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도 많이 바쁘답니다
임래호
자랑은 물론 아닙니다
아무튼 저는
한심스럽게도 백수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놀리듯이 그런답니다
'당신은
시간이 많이 남아도니 한가해서 참 좋겠수다'
라고 말입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백수가 과로사로 죽는다'고 말입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단지 백수라는 그 이유로
정말로 제가 세상을
얼렁뚱땅,
설렁설렁,
건성건성,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들 여기시기에,
나는 너무나도 억울해서
과연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제 일상을 자세히 소개를 좀 해 드릴까 합니다
그렇지요!
백수에게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은
남들과 똑같이 반드시 다가 선답니다
그렇기에 저는
나를 찾아온 그 계절들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감사하고 따뜻하게 맞이를 하는 것이지요
그랬습니다
매서웠던 지난 겨울은,
백수인 저에게는
너무나도 춥고 배고픈 설움의 계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게 다가서는 따뜻하고 온화한 그 봄님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밝고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많이도 바쁘답니다
여름 또한 마찬가지지요
많이 가진 사람들이야,
뜨거운 여름철에도 에어컨을 틀어놓고
맛난 냉면이나 얼음 동동 띄워진 과일화채들을 맘껏 먹으며 시원스럽게 보낼 수 있다지만,
백수인 저는
전깃세가 아까워 선풍기도 못 돌리고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 대느라 무척이나 바쁜 것이지요
그래도 더우면,
있는 사람들은
해수욕장을 찾는다,
계곡을 찾는다, 해서 더위를 피한다지만
백수인 저는
기껏해야 동네 노인쉼터나
에어컨 팡팡 돌아가는 가까운 은행을 찾아가
은행경비원의 눈치를 살피며 잠깐 더위를 식히고 오는 것이 고작인 것이지요
그래서 백수는
더운 여름날에도 무척이나 바쁘답니다
가을 또한 그러하지요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들을 하느라 기쁨이 넘쳐나고,
단풍 구경들을 하러 떠난다며 즐거워들 한다지만
백수인 저는 뱀이나 개구리들처럼 겨울잠을 잘 수도 없기에,
곧 다가설 겨울을 위해 두꺼운 옷이라도 한 벌 더 준비를 해야만 하느라
싸디싼 구제 가게라도 기웃거리며
온동네를 몇 바퀴씩 돌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추운 겨울을 견디고견뎌 또 이듬해의 봄을 다시 정중히 맞이하고...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백수는,
하루살이처럼 아스라한 삶을 살기에
매일매일 맞는
아침과 낮과 저녁도 절대로 등한시 할 수가 없답니다
솟아오른 오늘의 태양을 바라보며
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낮에는 또 내게 시시각각 다가서는 시간들의 호흡을 느끼고,
그 미세한 시간들의 신경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서조차도
그 누구보다도 더 간절하고 진실되게 내일의 기도를 드린답니다
아프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프지 말라며
반찬은 션찮드래도 세 끼 밥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야 하고,
고급 안마기가 없으니 틈만나면 맨손체조나 숨쉬기 운동도 열심히 해야만 한답니다
그러니 제가 백수지만
얼마나 바쁜 삶을 사는 것이겠습니까
그것 뿐이겠습니까
저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배구의 김연경이나
농구의 박지수나
탁구의 신유빈이나
골프의 고진영 김효주 김세영..
높이뛰기의 우상혁
수영의 황선우 김우민..
축구의 손흥민 등
그들이
몇 골을 넣고,
몇 골을 성공하고,
어떤 결과를 얻었으며,
팀이 승리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전혀 관심을 안 쏟아도 되겠지만,
만약 그들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국가를 위해 경기를 한다치면,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해야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더군다나 4년만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같은 중요한 경기는
예선전부터 죽어라 응원을 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백수를 바쁘게 하는 일들이
그런 것들 뿐이겠습니까요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가끔 영화도 봐야 하고, 또 겔러리 등도 찾아가서 교양도 쌓아야만 하고, 클래식 음악도 자주 들어야 되고,
또 남들과 잘 어울려야 하니
노래방에 들러 트로트도 연습을 해 둬야 되고...
그렇지요?
그러니 제가 백수라도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네, 그래요
매일매일 뉴스도 보면서
정치쟁이들이 잘 못 할라치면 욕이나 손가락질도 좀 해야 하고,
구제역이나 돼지열병이 돈다 싶으면 산 채로 죽어야만 할 그 불쌍한 돼지들과, 그로인해 피해를 보시는 농민들이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도 드려야 되고,
대파값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대도
대통령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다행히 나는 그것은 그냥 넘어가면 되겠지만...
높은 산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나무들은 건강히 잘들 크고 있는 것인지, 도시 도롯가의 가로수들은
현재의 영양상태들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 것인지...
어쩜
대통령은 바쁜 분이시니
그런 시덥잖은 일들은 걱정을 안 하실 것이 뻔하니 백수인 저라도 걱정을 해야만 될 것이고...
북태평양에서 명태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내 일이 아니라고 그냥 말면
다음 날 내 밥상위에 비싼 명태가 못 올라올 게 뻔하니
북태평양의 그 불쌍한 어부가 아니라
내 밥상의 명태를 위해서라도
나는 북태평양에서 조업하는 그 어부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올려야만 하고...
백수가 신호위반을 한다고
착한 나랏님께서 범칙금을 대신 내 주는 것도 아닐 테니
벌금이 무서워서라도 교통법규를 무조건 잘 지켜야만 하고,
분리수거도 꼭 해야만 하고...
백수도 사람이니
누가 나를 깔볼까 봐
모든 경조사도 꼭 참석을 해야만 하고...
그러니 제가
얼마나 바쁘고 힘이 들겠습니까요!
그치요?
그렇습니다!
남들은
남의 얘기를 너무나도 쉽게들 합니다
'당신은 백수라서 한가하니, 늘 시간이 많아서 참으로 좋겠수다'라고 말입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저는 백수지만
남들보다도 열 배나 더 바쁘답니다
밀려드는 시간에 깔려
과로사를 당할 정도로 말입니다!
저는 백수라도
참말로 많이 바쁘답니다요!
임래호 제2시집
<시인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