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마녀 사냥이 지닌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 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로부터 인간의 형태를 한 가상의 괴물들(마녀)에게 전가시켰다는데에 있다.
.....
마녀사냥은 부의 재분배와 사회계급 타파를 요구하고 교회제도와 사회제도에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가난한 자들로부터 없애버렸다. 마녀 사냥은 사회 특권층의 마법적 총탄이었다.
/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천년 이상 마녀는 민중의 유일한 의사였다. 황제, 영주, 교황 그리고 부유한 귀족들은 무어인, 유태인 출신의 의사를 거느렸다.
그러나 각 계층의 민중들은 단지 '현명한 부인' 들에게 조언을 구할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려움과 존경이 뒤섞인 뉘앙스로 '좋은 부인' 혹은 '아름다운 부인'이라고 불렀다.
/ 쥴르 미슐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현명한 부인' 으로 불리던 범주의 여성들은 전문적인 치료 지식을 가진 일종의 전문가 집단이었다. 현명한 부인이 되려면 일반 가정에서 부인들이 알고 있는 수준 이상의 전문적 지식을 알고 있어야 했으며, 그것은 피임, 낙태를 비롯한 다양한 통증과 질병을 고치는 방법이었다.
2.
이런 '현명한 부인'들은 대개는 가족이 없고 마을 외곽에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마녀의 모습처럼 혼자서 비밀스러운 치료법을 지켜온 것은 아니며, 마을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버섯이나 과일을 채집하면서 약초도 함께 캐고, 마을의 길쌈방에서 여러 부인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했었다.
그녀들이 다룰 줄 아는 약재는 100 가지가 넘었으며, 이 중 많은 부분이 현대의학에서도 전승되어 쓰이고 있다.
3.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대학 교육을 받은 전업 의사들이 이런 '현명한 부인'들이 조직적으로 커 가는데 경쟁심과 위혐을 느끼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명한 사례중에 1322년 파리에서 마녀로 처형당한 '쟈코바 펠리시'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기록에 남아 있는 그녀의 죄목은 다음과 같다.
' 이 여자는 속병을 앓고 있거나 상처나 기타 신체 외부 질환을 가지 ㄴ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이 여자는 아픈 사람들을 집요하게 방문하였다.'
의사가 포기한 후 그녀의 치료를 받고 살아난 사람들이 그녀의 선처를 호소했지만 이런 호소가 오히려 그녀를 화형에 몰아넣고 말았다.
4.
유럽 초기의 역사에서 여자는 치료 영역을 대표하는 존재였으며 그 치료 방식은 가정간호를 중심으로 약초를 이용해서 병을 고치는 것이다. 남자는 처음에는 치료사로서 별 존재가 없었지만 차츰 병원 및 의사 자격부여와 같은 제도적 조직을 중심으로 해부학 등 외과적인 기술을 이용해서 치료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아간다.
...
이에 비해 여성들의 영역은 비공식적이었지만 실제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역사서에서는 얼른 눈에 전모가 띄지 않지만 신화와 문학 , 민담을 통해 그 압도적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5.
여성 치유사의 모습은 중세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르네상스기 무렵부터 치료해주는 여성의 모습을 역사서는 물론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400년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치료공간에 여성이 등장하지만 의사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간호원으로서 '나이팅 게일' 은 의료계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6.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안다. 치유 능력이 있는 여성들이 마녀사냥을 통해서 철저히 제거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악하고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집단이라는 마녀의 이미지를 처음 만든 것을 교회였지만,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안정적인 소득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정부, 대지주, 의사들이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여성들이 주도했던 의료영역을 파괴해갔다.
그 과정이 그렇게 길고 처참했으며 이를 위해 지금올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기 조작과 권력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그 획탈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반증한다.
/ 이진아 '녹색평론 2004년 7 ~ 8 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