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옥중에서 기도와 찬송
사도행전 16:16-32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빌립보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와 그의 집이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15). 다음으로 귀신들린 여종에게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추측상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옥을 지키는 간수와 그의 온 집이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도록 하는 노력이나 방법이 각각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루디아는 로마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안식일에 유대인들과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안식일에 기도하려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고 루디아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은 여러 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므로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간수는 위로는 상관들이 있고 로마 총독과 황제가 있는 죄수들을 지키는 말단 공직자입니다. 간수는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을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를 통해서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좀 특별 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원사역은 하나님과 복음 전하는 사람이 함께 협력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므로 구원을 받도록 하십니다.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은 바울과 실라를 보고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말한 것을 틀린 말이 아닙니다(17). 가짜 점쟁이가 아니고 진짜 점쟁이었습니다.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많은 이익을 줄 정도라면 점을 잘 쳐서 제법 돈을 많이 벌었던 것 같습니다.
귀신들린 여인이 여러 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귀신이 나갔으니 더 이상 점을 칠 수가 없게 되었고, 주인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끊어져서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였고 상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매로 쳤습니다. 그리고 깊은 옥에 가두고 든든히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기절 할 정도로 맞았습니다. 햇빛도 들지 않은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발에는 차꼬를 채워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한밤중에 매 맞은 곳에는 피가 나고 쓰리고 아픕니다. 심리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운 때입니다. 하나님에게 ‘내가 매를 왜 맞아야 합니까? 왜 불빛도 없는 캄캄한 감옥에 갇혀야 합니까? 불평과 원망을 할 수 있을 때 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캄캄한 옥중에서 기도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어떤 기도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을 고발한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과 매로 치고 옥에 가둔 상관들의 용서를 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죄수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주의 종들이 평양형무소 갇혔을 때 대부분이 독방에 갇혀서 옆방에 누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누군가 한 분이 ‘내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니까 옆방에서 함께 부르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형무소 안에 찬송소리로 가득찼습니다. 간수들이 물을 뿌리며 찬송을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찬송은 더욱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옥에 갇힌 주의 종들이 여기까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찬송을 받으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옥문을 여시고 출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5절과 26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이에’란 말은 바울과 실라의 찬송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를 위해서 어떤 일 하셨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찬송하였고 하나님은 큰 지진을 일으키시고 옥문을 열고 차꼬를 풀어주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난 중에 기도와 찬송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고난 중에 기도와 찬송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불평이고 찬송은 원망입니다. 어떤 선배 목사님이 자신의 목회를 힘들게 하는 교인이 있어서 하나님께 ‘그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 아니고 ‘손 좀 봐 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을 그분에게서 들은 즉이 있습니다.
이웃 노회에 제법 큰 교회에 목사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장로에게 찾아가서 시비를 걸다가 서로 잡고 밀고 땡기다가 어쩌다가 목사의 손이 장로의 얼굴에 닿았다고 해서 장로가 목사를 폭행했다고 경찰에 고발을 했고, 목사는 이백 만원 벌금을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노회로부터 징계를 받았고 목사는 그날부로 쫓겨나고 따라 나온 성도들과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실력도, 능력도 있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그에게 없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매를 맞지 않고 옥에도 갇히지 않을 수 있는 숨겨진 특권이 있습니다. ‘나는 로마 사람이라’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매도 맞지 않고 옥에도 갇히지 않습니다. 날이 새어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게 평안히 가라고 했을 때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가두었느냐’고 했을 때 상관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37,38).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를 손대면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매도 맞고 옥에도 갇혔습니다. 주께서 주신 십자가를 졌습니다. 십자가를 졌기 때문에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매도 맞지 않고 옥에도 갇히지 않았다면 간수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나와 여러분에게도 나름대로 십자가가 있습니다. 듣지 않아야 할 말을 들을 때가 있고, 맞지 않아야 할 매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욕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보지 않아도 될 손해를 볼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따지고 싸웁니다. 십자가를 벗어 던져 버립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벗어 던져버리는 분들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내게 지워주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나름대로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찬송가 339장에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가.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만약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에게 시비를 걸고 따지고 싸웠더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무능한 전도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으면서도 참았습니다. 발에는 차꼬에 채였고 불빛도 없는 감옥에 갇혔지만 원망도 불평도 하지 않고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난 중에 기도와 찬송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역사를 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매’라는 말씀은 엄청난 절망적인 고난을 당하면서도 후회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느냐는 한탄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중에 하나님에게 찬송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므로 불빛 하나 없는 춥고 캄캄한 지하 감옥이지만 그들의 마음만은 밝았습니다. 매 맞은 상처는 아프지만 마음은 기뻤습니다. 모든 탄식과 증오와 고통을 다 극복하는 희한한 심령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심령의 변화는 자신들의 마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쁨과 그런 감사, 능력과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신 것입니다.
미워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찌 내 마음이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매를 맞고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신 은사가 아니면 가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바울과 실라의 마음속에 일으키신 큰 기적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리기 전에 바울과 실라는 마음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역경 중에 찬송은 모든 슬픔과 모든 아픔을 다 이기고 극복을 하게 합니다. 매인 것이 풀어지고, 꼬인 일들이 풀어집니다. 막혔던 일들이 뚫려지고, 넘어진 것이 일어납니다. 미워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옥문이 열렸는데도 도망가지 않은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십자가를 진 자에게 일어나는 기적들입니다. 십자가를 벗어던진 자에게는 이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가 도망한 줄로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 법에 의하면 죄수가 탈옥하였을 경우 간수가 대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간수는 옥문이 열려있으니 죄수가 다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자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황급히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28)고 소리 질렀습니다. 옥문이 열렸으면 분명히 도망쳐야 할 죄수들이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옥을 지키는 간수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간수가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서 도망하지 않고 태연히 앉아 있는 바울과 실라를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매여진 차꼬가 풀려진 상황을 보고 무서워 떨었습니다. 차꼬에 매인 죄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임을 알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31,32).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맞은 자리를 씻어주었고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온 가족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34).
지금까지는 로마 황제를 섬겨왔습니다. 우상을 섬겼고, 돈을 섬겼고, 명예를 섬겼고, 권세를 섬겼지만 그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므로 그동안 느끼지 못한 기쁨이 온 집안에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받게 할 사람은 바울과 실라 외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내가 아니면 구원받도록 할 다른 사람이 없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내가 그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그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를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내가 아니면 그를 구원받도록 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라면 매도 맞아야 하고 억울한 누명도 쓰고, 손해도 봐야 합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지 않기 때문에 그는 구원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매를 맞지 않고 옥에 갇히지 않으려고 바울이 ‘나는 로마 사람이요’라는 말 한 마디만 했더라면 간수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바울은 참았습니다. 그래서 매를 맞고 옥에도 갇혔습니다.
우리 모두 바울처럼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집시다. 그래서 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그를 구원받도록 합시다. 주님 오시는 날에 그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