니 실상은 진눈깨비 같은 키스이었던지 모르지만-어쨌든 불의에 맛보는 그 키스의 촉촉한 쾌감이 자네의 전송을 방해하여서 그날은 정거장에 못나간 것일세. 이것은 자랑이 아니요 핑계도 아니라 나에게도 난생처럼 당하는 행복의 절정(?)이 있었다는 것을 정직하게 고백-보고하는 것일 뿐일세. (중략) 왜 안 가고 싶을까마는 차마 발길이 나서지를 않네그려. 머리도 좀 깎을 생각이 나고 옷의 먼지도 털로 싶고 될 수 있으면 크림도 발라 보고 싶으니 이 사람! 자네 웃으려나? 웃지 말게! 정말일세. 자네 일전에 그 굉장한 편지와 함께 내 담뱃값을 두고 갔데마는 이번에는 어쩌면 자네가 크림값까지 대어야 할지 모르겠네, 하하……(중략) 모르면 몰라도 자네도 아마 소위 첫사랑의 경험이 없는 모양이지만 나도 동정(童貞)은 지키지 못하였으나 연애한 경험은 없네. 9중략) 훗일 그 애(필순-필자)의 배우자를 선택한다면 나 같은 무능자도 못쓰겠지만 자네 같은 유위의 청년도 거절하여야 할 것일세. (중략) 자네 생각에는 내가 홍경애라는가 하는 여자를 사랑할 자격이 있겠나. 자격 심사부터 해보아 주게. 아마 자네가 필순에게서 무자격한 것 이상으로 무자격할 것은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닐세. 그러나 여보게, 나 보기에는 그 여자가 암만해도 보통 여자 같지는 않으이.(184-187면)
(다) 자네는 왜 그렇게 밤낮 으르렁대나? 비꼬지 않으면 노기를 품지않고는 말이 아니 나오나? 필순 양에 대한 이야기로만 하여도 그렇게 심하게 말할 것은 없지 않겠나? (중략-서술자의 필순 행위 서술) 자네는 투쟁의욕-이라니보다도 습관적으로 굳어버린 조그만 감정 속에 자네의 그 큰 몸집을 가두어 버리고 쇠를 채운 것이 나 보기에는 가엾으이. (중략) 그건 고사하고 내게까지 그 소위 계급투쟁적 소감정으로 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중략) 투쟁은 극복의 전(全)수단은 아닐세. 포용과 감화도 극복의 유산탄만한 효과는 얻는 걸일세. 투쟁은 전선적, 부대적 행동이라 하면 포용과 감화는 징병과 포로를 위한 수단일세. 포용과 감화도 투쟁만큼 적극적일세. (중략) 나도 내길을 걷노라면 자네들에게도 유조한 때도 있고 유조한 일도 없지 않으리라는 말이세.(237-239면)
(가)는 덕기가 서울을 떠나면서 병화집에 들러 남긴 편지이고, (나)는 병화가 덕기에게 한 편지이고, (다)는 덕기가 병화에게 한 답장 형식으로 되어 있는 편지를 필순이 훔쳐보는 것을 서술자가 옮겨적고 있다. (가)-(다)의 편지 어느 것이나 부재의 상대를 생생히 반영하고 있다. 편지의 청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 편지들에는 평소에 할 수 없는, 하지 못한 말들이 가득하다. 그 속에는 개인적인 사생활에서부터 이념 문제에 이르기까지 화자의 내면이 드러나 있다. 중요한 것은 병화 쪽에 기운감이 있는 덕기와의 대화가 이제는 편지를 통해서 덕기의 생각이 명확히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의 밑줄친 부분은 그 한 예이다. 덕기야말로 덕기의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따라서 ꡔ三代ꡕ는 어떤 인물의 목소리가 압도되어 나오는 독백적 소설이라기보다 인물의 목소리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4. 주체의 이념과 담론
소설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그의 담론이 언어에 의한 예술적 묘사의 대상이라는 점, 소설 속의 말하는 사람은 사회․역사적 개인이며, 그의 담론도 사회적 언어라는 점, 그리고 소설 속의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념인이라는 점이다. 소설 속의 특정 언어는 언제나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ꡔ三代ꡕ의 담론은 주체의 관련 속에서 파악해 볼 때, 작가는 타자로서 서술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선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대상을 향한 말을 하고 있음을 살폈다. 인물들의 담론은 인물들의 관계에 따라 이중적 목소리를 지니기도 하고, 객체화된 직접화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ꡔ三代ꡕ는 덕기와 병화를 중심으로 타인의 담론이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이중적 목소리를 드러내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담론 양상은 주체들의 이념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는 바 이제 주체들의 이념과 담론의 관련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ꡔ三代ꡕ의 인물은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조의관․조상훈․조덕기의 3대를 중심으로한 조씨 일가의 인물군(A), 김병화․피혁․장훈․필순 부․홍경애 부 등 이념적 인물군(B), 매당집과 수원집을 가운데 두고 뭉친 퇴폐적 인물군(C)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 구분은 가계나 사상, 매당이라는 범주로 인물들을 묶음으로써 그 범주에 속한 인물들의 이념적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서술자라는 담론 주체를 간과하고 있다. 이는 인물 중심의 연구 방법이 지닌 필연적인 한계이다. 따라서 작품의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간여하는 구체적인 담론 주체들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해석은 종래의 해석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종래의 연구는 리얼리즘의 ‘전망’이라는 개념이나 혹은 현재의 관점에서 작품을 평가하거나,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의 직접적인 관련에서 ꡔ三代ꡕ를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염상섭의 세계관을 곧바로 작품에 대입하거나,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는 입정에 서 있다. 그러나 당대 식민지 사회에서 지주계급이나 중산층의 몰락을 역사발전의 단계로 볼 때 과연 옳은 방향인가 하는 점도 고려되어야 하며, ꡔ三代ꡕ의 작품세계가 다루고 있는 현실 자체가 그러한 당위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것을 요구하는 식의 평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조상훈의 이념은 주체들의 담론을 통해 드러난다. ꡔ三代ꡕ의 첫 부분을 보자.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 꼴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 따위 뿐이냐?”(중략)
“당치 않은! 삼동주 이불이 다 뭐냐? 주속(紬屬)이란 내 나쎄나 되어야 몸에 걸치는 거야. 가외(可畏) 저런 것을 공부하는 애가 외국으로 끌고 나가서 더럽혀 버릴 테란 말이냐? 사람이 지각머리가…….”
하며 부엌 속에 쪽치고 섰는 손주며느리를 쏘아본다.(11면)
ꡔ三代ꡕ 첫 부분부터 조의관은 당당한 말투를 갖고 있다. 며느리에게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라는 엄명이나, 제사 문제를 놓고 아들 조상훈과 벌이는 논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당당한 말투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념에 닿아 있다. 그 이념이란 ‘사당과 금고’로 요약된다.
족보 있는 양반 가문을 이루는 것과 재산을 지키고 이어갈 자손을 얻는 것이 그의 평생의 오입이다(105면). 이를 중산층 보수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문제에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재산관리에 애쓰는 것이다. 이러한 이념으로 그는 다른 주체들과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제1충돌’에서는 ××조씨 중시조인 ○○당(堂) 할아버지의 치산(治山)과 묘막을 짓는 문제로 상훈이와 창훈이의 논쟁을 듣고 조의관이 한말과 제24장 ‘집’에서 조의관이 덕기에게 한 당부에서 잘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사당과 금고’, ‘평생의 오입’이 조의관의 이념이다. 그러기에 그 이념에 대치되는 이념과는 논쟁이 있게 마련이다. 그 대상은 주로 아들 상훈과의 논쟁이다. 이러한 것은 논쟁적 담론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수원집과 손자 덕기와는 다른 담론 양상을 보인다. 이것은 수원집은 조의관의 평생 오입의 대상이며, 혈통을 잇게 해 줄 인물이라는 점과 덕기는 가계를 이어갈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의관과 논쟁의 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조상훈은 다른 여러 주체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종래의 연구는 주로 조의관, 조덕기, 김병화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조상훈은 이들 모든 인물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요하는 인물이다.
조상훈은 제3장 ‘이튿날’에서 등장한다. 제사를 지내는 문제를 가지고 조의관과 조상훈이 다투는 장면이다(42-43면). 조의관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다소 시비조의 말이다. 이에 대해 상훈은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조의관이 감정 대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논쟁은 애초부터 결말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 둘의 대화는 노인의 중재에 의해서 일시 중단될 수밖에 없다.
상훈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념은 소위 ‘제삼제국’론(45면)이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상과 덕기 세대의 시대상의 귀일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개화기 지식인이었던 그가 위선적 이중생활이나 이중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은 그의 이념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가를 반증해 준다. 덕기는 이러한 의견에 대하여 반대하고 싶지는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구습상 부친에게 반대할 수도 없고 또 제 주제에 길게 논란할 수도 없는 터이어서”(45면) 그만두고 만다. 덕기는 부친이 봉건시대에서 지금 시대로 건너오는 외나무다리의 중턱에 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상훈은 아버지 조의관에 대하여 거리를 두기도 하면서도 매당집을 드나드는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제사 문제나, 대동보소 문제를 가지고 조의관과 첨예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마작을 한다거나, 퇴폐적 행위에서는 객체적 담론을 나타낸다. 이러한 연유로 조의관 시신의 해부문제로 상훈이 친척들로부터 무시당하기도 하고 재산을 훔친 일로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조덕기나 김병화의 이념도 다른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난다. ꡔ三代ꡕ의 첫 장부터 덕기와 병화의 담론은 상대방의 담론 주체에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논쟁으로 시작한다. 이 논쟁에서 병화의 담론이 덕기의 담론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양상은 홍경애를 만났을 때에도 이어진다. 병화, 주부, 홍경애로부터 자본의 관계가 무너짐으로써 덕기의 존재도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덕기와 병화가 주고 받는 편지는 덕기와 병화의 이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편지라는 간접화된 방법이기는 하나 편지가 갖는 특성이 상대방을 지향하면서 늘 그의 반응이나 대답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덕기나 병화의 이념을 파악하는 중요한 담론 양식이다.
경도로 돌아가기 전에 김병화와 조덕기는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인바 있는 데 근본적으로 김병화는 서로가 교제해 나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한다.(57면) 이러한 상황에서 조덕기가 병화에게 자신의 변명이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일은 병화와 이제 이념 차원에서 맞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덕기는 자신의 평소의 생각을 확인하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를 두고 동정자(同情者, sympathizer)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동정자로서의 조덕기의 의식은 미미한 형태로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조덕기의 행동은 김병화의 이념에 대해 심정적으로만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덕기의 이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병화와의 관계 뿐아니라 조덕기 자신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덕기가 부친과의 대화에서 한편으로는 반감이 있다가도, 한편으론 부친에 대한 가엾은 생각과 동정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이해와 동정하는 마음은 덕기가 의경이 문제를 놓고 논쟁할 때도 드러난다(제29장). 그리고 조부가 물려준 금고 열쇠에 대한 생각에 이르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기까지 한다.
‘내 일생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중대한 일은 이 금고 여닫는 것과 사당문을 여닫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단 말인가? 마치 간수가 감방문을 여닫듯이. 그리고 그 중대한 사업이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352-353면)
이러한 갈등은 덕기가 필순이를 두고 하는 생각에 이르면 더욱 뚜렷해진다. 덕기는 유물론적으로 기울어진 자기의 사상과는 모순이 되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필순이가 주위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제일 천성(第一天性)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심령의 최후 승리를 믿는 유심적 해결에 기울어지려 함이 아닌가도 싶다”(434면)는 것이다. 그러나 덕기는 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덕기는 필순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이념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덕기는 “자기의 감정이 올곧지 못한 것을 혼자 분개”(474면)하기에 이른다.
김병화의 이념은 조덕기와의 대화나 주고받는 편지에 잘 나타난다. 일상의 측면에서 김병화는 조덕기와의 대화에서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비꼬는’ 말투를 사용한다. 그러나 중반부에 오가는 편지에 이르면 조덕기의 입지에 대하여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김병화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조덕기가 없는 상태에서 또다른 생활 즉 홍경애와의 애정 문제를 통한 생활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이며 더구나 지금껏 조덕기에 대해 비굴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조덕기의 아버지가 타락한 모습을 보게 된데서 오는 비판적 입각점을 확보한 측면도 강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홍경애의 등장이다. 물론 덕기에게도 필순이의 존재가 문제적이다. 홍경애나 필순이 병화나 덕기의 생활이나 이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ꡔ三代ꡕ를 해석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홍경애를 만남으로써 병화의 삶은 변화되었다. 이것을 덕기는 아직 눈치를 못채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병화는 일본인 반찬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하게된다. 반찬가게는 무언가라는 장훈이의 물음에 병화는 “보호색(保護色)! 사람에게도 보호색은 필요한 걸세.”(414면)라는 대답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해외에서 유입된 자금을 가지고 해야될 자신의 임무는 망각하고 있다. 오히려 생활 세계에 함몰되고 있는 것이다.
5. 결론
이 글은 기존 소설 연구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소설 연구에서의 담론 연구를 통한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는 방법론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염상섭 소설에 대한 연구도 방법론의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말하는 사람들이 엮어가는 담론 구성체라는 전제에서 보면, 담론 주체들의 구체적인 담론 양상을 살펴야 할 것이다. 이 주체들은 자신의 이념의 조명을 받으며, 이념을 담론을 통해 실천한다. 따라서 담론 주체들의 담론을 살피는 것은 그 주체들의 이념과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ꡔ三代ꡕ는 서술자의 담론은 곧 작가의 담론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으로 대상을 향한 담론이다. 이것은 작가가 서술자를 자신과 최대한 밀착한 결과이다. 그러니까 서술자를 작가는 거리를 느낄 수 있는 타자로서 설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의 영역에 속하는 서술자를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ꡔ三代ꡕ는 인물 간의 논쟁으로 가득차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타인의 담론이 적극적으로 주체의 담론에 개입하는 내적으로 논쟁적인 말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편지 형식은 덕기와 병화의 이념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편지는 상대방을 늘 염두에 둔다는 점, 상대방을 의식하고 예상되는 응답과 대응을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은닉된 대화라 볼 수 있다. 은닉된 논쟁이나 은닉된 대화는 단일방향의 작가의 직접적인 말이나 객체화된 직접화법과는 달리 이중적 목소리를 가진 담론이다.
물론 소설의 담론은 주체의 이념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ꡔ三代ꡕ에서는 주체의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될 때는 논쟁적인 담론이 나타난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객체화된 말이나 대상을 지시하는 직접적인 말의 양상을 보인다.
특히 ꡔ三代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종래의 연구들은 작가와 덕기의 관계에 주목하여 중도적 보수주의를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ꡔ三代ꡕ는 어느 한 주체에 의해 다른 주체들의 이념이 압도되어 지배하는 단일한 담론이 아니다. 각 주체들은 자신의 고유의 이념을 가지고 다른 주체들과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장훈이나 원삼이, 의경이 등은 자신의 고유한 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지만 여타 다른 주요 인물들은 자신의 의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완전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많은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들이 독립된 영역을 확보함으로서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를두고 대화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담론주체들의 대화에 간여하는 요소들과 대화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차후의 과제로 남긴다. 이러한 연구는 국어교육 뿐아니라 문학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
<자료>
염상섭, ꡔ三代ꡕ, 동아출판사, 1996.
<참고 문헌>
김동환, 1930년대 한국 장편 소설 연구」, 서울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3.
김윤식,『염상섭연구』, 서울대 출판부, 1989..
김윤식․정호웅 공저,ꡔ한국소설사ꡕ, 예하, 1995.
김재용 외, ꡔ한국근대민족문학사ꡕ, 한길사, 1995.
나병철, ꡔ한국 문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ꡕ, 문예출판사, 1996.
데이비드 롯지, 「바흐친과 현대 소설의 담론」,『바흐찐과 문학이론』, 여홍상 엮음, 문학과지성사, 1997,
禹漢鎔,『韓國現代小說構造硏究』, 삼지원, 1990.
M.M.바흐찐, 김근식 역, ꡔ도스또예프스끼 시학ꡕ, 정음사, 1988..
M.M.Bakhtin, The Dialogic Imagination, 미하일 바흐찐, 전승희,서경희,박유미 역,『장편소설과 민중언어』, 창작과 비평사, 1988.
Michael Holquist, Dialogism,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1990.
‘문화교육’이라는 문제 설정 Ⅱ
정현선(런던대 대학원)
1. 교육과 관련된 문화의 개념
교육과 관련되는 문화의 범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문화적 유산 또는 문화적 전통, 혹은 높은 문화적 가치를 갖는다고 여겨지는 문학 예술 작품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교육의 내용을 이루어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문화’는 흔히 ‘문화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교양 혹은 지식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 학교 교육에서 역점을 두어왔던 바 중의 하나가 학생들의 문학 예술 작품 감상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의미의 문화를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주로 인류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왔던 바인 ‘생활 양식’으로서의 문화 개념이다. 인류학에서는 본래 타 민족의 삶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데 관심을 가졌었으나, 최근에는 자민족 혹은 자기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기술하는 데로 그 관심을 넓히게 되었다. ‘자문화 대 타문화’라는 문제 의식이 ‘자기 문화 속의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해 간 결과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교육인류학자들 역시 교육과 관련하여 가정과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기술하는데 중점을 두어왔다. 여기서 교육은 그들이 기술해야할 대상으로서의 문화의 일종이 되어, 가정에서의 삶과 교실 문화들이 다소 중립적인 시각에서 기술되고, 분석되고, 설명되었다. 문화기술자들은 거기에 개입하지 않고 단지 바깥에서 그것을 묘사한다.
세 번째로 최근에 발전된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에서 문화를 보는 시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두 가지의 문화 개념과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우선 여기서 가치를 두는 문화가 대중 문화(popular culture)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터너는 자신의 저서 ꡔ영국의 문화 연구ꡕ에서, 30년 전에 그 책이 출판되었더라면 누구나 그 내용이 고급 문화(high culture)를 가리킬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문화’라는 개념이 대중문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성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정은 이제 비슷해졌다. 90년대 들어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큰 폭으로 성장하여, ‘문화’에 관한 책의 출판이나 각종 문화 강좌에서 대중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고, 이에 힘 입어 ‘문화=고급 문화’라는 도식은 점차 깨어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최근에는 ‘문화’가 ‘대중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지만, 터너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개념의 문화는 그것이 사회적 과정들과 실천, 그리고 의미들을 이루는 기본적인 것으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적 연구 대상으로서는 극히 주변적인(peripheral) 것으로, 또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는 하지만 별 가치는 없는(meretricious) 것으로 여겨져왔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의 목적이 단지 그것을 기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는 점이다. 터너의 말대로, 대중 문화는 일상 생활의 구조가 검토될 수 있는 자리이며, 이 일을 하는 목적은 단지 학문적인 것, 다시 말해 단지 특정한 문화적 과정이나 실천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데 그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인류학자들의 연구 목적과 차이가 난다. 문화 연구의 목적은 일상생활의 형식을 구성하는 권력 관계들을 검토하고, 그럼으로써 그러한 구성이 봉사하는 이해관계들의 형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화 개념은 이 중 세 번째 것에 가깝다. 이 때 문화는 다시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교육의 내용과 맥락으로서의 대중문화가 그 하나이고, 교육의 관점으로서의 문화가 또 하나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관련되어 있다. 학생들은 대중문화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윌리스가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삶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자신들의 존재, 정체성, 의미 등을 수립하기 위해 자신의 창조성을 찾는 데 있어 매개가 되는 온갖 표현, 기호, 상징들로 가득차 있는데, 대중문화는 여기서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교사든 연구자든 그들이 학생들과 함께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의 특성과 학생들이 그것을 이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처럼 교육의 내용과 맥락으로서 대중문화를 고려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고급 문학 예술만이 학교교육의 내용을 이루어왔던 데 대해 문제 제기하는 의미를 갖는다.
두 번째로 언급한 바, 교육의 관점으로서의 문화란 학생들의 정체성 형성과 교사 및 동료 학생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교사는 진리의 담지자로서,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지한 학생들에게 ‘올바른’ 지식과 관점을 가르친다고 보았다. 이것이 전통적인 교육의 관점이 취했던 문화라면, 대중문화를 교육의 내용과 맥락으로 삼는 교육은 이와는 다른 관점을 필요로 한다. 대중문화를 ‘문화’로서 존중하게 된 것은 ‘대중’의 문화적 능력에 대한 평가절하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만큼(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것을 일상적 삶에서 즐기고 살아가는 학생들의 문화적 능력 역시 교사에 의해, 혹은 평가의 측면에서 존중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학습자 혹은 독자 중심의 교육관과 관련되는 것인 동시에, 교사와 학생 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권력 관계의 측면에서 문제삼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가 본고에서 피력하고자 하는 문화교육은 이와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다. 즉, 대중문화를 교육의 대상이자 주체인 학생들의 삶의 맥락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것을 교육의 내용으로 끌어들여, 학생들 자신이 접하는 문화 텍스트(그것이 기존의 전통적인 문학 텍스트이건, 대중문화 텍스트이건)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며, 그러한 해석과 평가가 나오게 된 해석자의 문화적 맥락과 대화하게 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에 대한 판단력과 문화적 능력을 갖게 하는 교육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문화를 교육에 끌어들이는 것에 관련된 논쟁, 문화 텍스트의 다원적 특성 및 수용자의 능동성 개념, 문화교육에서 이슈가 되는 몇 가지 점들-학생들의 정체성 형성 및 수업에서의 ‘대화’적 관점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뒤에서는 이것들에 대해 순차적으로 논의한 후, 문화교육이라는 문제설정이 문학교육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언급하기로 하겠다.
2. 교육 내용으로서의 대중문화에 대한 논쟁
문화 연구가 시작되고 발전한 영국의 경우, 대중문화의 교육은 중등학교의 영어 과목 교육과정 내에서 매우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논점으로 부각되어왔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국에서는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관이 교육의 실천적인 부분까지 자리를 잡아나갔는데, 그것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교육하며, 학생들의 실제 경험을 강조하고,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를 지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진보주의 교육의 이념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음에 따라, 1970년대 이후에는 대학에서 뿐 아니라 중등학교에까지 미디어 교육이 확산되어 학생들이 즐겨 읽는 연애소설류나, 대중 잡지, TV 멜로 드라마, 영화 등의 광범위한 대중문화 텍스트들까지 영어 교육 속에 포함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교육을 영어 교사들이 함께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의 문제에서 전통적인 영어교육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고, 아직까지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세익스피어 문학과 같은 ‘위대한 문학적 유산’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영원한 가치를 갖는’ 전통적 의미의 문학 예술과 ‘단지 일회용일 뿐이며 그다지 가치도 없는’ 대중문화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영어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교육과 문화적 가치에 관한 이런 종류의 논쟁은 70년대, 80년대를 거치는 긴 역사를 갖는데, 70년대 말에 중핵 교육과정에 대한 논쟁이 일고, 80년대 말에 영국 교육과정(National Curriculum)이 출현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이다.
그런데, 대중문화의 교육에 관한 한 우리의 사정은 이보다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영국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이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학교 현장을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교사들의 노력이 매우 컸고, 대중문화에 대한 교육이 중등학교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은 사실 이러한 노력에 힘 입은 것이었다. 이에 비해 우선 우리의 경우, 아직까지 수업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교사의 자율성이 매우 미약하다. 그 이유는 많은 논자들이 진단해왔듯이, 국가에 의한 교육과정의 통제나 대학 입시 위주로 수업을 운영해야 하는 부담, 그리고 학습자 중심 교육에 대한 인식의 미약함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진보주의 교육의 이념은 이론적으로만 받아들여졌을 뿐, 학교교육의 실천 속에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학교교육을 공식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교육과정에 나타난 이념을 통해 대중문화에 대한 관점을 유추해 보면 그것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현재 공식적인 학교교육에서의 문학교육의 목표는 문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많은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창의성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교육과정 해설(1989)에서는 한국문학의 민족적 가치와 문학성을 강조하고 있고, 문학교과서 ‘집필상의 유의점’(1988)에서는 문학적 가치를 검증받은 작품만을 싣도록 규정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교육과정에는 전통적 가치와 고전에 대한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 한편, 국어과 교육과정에 대중문화에 대해 이렇다할 언급이 없는 반면, 대중문화의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저널리즘에서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널리 퍼져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대중문화가 중등학교의 교육과정에 자리잡기는 아직 어려우며, 설령 부분적으로 대중문화가 가르쳐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급의 가치를 갖는 문학 작품에 부정적으로 비교되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런데 대중문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때부터 꾸준히 있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초점은 대체로 대중문화의 질이 낮다는 생각과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끼치는 한 부정적 영향력에 맞춰져 있었다. 이렇게 대중 사회와 상업적 타락을 비판하는 보수주의의 시각은 ‘문화와 문명’ 전통에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서는 문화를 문학 예술의 ‘위대한 전통”만을 배타적으로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대중 문화는 도덕적 진지성 혹은 미적 가치가 부족한 것으로서 평가절하했다. 윌리엄스는 이들의 생각이 엘리트주의의 소산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교양있는 소수 대 창조성 없는 다수대중”이라는 관념은 문화적 오만과 회의주의를 낳게 한다면서, 대중문화의 기술적 진보가 가져올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평가하고자 했다. 이들이 갖는 엘리트주의는 보편적이고 유일한 문화적 가치가 존재하며, 그것은 전통적 문화 혹은 문학예술 유산이라고 보는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만약 그러한 문화적 가치가 없다면 그 주장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비단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 역시 ‘위대한 문화 유산”을 중시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중문화의 상업성이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대체적인 입장은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미디어가 젊은이들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들은 기호학적 방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미디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한다. 그럼으로써 미디어 텍스트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선택되는가를 알아내고, 그것들 속에 억압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므로 미디어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탈신비화(demystification)’의 과정, 즉 감추어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된다.
이러한 생각들은 다음과 같은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대중문화 텍스트는 생산자가 만들어낸 의미만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수용자들은 그러한 조작에 희생당하고 쉽게 영향 받는다는 것. 그러나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과 같이, 이것은 텍스트성 연구와 경험적 수용자 연구에 의해 반박되었다.
3. 문화 텍스트의 다원적 의미와 수용자의 능동적 의미 생산
지금까지의 텍스트성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화 텍스트는 하나의 고착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홀이 제안한 텍스트의 다원성(polysemy of texts) 개념이다. 그는 ‘입력된 코드와 해독된 코드가 꼭 들어맞지 않을 수 있음(possibility of a lack of fit between the codes used by encoder and those used by the decoder)’을 주장하고, 이에 따라 지배적 해독, 교섭적 해독, 저항적 해독 등의 세 가지 해독 모델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 모든 텍스트들이 모든 독자들에 의해 동일하게 해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홀에게서 영향을 받은 몰리와 그밖의 연구자들이 행한 일련의 수용자 연구에 따르면, 텍스트의 의미가 생산되는 과정에는 텍스트가 소비되는 맥락과 특정한 수용자들에 의해 텍스트에 주어지는 사회적 내용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런 생각들은 의미지도가 구성되는 방식들, 하위 문화 그룹 내의 실천, 제도, 대상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등을 연구한 하위문화 혹은 청소년 문화를 연구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텍스트의 개념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 기존에는 글로 씌어진 텍스트, 혹은 특정한 문화적 산물에 국한되었던 텍스트에 그 개념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데에 사회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텍스트의 의미를 생산하는 수용자들의 문화적 실천, 의식들, 의상 및 행동과 같은 것들까지도 텍스트의 개념에 포함되게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 텍스트 개념의 확장을 문학교육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문학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의미 생산 과정에도 이러한 맥락들이 작용한다는 것, 따라서 그러한 맥락까지도 텍스트 해석에 동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임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 텍스트의 다원성 개념이 수용자의 능동성에 대한 논의를 열어놓기는 했지만, 텍스트가 ‘선호된 해독(preferred reading)’을 갖는다는 생각, 즉 텍스트 내에 각인된 제도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질서가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남아 있었음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다시 말해 홀의 이론이 도입된 이후에도 이데올로기는 대중문화의 분석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었고, 이에 따라 수용자의 능동성이 곧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시기가 한동안 있었다. 그러나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동의어가 아니다. 피스크와 하틀리가 말했듯이 문화 텍스트는 언제나 어느 정도는 애매한 것이다. 그리고 텍스트 뒤에 감추어져 있는 이데올로기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데 목표를 두는 분석, 지배적 해독과 선호적 해독이라는 이분법적 모델에 충실한 분석을 갖고는 수용자들이 문화 텍스트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설명할 수도 없다. 이것이 이데올로기 이론의 약점이다.
바흐찐의 ‘카니발(the carnivalesque)’ 이론과 바르뜨의 ‘쾌락(juissance)’, 피스크의 ‘기호적 민주주의(semiotic democracy)’는 이데올로기 이론의 한계와 수용자가 문화 텍스트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론들이다. 즐거움이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방식과 관련되는 것을 인식하기는 해야하지만,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즐김으로써 행복을 느낀다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학생들을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희생자로 보는 또 하나의 엘리트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문화의 교육을 ‘탈신비화’의 방식으로 보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는 대중문화와 젊은이들이 그것과 맺는 관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평가절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중문화 교육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부정적인 측면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러한 시각에는 대중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생들은 그것이 얼마나 유독한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 교사가 그것을 깨우쳐 주어야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문화 텍스트를 교육에 도입하려 한 애초의 이유는 학생들이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었으면서, 막상 그것에 대한 교육적 실천은 대중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분석하고, 그럼으로써 학생들이 얼마나 가볍고 천박한 거짓 문학성에 매료되어 있는가를 밝혀내는 것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애당초 왜 대중문화를 교육에 끌어들여야 하는가 자체가 문제로 되어버린다. 또한 이런 관점은 실제로 학생들이 이미 대중문화의 속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대로 학생들이 전적으로 대중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중문화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다만 즐기는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비판할 줄 아는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 문화가 주는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들도 많다. 그렇다면 오히려 교사가 해야할 일은 학생들이 키치시에 매료되어 느끼는 즐거움을 인정하고 그 즐거움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학생들과 함께 해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키치시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과연 진부한 낭만주의 때문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 텍스트에 고정된 혹은 안전한 의미가 단 하나 존재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텍스트는 이데올로기로 환원될 수도 없고, 설사 이데올로기가 있다 해도 사람들이 그것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처한 다양한 맥락 속에서 텍스트의 의미를 생산하고 특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코드 입력자 혹은 의미 생산자, 혹은 저자에 의해 ‘보내진 메시지’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소통은 코드 해독자, 즉 수용자 내지 독자에 의해 ‘만들어진 메시지’, 즉 창조적인 텍스트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소통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윌리스가 말했듯이 보수적 시각에 의해 정말로 애도되고 있는 것은 문화적 엘리트에 의한 일방적 권력 관계의 의사소통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만들어진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수용자의 능동성을 인정할 때, 교사들은 어떻게 학생들의 의미생산 과정에 개입할 수 있으며 해야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것은 문화와 교육에 의해 구성되는 학생들의 정체성 문제, 그리고 교수와 학습 간의 관계 등의 문제와 연관해 해명할 필요가 있다.
4. 학생들의 정체성 형성과 문화교육에서의 대화 문제
정체성이란 문화와 교육 간의 관계를 따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학생들이 어떤 문화 텍스트를 읽을 때, 그 해석에는 인지적이고 논리적인 과정 뿐만 아니라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측면도 작용한다. 그것은 학생들이 처해 있는 맥락과도 상호작용하면서 학생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개입한다.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크리스쳔 스미드는 ‘읽기 및 쓰기 행위는 독자가 글쓴이가 생산한 책이나 텍스트와 맺는 사회, 경제, 정치적 관계를 구현하고 있다. 문해력은 독자의 정체성과 의식의 구성을 포함하여 집이나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배우는 사회적 실천의 모든 범위를 반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체성이란 독자들이 사회문화적으로 갖고 있는 차이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말하는 차이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남학생의 텍스트 해독은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여학생의 해독과 다르다는 식의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체성은 언제나 유동적인 것이고 복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로스버그는 독자들, 즉 읽기 행위의 주체들이 갖는 차이(difference)를 권력 효과로 보는 행위자 이론(theory of agency)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주체들 간의 차이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자성(otherness)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독자마다 하나의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정된 패턴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복수의 정체성이 있고, 그것은 언제나 그 정체성들 간의 힘과 갈등 관계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교육이 학생들의 정체성 구성에 개입하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학생들의 정체성 형성을 문제 삼는 이러한 문화교육적 질문은 사실상 문화 연구가 형성되기 시작된 초기부터 제기되어왔던 질문이다. 문화 연구를 시작한 주요 연구자들 모두가 대학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그리고 학문간의 벽을 넘어서는 교육적 실천을 하면서 문화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윌리엄스의 초기 저작인 ꡔ문화와 사회ꡕ는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 박사로서 평생교육원에서 노동계급에게 세익스피어를 가르치며 겪었던 경험을 통해 나온 것으로, 여기서 윌리엄스는 영문학 교육을 통한 특정한 가치의 옹호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평가절하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점을 고발하고자 한 책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이나 좌파들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적절한 비판인 동시에, 교육에서 문화를 다루어온 전통주의적 시각에 대한 문화주의적 반론의 중심 생각을 보여준다. 교사들이 스스로를 계몽적인 진리의 담지자로 여기고 학생들이 갖는 문화적 판단력을 평가절하하는 것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오만함을 표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교사와 학생 간의 전통적인 권력 관계를 해체하는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역사의 진보란 과연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확언을 할 수 없다면, 어떤 특정한 가치를 미리 규정하는 어떤 지식도 보편타당하고 안전한 것으로 보장받을 수 없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역시 지배적인 문화의 어떤 이데올로기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가 미혹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사람들이 처한 현실, 그들의 상식, 그들의 자기 정체감을 교사가 단순히 받아들이고 찬양해야 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지점들이야말로 문화적 갈등이 벌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해야할 일은 복수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개개인들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벌이는 자기 안의 다양한 정체성들 간의 내적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 대화는 개인 안에 들어와 있는 타자들과의 대화로, 매우 갈등적인 것이다. 그로스버그가 제안하는 바, ‘접합과 위태로움을 본질로 하는 교육(pedagogy of articulation and risk)’에서는 시간을 뛰어넘는 적절한 지식이나 언어, 혹은 읽기 기술이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이것은 이것은 문화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이론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알기 위해 다른 영역들, 담론들, 실천들을 연결짓고, 혹은 선을 긋고, 또 접합시키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상황맥락적 실천이다. 이러한 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세계를 새로운 방식들로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이제껏 생각해보지 않은 방식들로 다시 접합시킬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교육이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내 안의 타자를 인식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이론을 학교 수업에서의 실천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런던 시내의 학교에서 수행 연구(action research)를 실시한 Buckingham과 Sefton-Green은 대중문화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변증법적이고 대화적인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계속해서, 대중문화의 교육이 ‘행위와 반성, 이론과 실천, 언어 사용과 언어 연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동’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학습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문화 텍스트들에 대한 말하기, 쓰기, 시뮬레이션 활동, 그밖의 실천 행위 등, 다양한 경험과 언어 양식들 간의 상호작용과 전이를 통해서이다. 학생들이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하고, 다시 구성하고 하고, 거기에 대해 문제제기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반성과 자기 평가 속에 학습 과정의 중요한 국면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듯이, 대중문화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문화적 자본을 갖도록하는 것, 다시 말해 그들에게 ‘해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말을 사용하여 문화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대신에 우리는 언어와 문화에 대한 보다 폭넓은 문해력을 학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점점더 증대하는 기술공학적이고 미디어 지향적인 사회를 대비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범위와 방법이다.
여기서 다시 그로스버그의 사고가 도움이 된다. 교사가 교실 내의 지식 생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통념에 반대하면서, 그는 교사와 학생들 간의 대화, 또 학생들 간의 대화를 통한 지식 생산을 주장한다. 이러한 대화는 교사가 학생들을 교육 대상으로가 아닌 교육의 동등한 동반자로 볼 때 가능해진다. 앞서도 말했듯이 미래의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문화가 의존하고 있는 기술공학의 발전 속도와 방향에 대해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기술 및 문화의 변화와 발전이 또 어떤 문화적 차이를 낳고 우리의 해석을 기다릴지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적 교육은 단지 현재의 문화적 차이와 갈등의 해소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함께 미래를 준비해갈 수 있는 방법이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작은 실천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5. 문화교육과 문학교육의 관계
문화 연구의 시작은 전통적인 문학교육이 특정 계층의 문화적 가치를 옹호하고 다른 문화적 가치를 배제함으로써 갖는 일종의 권력 효과에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만큼 전통적인 문학적 가치를 옹호하는 순수문학 위주의 문학교육과 대중문화의 가치를 옹호하는 문화교육은 갈등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학교육이 문화교육적 문제제기를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중등학교 문학교육에서는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등등의 작품을 가르치기만 할 뿐, 학생들이 즐겨 읽는 원태연 등의 연애시류는 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인지, 또 이광수, 염상섭 등의 소설은 가르치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김한길의 ꡔ여자의 남자ꡕ 같은 소설은 가르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문학성이 낮거나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이 반복될 뿐이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문학교육이 학교 바깥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상황에 대비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다는 데 있다. 학생들이 단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문학 공부를 하고, 문학 과목에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일부 문학도들을 위한 과목으로 치부해 버리게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지금까지의 문학교육의 대상이었던 순수문학 교육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대중문화와의 관계 설정을 문제삼으려는 것이다.
한편 문화교육은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상정되어 왔던 수용자, 독자의 능동성 문제가 문학 수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학습자 중심의 교육은 이론적으로나 이념적으로만 천명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문학 수업에 적용되어야 한다. 문학교육과 문화교육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론적, 실천적으로 논의해야 할 여러 쟁점을 안고 있지만, 문화교육이라는 문제 설정은 문학교육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있어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문화교육의 연구성과를 문학교육에 수용하는 일이 보다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정동찬, 「8종 문학교과서 점검 및 분석」, <함께 여는 국어교육> 제 14호, 1992.
정현선, 「문학교육이라는 문제설정」, <선청어문> 제 23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1995.
정현선,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적 문식성 교육에 대한 고찰」, <선청어문> 제 24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1996.
최미숙, 「키치와 문학교육」, <선청어문> 제 23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1995.
David Buckingham & Julian Sefton-Green, Cultural Studies Goes To School: Reading and Teaching Popular Media, Taylor & Francis, 1994.
Graeam Turner, British Cultural Studies: An Introduction(2nd edition), Routledge, 1996
John Fiske & John Hartely, Reading Television, Methuen, 1978.
John Storey, 박모 옮김, ꡔ문화연구와 문화이론ꡕ, 현실문화연구, 1994.
Lawrence Grossberg, “Introduction: Bringin' It All Back Home-Pedagogy and Cultural Studies”, ed. by Henry A. Giroux & Peter McLaren, Between Borders: Pedagogy and the Politics of Cultural Studies, Routledge, 1994.
Linda K. Christian Smith, “Constituting and Reconstituting Desire: Fiction, Fantasy, and Feminity”, ed. by Linda K. Christian-Smith, Texts of Desire: Essays on Fiction, Feminity and Schooling, The Falmer Press, 1993.
Patrick Brantlinger, Crusoe's Footprints: Cultural Studies in Britain and America, Routledge, 1990.
Paul Willis, Common Culture, Open Univrsity Press, 1990.
Stuart Hall, “Encoding/decoding”, Culture, Media, Language: Working Papers in Cultural Studies 1972-79, Hutchinson, 198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