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Classicism (1750~1800)
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이스와 로마의 단정하고 우아한 양식을 모범으로 한 예술적인 경향과 운동을 가리킨다. 신 고전주의는 로코코의 경박한 취미에 반발하고 단순하면서도 전아한 기풍을 일으켰다. 회화상으로 다비드는 고전주의의 이상을 형식적, 내용적으로 순수하게 실현한 화가였으며, 나폴레옹과 왕립 미술원의 비호 속에 "나폴레옹1세의 대관식"등 영웅을 찬탄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나폴레옹 실각 후 다비드가 벨기에로 망명하고 나서,소묘가 채색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 한 앵그르는 섬세한 선과 균형 잡힌 인체 구도로 신고전주의의 후계자로 활약하기도 했으 나, 점차로 형식주의에 빠져 개성이 상실되면서 낭만주의의 도전을 받게 된다. 그러나 훌륭한 초상화가인 앵그르는 외적 정확성 뿐만 아니라 모델의 내면적 깊이를 훌륭 하게 표현하고 있다. - 주요 화가 - * 네이놀즈 . Sir Joshua Reynolds . (1723 ~ 1792) * 다비드 . Jacques Louis David . ( 1748 ~ 1825 ) * 스튜어트 . Gillbert C. Stuart . (1755 ~ 1828) * 앵그르 INGRES (1780-18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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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 Jacques Louis David >(1748.8.30~1825.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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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대관식 |
마상의 나폴레옹 |
소크라테스의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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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화가. 파리 출생. 19세기 초 프랑스 화단에 군림하였던 고전주의 미술의 대표자이다. 1774년 당시의 화가 지망생들이 동경하던 로마상을 획득하고, 이듬해부터 80년까지 로마에 머무르면서 고전미술을 연구하였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1784)의 스타일은 그의 고전연구의 성과를 나타내는 명작으로, 당시 점차 높아지기 시작한 애국사상의 뛰어난 표현으로서 일약 유명해졌다.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 당원으로서 혁신측에 가담하여,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자 투옥되었다. 그렇지만 후에 나폴레옹에게 중용되어, 예술적·정치적으로 미술계 최대의 권력자가 되어 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앵그르, 그로, 제라르를 비롯하여 19세기 중엽에 활약한 고전파 화가들은 모두 그의 밑에서 나왔다. 역사적 주제를 그린 작품은,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우아·섬려한 것에 비해, 고대조각이 지니는 조화와 질서를 존중하고 장대한 구도 속에서 세련된 선에 의하여 고대조각 그대로와 같은 형태미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형식적으로는 잘 다듬어진 대구상화이긴 하지만, 다소 생동감이 결핍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초상화에서는 고전적인 형식미 속에서 사실적인 묘사력을 충분히 살려 참신한 느낌이 약동하고 있다. 나폴레옹 실각 후 추방되어 1816년 브뤼셀로 망명하였고,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 밖에도 《마라의 죽음》(93) 《사비니의 여인들》(99) 《나폴레옹의 대관》 《레카미에 부인상》 등의 대표작이 있다. 또 《라부아지에 부처상》(1788)과 같은 초상화도 있다. |
| 그로 < Antoine- Jean, Baron Gros >(1771.3.16~1835.1.26) |
아일라우의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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