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
요한복음 13:1-1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요한복음에만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와 대조해 보면 저녁 식사를 하신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성만찬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밤을 열두제자들과 함께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열두 제자들에게는 아주 뜻 깊은 축복의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는 공생애를 결산하는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날이 새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다 아시고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열두 제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밤은 매일 있지만 그러나 그날 밤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밤이었습니다.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지만 그때의 ‘유월절’은 예수님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던 전날 밤에 양을 잡아 그 피는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무교병과 함께 먹고 출애굽을 하였던 첫 번째 유월절을 생각하는 밤입니다.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에 죽은 양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표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므로 온 애굽 땅에 내린 장자의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을 뿐 아니라 애굽의 압박에서 벗어나 해방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사탄 마귀의 종에서 자유 할 수가 있게 되는 역사적인 밤입니다.
그날 밤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바로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풍습에 따르면 발을 씻어 주는 일은 그 집안의 가장 비천한 종에게 맡겨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아래 무릎을 꿇은 채 제자 하나하나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때의 제자들은 출세욕과 교만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누가 더 크냐고 서로 논쟁을 하고 있는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시므로 겸손과 봉사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21에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말씀은 마태복음에 보면 떡과 잔을 나누시는 성만찬 때 하셨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성만찬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다른 복음서와 함께 순서를 맞추면 ‘저녁을 먹고’(3)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4)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그리고 성만찬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시고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밤에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란 일반적으로 ‘완전히’ 또는 ‘죽기까지’란 뜻입니다. 그리고 ‘영원히’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을 마지막까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나와 여러분들에게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룟 유다입니다. 이미 마귀의 꾐에 빠져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2). 누가복음에는 이미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고 돈을 받기로 언약까지 했습니다(눅22:4). 그러고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 앞에 앉아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이러한 가룟 유다를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왔는지를 다 아시면서 그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 중에 누구의 발을 제일먼저 씻어 주셨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베드로가 제일먼저 나섰기 때문에 베드로의 발을 먼저 씻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6)라고 말 한 것을 보면 베드로의 발은 맨 나중에 씻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주석가는 가룟 유다의 발을 제일먼저 씻어 주셨고 맨 나중에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다고 합니다.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제자들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심리적으로 자신의 배신감을 감추기 위해서 가룟 유다가 제일먼저 예수님에게 나아가 발을 내 밀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가룟 유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왜 하실 말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나무라거나 책망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팔 자라는 것을 다 아시면서 그의 발을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11).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는 자라 할지라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책망보다는 발을 씻어 주시므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말씀이 없기 때문에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의 생각으로는 조금 전까지 누가 더 크냐고 다투었던 것에 대한 양심적인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 때 제자들은 교만을 깨닫고 잘못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시려고 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의 미천함을 깨닫고 주님께 대한 존경심으로 한 말이라고 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발을 씻어주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는 의미에서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합니다’라고 말 한 것입니다. 그래도 제자들 중에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에게 작은 양심이 있었다고 봅니다. 어쩌면 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8). 그때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근본적인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발 씻음’을 ‘세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영적인 ‘죄 씻음’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관이 없다’는 말은 비록 먼지 묻은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제자들의 죄를 씻어 주시고 천국의 기업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을 씻어 주는 것은 단순한 발에 묻은 먼지를 씻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범하는 잘못을 용서하는 속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는 이 진리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9)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발 뿐 아니라 온 몸을 씻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몸이 깨끗하다’는 말씀은 중생을 경험한 자에게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중생한 자에게는 다시 속죄의 은총을 받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증거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자에게는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발은 매일 길을 다니며 먼지가 발에 묻었기 때문에 매일 씻어야 하듯이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세상에서는 죄와 더불어 살기 때문에 그날의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베드로에게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 모두와 가룟 유다도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가룟 유다에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이미 마음이 강퍅하여 아무런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러고서도 발도 씻음을 받고 성만찬에 참석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죄를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잘못을 느끼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도 오늘의 가룟 유다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와 같은 불행한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시고 이제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제자들에게 “내가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2)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선생 또는 주라’하는 것을 옳다고 하시며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14)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발을 씻어주는 것을 세족식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세족식을 하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장로와 성도들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을 합니다. 교사가 학생들의 발을 씻어 줍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14)는 말씀대로 교회에서도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족식을 하는 것이 어쩌면 이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후로 서로 발을 씻어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제자들이 발을 씻어 주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에 없다고 해서 제자들이 발을 씻어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7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제자들이 발을 씻어주신 것을 알지 못하지만 이 후에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후에’란 성령강림 하신 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성도들을 깨우쳐 알도록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단순히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것 이상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는 교회가 되라는 교훈이라기보다는 더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왕 중의 왕이십니다.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최고로 높은 분이 낮아지시고 낮아져서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더 크냐고 논쟁을 하던 제자들에게 한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서로 겸손히 섬기는 종의 자세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17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는 참된 의미를 알고 행할 때 복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을 하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서로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는 종이 되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종처럼 낮아져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종처럼 낮아져서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낮아져서 겸손히 섬길 때 복이 있습니다. 이 귀한 진리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도 낮아지고 겸손하여 종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 더 크냐? 누가 더 높으냐?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낮아지고 겸손해서 종처럼 섬기는 자가 됩시다. 지금도 예수님은 겸손한 자를 찾아 복을 주십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