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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변기, 미술관에 전시되다

작성자블루비니|작성시간04.05.25|조회수193 목록 댓글 0
미술가 뒤샹, 변기 출품


1917 년 4월 10일

예술과 생활 용품의 울타리 터


화장실 변기를 미술관의 예술품으로 전시한다면, 그리고 거기에 <샘물>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변기 제조회사의 상표는 예술가의 사인과 만나고 배설물은 청정한 물과 만나게 된다.


' 아래로 흐르는 것은 위로 솟는 것과 관련을 맺는다. 예술이란 실체가 아니라 이 엉뚱 하고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차이와 변화이다. 이 평범한 변기 하나에서 다다이즘, 쉬 르레일리즘, 오브제 아트, 팝 아트 등 수많은 20세기의 전위 예술 운동이 탄생한다. 콜럼버 스의 달걀과 뉴턴의 사과가 20세기 변기가 된다.' (이어령)




1917 년 4월 10일, 뉴욕 그랜드 센트럴 갤러리에서는 미술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반 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앙데팡당전. 참가비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젊고 패 기만만한 작가들의 전시회였다.


그러나 전시장에 남성용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등장한 것이 다. 고상한 전시장에 변기라니...? 주최측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출품자는 이 전시회의 운영위원이기도 한 마르셀 뒤샹. 그는 어느 공중 화장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남성용 변 기를 떼어다 <샘물>이란 제목을 붙이고 R. Mutt란 이름으로 서명, 당당하게 작품이라고 시 치미를 뗐다.


R. Mutt는 실은 뉴욕의 변기 제조업자인 리처드 머트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
다. 다른 운영위원들은 난감했다. 이 작품을 걸 것인가, 바닥에 놓을 것인가? 아니, 이런 작 품을 전시해도 될 것인가?


변기는 결국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 칸막이 뒤에 버려지는 운명 이 되었다. 전시가 끝나자 뒤샹은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잡지 <눈먼 사람>을 통해 기다렸다는 듯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 참가비 6달러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가 있다. 리처드 머트 씨의 작품 <샘물> 을 거부한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혹자는 그것이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머트 씨의 <샘물>은 부도덕하지 않다. 머트 씨가 그것은 직접 자기 손을 제작했는 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배치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마르셀 뒤샹(1887-1968), 20세기의 숱한 미술가들 가운 데 그만큼 생전의 무명과 사후의 영광이 극적으로 대비된 작가도 드물다.


그는 만년에 미술 가를 포기하고 체스(서양 장기) 연구에 생애를 바쳤다. 그러나 뒤샹이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을 만든 두 거장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뒤샹의 변기가 함축한 것은 '예술은 더 이상 풍경이나 인물을 손으로 재현하는 테크닉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였다.


[ 그것은 예술가의 정신, 그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



그리하여 뒤샹은 예술 작품과 일 상 용품의 경계를 허물었다.


뒤샹의 미학은 물건이 넘쳐나는 대량 생산 시대의 미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뒤샹으로 인해 20세기의 미술 관람객들은 눈앞의 작품뿐 아니라
뒤에 숨은 작가의 정신까지 이해해야 하는 난감함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찌그러진 자동차, 푸줏간의 고깃덩이, 살아 있는 뱀이 예술 작품으로 전시되는 시대 에 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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