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버지
아버지도 그리운 존재였던가.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식 사이보다는 대체로 덜 살가운 관계여서일까. 어머니 없는 세상만 천애고아 심정일 줄 알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몇 해이건만 뭉근한 그리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꽃상여 탈 때까지 업보처럼 일만 하셨다. 팔순에 영면하시고야 당신이 감자 심고 고추 심던 밭에 노곤한 육신을 뉘셨다. 어쩌면 상여 타고 밭으로 가던 짧은 봄날이 고단한 이승에서 누린 가장 호강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본가에서 신접살림을 나고도 종종 불려가 머슴처럼 일했다는 아버지는 아무래도 세상을 잘못 만난 게 틀림없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고등, 대학물을 먹을 때 산에 올라 땔감 마련하며 학교에 가고 싶어 울었다는 아버지. 유전자에 흐르는 예능의 끼도 애초에 흙 속에 묻었을 것이다. 올망졸망한 자식들 배 채우고 공부시키는 일이 오롯한 생의 목표였음에. 구두쇠라는 손가락질을 참아내고 마을에서 가장 많이 배운 자식들로 키워놓았다. 그 자식들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면 아마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도시 골목에서 아버지 닮은 사람을 간혹 만난다. 손수레 끄는 노인들이다. 구릿빛에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을 보며 사는 고단함을 짐작한다. 살집 없는 얼굴엔 계단식 논두렁 같은 주름살이 골골이 졌다. 그들 생의 뒤안길인 듯, 생전 아버지 얼굴이 그랬다. 한 번도 볼살이 채워진 적 없이.
늘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치는 손수레 노인이 있다. 폐지나 고물을 주워 담으려고 골목을 출근하듯 도는 시간대일 것이다. 꼭 아버지만 한 작달 만한 키에 바짓가랑이 걷어붙이고 종종걸음으로 손수레를 끌고 간다. 폐지라도 수북하게 실은 날엔 짐에 가려 끄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르막길을 달팽이처럼 느리게 오를 때는, 가던 길이 바빠도 핸드백을 팔에 걸고 슬쩍 밀어주고서야 맘이 편했다.
지난겨울, 날씨가 스산해진 어느 때부터인가, 이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자주 보던 노인이 보이지 않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들리는 말로는 그의 아들이 알만한 병원 의사라든가. 구구절절한 남의 집 사정까지야 알 수 없다. 수레 끄는 걸 볼 때마다 지지리 곤고했던 아버지 생을 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문득, 손수레 노인 안부가 궁금해진다.
손마디엔 옹이가 앉고 손톱은 다 닳아 뭉툭했던 농사꾼 아버지. 당신에게 예인의 기질이 있다는 걸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 알았다. 옛날 기억을 되살려 보면 관련하여 몇 광경이 짚인다. 산골 고향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지신밟기를 했다. 마을 남자들이 장구를 두드리고 징 치고 꽹과리 치며 집집을 돈다. 동네 아이들이 농악대를 따르고 나도 무리에 섞였다. 그때 젊은 아버지는 늘 꽹과리를 담당했다. 깨갱 깽 깽, 꽹과리를 왼쪽 턱과 어깨 사이에 끼고 턱을 앙다문 표정으로 요란하고도 박자감 있게 연주하며 농악대를 이끈 상쇠였다.
마을 사람이 죽으면 집 앞 공터에서 상여가 나갔다. 수십 년 이웃해 살던 사람이 이승을 작별하는 이 날도 아버지는 큰 역할을 맡았다. 장정 상여꾼들이 멘 꽃상여 앞에 우뚝 올라서서 요령을 흔들며 앞소리를 메겼다. 아버지가 북망산천을 들먹이는 구슬픈 앞소리를 가락 곁들여 메기면 상여꾼이 이어받아 뒷소리했다. 소리를 반복하며 상여꾼은 발맞추고 상여는 조금씩 마을을 벗어났다. 이 광경을 담장 너머로 지켜보던 아낙들은 앞치마로 눈물을 찍어냈다. 어른들 틈에서 이를 구경하며 죽음이라는 걸 희미하게 헤아렸던가 싶다. 흰옷 입고 요령 흔들던 아버지 모습이 연극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 선명하다.
아버지는 생의 말년에 일탈 아닌 일탈을 벌였다. 평생 희생하고 사느라 숨죽였던 내면의 아우성을 더는 누를 수 없었던가 보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가 들으란 듯 혼잣말인 듯 투덜대셨다. 네 아버지가 부지깽이도 농사일을 거든다는 농번기에 들일 제쳐놓고 훠이훠이 읍내로 나간다고. 농기구도 일하던 논에 그대로 던져둔 채 새 옷으로 말끔하게 갈아입고 한량처럼 소리를 하러 간단다. 소리대회에서 받아온 상장까지 들춘다. 이런 종이 쪼가리가 뭔 소용이냐며. 솔깃해져서 보니 받아온 상장이 한둘이 아니다. 어머니 타박에 웬걸 흐뭇한 미소가 스멀스멀 피는 걸 숨길 수 없다. 겉으로는 어머니 말에 동조하고 속으론 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냈다. 뼈마디 휘게 일하며 잠재운 끼를 소리로 다독이다니, 얼마나 짜릿한 일탈인가. 평생 처음으로 자신에게 오롯한 시간을 허락했으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으랴.
모든 아버지의 노고는 숭고하다. 어머니 위상에 가린 아버지라는 묵묵한 이름을 새삼 입에 담아보는 요즘. 가족에 헌신하는 세상 아버지들 말년이 따뜻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만화방창한 시절에 아버지 기일이 들었다. 묘소 앞 향나무도, 잔디도 제법 뿌릴 내렸겠지. 편들어주는 딸에게 아버지가 들려주던 지루한 소리 한 대목 듣고 싶다.
‘청사~~안리~~~벽~계~~수~~야~~~’
- 김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