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말한대로, 계몽이 미성숙 상태의 탈출이라면, 헤르더는 미숙한 민족 정신의 각성을 촉구했다. 여기서 계몽과 각성은 명백히 공명하고 있다.
비록 계몽이 미래를 향하고, 민족적 각성은 과거를 항하지만, 둘 다 바람직한 어떤 것을 위해 현재를 극복한다는 정치적 함축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몽사상을 진보적인 것으로 낭만주의를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도식은 너무도 일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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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는 다른 어떤 의미보다도 지식인들과 인민, 즉 민족 사이의 특정한 관계 혹은 연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낭만주의는 문자 그대로 넓은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반영이다. ............
이런 맥락에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빌린 그 모든 유럽 운동들에 선행했고 그 운동들을 뒤따랐으며, 추인했고, 발전 시켰다. 다시 말해, 낭만주의는 그 유럽 운동들의 감정적, 문학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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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더의 낭만주의 역시 결코 보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낭만주의적 민족주의 사상에는 필경 자유주의적인 민족 자결권의 원리가 깃들어 있었고, 따라서 그가 제국주의를 혐오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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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헤르더는 민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전제정에 맞선 혁명적 투쟁이 인류의 거대한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했다.
/ 장문석 ‘민족주의 길들이기’
단순히 낭만주의가 계몽주의의 반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낭만주의의 출발점이 사실은 칸트이고, 낭만주의의 핵심인 민족주의가 중세 사회의 철저한 계급 질서보다는 진보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보다는 단체, 그리고 영웅을 미화함으로써, 전쟁/파시즘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