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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順崔氏의 유래

화순최씨의 유래를 알아봅니다.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11.02.12|조회수499 목록 댓글 1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유래(由來)

 

  화순최씨(和順崔氏)는 호남(湖南)의 화순지방(和順地方)에 세거(世居)하던 호족(豪族)으로 고려중엽

(高麗中葉)에 이르러 원조(遠祖) 휘(諱) 부(溥)는 좌어사(左御使)를 거쳐 고종 10년(1223년)에 전중감

(殿中監;從3品벼슬=왕실의 보첩을 맡아보던 관리) 동지공거(同知貢擧=과거시험관)를 겸임(兼任)하였

으며 몽고군(蒙古軍)의 친입때 안념(按廉)의 사명을 띄고 전라도로 내려가 몽고군을 몰아내고 민심을

안무(按撫)하는 공을 세웠으니 조정(朝廷)에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첨서추밀원사산기상시

(簽書樞密院事散騎常侍)를 제수(除授)하였다.    그 후에 문하시중(門下侍中;從1품)이 된 후 공을 화순군

(和順君)에 봉(封)하고 전라도의 안무사(按撫使)로 파견하였다. 임지(任地)에서 순국(殉國)하니 문헌

(文憲)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또한 원조(遠祖) 휘(諱) 세기(世基)는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남도안렴사(南道按廉使)가 되어 호남지방

(湖南地方)에서 몽고군(蒙古軍)을 몰아내고 민심(民心)을 안정(安定)시키니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從1품벼슬)이 되어 오산군(烏山君)을 수봉(受封)하고 시호(諡號)는 평장(平莊)이다.

 

  화순군(和順君)과 오산군(烏山君) 및 1세(世) 휘(諱) 계(桂)까지는 계대(系代)를 확인(確認)할 수 없어

화순군(和順君)과 오산군(烏山君)을 원조(遠祖)로 모시고 있다.

  1세(世)는 휘(諱) 계(桂)로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거쳐 평장사(平章事)가 되고,

  2세(世)는 휘(諱) 언(堰)으로 서북면(西北面=平安道地方) 도감판관(都監判官)이며,

  3세(世)는 계신(繼臣)으로 전객령(典客令)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이다.


  화순군(和順君) 휘(諱) 부(溥)의 묘(墓)는 무등산(無等山) 간방(艮方) 운운(云云)하나 전란(戰亂)으로

실전(失傳)하였고,   오산군(烏山君) 휘(諱) 세기(世基)의 묘(墓)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에서

찾았으나, 1세(世 ) 휘(諱) 계(桂) 평장사(平章事),와 2세(世) 휘(諱) 언(堰) 서북면도감판관(西北面都

監判官) 및 3세(世) 휘(諱) 계신(繼臣) 평장사(平章事)의 묘(墓)도 실전(失傳)하여 화순최씨(和順崔氏)

대종중(大宗中)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 제각(祭閣)뒤에 화순군(和順君)  과 1, 2, 3세(世)

네 어른을 설단(設壇)하여 모시고 있다. 4세(世)로 장자(長子) 휘(諱) 영호(永浩)는 좌우위보승산원

(左右衛保勝散員)이고, 차자(次子) 휘(諱) 영유(永濡)는 고려 충숙왕(忠肅王)때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보문각지제고(寶文閣知制誥) 예부상서(禮部尙書)등을 역임(歷任)하고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는

해주목사(海州牧使)로 홍건적의 침입을 수양성(首陽城)에서 방어하다가 전력의 열세로 성(城)이 함락

(陷落)되자 부엉이 바위(鵂岩)에 이르러 관인(官印)을 연못에 던지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血書)를

바위에 남기고 연못에 뛰어들어 순절(殉節)하니 때는 1361년11월23일(공민왕 10년) 신축(辛丑)년이다.

공(公)을 모시던 관리와 공이 기르던 개도 공(公)을 따라 연못에 뛰어들어 죽으니 해주읍(海州邑)

사람들이 크게 감동(感動)하여 공(公)을 장례(葬禮) 지내고 그 묘(墓) 아래에 관리와 개의 무덤도 마련

하였다.

 

그 후 나라에서 공(公)에게 충절(忠節)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으며 묘(墓)는 황해도(黃海道) 해주시

(海州市) 휴암(鵂岩) 북일리허(北一里許)의 신광동(神光洞) 건좌(乾坐)이다.(현재 북한 땅임) 화순고사

(和順故事)에 무등산(無等山) 지맥(支脈) 만연산(萬淵山) 밑에 팔판동(八判洞)과 갱래정(更來井)이 있

는데 이는 화순최씨 문중(和順崔氏門中)에서 삼정승(三政丞) 팔판서(八判書)가 배출되어 팔판동(八判洞)

이라 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 벼슬 따라 상경(上京)하는 화순최씨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와 이

우물물을 마실 것을 기약하고 떠나니 이 감천명(甘泉名)을 갱래정(更來井), 최씨우물 또는 한림정

(翰林井)이라 전해져 오고 있으나 벼슬 따라 고향을 떠난 후손들이 수백 년간 돌아오지 못하니 비석문헌

등 모든 자료를 잃게 되었다.

 

 

화순최씨 世居槪要 및 分布狀況

 

和順에서 본관을 얻은 和順崔氏는 1300年代에 벼슬 따라 고향인 화순을 떠나 경기지방을 거쳐 각

地方으로 옮겨가며 살아온 후손들은 현재 六世(1400년경)를 기준하여 五派(監察, 府使, 副正, 文貞,

 大司成公派)로 區分하고 있으며 監察公(諱 德潤)派는 충북 鎭川으로하여 충남 論山지방, 경기高陽,

江華, 坡州지방, 강원原州, 충북  堤川, 丹陽지방 등으로 황해도 海州牧使를 지낸 四世 忠節公(諱 永濡)의

孫子(府使, 副正, 文貞, 大司成公)中 府使公(諱 自海)派는 경북 金泉으로하여 전북 淳昌, 충남 論山, 전남

羅州, 황해 載寧, 서울지방 等으로 

 副正公(諱 自河)派는 경북 金泉으로하여 충북 報恩, 충남 燕岐, 公州, 論山, 大田, 경남 晋州, 山淸, 경기

楊州, 전남 咸平, 전북 茂州, 서울 외 지방으로 

 文貞公(諱 自江)派는 경북 金泉으로하여 충북 淸州, 淸原, 경남 居昌, 咸陽, 大田, 충남 公州, 천안, 전북

完州, 鎭安, 南原, 茂州, 淳昌, 전남 潭陽, 和順, 求禮, 谷城지방 등으로

 大司成公(諱 自濱)派는 경기 安城, 平澤으로하여 전북 完州, 益山, 沃溝, 淳昌, 南原, 任實, 강원 洪川, 

寧越, 平昌, 충남 扶餘, 牙山등 지방으로 주로 분포되어 살고 있다.

 1983.10.   현재 甲子譜 編纂時 4,928世帶에 23,373명으로 集計되었으며

 1985.11. 1.현재國勢調査統計는 6,628세대에 27,517명이 지방각처에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또한 평북 정주(北韓)지방에도 300余 世帶가 살고 있을 것이나 알 길이 없다.(종인 인원현황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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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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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순열 | 작성시간 13.01.18 이번 족보에 최부는 빠져있읍니다 , 화순최씨의 파가 2개인것으로 분류된것입니다 , 최낙영 족보편찬위원이 모든자료를수집한결과..세기와 부의 연대 차이가많이남 , 화순군지와 동주최씨족보등을 참조하였답니다, 부는 동주최씨에서분파된것입니다,원조는 세기로 시작입니다 (예 ,전주최씨도 4개의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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