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장 야곱의 귀향
2026 6. 22일 오전
야곱이 돌아가기로 결심을 함
야곱이 라반의 집에 거한지 어언 20년이 흘렀습니다. 야곱은 한시도 벧엘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자손들이 번성하게 되었고, 또한 재산도 한 사회에서 영향을 끼칠 만큼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창 30:43에서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고 되어 있는데, ‘풍부하였다’[파라츠]는 이 표현이 벧엘에서 하나님이 “네 자손이 .....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라’”라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심히 풍부함’은 꼭 재산만 가리키는게 아니라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에 비해서 큰 가족을 이룬 것도 포함합니다. 중요한 것은 벧엘에서 하나님이 약속대로 야곱에게 자녀의 번성과 재산의 번창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재산이 라반의 재산보다 많아지자 라반의 아들들이 아버지 재산을 훔쳐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라반 역시 야곱을 보는 눈이 이전과 같지가 않고 시기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대한 것입니다.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부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라반의 짐승들을 기반으로 해서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20년을 라반에게 품꾼으로 봉사하면서 하나님이 복 주신 결과로 라반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라반은 야곱이 일군 재산은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간 것으로 생각하고 야곱을 해코지하려 합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돌아가도록 지시를 한 것입니다. 그 지시가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읽읍시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곧 약속의 땅인 가나안과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곳에 돌아가라고 사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고 하십니다. 밧단 아람에 올 때에도 야곱과 함께 하신다고 하신 하나님이 이제 때가 되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에도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이나 이 약속의 땅을 돌아갈 날을 소망하며 인내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 즉시 그것을 실행하였습니다.
2. 야곱이 아내들을 불러 설명함(4-16)
그런데 문제는 언약의 당사자들인 아내들이 동의를 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 어떻게 이곳에서 얻은 재산을 가지고 어떻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 라헬과 레아를 양떼가 있는 들로 조용히 불러내어서 이야기를 꺼냅니다.(창31:4-16절) 야곱은 5-13절에서 자신의 6년간의 지난날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수고한 일들과, 라반이 자신을 열번 이나 속인 일과,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들을 부인들에게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라반이 어떤 식으로 품삯을 제멋대로 변역했는지를 8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는 모든 색깔이 있는 것을 다 야곱의 것으로 하기로 했지만 8절은 이러한 조건을 라반이 바꾸었음을 보여줍니다. 라반은 자기의 짐승들이 모든 색깔이 있는 것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자‘점 있는 것만 네 삯으로 해라' 그러다가‘얼룩무늬 있는 것만 네 삯으로 해라'는 식으로 조건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은 라반이 말하는 대로 야곱의 것이 되게 함으로써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라는 구절은 단순히 야곱의 간교한 꾀에 의해서 양떼가 야곱의 것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셔서 복을 주심으로 성취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야곱이 정작 말하고자 하는 사실은 이러한 모든 악한 상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20년 전에 자신에게 약속을(창세기 28:13-15) 어떻게 지켜 오셨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야곱과 함께 하심으로 자신을 라반에게서 지켜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아버지의 하나님' 곧‘언약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루진 것임을 진실로 고백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말대로 하나님이 라반의 짐승을‘빼앗아’야곱에게‘주셨습니다.(9-12). 사실 만물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아무리 움켜쥔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참조. 전 6:2]. 이런 야곱의 말한 것을 볼 때에 야곱은 야곱 자신이 받은 모든 복을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돌보심의 결과로 깨닫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말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께 20년 전에 벧엘에서 서원한 일을 부인들에게 말합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13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창 31:13에“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에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 하나님께 세 가지를 서원하였습니다. 창 28:20-22 “ 20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과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20년 동안 야곱을 지켜주시고 자손의 복과 재산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으니 야곱에게 벧엘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 라반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자신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라반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라헬과 리브가의 결단 (14-16절)
그러자 야곱의 부인들도 야곱의 이야기를 듣고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부인들은 15-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비가 자기들을 팔아먹었고 우리 돈을 다 먹었다 ,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하나도 유업을 주지 않았다’고 서운한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그리고 여기 밧단아람 아비 집에는 더 이상 자기들의 유업이 없고 오직 야곱과 언약을 하신 하나님에게만 자기들의 유업이 있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르신 대로 그대로 다 준행하라, 우리도 따르겠다’는 결단을 말합니다. 그 옛날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이 와서 가나안땅으로 가도록 요구하였을 때 결단을 하고 따라갔던 것처럼 이 여자의 후손들도 결단을 하고 따라 가기로 합니다. 비록 이 결단이 리브가의 결단에 비해서 여러 가지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이것은 리브가와 동질의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 밧단아람에서 야곱만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들도 함께 그 나라를 세워갈 여인들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가나안땅을 떠나서 올 때 이삭이 당부한 말이 있었습니다. 에서처럼 가나안에서 여인을 얻지 말고 밧단 아람 외삼촌의 집에서 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들이 자기 아비 집을 떠나 야곱을 따라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삭의 경우에도 아브라함이 종에게 여자를 따라 이삭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여인들도 이제는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야곱을 따라서 약속의 땅 가나안땅으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의 결단에는 라반의 악한 태도도 크게 작용을 한 것이 보입니다. 자기 딸들을 이용해서 그는 철저하게 자기의 재산을 늘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풍습으로 딸들에게 주어야 할 지참금의 일부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라반의 악한 태도로 인하여 이 여인들도 이 아버지 집에는 더이상 자신들의 유업이 없고 오직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나라에 참된 유업이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두 아내는 야곱더러‘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고 지지를 보냅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표현이‘우리’입니다.‘우리와 우리 자식’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30장 전반부에서 두 아내가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여 보인 태도와 많이 다릅니다. 물론 앞으로도 야곱의 가정에 갈등이 이어지긴 합니다. 그러나 가정이 세워지던 처음에 비하면 언약의 자녀다운 모습에 이들은 조금 더 성숙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에게로, 언약의 땅으로 돌아가려는 지금, 누구보다 두 아내의 지지와 도움이 절실한데, 하나님께서 야곱만 아니라 두 아내도 언약 백성다운 삶을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한 가정으로 서 나가기가 힘들었던 그들이며 여전히 연약과 부족이 많은 그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언약을 이어가는 위대한 사명의 길을 함께 걷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것 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그 악함이 때로는 야곱에게 뿐만 아니라 이 여인들에게도 은혜로 역사하게 된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야곱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두 아내를 얻기 위하여 14년 간을 종살이하였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그 언약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종살이라는 하는 것처럼 아주 험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어려운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주님의 그 약속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일어난 일입니까? 그렇지 않지 않습니다. 이런 야곱의 고통과 어려움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바로 왕의 핍박으로 인하여 도저히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부르짖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야곱 역시 아내들과 마찬가지로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와 이기심과 몰상식한 태도로 인하여 그곳에 결코 정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달리 보면 그 땅에 미련을 갖거나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에 야곱이 그곳이 아주 안락하고 좋아서 그곳에 정착한다면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의 삶에 간섭하시고 그 땅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땅 모든 곳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눈물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이 땅에다 소망을 두지 말고 나그네처럼 살도록 하시는 섭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도망과 라반의 추격(17-25절)
그래서 야곱은 아내들이 함께 하겠다는 결단에 용기를 얻고 아내들과 자식들과 또 양떼와 또 종들을 거느리고 라반의 집에 인사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이 떠납니다. 마침 그때 라반이 양털을 깎는 시기여서 모든 아들들과 또 가속들과 종들을 데리고 떠나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노려 야곱은 가나안 길르앗을 향하여 떠난 것입니다. 그때 라헬이 그 아비 드라빔을 훔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처럼 모시는 우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가정이 보호를 받고 또한 그 사람이 상속권을 갖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라반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했지만 유일한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여러 신들 중에 한 신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딸 라헬에게는 이런 아버지의 세속적인 우상의 때가 묻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실상 등지는 일입니다.
야곱이 도망친지 삼일만에 라반에게 야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들어갔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도망간 것에 대해서 배신감과 분노로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간교한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무법 하게 행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드라빔이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라반이 가속과 장정들을 데리고 야곱을 불같이 추격해 나섰는데 아마 다시 잡아서 끌고 와서 평생 종으로 삼든지 아니면 말을 듣지 아니하면 해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약 칠일을 쫓아 드디어 내일이면 붙잡게 될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을 만나기 전날밤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계시하셨습니다.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야곱에게 비록 용납하지 못할 행위가 있더라도 붙잡아 돌아가거나 해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돌아가는 그 행위가 야곱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행동 방법까지를 정당하다고 여기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라반은 그동안도 야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꿈의 경고를 통해서 그를 함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두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리했다가는 내려질 하나님의 형벌이 크게 두려웠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시비를 건다면 어찌 한순간도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세상과 마귀가 우리의 선악간에 고발을 해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변호하시고 손대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라반은 야곱에게 “왜 내게 떠난다고 나에게 말하지 않고 마치 내 딸과 손자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느냐, 그랬더라면 내가 잔치를 벌이고 입맞추고 보낼 터인데 네가 어리석다”고 타이르듯이 말합니다.(26-27절) 사실 라반 같이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고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자가 절대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없이는 보내줄 자가 아닙니다. 그것을 잘 알았던 야곱도 “삼촌이 딸들을 내게서 빼앗아 갈까 두려워서 그리했노라”고 변명을 합니다. 라반은 “내가 너를 해할 능력이 내게 있으나 하나님이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실제로 라반의 세력으로 보면 분명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장정과 칼을 가지고 따라왔을 터이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라반은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가는 것은 가하지만 왜 드라빔(수호신)을 훔쳐갔느냐”고 힐문을 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라헬이 훔쳐서 가져온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외삼촌의 신은 그 누구도 가져오지 않았고, 만약에 가져왔다며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라반은 드라빔을 찾기 위해서 야곱의 장막, 레아, 두 여 종들, 그리고 마지막에 라헬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라헬은 그 드라빔을 안장 밑에 넣어두고 경수가 나니 아버지를 맞지 못하겠노라고 꾀를 씁니다. 그래서 다 뒤져도 나오지 않자 야곱이 라반에게 이제 큰 소리로 힐문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참고 쌓아온 라반의 잘못된 행동을 낱낱이 힐문을 합니다.
‘왜 그렇게 도적을 쫓듯이 불같이 나의 뒤를 쫓았습니까?’ 자기가 라반의 집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했고 또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지만 참아 왔던 것과 또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상하시고 인도하였다는 것을 들어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라반은 이제 변명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꿈에 나타나서 야곱을 해하지 못하게 막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31:3에서 야곱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20년 전에 벧엘에서(창세기 28:15)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앞으로 야곱을 다시 아버지(이삭)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수고를 감찰하셔서 자신을 삼촌 라반에게서 보호하셨다 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야곱이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열심히 노력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과거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기에, 여전히 야곱을 긍휼히 여기셔서 야곱의 고난과 수고를 돌아보셨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고난과 이 땅의 수고를 외면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 우리가 고난당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의 약한 마음은 당장 눈앞의 고난에서 어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유익을 위하여 시련을 주실 뿐만 아니라 시련 당하는 우리를 향하여 그 따뜻한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다메섹 가는 길에 주님이 바울에게‘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그저 동정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와 함께 겪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할 고난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가 질 슬픔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삼촌한테 항변하면서, 이러한 고난과 수고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많은재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31:42 )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 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 하셨다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그가 라반의 집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했고 또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지만 참아 왔던 것과 또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상하시고 인도하였다는 것을 들어 책망을 합니다. 라반은 이제 변명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라반은 부드럽게 야곱에게 “네 재산이 내 재산이고 또 딸들도 손자도 내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할 수 있으랴” 하면서 이제는 둘이 서로 화해를 하고 그동안 앙금을 풀고 새로운 언약을 맺자고 합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침입하지 않고 경계를 정하고 살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야곱과 함께 맹세를 그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임을 인정하고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자신의 딸들 외에 다른 여인(가나안여인)을 취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그렇게 해서 라반은 야곱을 축복을 하고 서로 언약을 맺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밧단 아람의 라반과 그 자손들과 아브라함의 언약 자손과의 관계가 정리가 된 것입니다. 결국 라반의 임무는 두 딸과 자손들을 생산하게 하고 많은 재산을 이루게 하여 야곱으로 하여금 한 민족이 될 기반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사상
이제 모세가 기록한 이 본문의 교훈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기록한 저자와 1차 독자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저자는 모세입니다. 그리고 1차 독자는 애굽에서 출애굽을 경험하고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으시면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던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모세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야곱과 벧엘에서 함께 하신 이후에도 한 번도 변하지 않으시고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종노릇하며 생활하는 20년 동안 늘 함께 해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수없이 속임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늘 야곱과 함께 해 오셨기에 야곱은 그런 어려운 상활 속에서도 복을 누리며 살아 올 수 있었음을 모세는 강조합니다. 창세기 31장 이후를 통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계속 나타납니다. 야곱이 자기 형 에서를 만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해주셨고 야곱이 세겜에서 집안이 몰살을 당할 뻔한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년동안 기근이 들어 야곱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야곱을 돌보시고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에 대한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그의 평생동안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야곱과 늘 함께 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광야에서 살고있는 자신들과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과 앞으로 있을 가나안 땅의 정복과 그 땅에서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앞날에 대한 소망을 주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늘 함께 하신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일은 야곱에게만 그리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일은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을 통해 하나님을 가리켜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목자로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전 역사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되지만 그 바벨론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셔서 마침내 그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이라는 뜻)이 되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이것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마28:20절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구약시대에 베풀어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초대교회에 성신의 임하심을 통해 교회에게 여전히 베풀어집니다. 즉 과거에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후의 구약 시대와 초대 교회와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늘 변함없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해 오신 것입니다.
두번째는 야곱의 밧단 아람의 생애와 생활을 다시 한번 정리해 생각해 보십시다. 야곱의 밧단 아람에서의 생활, 곧 가정 생활, 양치는 생활, 또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데 관계가 없는 일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라반과의 갈등과 억울하게 자기 대가를 빼앗기고, 그곳에서 노예처럼 생활을 한 일들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관계가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니라, 다 관계가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든 일들을 통해서 그의 언약대로 하나님의 집과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좋고 나쁜 환경, 대인관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악한 인간들과 마주 대한 일들이 다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없는 일들이 아닙니다. 야곱에게는 그것을 통해서 자손들을 번성케 하시고, 재산을 증식시키고, 때로는 그 자신을 연단 하시는 도구로 쓰셔서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라반이라는 호적수를 정이나 사포처럼 사용하셔서 야곱의 모난 것을 20년 동안 다듬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야곱은 가장 많은 결점이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생애는 수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거룩케 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한번 택하심을 받은 이상 그는 세월에 따라서 점점 자기의 잘못된 여러 품성과 생활 행동을 회개하고 하나씩 고쳐나갑니다. 자기의 인생 행로에서 차차 주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주님만을 의지하는 행보를 해나가는 인간으로 변해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인 까닭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복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이 쓰실 그릇으로서 필요한 여러 가지 은혜의 내용을 그에게 풍성히 주신 것입니다. 되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악을 행할지라도 택한 사람이니까 덮어놓고 은혜를 주시느냐 하면 그런 일은 없습니다. 택하셨으면 그 사람을 은혜를 받는 그릇으로서 넉넉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야곱이 꾀를 써서 인간적으로 도리를 다 행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보호를 하십니다. 그 야곱과 그 후손인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약점이 있고 연약해도 존귀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친히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주의 것이요, 그의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사랑하신 그릇들입니다. 또 누가 교회를 정죄하고 해치려고 한다면 “누가 송사하리요, 하나님 우편에서 그리스도가 친히 간구하는 자니라” 라 하십니다. “또 사망이나 생명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천사들이나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는 자들이라”고 증거합니다.
20년 전에(창세기 28:10-22) 벧엘에서 말씀하신 데로 흠결이 많은 야곱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구약시대에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과 역사내내 함께 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지키셨으며, 오늘날에는 성신 하나님을 통해 여전히 허물많은 교회와 함께 하시며 구원을 베풀고 계시며 또 교회를 보호하시고 계시며 거룩케 하시며 마침내는 영화롭게 하십니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주님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희들은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으시면 살 수 없는 자들이옵나이다. 야곱은 라반을 통해서 많은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 어려운 상활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복을 누리며 살았사옵나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아내들도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자라게 하셨사옵나이다. 야곱의 이방 땅에서 모든 가정 생활, 양치는 생활 어려움이 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교회 생활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데 관계가 있는 일들임을 아옵나이다. 저희들이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셨으면 그 사람을 은혜를 받는 그릇으로서 넉넉하게 만들어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옵나이다. 비록 여전히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의 영광의 그릇으로 써주시기를 비옵나이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정리
야곱이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라헬과 레아의 결단은 어떤 신앙의 결단이었습니까?
라반의 추격에서 하나님의 어떻게 야곱과 그 가족을 보존하십니까?
야곱의 생애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