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의 배척
누가복음 8:51-56
성경에는 ‘사마리아 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은 있지만, ‘사마리아 족속’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족속, 블레셋 족속, 가나안 족속, 그 외 많은 족속들이라는 말은 있지만 사마리아 족속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족속이란 누구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열두 아들의 자손들 입니다. 김해 김씨는 김수로왕의 자손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조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의 조상은 없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아들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켜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르호보암은 남유다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해마다 명절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도 명절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르호보암에게로 마음이 돌아갈까 염려가 되어서 사마리아에다가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게 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사마리아에 바알의 제단과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하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앗수르를 일으켜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을 시켰습니다.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은 망하고 사람들은 모조리 잡혀 앗수르에 끌려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은 앗수르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 시켜서 민족 혼합 정책을 펴서 사마리아에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들과 딸들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 사람들과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이 ‘사마리아 인’ 입니다. 사마리아인은 혼혈족입니다.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선민으로서 순수성을 상실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에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을 전멸하라고 명령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면서 자녀들을 가나안 사람들의 자녀들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방인들과의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에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결혼하여 낳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들에게는 앗수르 사람의 피가 석인 혼혈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 했습니다. 짐승을 죽이면 죽은 짐승의 값을 물어 주었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죽여도 책임을 물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올라 갈 때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고 먼 길로 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을 때 그 여자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4:9)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던 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에 들리시려고 제자들을 먼저 사마리아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사마리아에 보내셨습니다. 사자들은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했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할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51) ‘승천할 기약이 차가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것을 말하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과정이 함께 포함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사마리아에 들어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했다(52)는 말씀은 마치 성만찬을 준비하라고 보내신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게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 하시고자 하신 것은 그의 구속 사업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 그리고 제자들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 존재로 취급했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므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일행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기 위해 가는 순례자들 정도로 알고 민족적, 종교적 반감으로 가지고 받아들이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들리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불로 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4)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들리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한 것에 대한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우리가 이웃집을 구원받도록 기도하고 큰마음을 먹고 결심하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면 반가이 맞아 줄 것으로 생각했다가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을 하면 화가 나서 저주를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9:1)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능력과 권능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불을 명하여 멸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엘리야가 한 것처럼’이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마치 아하시야 왕이 엘리사를 잡아 오라고 보낸 오십 부장과 그 부하들을 엘리사가 불사른 것처럼(왕하1:9-14), 우리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내려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하기를 원했습니다.
고령 고곡교회가 교인들이 도시로 다 떠나고 어려워서 시찰회가 이웃 교회와 합치기로 하고 교회당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여 집사 두 분이 팔았던 것을 무르고 교회당을 다시 찾아 지키고 있었지만 감당을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열 달 정도 섬겨 겨우 회복시켰습니다. 당시 저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전도사도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감당 할 수가 없어서 당시 대구 제일교회에서 열린 통합측 경북노회에 가서 전도사 한 분을 모셔왔습니다. 그 전도사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저주하면 당신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불을 명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하기를 원했다는 것은 제자로서의 합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는 ‘꾸짖으시고’라는 말씀 위해1) 이라는 토가 있습니다. 난하주에 1) [어떤 사본에는 55절 끝에 다음 말이 있음.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 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본에는 ‘너희는 어떤 영에 속했는지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악한 영에 속한 정신없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은 정신없는 악한 영에 속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축복권을 주셨지만 저주할 수 있는 권한은 주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제사장들에게 ‘너희가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주의 종들에게 축복권이 있습니다. 주의 종들이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저주 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심판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 멸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심판의 권한을 요구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이 요구하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라’고 하셨더라면 기독교는 더 이상 십자가와 구원의 될 수가 없는 종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주와 멸망하는 이방종교와 같은 종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배척하면 저주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너희가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 구나’, ‘너희가 어떤 악한 영에 속했는지 알지 못하느냐’라고 무섭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의 잘못을 책망하시고 곧 바로 올바른 구원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일행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제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멸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다음 장에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지나갔지만 사마리안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눅10:34).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외식하는 자여 화가 있을 지어다’ 라고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행1:8)고 말씀하시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던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던 창녀가 구원받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들리셨고 그를 우물가에서 만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사람들에게 소리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달려 나와서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일곱 집사 중에 빌립은 사마리아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행8:5).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멸망 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자들에게도 불쌍히 여겨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할 뿐 아니라 교회를 잔멸하려고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고 넘겼습니다.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의 여러 회당에 가서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잡아 오려고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시며 사울을 불러 사도 바울로 삼으셨습니다(행9:4).
오늘의 사마리아 인은 누구입니까? 복음을 배척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배척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빨리 죽든지 망하든지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오늘의 사마리아 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런 사람을 왜 빨리 죽여 없애든지 하시지 않고 보고만 계시는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구원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와 여러분이 선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는 죄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악함을 보시고도 멸망 받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았음을 감사하며 우리도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복음을 거역하는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구원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고 복음 전하여 함께 구원받아 영생복락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