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이 세상에서 고독하고 통렬한 적개심의 인물이다.
그는 초기의 크리스챤이나 프랑스의 격정과 같이 이 세상의 이상들은 가치 없는 것이며, 그 미덕은 악덕이라고 주장하고, 그 모든 제도를 부르조아적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러한 제도들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타파되지 않으면 안되는 부패하고, 독재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에 속하는 것이라고 저주하면서 이 세상의 본질,그리고 그것이 대변한 모든 것을 과감히 부정하였다.
숭고하고 느리기 때문에 덜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에 의하여 그 적들을 멸망시킨 세대에 살면서도 , 토마스 칼라일이나 쇼펜하우어를 문명의 뒤안길이나 이상화된 과거로 도피하게끔 했으며 인류의 대적인 니체를 히스테리와 정신병으로 몰아 넣은 세상에서 오직 마르크스 만이 난공불락이었으며 위협적이었다.
하늘에 의해서 자기에게 부여된 과업을 수행하는 세대의 한 예언자처럼 미래의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확고하고 분명한 신념에 바탕한 내적 평온 속에 그는 그가 곳곳에서 목격한 부패와 멸망의 징조들을 증언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구질서가 그의 눈 앞에서 틀림없이 붕괴하고 말 것 같이 보였으며, 그는 누구보다도 그 과정을 촉진시키고 최종 단계에 선행하는 마지막 고통의 기간을 최단화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이사야 벌린 '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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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학자라 분류되는 이사야 벌린은 자신과 지적으로 반대라 할만한 칼 마르크스를 이렇게 높이 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 벌린은 '진정한 보수'다. 나는 이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쇼펜하우어는 마르크스 만큼 강하지도 못했고, 사람들을 경멸했다. 게다가 어떤 이의 비난대로 그의 정치적 견해는 분명 보수적이며, 때에 따라 아주 반 민중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 고흐처럼 그의 집안은 우울증 내력이 있으며, 그 자신은 여자들의 비웃음을 샀고, 자신의 강의실에는 수강생이 한명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다. 그가 자신있게 내놓았던 책은 휴지로 사용되었다. 친한 친구도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예민하고 심약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고, 동물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철학자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감성이 풍부했던것 같다. 이런 사람에게 '혁명'이니 '진보'니 하는 것은 별로 기대안하는게 좋을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정치경제적 관점을 과거의 철학자에게 그대로 적용시켜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진보적'이라 할만한 철학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논의를 제쳐두고 아무리 공감하고 위안을 받는다고 해도 돈 없으면 마음놓고 죽기도 힘든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지금, 죽은지 100년이 넘은, 그것도 서양의 어떤 한 철학자만을 좋아하고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을 공부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한참 멀것이다.
그러나 철학사 전반을 참을성 있고, 균형있게 공부하면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 통찰력을 보여준 철학자를 탐구해보고 그 철학자가 제시한 형이상학적 기반에 '뼈와 살'을 붙여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고통에 대해 쇼펜하우어 만큼 통찰력을 보여준 철학자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그의 삶과 철학에 대해 이것 저것 궁리하고 있는 것이다.
/ 블루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