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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마가라 하는 요셉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19.07.14|조회수117 목록 댓글 0

마가라 하는 요한

사도행전 15:36-41

37절에 ‘마가라 하는 요한’이란 이름이 있습니다. ‘마가’와 ‘요한’은 한 사람으로 이름이 둘입니다. ‘요한’은 히브리말로 ‘은혜롭다’는 뜻의 이름이고 ‘마가’는 라틴어로 ‘큰 망치’라는 뜻으로 로마사람들 문화권에서 살 때 부르는 이름입니다. 성경에는 ‘마가’로 또는 ‘요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마가라 하는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마가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고 어머니는 마리아 입니다. ‘마리아’란 이름은 가진 여성이 성경에 여럿이 나오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도록 방을 내어 주었고 그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가 요한의 다락방’, 또는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라리라’(행1:4)고 말씀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리아의 집 다락방에 모여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마가는 예루살렘 사람으로서 믿음 좋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예식을 행하신 집이요,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시고,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다락방이라고 해서 작은 오두막집이 아니라 일백 이십 명이 모일 수 있는 석조 건물로 당시 제법 큰 부자집이었습니다.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있는 아주 훌륭한 집입니다.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을 때 예루살렘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습니다(행12:5). 그때 천사의 도움으로 출옥한 베드로가 마가의 집 문을 두드릴 때 여종 로데가 베드로의 음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베드로는 마가의 집에 자주 왕래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므로(골4:10) 마리아와 바나바는 남매간 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지만 신약성경 중에 가장 먼저 마가복음을 썼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볼 수없는 예수님이 잡혀 끌려가실 때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르다가 무리에게 잡힐 때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다’(막14:51,52)는 그 ‘한 청년’이 바로 마가라는 데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마가는 어릴 때 부끄러운 수치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고백하였다고 봅니다.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는 박해로 인하여 예루살렘교회에 흩으진 유대인들이 수리아 안디옥에까지 가서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예루살렘교회가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 가르치게 했고 그래서 안디옥교회가 크게 성장하자 바나바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리고 와서 일 년간 함께 안디옥교회에 큰 무리를 가르쳤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행11:26)

크게 흉년이 들어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운 것을 알고 안디옥교회가 부조한 헌금을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교회에 전해주고 안디옥으로 돌아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가는 수행자로서 안디옥교회를 돕게 되었습니다(행12:25).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이 제 1차 선교여행을 갈 때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13:5). 마가는 사도들의 수행자가 되어 따랐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행13:13).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마가가 돌아가므로 해서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마가의 믿음의 문제라고 봅니다. 마가의 믿음은 체험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스스로 결단하고 신앙고백을 하고 믿게 된 믿음도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랐고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예배에 동참했을 뿐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소명을 받은 것처럼 마가가 어떤 체험을 하고 소명을 받은 믿음이 아닙니다. 마가는 소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따라 사도들을 따랐고, 또 마음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교회를 반대하고 복음을 거절하다가 매를 맞고 회개하고 믿게 된 성도는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잘 견디고 이겨내지만,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게 된 성도들 가운데는 체험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있을 때는 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체험도 없고 소명도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일만 하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나 핍박을 당했을 때 이겨내지를 못하고 쉽게 떠나 버립니다.

어린 마가는 자기 집에서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릴 때 어머니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또 사도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특별히 외삼촌 바나바는 생질인 마가를 좋아했기 때문에 바나바는 마가를 수행자로 데리고 다녔고 마가도 잘 따랐을 것 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안디옥 교회가 헌금한 것을 전하고 안디옥으로 돌아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왔고 제 1차 선교여행을 할 때에도 마가도 함께 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다니면서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따르는 것을 보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에게 귀신도 쫓아내는 것도 보았고, 바보에서는 로마총독이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받고 따르는 것을 보았거, 이적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을 보고 마가는 신기하고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과 바나바가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사명감이 없는 마가는 바다를 돌며 경치 좋은 섬 지역에서 전도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좋았는데 갑자기 험한 광야와 산악지대를 지나 안디옥으로 간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마가)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합니다(13:13). 자신이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를 마가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지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후에 제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였을 때 바울은 거절했습니다.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을 거절한 이유를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38)고 분명히 말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심히 다투게 되었고 더디어 두 사도는 피차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과의 사이는 형과 아우처럼 좋은 관계였습니다. 사울이 개종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지만 다들 지난날에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을 두려워하며 제자됨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으며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말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게 되었고 예루살렘을 출입할 수가 있었습니다(9:26-28).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해서 사울은 고향인 다소로 보내 피신을 하도록 했습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안디옥에 파송을 받고 가르치므로 크게 부흥하자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서 다소에 있는 바울을 데리고 와서 둘이 일 년 간 가르쳐 안디옥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교회사에 있어서 초대교회의 모범적인 사도요 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로 인하여 두 사도는 크게 다투게 되었고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했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던 두 사도가 감정대립으로 나누어졌다는 것은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실수와 연약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냉철하게만 대한 바울의 옹고집으로 끝내 바나바와 화해하지 못하고 갈라섰다는 것을 합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두 사도가 다시 만났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모범적인 두 사도가 서로 나누어져 다시 만나지도 못했다는 것은 교회사에 있어서 큰 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바나바와 바울은 서로 헤어졌지만 전도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15:39)라는 말씀을 끝으로 바나바가 그 이후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나바가 말씀전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를 견고하게 하였다는 말씀을 비롯하여 많은 핍박도 있었고, 매맞는 일도 있었고, 옥에 갇히는 일도 있었고, 이적도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다 겪고 나서 그 모든 성과를 가지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선교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략 12년이 지난 뒤에 바울이 로마 옥에 갇혔을 때 마가와 함께 갇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골로새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마가를 보낼 터이니 영접하라는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 1:23,24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은 함께 갇힌 마가도 문안한다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아서 바울과 마가는 서로 화해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그의 생애 말기 임종을 앞두고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고 말한 것도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임종 직전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은 바울이 마가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었던 것으로 같습니다. 그래서 마가가 자신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은 젊었을 때에는 비겁했고 실수를 하였으나 자신의 철없었든 때를 반성하고 용서를 빌었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 2차 선교여행 때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므로 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서게 된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의 잘못임을 깨닫고 회개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울에게로 돌아와서 더 이상 떠나지 않고 바울이 갇힌 옥에 갇히기까지도 함께 할 수가 있었습니다.

나와 여러분에게도 철이 없고 믿음이 약해서 교회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주의 종들을 실망하도록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속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빌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마가가 바울과 함께 옥에도 갇혔던 것처럼 어떤 고난에도 참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고 말했다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마가를 그만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크게 실망하게 하였고 동역자와 다투다가 나누어지기까지 만들었던 마가를 이처럼 사랑하게 된 것은 마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울에게 용서를 빌 뿐 아니라 끝까지 바울을 따르고 섬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마가라 하는 요한과 사도 바울과의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바울은 마가를 보고 ‘그는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한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구속사적이요 나아가서 선교학적인 관계라는 말입니다. 마가가 왔을 때에 바울이 무슨 말을 하며 부탁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그 후로 마가는 베드로의 수종자가 됩니다.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벧전5:13)고 할 만큼 베드로의 전도사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종들며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행하였던 일들을 상세하게 마가복음에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베드로의 복음’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철이 들지 않았을 때 실수하고 교회를 힘들게 했을지라도 철이 들고 믿음이 성숙했을 때 자신의 잘못했던 것을 깨닫고 용서를 빌고 회개하고 마가라 하는 요한처럼 선배들에게서나 교회가 잊을 수 없는 오늘의 마가라 하는 요한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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