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는 우리 겨레를 죽음에서 살린 중요한 곡식이다. 흉년이 겹치면 쑥잎도 채취가 어려웠고, 산에 소나무 껍질도 구하기 어려웠다. 쑥잎도 너무 가문 날씨로 자라지 않아 빈 배를 채울 길이 막막한 시절이 계절처럼 자주 만나게 했다. 경상도 지방은 해마다 가뭄이 심한 지역 특성으로 보리농사가 발달했다. 쌀농사가 잘되어도 보릿고개 때가 다가오면 가정마다 양식이 떨어진다. 햇보리가 생명을 구하는 양식 구실이었던 시절이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워서 풀잎으로 양식을 대신했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로 우려내고 먹을 감 마련에 가족들 총동원하게 되는 비상사태도 맞게 된다.
날씨가 오래도록 가물어 벼농사를 망치면 보리 곡식으로 목숨을 겨우 유지했다. 보리농사는 가문 날씨에 견디는 작물이었다. 비료가 없으니 공동변소 똥물도 귀했다. 골목마다 개똥 줍기는 보물찾기처럼 농민들 관심을 끌었다. 개똥을 망태기에 모아다 변소에 모았다가 삭혀 비료로 보리밭에 주었다. 겨우내 부지런히 개똥 비료를 준 농가의 보리밭은 봄을 맞으면 새파랗게 표시가 났다. 보리골에 변소 물을 뿌린 고랑은 짙은 색깔로 보란 듯 아름다웠다. 보리가 풍작으로 수확된다는 표시로 나타난다. 지난 쌀농사 망쳤어도 일 년 양식을 버티게 한 보리 양식이었다.
보리씨를 뿌리고 비만 내리길 기다려서는 달린 보리 알갱이는 보잘것없다. 보리씨를 많이 뿌린 자랑은 소용없는 짓이다. 품값도 건지기 어려운 보리농사가 되고 말 것이다. 메추리 세 마리 왔다가 두 마리는 울고 간다는 유행어는 이래서 생긴 말이다. 비료가 흔한 요즘 사람들은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그 시절은 알고 보니 비료가 없어 굶어 죽는 현상으로 나타난 불행이다. 온 가족이 배설한 물질도 모자라 개나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하는 부지런함 때문에 생명을 유지한 세월이다.
눈만 뜨면 풀 베고 두엄을 삭혀 퇴비 장만하는 손길은 늘 바빴다. 풀뿌리 캐기도 소나무 껍질 벗겨 오기도 어려운 작업이다. 칡뿌리 옹통마리 만나면 횡재한 듯 즐거운 일이다. 칡뿌리가 덩치로 크게 뭉친 옹통마리는 전분이 가루로 뭉쳐있어 먹는 양식에 보탬이 되었다. 칡뿌리 옹통마리를 부셔 전분 가루를 뽑아내려고 물에 담근다. 독한 검붉은 물을 헹궈내면 가라앉는 질 좋은 전분 가루가 생산되었다. 구호미 챙겨오듯 흉년에 생명을 구한 고마운 양식 감이었다.
쌀 대신 보리가 환경에 적응한 곡식으로 경상도 사람들은 흉년을 이겨내는 양식이었다. 보리는 쌀보다 입맛은 떨어져도 영양가는 비타민B 등 다양하게 고루 함유되어 건강 유지에 바람직한 곡식이다. 농약 사용도 거의 없어 자연산에 가까운 식품으로 귀한 품목 보리다. 보리는 수리 시설이 빈약했던 경상북도에서 생산이 많았다. 계절 가뭄 봄철 지역 환경에 잘 적응하는 곡식이다. 어려운 시대 국민을 살린 대표적인 곡물의 고귀한 보리였다.
경상도 보리가 생산되는 시기를 기다린 국민이 만들어 낸 유행어의 설명은 이렇다. 온 겨레가 애타게 기다려서 어려움의 극한 표현이 보릿고개다. 경상도에서 생산한 보리가 기어이 서울에 도착해야 나라에서도 안심했던 절박한 시절이었다. 지난해 생산한 쌀은 이미 동나고 민심의 안정을 걱정한 위정자들의 한숨 소리가 해외에 들리도록 뱉었을 일이다. 민란이 생기는 이유도 굶어 죽는 세태의 절박함 때문이다. 국민이 배부르고 편안해야 나라가 안정되는 일이다. (글 : 박용 20250822 에세이 14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