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생명의 샘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18.06.17|조회수346 목록 댓글 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23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 제자들로 인하여 교회를 세우고 구원사역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죽음에서 살아나심으로 부활과 영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에게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믿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기 잡는 곳까지 찾아 오셔서 밤새껏 수고하고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춥고 배고픔은 제자들을 위해 숯불 위에 생선과 떡을 올려놓고 제자들에게 와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21장을 보면 베드로 외에 다른 제자 여섯이 함께 있었지만 특별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조반을 먹은 후에 베드로를 보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렀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새로 지어 주신 이름 베드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렀다는 것은 매우 뜻이 깊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렀을 때 베드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제자로 부름 받기 전에 그의 이름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16:18)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으로 예수님은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아닌 시몬에게 교회를 세우라고 맡길 수가 없었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는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으로 부르신 것은 이름값도 못하는 책망이라기보다는 그가 처음 예수님으로부터 부름 받던 때의 추억을 되살려 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베드로의 나약하고 실패한 모습까지도 모두 감싸주시는 폭넓은 수용과 깊은 예수님의 사랑에서 베드로의 실수와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렀을 때 베드로는 무서운 책망을 듣는 것보다 더 큰 자신의 죄책감을 느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때 닭이 울었고 예수님은 가야바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시다가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22:61).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정말 나를 모르느냐라든지, 아니면 왜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느냐라고 책망을 하시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시든, 아니면 너를 믿고 내 교회를 세울 수가 있겠느냐고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부인한 것에 대해서 한 마디도 책망을 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너무나 자주 실패하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먼저 책망하시기보다, 끝까지 사랑과 용서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아무리 곤고한 우리의 심령도 위로를 받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너는 곁에 있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늘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이 더 주를 사랑한다던 말을 해왔고, 십자가 사건 전날 밤에도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14:29)라고 고백도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를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물으심으로서 베드로의 잘못에 대한 양심에 가책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아가페(하나님의 사랑)’필레오(우정)’에로스(이성적인)’ 세 가지로 말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사랑은 헬라어 원문 성경에는 아가파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가파스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을 아가페, 아가파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신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말하면 내가 죽기까지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입니다.

 

베드로는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사랑은 원어로 필레오입니다. ‘필레오는 친구간에 우정과 같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말한 필레오,내가 예수님을 친구처럼 사랑 줄 주님은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아가페 사랑을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필레오라고 말했다는 것은 베드로의 진심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자기가 더 주님을 사랑하겠다고 했던 맹세가 보잘 것 없는 헛 명세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없다는 자신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고개를 푹 수그리고 주님께서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고작 친구처럼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라고 대답 한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은 베드로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솔직한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양은 새로 개종한 초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으로 봅니다. 이는 베드로가 맡아서 목회해야 할 신자들의 특성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어린 양은 나약하고 자기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초신자들에게 젖을 먹이듯이 말씀을 가르쳐 양육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시몬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16). 첫 번째 질문과 다른 것은 이 사람들 보다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누구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베드로 간의 일대일의 절대적 관계에서 정말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베드로도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지만 두 번째는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은 초신자라면, ‘은 오래된 신자를 의미합니다. ‘먹이라는 말과 달리 치라고 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는 말은 치리’, ‘권징으로 신앙적으로 연륜이 깊은 성도들에게 잘못된 것에 대해서 책망과 치리와 권징으로 바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근심하며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17).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사랑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아가파스와는 달리 세 번째는 필레오사랑으로 그래 너의 사랑은 진정 나를 친구로서 사랑하느냐는 의미로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네가 친구처럼 나를 사랑하느냐는 필레오 사랑으로 물었을 때 베드로는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베드로가 근심했다는 것은 자신이 다른 제자들보다도 예수님을 죽기까지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도 저주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심하며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라는 말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이러한 솔직한 고백을 더 원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앞에 무엇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베드로는 마음에 없는 입에 발린 거짓된 사랑의 고백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에 없는 가장된 사랑의 고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사랑하는 필레오의 사랑도 하지 못하면서 감히 우리가 아가페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쌔발간 거짓 고백입니다. 참으로 가증된 사랑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다 아십니다. 그래서 거짓된 사랑의 고백은 주님을 속이는 것이므로 오히려 주님을 노엽게 만듭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친구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솔직하게 고백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자랑하던 지난날의 가장된 고백을 부끄럽게 여기며, 아가페의 사랑이 아니라 필레오의 사랑마져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근심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은 아시나이다.’ 라고 고백을 했을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그 정도뿐이냐는 책망보다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처럼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베드로의 사랑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거짓이 없는 솔직한 대답을 하므로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거짓된 사랑의 고백을 많이 합니다. 입에 발린 헛된 고백은 예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서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입에 발린 거짓고백을 하는 자에게 교회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로부터 솔직한 사랑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이제 베드로에게 앞날에 대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18)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두 번이나 거듭 말씀하신 것은 사람의 사상이나 지혜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은 신적인 권위, 즉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앞날에 있을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장차 순교를 당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죽음에 관한 예언입니다.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라는 말은 젊었을 때는 마음껏 활동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리라는 말은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결박당할 것이며 순교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장차 어떠한 고난과 죽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그리고 함께 한 제자들을 통해 이 땅에 교회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교회를 세우는 일에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안심하고 하늘로 올라가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열심히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세웠고 그들이 흩어져 세계 곳곳마다 교회가 세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룰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외경 베드로 행전에 의하면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의 박해로 인하여 로마를 빠져 나가던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십자가를 회피하니 내가 다시 로마에 가서 십자가에 달리고자 한다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즉시 로마로 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똑바로 달리신 십자가에 자신은 똑바로 달리기도 외람되어 거꾸로 달리기를 자청하였다 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순교하므로 주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어주신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는 아가페 사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주를 위해 죽는 아가페 입니다. 교회는 아가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아가페 사랑이 있을 때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이 있을 때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나와 여러분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나와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합시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니 주님을 사랑하듯 주의 몸된 교회를 사랑합시다. 우리 모두 교회를 사랑합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립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