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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家門 大小事

洪家拳一代宗師황비홍 名人錄

작성자황비홍|작성시간12.06.13|조회수675 목록 댓글 0

洪家拳一代宗師황비홍 名人錄

 

황비홍(黃飛鴻), (1847년~1925년 )은 중화민국의 무술가이자 한의사,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황비홍(黃飛鴻)으로 개명(改名)하기 전의 이름은 황석상(黃錫祥, 황시샹)이고 자(字)는 달운(達雲)이다. 광둥(廣東) 남해현(南海縣) 사람으로, 소림 계통 남권의 일종인 홍가권(洪家拳)의 일대종사(一代宗師)이자 명의(名醫)로 활동하면서 힘 없는 민중들을 구하고 흑기군(黑旗軍)의 유영복(劉永福)과 함께 항일(抗日) 독립운동을 펼쳐 중국인들의 영원한 민족 영웅이 되었다.

 

황비홍은 수만는사람에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一代記를 다룬 영화만 하여도 현재까지 약 100여편을 넘어가고 있는데다가 아직까지도 그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드라마 등이 활발히 제작되고 있어 중국인들의 황비홍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생애황비홍은 1847년, 청나라 제8대 황제 도광제(道光帝)가 통치하던 시절에 중국 광동성 남해현 서초(西樵) 녹주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황기영(黃麒英)은 청나라 말기 광동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10명의 무림 고수들을 일컫는 광동십호(廣東十虎) 중 한 사람이었다. 황비홍은 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황기영으로부터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홍가권(洪家拳)과 의술을 전수받았다. 이때부터 황비홍은 아버지 황기영과 함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무술을 선보이고 약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13세 되던 해에 우연히 철선권(鐵線拳)의 고수인 철교삼(鐵橋三)의 제자 임복성(林福成)을 만나 그에게서 철선권과 비타(飛砣)를 습득하였다. 또한 그는 나중에 송휘당(宋輝鏜)이라는 武師로부터 무영각(無影腳)을 전수받았고 아버지 황기영이 속해 있는 광동십호 중 한 명인 소걸아(蘇乞兒)로부터는 취팔선권(醉八仙拳)을 전수받았다. 그 외에 황비홍은 사자춤에도 뛰어나서 그가 한번 사자의 탈을 쓰면 사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탄을 일으키게 만들었으며 그래서 광주의 사자왕(廣州獅王)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864년 17세 때, 황비홍은 마침내 광주에 자신의 첫 번째 무관을 세우고 제자를 받았는데 동이나 철장간(銅,鐵行)노동자나 삼란행(三欄行: 과일, 채소, 어물전) 상인들이 주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 19세에는 광둥 성(廣東省) 불산(佛山) 서초 관산의 전당포를 습격한 도적 무리를 격퇴하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일화가 있는데, 바로 독일식 셰퍼드를 발차기 한 방에 즉사시킨 일이었다. 1867년 그의 나이 20세 때, 중국 청나라 광둥 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 한 영국인이 고도로 훈련시킨 독일식 셰퍼드를 데리고 와 중국의 무술가들을 상대로 결투를 벌이게 하였는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격분한 황비홍이 자신이 직접 도전하여 셰퍼드를 한 번의 발차기로 즉사시켰다. 이 일화는 그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영화 '황비홍사면복신견'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황비홍은 무술 뿐만 아니라 의약에도 정통하여 1873년 그의 나이 26세 때, 그는 광둥 성(廣東省) 광저우(廣州) 인안리(仁安里)에 자신의 사설 병원인 보지림(寶芝林)을 세우고 의술을 베풀어 사람들을 구했다.

 

1888년 41세에, 황비홍은 흑기군(黑旗軍) 수령(首領) 유영복(劉永福)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은혜로 인해 유영복에 의해 黑旗軍의 의관(醫官) 및 군중기격교련(軍中技擊教練)에 임명되었는데, 유영복이 타이완(臺灣)으로 부임하여 일본군을 무찌를 때 따라가 그와 함께 군국주의 일본의 군대에 맞서 항일 전쟁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유영복은 황비홍의 신묘한 무술과 의술에 감탄하여 그에게 '의예정통(醫藝精通)'이라는 현판을 선물로 주었는데 황비홍은 이 현판을 보지림에 걸었다. 황비홍은 그 외에도 오전미(吳全美) 제독 휘하 밑에서 무술 교련을 맡았고 나중에 광동 민단 총교련(廣東民團總教練)으로 임명되어 민단에서 무술을 지도하며 부국강병을 꿈꾸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1919년에는 포산(佛山)에 정무체육회(精武體育會) 광저우(廣州) 지회가 설립되자 개회식에 초청받아 그곳에서 자신의 무술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단신으로 부두의 마적떼를 습격하여 굴복시킨 일화도 있었다.

황비홍은 생애 4번의 결혼을 하였는데, 원부인나씨(羅氏)와결3개원만병로사망 두 번재부인 마씨(馬氏).세번제부인이 잠씨(岑氏)세명은 잇달아 병으로 죽고 마지막 부인인 막계란(莫桂蘭)이 끝까지 황비홍의 곁을 지켰다. 막계란은 황비홍 사후, 홍콩(香港)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황비홍의 홍가권을 전수하며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1982년에 11월 3일 홍콩(香港)에서 죽었다. 황비홍은 또한 슬하에 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4명의 아들 중 둘째 황한삼(黃漢森, 황한싼)의 실력이 가장 뛰어났으나 무술 시합에서 황한삼에게 패한 귀안량(鬼眼梁)이 황한삼을 몰래 독살하자 황비홍은 이후 자식들에게 무술을 더 이상 전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비홍에제자는 양관(梁寬), 임세영(林世榮), 능운계(凌雲階), 등세경(鄧世瓊),풍학표(馮學標) ,임가곤(林家坤) ,진전표(陳殿標)、賣魚燦、帥老郁、帥老彥、陸正剛、林世榮등은 황비홍의 대표적인 제자들이었다. 이 중에서 등세경과 막계란은 여제자였고 막계란은 황비홍의 마지막 아내가 되는 인물이었다. 원래 황비홍의 무술을 가장 잘 이어받은 제자는 양관이었으나 25세대의 나이에 불치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황비홍은 크게 상심하였고 수제자 자리는 임세영에게로 돌아갔다.

 

洪拳 黃飛鴻 門下 名人錄

1)양관(梁寬):(별호:鬼腳七),양관은 본래 동천무도관의수련생 이였다.당시 황비홍의 유명한 명성을 듣고 황의 문하생으로 들어오려고 하였으나,황의문파와 달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 미고 매일 같이 황의 도장에 숨어 들어가 수련모습을 훔쳐보며 배웠다. 이러기를 수개월 지속(持續) 하였다. 양관이 매일 같이 숨어 들어와 수련모습을 훔쳐 보는 것을 황비홍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으나,그의 무예에 열성적인 마음을 알고 그냥 두었다가,어느날소리없이 닥아가『어때 좀 알 수가 있겠나』하자 양은 크게 놀라고 당황하며 자신의 행동을 사과 하였다.황은 웃으면 용서하고 정식 제자로 받아 자신의 무예를 전수하니,양관은 약관20세에홍가권 무예에 대성 하였고,황비홍의 애제자되였고,황의 명령으로 과란,채란,선어란(菓欄,菜欄,鮮魚欄)3란시장 상인들을 무술지도하게 되었는데 그러나25세의 젊은 나이에 불치병을 얻어 죽었다.鬼腳七」梁寬最為有名,可惜在廿五歲時便去世了.

 

2)임세영(林世榮):임세영은 원래시장에서源記肉店정육점을 경영하던사람이다.그러서 시장사랑들이 그를 돼지장수(豬肉榮)저육영이라불렀다.처음부터황비홍의 제자가 아니고 임복성와오전미(林福成和吳全美)이란 두스승 밑에서 무술을 수련 하였다.후에 황비홍무술명성을 듣고 황비홍의 문하에 들어갔다. 임세영은 성품이 곧고 신체 강건하여 황비홍문하20년동안 황의비권을 가장 잘이어 받았다.그의 功夫는 무림에 유명하였고. 1930년대그의저서로는 호학쌍형권,공자북호권.철선권이 있다.황비홍의 무예는임세영에게 전수 되었다. 임세영는광주에서3개무술관설립하였다고함. 임은 홍가권제자중에서 가장 武勇이 뛰어나고 武勇談거리도 많다.晩年에는 홍콩이주하여 수련생지도하였다.제자는林 祖(임조).趙 教(조교).劉 湛(유담).陳漢宗(진한종)있다.

 

3)능운제(凌雲階):능운제은 황비홍의 친척이며 제자다.그의무공은 높어 황비홍이 가장 아끼는제자중의 하나다. 능의 사형(師兄) 주흥(周興)이란 拳師가 있었는데, 당시 주흥은 선어란에서 생선장수로생계를 잊고 있었다.어느날 능와 주이 무술결투을 하다가, 능이 크게상처를 입고, 홍콩으로건너가 홍감선오에서 도장을 세워(因結仇重傷,逃去香港,在紅磡船塢教拳) 제자를 많이 양성 하였다. 그의 제자중 무림에서 이름난 사람은 양림(梁 林)광기첨(鄺祺添)이다. 후에 광기첨이莫桂蘭도은받다《黃飛鴻正傳》소설으著作함。

능운제)

4)등수경(鄧秀瓊):등은 황비홍의 유일한여(女)제자이다. 그는 황비홍의 부인막계란(莫桂蘭)과는동문 수업한 사이로 친구사이이다. 후에 막계란(莫桂蘭)은 황비홍의 4번제 부인으로 등수경(鄧秀瓊)은 광주지사(廣州知事)오인호 통령의부인이되었다. 鄧과莫는 무술 외에도 황비홍의사자춤(舞醒獅)중 다른한마리의 짝이었는데 막는 사자머리(獅頭)부분을 등은사자꼬리(獅尾)부분을 맡아 했었다.鄧과莫의 사자춤은 당시크게 유명 했었다고 한다. (참고:황비홍사자춤 광동사왕(廣東獅王)있다)

 

5)풍학표(馮學標): 어물점을 생업으로 하여 별명이賣魚燦 라고불렀다. 임세영과 같이유년보내고 洪拳高手호금성(胡金星)제자였었다.임세영과풍학표(馮學標)가 보지림(寶芝林)에입문하자 황비홍은 둘을 따로 나누어林은 보지림연무관에서 馮는 海幢寺연무관에서 각각 수련 시켰다. 횡비홍이 생각 하기를 둘을 같은수련장소에서 연무하면 캍은 기술을 배우니까 각기 다른 무예를 배워주기 위해서 였다.풍는임세영보다 약간 덜 배웠고.풍는 후에 임세영과 같이 민국초기의 廣東武師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馮의무술기법은梁아무게하고邵漢生(소한생) 잘 전수 되었다.

 

6)진전표(陳殿標):진의 兒名은陳錦泉(진금천)이다.陳도 항비홍이 아끼는 제자이다.

유영복(劉永福)장군 소계편지를,광서성(廣西省)제독(提督)의 소원춘(蘇元春)장군 휘하군문(軍門)에서 교련직을 보았다. 蘇장군 밑에서 있게된 동기는 광동성의 유영복장군에게 무예에 뛰어난 몇 사람을 보내 줄 것을 부탁했는데 진전표(陳殿標)이 유장군의 눈에 들어 뽑혀지게되다. 陳이 소장군에게 갔을시 소장군은 당시 월남(越南)을 공무차갔었기 때문에 소장군은 보지 못하고 교관직만 받아 군대를 훈련하면서 廣西省에 무술도장을 세워 제자를 키워내니 홍가권무예가 광서성에 퍼지는데 陳의 공로가 컸다.

 

7)수노울와수노언:(帥老郁와帥老彦):帥氏는 삼촌과 조카 사이다. 이돌은 중국의 고전옷을 지어 파는 비단상인 이었다. 황비홍에게 홍가권을 배워 대성한후 둘이서 무술관을 세워 제자를 양성하여 홍가권 전파에 큰 공을 세웠다.제자는李中榮(이중영)이 유명한다.

 

8)훤경주(禤鏡洲):황비홍의 말년 제자로서 기술과 功力가 뛰어났다.후에 마카오(澳門)대삼파가(大三巴街)에서 무술관을 개설하여 제자를 키우니 홍가권무예은 마카오에서도 크게 전파 되엇다.그에제자는 양중천(梁中天)를 유명한다.

                  (임세영)         (막계란)             (훤경주)                

 

   

黃飛鴻的小說(황비홍주인공로한무협지)

 1933年,朱愚齋저서《黃飛鴻別傳》。

 朱愚齋저서《黃飛鴻江湖別紀》又名《黃飛鴻行腳真錄》,《黃飛鴻正傳》

 念佛山人的《黃飛鴻傳》、《黃飛鴻外史》。念佛山人名許凱如

   1942년連載於《大光報》連載於1946년《黃飛鴻外史》《南風》。

 鄺祺添的《黃飛鴻正傳》。忠義鄉人的《黃飛鴻再傳》、我是山人的《黃飛鴻正傳》、禪山人的《黃飛鴻  與無影腳》、是香山人的《黃飛鴻再傳》、馬雲的《花地殲惡霸》、《大鬧丁家莊》、任流的《少年黃飛鴻》;歐陽歡者,也著有《武狀元黃飛鴻傳奇》。韓春萌的《武林奇俠黃飛鴻正傳》2005年出版。《嶺南奇俠傳》、《少年黃飛鴻》、《南海舊事》、《簡明廣東史》。「我是山人」(原名陳勁)的南少林軼事小說.

 

   

참고서적:工字伏虎,虎鶴雙形,鐵線拳,嶺南武術叢談,嶺海武林,粤海武林春秋,少林演義,少林英雄傳,黃飛鴻傳奇,少林拳譜秘笈,少林拳術秘訣,當代武林(雜誌)南少林軼事.

 

                                                                         한국홍가권  삐 수신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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