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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22.10.02|조회수115 목록 댓글 0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시편 16:1-11 93, 543, 445, 524

 

시편 16편은 ‘다윗의 믹담’입니다. ‘믹담’이란 황금과 같다는 뜻으로 많은 시편 중에 황금과 같은 극히 좋은 시라는 말입니다. 시편 56-60편과 16편 모두 여섯 편을 ‘다윗의 믹담’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다급한 위기를 당해서 낙담하고 죽음의 위기를 당했을 때 그동안 몰랐던 진리를 깨닫고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불렀던 노래를 ‘믹담’이라고 합니다.

 

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살려 달라는 다윗의 구원 요청입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 골리앗을 물맷돌로 쳐 죽였습니다.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과 싸워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이긴 장수입니다.(삼하8:6)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두 사람에게는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피하여 도망하고 광야 굴에 숨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고, 또 한 사람은 그의 아들 압살롬입니다. 다윗은 얼마든지 사울이나 압살롬과 싸우고 이길 수 있었지만, 싸우지 않고 피하여 도망하여 굴에 숨어다녔습니다.

 

16편은 그 두 사람 중에 누구 때문에 위기를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용을 보면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죽이려고는 하는 위기에서 다급하게 도망하여 광야 어느 굴속에 숨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도라고 해서 만사형통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절박한 위기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를 지켜 달라고 호소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위기를 당했을 때는 20대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충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단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은 군사들을 데리고 마치 대적과 싸우는 것처럼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다녔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대적하여 죽이려고 할 때 다윗은 나이 많은 노년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고자 다윗 왕궁을 급습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과 싸우지 않고, 신하들에게 빨리 도망하자고 하며 왕궁을 빠져나왔습니다. 다윗이 울며 맨발로 감람산을 올라갔다는 말씀을 보면 얼마나 다급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삼하15:30)

 

다윗은 광야로 나와 어느 굴속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1)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한 어려움을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런데 2절부터 마지막 1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위기였다는 것을 조금도 느낄 수 없습니다. ‘주는 나의 복이며, 나의 모든 즐거움’이라고 말했습니다.(2,3) 이해가 됩니까? 죽음의 위기를 당한 자신의 불행을 말하며 계속 하나님께 울며 도와달라고 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다윗은 ‘나의 즐거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4)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짐승의 피를 우상이나 신들에게 제물로 드리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자녀를 제물로 드리기까지 합니다. 신라의 에밀레종이나, 심청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는 자녀를 제물로 바친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아무리 다급한 위기를 당해도 우상에게나 잡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살아 계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고 기도하기 때문에 존귀한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다급하고 죽음의 위기를 당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피하고 지켜주시기를 호소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오히려 감사하므로 존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했습니다.(5-11) 지금 다윗은 왕궁과 그 모든 것을 아들 압살롬에게 다 빼앗기고 맨발로 겨우 몸만 빠져나와 굴속에 숨어 있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호와는 자신과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지켜시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과 나의 분깃을 지키시는 분이시다’(5)라고 고백했습니다.

 

“내게 줄로 내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6)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풍성함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압살롬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지켜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나귀를 타고 달려가다가 나무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싸움은 끝나고 다윗은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윗의 믿음대로 압살롬에게 빼앗긴 왕궁과 그의 모든 것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찾았습니다.

 

다윗은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주신 여호와께 감사를 돌리며 승전가를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높은 망대시오,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오,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삼하 22:1-3)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어려움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훈계하시고 교훈하심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7)라고 노래했습니다.

 

‘훈계하시고’란 말은 어그러진 길로 나아 갈 때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위기를 피해 굴속에 숨어서 하나님의 훈계와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한다’고 했습니다. 광야의 밤은 춥고 두렵고 고독한 밤입니다. 더구나 깊은 캄캄한 굴속의 밤은 적막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누구를 탓하며 이를 갈며 원망하고 울다가 밤을 새웁니다. 그러나 다윗은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밤마다 하나님께서 훈계하시고 자신을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광야의 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밤이었습니다. ‘내 앞에 모심이여’, 하나님을 모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을 가르치고 교훈하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리라”라고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7)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요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압살롬을 고발하며, 탓하고 원망했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아 알고 감사하며 찬송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떤 어려움과 불행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8)고 찬양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훈계만을 따르고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오른쪽에 모신다고 했습니다. ‘오른쪽’이란 절대적인 권능과 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으로 자신을 도와주신다는 신앙적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다윗은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라고 노래했습니다.(9) ‘안전히 살리니’란 말은 미래형입니다. 앞으로 ‘마음’과 ‘영’과 ‘육체’는 온전한 인격적인 사람으로 안전하게 살 것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급박한 위기를 피해 광야로 도망하여 굴속에 숨었지만, 주님께서 밤마다 훈계하시고 교훈하실 뿐 아니라 앞으로 미래의 일까지도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것도 깨달아 알고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당시 다윗은 두렵고 떨어야 하며, 가장 불행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광야의 밤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그 밤은 하나님을 만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밤이었습니다.

 

왕궁에서 평안히 지낼 때 멀리 계시던 하나님께서 광야의 굴속에 숨은 밤에는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평안할 때 몰랐던 것을 굴속에 숨어 있으면서 이와 같은 진리를 깨닫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며 노래하였기에 그래서 이 시편을 ‘다윗의 믹담’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1)라고 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 절박한 위기에서 놀라운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그것만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10) 그리고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1)라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세상 사는 동안에도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죽음 후에도 영혼을 스올(음부, 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보이신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11) 그래서 다윗은 “내가 주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며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2)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대적을 피하여 굴속에 숨어 있는 현실입니다. 죽음의 위기가 앞에서 이와 같은 진리를 깨닫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진가를 언제 알 수 있습니까? 재물이 많고 평안할 때,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병들거나 실패하고 절박한 위기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믿음의 진가가 나타납니다.

 

그때 낙망하며 슬퍼하면 그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윗처럼 광야의 밤과 같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많은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믿음이 참믿음입니다. 욥이 그러했으며, 다윗이 그러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존귀한 성도들입니다. 성도에게 광야의 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쪽에 계시며 도와주십니다. 빼앗긴 기업도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성도는 스올에 던져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이 있는 생명의 길을 보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광야의 밤이 있습니다. 그때 다윗처럼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세상 사는 동안에도 함께 하시고 지켜주실 뿐 아니라, 스올에 버리지 않으시고 주께서 보여주시는 거룩한 생명길을 봅시다.

 

우리 모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주 앞에 충만한 기쁨이 있고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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