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도구주의
합리주의
합리주의는 어떤 변하지 않는 유일한 보편적 기준이 있어서 경쟁하는 이론들을 평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론이 가진 보편성과 비(非)역사성을 인정하며, 보편성을 잘 충족시키는 이론을 수용하고 그렇지 못한 이론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합리주의에 따르면 보편적 기준에 따라 과학을 평가할 수 있다. 경험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점성술은 그렇지 않다. 관찰된 사실로부터 이끌려 나오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
상대주의는 어느 과학 이론이 더 나은가는 전적으로 개인이나 공동체에 달린 문제라는 입장이다. 즉 개인이나 공동체가 어떤 것을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가에 따라 탐구 목표가 달라진다. 따라서 다른 지식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한'과학'이라는 독자적인 범주는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과학자가 어떤 결정을 필연적으로 내리게 하는 보편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자의 개인적인 관심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
라카토스는 입심이나 신앙으로 이론을 평가하다보면 진리는 다수결이나 힘에 의존하게 되며 과학적 변화는 군중 심리의 문제가 되고, 과학의 진보는 시위 효과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비판한다. 즉 종교 개종과 비슷하게 된다.
반면, 쿤은 이와는 달리, 관련한 공동체의 합의가 이론 평가의 최상의 기준인데, 기준은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 . 따라서 심리학적, 사회학적 분석에 의해 과학의 진보를 설명하고, 이론을 수용, 거절 하는 과정에서 가치가 인식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 이론이 과학이냐 비과학이냐의 구분은 그 이론이 어느 정도로 정상과학의 전통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딱 일정한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의 이해와 무관한 합리적 기준을 가진다는 것은 망상이라는 것이다.
도구주의
과학 이론의 내용은 실재를 기술하는게 아니라 관찰 가능한 사태들을 관계짓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분자, 전하 이런 것들은 바로 이런 관련지음을 가능하게 하는 '편리한 허구' 일 뿐이며 과학 이론은 관찰된 현상들을 서로 관련짓는 일련의 규칙에 지나지 않는다.
도구주의에 대한 비판
모든 관찰은 이론 의존적이라고 보면, ‘과학 이론은 관찰된 현상들을 서로 관련짓는다는 ’ 문장은 얼른 모순이 생겨 버린다. 그리고 과학 이론으로 새로운 추측을 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는 도구주의의 주장과 맞지 않다.
이런 도구주의와는 달리 실재론은 세계의 측면과 형태를 올바르게 기술한 것이 참된 이론이라는 주장인데. 세계는 인식주체인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전제하고 있다. 참된 이론은 개인이나 집단의 믿음에 관계없이 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실재론 입장이 이론의 발견 가능성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대담하며 더 생산적인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