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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내용]낭만주의의 뿌리 - 계몽주의와 임마누엘 칸트

작성자블루비니|작성시간07.12.29|조회수851 목록 댓글 0

 

고전적 즉 클래식 classic 하다라는 말은 17세기 이전의 ancient 를 의미하는데 보통 서양에서 고전을 연구한다는 것은 플라톤에서 단테까지를 연구한다는 말이다. 단테 '신곡'이 고전 입문서다. 기본이었다는 말이다.

 

서구사상의 3가지 기본명제

 

1. 모든 진정한 질문은 대답이 존재하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질문도 아니다. '진정한'이 핵심이다. 질문이 개판이면 답도 없다.  문제설정방식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우리는 대답을 할 수 있다. 문제설정방식을 공유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갈라진다. 노무현 FTA 반대자들은 문제설정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대화가 안되는 것이다.

 

2. 모든 답은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수단을 통해 발견되며,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사물간의 관계는 어떠한지, 인간의 위치는 어떤지,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누구나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능하다.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이 부분에 동의한다. 그런데 도인은 ''를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단다. 느껴야 된단다.

 

제대로 된 철학적 이론을 체크할 때 이런 요소를 체크해보라.

 

1.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지 

2.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3. 그 안에 인간론은 무엇인지 

4. 인간관계, 사물과의 관계는 뭔지 

5. 학설의 윤리적 가치는 무엇인지

 

이런 요소가 일관되게 전개되어야만 철학이다. 철학책이 이런 거다.  안 그러면 사이비도사 밖에 안된다.

 

3. 모든 대답은 모순이 없어야 한다. 아니면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얘기다.

 

 

 플라톤

 

고대 플라톤은 기하학, 수학적 모형을 따르고 있다. 세계를 이해하는 '객관적 진리기준'이 있었다는 얘기다.  요즘엔 그걸 '패러다임'이라 부른다.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전형'이다. 한마디로 붕어빵틀이다.  고대 철학책은 '국가'에서처럼 교육적이다. 어딘가에 완전한 통찰이 있다는 것이다. 엄격한 훈련과 방법론이 있다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 이후로 서양철학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이다. 이해가 가능하다. 그래서 세상을 합리적으로 만들자고 한다. 보편적 이성을 세상에 적용하면 고대의 비극과 악 등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서양철학자들의 오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서양사상의 기본적인 모형이다.

 

 

모형의 폭력성

 

모형은 단순하게 만든다. 숫자로 모든걸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는 모두 제거된다. 이건 폭력적이다.  그러나 불가해한 세상에서 해방하는 효과를 가진다.

좌파야 우파야? 이런건 모형적인 사고를 하고 싶다는 얘기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기 카테고리안에 없으면 이해가 안되니까 늘이고, 잘라서 뜯어맞추게 된다. 이것이 모형의 폭력성이다. 경험 전체를 설명하는데 실패하고 단순화 하다보니 세세한 내용은 추상화 될 수 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는 수학적 모형이다. 근데 고대 그리스 텍스트가 이해가 안 되는 이유는 일단 그 사람의 모형을 모르고, 그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모른다는데 있다.

 

 

30년 전쟁(1618 - 1648) 과 경건주의

 

서양의 철학, 정치경제, 예술에 대해 이해하는데 있어서 30년 전쟁이 대단히 중요하다.  카톨릭과 신교가 싸웠다. 회의주의 태도가 생긴다. 뭘 믿든 싸우지 말고 살자. 그냥 열심히 믿어 ! 이게 훌륭한 태도가 된다.

 

30년 전쟁이 독일 낭만주의 역사에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 전쟁은 독일 사회를 많이 파괴했다. 독일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당시 독일은 정치,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었고, 통일도 되지 못했다. 게다가 합리주의가 사회에 완전히 침투한 적도 없었다. 사실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조차 없었다.  이게 당시 독일 계몽주의의 현주소다.

하우저의 지적을 보면 당시 독일 지식인의 후진성으로 그들은 경건주의, 낭만주의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이 런게 30년 전쟁의 영향이다. 이 전쟁으로 완전히 망했다. 지식인의 역할이 무시되고, 계몽주의는 없었다. 이러면 이상주의로 치닫는다. 정치는 권력자에게 맡겨버리고 세속적으로 관여를 안한다. 지식인은 현실적으로 무력해진다. 이래서 독일 철학은 인류 보편성으로 간다. 칸트나 괴테가 세계 문화를 주장한것도 이런 맥락이다괴테는 공무원에 불과했다. 독일 지식인의 이 엄청난 괴리가 바로 30년 전쟁 때문이다. 그래서 고집스럽고,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정관적이고, 난해하다. 남을 고려해서 글을 쓸수가 없다. 왜냐하면 읽일리가 없기 때문이다.  헤겔 정신현상학을 보라. 시체를 '존재의 비생동적 상태' 한다. 피히테, 셀링 다 그렇다. 독일 낭만주의속에 경건주의의 뿌리가 이런 배경속에 있다.

 

경건주의는 낭만주의의 근간이기도 하다. 깔끔주의자들로 파시스트들이다. 안 깔끔한거 싫어한다. 무조건 밀어붙힌다. 인종 청소를 봐라. 게다가 영적인 생활을 강조하고, 지식을 경시한다. 이런건 배우고 가르칠수가 없다. 신과 직접 접촉을 말한다.

 

보편성, 추상적 원리, 무오류성을 철저히 거부하고,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약동하는 그 모습을 긍정한다. 개별성, 창조의 욕망, 투쟁 욕망을 긍정한다. 한마디로 생의 약동이다.이런 생각은 하만에 의해서 정점에 이르는데 이는 계몽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다. 

 

 

데카르트와 비코

 

데카르트는 중세 스콜라 철학에 반대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전에는 내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전거 authority 가 다 해준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전거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역사, 레토릭, 웅변을 개무시한다. 내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수학적 방법론으로 스콜라 철학에 맞섰다.

비코는 이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요즘 대단한 의미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비코는 데카르트와 대결했다. 그는 내부적 지식(정신과학)과 외부적 지식(자연과학)을 구별했는데 내부적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연세계와 구별되는 역사세계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해방식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래서 비코를 역사학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한다. 

 

데이비드 흄

 

흄은 계몽주의를 뒤흔들었다. 그에 의하면 인과율은 필연성이 아니라 개연성에 근거하고 있다. 게몽주의가 밑바닥에 깔고 있는  자연과학의 인과율의 필연성을 흔들었다. 그런데 16세기 이후에 영국, 프랑스 지식인들은 말빨이 어느정도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놓았다. 계몽주의가 이미 퍼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 계몽주의는 별로 퍼지지 않았다.

 

  

계몽주의

 

18세기의 핵심 키워드는 세속국가, 자연과학이다.

 

계몽주의에 의하면 삶과 예술도 보편적 법칙에 따른다. 인간사, 윤리, 예술 철학도 그렇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영향력도 있었다. 계몽주의는 핵심적 단절 운동 중 하나이다.  그런데 종교를 부인했지언정, 적어도 계몽주의가 깨뜨리지 않은 건 '세계를 파악하는  객관적인 진리모형이 있다' 라는 명제다. '기본적인 진리모형이 있다'는 데서 낭만주의와는 다르다. 너나 나나 따라야 하는 추상적인 원리가 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다르다.

 

계몽주의의 기본적 태도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걸 확실하게 해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그렇지가 못하다. 아마 99%는 아닐것이다.  사실 계몽주의는 스트레스다. 사람이 다 그렇게 살수가 없다.

이런면에서 계몽주의는 순진하다. 인간을 너무 믿는다. 마르크스도 그렇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건

 

1. 종교적인 신념에 대한 강한 거부감

2. 경험과학적인 증명에 대한 신뢰와 그에 근거한 행위

3.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행동하는것 -> 이게 자본주의와 결부된다.

 

그런데 이게 결국 처음의 계몽주의의 합리성이라는 도덕적 개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으로 날아가버리고, 합리성의 매우 좁은 의미만 남게된다. 이게 자본주의와 결합한다. 경제, 경영서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계몽주의의 문제의식

 

계몽주의는 일단 도그마, 권위, 신비주의, 신앙, 계시 등에 반발하고 이것들을 제껴 버렸다.

한편 수학적 학문 (기하학)에서 연역적으로 제 2 원리를 이끌어내거나 아무런 모순 없이 자연과학적으로 귀납적으로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을 전제한다. 합리론, 경험론이다. 계몽주의는 이 둘을 포괄하는 하나의 시대사조라는 것이다. 철학유파도 아니고, 시대정신이라는 얘기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이것이 계몽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 물리학, 화학에서 정치학, 윤리학, 미학까지 확대 적용하자는 얘기다. 살벌하다. 홉스를 봐라. 생물학에서 국가까지 간다.  이런 게 계몽주의의 기본적 태도다.

 

이성에 대한 깊은 신뢰 -> 보편적 이론 -> 전세계 누구에게나 적용가능함

 

 

계몽주의 시대의 예술

 

계몽주의는 과학이 심지어 예술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18세기 초에는 계몽주의의 영향은 굉장히 대단했다. 그런데 낭만주의니 바로크니 하는 얘기는 많은데, 국내에는 계몽주의 예술사조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계몽주의의 기본 명제 중 하나는 인간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이런게 계몽주의 이후의 발상이다.

계몽주의 이론가중에 빙켈만이 있다. 이 사람도 계뭉주의 시대에 바탕한 사람인데, 고대 아트 ART 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때 아트는 기술이었다.필요하니 갖다쓴것이다.

세월이 지나다보니 '작품'이 되었다.  계몽주의시대의 예술은 형식, 균형, 조화미를 강조했다.고상함, 비례가 중심이 된다. 아무튼 계몽주의의 전제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설정하고자 한다.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자 ! 심지어 예술분야에 까지 합리성을 추구한다. 황빠들 무섭다. 뭐라고 얘기해봐야 매국노가 된다.

 

 

계몽주의의 장점과 단점

 

이리 보면 계몽주의의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알 수 있겠다. 긍정적인 면은 도그마, 권위, 미신을 제거한 것이다.  특히 이런 면이 한국에 필요하다. 나이가 권위가 되는걸 보라. 부정적인 면은 도구적 이성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배려가 없어져버린다는 점이다.

 

 

임마누엘 칸트와 낭만주의

 

칸트는 안끼는데가 없다. 사실 칸트는 낭만주의를 혐오했다. 과학의 신봉자였다. 그럼에도 낭만주의의 아버지다. 그는 인간의 자유에 경도되었다. 이게 낭만주의로 이어진다. 내 활동의 결과를 통해서가 아니라, 나의 동기, 내면적 목적, 마음의순수성 이런 것은 통제할 수 없다. 이게 바로 인식은 주관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과 통한다. 내적이고 도덕적 삶에 열렬히 몰두한다.

 

 

칸트는 과학의 신봉자였고 과학을 가장 심오한 학문이라 생각했다. 순수이성비판은 순수수학, 물리학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하려 했다. 그런데 칸트는 인간의 자유에 경도되기도 했다. 그는 안간의 내면적 자유를 구속으로 부터 해방시키려 했다. 이런 사상이 낭만주의의 저변에 놓이게 되었다. 헤겔이 철학을 보면 그도 고도로 이성적인 철학인 것 같으나 그 밑에는 헤겔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낭만적인 추동력이 있다. 사실 니체 따위는 칸트에 비하면 아주 하수다. '신은 죽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칸트가 이미 신의 목줄을 단번에 끊어버렸던 것이다. 칸트는 신의 암살자였다. 대놓고 외치는게 아니라 규모있고 체계적으로 신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인간 고유의 것'을 세워놓았다. 

 

칸트의 자유와 계몽

 

칸트의 자유는 엄격한 자기절연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안에서만 웅크리고, 떼거리로 뭉치지 않는다.  칸트도 30년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외부 세계는 부정의하다. 그래서 '참된 자아'라는 내면적 성채로 도피해 들어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면적 자발상, 동기의 문제에만 관여하겠다는 거다.  여기에서 칸트는 동물은 미리 결정된 인과관계에 따르고,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가능한 자유의 법칙이 있다고 보았다. 옳은 일에 대한 의무, 자연적인 본성을 버리는 결단과 선택을 강조했다.여기까지는 낭만주의와 관계는 없다.

 

결국 인간의 자유는 충분한 자신의 이성을 자기의 결정에 따라 독자적인 힘으로 활용,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계몽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계몽은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계몽은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계몽은 인간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사람은 계몽의 단계까지는 가줘야 한다.  계몽은 반 권위주의의 원리가 있다. 칸트는 규모 있고 체계적으로 '계몽'을이야기 했다.

 

사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전선이 분명하지는 않다.  겹치는 지점이 존재한다. 칸트가 대표적이다. 칸트는 억제된 낭만주의자다. 내면적 자유를 말한다고 무조건 낭만주의자 할수는 없다. 물론 칸트와 공통점도 있었다.

 

순수이성비판의 시도

 

이성의 한계를 음히하고 되먹지 못한 이성 사용을 비판하는 책이다.  저 바깥 세계에 대한 인식을 포기한다. 인식이 오성의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이건 주관이 만들어낸다. 이런 주장이 낭만주의로 연결된다. 인식도 못하는걸 왈가불가 하지 말자. 이런 면에서 억제된 낭만주의다. 물론 낭만주의의 싹은 조금 있다. 그런데 이게 헤겔에서 절대정신으로 이어지고, 인간이 신의 위치로 올라간다. 셀링, 헤겔에 이르러 낭만주의는 활짝 핀다.

 

칸트는 서양철학의 인식론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진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칸트는 물자체는 알 수 없다 했다. 있기는 있는데 조심하자는 거다. 그런데 낭만주의는 아예 포기해버린다. 객관적 현실을 완전히 포기한다. 막가파가 된다. 이래서 계몽주의와 정반대 입장에 선다. 

 

/ 강유원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중에서 발췌, 요약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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