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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17.10.02|조회수1,237 목록 댓글 0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요한복음 21:1-14

 

본문 3절에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의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하는 포기 선언입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노라고 하던 베드로가 제자됨을 포기하는 말입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분이 나는 예수 그만 믿고 세상으로 가겠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상당한 실망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첫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달려가서 살아나신 예수님은 만나보지 못하고 빈 무덤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 문들을 닫고 있는 방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20).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모인 방에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두 번째로 보여 주셨습니다(26).

 

제자들은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보았지만 실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하였을 때 다른 제자들도 우리고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의논이나 한 것처럼 제자들 일곱이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 선언하는 것입니다.

 

도마와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 요한)과 이름도 밝히지 않은 제자 둘과 베드로와 일곱 명이 함께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 선언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 올 때는 기대가 컷 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실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 갈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라고 외치며 환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본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고 경쟁을 하였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하나는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외편에 앉게 해 달라는 청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잡혀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도 잡혀 죽을까봐 두려워 숨었습니다. 제자들은 문들을 꼭꼭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기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보았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증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대제사장들은 파숫꾼들에게 돈을 주고 예수님의 죽은 시체를 제자들이 밤에 훔쳐갔다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지만 심령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걸고 부활을 증언하는 것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지만 계속 제자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한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낙하산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뛰어내리면 저절로 펴져서 죽지 않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으면서 높은 하늘에서 막상 뛰어내리려고 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낙하산은 죽지 않도록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쉽게 뛰어내리려고 할 때 두려워 망설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기 때문에 베드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보았지만 상당한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차라리 예수님이 살아나지 않았다면 좀 서운하기는 해도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서 숨어서 살 수가 있겠는데 예수님이 살아나셨으니 더욱 골머리가 아픕니다. 마음이 복잡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심리적인 고통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폭탄선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생활을 포기하고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을 포기하고 옛날로 돌아가겠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노라고 하며 자기를 내세웠던 베드로가 이처럼 처량해 진 모습을 봅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제자답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있던 여섯 명의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대대로 고기 잡아 먹고 살던 어부 입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어부가 감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우쭐대다가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이 잡혀 갈 때 멀찍이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잡혀 재판을 받고 있을 때 베드로는 마당에서 불을 쬐다가 작은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까지 했던 자신이 더 이상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예수님을 떠나 옛날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봅니다. 패잔병의 모습으로 자기 고향을 가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동감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죽음도 이기시고 살아나신 예수님 앞에 자신의 정체를 되돌아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제일 잘 난 줄로 알았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수제자라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때마다 제일 먼저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칼을 빼어 군인을 쳤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살아나신 예수님 앞에 자신을 되돌아보았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기나 잡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성공한 금의환향이 아니라 실패한 자의 악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부끄러운 과거와 허물을 다 알고 조용히 예수님을 떠나 옛날로 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른 여섯 명과 함께 갈릴리로 돌아가서 옛날 고기 잡던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려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 사람들이 무엇을 한다고 했을 때 잘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밤새워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3년 동안 쉬었으니 그물을 던지는 것이나 고기를 잡은 일이 서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하고 떠나 왔으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허무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이런 저런 갈등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그물을 던져도 제대로 던져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저버린 사람에게 인간적인 성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한 상태라야 무엇을 하든지 잘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안정되고 교회 일이 재미가 있어야 사업도 잘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교회가 맡겨주신 일을 내던져버리면 세상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하면 세상의 일도 재미있고 성공합니다.

 

제자들은 날이 새도록 빈 그물만 끌어올렸으니 더욱 피곤했을 것입니다. 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피곤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마디의 고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피곤합니다. 이렇게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신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신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제자들이 탄 배와 뭍에 계신 예수님과의 거리가 오십 깐쯤 되므로’(8) 100m 정도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새벽에 물안개로 잘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이 이미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설마 예수님이 갈릴리까지 찾아오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셨고 제자들은 없나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큰 고기 일백 쉰 세 마리(11)를 잡았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한)주님이시다라고 외쳤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시다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려예수님께로 달려 왔습니다.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에 뛰어내렸다’(7)는 이 말씀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바다에 뛰어낼 때는 겉옷을 벗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르고 바다에 뛰어 내렸습니다.

 

이 겉옷은 예수님의 제자를 상징하는 옷입니다. 목사가 까운을 입고 예식을 집행하는 것처럼, 찬양대가 까운을 입고 찬양을 하는 것처럼, 베드로의 겉옷은 예수님의 제자임을 의미하는 옷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벗어 던져 준 겉옷을 물려받고 선지자의 사명을 맡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을 때 겉옷을 벗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벗었던 겉옷을 다시 입고 제자로서 예수님께로 나아간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타고 잡은 물고기를 든 그물을 끌고 왔지만(8)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냈다는 것은 베드로의 적극적인 자세로 다시 제자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겉옷을 벗고 고기를 잡는 동안의 베드로의 마음이 평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마리의 고기도 잡히지 않을 때 베드로는 답답하고 외롭고 괴로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포기한 것이 잘 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를 생각하였다고 봅니다. 어쩌면 제자를 포기한 것을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주님이시다는 소리를 듣고 곧 바로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리므로 다시 제자가 되는 적극성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됨을 포기하고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숯불에 생선과 떡을 구워놓고 그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춥고 배고팠습니다. 이른 아침은 하루 중에 가장 추운 시간입니다. 그리고 가장 배고플 때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고 다시 불러 제자를 삼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추위에 떨고 배고픈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따뜻한 숯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따뜻하게 구워 먹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실제적인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떠날 때가 있습니다. 맡겨주신 사명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 주실 것이고 삶의 현장에서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 앞으로 달려와야 합니다. 잠깐 실수할 수는 있어도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벗었던 겉옷을 다시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찾아오신 주님께로 달려가는 베드로처럼 우리도 달려와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는 적극적인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위로하시고 먹으라고 하실 것입니다. 다시 불러 주의 일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훌륭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씀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시 사명을 받은 베드로는 죽을 때까지 제자로서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다가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실망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혼란에 빠져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회의가 오면 교회와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도 어렵지만 부활을 전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떨어지고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주시고 다시 불러 주십니다. 다시 부름을 받고 죽을 때까지 주의 제자로서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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