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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18.09.02|조회수63 목록 댓글 0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마태복음 5:13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말씀하실 때에 먼저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시고 곧 바로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니라는 소금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짧고 쉬운 말씀이지만 대단히 깊은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소금 비유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세상에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어떤 책임이 있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나는 소금이다’, ‘나는 이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소금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금 비유는 무한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소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온 세계 어느 식탁에도 소금 없는 식탁은 없습니다. 매일 보아야 하며 매일 먹으며 하는 것이 소금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소금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건강비결로 소금을 적게 먹도록 합니다. 그래서 요즘 음식점에 요리한 음식들은 싱겁고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금을 약간 쳐서 맛을 내어 먹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성도가 세상에서 소금처럼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어떻게 하라는 식의 말씀이 아니고 성도는 소금이니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소금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짠맛을 내는 것이며, 방부제의 역할입니다. 때로는 소금이 제물로도 쓰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거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금은 아주 싸고 흔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다이아몬드니라’, 혹은 너희는 세상의 금 이니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이아몬드나 금을 금고에 숨겨두는 것처럼 성도는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하면서 자신의 거룩함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에 가장 값싸고 가장 천한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다이아몬드나 금은 도적이 들지만 소금은 도적이 들지 않습니다. 헛간 한 쪽에 둡니다. 제일 값싸고 흔한 것이지만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소금입니다. 금은 없어도 살수가 있고, 다이마몬드를 몰라도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성도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주 평범하고 아주 서민적이며, 대중 속에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살지만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소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 아니라 불신 세상 어디에서나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방송을 통해서 실크로드를 볼 때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해발 2000m 이상 높은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산에서 나는 물건들을 수십 마리의 낙타에 실고 한 달 이상을 걸어 떼를 지어 험한 산길과 위험한 물을 건너 내려와서 비단과 소금을 바꾸어 다시 돌아온 길을 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니는 길을 실크로드라고 합니다.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소금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떤 지역에는 소금호수가 있습니다. 물이 말라서 소금이 되어 있습니다. 너무 넓어서 소금바다라고도 합니다. 또 어떤 곳에는 소금물이 나는 샘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그 물을 길어 질통에 지고 급경사 수십 계단을 올라와서 산비탈 계단 염전에서 소금을 만드는 것을 보고 참으로 묘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다가 멀고 소금을 구하기가 어려운 곳에는 소금호수와 소금 샘물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이치를 두고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외모나 그의 생활 자세로 보아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나타나기에는 수수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소금처럼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소금의 역할을 무엇입니까? 첫째로 소금은 생명을 살립니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링거를 주사합니다. 링거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포도당과 소금 약간 일뿐 인데 이것을 맞으면 환자가 생기가 돌고 힘이 살아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병들어 먹지 못하여 죽어가는 사람에게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양을 치는 유목민들에게도 소금은 중요합니다. 양들도 소금을 먹지 못하면 비실비실 기운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양에게 반드시 소금을 먹여야 하는데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암염이라고 하는 소금돌이 있습니다. 암염 덩어리를 풀밭 여기 저기에다 던져 놓으면 양들이 풀을 뜯다가 암염을 빨아 소금을 먹습니다. 소에게도 된장을 풀어서 먹입니다. 이렇게 동물들에게도 소금을 먹어야 합니다. ‘너희가 소금이니라는 말씀은 성도가 세상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주고 활력을 주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소금은 맛을 냅니다. 욥기 6:6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을 적당히 칠 때에 비로소 제 맛의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음식이 각각 자기의 맛을 가지고 있지만 소금이 가미되기 전에는 제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소금은 맛의 근본인 것입니다.

 

요리의 비결은 소금을 어떻게 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등 요리사는 소금을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소금의 맛을 잘 사용하는 것이 음식을 잘 만드는 비결입니다. 우리말에도 간이 맞아야 음식이지하는 말이 있습니다. 간이 적당히 잘 맞아야 제 맛이 나는 것입니다. 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썼더라도 그 음식은 먹을 수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짜도 안 되고 싱거워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소금은 맛의 근본인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라는 말씀은 지식이나 재능, 건강, 물질 등 우리의 가진 그 모든 것들이 전부 필요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신앙이 있어야 하고 기독교적인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며 거기에 바로 성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맛을 내는 사람! 삶의 의미를 주는 사람! 모든 사람들에게 성도로서의 가치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도 예수 믿는 한 사람이 있어서 가정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소금 같은 믿음이 없는 가정은 가정이라기보다는 밥 먹고 잠자는 하숙집일 뿐입니다. 직장에서도 성도 한 사람 때문에 직장다운 직장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맛과 힘, 그리고 매력의 요소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소금은 제물로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금은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제사 의식에서 소제와 번제물에 소금을 뿌려 제사를 드렸으며 향을 쓸 때에도 소금과 함께 향을 사용했습니다. 성전에서 쓰여지는 것이 소금이었는데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하는 데에 있어서 피와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귀신을 몰아내고 잡귀를 쫓아내는 영적인 부정함을 몰아내는 것으로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월 초하룻날에 집 주위에 소금을 뿌리기도 하고 달갑지 않은 손님이 들리기만 해도 소금을 뿌리는 것은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하는 것이나 잡귀를 쫓아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이러한 것은 미신으로 보지만 소금의 의미를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들렸을 때 여리고 사람들로부터 물이 나빠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말을 듣고 소금을 물 근원에 던지고 나서 여호와께서 이 물을 고쳤으니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 것이라’(왕하 2:21)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물이 고쳐져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금을 물에 던졌다고 해서 그 샘물이 좋아졌다는 것은 신학적인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소금은 위생적으로, 영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정결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도는 이 세상 어디에 있든지 부정함을 쫓아내고 거룩함을 나타내는 정결함의 요소이라는 말씀입니다.

 

네 번째로 소금은 방부제입니다. 방부제란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방부제는 이미 썩은 것을 다시 소생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썩은 것에 소금을 친다고 그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썩은 것을 더 이상 썩지 않고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라는 말씀은 성도는 방부제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요 타락할 수 있는 사람을 더 이상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쓰러질 것만 같은 가정에 기도하는 성도 한 사람이 있어서 더 이상 쓰러지지 않게 되는 것이 곧 방부제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넘어질 수밖에 없고 모두가 다 썩어질 수밖에 없는 부패한 죄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 신앙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넘어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나 사회를 보더라도 어디 하나 옳은 것이 없는 썩어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이렇게도 견디고 있는 것입니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살면서 소금이 되었더라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롯이 소금이 되지 못하므로 해서 마침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롯이 소금이 되지 못하므로 결국은 아내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 한 사람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소금 같은 믿음의 사람 의인 열 명만 있었더라면 멸망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여러분이 소금이 되어서 더 이상 부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썩을 수밖에 없는 가정에 소금이 되어서 여러분이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는 말씀은 썩고 부패한 세상을 더 이상 망하지 않도록 방부제의 사명을 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 소금은 화목을 만듭니다. 김장 할 때 뻣뻣한 배추에 소금을 적당하게 치고 얼마 지나면 부들부들 해집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9:50)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크냐 내가 크냐며 출신 성분과 조상까지 들추며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소금을 치듯이 부드럽고 온유하여 화목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도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4:6)고 말씀 하셨습니다. 소금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화목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도 화목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화목해야 하며 나아가 하나님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소금은 녹아 없어지는 것입니다. 녹지 않으면 소금으로서 제구실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소금이 짜고 덜 짜다는 말은 하지만 소금이 맛이 없다는 말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히브리인들은 양들이 꼴을 뜯는 풀밭에 암염을 여기 저기에 던져두면 양들이 꼴을 뜯다가 암염을 빨아 소금을 섭취 했습니다.

 

그런데 암염도 소금끼가 없는 것이 있답니다. 소금끼가 없는 암염은 맛 잃은 소금처럼 아무 소용이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맛 잃은 소금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성도답지 못한다면 거리치는 존재일 뿐 아니라 눈에 가시처럼 보기도 싫은 존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맛 잃은 소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못하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뿐 아니라 교회에 욕을 돌리며 나아가 하나님에게까지 영광을 가리웁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나와 여러분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소금이 됩시다. 생명을 살리고 부정과 부패를 막고 거룩한 제물이 되는 소금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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