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통신> 1
미국견문록
- ‘늪’과 ‘뭍’의 이중주 -
고 영 섭 (동국대 교수, 시인)
1. 낯선 한국
많은 사람들은 아메리카를 ‘꿈과 기회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전쟁을 먹고 사는 나라’로도 이해하고 있다. 아메리카 미국의 이미지에는 이상을 내포하는 ‘기회’와 현실을 외화하는 ‘전쟁’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한 때 미국은 영국 이주민과 정착민에게는 자유와 평화와 기회의 나라였지만 흑인과 노예에게는 지옥과 같았다. 그만큼 미국은 다양한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있는 나라이다. 이것은 미국 연방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1775~1783)과 남부와 북부와의 시민전쟁(1861~1865) 등을 거치며 오랫동안 만들어온 이미지들이다. 이후 미국인들은 자국 체제와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과 합의를 거쳐 새로운 형식과 가치를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그의 미국문명론인 『미국의 민주주의』(1832~1833년)에서 미국을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천 갈래 길을 숨긴 숲’”이라고 표현했다. 또 우리시대 프랑스 철학자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1948~ ) 역시 그의 미국문명론인 『아메리칸 버티고』(2005~2006)에서 “자신의 위기와 운명에 대해 이토록 근심스럽게 파고드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에 현기증(Vertigo)을 느끼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철학적 정치적 유산 속에는 이 도전들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소재가 존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처럼 ‘한 점으로 수렴되는 천 길의 숲’과 ‘천 길의 숲으로 확산되는 한 점’으로 교직된 나라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앙리 레비의 갈파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다양한 50개의 각 주들은 저마다 독립된 하나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연방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이들 각 주들은 주법과 문화 및 풍토와 기후면에서 차이가 적지 않다. 비행기로 대서양 끝에서 중부를 ‘직항’(none stop) 혹은 ‘환승’(tansformation)하여 광활한 몇 개의 나라(주)를 거쳐야 태평양 연안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부 끝 보스턴에서 서부 끝 로스엔젤레스까지 가려면 비행기로도 시차(3시간)를 포함해 약 10시간은 가야만 했다. 때문에 자동차를 끌고 서부 코스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 해 8월에 이곳에 온 뒤 바깥에서 보던 미국과 안쪽에서 보는 미국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존재했다. 이 거리와 틈새를 무화시켜가는 데에 나는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였다.
우리는 대개 한 나라를 ‘한반도’ 혹은 ‘남한’의 잣대를 가지고 이해하는 데에 익숙해 있다. 해서 종종 우리는 미국을 하나의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는 이미 천 여 년 전에 고구려와 대발해와 같은 ‘제국’의 경험은 있어도 남한은 현재의 미국의 ‘연방’과 중국의 사회주의와 같은 경험은 해보지 못했다. 그 때문일까. 나 역시 이곳에 와서 살면서 미국이 결코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은 전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모여와 살면서 끊임없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 창출한 ‘헌법’과 전 세계에서 끌어들인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이다. 나아가 ‘성조기’와 ‘애국심’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이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있는 나라이다. 이 사실을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피부에 와 닿도록 느끼고 있다. 때문에 인류가 성취한 모든 것을 종합하고 있는 미국 문명은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 눈앞의 리얼한 현실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그들에게는 중국과 일본에 견주어 볼 때 한국은 매우 낯선 나라임이 분명하다.
2. 아메리카의 뿌리
아메리카는 오래 전 몽골 초원에서 건너온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이 첫 주인이었다. 이들은 이곳에 존재하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에 적응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아메리카로 건너온 영국의 청교도들 역시 이곳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겪으면서 환경에 적응하며 아메리카를 개척해 갔다. 그리하여 이들은 민주주의를 실험하며 오늘날의 미국을 형성시켜 왔다. 이들은 자국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 세계 곳곳에까지 군대나 특사를 파견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곳이라도 자국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국민은 아메리카가 지켜내야 할 ‘미국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큰 눈과 비 그리고 큰 태풍과 지진 등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각 주 정부들이 즉시 임시 공휴일을 제정하여 시민들을 적절히 보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다.
처음 영국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청교도들과 죄수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의 도움으로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 청교도들은 차츰 현지에 적응해 가면서 원주민(인디언)들의 땅과 목숨을 빼앗아갔다. 처음 청교도들과 죄인들을 신대륙에 보낸 영국은 뉴 잉글랜드 7개 주의 인디언들을 추방시키고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어 갔다. 이 때부터 미국은 원죄를 안고 출발했다. 이즈음 신대륙 식민지의 본국인 영국은 자국의 산업혁명과 중상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식민지 신대륙 사람들에게 피와 기름을 혹독하게 짜내는[苛斂誅求] 정책을 강화했다. 1754년에는 이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직물 제조도 못하게 하고 영국의 완제품만을 수입해서 쓰게 했다. 그리고 1763년에는 동부 사람들의 서부 이주를 제한하여 광대한 토지를 갖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에는 주요 수입품인 설탕과 당밀에도 세금을 과도하게 부과해 이곳 사람들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식민지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 간의 7년 전쟁으로 영국 스스로가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이것을 신대륙에 떠넘기려고 각종 문서, 신문, 팜플렛에 이르기까지 높은 인지세를 부과했다. 이렇게 되자 이 지역 사람들의 돈은 설탕과 당밀에 부과된 세금을 통해 영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동시에 뉴 잉글랜드 지역은 술 생산에서조차 큰 타격을 입었다. 급기야 영국 정부는 신대륙으로 들어오는 차(茶)에다가도 무거운 세금을 매겼다. 이곳 사람들은 영국인처럼 일상으로 마시는 차에까지 세금을 부과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들은 미국의 역사를 쓰기 위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때는 1773년 12월 16일 밤이었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맞을 준비로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을 즈음이었다. 티 파티(Tea Party)를 주도한 사무엘 아담스는 50 여명으로 청년들로 비밀결사대를 조직한 뒤 인디언 노동자로 가장하여 선박에 접근하였다. 이들은 보스턴 항에 정박해 있던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배 2척에 뛰어올랐다. ‘자유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급진파 젊은이들은 하역작업을 기다리던 차 1,500파운드(3백 42상자)에 불을 지르거나 바다 위에 던졌다. 그리고 그들은 닥치는 대로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이들의 항거를 지켜보던 성난 노동자 농민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본격적인 항의 데모에 합세하였다. 시위가 거세지자 주요항구의 하역작업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중상주의 강화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투쟁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3. 교육도시 보스톤
때마침 시민과 상인들 역시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No Taxtation without Representation)고 외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영국 의회에 참석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영국 수입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며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영국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영국은 이 사태를 신성한 영국 의회의 입법권에 대한 반역이라 주장하면서 탄압의 강도를 높혀 갔다. 이듬해 3월 영국 정부는 보스턴 항을 폐쇄하였다. 그리고 바다에 버려지고 불에 타버린 찻값을 배상하라는 조례와 징벌세법을 제정하여 보복행위를 노골적으로 강화해 갔다.
1774년 미국 각 주의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였다. 그리고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자는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먼저 젊은이들은 식민 본국인 영국 정부의 과도한 세금에 반기를 들었다. 그 첫 번째 의사 표시가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1773. 12)이었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새로운 나라 미국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먼저 수차례의 토론을 거쳐 1776년 7월 4일에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연방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점차 원주민들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영토를 넓혀 갔다. 그 다음에는 노예제 유지 여부를 두고 남북 전쟁을 치루었다. 그리고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 서부 지역 7개 주를 빼앗았다. 뒤이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고 하와이를 합병하여 50개 주로 연방을 확고히 했다.
이후 서부에서 사금을 발견하여 서부를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연방의 재정을 튼실히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끊임없는 토론과 합의를 거쳐 행정의 자치(주)와 정치의 통합(연방)을 담아낸 헌법을 공고히 해 나갔다. 그리하여 이들은 유럽인들조차 부러워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꽃 피워냈다. 그리고 이들은 ‘법’과 ‘돈’ 그리고 ‘자본주의’의 기호로 ‘꿈’과 ‘기회’의 제국을 만들었다. 현재 신대륙에 사는 약 3억 8백만의 인구들 대부분은 이러한 꿈과 기회를 찾아 미국에 모여든 이들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이곳의 시민이 되고자 밀입국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도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의 살육과 추방을 통해서 이루어진 나라라는 ‘원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상처는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미국인들은 근대 이후 강대국인 일본과 러시아와 경쟁하면서 살아왔다. 이제 이들은 중국을 의식하면서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미국의 리더들은 동아시아의 분단국인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들 강대국 사이에서 분단의 현실을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건너와 정착한 미국인들에게는 남한(South Korea)보다 북한(North Korea)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마도 북한의 김일성 왕조의 벼랑 끝 전술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박힌 탓인지도 모른다. 남한에서 온 나는 한국에 대해 낯선 미국인들을 보며 한국을 설명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은 남북한의 분단 현실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
미국 50개 주 중 동북부의 뉴잉글랜드 7개 주에 속한 메사추세츠 주는 영국 식민지의 발상지이자 미국 역사의 뿌리이다. 이곳의 주도인 보스톤은 흔히 ‘그레이트 보스톤’(Great Boston) 혹은 ‘비씨너티 보스턴’(vicinity Boston)으로 불린다. 이것은 약 60만의 인구가 사는 보스턴 타운(Boston Town)을 둘러싼 주변(근린)의 시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미국의 8대 도시인 비씨너티 보스턴에는 약 300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미국의 금융도시인 뉴욕과 행정도시인 워싱턴과 달리 교육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때문에 여기에는 하버드(Harvard, 1636~ )대와 엠아이티(MIT)대를 비롯한 100여개의 대학이 집중되어 있다.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찰스 강 주변에는 60여개의 대학이 모여 있다. 해서 이곳은 미국 북동부 지역 중에서도 가장 교육열이 높은 곳이다. 전 세계의 유수한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교육 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4. 하버드 대학
보스턴의 로간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오면서 나는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 유럽에 온 착각에 빠졌다. 거리 곳곳에 서있는 붉은색 혹은 황토빛 벽돌 건물들은 유럽의 전통 도시의 풍경을 그려냈다. 2008년 6월에 세계불교학술대회를 개최한 조지아주도(州都) 아틀랜타 시의 에모리 대학 주변의 정경과는 너무나 달랐다. 또 최근에 다녀온 로스엔젤레스와 센프란시스코 등와 같은 서부 도시들의 분위기와 달리 유럽의 도시처럼 ‘고전적’이고 ‘역사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버드의 캠퍼스 역시 유럽 전통 대학의 교육과 문화 시스템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내게 체감되었다.
우리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235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미국은 유럽 어느 곳에 뒤지지 않는 역사와 문화를 지닌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시내 곳곳에 서 있는 2~3백 년 된 건물들과 교회들이 유럽의 역사 유적지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이곳이 유럽의 어느 곳이라고 느끼게 될 정도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의 미국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존재했다. 그것은 밖에서 보던 미국과 안에서 보는 미국 사이의 오해의 ‘거리’였다.
세계 대학 순위에서 늘 1, 2위를 고수하고 있는 하버드대학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는 곳이다. ‘하버드(대)’의 ‘부가가치’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관광객들이 보스톤에 오면 반드시 이곳을 필수 코스로 삼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존 하버드 목사상 앞에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하버드 학생회에서도 하루에 대여섯 번씩 교정의 투어를 정례적으로 이끌고 있다. 대개 한 번에 20~50여명의 관광객들이 모여 투어를 한다. 투어가 끝나면 학생들이 벗어놓은 모자에 관광객들은 자발적으로 기부를 한다. 적게는 1인당 10달러에서 많게는 50달러 이상을 넣는다. 이것은 이곳 학생들의 자부심과 관광객들의 부러움이 빚어내는 풍경이다. 미국에 좋은 대학들이 수없이 많지만 여기에서는 하버드대와 MIT 및 예일대의 자부심이 어느 곳보다 높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하버드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제일을 자랑한다. 뿌리가 된 디비니티 스쿨(신학대학)과 세계종교연구센터를 비롯해서 하버드 칼리지 내의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와 범어인도학과 그리고 케네디 스쿨(MBA)과 로우 스쿨(법과대학) 등에 한국 유학생들이 모여 있다. 100여 개가 넘는 도서관 중 1,300여만 권의 장서를 갖춘 와이드너 중앙 도서관과 150여만 권의 동양학 연구 장서를 갖춘 옌칭도서관은 전 세계 아시아학 연구를 뒷받침한다.
아시아센터에는 한국학을 비롯해서 중국학과 일본학 및 내륙 아시아와 인도학 등 여러 분야가 모여 있다. 일본학과 중국학에 뒤이어 한국학은 베트남학과 남아시아 및 내륙아시아학과 함께 연구되고 있다. 1930년대에 체결된 하버드대-연경대학의 학술교류에 의해 하버드대 연경도서관 내에 연경연구소가 개소되면서 중국학은 널리 일반화되었다. 특히 중국학은 ‘페어뱅크(교수) 재단’과 중국학 연구 재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학 역시 ‘라이샤워(교수) 재단’의 후원아래 대대적인 연구를 축적해 오고 있다. 반면 한국학은 ‘와그너(교수) 재단’의 성립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한국 내 몇몇 학술재단들의 지원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하버드 내 한국학 연구의 기반인 옌칭도서관의 한국관은 옌칭연구소의 한국실로부터 출발했다. 이후 한국학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를 기반으로 하여 서두수-에드워드 와그너-데이비드 맥캔(한국문학) 교수로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카터 에카르트(한국현대사), 김선주(조선후기사), 닉 하크니스(인류학) 교수 및 마크 바잉턴 연구교수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다. 옌칭도서관 한국관은 김성하-윤충남-강미경 한국관장으로 이어지면서 한국학 자료가 축적되어 가고 있다. 현재 한국관은 희귀본 4,000여권을 포함하여 약 15만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다. 한국학 연구의 또 하나의 기반인 한국학연구소는 1981년에 동아시아 연구를 위한 페어뱅크 센터의 후원 아래 설립되었으며, 1993년에 하버드대학의 한국학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한국학 연구
한국학연구소는 하버드대 내에서 ‘한국’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연구소는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와 연계되어 있다. 연구소에서는 격주 혹은 매월 단위로 1) 코리아 콜로퀴엄, 2) 어얼리 코리아 프로젝트, 3) 김구포럼, 4) 코리안 시네마테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정기 프로그램 이외에도 비정기적인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한국학연구소는 한국문학 전문 연간 문예지인 『어제일러』(Azalea, 진달래)를 창간하여 현재 4호까지 간행해 오고 있다. 이 잡지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시조와 시 및 소설과 평론 등 여러 장르들을 엄선하여 영어로 번역하여 싣고 있다. 미국 내 한국문학 강의 교재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어 향후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 콜로퀴엄은 미국 내 한국학자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한국학 관련 학자들을 초빙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가을부터 금년 봄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호주 및 영국과 일본 등지에서 온 학자들이 발표를 했다. 주제와 분야는 대개 문학을 비롯해서 역사학과 미술사학 및 정치학과 사회학 등이 대부분이다. 지난 10월 3일에는 「시조의 길: 시적 형식의 다섯 가지 특성의 발견」(데이비드 맥캔 교수), 「퇴계학파의 구성」(조휘상 콜럼비아대 박사), 「선조의 유산: 어떻게 조선왕조 사회는 작동되었는가」(마르티나 도이힐러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 「개발 지원을 통한 남한 발전 경험의 전환의 도전」(김은미 이화여대 교수), 「동화의 유산: 한국에서의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동시대의 오해」(마크 카프리오 일본 입정대 교수), 「1931~1945, 한국 식민지 전쟁시기의 미국 인식」(문유미 스텐포드대 교수), 「1876~1945, 한국 근대 여성사」(최혜월 호주 국립대 교수), 「빠뜨릴 수 없는 처분: 만성 적자 시기의 과잉인구와 일상생활」(켄 카와시마 토론토대 교수) 등의 주제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또 연구소 내 한국고대사연구실이 주관하는 ‘어얼리 코리아 프로젝트’(Early Korea Project)는 한국의 동북아재단 지원을 받아 매해 두 차례의 정기 발표회를 갖는다. 지난해 8월 3일에는 「B.C. 1500 ~ A.D. 950, 정착, 가족, 사회」주제로 강봉원(경주대) 교수 외 2인의 발표가 있었다. 늦가을에는 「고구려와 수당 전쟁」이란 주제 아래 임기환(서울교대) 교수 외 5인의 발표가 있었다. 지난 겨울에는 「영산강 계곡의 철기시대 고고학」이란 주제로 최성락(목포대) 교수가 발표를 했다. 금년 봄에는 「신라와 일본 사이의 결혼동맹」(조나단 베스트, 웨스릴안대), 「고구려 벽화무덤」(전호태, 울산대) 등의 발표가 있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연간지 『어얼리 코리아』(Early Korea, 초기 한국) 시리즈에 게재되며 현재 3권까지 발행되었다.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센터가 지원하는 ‘김구 포럼’은 한국 현대사 관련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포럼에는 주로 한국의 전현직 관료인 및 기업인들이 발표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래 금년 상반기까지 이영조(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스코트 신더(아시아재단 한미 정치센터 소장), 한승수(전 국무총리), 오세훈(현 서울시장), 정종욱(전 주중대사), 김선철(콜롬비아대 박사), 김병준(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교수 등과 기업인인 이상완(전 삼성 LCD 대표) 사장 등이 발표를 했다. 이 ‘김구 포럼’과 함께 한국현대사 이해의 일환으로 ‘한국(남북한) 영화 관람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지난해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의 독립영화들(베즈테리안, 뇌절개술, 사마리아, 택시블루스, 박쥐, 은하해방전선)과 식민지시대 필름들(집없는 천사, 반도의 봄, 미몽, 군용열차, 어화, 지원병, 조선해협, 병정님)을 집중적으로 상영하였다. 이와 동시에 교내 공연 및 영화 상영관인 카핀터 홀에서는 지난 12월에 홍상수 한국감독의 작품들(강원도의 힘, 오! 수정 외 8편)을 특별 상영하였다. 한국학연구소의 금년 프로그램에는 194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한국영화(서울의 휴일, 자유결혼, 청춘쌍곡선, 여사장, 우리의 향기, 미스홍당무 등)를 상영하였다. 이외에도 보스톤 미술관(MFA, Museum of Fine Arts)에서는 지난 해 12월 2일(목)부터 12일(일)까지 ‘MFA 한국영화제’가 열렸다. 여기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홍상수), ‘맨발의 꿈’(김태균), ‘마더’(봉준호), ‘브랜드 뉴 라이프’(퀴니 레콤트), ‘밀양’(이창동), ‘비몽’(김기덕), ‘똥파리’(양익준), ‘영화는 영화다’(장훈) 등의 영화를 상영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선양하였다.
또 하버드대 방문교수(학자)들이 자신들의 전공을 공유하기 위해 격주로 집담회를 열어왔다. 문사철학 뿐만 아니라 도서관학에서 경영학 및 전자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학자들의 전문적인 발표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를 마련했다. 지난 해 10월 초에 시작한 모임[이건창(성대), 도면회(대전대), 고영섭(동대), 전호태(울산대), 김광림(일본 니가타대), 고영진(광주대), 이상완(전 삼성 LCD사장), 이선열(서울대 박사), 박선미(서울시립대 박사), 김사인(동덕여대), 박현순(서울대 박사), 윤충남(전 하버드대옌칭도서관 한국관관장, 보스톤칼리지), 전승희(하버드대), 이영준(하버드대), 김남희(프로페서 미시즈 와그너, 하버드대), 김광림]은 금년 현재 17차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지한 질문과 답변을 거치고 나면 학교 앞 중국식당(홍공, 연경)과 태국식당(태국 퀴진) 및 베트남식당(레)과 한국식당(사부야, 코리아나)으로 자리를 옮겨 토론이 이어진다. 가끔 하버드대 앞에서 제일 오래된 ‘존 하버드 1636’ 맥주집에서 2차를 한다. 그곳에서 만든 맥주를 마시며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눈다. 학교 앞에 적당한 한국식당이 없어 아쉬웠지만 반면 각국의 식당을 오가며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6. 문학의 현장
지난 해 늦가을(11. 10)에는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한국작가(시인) 리딩 이벤트가 열렸다. 이것은 한국학연구소가 한 해에 한 차례씩 한국의 작가(시인)들을 초청하여 작품을 읽는 마련하는 스페셜 이벤트이다. 미국에 건너온 한국의 작가들은 미국 내 각 대학의 한국학연구소에서 마련하는 ‘작품 리딩’ 투어을 통해 미국 문단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이미 적지 않은 한국의 작가(시인)들은 미국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리딩하고 질문을 받으며 이곳 사람들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번에는 하일지 작가와 천운영 작가가 참석하여 각기 자신의 대표작인 『진술』과 『바느질』의 주요 부분을 작가의 육성으로 읽고 청중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에 참석한 한국학 연구 대학원생들과 미국인 참석자들은 작가들의 육성으로 작품을 몸소 체감하며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온 작가(시인)들의 작품은 이미 한국에서 읽혀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원작들은 한국학연구소의 연간문예지 『어제일러』에 영역되어 미국 독자들에게도 널리 읽혀오고 있다. 해서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진 이곳의 독자들은 이들 작품에 대해 크게 주목하고 있다. 이벤트가 끝나자 작가들은 학교 앞에 있는 ‘존 하버드 1636’ 맥주집으로 가서 작품과 그 주변에 담긴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며 참가자들과 뒷풀이 시간을 가졌다.
또 지난 해 초겨울(12. 3-4)에는 옌칭도서관 컴먼 룸(common room)에서 ‘하버드 시조 페스티벌’(Harvard Sijo Festival)이 열렸다. 금요일에는 데이비드 맥캔(David MacCann) 교수(한국학연구소장)의 시조대회 개최에 대한 ‘환영사’에 이어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교수(브리검 영 대학)의 「시조의 매력」(The Magic of Sijo) 강의가 있었다. 정통 미국인인 맥캔 소장과 피터슨 교수가 전통 시조를 얘기하고 자작한 시조를 읽는 모습이 처음에는 좀 낯설었다. 하지만 이내 현대 한국인들도 가까이 하지 않는 시조와 시조창을 벽안의 미국인들이 ‘연구’하고 ‘창작’하며 ‘낭송’하고 ‘노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대 한국인들이 ‘낡은 것’이라고 멀리 했던 ‘우리 것’을 코가 큰 그들이 평생을 ‘자기 것’으로 하고 있는 모습은 커다란 울림으로 되돌아 왔다. 그 순간 “아, 언제나 남들에 의해서 겨우 우리 자신을 발견할 만큼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자기 부정 속에서만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이 내면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이바나 이(Ivanna YI)의 황진이의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의 시조창과 그녀가 이끄는 워크 샾이 계속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텍사스에서 자란 그녀는 시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는 고전 바이올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녀의 시는 음악으로 만들어져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과 커티스 음악연구소 및 카네기 홀에서 불려졌다. 그녀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한국현대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가 정통 시조 명창에게 시조창 사사를 받은 재원이었다. 그녀는 관중들에게 황진이의 시조를 창으로 채보한 ‘청산리 벽계수야’를 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녀는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떻리>” 평시조인 「청산리 벽계수야」를 한 소절씩 선창하며 관중들을 장인 굴곡으로 이루어진 시조창의 맛과 멋으로 이끌고 갔다.
청산 …………-- ㄴ ㅎ리, 벼 ‧‥- ㄱ 계 수 야
수 이 가 ………-ㅁ 으 ‥‥ ㄹ
자 라 ………‧ ‧ ㅇ ㅎ 마 라
일 도 창 하 ………-‥-허 며 …………… ㄴ
다 ㅎ시 오 기 ㅎ
어 ㅎ 려 워 ㅎ 라
명 ………‧ ㅇ 워 …‧ ㄹ 이 마 ……………․ ㄴ 고 ‥ㅇ 사 …… ㅎ ‥ㄴ 허 니
쉬 여 간 ………‧ 들
토요일로까지 이어진 시조대회는 3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오픈 워크 샾으로 진행되어 읽기와 창작으로 펼쳐졌다. 계속해서 저녁 8시에는 캠브리지 제일교회의 대강당에서 시조대회를 이어갔다. 약 300여명의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한국의 시조 페스티벌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1부의 ‘시적 파격어법’(Poetic License)순서에서는 김선호(Sun Ho Kim) 교수(보스턴대)와 베스 휘트셀(Bess Whitesel) 댄서가 열정적인 무용시극을 보여주었다. 2부의 ‘시조시들 낭송’(Reading of Sijo Poems)순서에서는 피터슨 교수가 권근의 「산촌에 밤이 드니」와 성삼문의 「이 몸이 주거가셔 무어시 될꼬하니」의 영역(Richard Rutt)시조를 낭송하였다. 3부의 ‘시조의 섬광’(Sijo Sparking)’순서에서는 맥캔 교수가 자작 시조 「설레임」(Expectant)을 영어로 낭송하였고, 버트란트 로렌스(독일계 미국인) 음악인은 백담사에 주석하는 조오현 선사의 시조 몇 수를 낭송하였다. 행사를 끝난 뒤에는 약간의 다과와 칵테일 파티가 이루어졌다. 캠브리지의 초겨울 밤을 한국 문화로 수놓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미국의 한복판에서 미국인들과 어우러져 한국의 문화를 체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버드통신> 2
문학견문록
- ‘시의 꽃’과 ‘소설의 열매’ -
고 영 섭 (동국대 교수, 시인)
1. 문학 수업
하버드대는 지난해 9월 1일에 가을학기를 개강한 뒤 12월 2일에 종강하였다. 리딩 피어리어드(reading period)와 기말 시험을 마치고 파이널 리포트를 낸 뒤 한 한기를 마쳤다. 하지만 미국의 겨울 방학은 매우 짧다. 초중고 역시 지난 9월 1일 날 개학하여 12월 23일에 방학을 한 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초 휴가에 이어 금년 1월 3일에 새 학기 개학을 하였다. 하버드대 역시 금년 1월 24일에 봄 학기를 개강하였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학기와 개강 및 종강 일정이 다르다.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학부 2과목과 대학원 2과목을 수강하였다. 이번 학기에는 데이비드 맥캔 교수의 <아시아 시창작>(Writing Asian Poetry)에 참여했다. 이 수업에서는 중국 당대의 대시인인 이백(李(太)白, Li Po, 701~762)과 두보(杜甫, Tu Fu, 712~770)의 한시로부터 일본 에도 바쿠후 시대의 대표적인 하이진(俳人)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Matso Basho, 1644~1694)의 일본어 하이쿠 등과 한국 조선시대의 황진이(16C초) 등의 한글 시조들을 영어로 읽고 감상하며 영어로 창작하는 수업이었다. 이백과 두보의 한시를 읽고 난 뒤에는 한시 포트폴리오를 과제로 내야했다. 수업시간에는 자작 한시를 읽고 감상하고 토론하였다.
이곳의 동아시아 관련 강의는 모두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진행된다. 수업은 대개 13(학부)~14주(대학원)로 마감된다. 첫 주는 ‘쇼핑 피어리어드’(shopping period)이다. 이 때는 대개 중국 한시, 한국 시조, 일본 하이쿠에 대해 개관하는 시간을 가진다. 2~3주에는 이백과 두보의 한시를 살펴보았다. 4주에는 한시(당시)의 고전 작품을 읽고 토론하면서 오픈 워크 샾을 하였다. 5주에는 써온 한시 포트폴리오를 읽고 감상한 뒤 제출한 뒤 하이쿠 워크 샾을 하였다. 나는 때마침 전날 내린 봄눈이 막 녹는 것을 보고 “천지백설진(天地白雪盡, Heaven and Earth, White snow is gone,)/ 철목개화일(鐵木開花日, Iron tree, a shoot open the day.)/ 합불친근시(哈佛親近始, Harvard University beginning for me friendly)/ 귀국잔기월(歸國殘幾月, How long month be left come back to Korea?)”이라는 절구 한 수(「冬盡」)를 적어 냈다. 6주에는 은둔과 여행의 나그네 시인 바쇼의 쿄토 순례시들을 살펴본 뒤 순례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하이쿠에 대한 워크 샾을 하였다. 7주는 1주간 ‘스프링 리세스’(Spring Recess, 봄 휴가)를 가졌다. 8주에는 순례의 실습을 위해 학생들을 하버드 교정 내에 있는 존 하버드상과 홀리스 홀, 와이드너 도서관, 홀워씨 처어치 그리고 유니버시티 홀과 메모리얼 홀로 이끌고 가 안내한 뒤에 다시 교실로 돌아와 하이쿠를 쓰는 워크 샾을 했다. 나는 “옆에 있을 땐 몰랐네. 아, 이 허전한 내 앞가슴”(「그리움」)이라는 17음절의 하이쿠 한 편을 지었다.
봄 방학을 마친 뒤 9주에는 써온 두 편의 하이쿠를 읽고 감상한 뒤 미국인들의 하이쿠와 시조에 대한 사회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10주에는 김달진과 보사 노바(Bossa Nova)와 블루(Blues)의 시조를 읽고 토론하였다. 11주에는 데이비드 맥캔 교수의 영시조집 『Urban Temple』을 중심으로 시조 워크 샾을 하였다. 12주에는 마사오카 시키와 다른 이들의 하이쿠 워크 샾을 하였다. 하이쿠는 승려나 귀족계급이 즐겼던 렌카(戀歌)와 달리 평민들이 부르는 짧고 간결한 시이다. 때문에 하이쿠를 짓는 이유는 시회를 통해 시상이나 심상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13주의 마지막 수업에서는 써 온 세 편의 시조 포트폴리오를 읽고 감상하고 토론하였다. 학생들은 저마다 지어온 시조 세 편을 읽고 제출했다. 나는 써 온 시조 세 편 중 ‘통일’에 대한 시조 한 편을 읽었다. “천지간 새로운 건 정말 없다 하지만/ 너와 나 생김새는 이모저모 다르네/ 우리가 다르지 않고 어찌 서로 만날까.”(「만남」) 맥캔 교수는 라스트 미팅 시간에 애플 쥬스 한 통과 쿠키 한 박스를 사 와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마지막 미팅을 이끌었다. 이렇게 해서 한 학기를 마감하였다. 한 주에 두 시간 진행된 수업이었지만 학생들 모두다가 진지하게 작품을 써오고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또 데이비드 맥캔 교수의 대학원 수업인 <한국문학개설>(Survey of Korean Literature)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을 개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 주의 쇼핑 피어리어드에는 한국문학 전반을 개관하였다. 이어 2주에는 『어제일러』(1호)에 실린 황순원의 「학」과 고은의 「만인보」프로젝트와 작가노트에 대해 살펴보았다. 3주에는 1920년대 근대 한국소설인 김동인의 「감자」와 이상의 「날개」및 1940년대의 “The Wife and Children”(처자)와 “The Post Horse Curse”에 대해 읽어보았다. 4주에는 여류작가인 박완서와 오정희와 최윤의 작품에 대해 살펴보았다. 6주에는 근대(현대) 한국시인인 1930년대의 이상과 1940년의 서정주와 그 이후의 그의 시에 대해 살펴보았다. 7주에는 중간시험(한국문학 1천년)을 본 뒤 8주에는 1주일간의 스프링 리세스(봄 휴가)를 가졌다. 9~10주에는 초기 한국문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11주에는 시조 워크 샾을, 12주에는 인터넷과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여 한국과 노벨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13주에는 김지하의 미발표(Misbegotten) 시편들(selections)에 대해 감상 토론하였고, 14주의 마지막 미팅(수업)시간에는 게스트로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영준 선생을 초청하여 한국시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한 학기를 마감하였다.
미국의 초‧중‧고등학교의 경우는 2월 중순의 1주일간의 1차 스프링 브레이크에 이어 4월 중순에 또 1주일간의 2차 스프링 브레이크를 보낸 뒤 6월 중순에 방학을 한다. 반면 대학교는 3월 초에 중간시험(mid-term)을 보고 그 중순에 1주일간의 스프링 리세스를 가진다. 이어 4월 말 5월 초에 종강을 하고 나흘간(목~일)의 축제에 들어간다. 여기의 대학들은 한국의 대학처럼 학기 중간에 축제를 하지 않고 학기를 마치고 축제에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봄이 늦게 오고 꽃이 늦게 피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뒤이어 5월 초에 리딩 피어리어드(reading period)를 거쳐 기말 시험을 보고 중순까지 기말 과제(final report)를 제출하면 한 학기가 끝난다.
2. 시낭송회
미국 시단에도 적지 않은 시인들이 있다. 각 주 도시들의 카페에서는 작은 시낭송회가 정기적 혹은 부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곳의 낭송자들은 무명시인에서부터 계관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미국에서 일컫는 ‘계관시인’이란 미국 도서관협회(Library of Congress)에서 전국의 대표시인들에게 3년(혹은 2년)간 부여주는 영예의 표징이다. 1937년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2010년까지 43명의 시인들이 수상했다. 이들 시인들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계관시인 사화집』(The Poets Laureate Anthology)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금년 3월 23일에는 하버드대 영문학부 초청으로 미국의 계관시인(Poet Laureate Consultant Poetry, 1995~1997)인 로버트 하스(Lobert Hass, 1941~ )시인의 시낭송과 강연이 있었다. 약 200여명이 모여 그의 시낭송과 강연을 들었다. 이 『사화집』에 실린 그의 15편 중 제일 처음에 실린 시 한 편을 읽어보자.
Meditation at Lagunitas
All the new thinking is about loss.
In this it resembles all the old thinking.
The idea, for example, that each particular erases
the luminous clarity of a general idea. That the clown-
faced woodpecker probing the dead sculpted trunk
of that black birch is, by his presence,
some tragic falling off from a first world
of undivided light. Or the other notion that,
because there is in this world no one thing
to which the bramble of blackberry corresponds,
a word is elegy to what it signifies.
We talked about it late last night and in the voice
of my friend, there was a thin wire of grief, a tone
almost querulous. After a while I understood that,
talking this way, everything dissolves: justice,
pine, hair, woman, you and I. There was a woman
I made love to and I remembered how, holding
her small shoulders in my hands sometimes,
I felt a violent wonder at the presence
like a thirst for salt, for my childhood river
with its island willows, silly music from the pleasure boat,
muddy places where we caught the little orange-silver fish
called pumpkinseed. It hardly had to do with her.
Longing, we say, because desire is full
of endless distances. I must have been the same to her.
But I remember so much, the way her hands dismantled bread,
the thing her father said that hurt her, what
she dreamed. There are moments when the body is as numinous
as words, days that are the good flesh continuing.
Such tenderness, those afternoons and evenings,
saying blackberry, blackberry, blackberry.
이 초청에서 그는 자신의 시들 10여 편을 낭송한 뒤 시에 대한 강연을 했다.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추고 있는 그의 시는 시인의 역할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의 시가 낭송될 때마다 청중들은 종래의 그림을 지우기 위해 눈을 감고 시인의 시를 따라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이 강연에 모인 대중들의 숫자와 반응을 통해 그의 시에 대한 광범위한 독자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계관시인이라는 영예와 그의 시에 대한 열정은 대중들과 잘 호응되었다. 마치 약 1시간 반 동안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했다. 여늬 카페 시낭송과 달리 재즈와 같은 공연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시 낭송과 진지한 강연에 흠뻑 빠져들다보니 정해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아쉬움이 못내 남았다.
또 금년 3월 30일에는 하버드대 옆 ‘오버런’(oberon)이란 재즈뮤직 공연소극장에 모인 80여명의 관중 앞에서 계관시인(Poet Laureate Consultant Poetry, 1997~2000)인 로버트 핀스키(Lobert Pinsky, 1940~ ) 시인의 시낭송과 몇몇 음악인들의 재즈공연이 있었다. 그 역시 열정적으로 자신의 시를 낭송을 했다. 무엇보다도 시낭송의 무대가 학교가 아니라 학교 주변의 공연소극장이라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극장 측에서는 로버트 핀스키 시인의 시낭송을 주관하고 재즈공연을 곁들여 퍼포먼스를 기획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런 퍼포먼스가 가끔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같은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비되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보스톤 지역의 이같은 풍경은 시를 소비하는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시의 소비는 이러한 공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하버드대 앞 하버드북센타 뒤에는 시집만을 파는 작은 서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적자를 면치 못해 하버드대 교수가 인수했단다. 인수 이후에도 재정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소문이 들린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시집이 크게 팔리거나 읽히지는 않는다. 단지 소수 매니아층에 의해 시집이 팔리고 읽힌다. 그러면 『계관시인 사화집』에 실린 로버트 핀스키 시인의 시 13편 중 제일 처음 작품을 읽어보자.
Samurai Song
When I had no roof I made
Audacity my roof. When I had
No supper my eyes dined.
When I had no eyes I listened.
When I had no ears I thought.
When I had no thought I waited.
When I had no father I made
Care my father. When I had
No mother I embraced order.
When I had no friend I made
Quiet my friend. When I had no
Enemy I opposed my body.
When I had no temple I made
My voice my temple. I have
No priest, my tougue is my choir.
When I have no means fortune
Is my means. When I have
Nothing, death will be my fortune.
Need is my tactic, detachment
Is my strategy. When I had
No lover I courted my sleep.
로버트 핀스키 시인은 무대 위에서 10여 편의 자기시를 낭송했다. 낭송하는 동안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 했다. 한국 시인들은 대부분 자기 시를 ‘낭독’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시인들은 대부분 자기 시를 ‘낭송’하고 있다. 활자로 적힌 시를 보고 읽는 것과 그 시를 낭송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사실 시를 낭독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반면 시를 낭송하면 공연이 될 수 있다. 시가 노래이듯이 낭송은 시인의 ‘창’(唱)이 될 수 있고 배우의 독백(獨白)이 될 수 있다. 로버트 핀스키 시인의 낭송은 무대 전체를 장악하며 공연장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낭송의 의미를 확실히 보여 주었다. 그 역시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로버트 하스와 함께 가장 최근에 계관시인에 오르면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로버트 핀스키 시인은 자연과 깊은 교감을 하는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보스톤에서는 원로 시인들을 초청해서 시낭송과 강연 및 공연을 곁들인 행사들이 종종 열린다. 대부분이 1인 시인 초청 시낭송회라는 점이 한국의 일부 시낭송회와는 변별된다. 물론 한국에서도 한 때 명동 등지에서 1인 시낭송회가 열린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시인들이 자발적으로 낭송회를 조직하여 자작시들을 낭송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시낭송회가 이루어지지 않고 카페에서 1인 시낭송회와 음악공연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들 계관시인들 이외에도 적지 않은 시인들이 시를 쓰고 낭송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 알려지 있지 않다. 소수 매니아들 중심의 소규모 낭송회가 카페 등지에서 열리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시인들은 시를 읽을 수 있는 무대가 매우 풍부한 편이다.
3. 한국문학의 영어문단 진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 때문에 해마다 노벨상 발표시기가 되면 한국인들은 들뜬다. 특히 한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의 경험이 없어 후보군에 오른 문인들 스스로와 그 주변에서는 발표일 오래 전부터 초미의 관심을 지니고 날을 지샌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인들은 누구나가 노벨문학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문학에서 노벨상 수상작이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진단들이 있다. 그들 중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1) 한국문학의 스케일과 인간 삶에 대한 보편사적 천착 여부와 2) 작품의 작가와 교감할 수 있는 한국작품의 번역 여부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종래 미국 문단에 소개된 한국소설은 매우 드물었다. 박완서의 『나목』(1998, The naked Tree), 한말숙의 『아름다운 영가』, 『만남』,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2008, Shade of Arms), 『오래된 정원』(2009, The Old Garden),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Our Twisted Hero)과 『시인』(1996, The poet), 조정래의 『불놀이』, 현기영의 『순이삼촌』(2008, Aunt Suni)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996, I Have the Right to Destroy Myself), 『빛의 제국』(2006, Your Republic Is Calling You)의 이 미국 문단에 진출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시는 한용운, 김소월, 서정주, 김춘수, 김남조, 박재삼, 고은, 천상병, 박제천 등의 시집들이 영역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간행하는 한국문학 전문 연간 문예지인 『어제일러』(Azalea)에 실린 고은, 조오현, 정현종, 오규원, 문정희, 정호승, 황지우, 이성복, 김혜순, 김사인, 이문재, 나희덕, 문태준, 등의 영역시와 황순원, 이창동, 하일지, 성석제, 은희경, 조경란, 윤대녕, 공선옥, 하성란, 윤성희, 이혜경, 김영하, 한강, 김중혁, 박민규, 천운영, 편혜영, 김애란 등의 영역 소설이 미국 전역에서 읽혀지고 있다. 이들 영역 작품들은 각 대학의 한국문학 데이타로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문학 작품들이 미국 문단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일찍이 피터 리(Peter Lee)와 리차드 러트(Richard Rutt) 등에 의해 한국의 시와 시조들이 번역되기 시작한 이래 하버드대 데이비드 맥캔 교수의 시 번역(김소월, 서정주, 박재삼, 고은), 브리티시 콜럼비아대의 브루스 풀톤((Bruce Fulton) 교수의 소설 번역(박완서, 조정래, 조세희, 오정희, 김채원, 강석경, 최윤, 천운영) 등에 의해 한국문학이 소개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문학의 영역작업은 대단히 부족하다. 테드 휴즈(ted hughes)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문학 수업을 하고 싶어도 번역본을 구하기 힘들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세계적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계열 크노프(Knopf)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11, Please Look After Mom, 김지영 역)의 초판 10만부를 찍고 2쇄 3000부를 찍은 뒤 예의 번역본 인세 3%를 깨뜨리고 10% 인세를 제시한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 타임즈> 역시 이례적으로 일주일에 두 차례나 그녀의 소설을 크게 다루고 있다. 지난 3월 31일자 아트면에는 작품내용을 ‘엄마의 헌신, 가족의 눈물 어린 후회’(A Mother's Devotion, a Family's Tearful Regrets)라는 톱기사로 엄마를 잃고 난 뒤 남편과 아들딸이 느끼는 죄책감을 다룬 소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였다. 재닛 마스린 기자는 “참회가 이 책의 핵심이다. 인물들의 눈이 젖어들고 통한의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엄마가 보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적었다. 또 4월 3일자 <뉴욕 타임스> 북 섹션은 전면을 할애하여 이 책을 소개하였다. 그녀의 책은 <아마존닷컴>에서 ‘4월의 특별한 책’으로 선정되었고 서점체인 <반스앤드노블>에서 ‘올해의 주요 신간 15’에 뽑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이 미국대륙에 상륙한 적은 있지만 1만 부 이상 팔린 책은 없다. 이 때문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10만권의 선주문은 반품도 할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출간은 한국문학에 내린 우레와 같은 축복이자 성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작가는 “미국과 한국 독자들 반응이 비슷해요. 엄마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근본은 서로 통하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읽고 내가 엄마를 어떻게 대했나, 엄마를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깨닫는 분이 많아요. 북 클럽에서 만난 어떤 미국인은 ‘사이가 정말 안 좋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은 어머니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어요”라고 했다. 또 “이 소설은 잊힌 엄마들을 생각하게 하는 출구이자 입구예요. 소설 읽는 독자들이 자기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나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합니다. 마음이 흔들려 움직이게 하면 좋겠어요.” 다시 작가는 “사람에게 영감을 많이 받아요. 뉴욕 지하철에서 다양한 인종을 눈여겨 봅니다. 미국에 와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 한국어를 모르는 한인 2세들 이야기에도 관심이 가요. 안식년으로 생각하고 컬럼비아대 방문 연구원으로 왔는데 자꾸 쓰게 되네요”라고 했다. 작가는 “제 소설을 통해 한국문학이 미국에 소통되면 다른 한국 작가들이 진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제 작품이 첫눈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한국학 관련 저술들도 전문가에 의해 영역되어 제대로 소개되기를 기원해 보았다.
<하버드통신> 3
문화견문록
- ‘맛’과 ‘멋’ 그리고 ‘섬광’ -
고 영 섭 (동국대 교수, 시인)
1. 한국문화제
하버드대에는 금년(2011)을 기준으로 한국인 재학생수가 약 3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40여명의 학부생과 260여명의 대학원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여타의 나라처럼 한국인학생회를 조직하고 정기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금년 3월 25일(금) 저녁 6시부터 하버드대 내 타민족 학생과 보스톤 지역 주민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2011 하버드 한국문화제’가 디자인 스쿨(GSD) 군트 홀(Gunt Hall)에서 열렸다. 주최측인 하버드 한국인회(HKS, Harvard Korean Society)는 한국 음식(한식) 150명분을 준비하고 한식에 대한 동영상을 상영하여 한식에 대한 이해를 뒷받침 했다. 하지만 참가자가 300여명에 이르자 음식이 크게 모자랐다.
한국 음식 중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한식과 막걸리였다. 한식 중 불고기와 잡채는 행사 시작 일찌감치 동이 났다. ‘라이스 와인’(rice wine)으로 소개한 막걸리는 여러 타민족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학생들은 막걸리의 맛에 대해 ‘달콤하다’, ‘환상적인 맛이다’고 했다. 또 금년 85세인 ‘외국어로서의 영어’(ESL)교사는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라며 달콤하고 맛있다고 평했다. 참가한 학생들은 “한국 음식도 맛있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 보인다. 매운 인상적이다”(이란 학생 하나 디쉬 양), “한국음식을 맛보고 한국 사람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즐겁고 기쁘다”(요르단 학생 마리스 알잡 양)고 했다. 또 행사장 한 켠에 마련한 한복 체험장을 찾은 중국 학생들은 한복의 아름다운 색상에 감탄했으며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 동해(East Sea)가 한국 영토로 표기된 고지도를 수집하며 동해를 널리 알리는 국제지도수집가협회 한국대표 김태진(온라인도서배급업체 TMECCA대표)씨가 지난 2년간 발로 뛰며 모은 자료를 특별 전시하였다. 그는 지난 15년간 한국정부와 대학도서관에 해외원서를 납품해 오면서 국립중앙도서관에다 한국관련 해외자료 목록을 부탁하여 유럽과 미국 및 일본과 홍콩 등을 돌며 약 1,000여점의 고지도를 수집했다. 이중에는 조선의 초대 프랑스 공사인 콜린(Collin)이 수집한 것을 재구입한 ‘대동여의전도’, 프랑스 왕실의 직인이 찍힌 듀 할레(Du Halde) 신부의 지도첩 중 ‘한국전도’(1735), 19세기 중반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대표적인 목판 조선전도로서 독도(우산)가 울릉도와 함께 그려지고 대마도가 한국 영토에 포함된 ‘해좌전도’ 등을 전시하였다. 이번에 전시된 지도는 주로 ‘동해’의 이름을 주제로 한 20여점의 지도였다. 대개 1680~1820년까지 서양의 모든 지도에 표기되었던 동해는 ‘한국해’가 대세였으나, 19세기 중반 이후에 간행된 지도의 약 70% 정도가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표기해 왔다. 하지만 최근 그의 노력 등에 의해 내셔설 지오그라피(National Geography)에서는 한국 동해를 ‘Sea of Japan(East Sea)’으로 적고 있다. 이 행사는 한국땅 독도의 영유권을 암암리에 알리고 있어 이 행사의 의미를 빛내 주고 있다.
이번 행사에 ‘외국어로서의 영어’(ESL)교사 및 외국인 친구들 15명과 함께 참석한 김지연 씨는 행사가 끝난 뒤 “모두들 한국 음식과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으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한국인으로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던 하루였다”고 했다. 덧붙여 그녀는 이렇게 소중한 기회가 “한식에 가려져 한국 의상 체험하기, 독도 알리기, 영화(황진이), 타큐멘터리(북극의 눈물) 등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파이퍼 강당에는 20여점의 독도 고지도가 전시되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재확인 시켰으나 진행자의 미숙으로 고지도와 독도 문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지 않아 안타까웠다. 또 악기만 전시했을 뿐 사물놀이 등의 공연과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행사가 부족해 아이를 데려온 주부는 다소 실망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학생들로 구성하다보니 효율적인 행사진행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예산 부족으로 참석자 모두에게 저녁을 제공하지 못한 점 등이 옥의 티였다. 하지만 보스톤 지역에서 한인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 모두들 자랑스러워 했다.
2. 음악 공연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다. 보스턴의 전철 그린 라인에 자리한 ‘심포니 홀’ 역에는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상설 연주하는 ‘심포니 홀’이 있다. 이곳에서는 클래식과 팝 등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파르테논 신전을 전면을 아로새긴 무대장식과 홀 내부를 수놓은 수많은 음악가 형상과 인테리어가 아름자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 이외에도 뉴욕의 브로드웨이처럼 정기적으로 뮤지컬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이 적지 않다. 알링턴 스트리트 처어치와 같은 오래된 교회나 하버드대 메모리얼 홀의 센더스 씨어터에서도 정기적인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고급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뉴 잉글랜드의 이같은 문화적 토양은 유럽으로부터 계승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인프라를 기초로 한국 음악 공연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7일(수) 저녁 7시에는 브랜다이즈 대학의 슬로스버그 리사이틀 홀에서 28명의 한인으로 구성된 보스톤합창단의 3번째 정기 공연이 열렸다. 250여명의 지역 한인들이 참여하여 한국의 가곡 ‘보리밭’을 따라 불렀다. 합창단의 공연은 사랑을 주제로 한 오페라곡 위주의 1부, 맨델스존 합창곡의 진수인 ‘엘리야’의 2부, 성가곡과 ‘강강수월래’, ‘보리밭’ 등 한국민요와 가곡의 3부, 마지막 합창곡인 ‘그리운 금강산’의 4부가 끝나자 한인들은 기립박수로 합창단의 공연에 감사의 표시와 더불어 앵콜을 청했다. 합창단은 ‘희망의 나라로’와 ‘사랑’으로 두 곡으로 화답하며 공연을 마쳤다. 미국인 모 라마지 씨는 “한인들이 전부 ‘보리밭’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한인들을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했다. 또 “30여명도 채 안 되는 인원인데 마치 60명이 내는 소리 같다. 믿기지 않는다. 아름답다”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금년 3월 27일(일) 저녁 7시에는 보스톤 지역 서울대학교 동창회가 주최한 ‘봄맞이 한국 가곡의 밤’이 열렸다. 행사가 열린 텁스(Tufts) 대학 그라노프 뮤직 센터는 보스턴의 대표적인 언론인 <보스턴 글로브>가 ‘최고의 리사이틀 홀’로 평가한 300석 규모의 최신 전문 연주홀이다. 한국 오페라단 주역 가수로 활동하였던 김동원 바리톤과 테너 강정래, 황형필, 유현호, 소프라노 이상원, 김지현, 박소영 씨 등 성악가 7인이 출연한 이 음악회는 우리의 귀에 익숙하고 향수를 일으키는 곡들 중심으로 공연되었다. 또한 바이올니스트 황보엽(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씨와 피아니스트 변화경(뉴 잉글랜드 컨서바토리 교수) 씨가 특별 출현하여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K376을 연주하였다. 봄날을 맞이하는 아름답고 정감있는 성대한 음악제였다.
한국의 전통음악을 미국에 알리기 위한 연주회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년 전 하주용 국악박사가 한국 문화관광부에 신청해 채택된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1회성 공연이 아니라 일정기간 거주하며 한국음악을 알리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대학교 중 음악대학이나 예술분야의 학과에서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공연과 강연을 통해 한국음악을 알려 나간다는 점에서 종래의 공연 위주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뉴욕 시립대에서 판소리로 박사를 받은 그는 “일본이나 중국, 인도 음악인들은 1960년대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인들이 직접 그 나라 음악을 수입해 강연을 해온 반면 한국음악은 가르치는 곳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 프로그램을 착안해 정부에 제안했다”고 했다. 그는 공연에 앞서서 한국음악의 배경이나 정서에 대한 강연을 곁들여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하 박사는 우리 음악의 힘을 “열정, 슬픔, 그리고 섬세함”이라고 보고 있다. 또 “우리 음악은 한의 정서를 섬세하게 풀어내느라 여운을 두기도 하여 지루한 듯 하지만 결국 그 섬세함이 열정으로 풀어지고 치유로 완성되므로 중독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 박사가 이끄는 5명의 젊은 국악인들은 서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의 교수진들에게 추천을 받은 3기생들이다. 이들은 명인의 길로 가기 위한 준비 작업 중에 해외프로그램에 참가한 음악인들이다. 이들은 2월 23일에는 노스이스턴 대학 펜웨이 센터에서 이 대학 음악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국악을 공연해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가야금, 대금, 피리, 북과 장구 등으로 시나위를 연주하고,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와 ‘쑥대머리’를 선보였다. 이어 이 팀은 3월 3일에는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3월 4일에는 브랜다이즈 대학에서 강연과 공연을 하였다. 3월 7일에는 하버드대학에서 공연과 강연을 하였다. 데이비드 맥캔 교수는 <아시아 시창작> 수업을 절반 정도 진행한 뒤에 수강생들과 함께 사이언스 센터 뒤에 자리한 뮤직홀로 이동해 국악감상을 할 수 있게 하였다. 하 박사는 한국 국악의 유례가 샤머니즘과 연관이 있다고 말문을 연 뒤 가야금, 대금, 피리, 북과 장구, 판소리 등에 대해 강의를 했다. 이어 가야금과 대금 연주자들은 계면조, 산조, 시나위 등의 ‘가락 형식’(Melodic Mode)을 시연해 보였다. 하 박사는 이러한 선율들이 판소리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등의 장고 시연이 있었다. 마지막의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와 ‘쑥대머리’가 흥을 돋우자 하 박사는 학생들에게 잘 호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얼씨구”, “좋다”, “잘한다” 등의 추임새 넣는 법을 가르쳤다. 공연에 참석한 몇몇 미국인 교수들도 신명나는 국악공연에 빠져들었다.
이외에도 보스톤에서는 유명 음악가들이 문화교류센터 및 정부지원 노인아파트 기금을 모금하기 위한 자선콘서트가 종종 열렸다. 금년 1월 30일(일)에는 브랜다이즈 대학의 슬로스버그 리사이틀 홀에서 변화경 뉴 잉글랜드학교(NEC) 교수를 비롯한 9명의 음악가들이 공연한 콘서트가 있었다. 이날 공연에는 플롯 연주자 성우 스티븐 김, 티모 드 레오, 조나단 도맨드, 야닉 라팔리마나나의 피아노 트리오 공연, 소프라노 로랜 우 씨의 공연, 피아니스크 손민수 씨의 연주, 바리톤 김동원 씨의 공연이 있었다. 이들의 연주와 공연에 대해 최신자 성악가는 “주옥같은 곡들을 선정해 기가 막힌 연주를 보여줬다”고 감탄했다. 이 연주 홀에는 지역 한인들로 가득 찼으며 음악가들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3. 불교 수업
나의 전공은 사학과 철학만이 아니라 문학 분야에까지 걸쳐 있다. 학교에서는 역사(한국불교사)와 철학(한국불교사상/철학, 원효와 퇴계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 생명과학과 불교윤리)을 강의하고 있다. 해서 이곳 하버드대에서도 나의 전공상 문사철 수업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지만 마이클 푸엣 교수의 <중국지성사: 노장 및 공맹> 강의와 스티븐 오웬 교수의 <당 문학: 당시>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이곳 교수들은 대개 월요일과 금요일의 수업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이 화‧수‧목요일에 몰려 있었다. 때문에 많은 강의들이 대부분 중복되었고 다수의 교수들이 연구년을 자주 이용해 듣고 싶은 강의들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해 2학기에는 제임스 랍슨 교수의 <중국종교문헌강독: 동아시아 불교연구에 있어서 장소, 순례, 여행자들> 수업과 자넷 가쵸 교수의 대학원 수업인 <티베트종교문학강독: 수행에세이> 및 학부 수업인 <티베트불교> 그리고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 강의를 들었다.
나는 지난해 한국에서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 수업을 재구성해 번역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사가지고 와서 읽었다. 더불어 저자의 강의를 직접 듣고 싶어 매주 월‧수요일 오전 11시면 공연장이자 대형 강의실로 사용되는 메모리얼 홀의 샌더스 씨어터를 찾아갔다. 수업에 참여한 약 1,500여명의 학생들이 3층으로 된 부채꼴 모양의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센델 교수가 지난 20여 년 간 하버드대의 ‘최고의 명강사’(Best Lecturer)로 선발되는 이유를 알만했다. 그의 강의는 늘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강의는 대형스크린과 영상을 이용하면서 35분 가까이 진행되었고 약 20여 분간 학생들의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센델 교수의 강의는 마치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 원숙하게 진행되었다. 그의 책이 지난 해 이래 인문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 60여 만 권이 팔렸다는 경이적인 사실이 강의실에서 실감되었다. 종강일에는 『조선일보』 뉴욕특파원인 박종근 기자가 2011년 신년특집기사를 쓰기 위해 수업에 참여하여 센델 교수의 강의를 촬영하고 인터뷰를 해갔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금년 1~2월에는 한국의 교육방송(EBS)에서 센델 교수의 <정의> 강의 전체를 방영하기에 이르렀다. 센델 교수의 <정의> 강의는 서양철학자와 서양정치학 및 서양윤리학을 넘나들며 우리의 윤리적 책임과 권리 행위에 대해 미국의 일상생활을 실례로 들면서 이끌어갔기에 상당한 호소력을 지녔다.
자넷 가쵸 교수의 <티베트종교문학강독>은 티베트의 몇몇 수행자들이 남긴 티베트어 수행에세이(필사본, 인쇄본)들을 읽는 수업이었다. 티베트어 데바나가리로 된 문헌을 그 자리에서 티베트어로 읽고 영어로 번역을 하며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원전을 로마나이즈하고 문장을 분석하여 문법을 적고 우리말로 옮기는 한국의 대학원 수업방식과 달리 약 15명의 학생들이 예습해온 티베트어 데바나가리 텍스트를 그대로 읽고 토론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쵸 교수의 <티베트불교>는 고대 티베트와 현대 티베트의 정치사에서부터 문화사와 종교사 및 예술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진행되었다. 나라를 잃은 티베트인들의 정신사를 더듬으면서 국가가 사라졌을 때 그 나라의 문화가 어떻게 되는가를 반추해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티베트라는 나라는 사라졌지만 그 문화는 그들의 노력에 의해 전 세계에서 공유되고 있음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티베트인들의 염원처럼 그들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금년 학기에는 유이치 아베 교수의 대학원 수업인 <일본불교문학에서 의례와 문헌>과 제임스 랍슨 교수의 <중국불교문헌강독: 중세 불교와 도교 논쟁> 및 <선 Zen: 역사, 문화, 그리고 비평> 수업에 참여했다. 아베 교수의 수업에서는 『법화경』「견보탑품」(11품)과 「제바달다품」(12품)을 읽은 뒤 그 품들의 핵심 주제인 ‘허공법회’와 ‘불신의 인격화’ 및 및 ‘용녀 성불’에 대해 주석을 단 중국 수‧당대의 학승인 천태 지의의 『법화경현의』(玄義)와 가상 길장의 『법화현론』(玄論) 및 자은 규기의 『묘법연화경현찬』(玄贊)의 부분 그리고 일본 카마쿠라 시대의 학승인 정경(貞慶)의 『법화경개시초』(開示抄)와 동시대의 학승 안연(安然)의 『태장금강보리심의략문답초』(問答抄) 부분을 읽고 토론하였다. 대학원생들은 영어로 번역을 해 와서 읽고 ‘허공법회’와 ‘불신의 인격화’ 및 ‘용녀 성불’ 등에 관련된 주제와 논점에 대해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나라 『삼국유사』의 ‘욱면비염불서승’조의 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의 몸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女性不成佛)는 『법화경』 설이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여성불성불설’이 ‘여성변성성불’(여성이 내생에 남성으로 바뀌어 부처가 된다)설을 거쳐 ‘여인즉신성불설’(여인의 몸 그대로 부처가 된다)로 진행되었는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해 가을학기의 대학원 수업인 <중국종교문헌강독: 동아시아 불교연구에 있어서 장소, 순례 그리고 여행가들>을 통해 광범위한 논문들을 읽은 데 이어 금년 봄학기 랍슨 교수의 학부 수업인 <선 Zen> 강의에서 보여준 열정은 나뿐만아니라 학생들도 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인도에서 비롯된 불교가 어떻게 전 세계로 전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개관한 뒤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선불교에 대해 통시적으로 때로는 공시적으로 살펴보았다. 미국에 슌류 스즈키와 다이세츠 스즈키에 의해 일본 ‘젠’이 미국에 상륙한 이래 미국인들이 ‘젠’을 자기화해 가면서 출판한 300여권의 선 관련 책들(『禪Zen과 자전거 타기의 예술』 등)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대단히 놀라웠다. 중국의 달마선이 혜능선으로 전환하면서 다시 임제종과 조동종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한국의 간화선과 선방 및 중광스님(동대문 감로암)과 대행스님(한마음선원)에 대해 소개했다. 이후 일본의 임제선과 조동선 및 일본 선실의 구조와 선 문화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 대학원 수업인 <중국불교문헌강독: 중세 불교와 도교의 논쟁>은 돈황에서 발견된 선종문헌들에 대한 강독과 번역 및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이입사행론』과 『보림전』 및 『조당집』 등의 선종 문헌들을 선별해 중국어로 읽고 영어로 번역하며 토론한 뒤 일역을 참고하여 이해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영어의 분석적 구체적 특성이 문외한들조차도 불교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한문 전적을 적확한 영어 개념으로 바꾸어 해석하는 과정이 동양인들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수업이었다.
지난해 9월부터 금년 7월까지 보스턴의 북서쪽에 자리한 웨이크필드의 문수사에서 나는 <한국사상사> 강의를 해왔다. 나의 학문적 관심인 <한국사상사>는 한국학의 줄기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껏 제대로된 단행본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사상사>를 부분적으로 다룬 몇몇 저작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저작들이 불교와 유교를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 ‘한국사상사’ 전반을 다룬 <한국사상사>는 없다. 미국의 하버드대에도 <한국사상사> 강의는 설강되어 있지 않다. <한국불교사>와 <한국유교사> 강의 역시 설강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을 형성하지만 미국 내 한국학의 지위는 40~50위권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의 국가 및 민간의 지원과 달리 한국의 지원은 지극히 미미하다. 최근 ‘한류’를 통해서 ‘한식’과 ‘영화’ 및 ‘드라마’ 등이 조금씩 외연을 넓혀가고 있지만 미국 내 한국학의 지위는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학의 지위 향상을 위한 한국 정부와 기업 및 민간과 개인 등의 물적‧인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오늘날 미국에서 중국학과 일본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그렇게 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문학의 지위가 향상되면 노벨상 수상은 쉬워질 것이며, 한국철학의 지위가 향상되면 한국정신 문화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질 것이다. 지난 1년 간 미국 보스톤의 하버드대학 아시아센터 한국학연구소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나의 ‘미국견문록’과 ‘문학견문록’과 ‘문화견문록’의 세 부분이 <하버드통신>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