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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21.04.18|조회수278 목록 댓글 0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누가복음 16:19-31 9, 488, 316 493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입니다. 25절에 ‘아브라함이 이르되 애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동기는 옳지 않은 청지기(16:1-13)에 대한 말씀을 듣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비웃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내세를 준비하지 않은 부자가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고 내세를 준비한 나사로는 죽어서 위로를 받는 말씀을 하셨습니다.(14)

당시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죽음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재물이 많은 것을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15)

부자의 풍요와 나사로의 비참을 대조하여 세상에서의 삶과 하나님 나라의 삶이 어떠한 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어도 내세에 소망을 둔 삶이 더욱 값지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부자가 재물이 많아서 음부에서 고통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었기 때문에 음부에 들어간 것 입니다.

부자는 왕과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값비싼 옷을 입고 마음껏 즐겼습니다. 최고의 사치와 호화를 자랑하며 매일 잔치를 벌이고 삶을 즐겼던 것입니다.(19)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물로 자비를 베풀지 않음으로써 이웃 사랑에 대한 율법을 범한 것입니다.

‘나사로’란 이름은 ‘도움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나사로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은 없지만 그의 이름처럼 나사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자였고 피부병까지 않는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부자가 나사로에게 적극적인 악을 행했다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신 재물로 비참한 나사로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을 채운 것입니다. 부자는 일을 지혜있게 하므로 칭찬을 받은 옳지 않은 청지기와는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이미 병들어 심한 고통중에 배고픔으로 굶주린 상태에 심지어 개들까지 와서 헌데를 핥는 죽어가는 거지 나사로를 보고도 부자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고 죽은 시신마져도 공동묘지에 허술하게 버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로 올리워 갔습니다. 죽음 즉시 천사들이 그의 영혼을 영접하여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는 ‘낙원’에서 넉넉함과 풍요로움과 무궁한 기쁨과 안락을 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았을 때는 굶주림과 헌데 투성이로 고통을 당했지만 죽음으로 그 모든 고통은 다 사라지고 낙원에서 무궁한 기쁨과 안락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 얼마 안 되어 부자도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는 말은 많은 조문객들과 함께 화려한 장례식이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낙원’과 ‘천국’이 다른 곳이 아닙니다. ‘음부’와 ‘지옥’도 역시 다른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십자가에 달린 흉악범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도가 죽으면 육신은 장사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즉시 낙원에 들어갑니다. 불신자도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곧 바로 ‘음부’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낙원에 들어간 영혼들을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영혼들이 육신과 함께 부활하여 부활한 몸으로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리고 음부에 들어간 영혼들도 육신과 함께 부활하여 부활한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지옥입니다. 부활하기 전에 죽은 영혼이 들어가는 곳을 ‘낙원’과 ‘음부’라고 하였고 재림의 날에 부활한 몸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곳을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였습니다.

‘낙원’은 어떤 곳이며 ‘음부’는 어떤 곳인가를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낙원은 위로를 받는 곳이며, 음부는 고통을 당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부활한 몸이 영원히 위로 받는 곳이며 지옥도 부활한 몸이 영원히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25절에 ‘아브라함이 이르되 애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22)란 말은 위로를 받는 다는 의미입니다. 음부는 불꽃 가운데서 괴로움을 받는 곳 입니다.

그럼 음부는 어떤 곳입니까? 음부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꽃 가운데서 고통 받는 곳입니다’(마25:41)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불로서 소금치듯 하는 불꽃입니다.(막9:48,49) 불로서 소금치듯 하는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의미합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고 내세를 준비하지 않은 부자는 죽음 후에 소금치듯 하는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24) 차라리 불꽃에 타서 죽으면 좋겠지만 구더기도 죽지 않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영원히 그 불꽃 속에서 괴로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음부에서는 죽음을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는 곳입니다.(계9:6)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24) 불꽃 속에서 소금치듯 하는 괴로움 속에서 부르짖는 부자의 애절한 외침입니다.

부자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부르며 자비를 구했습니다. ‘긍휼히 여기사’, 나를 불쌍히 여기사 나사로의 손 끝에 물 한 방울을 구하였습니다. 살았을 때 굶어 죽어가는 나사로를 보고서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그가 이처럼 애절한 호소도 소용이 없는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아브라함은 부자가 호소하는 소리를 듣고 ‘애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으니 이제는 괴로움을 받느니라’(25)고 말했습니다. ‘고통’과 ‘고난’은 괴로움을 받는 것이지만 의미는 다릅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았고 나사로는 살았을 ‘고난’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고통’은 죄값을 받는 형벌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믿음으로 받는 괴로움입니다. 고난을 형벌이 아닙니다. 잘못해서 잡혀 매맞는 것을 고난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 때문에 빼앗기고 매 맞는 것을 고난이라고 합니다. 나사로가 고난을 받았다고 한 것은 믿음으로 어려움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사로가 어떻게 거지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난을 받았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가진 것 다 빼앗겨서 거지가 되었고, 매를 맞아서 피부에 상처가 나고 헌데가 생긴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매를 맞고 쫓겨나고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당하는 것을 ‘고난’이라고 합니다.

‘고통’은 위로가 없지만 ‘고난’은 위로를 받습니다.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낙원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부자는 고난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음부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부자가 음부에 들어가서 고통을 받게 된 동기는 두 가지입니다. 첫 째는 이웃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범한 죄로 음부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대문 앞에 나사로가 있었던 것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지 나사로는 굶어 죽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으로 깨닫고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부자는 내세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향락을 즐겼을 뿐 죽음 후에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한 것은 주인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니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고 내세를 준비하였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14) 옳지 않은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로 내세를 준비하지 않고 현세에 배부름과 쾌락만으로 즐거워하다가 음부에 들어가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자가 들어간 음부가 어떤 곳인가를 봅시다. 음부는 구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곳입니다. 손가락 끝에 찍은 물 한 방울은 아주 작은 것을 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소한의 자비를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곳 입니다.

그리고 음부에서 다른 곳으로 오고 가고 할 수 없는 곳 입니다. 아브라함은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26) 음부와 낙원 사이에는 누구도 건널 수 없는 견고한 간격으로 이미 고정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부는 남을 위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어 내 형제 다섯이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구했습니다.(28) 지금도 음부에 간 많은 영혼들이 살아있는 부모나 형제들이 고통 받은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지을 지니라’(29)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죽은 자가 가서 말하면 그들이 회개 하리이다’라고 말했지만 아브라함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할지라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음부에서는 그 어떤 것을 구해도 전혀 얻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낙원에는 밤이 없는 낮과 같이 밝은 곳이지만 음부에는 낮이 없는 어두움 뿐입니다. 무저갱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운 곳이라고 했습니다.(계9:2) 캄캄한 흑암 입니다. 음부에서 부자가 낙원에 있는 나사로를 볼 수가 있었지만 낙원에서 나사로가 음부에 부자를 볼 수가 없습니다. 낙원에서 음부를 볼 수 있다면 좋을까요? 안좋을 까요? 세상에서 사랑하던 사람이 지옥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을 본다면 어떨까요.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에 아홉 번째 흑암재앙이 내렸을 때 삼 일 동안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가 없어서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습니다.(출10:23)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밝았습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진에는 빛이 있어 밝았지만 애굽 진에는 흑암으로 덮혔습니다.(출14:20) 음부에는 빛이 없는 영원한 암흑입니다. 불꽃도 빛이 없는 불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자비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은 것입니다.

부자와 같은 내세에 소망이 없고 자비를 베풀지 않으므로 음부에 들어가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고난을 당해도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자비를 베풀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낙원에 들어가서 위로를 받고 부활한 후에 천국에서 안식을 영원히 위로를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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