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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속행은 일곱 번이고, 도와 신통지는 오직 한 번, 나머지 고귀한 속행과 출세간의 속행은 많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4장)

작성자위뭇따 vimutta|작성시간23.07.28|조회수24 목록 댓글 0

1.

II.4. 속행(자와나)의 법칙
Javana-niyama

속행(javana)도 역시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일어난다. 이제 그 법칙을 하나하나 알아보자. 먼저 욕계의 속행이다.

 

 

2.

§21. 욕계의 속행

속행 중에서 제한된 속행과정에서 욕계의 속행은 일곱 번 혹은 여섯 번 일어난다.
그러나 임종 시와 같은 느린 과정에서는 다섯 번만 일어난다.

세존께서 쌍신변을 나투시는 때와 같은 빠른 과정에서는 네 번 혹은 다섯 번의 반조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그들은 설한다.

 

1. 제한된 속행과정에서...: 이 제한된 속행과정이라 불리는 욕계의 속행은 일곱 번 일어난다. 대상이 아주 약할 경우에는 여섯 번만 일어날 수도 있다.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진행되는 인식과정 등³⁶¹⁾에서는 자와나가 다섯 번만 일어난다. 심장토대가 약하기 때문이다.

³⁶¹⁾ 『위바위니 띠까』는 기절한 경우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VṬ.155)

 

여기서 '임종 시'는 내생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속행이 느려진다고도 한다.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전 생의 마지막 5번의 자와나를 의미한다. 대상은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3가지 중 하나이다.

 

2. 세존께서 쌍신변을 나투시는 때와 같은...: ...쌍신변, 즉 yamaka-pāṭihāriya는 상반되는 두 가지(필자 주 - 극과 극인 두 가지)를 동시에 나타내는 신통을 말한다.

이 쌍신변은 신통 가운데서 가장 나투기 어려운 신통이라 하는데 불과 물이 동시에 나타나게 하는 등 상반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나타내는 신통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깨달음에 대해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몇 번 이 쌍신변을 나투셨다 한다. 이 신통은 앞의 찰나에는 불의 까시나를 통해서 색계인 제5선에 든 다음 불을 나타내 보이려 결심하고 다음 찰나에 다시 욕계로 나와서 그것을 반조해보고, 그다음 찰나에는 물의 까시나를 통해서 색계인 제5선에 들어서 결심을 하고 다시 욕계로 나와서 그것을 반조하여 신통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신통을 하나씩 하나씩 실행하는 데는 오직 네다섯 번의 심찰나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보는 사람들에게는 불과 물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쌍신변은 제5선의 신통지의 마음으로 나타내 보이기 때문에 색계에 속하고 선의 구성요소들을 반조하는 마음은 욕계에 속한다. 이것은 욕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마음의 과정이다.³⁶³⁾

³⁶³⁾ ..."즉 오직 두 번의 존재지속심(바왕가)과 네 번의 속행의 마음을 가진 것이다. 선에서 나와 일으킨 생각으로 전향할 때 존재지속심을 끊고서 전향이 일어난다. 그다음에 그 일으킨 생각을 대상으로 하여 믿음의 기능 등이 강하면 네 번, 믿음의 기능 등이 둔하면 다섯 번의 속행이 일어난다. 그다음에 두 번의 존재지속심이 일어난다. 바로 그다음에 다시 지속적 고찰을 대상으로 전향이 일어난다. 이처럼 오직 두 번의 존재지속심과 오직 네 번의 속행을 가진 자유자재를 뜻한다. 전향에 대한 자유자재(āvajjana-vasī)가 이보다 더 빠른 것은 없다. 이것은 세존의 쌍신변에서 발견되고, 법의 대장군 [사리뿟따 존자]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시간에 발견된다."(Pm.i.179)

 

 

3.

§22. 증득에서의 속행

22-1. 본삼매의 첫 번째 과정에서 처음으로 증득하는 자에게 일어난 고귀한 속행과 신통지의 속행은 항상 한 번만 일어난다. 그다음에는 존재지속심으로 들어간다.

 

1. 처음으로 증득하는 자에게 일어난 고귀한 속행과...: 어떤 종류의 선이든 그 선을 처음으로 증득할 때의 인식과정에서 고귀한 자와나는 단 한 번만 일어난다. 그것은 아직 반복하여 닦지 않아서 미약하기 때문이다. 신통지를 나투는 제5선의 자와나는 그것에 통달한 사람에게도 단 한 번만 일어난다. 왜냐하면 단 한 번으로도 그것의 의무를 충분히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삼매 속행과정은 제한된 속행과정과 달리 자와나의 숫자가 7번으로 제한되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

오직 처음으로 증득할 때만 속행 한 번으로 제한된다.

 

22-2. 네 가지 도의 일어남은 하나의 심찰나 동안만 유지된다. 그다음에 두세 개의 과의 마음이 적절하게 일어난다. 그다음에 존재지속심으로 들어간다.

 

1. 네 가지 도의 일어남은...: 각각의 도의 마음도 오직 한 심찰나만 유지된다. 이 동안에 그 특정한 도에서 멸절해야 할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거나 엷게 하는 역할을 완수한다. 보통의 기능들을 가진 사람의 경우 도의 인식과정의 예비적인 단계에 '준비(parikamma)'라고 불리는 찰나가 포함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도 다음에 두 개의 과의 마음들이 일어난다. 아주 예리한 기능들을 가진 사람에게는 준비의 찰나는 나타나지 않고 지나간다. 그러므로 그 도 다음에 세 개의 과의 마음들이 일어난다.

 

22-3. 멸진정에 들 때 네 번째 무색계(비상비비상처)의 속행이 두 번 일어난다. 그다음에 멸진정에 든다.
[멸진정으로부터] 출정할 때 불환과 혹은 아라한과가 적절하게 한 번 일어난 뒤 멸할 때 존재지속심으로 들어간다.

 

1. 멸진정에 들 때: 색계와 무색계선을 통달한 불환자와 아라한은 도닦음에 의해서 알음알이의 흐름과 그 마음부수들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수행의 증득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경지를 nirodha-samā-patti라 하고 중국에서는 '멸진정'으로 번역하여 우리에게도 알려진 용어이다.

여기서 '멸진'은 nirodha를 옮긴 것인데 이것은 ni(아래로)+√rudh(to obstruct)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아래로 내려 누름'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소멸, 억압, 지멸' 등의 뜻으로 쓰인다. 경에서는 문맥에 따라서 '일어남'을 뜻하는 samudaya의 반대어로 '없어짐, 사라짐'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열반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멸진정의 '정'은 samāpatti를 옮긴 것이다. Samāpatti는 중국에서 등지로 옮겨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말인데 이것은 saṃ(함께)+ā(이리로)+√pad(to go)에서 파생된 여성명사로 문자적으로는 '함께 받아들임'이며 '증득, 얻음, 획득'을 뜻한다. 상좌부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에서도 samāpatti는 위 구차제멸로 표현한 4선·4처·상수멸의 경지 가운데 하나를 증득한 것을 뜻하는 전문용어이다. 중국에서는 saṃ 의 의미를 등으로 살려 등지로 옮겼다.

멸진정으로 옮기는 nirodha-samāpatti는 초기경에 많이 나타나는 상수멸(saññā-vedayita-nirodha)과 완전한 동의어이다. 초기경에서는 대부분 상수멸로 나타나는데 아비담마와 주석서들에서는 멸진정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상수멸의 증득(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기도 한다. 역자들은 본서에서 samāpatti가 단독으로 쓰이면 '증득'으로 옮겼고 nirodha-samāpatti는 '멸진정'으로 옮겼다.

이 경지는 몸은 살아있지만 인식과 느낌으로 대표되는 모든 마음작용, 즉 마음과 마음부수들이 멸해버린 상태이다.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들에 의하면 이 경지를 얻으려면 수행자는 모든 선의 경지, 즉 초선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 차례대로 들었다가 나와서 이런 경지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이 모두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무아라고 주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무소유처에 도달하였다가 그 경지로부터 나와서 수행자는 준비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점검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멸진정에 드는 것이다. 그러면 네 번째의 무색계선(비상비비상처)에서 두 개의 마음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나서 알음알이의 흐름은 끊어져 버린다.

 

멸진정은 인식(상), 느낌(수)이 멸하여(상수멸) 몸뚱이만 살아있다.

청정도론 23장을 보면 '7일 뒤에 깨어나리라' 등의 결심을 하면 그 결심한 시각에 정확하게 깨어난다고 한다.

 

멸진정에 들어있는 기간은 수행자가 무소유처의 선에서 나와서 준비과정으로 점검할 때 결심한 기간만큼이다. 이것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칠 일까지 가능하다. 출정할 때는 제일 먼저 불환자에게는 불환과가, 아라한에게는 아라한과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다음에 마음은 존재지속심으로 가라앉는다...

 

22-4. 증득의 과정에서는 존재지속심의 흐름에서처럼 인식과정의 법칙이 없다. [고귀한 속행과 출세간의 속행은] 많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1. 증득의 과정에서는...: 이 문장은 선과 과를 증득함에 있어서는 본삼매의 기간을 수행의 정도에 따라 늘릴 수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언급되었다. 처음으로 증득하는 자에게 증득은 오직 하나의 속행과정 동안만 존재한다. 수행을 거듭함에 따라서 두 속해오가정, 세 속행과정 등으로 증득은 점점 증가되어 본삼매의 증득은 반나절, 한나절, 하루 밤낮 등으로 증득의 속행과정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된다. 『맛지마 니까야』 제2권 「고싱가살라 긴 경」 (M32)에는 사리뿟따 존자가 마치 왕이 원하는 대로 이 옷 저 옷을 갈아입듯이 모든 선에 자유자재로 입정하고 출정할 수 있다고 나타난다. (M32 §16)

 

 

4.

§23. 요약

제한된 속행은 일곱 번이고
도와 신통지는 오직 한 번이라고 알려졌다.
나머지 [고귀한] 속행과 [출세간의] 속행은 많다.

이것이 여기서 속행의 법칙이다.

 

도의 마음은 오직 한 번만 그것도 한 심찰나에만 일어난다.

 

 

 

인용 출처: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초기불전연구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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