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교임고]문학 작품 이해의 방법

작성자01사대홈(펌)|작성시간04.01.01|조회수1,426 목록 댓글 0

문학 작품 이해의 방법
▶학습 목표
·각 방법의 구체적 내용을 이해한다.
·각 방법을 실제로 작품에 적용하는 연습을 한다.
·각 방법의 학습을 토대로 작품의 총제적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1)표현론적(表現論的)방법
가령 「무정」의 작가가 누군지를 모른다고 해 보자. 그럴 때 주인공 이형식이 고아로 등장하게 된 필연적인 이 유에 대해서 독자나 연구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우리는 「무정」의 작가가 이광수이고, 이광수 자신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주인공 이형식이 고아로 설정(設定)된 이유와, 작가와 작중 인물의 유사성(類似性)을 감지(感知)하게 된다. 「홍길동전」의 경우, 허균의 사상을 알고 작품을 읽으면, 적서 차별등 당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진 서자(庶子)인 홍길동이 의적 활동을 전개하는 내용에 대한 올바른 감상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처럼 작품을 작가의 체험·사상·감정등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해하는 방법을 ‘표현론적 방법’이라 한다.
따라서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의도를 알 필요가 있다. 또 작품 속에는 작가가 분명히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외에도, 무의식적으로 작가의 체험·감정 등에 배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명백한 창작 의도의 탐구 외에도, 작가의 성장 배경·학력·생활 환경·취미·
주로 영향받은 사상·교우 관계·종교 등 가능한 한 작가의 모든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법은 대체로 ‘역사·전기적 방법’에 가깝다. 또 작가의 특수한 심리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이해하는 경우, ‘심리주의 적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작품을 창작한 작가 자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창작의 비밀을 알아 내는 것을 ‘작가론(作家論)’이라고 하기도 한다.
작가가 애당초 전달하고자 한 것을 의도라고 한다면, 그것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작품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표현론적 방법은 이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한다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지만 작품 창작 과정이 기계적 과정이 아닌한 작가의 의도와, 그 결과인 작품이 꼭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처음에 의도한 대로만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려한다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것을 ‘의도(意圖)의 오류’라고 한다.
표현론적 방법의 실제
이광수의 「무정」은 우리 현대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물론 작가 자신에게도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작품을 표현론적 방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이 작품이 순전한 허구가 아니고 작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投影)해 놓은 것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해 본다.
말하자면 이광수의 26년 간의 생애가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 속에 표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 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작품의 정확한 이해에 직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이다.
이광수는 「무정」은 모두 허구이며, 등장 인물 중 신우선만이 당시 매일 신보사 기자 심천품(沈天風, 작가 심훈의 형)을 모델로 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무정」의 주요 등장 인물들이 작가인 이광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사람들을 모델로 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아닌 부차적 인물의 실제 모델이 있다고 했으니, 작가가 힘들여 그려 내고자 한 주인공이나 그와 비슷한 위치의 주요 인물들도 모델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한 다음 단계로 작품 속의 주요 등장 인물을 주목해 본다. 「무정」의 첫 사건은 경성 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이 김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 개인 교수를 하고 하숙집에 돌아와서는 옛날 장래를 약속한 바 있는 박영채의 방문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권 64쪽에 「무정」의 줄거리가 소개 되어 있으니 참고해 보자.)
작품 속의 시제(時制)를 중심으로 따져 보면 이형식과 박영채 사이에는 과거에 어떤 사건이 이미 있었다고 할 수 있고, 현재로는 이형식, 박영채, 김선형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전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무정」에 이광수 개인의 전기적(傳奇的) 사실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가 작가로 등장하기 전의 인생 경험이 투영되었을 것이고,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의 과거사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이형식의 작품 속에서의 과거사를 더듬어 보기로 하자.
작품에서 이형식을 고아로 자라나 박응진 진사에게 거두어져 그 집에서 배우며, 그 딸 영채와 약혼까지 했다.
그 뒤 박진사가 투옥되고 영채는 아버지를 구하려고 기생이 되었으며, 이형식은 그 집을 나와 일본 유학 길에 올랐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이광수의 전기(傳記)에서 확인해 보아야 한다. 첫째, 이형식이 고아(孤兒)로 설정되었는데, 이것이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일치하거나 상당한 관련이 있는가? 둘째, 이형식과 박진사 및 박영채의 관계에 대응하는 사건이 이광수에게도 있었는가?
이러한 사실의 확인을 위해서는 작가 이광수 개인사(個人史)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아야 한다. 이광수는 「그의 자서전」, 「인새의 향기」등 자서전(自敍傳)을 남기고 있다. 그로므로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러한 자서전을 그의 전기적 사실확인의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즉 이자서전들을 중심으로 이광수의 소년기를 재구성해 보아 그것을 작품 속의 이형식의 과거사와 대조해 보는 방법으로 표현론적 방법을 적용해 보는 것이다.
전기적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이광수의 소년기는 다음과 같다. 이광수는 1892년 2월 28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리에서 태어났다. 그 때 마흔이 넘은 아버지 이종원(李種元)은 무위도식(無爲徒食)하고 있었고, 겨우 이십대 초반의 어머니 혼자서 집안을 고되게 꾸려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광수가 11세 되던 해인 1902년에 당시 유행하던 콜레라로 인해 부모가 잇달아 죽고 만다. 두 명의 누이 동생과도 헤어져 이광수는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녔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광수의 고아 체험은 작품 속 주인공 이형식이 고아로 자란 것과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로 돌아가 보자. 고아로 떠돌던 이광수에게 처음 찾아온 인생의 전기(轉機)는 박찬명이라는 인물과의 만남이었다. 13세 되던 때 이광수는 동학의 간부 박찬명 대령을 만나 그의 비서 겸 심부름꾼이 되었다. 자서전에서 이광수는 박찬명 대령에게는 딸 예옥이 있었고, 그녀가 자기를 사랑했으나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박찬명 대령은 일본 헌병대에 끌려갔다가 유배(流配)되어서는 죽고, 예옥은 헌병 보조원에게 시집 갔다가 버림받아 결국 그 어머니와 함께 비구니가 되어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은 작품에서 고아 이형식이 박응진 진사에게 거두어져 배움에 눈을 뜨고, 그 딸 영채와 약혼했으며, 서로 잊지 못했다는 내용과 상당히 부합한다.
이러한 사실의 확인에서 우리는 좀더 나아가 볼 수 있다.
즉 작품 속의 박영채를 이광수가 자신이 소년기에 좋아했던 소녀들을 모델로 그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서전에 따르면 이광수는 재당숙(再堂叔)집에 자주 갔는데, 그 집의 누이들을 그는 매우 좋다했다고 한다. 그 누이들은 원통하게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내용의 서사 민요를 부르곤 했는데, 어린 이광수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 베껴 놓고 읽기도 했다. 또 그 누이들을 통해 「사씨남정기」,「창선감의록」,「구운몽」등의 소설을 읽기도 했다. 「무정」에서 영채가 어릴 때 「소학」,「열녀전」등을 그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전기적 사실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재당숙 집의 누이들이 영채의 또 다른 모델일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영채의 또 다른 모델로는 이광수의 외가에서 만난 실단이란 처녀를 들 수 있다. 15세의 동경 유학생이던 춘원은 고향에 돌아와 외가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외가쪽 먼 일가인 목소리 곱고 눈이 반짝이는 실단을 만난다. 그는 실단을 잊지 못해 자서전 곳곳에서 실단을 그리고 있고, 동경의 차디찬 하숙방에서 혼자 그녀를 생각하는 것이 일면 서러우면서도, 일면 즐거웠다고 회고하였다. 이성에 눈을 뜨게 되었던 시절에 만났던 실단의 모습은 그러므로 영채에게 어느 정도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박영채의 모델은 (1)박찬명 대령의 딸 예옥, (2)삼종매(三從妹)들, (3)실단 등의 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춘원의 자서전이나 다른 전기적 자료들을 조사해 보면 작품과 관련된 좀더 많은 사실들을 확인하게 된다.
예컨대 춘원은 박찬명 대령에게 구제된 뒤 배움의 길이 열려 손병희의 알선으로 동경 유학을 했고, 귀국한 뒤 오산 학교에서 교편을 4년 동안 잡았다. 이것은 주인공 이형식이 일본 유학을 하고 난 뒤 경성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무정」에 그려진 이형식의 과거사는 이광수 자신의 전기적 사실이 상당히 많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무정」의 이형식과 박영채의 사연을 합하면 이광수의 소년기가 오롯이 재구성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광수가 「무정」이라는 명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자전적 사실들을 거의 꾸밈없이 드러낸다는 생각에서 집필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정」을 이해하기 위해 취한 표현론적 방법의 적용 결과에 입각하여 결론을 내린다면 「무정」은 쓴 것이 아니라 '씌어진 것'이며 , 씌어진 것이 아니라 '말해진 것'이며, 말해진 것이 아니라 '흘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무정」은 무엇보다도 작가에게 진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에게 사심 없는 진실이기에 독자도 감동시킬 수 있는 진실일 수 있었다. 「무정」이 당시 독자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의 하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상에서 표현론적 방법을 구체적 작품에 적용하는 실제 과정을 간략히 제시해 보았다. 작품과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꼼꼼히 대조해보고 그 대응 관계를 타당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2)반영론적(反映論的) 방법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시는 자연(自然)의 모방"이라 했다. 또 "연극(演劇)은 인생을 거울에 비추어 보는 일"이라고 한 이도 있으며 비교적 현대에 발달한 소설에서는 더욱 강조되어 문학과 인생을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그만큼 모든 문학 작품은 자연과 인생을 모방하고 반영하여 현실의 여러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대개의 문학 작품은 그 내용과 관련이 있는 대상 (對象)이 있게 마련이다. 작가는 어떤 특징 대상에서 소재(素材)를 찾거나 그 대상을 모방함으로써 그 속에 자신의 사상·감정을 담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예컨대 조지훈의 시「승무(僧舞)」는 실제의 춤인 승무를 대상으로 하여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우리 일상의 여러 사회 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작품이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많다. 꽃·나무 등 자연의 사물도 무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 작품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을 둘러싼 세계 전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작품과 특정 대상의 관계를 일반화하면 작품과 세계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과 세계의 관계를 주목하며, 작품은 세계를 반영하거나 모방했다고 보는 것을 '반영론(反映論)', 또는 '모방론(模倣論)'이라고 한다. 모방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역사는 매우 길다. 이 모방론이 근대(近代)에 와서 반영론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실재(實在)한 대상을 모방한 것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진실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예컨대, 누구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이야기 내용이 그럴 법하다고 여기지, 허무 맹랑한 이야기로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 첨지가 실제로 현실에 살았던 누구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 시대에 그런 인물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누구나 동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다루지만, 시는 있을 수 있는 일, 또는 있음 직한 일을 그린다."고 했다. 있음 직한 것을 '개연성(蓋然性)'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보편성을 띤다는 것이다. 이 개연성 때문에 독자들이 진실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개연성도 구체적 사실의 뒷받침이 없으면 성립될 수가 없다.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도 실제로 1920년대 우리 사회에 그와 비슷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독자들에게 있음 직한 인물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작품의 개연성, 또는 진실성은 구체적 세계와의 관계에서 증명된다. 따라서 반영론의 방법을 취할 때, 문학 연구는 작품 자체에 대한 연구와 함께, 작품이 대상으로 삼은 그 세계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야만 한다. 「운수 좋은 날」의 경우 작품 자체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함께, 1920년대에 김 첨지와 비슷한 인물들의 생활을 알아보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1920년대의 시대적 성격까지도 연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1920년대의 실제현실과 「운수 좋은 날」속에 반영된 현실을 비교 검토하여 잘 되고 잘못되고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반영론적 방법은 문학이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문학 작품의 이해가 구체적인 삶의 현실이나 시대, 나아가서 역사에 대한 이헤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意義)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반영론적 방법을 기계적으로 적용시키면 작품을 작품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실들의 조립체로 만들 우려가 있다. 작품 속의 사건과 현실에서의 실제사실을 일 대 일로 대응시키는 방법 등이 그것으로, 이와 같은 것을 '기계적 반영론', 또는 '속류(俗流)사회학적 방법'이라고 한다.
반영론적 방법의 실제
「흥부전」은 우리 고전 소설 중에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을 반영론적 방법으로 이해한다면 그 본질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내용을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까?
「흥부전」하면 누구나 두 대조적인 등장 인물에 관심을 가진다. 착하지만 가난한 흥부와 악하지만 부자인 놀부가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두 인물을 각각 전형적(典型的)인물로 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두 인물이 왜 전형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우리는 반영론적 방법이 작품의 어떤 주요한 내용을 작품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의 현실에서 확인하는 방법을 이용한다고 배웠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놀부와 흥부가 당시 실제로 살았던 인물인지를 확인해 보자. 작품에서 놀부는 그 부모가 노비(奴婢)였는데, 도망하였다고 했고, 놀부는 자식을 그 고을의 양반 집안과 혼인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민이 부자가 되고, 또 신분까지 높아지는 경우가 있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우선 손쉬운 방법은 「국사(國史)」책에서 이 점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흥부전」은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국사」책을 보면 조선 후기 사회는 신분 체제가 동요했고, 아울러 서민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분의 동요한 천민이 평민이 되거나 평민이 양반이 되며, 또는 그 반대로 양반이 몰락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노비의 경우 주인집에서 몰래 도망하여 먼 곳으로 가서는 신분을 숨기고 열심히 생활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신분으로 진출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놀부 집안의 신분 상승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흥부는 놀부에게 쫓겨난 뒤 온갖 품팔이를 하며 겨우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촌의 빈민인 셈이다. 품팔이를 하며 겨우 살아가던 사람들이 역시 조선 후기 농촌 사회에 있었던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품팔이를 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농사를 지을 땅이 없다는 뜻이다. 역시「국사」책을 참고하면 조선 후기에는 토지를 많이 소유하거나 빌려서 대규모의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한편, 토지를 잃고 소작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백성들이 점차 많이 생겨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들을 대부분 농촌이나 도시의 임노동자(품팔이꾼)가 되었으며, 더러는 유랑민이 되어 떠돌기도 했고, 더러는 광산 노동자가 되기도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가 가족을 이끌고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농촌으로 돌아와 날품팔이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당신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인물의 이러한 바탕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두 인물의 갈등을 좀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즉 두 인물의 갈등은 단순히 착한 인물과 악한 인물의 갈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인물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즉 흥부같은 품팔이꾼들의 등장에는 놀부 같은 새로운 부농(富農)들의 출현이 배경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놀부가 부모가 물려준 전답을 다 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았다는 것은 당시 새로 등장한 부농들이 토지를 많이 확보하게 되자 빈민들은 더욱 농사지을 땅을 상실하게 되었던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국사」과목에서 배우는 내용인 조선 후기의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과 깊은 관계가 있을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놀부 심술 묘사 부분을 보면 그는 고리 대금업도 하고 있다. 또 자기의 박에서 나온 인물들에게 돈을 바쳐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말하자면 돈이 최고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길주, 명천, 회령, 종성 등지의 고운 베, 한산, 장성 등지의 모시 등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데, 이들은 농촌에서 생산한 상품들이었다. 농촌의 가내 수공업 생산물들이 화폐로 교환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교환 수단인 화폐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회가 공동 사회 (共同社會)에서 이익 사회(利益社會)로 전환되어 가고 있음을 뜻한다.
이렇게 본다면 「흥부전」은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전환해 가던 조선 후기 농촌 사회의 변화 양상을 놀부와 흥부라는 서로 다른 처지의 인물 사이의 갈등으로 반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은 각각 조선 후기 농촌에 새롭게 등장한 부농과 빈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3)효용론적(效用論的)방법
이번에는 작품을 독자와의 관계에서 살펴보자. 작가가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어떤 독자가 그 작품을 읽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무도 읽지 못하는 비밀스런 창작이라 할지라도 가상(假想)의 독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작품이란 작가와 독자가 나누는 대화의 일종인 것이다. 독자가 작품을 읽는 이유는 우선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고, 여기서 삶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한다. 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비극을 보고 거기서 느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통해 관객은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하는 정서적 정화(淨化)를 얻을 수가 있다. 이처럼 독자는 작품으로부터 구체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독자에게 미적 쾌감·교훈·감동 등과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아울러 작품의 가치를 그 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어느 만큼 주었느냐에 따라 평가하려는 방법이 생겨날 수 있다. 이것이 곧 효용론적방법이다. 이 방법은 역사가 오랜 것이다. 서양에서의 대표적인 예가 문학 '당의정설(糖衣錠設)'이다. 즉, 쓴 약에 설탕을 바르듯, 교훈이나 진리를 독자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달콤한 정서로 감싼 것이 문학이라는 주장이다. 동양에서도 성리학에서의 문학관은 효용론적 입장이 강하다. 즉, 문학을 도(道)와 일치시켜 이해했으며, 인간의 마음을 올바르게 수양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인식해 왔다.
그런데 인생의 진리와 같은 교훈적 내용을 단지 문학적 형식 속에 담기만 해서 작품이 성립되고,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준이 저급한 작품이면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게 되고, 교훈적 내용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은 생경한 관념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미적인 교훈으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효용론적 방법에도 한계는 있다.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것이 옳은가 나쁜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최고의 지성이나 정신과 같은 객관적이고 타당한 기분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기분도 없이 심리적 효과에서만 비평의 기준을 이끌어 내면 실제 작품의 의미와 그것이 낳은 결과를 혼동하게 된다. 결국 개개인의 인상에 머무르고 마는 인상주의(印象主義)나, 합치된 결론에 도달할수 없는 상대주의(相對主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감정(感情)의 오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는 평범한 독자들에게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독후감(讀後感)·감상문(感想文)은 모두 효용론의 소박한 적용이다. "나는 이 부분이 좋더라.","나는 어느 인물이 마음에 든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독후감이기 때문이다. 왜 좋으며, 왜 마음에 드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작품 자체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해야 하며, 나아가서 그것이 독자에게 불러일으키는 감흥(感興)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한다.
효용론적 방법의 실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춘향전」을 예로 들어 이 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자. 물론, 독자가 작품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어떠한지를 객관화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작품의 감상과 이해란 매우 내밀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인가?
「춘향전」은 원래 판소리로 불렸으며, 지금도 「춘향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런데 판소리 「춘향가」의 공연 현장에 나가 보면, 창자(唱者)가 고수(鼓手)의 북 장단에 맞추어 창(唱)을 해 나가는 사이사이에 청중들이 박수를 치거나 '얼씨구','잘한다','그렇지' 등등의 추임새를 넣어 가며 판소리를 감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청중들의 이러한 반응은 창자의 뛰어난 음악적 기량에 대한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창자에 의해 실감나게 표현된 작품 내용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판소리 「춘향가」공연에서 명창(名唱)에 의해 실감나게 표현된 내용에 대해 청중들이 공감한다는 것은소설「춘향전」을 읽는 데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원래「춘향전」은 판소리「춘향가」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일차적으로 흥미로운 그 내용을 거듭 읽어 보려는 욕구에서 였다. 그렇다면 주의 깊고, 진지한 독자가 소설「춘향전」을 읽는 과정에는 판소리「춘향가」를 들을 때의 청중들의 공감과 같은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춘향전」을 읽으면서 갖게 되는 정서적 공감과 새로운 인식에 대해 간단히 점검해 보기로 한다. 예컨대 춘향과 이 도령이 이별하는 부분을 보자. 두 사람은 밤새 눈물을 흘리며 한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춘향은 오리정까지 나와 이 도령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통곡을 한다. 점점 멀어져 가는 이 도령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울고 있는 춘향의 모습은 독자에게 강렬한 동정심과 정서적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바로 이 일체감은 두 사람의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대로 이어진다.
춘향에 대한 독자의 정서적 일체감은 그녀가 변학도에게 매를 맞으며 항거하는 부분과 옥에 갇혀 탄식하는 부분에 이르면 더욱 강화된다. 그런데 이 정서적 일체감 속에서 독자는 두 가지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하나는 춘향이 고난을 겪는 원인이 신분제의 모순과 부당한 봉건적 억압에 있다는 것이다. 춘향이 겪는 이러한 고난에서 기생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속박하고, 변학도라는 탐관 오리가 폭압적인 방법으로 그녀를 좌절시키려 하고 있음을 독자들은 분명히 보게 된다. 둘째, 이러한 상황에 맞서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는 춘향의 모습에서 독자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투철한 한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에 속해 있는 인물이지만 변학도와 맞서 싸우는 춘향의 모습은 분명 새로운 인간인 셈이다.
작품 속에서 남원 고을 모든 사람들의 춘향을 동정하고 지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작중 인물들 스스로 춘향의 새로운 모습에 공감하고 있음을 말하고 그것은 그대로 독자들의 공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학도의 생일 잔치가 암행 어사 출도로 아수라장이 되는 것은 바로 춘향의 의지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독자의 기대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춘향전」은 춘향을 주목할 때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의지에 공감하게 하고, 나아가 현실의 모순과 그것에 과감히 맞서는 춘향의 새로운 면모를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독자가 이러한 공감과 인식을 하게 된 것은 바로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신분 제도의 모순과 탐관 오리의 부당한 억압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춘향을 그러한 모순과 억압에 과감히 맞선 새로운 인물로 그려 냈기 때문이다.
(4) 절대주의적(絶對主義的)방법
작품을 작가·세계·독자와의 관계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은 작품을 외부 세계와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는 태도이다. 즉,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작품 자체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오는 방법이다. 그러나 작품 외부에서 가져온 정보가 작품 자체의 의미와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앞에서 본 의도의 오류, 기계적 반영론, 감정의 오류 등의 한계점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러므로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기준과 정보를 외부에서가 아니라 작품 내부에서 찾자는 방법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은 작품 자체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주의적 방법'이라고 한다. 이 방법의 대표적인 것이 분석주의 비평이다. '신비평(new criticism)'으로 대표되는 이 방법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작품을 작가나 시대, 환경과 독립된 자족적(自足的)인 세계로 본다. 작품은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외부 세계와 아무 연결도 갖지 않고, 그 자체의 원리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달리 말하면 작품 속에 그것을 이해·평가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다 갖추어져있다는 입장이다. 표현론·반영론의 방법이 작가와 세계를 매우 중시했음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난다. 둘째, 작품의 언어를 중시한다. 문학의 언어, 특히 시의 언어는 과학의 언어와는 그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의 언어가 지시적(指示的)의미만 갖는다면, 시의 언어는 함축적(含蓄的)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 방법은 이미지·비유·상징 등을 작품 이해의 중요한 열쇠로 삼는다. 셋째, 작품을 유기적(有機的)존재로 본다. 그래서 부분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있는 작품 구조를 분석해 내는 데 주력한다. 가령, 시에서 시어(詩語)와 시어 사이, 행과 행, 연과 전체 작품의 상관관계, 운율과 의미의 관계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특히 시의 분석과 이해에 큰 공헌을 했다. 시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의 비밀이 이 방법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특히 장편 소설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장편 소설은 무엇보다 배경으로 하고 있는 현실세계의 구체적 일상 내지는 풍속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장편 소설의 의미를 온전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또 작품을 외부 세계와 차단시켜 그 자체로만 이해한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시어의 경우 시에 사용됨으로써 새로운 함축적 의미를 갖게 되지만 그 함축적 의미는 독자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독자는 그 시어가 시어로 사용되기 전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여 시 전체의 문맥에서 그 시어의 새로운 의미를 파악해 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에 사용된 어떤 언어이든 그 작품에 사용되기 전의 본래의 의미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 방법은 치밀한 작품 읽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절대주의적 방법의 실제
가령 절대주의적 방법을 다음의 서정주의 「추천사」에 적용한다고 하자.

추 천 사
-춘향의 말 일(壹)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절대주의적 방법은 작품을 외부 세계와 연결시키지 않고 이해한다고 했으니 시인인 서정주가 이 작품을 쓸 때의
상황이나 의도 등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작품의 부제에서 '춘향의 말'이라고 했고, 또 향단이가 미는 그네를 춘향이가 타는 것이「춘향전」의 내용과 같지만 「춘향전」의 맥락에서 이 작품을 보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두가지를 배제하고 위에 주어진 시 자체만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절대주의적 방법에 의한 「추천사」이해로서 다음 예시문을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여기 나오는 그네가 단순히 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춘향이 자기 자신의 괴로움과 운명을 벗어나려는 수단으로서의 그네임을 알게 된다. 작품 전체에서 네 번이나 되풀이되고 있는 '밀어라' 또는 '밀어 올려 다오'라는 간절한 부탁은 바로 그 괴로움의 정도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작품에 있어서의 춘향의 괴로움은 어떤 괴로움일까?
작품 자체가 그 괴로움의 내용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춘향의 사랑에 관련된 괴로움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특히 이 작품의 둘째 및 셋째 부분에 암시되어 있다. 둘째 부분에서, 춘향이 떠나고 싶어하는 이 지상의 세계가 수양버들, 풀꽃데미,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곳으로 그려짐으로써 춘향에게는 그것이 여전히 애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셋째 부분에서,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하고 말함으로써 지상의 세계의 아름다움이 하늘의 공허함과 대비되어 있는 것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춘향이 자기 가슴을 '울렁이는 가슴'이라고 말하는 것도 자기가 사랑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두고 특히 주목할 점은 그 형태이다. 시 작품의 형태란 주로 운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형태란 대부분의 경우 운율의 악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경우, 처음 4행, 특히 둘째 행에서 넷째 행까지가 짧은 행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 부분의 템포를 느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운율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말뜻이나 이미지나 어조(語調)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짐으로써 작품의 의미에 이바지한다. 이 부분의 경우, 먼 바다로 배를 내어 미는 힘차고 느린 동작의 이미지가 느리고도 힘찬 운율의 도움을 받아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부분의 '머언 바다로/배를 내어 밀듯이'라는 직유(直喩)는 이 경우에 매우 적절하다. 그것은 그 직유가 바다와 하늘, 배와 그네, 배를 내어 미는 동작과 그네를 미는 동작 사이의 완전한 대응 관계를 성립시킴으로써 춘향이 사랑의 번민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지상을 떠나려는 것을 적절하게 비유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부분에 나타나 있거나 함축되어 있는 바다와 하늘은 이 작품의 구조를 지탱하면서, 지상의 질서와 하늘의 질서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비극적인 상황을 다룬 이 작품의 주제를 구조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춘향이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한편 애착을 느끼는 이 지상의 세계를 그리는 이 작품의 둘째 부분에서는, 현저하게 행이 길어짐으로써 템포가 숨차게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하늘로 밀어 올려 달라고 세 번 되풀이하여 외치는 셋째 부분에서는 운율이 자연히 격렬해진다. 그러나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하늘을 갈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의 한계를 깨닫는 넷째 부분에서는 운율도 잠시 잔잔해진다. 그러나 춘향은 끝내 괴로움에 대한 해결을 얻지 못하고 몸부림친다. 이 작품의 끝 부분이 바람과 파도의 비유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즉, 바람은 파도를 밀어 올리지만 파도는 번번히 되돌아오고 만다. 그러나 바람은 쉬지 않고 그 허무한 시도를 거듭한다. 춘향도 이와 같은 비극적인 몸부림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김종길(金宗吉)의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앞에서 절대주의적 방법이 작품을 외부 세계와 분리시킨 다음 작품의 언어와 구조를 주목한다고 했다. 이 예시문은 우선 시인 서정주는 물론 「춘향전」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즉 작품을 외부 세계와 독립시킨 것이다. 다음, 서정적 자아로서 춘향의 상황, 즉 춘향이 사랑의 괴로움을 겪고 있음을 작품 속의 시어들에서 파악해 내고 있다. '울렁이는 가슴'이 그 단서이다. 즉 작품의 시어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의 운율이 시어의 의미, 이미지, 어조와 맺고 있는 유기적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춘향이 그네를 타고 있는 것을 운율의 템포가 시의 연마다 달라지는 것과 거듭 사용되고 있는 직유와 결부시켜 그 주제를 분석해 내었다. 즉 작품의 유기적 구조를 주목한 것이다.
이 예시문에서 우리는 절대주의적 방법이 작품 자체의 치밀한 읽기와 분석 및 유기적 관계의 재구성을 통해 작품의 이해와 해석을 도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 종합주의적(綜合主義的) 방법
앞에서 우리는 문학 작품을 4가지 방법으로 접근해 보았다.
어느 방법이나 그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며 성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각 방법마다 그 나름의 한계점도 있다. 의도의 오류나 감정의 오류 등이 그것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궁극적 목적은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총체적(總體的)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문학 작품은 단 하나의 의미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고전일수록 그 의미가 포괄적이다. 시대가 변해도 고전들의 빛은 바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빛을 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을 어떤 하나의 관점만 고집하여 바라본다면, 그 작품의 한 면만을 보게 되거나, 부분적 의미를 전체적 의미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금강산의 진면목은 어느 계절에 있는 것일까? 가을의 금강산(楓嶽山) 만을 본 사람과 겨울의 금강산(皆骨山) 만을 본 사람은 각각 자신의 본 모습이 진면목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먼저 각 계절마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두루 이야기한 다음에, 금강산의 진면목은 무엇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문학 작품의 이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가능한 한 다각도로 작품을 보는 것이 작품의 의미를 올바르게, 또 온전하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작가 쪽도 고려하고, 작품이 쓰인 시대도 참고하면서, 작품 자첵를 주도 면밀(周到綿密) 하게 분석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소망스러운 방법이 된다. 그래야만 작품에 대한 평가도 올바를 수가 있다. 한쪽만 바라보고 그것에서 나온 의미만을 가지고 작품을 평가한다면, 다른 측면이 갖고 있는 긍정적 의미는 가리워지거나 부당하게 평가 절하될 가능성이 있기 땨문이다. 따라서 우선 작가 쪽에서 그 작품과 관련된 유용한 정보가 있다면 그것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표현론적 방법을 쓸 수 있다. 다음 그 작품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현실에서 쓸 만한 자료가 있으면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즉 반영론적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또 그 작품이 독자에게 특별히 부러일으키는 정서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주목해야 한다. 즉 효용론적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작품에 쓰인 언어의 작품 내적인 의미와 작품의 다양한 요소들의 유기적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즉 절대주의적 방법의 도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의 도입은 단순히 각 방법의 장점을 절충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각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서 작품의 총체적 의미를 포착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절충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의 해석을 두고 각 방법 사이에 모순이 발생할 수도 있다. 종합주의적 방법은 이러한 모순을 넘어설 때 참다운 의미를 갖는다. 그 모순의 극복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각 방법의 적용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의미 해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쓸때는 매우 치밀한 분석 정신과 탐구 정신이 요청된다.

종합주의적 방법의 실제
예컨대 이육사의 「광야」를 종합주의적 방법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먼저 작품을 확인해 보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먼저 표현론적 방법을 적용한다면 이육사의 저기적 사실을 확니하고, 그것을 작품 해석에 이용해야 한다. 이육사가 일제암흑기에 일제에 저항하다가 북경 감옥에서 옥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자. 다음 이 시가 창작되었을 때의상화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가 생전에 발표되지 못하고 해방된 뒤에야 『육사 시집』에 실렸음을 확인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를 일제에 대한 저항시 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저항시로 보아 작품을 이해한다고 할 때, 넷째 연의 '눈'은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식민지적 상황을, '매화 향기'는 민족 해방을 위해 싸우는 지사(志士)들의 매운 정신을, '노래의 씨'는 이 시의 서정적 자아의 희생 정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연 1, 2행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것을 '천 년 뒤에 박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로 보고, 그것을 민족의 해방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작품의 문면 그대로 두고 볼 때, 일각(一刻)이 삼추(三秋)처럼 기다려지는 민족 해방을 천 년 뒤에나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저항시로 이 작품을 이해한다고 할 때, 제4연과 제5연은 서로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저항시로 볼 수 없고, 절대주의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앞에서 말한 바 다양한 방법의 원용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순 관계이다. '천고(千古)'라는 시어의 해석을 둘러싼 대립된 견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다음의 예시문을 보자.

이 작품을 저항시로 읽지 않는다는 것은 이 작품을 작자와 시대 상황, 창작 여건에서 독립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즉 작품 속의 세계를 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넷째 연에 나오는 계절의 심상(心象)이 왜 필요한가를 설명해 낼 수가 없다. 셋째 연의 심상은 역사의 시작을 짐작하게 한다. 절대주의자들에 따른다면, 그것은 인류의 역사라고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별안간 겨울의 심상이 제시된다. 이것은 특수한 상황이지, 여전히 인류 전체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사의 맥락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분명히 나라와 겨레가 움츠러든 박해의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오는 '천고의 뒤'는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절대주의 비평의 따가운 반론에 부딪힐수 있다. 그리ㅗ 여기에 바로 역사적 정보를 수용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천고의 뒤'를 그대로 '천 년 뒤'라고 읽는다는 것은 그 시간 개념을 자연 과학의 차원으로 환치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어떤 시도 그 시간 개념을 그런 쪽으로 쓰는 예는 없다. 시의 언어에는 반드시 그 나름의 내포(內包)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 내포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광야」 전편의 어휘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작품에 쓰인 말들이 대체로 뻣뻣하다는 것, 이것이 논자들이 입을 모으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매화 향기와 같이 매우 고전적인 말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육사의 성장 배경이나 교양 속에는,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한 한학(漢學)의 그림자가 매우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경상 북도 안동 지방의 선비 집안 출신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한학에 대한 상당량의 독서와 교양을 가진 바 있다. 그렇다면 「광야」에 쓰인 말들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야 될 것들이 있을 법하다. 그리고 이 때 우리가 고려해 넣어야 할 것이 매천(梅泉) 황현(黃玹) 의 「절명시(絶命詩)」중, "가을 등잔 아래 책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 글 아는 선비 구실 참으로 어렵구료(秋燈 卷 千古 / 難作人間識字人)."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매천의 비감(悲感)에 젖은 모습은 가을 등불 아래 읽던 책을 덮어 버리는 선비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그 직접적 요인이 되고있는 것은 천고(千古)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천고가 단순히 천 년을 가리키는 데 그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그것을 민족사 자체로 보아야 한다. 그 민족사 속에는, 우리 민족의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다. 동시에 거기에는 영광과 함께 갖가지 시련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의미에서 그속에는, 우리 민족과 이 작품의 화자(話者) 자체가 습합(習合)상태에 있다. 또, 함께 비감에 젖는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글줄이나 읽는 자로 살기가 어렵고 어려운 덕이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천고'를 천 년이라고 잡아서는 말이 안 된다. 적어도 그것은 화자에게 적대의 의미를 갖는 민족사다. 그리거 여기서 유추되는 바도 명백하다. 「광야」의 '천고'도 비슷한 내포를 가진다. 그리하여 그것은 민족사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순간으로 읽어야 된다.
-김용직(金容稷)의 『현대시 원론』에서-

이 예시문은 하나의 방법이 갖고 있는 한계를 또 다른 방법으로 돌파하고. 다시 그 방법의 한계를 또 다른 방법으로 돌파하는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작품을 둘러싼 대립된 견해의 극복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즉 '천고'의 의미 해석을 단서로 삼아 제기된 절대주의 방법의 적용이 제3연에는 무리 없이 적용되나 제4연에는 여의치않다. 제4연은 절대주의 방법이 비판한 저항시론, 즉 표현론적 방법이나 반영론적 방법이 제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여전히 '천고'의 의미 해석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천고'의 해석을 둘러싸고 표현론적 방법과 반영론적 방법이 절대주의적 방법과 서로 한 차례 공방을 벌인 셈이지만 명쾌한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예시문에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돌파하고 있다. 하나는 시어(詩語)란 지시적 의미가 아닌 함축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함축적 의미가 작가의 성장 배경과 우리 문학의 전통에서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앞엣것은 절대주의적 방법에 가깝고, 뒤엣것은 표현론적 방법에 가깝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를 통합하여 '천고'의 함축적 의미를 '민족사에 적대적 의미를 가지는 시간'으로 해석해내는 방법이다. 이 점에서 각 방법은 어떻게 보면 서로 대립되기도 하나 어떤 경우에는 상보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합주의적 방법은 각 방법의 대립된 측면을 놓아둔 채 서로를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립을 단계적으로 해결하면서 보다 높은 단계로 통합해 내는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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