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종교라는 독사에 물리는 사람들
#풍경1
붓다의 승가에
아릿타라는
비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출가하기 전에
매를 훈련시키는
조련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릿타 비구가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중심적으로
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해도 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승가에
쫙 퍼졌습니다.
붓다가
아릿타 비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심하게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독사가 필요하다.
그 사람은
독사를 찾아서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니다가
마침내
커다란 독사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는
똬리를 틀고 있는
독사를 잡으려다
몸통이나 꼬리를
잡고 만다.
그 뱀은 돌아서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발을 물게 될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목숨을 잃거나,
아니면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고통을
맛보게 될 겁니다.
#풍경2
많은 사람이
종교가
진리로 가는 통로,
혹은
구원을 얻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종교야말로
독사 중의
독사입니다.
왜
그럴까요.
붓다의 말처럼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도리어
물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알맹이와 껍질이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적 가르침이
알맹이라면,
그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생겨난
교리와 조직,
종교 의식과 율법 등이
껍질에
해당합니다.
이런 껍질들은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달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생겨난
손가락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종교 안에서
주도권 다툼이나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그 투쟁에서
알맹이보다 껍질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결국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
종교의 본질보다
손에 잘 잡히는
형식과 율법을
중시하다 보면
어느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종교의 알맹이가
아니라
종교의 껍질이
주인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종교라는
독사에 물리기
십상입니다.
#풍경3
붓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커다란 독사를 만나면
끝이 갈라진 막대기로
눌러서 제압한 후에
목을 잘 붙잡아야 한다.”
몸통이나 꼬리가
아니라
독사의 머리를
잡으란 뜻입니다.
“설령 그 뱀이
똬리를 틀면서
그대의 손이나 팔,
혹은 발을
칭칭 감는다고 해도
물리지 않을 것이다.
머리를 잡는다면.”
<모든 종교에는 본질과 형식이 있다.
본질을 놓치고 형식만 붙들 때 우리는 종교에 물리고 만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때도
종교라는 독사에
물리는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종교라는 독사에
물리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럼
독사의 머리를
어떻게 찾느냐고
말입니다.
종교의 껍질이
아니라
알맹이를 어떻게
찾느냐고 묻습니다.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종교의 창시자가
그 종교를
처음 만든
이유를 찾아가면
됩니다.
붓다는
왜
불교를 만들었을까.
예수는
왜
하늘의 메시지를
전했을까.
이런
첫 단추 속에
해당 종교의
알맹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것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광야에서
길을 잃지도 않고,
그 길에서
독사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는 바람에
도리어
물리고 마는 일도
없습니다.
종교는
독사 중의
독사입니다.
머리를 잡으면
약을 얻고,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독에 젖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늘 잊지 말아야 할
물음이
하나 있습니다.
붓다는
왜
이 땅에 왔을까.
예수는
왜
이 땅에 왔을까.
붓다의 한 마디
“뱀의 머리를
잡아야 한다.”
진리가
먼저 있고,
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교리와 종교학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종교의 교리를
진리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교리는
종종
이데올로기가
되고 마니까요.
나만이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배타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니까요.
그게
종교라는 독사에
물린
서글픈 풍경입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