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에서의 예수의 영광
누가복음 9:28-36(마17:1-8막9:2-8)
성도가 어려움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는 성도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바라는 장차 나타날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들들이 주님 오시는 날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기독교의 최고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영광이 과연 얼마나 크고 아름답기에 현재의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물며 죽기까지 하면서 그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을 지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말씀에서 주님 오시는 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그때 우리가 나타나게 될 그 모습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궁금하게 여기는 그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예수님께서 잠시 보여 주셨습니다. 누가는 그때 예수님의 변현된 모습을 “예수의 영광”(눅932)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영광’은 곧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과 같은 영광입니다. 이 예수의 영광을 누구에게 보여주셨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을 한 제자들에게 그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엿새 후에(누가는 팔 일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고 했습니다(마17:1).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얼마 동안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고 ‘저가 과연 누구신가?’ 궁금했습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헤롯 왕의 손에 의해 목베임을 당해 죽었던 세례 요한을 사모했기에 그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아니면 선지자중에 한 사람이라고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이야 말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올바른 신앙고백이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한 제자들에게 복이 있음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 받아 죽을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깊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엿새 동안 집중적인 기도와 많은 생각들을 하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제자들은 이때부터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제자다운 제자로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엿새를 지나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 열둘을 다 데리고 올라가지 않으시고 세 제자들만 데리고 가셔서 변형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열두 제자 모두를 데리고 가지 않으셨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세명의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은 증인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혹 베드로에게만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예수님의 변형된 사건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지고 아무리 베드로가 말해도 믿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3인은 증인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세 제자들에게 자신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자신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은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제자들에게 자신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신비한 진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예수의 영광”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을 상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은 성도들에게 장차 나타날 그 때의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장차 성도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장차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장차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내 모습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그 모습을 잠깐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천국을 소망합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천국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는데 과연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 그 정도일까요? 지상 세계를 낙원으로 상상하는 그런 정도의 천국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은 영광스러운 성도들이 사는 영광의 나라입니다. 그 영광을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아주 쪼끔 말씀으로 가르치고 있을 정도일 뿐입니다.
물론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나타날 그 영광스러운 모습도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된 것을 제자들에게 잠깐 보여주신 것만으로 어느 정도 상상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고백한 제자들에게 장차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예수님 자신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장차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 여러분은 장차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요? 가장 아름답고 예쁜 모습일까요? 물론 현재의 그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별로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늙은 모습으로, 병들어 찌든 모습으로, 아니면 젊은 모습으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그 영광을 크게 사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궁금한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닫게 해 줍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산이 어느 산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어느 산이라고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혹 어느 산이라고 안다면 신령한 산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산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세 제자들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예수님이 가자고 하시니 따라 올라 갈 뿐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제자들은 깊이 졸았습니다(32). 높은 산을 오르다 보니 제자들은 피곤하여 깊이 졸았던 것입니다.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변형되셨습니다. 제자들이 졸다 깨어 예수님의 영광과 함께 선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잠결에 비몽사몽간에 본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누가는 말씀하였습니다. 헛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잠들어 꿈에 본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았더니”(32)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을 제자들은 맑은 정신으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본 예수님의 영광은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17: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마17:3). 변형된 예수님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 옷이 빛과 같이 희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만 광채가 난 것이 아니라 온 몸 전체가 광채가 나서 그 옷이 빛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이 세 사람은 시대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는 분들입니다. 모세는 예수님 당시보다 약 3000여년전에 이스라엘의 영도자였습니다. 엘리야는 모세와 예수님의 중간 정도, 약 1500여년전에 가장 악한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이세벨과 싸웠던 선지자입니다. 이렇게 시대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건으로 생각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변형되고 모세와 엘리야는 변형되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세와 엘리야는 변형된 모습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미 천국에 먼저 간 분들을 대표로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여 주신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모든 성도들을 대표로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대군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 요단에 이르러 느보산에 올라가 죽었습니다. 모세는 성도로서 죽은 자를 대표로 하며,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자로서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을 대표로 하는 엘리야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변형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은 이미 예수 믿고 죽은 자들과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장차 나타날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을 만난 일이 없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수천 년 이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살아서 만난 일도 없지만 변형된 모습으로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한 것은 장차 나타날 우리들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의 아들들은 그때 모세와 엘리야 뿐 아니라 아브라함도, 노아도, 아담도 함께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시대적인 차이로 따지면 모세는 엘리야의 아주 높은 웃어른이요 조상이지만 그러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모세도 엘리야도 주 안에서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장차 영광의 아들들로 나타나면 아브라함도 노아도 할아버지로, 아버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 함께 할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가르치면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의 몸은 신령한 몸입니다. 눈이 부실정도로 광채가 나는 신령한 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늙거나 젊은 모습이 아니며, 어린 아이와 어른으로가 아니며,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아니며, 다 함께 하나님의 아들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변형된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모습에 현혹되었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할 정도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33)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말한 것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변현된 영광의 모습을 보았을 때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끔 미인을 보면 정신이 나갈 정도로 현혹되는 것을 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을 보고 정신이 나갈 정도가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산에서 내려오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이였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까? 장차 나타날 영광의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영원히 영광스러운 그 모습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잘 가르쳐 줍니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그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지 못하고 믿음 빼앗기면 그날은 매우 불행한 날이 될 것입니다. 한없는 후회를 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를 갈며 슬피 우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함께 신앙생활하던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사단에 끌려 지옥불로 던져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말씀을 믿고 영광으로 나타날 그날을 기다립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입니다. 변함없는 믿음으로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 그날에 영광으로 나타날 수있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