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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내용]낭만주의의 뿌리 - 낭만주의의 핵심과 배경

작성자블루비니|작성시간07.12.29|조회수350 목록 댓글 0

 

낭만주의의 의미  

 

이사야 벌린이 생각한 낭만주의는 잘못들어가면 죽는 것이다. 벌린이 보기에 낭만주의는 서구세계의 삶과 사고를 가장 근본적으로 바꾼 가장 광범위한 근대의 운동이다. 당대의 상상력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고, 거대하고 급진적인 변형이었다. 그 이후 이만한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의 핵심

 

느닷없는 습격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공포시대가 열렸다.

내면에 관심이 많아졌고 우울, 천재의 약동성이 강조되었다. 낭만주의의 세기말적 분위기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를 파악하는 객관적 틀이 없게 된다. 내명의 열정, 태도가 중요해진다. 이성을 신봉하느냐 하는건 중요한일이 아니다. 열심히 믿으면 이슬람이라도 인정한다.  무엇이 되었건 내용은 따지지 않는다. 헌신적인 노력과 망설임 없는 자세가 핵심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풍경

 

그 시대를 잘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상황속에 감정을 이입해들어가는 것이다. 몸을 한번 담가본다는 것이다. 18세기는 합리주의가 극단으로 갔다. 여기에 가로막힌 인간의 감정은다른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낭만주의 시대처럼 극단적으로 비합리적인 인물이 많았던 때는 없었다.  예를 들어 프리메이슨과 같은 성당기사단, 요즘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신비주의자, 사기꾼, 점쟁이 무리들이 이때부터 번성하기 시작했다. 독일에는 '관상'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었다.

18세기에 계몽주의가 절정에 달하기는 했어도 그 이면에는 신비주의가 많았다. 그 중심에는 하만의 '경건주의'가 있다. 이는 신비주의적 생기론으로 자연을 토해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역사에도 이를 적용한다.  헤겔도 신화가 자연의 신비를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라 했을 정도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이성적 판단을 중시한다.  그런데 여기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구조의 뒷면까지는 못나간다. 어떤 구조를 누가 세운다는 걸 생각도 못한다. 칼 포퍼가 그렇다. 다만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소위 리버럴은 개인의 이성적 판단을 존중한다. 그런데 개인은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구조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리버럴은 구조에 매달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개인의 열정만 호소할수도 없다. 이리저리 피곤한 생각이다. 이렇게 사는게 어렵다. 돈이 많으면 가능하다.

 

소수만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중은 그냥 정념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라는 것이다. 서구사상의 핵심내용은 계몽주의다. 그런데 낭만주의는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관계가 있다.

 

 

헤르더

 

이 사람들은 낭만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사람은 아니다. 사상적 위치는 없다.그러나 정서적으로 중요한 사람들이다. 낭만주의가 기성종교(카톨릭)으로 되돌아와버린다.

 

특히 칸트와 헤르더  두사람은 낭만주의에 영향력이 가장 컸다. 칸트는 사실 낭만주의의 신랄한 비판을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낭만주의를 발전시킨 인물이기도 하다헤르더는 철학사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독일 사상사에 많이 거론된다. 보통 칸트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독일의 경우 헤르더가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이 있었다.  헤르더는 표현주의, 인민주의, 다원주의를 창시했다. 왜 이 3가지가 낭만주의와 관계가 있나?

표현주의 : 수학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

인민주의 :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개념(계몽주의)

다원주의 : 각자의 힘, 내면의 진실함, 너의 진실기준과 나의 진실기준은 동등하지 않다.

 

헤르더의 최종 결론을 보면 그에게 보이는 진실은 다른이들에게 보이는 진실만큼 타당하다.각자의 기준으로 돌아간다. 이게 낭만주의의 강력한 힘이고 강력한 호소력이다. 칸트와 이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칸트에서 진리 기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주관에 있다. 물자체는 알수가 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선험적 오성으로 인간의 지식을 구성한다. 각자가 진리의 탐지자이다. 현대사회의 획일성을 감안하면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낭만주의는 각자 내 잘났다고 주장하는 주의다.  표현주의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언어를 가진다. 컨텐츠가 중요해진다. 언어가 생명력을 표현한다. 무얼 표현하느냐? 어떻게가 아니다.

 

고전주의미학은 수학적이고, 형식에 치중한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하만과 헤르더에게는 예술가의 '심정'이 중요하다. 컨텐츠가 중요하다.  이게 낭만주의다.

 

천재의 개념도 다르다. 고전적인 천재는 다빈치다. 과학적이다. 그런데 낭만주의 천재는 오로지 그 사람만이 드러낼 수 있는 심정적인 것이다. 본받을수가 없다. 여러 종류의

천재가 있다. 예술도 보편적 개념에 따라 접근하면 안 된다. 만들어지는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

 

피히테와 실러

 

독일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피히테에 의해 등장한다. 한국과 일본은 아직 민족주의에 대한 특별한 저작물은 없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위로부터 조직된 민족주의를 가졌다. 메이지 유신 당시에도 일본 인구는 1억이었다. 그게 군국주의와 결합되고 그외 파시스트적 형태들이 진행되고서 민족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헤겔도 칸트 읽기 전에 실러부터 읽었다. 당시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은 실러를 읽었다.  칸트가 아무리 대단한 철학책을 내놓았어도 사람들은 칸트를 열심히 읽지 않았다.  실러를 열심히 읽었다.

류시화, 설득의 심리학 , 이런게 인문학 영역에 있는걸 봐라 그런것들이 대중들과 커뮤니케이션 한다. 실러가 그렇다. 일반 사람에게는 실러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이 실러가 칸트에게 물려받은건 의지, 자유, 자율성,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인간이라는 관념이다. 칸트는 이걸 '미성년으로부터 탈피'라는 계몽의 개념 인데 비해 실러는 뭔가 낭만적인 것을 퍼올린다. 계몽으로 돌아가보면 보편적 이성과 과학적, 합리적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지극히 소박하고 순진한 과학주의 태도가 있다. 이건 자연과학적 합리성으로 귀결되고 계속 추구하다보면 인간은 기계가 될 수 있다. ''이나 ''을 믿지 않는다. 유물론자가 된다. 매사를 물질적으로 보게된다. 20세기를 이해하려면 18세기를 이해해야 한다. 계몽주의, 낭만주의, 유물론자가 넘치던 때다.

실러는 자연은 인간 행동의 기본틀이 될 수 없다했다. 이건 자연과학적 합리주의의 정반대가 된다. 자연은 개척대상이고, 인간의 의지에 복종하는 대상으로 이용하자.

 

17 - 18세기 자연은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살아있는 자연이다. 18세기 자유는 자연과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유는 시민 사회속에 통용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자유는 우리가 오바이트하고 지랄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다. 독일 촌 구석에서 무슨 자유인가? 쉴러의 자유는 내면적 자유, 열정,,, 이런 게 더 맞다. 이게 낭만주의자들에게 영향이 컸다. 쉴러의 비극적 영웅은 자신의 자유를 강하게 추구한다. 운명을 알고도 걸어간다. 고통에 맞서는 태도, 의지를 강조한다.

 

쉴러는 칸트를 반대했는데, 그가 보기에 칸트는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자유롭게 했으나, 도덕 법칙에 속박시켜 버렸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굉장히 엄격했다. 무슨짓을 못하게 한다. 쉴러는 약간 막가파적인 자유로 나아갔다. 실러는 자연에 맞설 필요가 있다. 칸트는 이 정도로 자연과 인간이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쉴러는 문학, 예술 분야에 영향이 있었다. 그런데 피히테는 낭만주의가 정치와 사회로 퍼져나가게 했다. 굉장히 위험한 놈이다.

 

피히테의 철학을 절대적 자아의 철학이라 한다. 칸트의 도덕적 자아와 대비된다. 자아를 사회적 맥락으로 고려한다. 이렇게 해서 민족적 자아로 나아간다. 민족, 인종, 문화에서 보편성이 빠지고 초개인적인 실체로 까지 나아가고 그것들이 독자적인 목적을 가진 독일 민족주의로 나아간다. 독일 나치에 한가닥 영향을 준 사람은 피히테인 것 같다. 독일 민족의 정체성,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피히테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관조적인게 아니고, 세련된 교양으로서 문화가 아니라 액션이다. 끊임없는 행동, 생성과 창조를 말한다. 독일 대학 교수 중에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을 한 사람이라 할 수 잇다.양치기하다가 동굴에서 신비 체험한 야곱 뵈메라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은 창조하는 존재라는 신비주의적인 냄새가 난다. 피히테는 인간의 자유를 극도로 찬양한다. 신비적인 분위기로 간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독일 민족주의가 고양되었고, 이런 배경에서 피히테의 행동이 나왔다. 이론을 실천에 종속시키려한다. 실천에다가 이론을 때려박아 넣으려 한다. 이게 상당히 비이론적이다. 이성은 실천적이며, 실천적인 한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 실천 없이는 지성도 불가능하다. 나는 의욕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다.

 

칸트가 경멸했던 신비주의, 비과학적인 교양 민족주의 등이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피히테에 오면 낭만주의를 단순히 문학, 예술 운동이라 볼 수 없고 시대정신이 된다. 지금 한국은 낭만주의 시대다. ' - 한민국 !!' . 낭만주의 시대가 왔다. 장사가 잘된다. 낭만주의와 파시즘은 반 발짝이다.

 

/ 강유원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에서 필사, 요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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