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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이삭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22.01.16|조회수210 목록 댓글 0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이삭

창세기 26:12-25(1-35)

 

신구약 성경에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이삭입니다. 이삭은 출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창17:19)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아브라함은 백 세요, 아내 사라는 구십 세라 출산할 수 없는 불가능한 나이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마리아는 동정녀였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어 예수를 낳았습니다. 이삭과 예수는 성령으로 낳은 사람입니다.

 

이삭과 예수는 다 같이 성령으로 낳았지만 조금 다른 게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전능하신 능력으로(창18:14) 낳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예수는 성령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시므로(눅1:35) 잉태하여 낳았기 때문에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창2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로 이삭을 잡아 번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창22:11)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죽지 않고 대신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번제로 드렸습니다.(창22:13) 이삭을 대신하여 제물로 드린 숫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닮은 이삭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삶도 예수님의 생애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었던 것처럼 이삭의 때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그랄로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게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거주하라고 하신 땅은 그랄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거주하면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하시고 복을 주시고 자손에게도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3)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거주하였습니다.(6)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거주하라는 그랄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이방인이 사는 땅입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보면 그랄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포함되는 지역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한 후에 아브라함이 그랄로 옮겨 살았던 곳이며, 이삭이 태어난 곳입니다.(21:1,2)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주하라고 하신 그랄은 이삭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삭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내 리브가가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사람들이 리브가에 대하여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 것 같아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므로 자신은 죽지 않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길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20장에 보면 아버지 아브라함이 50여 년 전, 이삭을 낳기 전에 그랄에 살았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다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그랄 왕 아비멜렉’(20:2)과 이삭 때에 ‘블레셋 왕 아비멜렉(26:8)은 같은 사람이 아니고 시대적으로 5,60년 이상 지난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다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했던 것처럼, 아들도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려다 자기 아내를 삼으로고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왕은 창으로 엿보다가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보고 이삭을 불러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네 아내와 동침하여 죄를 지을 뻔 했다.’(8-10)고 하며 거짓말을 한 이삭을 크게 책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지 말고 거주하라고 하신 그랄은 이삭에게는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자신의 아내를 빼앗길 위험과 자신의 죽음의 두려움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삭은 양을 치는 유목민입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이삭으로서는 서툴렀습니다. 그러나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습니다.(12-14)

 

그런데 많은 복을 받아 거부가 된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보고 이삭을 시기하고 괴롭혔습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팠지만 그랄 사람들이 메웠던 그 우물을 이삭이 다시 팠습니다.(15) 그런데 그랄 사람들은 흙으로 메웠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우리를 떠나라’(16)고 말했습니다. 이삭은 그랄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랄을 떠나지 않고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류하며 다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메웠던 것을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18) 우물의 소유주임을 증명하기 위해 우물의 이름을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짐승들과 종들이 많아서 하나의 우물로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물줄기를 찾아 새로운 우물도 팠습니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와서 이삭이 판 우물을 ‘우리 것이라’고하며 다투었기에 그 우물을 ‘에섹’(다툼)이라고 불렀습니다.(20)

 

이삭은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랄의 목자들이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대적함)이라고 불렀습니다.(21) 이삭은 우물을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옮겨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나 그랄 사람들은 이삭을 따라다니며 우물을 빼앗고 메우고 쫓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지 말고 거주하라고 하신 그랄은 이삭이 편히 살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그랄 사람들로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했고, 빼앗기고 골짜기로 쫓겨 다녔지만 그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이렇게 빼앗기고 쫓겨 다녀도 그랄을 떠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해 주시며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많은 괴로움을 당하고, 빼앗기고,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다시 새 우물을 팠습니다. 그랄 사람들과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였습니다.(22) 그런데 ‘르호봇’이란 뜻은 ‘장소가 넓다’는 말입니다. 넓은 지역을 차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양과 소 떼를 가진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삭이 빼앗기고 쫓겨다녔지만 그의 재산을 더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습니다. 그랄 사람들보다 크게 강성했습니다.(13-16) 하나의 우물로서 모자라서 다시 우물을 판 것은 그만큼 양과 소가 많고 종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라.”고 외쳤습니다.(22) 이 외침은 그동안 그랄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쫓겨다니며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더 넓고 더 많은 복을 주심에 대한 승리의 외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찬양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 가운데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란 빼앗아도 다투지 않고 대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예수님의 온유함을 닮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잡혀 매를 맞고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들과 다투거나 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예수님의 온유하심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온유함을 닮아야 합니다.

 

이삭은 르호봇에서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브엘세바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창21:33)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간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섬겼던 여호와를 가까이 섬기고자 한 것입니다.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치고 거기서도 우물을 팠습니다.(25) 이제 더 이상 이삭은 다투거나 대적하는 자가 없은 평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알고 그의 친구들과 장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을 찾아왔습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에게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27)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이니라.”(28,29)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이 이삭을 보고 이러한 말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그동안 이삭의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눈으로 보아도 이삭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말했습니다.(29) 과연 이삭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빼앗기고 쫓겨 다녔음에도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거주한 이삭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과 계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서로 해하지 말고 선한 일만 하자고 맹세하였습니다. 더 이상 다투거나 빼앗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거주하라고 하신 그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지만 이삭이 편히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신 대로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을 크게 번성하여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게 하셨고 오늘날까지 그의 자손은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 모두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거주하라는 곳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빼앗기고 쫓아내는 일이 있을지라도 다투거나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실 뿐 아니라 더 많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자손들까지도 번성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괴롭히던 사람들로부터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보았노라.’, ‘당신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이삭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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