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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가자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09.05.18|조회수246 목록 댓글 0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2:8-17


결혼은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학벌, 재산, 성격, 외모 등이 어느 정도는 비슷한 사람끼리 사랑하고 결혼합니다. 그런데 가끔 두 사람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도 사랑하고 결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요 권력있는 집에 아들이 가난한 집에 처녀를 사랑하고 결혼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 기업의 아들이 가난한 시골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집의 딸을 사랑하여 결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를 사랑하는 것 역시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왕중에 왕 솔로몬이 포도원지기로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의 술람미와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술람미의 순진한 사랑과 솔로몬의 노력 없이는 가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을 어느 만큼이나 사랑하였습니까?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라”(5), 병이 날 정도로 솔로몬을 사랑하였습니다.


이렇게 병이 날 정도로 사랑하는 관계이지만 사랑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막는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술람미를 사랑하였습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구속사적인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와 더불어 사는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는 그 큰 사랑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여러분)를 사랑하는 데는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대 기업의 딸이 사형수를 사랑한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형수를 사랑하기까지는 부모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주변에 오해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와 오해를 이기고 사형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어려운 사랑이 예수님과 우리와의 사랑입니다.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여러 가지 장애물과 방해물을 극복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님을 솔로몬을 통해서 가르쳐줍니다.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8)라는 이 말씀은 솔로몬이 가로 막는 장애물을 넘고 술람미를 찾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산’과 ‘작은 산’은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을 막는 장애물이요 방해물들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왕궁에 살았습니다. 술람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맑은 물이 흐르고 풍성한 초원에 한가하게 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술람미는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다(14)고 하였습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위 틈 낭떨어지 은밀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술람미가 당하는 어려움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술람미는 오라비들이 포도원지기로 삼았으며 포도원에는 여우들이 해치고 작은 여우들이 뛰놀아 술람미를 심히 괴롭혔던 것입니다. 마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찔리고 찢겨져도 양 떼를 먹이고 있었습니다(16). 이러한 술람미를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술람미를 솔로몬이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지금도 성도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면서 맡겨준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예수님은 더욱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맡은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술람미를 만나기 위해 솔로몬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야 했습니다. ‘산’이란 길이 없는 험난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은밀한 곳 바위 틈 낭떠러지까지 가야 술람미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애물과 방해물도 솔로몬의 사랑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솔로몬은 산에서는 달리고 작은 산은 빨리 넘었습니다. 술람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험준한 산을 달릴 수 있었으며, 작은 산은 빨리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힘이란 어떤 장애물도 방해하는 것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내어 놓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당하신 고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처럼 잡혀 끌려가며 채찍에 맞고 유대인들의 조롱과 비난의 소리와 침 뱉음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살 찢어지는 아픔과 고통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심은 죄인을 사랑하는 고난이였습니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산을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올 때 술람미는 무엇하고 있었습니까? 술람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포도원을 돌보며 목장에서 양들을 먹이며 솔로몬을 사모하다가 피곤하여 잠든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잠든 방을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았습니다. 술람미의 방을 엿보는 솔로몬을 마치 노루와 어린 사슴과 같다고 했습니다. 술람미를 보기 위해 창문 이쪽 저쪽을 왔다 갔다 하는 솔로몬의 마음을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 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며 보고 싶어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도를 보고 싶어 합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나 있습니까?


술람미와 솔로몬의 두 사람의 사랑 중에 누구의 사랑이 더 큽니까? 술람미는 잠드는 소극적인 사랑이라면 솔로몬은 결사적인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성도의 사랑 중에 누구의 사랑이 더 큽니까? 성도의 사랑은 잠자는 소극적인 사랑이라면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랑하는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이제 솔로몬은 잠든 술람미를 향해 소리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10). 이 말씀은 솔로몬이 잠든 술람미를 깨워 신부로 맞아 드릴 것을 정식으로 청혼하는 것입니다. 술람미가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었다 할지라도 솔로몬은 책망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힘든 일을 하다가 피곤해서 잠든 것을 보고 더욱 예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불러 깨우고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일어나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성도의 신앙이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어도 예수님은 깨워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다”(11)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술람미의 고난의 때가 지났음을 말해줍니다. 극동 지방의 겨울은 춥고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활동하기가 매우 불편하다고 합니다. 모든 만물들이 추위에 얼어 죽은 것 같은 겨울이 지났다고 한 것은 술람미의 고난을 ‘겨울’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술람미가 많은 고난으로 지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쳤고 이제 꽃 피는 봄날이 왔다고 했습니다. “지면에서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12). 이 말씀은 고난의 때가 지나고 희망과 즐거움의 때가 왔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13)라고 계속 청원을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잠든 영혼을 깨우며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믿고 바라보게 하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봄은 겨울에 얼었던 대지가 녹고 죽었던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부활의 계절입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희망의 계절입니다. 따뜻한 봄날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처럼 신앙의 봄날이 되어야 합니다. 잠든 신앙을 깨우고 기지개를 치고 일어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14)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술람미의 순결함을 아름답게 보는 것입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비둘기’는 고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순결함을 의미합니다.


신부는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결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새벽 두시 경에 마산 시내버스 주차장 주변에서 많은 젊은 청소년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러운 세속에 빠진 청소년들을 보고 앞날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술람미가 더러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결을 지키는 것을 보고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14)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로서의 정숙하고 순결한 술람미를 보고 싶어 하고,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 것입니다. 성도가 더러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은밀하게 믿음을 지키고 예배드리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고 싶어 하시고, 부르는 찬송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술람미를 어여쁘게 보며 그 얼굴을 보고 싶어 하고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고 하니까 이제 술람미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16)고 하였습니다.


이제 술람미는 그동안 솔로몬과의 사랑을 훼방하는 여우를 잡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우’는 꽃이 피는 포도원에 뛰놀며 뿌리를 파헤치는 존재로 성도와 교회를 시험들게 하는 것들 입니다. 교회안에 여우가 있으면 성도들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여우는 성도들의 염려와 걱정, 시기와 질투, 교만과 미움, 불화 등입니다. ‘작은 여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게으름, 양심마비 등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는 솔로몬을 향하여 사랑을 고백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16)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네게 속하였고 나도 솔로몬에게 속하였다는 하나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신랑으로 맞아 드린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완성은 어느 한쪽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짝사랑은 피곤할 뿐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술람미의 이러한 고백은 자신의 존재의 의의와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시골에 버려진 이름없는 존재가 아니라 왕중에 왕이신 솔로몬과 함께하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술람미는 서로에게 속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명의 참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함께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여야 합니다. 이제 주님 따로, 내 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라는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맡은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 합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화답하여 예수님의 품에 안겨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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