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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는 감성의 물질을 어떻게 인식한다는 것일까?

작성자위찟따 vicitta|작성시간23.03.18|조회수44 목록 댓글 0

마노의 대상인 법이라는 대상(dhamma-ārammaṇa)은 여섯 가지다.

감성의 물질, 미세한 물질, 마음, 마음부수, 열반, 개념이 그것이다.

 

필자는 이 중 마노가 감성의 물질을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감성의 물질은 다섯 감각의 대상을 받아들이는 물질인데, 마노가 감성의 물질을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은 오문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도 마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말일까?

 

아래는 그와 관련한 선배 도반과의 문답 내용이다.

 

Q.

아비담마 길라잡이 3장의 대상의 길라잡이를 공부하다가 ’마노의 문을 통해서 인지되는 감성의 물질‘이라는 대목에서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감성의 물질은 전오식의 토대가 되고, 다섯 감각의 대상의 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노의 대상 중 하나가 이 감성의 물질이라는 것은, 오문인식과정에서 다섯 감각의 문에서 받아들인 대상을 마노의 알음알이 요소로 인식하는 과정(조사-결정-속행-여운)을 거치듯
‘감성의 물질을 통로 삼아 마노가 다섯 감각의 대상을 알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는 걸까요?

즉 마노가 직접 아는 대상은 감성의 물질이지만, 
대상을 감수하는 감성의 물질의 역할을 고려했을 때 
마노가 감성의 물질을 대상으로 가짐으로써 
감성의 물질이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다섯 감각의 대상 역시 마노가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노가 다른 다섯 가지 대상(미세한 물질, 마음, 마음부수, 열반, 개념)을 대상으로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데, 
감성의 물질의 경우 마노가 감성의 물질 그 자체만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자체가 어떤 작용이나 역할을 성취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마노가 감성의 물질을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은 각 감각기관에서 감각의 대상을 감수하는 역할을 하는 ’감성의 물질‘ 그 자체만 대상으로 삼아 알고 끝낸다는 것인지, 
아니면 감성의 물질이 받아들이는 외부의 대상을 마노가 인식하는 것 전체 과정까지 지칭하는 것인지 궁금함이 생겨 여쭙습니다.

 

A.

예. 아주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저는 마노가 ‘감성의 물질’만 그대로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감성의 물질’은 ‘눈의 감성, 귀의 감성, 코의 감성, 혀의 감성, 몸의 감성’이라는 물질인데,
이것은 물질이지만 마노로만 인지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눈의 감성’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소리로 들을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혀로 맛볼 수도 없고, 몸으로 감촉할 수도 없다는 의미이지요.
오로지 ‘마노, 마음’으로만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불교에는 ‘눈은 정작 자기 자신은 볼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이 말도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고요.
그런데 ‘눈의 감성’은 눈으로도 감지할 수 없고, 귀·코·혀·몸으로도 감지할 수 없지요. ‘귀의 감성’ 등도 마찬가지이고요.

기본적으로 그런 의미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대상의 길라잡이’이니까 이 문맥에서는 그렇게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오문인식과정과 연계해서, 오문인식과정의 어떤 찰나를 가지고 관찰할 때는 다른 관점이 필요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렇더라도 ‘감성의 물질’이 받아들인 대상(형색 등)을 마노가 인지한다는 식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색, 눈의 감성, 눈의 알음알이, 이 세 가지(근경식)가 화합하면 감각접촉이 일어났다고 하지요.
이때 ‘봄’ 또는 ‘보임’이라는 작용이 일어납니다.

이 ‘봄’ 또는 ‘보임’은 근경식이 함께 작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근경식 간에 어떤 순서나 이런 것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근(눈 또는 눈의 감성)이 먼저 경(대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식(마노 또는 마음)이 인지한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고, 세 가지가 함께 일어나서 ‘봄’이라는 작용이 일어난다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봄’이라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근이 경을 받아들이고 식이 이것을 인지한다고 설명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부분을 부처님이나 주석서에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단지 세 가지가 화합하여 ‘봄’이라는 현상, 작용이 있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생각해 보면 삼사화합이라고 할 때의 근경식은, 함께 작용한다는 의미이지, 더 나아가 동시에 작용을 한다거나 무엇이 무엇을 통해서 작용한다거나 하는 설명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제가 사실 대답드릴 만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상의 길라잡이’에서 마노의 대상을 설명하면서 나오는 ‘감성의 물질’은, 말 그대로 ‘감성의 물질’은 ‘마노의 대상’ 중의 하나이다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넘어가도 충분할 것이다라는 정도입니다.

인식과정의 14심찰나 내지 17심찰나 한 찰나 한 찰나에 함께 일어나 작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초불카페에 그 비슷한 자료가 있을 거예요.

예컨대 5번 심찰나는 ‘안식(눈의 알음알이)’으로 설명되는 곳인데, 이 찰나에 함께 일어나 작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 열거해 보는 것이지요. 심장토대, 생명기능 등등 말이지요.
또 마음도 89/121가지 마음 가운데 어떤 것인지 찾아보고요. 

또 “형색이 나타나면 ‘지나간 바왕가’로 1번 심찰나가 지나가고 나서 바왕가의 동요(2번 심찰나), 바왕가의 끊어짐(3번 심찰나)이 일어나고, 4번 심찰나에 오문전향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형색이 나타났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요.
삼사화합이라는 개념은 근경식이 함께한다는 의미인데, 그런 관점에서는 여기 인식과정에서 ‘형색이 나타났다’라는 의미는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이처럼 문맥에 따라 ‘형색이 나타났다’는 말도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겠지요.

 

마치 물질이지만 거친 물질 12가지(감성의 물질 5가지, 대상의 물질 7가지)를 제외한 16가지 미세한 물질은 마노의 대상이듯이,

감성의 물질 5가지 역시 물질이지만 마노만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선배 도반의 말씀이다.

 

만약 필자가 처음에 의문을 가졌듯 마노가 감성의 물질을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이 감성의 물질을 통해 외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이해해 버린다면,

사실상 마노는 감성의 물질을 통해 거친 물질과 미세한 물질, 합하여 28가지 물질 전체를 인식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대상의 길라잡이에서 아누룻다 스님이 서술하신 의도와는 동떨어진 해석이 될 것이다.

스님은 대상의 물질 7가지는 감성의 물질 5가지의 대상이지 마노의 대상이라고 설하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비담마 길라잡이 358쪽에서 대림스님, 각묵스님이 해설하신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들'이 '(2) 마노의 문을 통해서' 인식된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래는 그에 대한 문답 내용이다.

 

Q.

관련해서 추가적인 의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 358쪽을 보면 제일 아래 문단에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들‘이
’(2) 마노의 문을 통해서‘ 인식된다고 해설이 쓰여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두 가지 경우로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1) 첫 번째는 마노가 지금 이 순간 감성의 물질을 통해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고

2) 두 번째는 현재 심찰나의 마노가 지나간 심찰나의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을 아는 마음을 기억하여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들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 같은 문단에 (3)으로 설명한 문에서 벗어난 마음들도 마노의 문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을 취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 중 이전에 답변해 주신 내용을 참고하면 1번의 해석은 맞지 않는 것 같고,
해설을 쓰신 대림스님, 각묵스님은 2번을 의도하고 쓰신 건가 싶은데, 맞는 걸까요?

아니라면 저 단락을 어떻게 적절하게 해석해서 이해하면 될까요?

 

A.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3. 법이라는 대상은 6가지이다: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들은 다음의 세 가지 방법 중의 하나로 인식된다. 

즉 (1) 그 각각의 감각의 문을 통해서
(2) 마노의 문을 통해서
(3) 재생연결식과 존재지속심(바왕가)과 죽음의 마음의 역할을 하는 문에서 벗어난 마음을 통해서 인식된다. 

법이라는 대상들은 이런 다섯 감각의 문을 통해서는 결코 인식되지 않는다.
그들은 마노의 문과 문에서 벗어난 마음을 통해서만 인지된다.
마노의 문을 통해서 인지되는 법이라는 대상은 다음의 여섯 가지이다.”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들’은 ‘형색이라는 대상, 소리라는 대상, 냄새라는 대상, 맛이라는 대상, 감촉이라는 대상’입니다.
따라서 ‘법이라는 대상’은 이 문맥에서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습니다.

‘(1) 그 각각의 감각의 문을 통해서’는 ‘눈의 문, 귀의 문, 코의 문, 혀의 문, 몸의 문’이라는 감각의 문을 통해서라는 의미이지요. 
이런 경우는 ‘현재’ ‘형색이라는 대상 등’이 ‘일어남-머묾-무너짐’은 단계에 있을 때, 즉 눈의 문에 형색이 나타나고 그것을 눈의 알음알이로 인지하는 경우 등으로, 인식과정으로 보면 ‘오문인식과정’으로 볼 수 있겠지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 마노의 문을 통해서’ 이것은 ‘의문인식과정’을 통하는 경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문인식과정은 오문인식과정의 후속과정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순수한 의문인식과정이 있는데, 후속과정은 당연히 포함되겠고, 순수한 의문인식과정인 경우도 그 대상이 ‘형색이라는 대상 등 5가지이며’ 포함될 수 있겠지요.

‘(3) 재생연결식과 존재지속심(바왕가)과 죽음의 마음의 역할을 하는 문에서 벗어난 마음을 통해서’입니다. 문에서 벗어난 마음인 경우라고 하고 있으니 ‘인식과정에서 벗어난 때’를 가리킨다고 보여집니다.

‘문’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1)(2)는 인식과정(오문인식과정+의문인식과정)에서 인지되는 경우이고, (3)은 ‘문을 벗어난 경우’이고요.
[인식과정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vīthi-citta’로서 vīthi(과정)과 citta(마음)의 합성어입니다.(383쪽 참조)
‘인식과정을 벗어난’으로 번역된 것은, 원어 vīthimutta를 그렇게 의역한 것입니다. vīthi(과정) + mutta(벗어남).]

이렇게 보면 질문하신 ‘다섯 감각의 문의 대상들’이 ‘(2) 마노의 문을 통해서’ 인식된다고 해설된 부분의 해석은 법우님의 (2번) 해석이 적절한 해석으로 보여요.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에 기반한 답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속행’과 ‘속행과정’은 전혀 다른 말이지요. 속행은 7심찰나이지만 ‘속행과정은’ 14심찰나 또는 17심찰나니까요.
여기서 ‘대상’이라고 하니 당연히 ‘인지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지’에 관여하는 마음만 해도 18계로 보면 7가지이지요. ‘오문인식과정, 의문인식과정, 문에서 벗어난 과정’으로 나눌 수도 있고요.

‘형색이라는 대상’이라는 말만 놓고 보면 ‘눈과 짝이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또는 ‘눈의 알음알이의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눈의 문’과 짝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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